피스레터(글)2018.06.19 22:59

[시선 |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결국은 살아가야 한다는 것


심은보


어느 월요일 아침이었다. 한 녀석이 자리를 매주 월요일마다 바꾸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휙 던졌다. 그 동안 우리 반은 달마다 자리를 바꾸어 앉고 있었다. 몇몇 친구들의 맞장구가 있었고, 결국 그 제안은 월요일 아침이면 하는 우리반 회의에 안건으로 채택되었다. 자리를 바꾸는 횟수를 늘리겠다는 원칙이 강했던 것일까. 왜 그러해야 하는 것인지, 그렇게 했을 때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이 나쁜지에 대한 검토도 없이 두세 가지 방법을 발표하더니 바로 표결에 돌입하는 녀석들. 잘 되었다 싶었다. 이참에 다수결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결정 사항에 따라 월요일인 그 날 바로 자리를 바꾸었다. 자리를 바꾸는 방법은 내 마음대로... 여기저기 투덜투덜 거리는 모습들이 보인다. 한참을 지켜보다 아이들에게 회의란 것이 무엇이어야 할까 하는 이야기부터 꺼내놓았다.

 

회의를 하라고 했더니 각각에 대한 검토 없이 다수결로 무엇인가를 순식간에 결정해버리고 말았던 우리들의 모습을 먼저 짚고, 결국 합의를 해놓은 게 언제 자리를 바꿀 것인가를 빼고 아무 것도 없지 않은가 하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회의가 올바로 진행되려면 각각의 방법에 대한 장점과 단점을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충분한 토론이 있은 후에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하는 이야기로 흘러가는 것이 적절하지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 또 해당 시기마다 자리를 바꾸었을 때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을 어떻게 보완하며 자리를 정할 것인가 하는 방법까지도 의논했어야 맞지 않겠는가 하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덧붙여 우리가 회의를 한다는 것은 다수결로 어떤 것을 결정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선 안 된다는 이야기와 함께 삶 속에서 회의가 가지는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결국 아이들은 회의를 다시 진행하겠노라고 했고, 어설프고 불편했지만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결론은 주마다 자리를 바꾸는 것으로 하고 자리를 정하는 방법도 결정했다. 더 나아가 자리 바꾸는 주기가 짧아지면 예상되는 문제에 대한 보완책도 정해 놓고서 마무리를 지었다.

 

아이들의 회의는 차츰 습관적인 다수결을 넘어서는 무엇인가로 변해가고 있었다. 요사이 진행되고 있는 목공수업의 과정에서 아이들의 변화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우리 학교 5,6학년 아이들은 해마다 목공수업을 한다. 무엇인가 조그만 물건을 만들어 가곤 하는 목공체험이 아니라 함께 사용할 무엇인가를 만들거나 꾸미는 그야말로 목공수업을 진행한다. 작년 5,6학년은 목공수업을 통해 소리마루라고 하는 놀이터를 하나 만들었고, 현재는 전체 학생들이 즐겁게 뛰어 노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올해는 중앙현관을 꾸며보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두 주간은 아이들과 무엇을 만들 것인가 하는 수업을 진행했다. 각자 모눈종이에 디자인을 해보고 친구들 앞에서 발표를 했다. 처음에는 책상과 책장, 의자에 갇혀 있던 아이들의 생각이 두 주 째는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큐브 형태의 방을 만들자는 이야기부터 책장을 계단 삼아 올라갈 수 있는 다람쥐통 형태의 독서방, 전교생의 소원을 매달 수 있는 소원나무, 신발걸이 등 다양한 생각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이야기들을 칠판에 적어 놓고 먼저 모둠별로 무엇을 만들면 좋을 것인가 하는 것을 두 가지 정도씩 정하도록 했다. 그리고 나선 전체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결정하는 시간. 모둠별로 만들고자 하는 것을 꺼내놓고 토론을 이어갔다. 모둠 안에서 차근차근 의견들이 정리되어 가기 시작했고, 모둠별 의견을 듣고 토론을 통해 하나로 모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 다른 의견들 속에서도 아이들은 다른 친구들의 의견을 듣고 자신들의 의견을 또 꺼내 놓았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합리적이다 생각하면 수긍을 하기도 했고, 때론 다른 생각들에 맞서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설득하고자 애 쓰는 모습들이 역력했다. 이 과정에서 다수결로 결정하자는 이야기를 할만도 한데 어느 누구도 다수결을 꺼내들지 않고 모든 친구들이 합의할 때까지 회의를 이어가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뒤에서 지켜보는 내 입장에서도 신기한 모습이었지만 목공 선생님께서 놀라워하셨던 모습이기도 하다.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고 하셨다.


 

긴 시간의 아이디어 회의 끝에 전교생의 소원을 매단 소원 나무를 만들고, 그 아래에는 어두운 중앙 현관을 간접 조명으로 밝혀줄 수 있는 구멍이 뚫려있는 치즈형태의 의자(안에는 오렌지색 조명을 포함)를 만들자는 의견으로 결정되었다.

 

지난주까지의 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어제부턴 공방에 가서 목공 작업을 진행하였다. 작업은 두 모둠으로 나누어 진행하였다. 한 모둠은 치즈등상자를 만들고, 또 한 모둠은 소원나무를 만들기 시작했다. 한 모둠은 10명의 친구들이 작업을 하고, 또 한 모둠은 11명의 친구들이 작업을 했다. 함께 하기에는 모둠마다 속한 사람의 수가 많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한명도 소외됨 없이, 커다란 갈등도 없이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으며 모든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참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치즈등상자를 만드는 모둠 아이들 모습 속에서는 치수를 재어가며 못 박을 자리를 정하는 과정부터 구멍을 뚫고 나사를 박아 조립하는 과정까지 서로가 서로를 도와가며 모든 친구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가는 과정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소원나무를 만드는 모둠 아이들은 이후 활용까지 고민하며 나무줄기와 나뭇가지의 배치를 놓고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는 모습과 함께 나무의 자리를 표시하기 위한 방법을 의논하는 모습, 또 도와가며 구멍을 뚫고 마무리까지 해내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이후 녀석들이 만든 것들은 학교에 들어서면 만나게 될 중앙현관의 한 쪽 벽면을 수놓게 될 것이다. 어쩌면 조금은 거칠고 투박할지 모르지만 학교 공간에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가 스며들게 되는 것이다.




 

학교 민주주의도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때론 조금은 투박하고 거칠지라도 아이들의 자리를 조금 더 넓혀 주는 것, 조금은 더디 가고,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가는 것... 그런 것 말이다.

 

학교에서 민주주의 이야기를 하다보면 거창한 프로그램 이야기나 교장, 교감을 비롯한 관리자에 중심을 두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부분도 중요하겠지만 나는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구체적인 우리들의 모습이 더욱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배운다는 건 결국은 살아가는 일이니 민주주의를 아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민주적으로 살아가는 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민주주의를 겪어 본 아이들이 또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어 갈 테니 말이다.

 

어느 날 오후 지금은 중3에 올라가서 생활하고 있는 OO이의 아버지로부터 카톡이 하나 도착했다. “아침에 OO이와 학교에 가는데, OO이가 죽백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더군요. 왜냐니까 토론으로 수업하는 게 좋은 거라는 것을 지금은 알겠다고 하더군요. 좋은 오후 되세요.”


심은보 8년차 혁신학교 죽백초등학교에서 행복한 배움터를 일궈가며 일곱 해 째를 보내고 있습니다. 2018년에는 심과 함께’ 6학년 1반 아이들과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혁신교육을 생각하다2’, ‘평화시대를 여는 통일시민교과서를 쓰는 일에 함께 했습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