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레터(글)2018.06.19 23:09

[시선 | 브루더호프에서 날아온 평화 편지]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


원마루


안녕하세요? 어깨동무 친구 여러분!

여름의 길목에서 인사드립니다. 어쩌면 벌써 봄을 건너뛰고 여름으로 향하고 계신지도 모르겠네요.

 

먼저 드리는 소식은 박새가 알을 깐 소식입니다. 지난 3월 중순 막내 창호의 여섯 살 생일을 맞아 새가 알을 낳을 수 있는 상자를 함께 만들어서 숲속의 나무 위에 달았습니다. 나무상자에 지름 2.5센티미터 정도의 구멍을 뚫어 나무에 달면 푸른 박새가 둥지를 틀수도 있다고 해서 한 번 만들어 봤습니다. 아이와 함께 작은 나무판자들을 나사못으로 조여서 숲으로 들고 갔습니다. 그런데 막내가 자기가 쉽게 볼 수 있는 나지막한 곳을 고집하는 거예요. 새 보호 단체의 안내문에는 최소한 2미터 높은 곳에 달아야 박새가 안심하고 둥지를 튼다고 했지만, 아이 생각을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도 안 지나서 막내가 아빠, 박새가 조그만 알을 일곱 개나 낳았어요!”라고 했을 때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 달 반이 지나니까 아빠, 아기 새들이 엄마 부르는 소리가 나요.”라고 하는 겁니다. 어찌나 신이 나던지요. 작은 생명이 엄마 새의 정성스런 돌봄으로 태어나서 자라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도 즐거운데, 그걸 가까이 보게 된다니까 왠지 모를 경외감을 느끼게 됐습니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우리네 삶으로 이어졌습니다. 주변에 노는 아이들을 다시 보게 됐고, 그 아이들에게 평화로운 세상을 물려주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오랜 세월 갈등과 반목, 전쟁의 위협 속에 살고 있는 한반도의 아이들이 평화로운 미래를 살 수 있는 대화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숲속 나무 위에 단 새 상자

 

새 상자 안에 어린 푸른 박새들이 불청객의 방문에 몸을 웅크리고 있다.

 

물론 평화를 이루는 길은 순탄하지만은 않지요. 야생의 박새에게는 알을 호시탐탐 노리는 뱀이 늘 무서운 존재이고, 때로는 저같이 자연의 순리는 모른 채 호기심만 많은 아빠가 나무를 타고 올라가 박새 새끼를 관찰하려고 하는 위험도 존재합니다! 모처럼 시작된 북한과 미국의 대화도 숱한 고비를 만나고 있지요. 그런 뉴스를 BBC 아침 뉴스 머리기사로 접하는 저희 같은 사람은 말 그대로 애간장이 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렇게 소극적으로 상황을 대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겁만 내고 있을 것이 아니라 작은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집어든 것이 이억배 화백의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이라는 그림책입니다. 이 책은 저희 아이들이 하도 좋아해서 모서리가 닳았고, 이미 한 번의 수선을 거친 책입니다. ··일 세 나라가 공동으로 기획한 평화 그림책 시리즈의 하나인 이 책은 북한에 고향을 둔 어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비무장지대에는 물범과 고라니, 수달과 연어, 산양 등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지만, 할아버지는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먼 고향땅을 바라봐야만 합니다. 아내와 저는 이 책을 영어로 번역해서 마을 식구들에게 읽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일요일 아침 동네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모이는 자리에서 책을 함께 읽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책 표지

 

5월초 일요일 아침, 마을 식구들이 식당에 모두 모였습니다. 커튼을 치고 앞 무대에 슬라이드를 보여줄 준비를 해 놓았기 때문에 모두 뭘 보게 될까 궁금해 하는 모양이었습니다. 모임이 시작되고 비무장지대에 관한 간단한 설명을 한 후에 바로 그림책을 봤습니다. 아내가 영어로 이야기를 읽어주었고요. 아이들은 처음 보는 비무장지대의 모습이 신기한 듯 바라보다가 익살스러운 물범 가족, 엄마 오리를 따라 줄지어 헤엄치는 오리 새끼들, 물속에서 재주를 넘는 수달을 보면서는 신이 났습니다. 아마 어떤 아이들은 행군하는 군인 아저씨들을 보며 멋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빨간 세모 표지판에 쓰여 있는 지뢰(mine) 표시를 보고는 조금 겁이 났겠지요.

 

이야기는 계속됐습니다. 비무장지대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왔고, 그곳에 사는 군인들의 일상은 계속되었으며, 전망대에도 관광객이 계속 찾아왔지만 이제 할아버지는 더는 전망대에 오르고 싶지 않습니다. 그 대신 굳게 닫힌 철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비무장지대에 들어가 양지바른 풀밭에 누워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이 장면을 읽어주면서 책 양쪽 면의 종이로 접힌 통일문을 열어 보이는 순간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그 앞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비무장지대의 자연에 탄성을 질렀고, 할아버지가 북녘의 형제를 만나 얼싸안는 장면에는 모두 흐뭇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모임이 끝나자 많은 분이 찾아와 고맙다고, 한국의 평화를 위해 기도해준다고 말씀해 주셔서 힘이 났습니다.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일은 단번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할 일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곁에 있는 사람과 마음과 힘을 모으면 어려울 때가 와도 이기기 마련이고, 끝내는 진정한 마음이 승리하는 때를 보게 되겠지요. 사실 저는 며칠 전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회담을 취소하는 발언을 했을 때 많이 걱정했습니다. 모처럼 얻은 대화의 기회가 맥없이 끝나는 줄 알았거든요. 그때 아는 분 소개로 듣게 된 어울림 아리랑이라는 노래를 듣고 힘을 얻었습니다. 전에 보내 드린 편지에 소개한 밝은 누리라는, 생명 평화를 삶으로 살아내려는 분들이 순례를 다니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진도아리랑에 노랫말을 붙인 이 노래를 함께 부르며 모두 용기를 내시면 좋겠습니다. 이분들이 지은 노랫말을 따라 부를 수도 있고, 나름대로 노랫말을 부쳐서 흥겹게 부르며 신나는 하루, 평화로운 여름이 되시길 바래요.

 

<어울림 아리랑>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헤에헤

아리랑 음음음 생명평화로구나

 

(후렴, 일부)

남북 하늘에 원통을 풀고 우리네 가슴속에 해원을 담자

안산 제주에 눈물을 닦고 동북아 흩어진 겨레를 품자

한라 백두를 넘어 가보자 차별없는 사랑으로 어질게 살자

이땅 원통함 모두 풀어지고 모든 아픔상처가 사라진다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추고 온생명 곱게곱게 어울리는구나

 

 노래듣기


2018530

너도밤나무 숲에서, 마루와 아일린 드림

 


원마루아내와 함게 세 명의 개구쟁이 아이들(6, 2, 유치원)을 기르며 영국 도버 근처의 너도 밤나무(Beech Grove) 브루더호프에서 살고 있다. 어린이가구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왜 용서해야 하는가>, <희망이 보이는 자리> 등을 번역했다. Bruderhof.com/ko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