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레터(글)2018.06.19 23:31

[시선 | 평화의 마중물]


아이티 대지진 현장에서


송강호


2010111일 중앙아메리카의 작은 섬나라 아이티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사망자만 인구의 십 분의 일인 30만 명으로 추산되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무너진 건물더미 아래 깔려 압사당한 상황에서 마지막 생존자들을 찾아내고 시신들을 꺼내는 처참한 장면이 보도되면서 전 세계는 이 미증유의 대재난에 안타까움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3명의 개척자들1) 요원과 함께 이 재앙의 복구와 난민 구호활동을 위해 수도 포트프랭스에서 약 20~30km정도 떨어진 레오간 지역에 파견되었다.

 

주석1) 개척자들은 교회와 인류의 화해와 일치를 추구하는 공동체로 평화(Shalom)를 실현하는 것을 미션(Mission)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전쟁, 재난, 기아 등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는 현장에 나가 평화를 위해 활동합니다.

 

아이티의 지진 [사진제공=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

 

대재난이 벌어지면 순수하게 인도주의적인 동기에서 이들을 도우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사건 사고에 대한 의미를 해석하려 들고 그 해석에 따라 자신의 활동에 동력을 불어넣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 중에는 기독교 선교단체들이 있다. 이들은 2004년 말 아체에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도 그러했고 2006년 파키스탄에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도 그러했다. 이들은 이 모든 지진이나 해일들이 강고한 이슬람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고 주장했다. 아랍 이슬람의 고통에 대한 보수 기독교 지도자들의 아집과 편견은 지나칠 정도여서 2001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걸프 전쟁까지도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하고 아랍 이슬람권에 대한 선교의 문이 열리게 된 축하할 만한 사건이라고 설교하였다. 그리고 아이티 대지진 때도 자신들의 입장에서 그 의미를 부여했다. 이 해석은 더 악의적이고 냉혹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자 팻 로버트슨 목사는 아이티의 대재앙이 그들이 악마를 숭배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린 심판이라고 주장하였다. 나는 아이티에 가서야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이해할 수 있었고 또 그의 말이 얼마나 현실을 왜곡하고 고통에 빠진 아이티 국민들에게 더 깊은 상처를 주는 지를 알 수 있었다.

 

부두교: 악마를 숭배하는 사람들


나는 아이티에서 기독교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았다. 부두교는 아프리카의 토속 종교다. 이 종교가 기독교를 만나면서 기독교와 합성된 기괴한 짬뽕종교가 되었다. 아이티에서 시골 마을에 가면 가장 크고 잎이 무성한 나무 그늘 아래에 서있는 검은 십자가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십자가는 염소의 해골이나 녹슨 체인 같은 것들로 장식되어 있어 음산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런 십자가 근처에는 예배당 같은 건물이 있어서 이곳이 가톨릭 성당이나 개신교 예배당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건물 입구에는 한 손에는 예수를 안고 다른 손에는 미국의 달러 뭉치들이 가득한 돈자루를 들고 있는 여인상이 그려져 있다. 부두교판 성모 마리아다. 세속적인 욕망의 신이 너무 노골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충격적이다. 예배처소 안 중앙은 둥근 기둥이 차지하고 있고 그 기둥을 감싸고 있는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이 기둥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상징하고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또 다른 벽에는 피 묻은 칼을 들고 있는 미카엘 천사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후미진 제단의 담배들과 많은 바늘들이 꼽혀있는 인형의 모습으로 보아 증오와 복수를 간청하는 기도를 드리는 장소임을 짐작하게 한다. 부두교는 악마를 숭상한다. 이들은 증오와 복수를 성취시켜주는 신을 믿는다. 적어도 부두교도들에게는 증오가 사랑보다 진하고 저주와 복수가 축복보다 더 강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이들을 이런 악마 숭배로 몰아간 자들은 누구일까? 바로 그리스도인들이었다. 빛과 생명을 표상으로 내세우지만 서구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은 끝없는 탐욕과 지배욕으로 아이티 원주민들을 멸종시켰고 그 빈자리에 부릴 노예가 필요해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쇠사슬로 묶어 이 멀고도 낯선 아메리카의 한 섬에 가두어놓고 강제 노역을 시켰다. 이 악랄하고 잔인한 빛의 천사들을 자기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서 아이티의 흑인 노예 투생 루베르튀르는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 악마의 힘으로 독립전쟁을 벌였고 1804년 아이티는 역사상 최초로 노예들의 반란에 의해 독립과 해방을 쟁취한 나라가 되었다. 이를 두고 미국의 보수적인 기독교 지도자들은 험담과 저주를 늘어놓는 것이다. 나는 이 소위 악마 숭배자들과 함께 살면서 이들도 다른 보통 사람들처럼 인정 많고 정의를 위해 불의에 맞서 싸울 줄 알며, 자연을 사랑하고 남을 도울 줄 아는 착한 사람들임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기독교의 대표로 그 땅을 지배했었던 불란서의 제국주의자들이야 말로 탐욕과 살인과 착취를 일삼던 악마의 화신들이었다.

 

아이들의 도시(Cite Timon)


매우 조심스러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아이티 난민 구호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주민들의 마음속에 강고하게 자리 잡은 노예근성이었다. 개척자들은 주민들이 함께하지 않으면 우리도 안 한다는 입장이다. 자기 집을 복구하려는 데 주인이 두 손 놓고 바라만 볼 리가 있겠냐마는 실제로 그런 일이 재난 피해지역에서는 종종 발생한다. 심지어 국제구호단체가 지어준 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부셔버리는 경우까지도 있다. 아이티에서 가장 힘든 일은 마을 주민들이 자기 땅을 터무니없이 비싸게 파는 것이었다. 우리는 동족의 재난을 폭리 취득의 기회로 삼는 사람들과 싸우면서 가진 것이라고는 낡은 천막 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해야만 했다.

 

우리는 개척자들의 구호활동 매뉴얼에 따라 난민들의 천막을 두 개 얻어 그 안에서 살아가면서 난민들의 필요를 파악하는 일부터 했다. 처음에 한 일은 화장실을 짓는 일이었다. 난민촌 주민들이 모여 함께 지었다. 너무 절실했던 탓이다. 마을회관을 지어 난민촌 주민들의 소통 공간을 만들려고 했으나 땅을 구할 수 없었다. 우리는 주민들이 땅을 내놓지 않으면 마을 주민회관을 지을 수 없다고 했다, 자기 집도 못 짓는 데 무슨 마을회관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 난민촌 주민들의 결집이 각 개인이나 가족의 안식처보다 더 중요해 보였다. 왜냐하면 이 난민촌 모두를 날려버릴 한 외국 합작회사의 난민촌 토지 점유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기업의 난민촌 주민들의 토지 강탈이나 쓰레기 처리업체의 난민촌 쓰레기 무단 방류 등 별별 갈등과 충돌 현장에서 가진 것 없는 난민들과 함께 힘 있는 가진 자들과 싸워야했다. 난민들을 쫓아내기 위해서 덤프트럭에 모래를 퍼와 무작정 난민천막에 부어 모래더미에 파묻히기도 했고 쓰레기차의 운전자를 가로 막고 서다 수박만한 주먹으로 얼굴을 강타당해 서너 발 치 뒤로 나가떨어지기도 했다. 그날 밤 난민들이 모두 몰려와 이 쓰레기차를 포위한 채 다시 쓰레기를 트럭에 담아 돌려보낸 것은 내게 감동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 나에게 난민 구호는 그들이 겪는 수치와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었다.

 

모래를 붓는 덤프트럭 [사진제공=개척자들]

 

개척자들이 그나마 무엇인가 물질적으로 난민들을 도운 것이 있다면 영양실조에 빠진 어린 아이들에게 기름진 밥과 영양가 있는 고기를 제공한 것일 거다. 각 가정에 돈이나 음식을 나누어 주는 것보다는 직접 요리를 해서 어린 아이들에게 먹여주는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되었으나 그럴 수 있는 인력이나 장비를 동원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런데 난민촌에 살면서 보니 각 가정에 어린이들이 많아서 좀 더 자란 청소년들이 자기보다 더 어린 아이들을 잘 돌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즈음에 국제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이 어린이 보호를 위해 플라스틱으로 된 간이 울타리와 천막 두 개를 설치했다가 단체는 활동을 마치고 떠났고 시설은 방치되어 있었다. 그러자 난민들은 너도 나도 울타리를 잘라서 자기 집 염소 우리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어린 아이들을 불러서 마을 사람들이 절취해간 울타리들을 다시 거둬 오도록 했고 다시금 원래의 보호마당을 복구했다. 그리고 이 보호마당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어린이들의 도시(Cite Timon)라는 놀이를 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도시의 식품 시장 [사진제공=개척자들]

 

아이들의 도시의 어린이 엄마들 [사진제공=개척자들]

 

아이들의 도시의 어린이 경찰 [사진제공=개척자들]

 

어린이들의 도시는 놀이를 통해서 영양이 부족한 어린이들에게 영양을 보충하는 것과 민주주의의 훈련을 하는 종합적인 활동이었다. 매주 금요일에 이 보호마당에는 어린 아이들만 들어올 수 있다. 어린 아이들은 어린이들의 도시의 시장과 경찰을 스스로 뽑았고 15살 이상의 여자 어린이들은 마마(엄마)가 되어 10명 이상의 더 어린 아이들을 가족으로 구성했다. 이 어린 마마들은 자기 집에서 취사를 위한 화로를 가져와야 하고 모든 어린이들은 자기 그릇과 숟가락과 포크를 가져와야 했다. 우리는 보호마당 안에 식자재를 파는 시장을 만들고 마마들에게 마을 화폐를 나누어 주어 그 화폐로 자기들의 고기와 구미에 맞는 음식 재료를 구입하게 하였다. 마을 화폐는 표식을 해놓은 코카콜라 병뚜껑이었다. 나중에는 이상한 병뚜껑이 나돌았다. 아이들이 만든 위조화폐였다. 린이 경찰들이 범인들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우스웠다. 아무튼 그런 와중에서도 여자 아이들은 마치 자기들이 진짜 엄마라도 되는 것처럼 즐겁게 요리를 했고 어린 아이들은 그 공간에서 마음껏 뛰어 놀았다. 식사시간에는 어린 아이들의 가족들이 모두 둘러 앉아 평소에 먹지 못했던 영양과 맛이 풍부한 식사를 했다. 이 어린 엄마들은 자기들끼리 더 단단한 우정과 결속을 하게 되었고 자기들끼리 동아리처럼 활동도 했다.

 

어린이들의 도시는 재난 현장에서 난민들이 스스로 어떻게 창조적으로 자기를 도울 수 있는 지를 우리 자신이 배울 수 있었던 의미심장한 경험이었다. 도움은 마중물처럼 그들 안에 있는 힘을 길어 올리는 정도여야 한다. 마중물은 너무 적어도 안되고 너무 많을 필요도 없다. 난민들이 계속 구호물품에 의존하도록 길들여진다면 그런 구호는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인 셈이다. 2005년 쓰나미가 난 아체에서 주민들이 해 준 이야기가 귓가에 쟁쟁하다. “처음에는 바다에서 쓰나미가 몰려와 사람이 죽고 집들이 사라졌습니다. 그 다음에는 국제구호단체들이 몰려와 마을 공동체를 파괴시켰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두 번째로 겪은 더 무서운 쓰나미였습니다.”

 

송강호장로회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 철학으로 석사 학위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실천신학으로 박사 학위(Th. D.)를 받았다. 사단법인 개척자들의 대표, 분쟁지역 파견 선교사 담당 간사 등의 활동을 하였으며, 현재 제주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반대 활동 중이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