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레터(글)2018.08.19 23:23

[시선 | 베를린 윤이상하우스에서 보내는 평화의 편지]


안녕, 친구야!


정진헌


"안녕, 친구야~!“


어깨동무의 오랜 전통으로, 베를린 윤이상하우스에서 첫 인사를 드립니다.


윤이상하우스는 베를린의 클라도우 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세계 현대음악의 5대 거장 중 한 분으로 추앙받는 윤이상 선생님께서 1974년 완공된 때부터 1995년 돌아가실 때까지 사시던 자택인 윤이상하우스. 이 집에서 윤 선생님은 120여곡이라는 대부분의 작품을 탄생시키셨지요.


얼마 전, 괴팅엔대학교 러시아학 은퇴교수께 윤이상이란 분을 아시냐라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당연히 안다고 한 그 분의 대답에 어떻게 아시냐 되물었더니, 매우 황당해 하시면서, "모차르트를 어떻게 아냐고 묻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거기에 어떻게 답하냐? 너무 유명한 분인데 어떻게 모를 수 있냐?"라고 답하시더군요. 독일에서는 이렇게 음악의 거장 윤이상에 대해 기억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고급문화(hochkultur)의 권위와 가치를 인정하는 오래된 제도와 문화적 전통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러한 거장이 사셨던 집에서 저는 제 직장인 베를린 자유대학교로 출퇴근합니다. 그리고 퇴근 후에는 집으로 돌아와 윤이상평화재단의 베를린 지부장으로 윤이상하우스의 관리 및 운영을 맡고 있습니다. 물론 생업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긴 합니다. 이 집은 오랜 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빈 집이었으니까요. 올 1월 초, 저는 정말 가구도 없었던 이 빈집에 혼자 들어와 살기 시작했습니다. 안 그래도 적막한 동네, 을씨년스럽고 오래 비어있던 거택에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던 첫 며칠 동안은 솔직히 무섭기도 했습니다. 어떤 때는 분명 출근하면서 모든 불을 껐다고 여겼는데, 돌아와 보면 연주홀이 있는 아래층에 늘 불이 켜져 있곤 했지요. 그렇게 며칠 몇 주를 지내며 익숙해지고, 겨울에서 여름으로 계절이 바뀌는 동안, 고장 났던 난방도 고치고, 빈 방들에 가구를 들이고, 레지던스 펠로우들도 선발하여 식구를 늘렸습니다. 그리고 지난 6월에는 윤이상의 후예와 신진 음악인들로 성대한 개관음악회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그 사이 저는 적지 않은 음악인들, 그리고 윤이상 선생님들의 지인들을 만나기도 하면서, 그 분의 삶과 음악에 대해 배우고 논하는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선생님의 삶을 재구성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저는 이 집이 말해주는 윤이상선생님의 감성과 마음을 더 많이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편지에서 저는 여러분과 함께 윤하우스가 제게 가장 먼저 들려주었던 윤이상 선생님의 그리움과 열망이라는 두 화두를 공유할까 합니다.


윤하우스에 방문객이 오시면, 저는 먼저 발코니로 모십니다. 그리고는 동남쪽으로 시선을 멀리 올려 크게 자란 나무들 사이에 펼쳐진 커다란 호수를 보시라 합니다. 베를린 사람들이 흔히들 반제(Wansee)라 부르는 호수지만, 이쪽 편은 하펠강(Havel)입니다. 윤이상 선생님은 바다가 보이는 고향 통영을 늘 그리워하셨답니다. 그래서 통영의 풍광과 그나마 비슷해 보이는, 커다란 호숫가의 이 집터를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윤이상 선생께서는 박정희 정권이 조작한 소위 동백림 사건으로 1967년 독일에서 불법 납치되셨다가, 세계 유명한 음악인들과 독일 정부의 강력한 항의에 힘입어 1969년 풀려나신 후 독일 정부의 권유로 독일 시민권을 취득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그리고 스스로도 돌아가지 않으셨던 망명객으로 사셨지요. 통영에서의 유년기 추억은 윤 선생님 작품의 가장 소중한 자양분이었기에, 우리는 그분의 창작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감성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윤이상하우스 전경


그렇게 저 멀리 고향의 그리움을 강물에 실어 두셨다면, 발코니 아래 정원에는 그 분의 미래지향적 열망이 선명하게 놓여 있습니다. 바로 한반도 모양을 본 딴 연못이 그것입니다. 남북으로 나뉜 현재의 한반도가 아니라 금붕어들이 남북으로 헤엄쳐 다니는 통일된 한반도. 그것은 고인이 추구하신 민족적 정체성이자 미래에 놓인 진정한 고향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디아스포라, 즉 고국을 등지고 타지에서 삶을 영위하는 민족 공동체나 개인들에 대한 연구에서 고국(homeland)의 이미지는 늘 과거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분단 이후 적지 않은 한민족 디아스포라 공동체와 그 후세들에게 있어 고국은, 현재의 분단된 남이나 북 중 하나에만 국한될 수 없기도 합니다. 제도적으로는 한 국가만 선택해야 하지만, 국제법의 테두리를 벗어나고자 하는 일상의 열망 또한 존재합니다. 그래서 조총련계 민족학교를 다니는 재일동포 청소년들도 자신들의 조국은 현재에 있지 않고, 분단이 해소된 미래의 통일된 한반도라 주장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어떤 디아스포라 공동체와 개인들에게 있어 그들이 진정으로 돌아갈 고국은 현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미래에 위치한 새로운 정체성을 추구하는 사회문화적 노력, 즉 미래지향적 문화 만들기의 과정을 인도계 미국 사회문화인류학자인 아준 아파두라이의 제안을 빌려, 열망이라 부릅니다.


한반도 모양을 본 딴 연못


윤이상 선생님께 고향 통영에 대한 향수는 과거, 고인의 유년기 추억에 기인합니다. 반면에 그 분이 추구하신 민족적 정체성은 분단선이 거둬진 통일된 한반도라는 미래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고인의 향수(과거)와 열망(미래)은, 하펠강가에 자리 잡은 집터, 그리고 한반도 모양의 연못으로 각각 재현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윤이상 선생님에게 있어 현재라는 시간은, 어떠한 공간적 유형으로 구체화되었을까요? 이를 위해 우리는 윤이상하우스가 이역만리 독일, 그것도 분단과 탈분단을 경험한 베를린에 있다는 사실을 되새겨 봐야 합니다. 윤이상 선생님 살아생전 납치와 고문을 자행했던 남한의 군부독재 정권, 그리고 그 뒤를 이은 군사정권들이 지배하는 현재적 고국은 윤이상하우스 공간에서는 철저히 무시된 듯 보입니다. 한 마디로 그 정통성을 상실한 것이죠. 반면에, 윤이상 선생님은 유년기 추억과 분단이 해소된 미래를, 서양 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기신 작품들에 녹여 내셨던 것입니다.


본인의 철학과 이념, 고통과 애도의 감정 등을 음악적 언어로 승화시키셨던 역사적 장소로서의 윤이상하우스. 저는 이 하우스에서 지난 봄 남북 정상회담을 인터넷으로나마 목격했습니다. 동트는 새벽, 창밖에서 지저귀는 온갖 새들의 합창은 마치, 고인의 기쁨을 노래하듯, 칸타타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처럼 들렸습니다. 고인의 역사 의식과 미래지향적 열망이 고스란히 담긴 대작의 향연처럼, 새벽녘 윤이상하우스는 지구 반대편에서 펼쳐진 역사적 순간을 축하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세계와 민족사의 거대한 족적을 남긴 인물의 체취가 남겨진 윤하우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신선한 감동이었습니다. 이 편지를 끝까지 읽으신 독자 여러분, 여러분들도 뜨거운 폭염으로 지치고 힘들지만, 고 윤이상 선생님이 꿈 꾸셨던 미래의 조국을 열망하는 마음으로,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를 꼭 감상하시기를 권하며, 오늘은 이만 인사에 가름합니다.


감사합니다.



정진헌ㅣ어린이어깨동무 간사 출신으로,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독일 괴팅엔 소재 막스플랑크 종교와 민족다양성 연구원 선임연구원을 역임한 후, 현재 베를린 자유대학교 역사와 문화학부 한국학과 연구교수로 재직하며, 윤이상하우스 운영을 맡고 있다. 저서 및 공저로는, Migration and Religion in East Asia (2015), Building Noah's Ark (2015), 무엇이 학교 혁신을 지속가능하게 하는가 (2015), 한국의 다문화주의 현실과 쟁점(2007), 북한에서 온 내친구(2002) 등이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