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레터(글)2018.08.20 00:05

[시선-한반도 평화읽기]


한반도 평화체제와 군축


정욱식


대전환의 한반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가 그야말로 대전환의 문을 노크하고 있다. 그 문이 활짝 열릴지, 반만 열린 상태로 남을지, 아니면 또다시 닫힐지는 예단키 어렵다. 전환의 양상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는 북한의 ‘선군’ 정치에서 ‘선경’ 정치로의 전환이다. 이는 길게는 2013년 3월 31일에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 노선”을 채택할 때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병진 노선은 김정은식의 ‘변증법적 국가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가 미완성 상태로 물려준 ‘앙탄일성’을 서둘러 추진해 “국가핵무력 건설 완성”을 선언한 것이 ‘정(正’)이었다면,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국면 전환이라는 ‘반(反)’을 만들어내고, 한미와의 적대 관계 청산 및 안보적 우려 해소, 그리고 경제발전을 향한 ‘합(合)’을 도모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듯 북한은 2018년 4월 20일에 노동당 결정서를 통해 “병진노선의 위대한 승리를 선포”하면서 “당과 국가의 전반사업을 사회주의경제건설에 지향시키고 모든 힘을 총집중할 것”이라고 결정했다. 또한 이러한 전략적 목표가 순조롭게 이행된다면 내년이나 후년에 “조미 대결에서 위대한 승리를 가져온 국가 핵무력의 역사적 소임은 끝났다. 이제 국가 핵무력의 완전한 폐기를 엄숙히 선언한다”고 발표할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는 한반도 핵 시대의 종언이다. 한반도 핵문제는 네 가지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제1의 핵 시대’는 1945년 한반도 해방 및 분단부터 1990년대 초 미국의 전술핵무기 철수 및 한반도 비핵화 선언 채택까지를 가리킨다. 이 시기는 한반도에서 미국의 핵 독점 시대였다. ‘핵 시대 1.5’는 북핵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1992년부터 협상을 통해 문제 해결을 시도했던 2008년까지를 의미한다. ‘반전 드라마’라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역동적인 시기였다. ‘제2의 핵 시대’는 협상이 단절된 2009년부터 2017년 북한이 ‘국가 핵무력 건설 완성’을 선언한 시기까지를 의미한다. 끝으로는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는 시기로 2018년부터 그 끝을 알 수 없는 미래까지이다. 한반도에서 핵 시대가 완전히 끝나고 “핵 없는 한반도”가 도래할 것인가의 여부가 판가름나는 시기이다.


셋째는 한반도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이다. ‘평화체제 없는 비핵화는 맹목이고 비핵화 없는 평화체제는 공허하다’고 할 때, 한반도의 핵시대의 종식은 평화체제를 수반할 수밖에 없고 또한 그래야만 한다. 일단 남북미 3자는 평화체제 입구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의 수준에 발맞춰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의회 상원의 비준을 거치는 대북 안전보장 방안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는 북미 간의 70년 적대관계의 청산이다. 미국과의 정치적·경제적 관계의 완전 정상화는 북한의 오랜 열망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대북정책은 북한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트럼프의 개인기와 북한을 적으로 남겨두고 싶어 하는 상당수 미국 주류 사이의 ‘갈등의 변주곡’을 품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적인 현상 변경은 현상 유지를 통해 추구해왔던 미국의 굴절된 이익체계도 건드릴 수밖에 없다. 무기 수출 위축이라는 ‘기대이익의 감소’와 북한의 위협을 빌미로 중국을 염두에 둔 미사일방어체제(MD) 및 한미일 삼각동맹을 추구해왔던 ‘전략의 차질’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미국의 정치적 급변사태, 즉 트럼프의 탄핵 여부가 한반도 문제의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그의 탄핵 시 대북 강경파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다섯째는 남북관계의 전환이다. 분단 이후 남북관계는 부정과 절멸의 대상에서 체제 경쟁의 시대로, 체제 경쟁의 종식과 한국의 대북 포용과 흡수통일 시도가 오락가락한 시대를 거쳐왔다. 그런데 2018년부터는 남북연합의 시대로 향하고 있다. 2국가 2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유럽연합과 흡사한 모델이 나올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평화체제와 군축


한반도 문제 해결의 성패는 군사 문제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군비통제와 군축 논의는 제자리를 맴돌았다. 북한은 냉전 시대에는 이른바 ‘4대 군사노선’을 통해, 그리고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선군 정치’를 통해 체제 생존을 도모했고 이 사이에 북한은 거대한 병영 국가처럼 되고 말았다.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군사력도 비약적으로 성장했음은 물론이다. 보수정권은 군비통제 및 군축 자체에 부정적이었고, 개혁진보 정권은 때때로 보수 정권보다 더 강력한 군비증강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평화, 새로운 시작’의 관건은 70년 가까이 누적되어온 군사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그 성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4.27 판문점 선언’에는 군사 문제 해결의 포괄적인 내용이 담겼다. 전문 첫머리에 담긴 ‘부전(不戰)의 약속’에서부터, 2조 한반도 군사적 긴장 완화에 담긴 “일체의 적대행위 전면 중단” 및 “비무장지대의 실직적인 평화지대”와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의 평화수역” 만들기, 그리고 3조에 담긴 “불가침 합의” 및 “단계적 군축 실현”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합의 내용만 놓고 볼 때에는 ‘남북 평화협정’에 근접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단계적 군축”이 눈에 띈다. 그런데 “단계적 군축”은 문재인 정부가 준비해온 국방개혁 2.0과 정면으로 충돌할 소지가 크다. 국방개혁 2.0의 요체는 국방비를 대폭 늘려 대규모의 전력 증강을 꾀하겠다는 것이 핵심적인 요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하듯 국방부는 대규모 국방비 증액 계획을 거의 그대로 유지키로 했다. 국방부는 2019년 국방예산으로 올해 대비 8.6% 증가된 46조 9천억 원을 요구하는 등 5년간 국방개혁에 필요한 예산을 약 270조 7000억원으로 추산했다. 별다른 변동 없이 이러한 계획이 추진되면 2023년 한국의 국방비는 60조원을 훌쩍 넘어설 것이고, 일본의 국방비마저 추월하게 될 것이다.


대규모 국방비 증액은 새롭게 시작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스스로 장애물을 설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군비증강과 한반도 평화체제·비핵화 실현 노력은 양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천문학적인 국방비 증액은 민생과 복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상기한 국방부의 국방비 증액 계획과 국방비 동결을 비교해보면 명확히 드러난다. 가령 향후 5년간 올해 수준(43조 4000억원)으로 국방비를 동결하면 약 60조원의 누적액의 차이가 발생한다. 누적액의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커지게 됨은 물론이다.


이렇게 절약한 국방 예산을 복지, 교육, 일자리 창출, 자영업 지원책, 미세먼지를 비롯한 환경 대책에 사용한다면, 국가안보의 내실을 기하면서도 인간안보도 튼튼하게 할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다. 아쉽게도 문재인 정부가 스스로 표방한 ‘포괄 안보’의 정신이 정작 국방개혁에서는 실종되고 만 것이다.


하여 문재인 정부는 두 가지를 자문해봐야 한다. 하나는 국방개혁 2.0이 과연 판문점 선언에 부합하느냐는 것이다. 또 하나는 ‘망진자(亡秦者)는 호야(胡也)’라는 우를 스스로 범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외부의 위협 대비에 치중한 나머지 내부의 모순을 완화·해결할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정욱식ㅣ고려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과 북한학을 공부하고, 현재 평화네트워크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한반도문제에 대한 의사소통의 활성화와 올바른 여론형성을 도모하여, 물리적인 냉전구조 못지않게 고착화된 냉전적 의식구조를 극복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평화공동체 실현에 기여하고자 연구와 실천을 병행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