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레터(글)2018.12.20 10:17

[시선 |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극도로 예민한 중2 스물아홉이 모였다.

그중 담임이 가장 예민할 때 생기는 일들에 관하여.

운 놈 떡 하나 더 주기

주예지


극도로 예민한 중2 스물아홉이 모였다.

“왜 불렀는지 아니?”

“네, 떠들고 수업 방해해서요.”

“수업을 방해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계속 선생님 말에 예의 없게 툭툭 말을 내뱉으면 (…) 다음부터는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알겠지?”

“네.”

“젤리 하나 가져 가.”(큰 젤리 통을 품에 안고 있었다.)

“네? 왜요?”

“왜긴 왜겠어. 미운 놈 뭐겠어.”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라는 속담은 미울수록 매 대신 떡을 준다는 것으로 미운 사람에게 오히려 잘 대해준다는 뜻이다. 정신분석학에서 이야기하는 반동형성의 개념과 비슷하다. 반동형성은 무의식 중에 감정이나 욕구와는 정반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억압된 감정이나 욕구가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방어기제 중 하나인 셈이다. 예컨대, 첫째 아이가 부모님의 사랑을 빼앗아버린 동생이 미운데 오히려 지나치게 친절하게 대하고 잘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유독 거슬리는 아이들에게 더 친절하고 살갑게 대하는 나의 저열한 속내가 무엇인지 섬뜩하다. 하지만 우리의 속담은 무언가 정이 느껴진다. 아직 떡 하나 더 줄 정도면 그래도 미운 정이라도 남아 있다는 말은 아닌지. 미운 사람일수록 떡 하나 더 줘서 정을 쌓으라는 건 아닌지. 미운 사람일수록 내 편으로 만들라는 건 아닌지. 미워서 매몰차게 돌아서서 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밉지만 자꾸 미련이 남게 한다. 미움에 마음으로 대응하라는 지혜에 온기가 감돈다.



2학기 들어서 국어 공책을 내내 가져오지 않는 아이가 있다. 1학기에는 그래도 잘 따라왔는데 못내 아쉬워하던 참에 어느 하루는 공책을 가져 왔다고 자랑을 한다. 잘했다고 엄지 척을 하며 수업 끝나고 따라오면 사탕을 주겠다고 정말이지 폭풍칭찬을 한다. 그랬더니 앞에 앉아 있던 아이가 물어본다.

“저는 왜 안 줘요? 맨날 공책 가져오는데.”

“너는 항상 갖고 오고 잘하잖아.”

그러더니 뒤에 앉아 있는 아이와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유독 크게 귀에 꽂힌다.

“못하는 애는 한 번 잘하면 칭찬 받고, 늘 잘하는 애는 한 번 못하면 욕먹어.”



나름대로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애들을 단기간만이라도 참여 시키게 하는 방법이 있다. 수업 내용에 무언가 잠깐 관심을 보일 때, 학습지를 채우는 시늉이라도 할 때를 놓치지 않고 조용히 다가가 은밀한 제안을 한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오늘처럼 수업을 잘 들으면 ‘수업 태도가 뚜렷이 좋아짐’이라는 항목으로 상점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 항목은 다른 것과 다르게 상점이 3점이라는 것 또한 은밀하게 속삭인다. 백이면 백 다 넘어온다. 이 제안을 할 때 다른 아이들이 웅성웅성 난리가 난다.


“수업 태도 좋아지면 상점주는 거예요? 그럼 오늘부터 잘 안 듣고 다음 주에 잘 들어서 상점 받아야겠다!”

“그럼 수업 태도가 뚜렷이 ‘안’ 좋아짐으로 벌점 10점 줄거야!”



미운 놈에게 더 주는 떡 하나가 아이들은 못내 서운했나보다. 하긴 항상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래도 생각해보니 다른 아이들이 억울할 만하다. 그 설움을 모르는 바가 아닌데. 지금도 나는 어머니께 가끔 대들곤 한다. 평소에 지지리도 속 썩이는 자식은 한 번 잘하면 이런 효자가 없고, 평소에 백번 잘하는 자식은 한 번 못하면 세상에 이런 불효자가 없지 않느냐고. 그 말이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니까 참 묘하고 싱숭생숭한 기분이 든다. 아이들을 보다 보면 알아서 잘하고, 수업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고, 예의 바르고, 별 문제 없는 아이들은 잘 안 보이고 떠들고, 수업 안 듣고, 반항하고, 거슬리게 행동하고, 틱틱거리는 아이들만 보인다. 잘했다고 칭찬하는 것은 전자의 아이들이지만 더 많이 생각하고 마음을 쓰는 아이들은 역설적이게도 사실 후자의 아이들이다. 서른 명 중에 한 명이 미우면 그 반 전체가 부담스러워서 수업에 들어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잘하고 예쁜 아이들이 압도적으로 대다수임에도 말이다. 왜 이렇게 미운 놈이 더 커 보이는 걸까? 아무리 미운 놈을 달래고 달래서 떡 하나를 더 먹여도 어쩔 때는 뱉어버리니 영 신통치가 않다. 왜 좋은 것은 뒤로 하고 안좋은 것만 크게 보이는 걸까?



교원능력개발평가 결과가 나왔다. 교원능력개발평가 실시 여부를 가지고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일단 제쳐 두고 아이들의 의견이 나왔으니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다. 구체적인 수치보다는 자유서술식이 궁금하다. 무언가 안 좋은 말이 있지는 않을까 상처 받기 싫어 보고 싶지 않다가도 인간이란 게 호기심을 버릴 수 없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고야 만다. 괜스레 손가락을 튕기며 스크롤바를 내린다.


칭찬을 많이 해주신다. 재미있는 활동을 자주하게 해주신다. 항상 꼼꼼하게 잘 가르쳐주십니다. 수업시간에 정말 열심히 수업을 하시고 이해도 잘 되게끔 노력하신다. 국어와 관련된 영상을 틀어주시고 비 올 때 노래 틀어 주시는 게 좋다. 수업진행이 매끄럽고 원활합니다. (…) 글씨를 좀 더 이쁘게 써주시면 좋을 것 같다. 말을 느리게 해주셨으면 좋겠고 글씨를 정확하게 써주셨으면 좋겠다. 이대로 2학년 끝날 때까지만 이어 나가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기분에 따라 우리에게 대하시는 태도가 다르다. 시험 끝나자마자 수행평가 하는 건 힘들어요.. 학습지가 많아요.(…)


여기에서도 미운 놈이 크게 보인다. 예상했던 이야기도 있고 고쳐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고 웃음이 나는 것도 있다. 근데 그 와중에 하나 미운 놈. ‘선생님의 기분에 따라 우리에게 대하시는 태도가 다르다.’ 아직 갈무리되지 않은 수많은 감정을 뒤로 한 채 웃으면서 밝게 수업하려고 안간힘을 썼던 숱한 순간들이 떠오르고 이내 억울한 마음까지 샘솟는다. 그동안 교단에 선 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비춰졌던 걸까? 나도 사람인데 당연히 감정이 겉으로 드러날 수도 있지. 기분이 안 좋다보면 좀 예민하게 굴었을 수도 있지. 괜한 합리화를 해보지만 별 소득은 없다. 곧 반성을 한다.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 감정을 정 못 감출 때는 쉬어 가거나 차라리 아이들에게 솔직히 이야기를 하자. 여기까지는 좋다. 문제 인식도 했고 반성도 했고 다짐도 했다. 훌륭하다. 지금부터가 문제다. 저 한 문장이 뭐라고-심지어 문법적으로 비문이다.- 수업에 들어가서 아이들을 볼 때마다 생각이 나고 누가 썼을까 괘씸하고 밉다. 지금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좋은 이야기들도 참 많다. 그런데 잘 보이지 않는다. 좋은 이야기는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질문이 도돌이표다. 왜 늘 좋은 것은 뒤로 하고 안 좋은 것만 크게 보일까?



잘하는 아이보다 못하는 아이에, 좋은 점보다 안 좋은 점에 늘 시선이 간다. 미운 놈이 떡 맛을 알아버렸는지 끈질기게 쫓아온다. 떡 하나 더 주면서 체하지 않게 살살 달래서 돌려보내야할 텐데. 결국 사탕을 못 받아 구시렁거렸던 아이의 말이 계속 맴돌아서 원래 주려고 했던 아이뿐 아니라 반 전체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었다. 잘 하는 아이들은 평소에 잘 해서 주는 의미로, 못했던 아이들은 앞으로 잘할 거라고 믿는다는 의미로. 물론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심정으로 주는 애도 있다는 사족도 역시 잊지 않고 덧붙였다. 다 같이 사탕을 맛있게 오물거리며 하루가 지나간다.


주예지  국어가 어렵다는 아이들의 투정 어린 원성에 나도 어렵다며 유치한 설전을 벌이며 살아가고 있는 국어교사입니다. 작년에 목동중학교에 교사로서 첫발을 디디고 2년 동안 중2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으며 내년에는 중2를 맡지 않겠다며 벼르고 있는 중입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