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레터(글)2017.12.20 02:48

[이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본 네일러


지난 9월 어린이어깨동무와 김동진 교수님으로부터 한국에 와서 인형극을 활용한 저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는 제안을 받고 영광스럽고 기뻤습니다. 제가 한국분들께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배울 점이 더 많다고 느꼈기 때문에 영광스러웠습니다. 또한 지난 2월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 평화학 대학원에서 만난 한국 분들의 우정과 따뜻함, 코리밀라 공동체의 활동에 대한 관심을 느끼며 즐거웠던 기억이 있어 기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11월에 콜린 크랙 씨와 저는 김동진 교수님과 함께 서울로 향했습니다. 한국에서 어린이어깨동무와 서울교육대학교 통일교육연구소의 환대를 받으며 꼬박 나흘간 바쁜 일정을 보냈고, ‘평화교육은 우리를 바꿀 것인가’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에 참여했습니다.


평화교육 심포지엄에서는 인형극을 활용한 평화교육과 좋은 관계 맺기의 여섯 가지 사례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또한 어린이집에 방문해 인형극을 하고, 정체성과 소속감에 영향을 주는 몇 가지 게임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약 40명의 교사 및 지도자들이 함께하는 워크숍을 열어 인형을 만들고 활용하며 갈등을 극복하는 서로 다른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모든 행사에 많은 참가자들이 모여 주최 측도 기뻐했고, 전반적인 운영도 더할 나위 없었습니다. 원활한 통역 덕분에 오랜 시간 머물면서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고, 중간에 대접받은 음식도 훌륭했습니다. 금속 젓가락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좀 걸려 음식들을 입에 넣기가 어려웠지만 새롭고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멋진 찻집에서의 시간도 정말 즐거웠습니다.



심포지엄과 어린이집 방문 및 워크숍 일정 사이에 시간이 나서 비무장지대, 한국DMZ평화생명동산과 민간인통제구역 내의 전망대를 방문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비무장지대는 폭이 평균 4km이고, 248km 길이의 군사분계선이 한반도를 동서로 가로지르며 남과 북을 나누고 있습니다. 군사분계선에서 10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민간인 구역이 있는데 저희가 방문한 평화생명동산도 그런 지역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나무와 덤불 사이에 놓인 두 대의 남한 탱크를 발견했는데 지금은 쓰이지 않는 그 탱크들은 흰색과 무지개 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고 포신에는 뿜어져 나온 듯한 꽃 장식이 있었습니다. 


평화생명동산은 어린이어깨동무 관계자들이 여름 캠프를 위해 찾았던 곳이기도 한데 그곳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코끼리의 피부처럼 독특하게 주름진 산이 있는 이 지역은 생태적으로 풍요롭고 야생 동식물이 매우 다양해서 한국의 멸종 위기 동식물 중 38퍼센트가 살고 있는 장소이기에 그 자체로 희망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성헌 이사장님과 콜린 씨와 저는 평화생명동산과 코리밀라 공동체의 프로그램과 비전에 대해 발표했고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평화생명동산의 정성헌 이사장님은 저희를 안내해주시며 지역의 그린에너지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셨고, 다양한 풀과 나무의 치유 능력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셨습니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촬영팀이 민간인통제구역과 가칠봉 전망대까지 우리와 동행했습니다. 가칠봉은 남한과 북한 경계초소 간의 거리가 780m밖에 되지 않는 곳입니다. 한국의 비극과 고통의 기억을 간직한 곳이자 현재까지 대립과 분단이 실존하는 장소이기에 그곳에서 겸허함과 경각심이 일깨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전망대에 도착하기까지 수 킬로미터의 철조망과 여러 경계초소를 지났고 출입 인원을 확인하는 검문도 거쳐야 했습니다. ‘펀치볼 마을’이라고 불리는 해안분지도 방문했는데 그곳은 한국전쟁에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은 장소였습니다. 


한국에 온 이유를 묻는 촬영팀의 질문에 저는 북아일랜드 분쟁 당시 잉글랜드 친구들이 방문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이야기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북아일랜드에 오기를 두려워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친구들의 방문은 저에게 희망과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저는 어린이어깨동무의 용기 있는 활동을 지지하고 평화교육 프로그램에 적용할 수 있을 만한 도구와 자원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제가 가져온 여덟 세트의 인형들도 그런 도구들 중 하나입니다. 촬영팀은 통제구역으로 가는 길에 제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우리의 가슴 깊이 간직한 희망의 상징물과 코리밀라에서 매일 예배를 드리는 장소를 그렸다고 말해주었습니다. 희망의 상징물은 켈트 십자가와 기도서, 그리고 켈트족의 축복이 담긴 천으로 감싼 초와 촛대입니다. 저는 이것을 정성헌 이사장님께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방문 내내 주최자와 파트너이자 친구인 분들의 따뜻한 마음과 우리의 활동에 대한 관심을 느끼며 행복했습니다. 너그럽게도 우리에게 감사를 표하셨지만 이런 자리에 초대되어 오히려 영광이었습니다. 남북관계의 역사와 외부세력의 개입에 의한 관계의 복잡성에 대해 제가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생각해보면 평화를 위한 동반자인 어린이어깨동무가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용기와 희망에 더욱 찬사를 표하게 됩니다. 그들을 보면 오랜 시간 동안 신랑을 기다리며 등불에 필요한 기름을 준비하는 우화에 나오는 다섯 명의 현명한 아가씨들이 떠오릅니다. 희망을 잃지 않고 기다리기 위해 적극적인 자세로 평화를 준비해야 합니다. 저는 어린이어깨동무의 활동에 감동과 영감을 받았고 너그러운 감사의 표현과 환대에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한국을 떠날 때 제 마음에 시편 23장의 한 구절이 떠올랐는데 지금도 그분들의 너그러움을 기억하며 그 구절을 생각합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본 네일러(Yvonne Naylor) ㅣ 북아일랜드에서 25년간 중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코리밀라 등 민간단체와 함께 평화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평화교육 활동가를 훈련시켰다. 교사직 은퇴 후에도 퍼펫 우먼(Puppet Woman)을 설립하여 인형극을 활용한 평화교육 프로그램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


* 편집자주

본 글은 필자가 어린이어깨동무의 초청으로 11월에 한국을 방문하여 보낸 4일 간의 일정에서 느낀 점을 정리한 글입니다. 평화교육 심포지엄 ‘평화교육은 우리를 바꿀 것인가’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어린이어깨동무 홈페이지(www.okfriend.org) 및 어깨동무평화교육센터 블로그(peacecenter.tistory.com)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