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레터(글)2017.12.20 11:05

[시선 | 평화를 그리는 화가들]


아픔의 역사를 그림에 담은 스페인 화가 - 고야


김소울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는 1746년 스페인의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당시 유럽의 변방에 지나지 않았던 스페인은 대국으로부터 끊임없는 침략 위협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왕정이 무력 세력들에 의해 빈번하게 교체되며 잦은 전쟁이 일어났다. 이러한 시대를 살았던 고야가 반전과 평화의 생생한 메신저가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고야는 전쟁의 참화를 적나라한 방식으로 표현함으로써 끔찍한 시대의 모습을 그림에 담았다. 


1808년 프랑스 군인들이 스페인을 침략하려고 진입했을 때, 스페인 민중들은 프랑스 군이 자신들을 스페인 지도자들의 학정으로부터 구해준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프랑스 군대가 스페인에 도착했을 때, 민중들은 적극적으로 군대를 환영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민족이 진입해왔을 때, 그들은 어디까지나 정복자이지 해방자가 될 수는 없었던 것. 프랑스는 나폴레옹의 형인 조세프 보나파르트를 스페인 왕으로 임명하고, 스페인 민중들은 이에 분노하게 된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한 스페인 민중들은 1808년 5월 2일, 민중 시위를 벌이게 된다. 그러자 프랑스 군대가 이를 진압하게 되고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을 잔인하게 처형하는 등 학살극이 벌어지게 된다. 고야는 이 사건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였다. 


1814년, 궁정화가였던 고야는 섭정관에게 마드리드에서 일어났던 스페인 시민 봉기를 그림으로 남기는 것에 대해 제안한다. 그의 예술적 능력을 늘 인정하던 섭정관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고야는 이 사건을 시위편인 『1808년 5월 2일』과 학살편인 『1808년 5월 3일』이라는 작품으로 스페인에서 벌어졌던 잔혹한 광경을 그림으로써 역사 속에 남기게 된다.



스페인 민중들은 프랑스 군대를 향해 격렬히 저항했고, 이들의 저항은 무차별한 총살 처형으로 이어지게 된다. 수 많은 마드리드 시민들이 하루 밤 사이에 죽음을 맞이하였고, 마을은 삽시간에 폐허로 변하게 된다.


『1808년 5월 2일』을 살펴보면 화면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인물들과 말이 물밀 듯이 쏟아지고 있으며, 달려드는 프랑스 군인의 말들은 땅에 나뒹구는 사체에 발이 걸려 주춤거리고 있고 시민들은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 그림은 과거 영웅적인 모습을 그려내며 승리의 순간을 묘사하던 전쟁화와는 달리, 민중의 광기어린 절망감과 잔혹한 학살을 시작하는 군대의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봉기가 일어나는 그 순간을 정직하게 잡아내고 있다.



작품 『1808년 5월 3일』을 살펴보면,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저 멀리 교회가 보이고 왼 편에는 시민들이 늘어서 있다. 오른 편에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 프랑스 군인들이 스페인 시민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 군인들도 눈 뜨고 못 볼, 너무나도 처참한 살육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때 우리나라 군인들이 그러했듯이, 혁명의 주체가 되었던 프랑스 군인들은 어느새 총 쏘는 기계로 전락했다. 마치 가축을 도살하듯 기계적으로 시민들을 죽이고 또 죽이던 처형은 밤새도록끝나지 않고 새벽을 맞이하게 된다.


시민들은 두려움에 떨며 다른 사람 뒤에 숨기도 하고, 죽음의 두려움에 고통스러워하기도 하며, 머리를 움켜쥐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들의 발 밑에는 이미 목숨을 잃어버린 마드리드 시민들의 시체가 즐비하다. 총살형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여기 서 있는 시민들은 죽을 것이 분명하며, 그들 뒤로 길게 늘어진 줄은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가운데 하얀 옷을 입고 있는 남성은 자신을 향해 겨눈 총을 마주보고 양 팔을 벌린 채 당당히 맞서고 있다. 그의 모습은 비록 총칼 앞에 육신은 무릎 꿇고 쓰러질 수밖에 없으나, 자신의 영혼은 결코 노예가 될 수 없으며 조국은 곧 해방을 맞이할 것이라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시민들의 죽음을 목격한 고야의 영혼이 이 사람을 통해 표현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야의 생생한 기록은 사람들이 당대의 사건을 잊지 않고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의 잔혹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1808년 5월 2일』과 『1808년 5월 3일』은 죽음을 감수하더라도 조국을 지키기 위해 정복자에 맞서 싸우는 민중들의 모습을 그림에 담아냄으로써 폭력으로도 감히 저지할 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을 보여주고 있다. 아픔의 역사를 담아내려 했던 화가 고야. 그가 두 눈으로 직접 바라봤던 죽어가던 시민들의 울부짖음과 외침은 여전히 그림 속에 생생히 남아 우리 가슴을 울리고 있다.



김소울 |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의 심리상담학과 특임교수로 재직중이며, <아이마음을 보는 아이그림>을 비롯한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였다. 현재 미술 작가이자 플로리다 마음연구소 대표로서, 치유적 활동과 미술창작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