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레터(글)2017.12.20 11:38

[시선 |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학교는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

 

심은보


찬이 녀석은 1학기 끝자락에 전학 온 우리 반 친구다. 그 날은 탈곡을 하는 날이었다. 한참 탈곡을 하고 있는데 녀석이 보이질 않았다. 찾고 보니 저쪽 한쪽에서 놀고 있었다. 힘들어서 그랬다고 했다. 그러게 말이다. 너무나 힘든 일이다. 힘들어야 되는 일, 그러기 위해서 하는 일이다. 편리한 기계가 있는데도 우리는 왜 이렇게 손으로 모를 심고, 자라는 모들 사이에 들어가 흙범벅이 되면서도 피를 뽑으며, 위험할 수도 있는데 낫으로 벼를 베는 일을 하는 것일까. 점심밥을 먹고 아이들과 학교란 곳에서 우리가 왜 이렇게 힘들게 벼농사를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이야기를 한참 나눴다. 편리한 방법을 버리고 위험을 무릅써가며 우리는 왜 이런 수업을 하고 있는가 하는 이야기를. 납득한 것인지, 납득한 척 해 준 것인지 모르지만, 점심밥을 먹고 그 녀석은 탈곡기에 붙어 서서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리 학교는 3, 4학년 아이들이 스스로 힘으로 한 마지기 논에 벼농사를 짓는다. 볍씨를 싹틔워서 모판을 만들고, 모를 기르고, 논에 거름을 뿌리고, 논을 갈아 물을 가둬두고, 손으로 모내기를 한다. 중간에 피도 뽑아주고, 가을이 되면 낫을 들고 함께 가을걷이도 한다. 와롱이를 돌려가며 탈곡을 하고, 학교 안에서 도정 작업까지 아이들이 하게 된다.   


기계를 쓰면 혼자서도 뚝딱 모를 심을 수 있고, 추수와 함께 탈곡까지 할 수 있는데 여럿이 함께 여러 날을 왜 이렇게 우리는 사서 고생하고 있는 것일까. 속도와 편리의 시대, 무엇이든 소비가 강요되는 이 시절, 학교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일까. 어쩌면 사람이 사는 일 중에 중요한 일들은 속도와 편리와 소비의 시대와 맞서는 일 속에서 지켜나갈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쉬이 결과가 나오지 않고 내가 마음을 기울이고 몸을 움직이며 차근차근 과정들을 밟아가야만 엮여지는 어떤 결과들, 그 안에서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소중함, 쌀 한 톨 안에 스며있는 다양한 이야기들, 적어도 그런 이야기들이 귀하게 여겨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세상에서 강요되는 모습이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학교에서는 그런 것이 중요함을 이야기해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세상이 그렇다고 해도 세상을 따라가지 않고, 세상은 비록 이럴지라도 적어도 학교는, 아니 학교부터라도 그런 세상을 향해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더 중요한 게 있노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희망이 좀 있지 않을까. 



학교 안에서 아이들과 살아가는 일상에 대해 끊임없이 되묻곤 한다. 이 시절 학교는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일까 하고. 묻고 물으며 내가 찾아 가고 또 살아가려는 이야기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교실이란 기꺼이 시도하고 실패해 볼 수 있는 곳

- 경쟁보다는 협력을 통해 더 잘 배울 수 있다.

-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

- 학력이란 아이들이 행복하게 성장하며 잘 살아갈 수  있는 힘 

- 앎이란 삶과 연결되었을 때 의미가 있는 법

- 수업의 주인공은 아이들! 아이들의 말과 삶을 귀하게  여길 것 

- 배우는 과정에 사람 이야기가 담겨야 할 것

- 교사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며 배울 수 있는 터를 마련해 주는 사람 

- 몸소 겪기, 드러내기, 이해하기, 해결하기, 행하기, 나누기가 일련의 흐름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것

- 나를 올곧게 볼 수 있는 눈, 내 둘레 사람들의 삶을 헤아릴 수 있는 시선, 다른 사람을 위해 흘릴 수 있는 눈물, 땀 흘려 일하는 것의 소중함, 나눔, 배려, 생태, 인권, 평화의 가치들을 삶 속에서 나눌 것


그리고 요사이 또 하나 학교를 향해 많이 던지곤 하는 질문은 ‘학교는 어떤 사람을 환대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학교의 존재 이유와 관련된 물음이기도 하다.


올해 1학기 우리 학교에 민이라는 친구가 전학을 왔다. 이 녀석은 학교를 돌고 돌아 벌써 몇 번째 학교였다. 이 아이에게 학교는 무엇이었을까. 학교 폭력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자신을 배제하고 거부하던 그런 곳이자, 자신에게 문제아라는 편견의 꼬리표를 달아 주며 헤어날 수 없는 구렁텅이로 자꾸만 몰아대는 그런 곳이었다.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인 그 녀석에게 학교는 참으로 가혹한 곳이었다. 이 녀석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묻지 않았고, 이 녀석의 마음이 어떤지 살피려 들지 않았다. 이 녀석이 어떤 과정을 거치며 성장해야 하는 것인지 돌보려 들지 않았다. 사실 이 녀석의 가장 아픈 부분은 가정에 있었다. 재혼 가정인지라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겪어야 할 것들을 제대로 겪지 못하며 자라나고 있었다. 몸이 성장함에 따라 마음도 성장해야 하는 데 그 성장을 건너뛸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 학교는 그 상황들을 충분히 헤아려 주지 못하고 있었다. 민이 녀석을 처음 만났을 때 마음이 아프고 또 아팠다.     


선생님들과 둘러앉아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어떻게 우리가 이 아이를 도와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이야기를. 이 녀석에게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판단을 함께 했다. 여러 번의 갈등과 여러 번의 벗어남이 있었다. 욱하며 친구들에게, 선생님에게 욕을 해대기도 하고 친구들과 주먹다짐을 하며 싸우기도 했다. 수업 시간에 앉아 있기 힘들다며 교실에서 뛰쳐나오기도 했다. 녀석에겐 그동안 본인이 생존해왔던 경험과 얽혀서 얼마나 힘든 일이었겠는가. 안전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했고, 그 외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학교 구성원 모두 함께 품어 나가기를 반복했다. 


언젠가 중간 놀이 시간에 녀석이 보이질 않아 찾아 나섰는데 학교 밖에서 간식을 먹으며 학교를 향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교감 선생님이 교문 바로 앞에 찾아 나섰다가 녀석을 만났는데 “나를 찾았어요? 그 동안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라고 했다는 녀석의 말이 참 아프게 다가왔다. 집에서 아침을 못 먹고 온다는 녀석에게 한 선생님은 날마다 도시락을 챙겨 먹이고 있고 다들 녀석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그 기운을 머금고 녀석은 조금씩 조금씩 마음에 따뜻한 성장의 기운을 담아가고 있다. 물론 여전히 규칙과 틀에서 벗어나는 모습은 수시로 보여주고 있긴 하다. 그래도 이제는 외부의 시선과 규칙들을 의식한다는 것, 그래도 때론 잘 해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 달라져가고 있는 모습이다. 또 외발자전거에 푹 빠져 친구들과 함께 타기도 하며, 아이들과 함께 어우러져 갈등 없이 노는 날도 생겨나고 있다. 주말에도 친구들 집에 가서 함께 노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으며 한 친구 엄마에게 이모, 이모 하며 그 집에 놀러 가서 한참을 대화 나누다 오기도 한다.   

반 년 사이 녀석에게 학교는 제법 편안해졌고, 이제 더 이상 거부하고 싶지 않은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여전히 겪어가며 배워야 할 것들이 하나 둘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녀석의 모습 속에서 다시 학교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적어도 학교는 모르는 자, 부족한 자, 익숙하지 않은 자가 환대 받아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학교는 그런 부족한 부분을 공부나 활동을 통하여 겪어가고 채워가며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곳은 아니겠나 생각한다. 심지어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까지도 좀 더 치열하게 겪어나가며 배워갈 수 있어야 하는 곳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안전한 학교 안에서 말이다. 


학력 학력 하며 배우는 속도가 좀 더딘 아이들을 학습부진아로 규정짓고, 학폭 학폭 거리며 아직 관계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을 학교 폭력을 범한 자로 낙인 찍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학교. 이 속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 그런 규정 속에 내가 속하지 않기 위해 불안에 떨며 경쟁에 전력을 다하거나, 그 규정에 내가 속하지 않기 위해 작은 갈등에도 남을 탓하며 손가락질 하는 것을 배우게 되지 않겠는가. 언제쯤 우리네 학교는 좀 달라질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학교 탓이 아닐지 모른다. 우리 사회가 학교를 향해 요구하는 모습들이 그러하기 때문은 아닐까. 이제 우리 함께 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학교에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겪게 할 것인지 말이다. 적어도 학교가 아이들 성장을 원하는 곳이라면 도대체 학교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지 말이다.


심은보 ㅣ 일곱 해 된 경기도 혁신학교 평택 죽백초등학교에 여섯 해 째 행복한 배움터 만들기에 애쓰고 있다. 학교에서 맡은 일은 희망을 일궈가는 우리 선생님 한 분 한 분 응원하며 함께 가고자 뜻과 마음 모아가는 죽백초 희망부장이다. 아이들 속에선 심슨으로 살고 있으며 좌충우돌 모두에게 의미있는 나날 가꿔가기 위해 4학년 아이들과 끊임없이 이야기 나누며 길을 찾아가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12.20 11:17

[시선 | 브루더호프에서 날아온 평화 편지]


아이 한 명을 구하는 것은 세상을 구하는 것입니다

 

원마루


“와, 눈이 내린다!”


아침나절 어린이집에 간 아이들이 산책을 가면서 신나게 껑충껑충 뛰고 있습니다. 첫눈이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사는 영국 남동부 도버 지방은 겨울에도 그렇게 춥지 않아 어떤 해에는 눈을 구경도 못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일찌감치 눈이 내리니 신이 날 수밖에요. 우리 집 아이들은 벌써 “성탄에 눈이 올까요?”라며 설레고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과 함께 저희들은 한 달도 남지 않은 성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성탄절을 그냥 지나쳐버리기도 하시겠지만, 종교와 상관없이 많은 사람이 성탄과 새해를 기다리고 축하하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때는 왠지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고, 추위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계절입니다.


이럴 때에 이곳 너도밤나무 숲에 사는 식구들은 그리스의 레스보스섬에 있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난민들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희 마을 한 청년이 그곳에서 몇 달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고, 지난주에는 추가로 청년 다섯 명이 가서 전기와 배관 공사를 돕고 왔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국내 언론 보도에 거의 나오지 않지만, 시리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터키에서 아주 가까운 그리스 레스보스 섬에는 여전히 전쟁 등을 피해 아슬아슬한 고무보트에 몸을 싣고 유럽연합국인 그리스에 망명 신청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2016년 4월, 유럽연합이 그리스에 도착한 난민을 다시 터키로 보내기 시작하고, 해안 국경 경비를 강화했지만, 절박한 피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몇 년 전에는 망명 신청 뒤 며칠만 있으면 유럽 나라 중 한 곳으로 갈 수 있었지만, 늘어나는 난민으로 심사 절차가 복잡해져서 1년 넘게 난민 수용소에 머무는 사람이 숱하다고 합니다. 난민은 늘어나지만 주거 공간은 물론이고 화장실이나 샤워 시설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열악해 급하게 전기 기사와 배관공 도움이 필요해 저희 마을 청년들이 다녀오게 됐습니다. 


청년들이 전한 난민 수용소 상황은 참담했습니다. 가족들 숙소는 컨테이너에 간이 벽을 설치한 것이 전부이고, 대부분은 구호단체에서 마련한 2인용 텐트에서 지내고 있는데 땅바닥에 설치된 텐트는 비가 오면 속이 물에 흠뻑 젖는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어머니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아이들을 안고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그나마 어디에서 나무로 짠 사각형 틀인 팔레트를 가져다주면 그렇게 고마워할 수가 없다고 하고요. 텐트촌에는 전기가 들어가지 않아 사람들이 전구를 떼다가 사용하는 바람에 가뜩이나 열악한 화장실과 샤워실을 사람들은 불빛도 없이 사용해 왔답니다. 게다가 배수 시설이 막혀 오물이 난민촌 이곳저곳을 더럽혔다고 합니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기약 없이 기다리다 보니 난민촌에 어떤 문제나 갈등이 생기면 폭동으로 번지는 일이 잦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저는 난민들의 처지와 제가 누리는 평온한 생활이 겹쳐져 미안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습니다. 고백하건데 제 가족이 그런 처지에 놓였다면 심정이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졌습니다.


그런데 청년들이 일하다 만난 아이들 이야기를 들려줬을 때는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마태오라는 청년은 언덕진 난민촌 낮은 지역에 배수로를 놓는 일을 했는데 일하는 내내 아이들이 다가와 장난을 걸고, 때로는 공구를 들고 장난치며 도망가는 바람에 아이들과 놀고, 때로는 아이들을 좇아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처음 저를 보고는 거리를 두고 좀처럼 다가오지 않다가 제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는 환한 얼굴로 와서 지켜봐요. 그러면 아이들 아빠 중에는 내가 들던 삽을 달라고 해서 땅을 파는 등 어떻게 해서든 도움을 주려고 해요. 난민들이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가도 그런 순간에는 참 기뻤어요.” 




레스보스 난민촌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유대의 한 격언이 떠올랐습니다.


“아이 한 명을 구하는 일이 곧 세상을 구하는 일이다.”


마태오의 말처럼 짧은 기간 난민촌에서 한 일과 수많은 난민이 겪는 일을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한 아이에게 웃음을 주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고 그 아이는 그 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성탄절이 올 때마다 어린 시절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제 부모님은 서울의 한 동네에서 문방구를 운영하셨는데 성탄절이 오면 길로 향한 진열 창가에 성탄 전구를 장식하셨습니다. 겨울 밤 빨간색 초록색 노란색 전구가 조용히 깜박이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왠지 모를 이유로 마음이 평화롭고, 성탄절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듯했습니다. 


레스보스 난민촌에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응원하는 마음으로 우리 가족이 번역한 스웨덴 성탄 노래 하나 띄워 드립니다. 다음 주소에 가시면 좀 어설프지만 우리 가족이 부른 노래를 들으실 수 있어요. https://goo.gl/hgF64q 그리고 악보도 하나 보내 드립니다. 스웨덴 전통 곡조랍니다.


* 악보를 누르시면 원마루님 가족의 노래를 들으실 수 있어요^^



기쁜 성탄과 새해 맞으세요.


2017년 11월 30일

너도밤나무 숲에서, 마루와 아일린 드림.



원마루  아내와 함게 세 명의 개구쟁이 아이들(6, 2, 유치원)을 기르며 영국 도버 근처의 너도밤나무(Beech Grove) 브루더호프에서 살고 있다. 어린이가구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왜 용서해야 하는가,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 등을 번역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12.20 11:05

[시선 | 평화를 그리는 화가들]


아픔의 역사를 그림에 담은 스페인 화가 - 고야


김소울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는 1746년 스페인의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당시 유럽의 변방에 지나지 않았던 스페인은 대국으로부터 끊임없는 침략 위협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왕정이 무력 세력들에 의해 빈번하게 교체되며 잦은 전쟁이 일어났다. 이러한 시대를 살았던 고야가 반전과 평화의 생생한 메신저가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고야는 전쟁의 참화를 적나라한 방식으로 표현함으로써 끔찍한 시대의 모습을 그림에 담았다. 


1808년 프랑스 군인들이 스페인을 침략하려고 진입했을 때, 스페인 민중들은 프랑스 군이 자신들을 스페인 지도자들의 학정으로부터 구해준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프랑스 군대가 스페인에 도착했을 때, 민중들은 적극적으로 군대를 환영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민족이 진입해왔을 때, 그들은 어디까지나 정복자이지 해방자가 될 수는 없었던 것. 프랑스는 나폴레옹의 형인 조세프 보나파르트를 스페인 왕으로 임명하고, 스페인 민중들은 이에 분노하게 된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한 스페인 민중들은 1808년 5월 2일, 민중 시위를 벌이게 된다. 그러자 프랑스 군대가 이를 진압하게 되고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을 잔인하게 처형하는 등 학살극이 벌어지게 된다. 고야는 이 사건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였다. 


1814년, 궁정화가였던 고야는 섭정관에게 마드리드에서 일어났던 스페인 시민 봉기를 그림으로 남기는 것에 대해 제안한다. 그의 예술적 능력을 늘 인정하던 섭정관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고야는 이 사건을 시위편인 『1808년 5월 2일』과 학살편인 『1808년 5월 3일』이라는 작품으로 스페인에서 벌어졌던 잔혹한 광경을 그림으로써 역사 속에 남기게 된다.



스페인 민중들은 프랑스 군대를 향해 격렬히 저항했고, 이들의 저항은 무차별한 총살 처형으로 이어지게 된다. 수 많은 마드리드 시민들이 하루 밤 사이에 죽음을 맞이하였고, 마을은 삽시간에 폐허로 변하게 된다.


『1808년 5월 2일』을 살펴보면 화면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인물들과 말이 물밀 듯이 쏟아지고 있으며, 달려드는 프랑스 군인의 말들은 땅에 나뒹구는 사체에 발이 걸려 주춤거리고 있고 시민들은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 그림은 과거 영웅적인 모습을 그려내며 승리의 순간을 묘사하던 전쟁화와는 달리, 민중의 광기어린 절망감과 잔혹한 학살을 시작하는 군대의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봉기가 일어나는 그 순간을 정직하게 잡아내고 있다.



작품 『1808년 5월 3일』을 살펴보면,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저 멀리 교회가 보이고 왼 편에는 시민들이 늘어서 있다. 오른 편에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 프랑스 군인들이 스페인 시민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 군인들도 눈 뜨고 못 볼, 너무나도 처참한 살육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때 우리나라 군인들이 그러했듯이, 혁명의 주체가 되었던 프랑스 군인들은 어느새 총 쏘는 기계로 전락했다. 마치 가축을 도살하듯 기계적으로 시민들을 죽이고 또 죽이던 처형은 밤새도록끝나지 않고 새벽을 맞이하게 된다.


시민들은 두려움에 떨며 다른 사람 뒤에 숨기도 하고, 죽음의 두려움에 고통스러워하기도 하며, 머리를 움켜쥐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들의 발 밑에는 이미 목숨을 잃어버린 마드리드 시민들의 시체가 즐비하다. 총살형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여기 서 있는 시민들은 죽을 것이 분명하며, 그들 뒤로 길게 늘어진 줄은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가운데 하얀 옷을 입고 있는 남성은 자신을 향해 겨눈 총을 마주보고 양 팔을 벌린 채 당당히 맞서고 있다. 그의 모습은 비록 총칼 앞에 육신은 무릎 꿇고 쓰러질 수밖에 없으나, 자신의 영혼은 결코 노예가 될 수 없으며 조국은 곧 해방을 맞이할 것이라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시민들의 죽음을 목격한 고야의 영혼이 이 사람을 통해 표현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야의 생생한 기록은 사람들이 당대의 사건을 잊지 않고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의 잔혹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1808년 5월 2일』과 『1808년 5월 3일』은 죽음을 감수하더라도 조국을 지키기 위해 정복자에 맞서 싸우는 민중들의 모습을 그림에 담아냄으로써 폭력으로도 감히 저지할 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을 보여주고 있다. 아픔의 역사를 담아내려 했던 화가 고야. 그가 두 눈으로 직접 바라봤던 죽어가던 시민들의 울부짖음과 외침은 여전히 그림 속에 생생히 남아 우리 가슴을 울리고 있다.



김소울 |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의 심리상담학과 특임교수로 재직중이며, <아이마음을 보는 아이그림>을 비롯한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였다. 현재 미술 작가이자 플로리다 마음연구소 대표로서, 치유적 활동과 미술창작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12.20 03:51

[시선 | 세상과 만나는 인문학]


어린 왕자의 미술 세계


송태효



화가로서의 꿈의 결실 『어린 왕자』


생텍스(생텍쥐페리의 애칭)는 『어린 왕자』에서 자신이 여섯 살에 화가의 꿈을 접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하지만 이후 그의 화가에 대한 열정은 나날이 심화해 갔다. 청년기 시와 편지, 저술 원고의 데생들이 이를 증명해준다. 그는 글과 이미지의 조화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자신의 무능을 탓하며 과감히 폐기해버렸다. 마지막 작품 『어린 왕자』는 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완성도 높은 작품을 기대하던 화가로서의 꿈의 결실이었다. 언어의 한계성을 그림으로 보완하려는 화가 생텍스의 열정이 그림 동화 『어린 왕자』를 탄생시킨 것이다. 



열아홉 살의 생텍스는 파리의 명문 생루이 고등학교(Lycée Saint Louis) 졸업반 재학 중 해군사관학교 입시에 지원한다. 생텍스는 과학 분야에서 우수한 성적을 얻고도 문학 출제 문항에 모순을 제기하고 백지 답안을 제출하여 낙방한다. 이후 파리의 국립미술학교 에콜 데 보자르(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에 입학하여 십오 개월 간 화가들과 교류를 통해 회화와 건축에 대한 열정을 키워간다.


1920년대 군 복무 시절이나 트럭 외판원 시절에도 생텍스는 끊임없이 그림으로 자신의 일상을 표현했다. 1930년대 이후에는 마치 화가 이중섭이 구겨진 담배 은박지를 펼쳐 가난한 가족의 복작거림을 새기듯 식당 메뉴, 책과 편지지 여백에 인생 잡사의 고달픔, 나부의 아름다움, 친구들의 풍자적 초상을 열심히 그렸다. 이렇게 글과 데생이 어우러진 화가로서의 재능은 초현실주의 화가인 콘수엘로 순신(Consuelo Suncin)과 결혼하면서 한층 성숙해졌다.



초현실주의자들과 생텍스 부부


생텍스의 부인 콘수엘로 순신은 엘살바도르 출신 화가이자 조각가였다. 생텍스와 순신은 동시대 초현실주의 예술가들과 빈번한 교류를 가졌다. 특히 21세의 나이에 화단과 결별한 천재 화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과 각별한 사이였다. 르네 마그리트의 중산모자(derby hat) 이미지를 이방인 시각으로 풀어낸 「중산모자를 쓴 남자(Homme chapeau melon)」에서 그녀의 무의식 세계를 교감할 수 있다. 『어린 왕자』의 장미를 연상하면 그녀의 그림이 한층 친밀하게 다가온다.



생텍스는 천재 작가 뒤샹의 체스 상대로 잘 알려져 있다. 생텍스가 어린 왕자와 장미 이야기를 신뢰, 의심, 분석, 추론 혹은 종합, 열거, 형식적 귀납법 같은 데카르트의 정신지도규칙에 따라 논리적으로 풀듯, 데카르트의 방법론에 매료된 뒤샹은 수학 법칙이 적용된 체스를 통해 예술의 진정성을 추구하였다. 데카르트의 수학과 철학을 통해 두 예술가의 우정이 돈독해진 것이다. 생텍스의 부인은 1941년 프랑스에서 미국 롱아일랜드로 이주하여 대저택을 구입한다. 생텍스가 『어린 왕자』를 집필하게 되어 순신이 진정한 ‘어린 왕자 집’이라 부르게 될 이곳에 입주하면서 순신은 인테리어 벽지 색상을 선택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다. 뒤샹은 당시 순신의 내면 세계를 위로하는 색상들을 제시해줄 정도로 순신과 친밀한 사이였다. 프랑스어, 영어와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던 순신은 미국에 귀화한 뒤샹과 르누아르 이외에도 당시 미국에 머물던 망명 예술가들 특히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같은 초현실주의자들 그리고 잉그리드 버그만(Ingrid Bergman), 장 가뱅(Jean Gabin),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 마를렌 디트리히(Marlène Dietrich) 같은 유명 배우들을 집으로 초대하고 편의를 제공하며 우정을 나누던 화단의 중심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보아뱀과 마그리트의 중산모자


생텍스 역시 초현실주의자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았다. 이들의 동인지 「거울(Miroir)」에 생텍스의 핸드 트레이싱(hand tracing)이 실렸을 정도로 초현실주의자들과 생텍스는 서로 교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생텍스의 속이 들여다보이는 보아뱀 그림을 어른들이 모자라고 우기듯, 고정 관념을 지닌 어른들은 일반적 경험에 근거하여 개인의 특수한 경험을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달리 극단을 피해 개별과 보편의 접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초현실주의자들은 속이 들여다보이는 보아뱀 그림에서 자신들이 꿈꾸던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이상적 이미지를 발견하였다. 특히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가 그린 중산모자(derby hat)와 생텍스가 그린 코끼리를 통째로 삼키는 보아뱀이 이들의 가교 구실을 하였다. 마그리트는 “그림의 제목은 해설이 아니며 그림은 그 제목의 설명이 아니다”라고 말했는데, 생텍스가 『어린 왕자』에서 하고 싶은 말도 이와 다르지 않다. 말은 오해의 근원이며 마음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자는 것이다.



앞서간 평화주의 예술가 생텍스


보들레르 시의 상징성, 프로이트의 무의식, 마르크스의 계급 투쟁을 토대로 앙드레 브르통이 주도하던 초현실주의 그룹은 부르주아 문화 타파를 국시로 삼았다. 이들과 달리 이미 러시아 혁명과 스페인 내란에서 과도한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인한 희생을 경험한 생텍스는 계급투쟁 너머의 인간성 유대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문학을 추구하였다. 브르통을 위시한 초현실주의자들은 일촉즉발의 긴박한 현실 갈등을 미처 이해하지 못한 채 생텍스를 비판하다 전쟁이라는 물리적 현실을 겪고 나서야 생텍스를 이해하게 된다. 생텍스는 이미 대륙의 전쟁을 예견하고 그 공포와 폐해를 경고하는 평화주의 메시지를 언론과 문예지에 호소해온 선각자였다. 생텍스는 정신적 장애나 다름없는 편파적 이데올로기 미술 교육에도 일침을 가하고 있다.   


새로운 그림이라는 것이 눈으로 교육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되는 현실에서, 민중에게 화가를 고르게 하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역설이란 말인가. 모든 요인을 거부할 것.

생텍스, 『수첩(Carnets)』, 갈리마르, 1953, p.201,


생텍스가 마음으로 추구하는 새로운 평화는 전쟁의 공포를 인식시키고 평화의 기능을 일상에서 누리게 하는 심미적 실천적 평화이다. 이러한 평화는 관습적 이데올로기와 사유의 틀을 벗어나 평화에 관한 새로운 의식 전환을 요구한다. 갈등과 대립의 원인인 증오의 바오밥나무를 제거하는 예술적 교육으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어쩌면 평화는 빈센트의 그림 한 작품을 통해서도 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진정한 평화는 각자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마음을 길들여야 가능한 평화이다. 『어린 왕자』에서 우리는 마음의 눈으로 보는 법을 배웠다. 생텍스가 유명한 화가들 명단에 올라 있지 않다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생텍스가 그린 고독한 초상화와 캐리커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피카소가 그린 카사헤마스(Casagemas)의 죽음을 추모하는 청색 시대 작품들, 그리고 빈센트의 말년 초상화들이 떠오른다. 그 인물들의 눈은 마음의 눈이다. 그리고 빛나는 별이다. 그리고 생텍스도 별이 되어 세상에 평화의 빛을 밝히고 있다.



송태효  불문학 박사로 현재 '어린왕자인문학당' 대표와 제주불교문화대학 불교인문학 교수, '성남시지역발전자문위원회' 교육체육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는 예술인가, 어둠의 방-시와 영화 속 그림자 이야기, 등이 있고, 역서로는 생텍쥐베리 사람들의 땅, 어린 왕자 등이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12.20 03:10

[시선 | 평화적 시각에서 재해석한 남북 관계사]


하늘길, 바닷길, 땅길 열어 평화로! 통일로! : 우리는 꿈꿀 수 있어야 한다


정영철


우리에게 분단-통일은 여러 가지 다양한 의미가 있다. 분단으로 인해 가족을 잃고,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에게 통일은 곧 가족과의 만남이자 고향의 회복일 것이다. 분단 때문에 총을 들고 적과 마주했던 사람들에게 통일은 곧 평화와 화해를 의미할 것이다. 분단으로 삶이 피폐해진 사람들에게 통일은 곧 새로운 번영을 의미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우리 세대에게 분단, 그리고 통일은 무엇을 의미할까? 분단으로 억눌린 삶의 자유와 평화를 의미할 것이며,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미래의 설계일 것이며, 평화로운 한반도에서의 희망을 의미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 그것은 바로 ‘꿈’일 것이다. 우리는 꿈을 꿀 수 있어야 한다. 그저 막연하게 ‘통일’이라는 꿈이 아니라 분단이 만들어놓은 불안, 걱정, 억압, 전쟁 등으로부터 해방되어 평화와 번영과 공존과 화해와 협력을 꿈꾸는 것이어야 한다. 


분단이 서로를 향한 불신과 적대감을 의미한다면, 통일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연대를 의미한다. 2007년 정상회담은 이러한 꿈을 한 발 더 진전시킬 수 있었던 기회였다. 정치-경제적인 합의를 넘어 그 이듬해 열렸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남북이 공동으로 응원단을 만들어 부산-서울에서 개성-평양을 거쳐 신의주를 넘어 베이징까지 철도를 운영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 분단 이후 단절되었던 철길을 놓고, 도로를 놓기로 했다. 이제야 ‘갇힌 나라’가 아니라 대륙으로, 바다로 ‘열린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뿐인가? 2000년 정상회담 때부터 남북은 대륙을 가로지르는 실크로드를 구상했고, 2007년 정상회담에서는 그것을 더욱 구체화시켜 TCR(Trans China Railroad, 중국횡단열차)과 TSR(Trans Siberian Railroad)을 연결하여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까지 이어지는 실크로드를 현실화하기로 합의했다.    



마침내 2007년 5월 17일 경의선 구간 중 남북이 끊어진 지점에서 철도가 연결되었다. 2000년 정상회담 이후 1, 2차 장관급회담에서 합의되었던 경의선 철도 연결 사업이 진행되었고, 북의 핵실험 등으로 미뤄졌다가 북의 개성과 남의 문산을 잇는 27.3km 구간에 대한 복원 사업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07년 5월 17일 경의선 연결 철도 시범 운행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2007년 10월 정상회담을 계기로 철도 운행을 정기화하기로 합의하면서 북의 봉동과 남의 문산을 잇는 철도가 12월 11일 개통되어 정례적으로 운행하게 되었다. 이 철도는 개성공단을 오가는 철길로 주 1회씩 정기적으로 운항하였지만, 결국 2008년 12월부터 중단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반도를 종단하는 철도는 현재 끊어져 있는 경의선, 경원선, 동해선 등을 연결하면 곧바로 대륙과 연결된다. 남북이 힘을 합쳐 끊어진 구간을 복구하고 북의 철도를 현대화하는 작업을 한다면 언제라도 연결할 수 있다. 끊어진 구간이라야 이미 연결되어 있는 경의선 구간을 제외하면 경원선 약 25km, 그리고 동해선 약 110km이다. 만약 금강산까지 철도를 새로 놓는다면 약 100km의 구간이 추가될 수 있다. 


철도와 도로의 연결 하면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이익부터 생각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지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철도와 도로의 연결이 멀리 돌아가던 길을 단축시켜서 경제적으로 많은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철도와 도로의 연결은 경제적 이득만이 아니라 여전히 해체되지 않고 있는 동북아 지역의 냉전을 해체하고, 군사적으로 긴장을 완화하고 협력을 제고하는 핵심적인 사업의 하나이다. 특히, 이 철도와 도로를 통해 사람이 다니고, 화물이 다니고, 시베리아의 천연자원이 유통된다면 우리로서는 그야말로 북방의 영토를 개척하는 의미를 지닐 것이고, 동북아 지역의 협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희망에도 불구하고 남북 경색 국면이 지속되면서 철도와 도로의 연결은 머나먼 일이 되고 말았다. 아직도 끊어진 철로 한편에서 ‘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 낡은 기차는 철길이 아니라 남북의 정치–분단의 정치–로 인해 정차하고 있을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철길과 도로의 연결이 늦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 시간만큼 더 큰 분단의 희생을 치르고 있다는 것이며, 더 중요하게는 우리의 꿈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래 가사에도 나오는 것처럼, 소련(러시아)도 가고, 달나라도 가는데 평양만 갈 수 없는 데서 오는 우리의 미래 희망의 쪼그라듦이다.


부산 어귀 한 곳에서 기차를 타고 만주를 거치고 시베리아를 지나서 유럽 한복판으로 달려가는 상상을 해보자. 우리 학생들이 배낭을 메고, 어깨동무하면서 평양을 내려, 신의주를 내려, 만주를 내려, 시베리아를 내려, 유럽을 내려 그들과 함께하는 것을 상상해보자. 바다로는 오대양육대주를 누비고 있으면서, 대륙으로는 왜 이런 상상을 하지 못하는가 생각해보자. 그 한복판에 분단이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분단을 넘어, 하늘길, 땅길, 바닷길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충분히 할 수 있다. 이미 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우리를 대신하지 않는다. 비록 실행은 되고 있지 않지만, 남북이 주춤거릴 때 중국이 중국 단둥과 북의 신의주, 평양, 개성을 연결하는 고속철도를 놓겠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오히려 그들은 우리의 분단을 즐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한다. 남북이 힘을 합쳐 해야 한다. 분단의 정치에서 벗어나, 민족의 미래와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이유다. 


우리는 꿈을 꾸어야 한다. 이런 꿈들이 모여 현실이 되었을 때, 그때 우리는 지금의 꿈이 한낱 꿈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분단의 꿈이 아닌 평화의 꿈, 통일의 꿈을 꾸어야 할 때다. 

피스레터에 지금껏 다양한 주제로 연재했지만, 이제 연재를 끝내는 시점에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이다. 

하늘길, 땅길, 바닷길 열어 평화로! 통일로!


<참고한 글>

통일노력 60년 발간위원회, 『하늘길 땅길 바닷길 열어 통일로』, 서울:다해, 2005. 

전상봉, 『통일, 우리민족의 마지막 블루오션』, 서울:시대의 창, 2007.


<사진출처>

정영철・정창현, 『어린이어깨동무 교양시리즈1 - 남북관계사 20장면:평화의 시선으로 분단을 보다』, 서울:유니스토리, 2017.


정영철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서울로 상경해 공학을 전공하다 진로를 바꿔 사회학을 공부하였다북한통일평화에 대한 연구가 관심사이며지금은 서강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한반도 평화가 곧 어린이의 미래라는 생각에 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에 발을 들여놓고 일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12.20 02:48

[이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본 네일러


지난 9월 어린이어깨동무와 김동진 교수님으로부터 한국에 와서 인형극을 활용한 저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는 제안을 받고 영광스럽고 기뻤습니다. 제가 한국분들께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배울 점이 더 많다고 느꼈기 때문에 영광스러웠습니다. 또한 지난 2월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 평화학 대학원에서 만난 한국 분들의 우정과 따뜻함, 코리밀라 공동체의 활동에 대한 관심을 느끼며 즐거웠던 기억이 있어 기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11월에 콜린 크랙 씨와 저는 김동진 교수님과 함께 서울로 향했습니다. 한국에서 어린이어깨동무와 서울교육대학교 통일교육연구소의 환대를 받으며 꼬박 나흘간 바쁜 일정을 보냈고, ‘평화교육은 우리를 바꿀 것인가’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에 참여했습니다.


평화교육 심포지엄에서는 인형극을 활용한 평화교육과 좋은 관계 맺기의 여섯 가지 사례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또한 어린이집에 방문해 인형극을 하고, 정체성과 소속감에 영향을 주는 몇 가지 게임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약 40명의 교사 및 지도자들이 함께하는 워크숍을 열어 인형을 만들고 활용하며 갈등을 극복하는 서로 다른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모든 행사에 많은 참가자들이 모여 주최 측도 기뻐했고, 전반적인 운영도 더할 나위 없었습니다. 원활한 통역 덕분에 오랜 시간 머물면서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고, 중간에 대접받은 음식도 훌륭했습니다. 금속 젓가락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좀 걸려 음식들을 입에 넣기가 어려웠지만 새롭고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멋진 찻집에서의 시간도 정말 즐거웠습니다.



심포지엄과 어린이집 방문 및 워크숍 일정 사이에 시간이 나서 비무장지대, 한국DMZ평화생명동산과 민간인통제구역 내의 전망대를 방문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비무장지대는 폭이 평균 4km이고, 248km 길이의 군사분계선이 한반도를 동서로 가로지르며 남과 북을 나누고 있습니다. 군사분계선에서 10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민간인 구역이 있는데 저희가 방문한 평화생명동산도 그런 지역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나무와 덤불 사이에 놓인 두 대의 남한 탱크를 발견했는데 지금은 쓰이지 않는 그 탱크들은 흰색과 무지개 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고 포신에는 뿜어져 나온 듯한 꽃 장식이 있었습니다. 


평화생명동산은 어린이어깨동무 관계자들이 여름 캠프를 위해 찾았던 곳이기도 한데 그곳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코끼리의 피부처럼 독특하게 주름진 산이 있는 이 지역은 생태적으로 풍요롭고 야생 동식물이 매우 다양해서 한국의 멸종 위기 동식물 중 38퍼센트가 살고 있는 장소이기에 그 자체로 희망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성헌 이사장님과 콜린 씨와 저는 평화생명동산과 코리밀라 공동체의 프로그램과 비전에 대해 발표했고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평화생명동산의 정성헌 이사장님은 저희를 안내해주시며 지역의 그린에너지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셨고, 다양한 풀과 나무의 치유 능력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셨습니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촬영팀이 민간인통제구역과 가칠봉 전망대까지 우리와 동행했습니다. 가칠봉은 남한과 북한 경계초소 간의 거리가 780m밖에 되지 않는 곳입니다. 한국의 비극과 고통의 기억을 간직한 곳이자 현재까지 대립과 분단이 실존하는 장소이기에 그곳에서 겸허함과 경각심이 일깨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전망대에 도착하기까지 수 킬로미터의 철조망과 여러 경계초소를 지났고 출입 인원을 확인하는 검문도 거쳐야 했습니다. ‘펀치볼 마을’이라고 불리는 해안분지도 방문했는데 그곳은 한국전쟁에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은 장소였습니다. 


한국에 온 이유를 묻는 촬영팀의 질문에 저는 북아일랜드 분쟁 당시 잉글랜드 친구들이 방문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이야기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북아일랜드에 오기를 두려워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친구들의 방문은 저에게 희망과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저는 어린이어깨동무의 용기 있는 활동을 지지하고 평화교육 프로그램에 적용할 수 있을 만한 도구와 자원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제가 가져온 여덟 세트의 인형들도 그런 도구들 중 하나입니다. 촬영팀은 통제구역으로 가는 길에 제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우리의 가슴 깊이 간직한 희망의 상징물과 코리밀라에서 매일 예배를 드리는 장소를 그렸다고 말해주었습니다. 희망의 상징물은 켈트 십자가와 기도서, 그리고 켈트족의 축복이 담긴 천으로 감싼 초와 촛대입니다. 저는 이것을 정성헌 이사장님께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방문 내내 주최자와 파트너이자 친구인 분들의 따뜻한 마음과 우리의 활동에 대한 관심을 느끼며 행복했습니다. 너그럽게도 우리에게 감사를 표하셨지만 이런 자리에 초대되어 오히려 영광이었습니다. 남북관계의 역사와 외부세력의 개입에 의한 관계의 복잡성에 대해 제가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생각해보면 평화를 위한 동반자인 어린이어깨동무가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용기와 희망에 더욱 찬사를 표하게 됩니다. 그들을 보면 오랜 시간 동안 신랑을 기다리며 등불에 필요한 기름을 준비하는 우화에 나오는 다섯 명의 현명한 아가씨들이 떠오릅니다. 희망을 잃지 않고 기다리기 위해 적극적인 자세로 평화를 준비해야 합니다. 저는 어린이어깨동무의 활동에 감동과 영감을 받았고 너그러운 감사의 표현과 환대에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한국을 떠날 때 제 마음에 시편 23장의 한 구절이 떠올랐는데 지금도 그분들의 너그러움을 기억하며 그 구절을 생각합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본 네일러(Yvonne Naylor) ㅣ 북아일랜드에서 25년간 중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코리밀라 등 민간단체와 함께 평화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평화교육 활동가를 훈련시켰다. 교사직 은퇴 후에도 퍼펫 우먼(Puppet Woman)을 설립하여 인형극을 활용한 평화교육 프로그램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


* 편집자주

본 글은 필자가 어린이어깨동무의 초청으로 11월에 한국을 방문하여 보낸 4일 간의 일정에서 느낀 점을 정리한 글입니다. 평화교육 심포지엄 ‘평화교육은 우리를 바꿀 것인가’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어린이어깨동무 홈페이지(www.okfriend.org) 및 어깨동무평화교육센터 블로그(peacecenter.tistory.com)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PDF)2017.12.20 02:08

피스레터8 out-최종 게시용.pdf





이본 네일러 | 내 잔이 넘치나이다

정영철 | ​ 하늘길, 바닷길, 땅길 열어 평화로! 통일로! : 우리는 꿈꿀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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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심포지엄2017.12.15 18:47

[편집자주 - 어린이어깨동무와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이 공동기획, 진행한 워크숍의 내용을 공동육아의 게시글 공유로 함께 나눕니다]

 


2017공동육아국제워크숍 [인형을 통한 의사소통과 스토리텔링]이 진행되었습니다



2017년 11월 17일(금) 오후 7시부터 2시간동안 2017공동육아국제워크숍 [인형을 통한 의사소통과 스토리텔링]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국제워크숍은 자매단체인 어린이어깨동무와 함께 기획, 진행된 워크숍으로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심포지엄 - 평화교육은 우리를 비꿀 것인가]의 한꼭지로 진행되었습니다.


아일랜드 '코리밀라'의 일원이자 '퍼펫우먼'대표로 활동하며 평화교육에 앞장서고 계시는 이본네일러 선생님을 강사로 모시고 진행한 이번 워크숍은 인형을 이용해 평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직접 종이인형을 만들어 인형극을 시연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한 성미산마을의 어린이집 7살 아이들과 함께 인형극을 관람하고 놀이를 통해 다름에 대한 경험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통역으로는 2017어린이집조합대표자회의 부의장으로 활동하고 계시는 최미람(사슴)님께서 도와주셨습니다. 이번 워크숍이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보다 적극적으로 나누는 기회의 시작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원문을 보실 분은 링크를 따라가세요^^  http://www.gongdong.or.kr/ing/358324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심포지엄2017.12.15 18:36



#. 2017년 11월 15일 오전 10시


분주한 마음으로 도착한 창비50주년홀. 분명히 일주일전에 평화교육 심포지엄 '평화교육은 우리를 바꿀 것인가' 준비를 위한 모든 체크를 마쳤으나.. 준비하는 손길이 바쁘기만 한 그 때!


올해 초, 아일랜드에서 만났던 콜린 크랙과 이본 네일러가 도착했다. 기자 간담회를 위해 행사시간보다 한참 먼저 도착은 두 명은 긴~ 비행의 여독이 여전히 풀리지 않은듯 피곤해보였으나 특유의 밝은 표정과 미소로 반가움을 표시했다. 커피 한 모금의 여유도 잊은 채 열정적으로 기자 간담회에 임하는 먼 길 오신 손님들의 이야기는 아래 링크를 따라가면 자세히 만나실 수 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819269.html



#. 한반도의 멀리있는 쌍둥이, 아일랜드의 경험을 나누는 시간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오기 시작하는데 느낌이 심상치 않다. 흥행성공! 심지어 너무나 열심히 공부를 한다. 우리사회가 평화와 평화교육에 목말라하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 한반도와 같은 분단과 분쟁의 지역 북아일랜드에서 평생 평화운동을 해온 콜린 크랙의 진심어린 경험과 인형이라는 매개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열도록 돕는 이본 네일러의 이야기는 참석자들의 눈과 귀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또한 아일랜드 활동가들의 발표를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역사적 배경과 활동내용, 거기에서 나타난 성과와 한계, 우리 사회에 주는 시사점까지 정리해주신 강순원교수님의 발표에 청중들은 엄지척!! 이렇다보니 참가자들의 집중도는 입시생을 방불케 했을 정도!! 


 





#. 이 땅에서의 노력, 교실에서 일구는 평화  


아일랜드의 경험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현장 선생님들의 발표 또한 많은 참가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최관의 선생님의 '피구놀이에서 배우는 평화'는 어린이들과 더 깊게 호흡하는 것을 배워가는 과정이었고, 양은석 선생님의 다양한 평화교육 콘텐츠에 대한 발표는 참가자들의 손을 바쁘게 했다. 열심히 받아 적고, 응용하고자 하는 열정 만발! 


이 시간은 아일랜드와 한반도에서의 평화를 위한 노력이 만나는 시간인 동시에,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콘텐츠가 만나 희망을 일구는 시간이기도 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평화총서2017.12.14 17:15

보도자료-평화의시선으로분단을보다.pdf





어깨동무평화교육센터 정영철 소장이 피스레터에 연재한 

평화적 시각에서 재해석한 남북관계사를 수정·보강한

남북관계 20장면 평화의 시선으로 분단을 보다


왜 ‘평화’의 시선으로 ‘분단’을 성찰해야 하는가?

38선의 탄생부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삐라’를 둘러싼 논쟁까지

일관되게 평화’의 시선으로 재조명한 남북관계 20장면




그동안 북한 역사와 남북관계를 꾸준히 연구해 온 정영철 교수와 정창현 교수가 공동으로 기획하고 집필한 남북관계사 교양서이다. 분단의 형성과 남북갈등, 대화와 교류 등 분단 70년사에서 남북관계의 결정적 장면을 연출한 20개의 사건을 뽑아 흥미롭게 서술하였다.

특히 분단, 38선의 탄생부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삐라를 둘러싼 논쟁까지, 그리고 우리가 지향하는 바의 평화통일의 꿈까지 총 20개의 장면을 통해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고 다시는 전쟁과 적대의 길을 걸어서는 안 되며, 화해와 협력, 신뢰와 공동 번영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평화의 시선으로 남북관계를 재조명하였다.

 


평화의 시선으로 분단을 성찰해야 하는가?

 

이 책은 일관되게 평화의 시선으로 과거 분단과 갈등, 협력관계를 성찰하고 있다냉전시대 우리는 북한을 동족의 반쪽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우리와 생사를 걸고 대립하고 있는 소멸시켜야 할 적대집단이라는 상반된 대북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대북인식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우리에게 오늘의 북한은 경계대상동반자라는 이중성을 갖는다. 이러한 이중적인 현실인식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간의 적대성을 감소시키고 동포애를 증진시켜 북한을 공존과 동반자관계로 이끌어 가는 지혜와 노력이다그러나 준비가 되지 않은 성급한 통일은 남과 북, 모두에게 엄청난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평화적으로 남북합의에 의한 통일 추구가 필요한 이유다. 더구나 요즘처럼 한반도, 더 나아가 동북아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은 무엇보다도 평화적 환경의 조성이 절실하다


지난 70년의 경험을 통해 볼 때 한반도의 평화는 동북아의 평화와 직결되어 있다. 동북아의 평화 없이 한반도의 평화가 보장될 수 없으며, 한반도의 평화 없이 동북아의 평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는 남북의 화해와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다그렇기 때문에 지난 70년의 남북관계를 평화의 시선으로 성찰하고, 새로운 남북관계를 고민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특히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서 남북관계는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다. 새로운 출발은 처음부터가 아니라 과거에 대한 반성과 성찰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남북의 화해와 협력, 신뢰와 공동 번영의 길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우리에게 과거 남북관계를 성찰하면서 교훈을 얻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고, 그 중심에 평화가 있어야 한다.

 


젊은 세대에게 평화의 가치통일의 꿈이 필요하다.

 

이 책은 젊은 세대들이 과거와 현재, 미래의 남북관계에 관심을 갖도록 여러 이미지와 도표 등을 포함해 가급적 쉽게 서술하였다2000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관계는 화해와 협력을 통해 통일을 모색하는 단계로 발전했다. 남북 간에는 금강산관광, 개성공단사업 등 다양한 협력사업이 진행되었다. 다양한 민간단체들의 인도적 지원 활동이 있었고,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남북의 행사를 같이하기도 하였다. 2007년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의 공존과 공영의 성과물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중대한 역사적 계기를 마련하였다. 남북의 도로와 철도를 연결시키고, 한반도를 넘어 중국러시아를 거쳐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꿈을 꾸게 하였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금강산과 개성공단은 결국 문을 닫았고, 남북은 과거 냉전 시절의 적대적 관계로 돌아갔다. 젊은 세대들에게 평화통일은 새로운 꿈을 창출하는 공간이 아니라 자신과 동떨어진 너무나 추상적인 일이 되어 버렸다이제 새롭게 열어나갈 남북관계는 젊은 세대에게 부담이나 성가신 일이 아니라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희망의 공간이어야 한다. 남북의 젊은 세대가 한반도에서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고, 함께 어깨동무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모색할 수 있는 꿈이 필요한 시점이다. ‘평화로운 남북관계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새로운 미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공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꿈을 꿀수록 그것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 한반도의 분단이 남겨놓은 반쪽짜리 꿈이 아니라 온전한 꿈을 꿀 수 있어야 한다. 철길과 땅 길의 연결은 남북의 화해와 협력, 신뢰와 연대를 의미한다. 나아가 한반도가 중심이 되어 동북아 국가, 세계인 모두에게 평화와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전파하는 것이 된다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과거 불행했던 순간, 행복했던 순간을 되돌아보고 젊은 세대가 새롭게 평화로운 남북관계를 사고하고, 모색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있는 그대로의 남북관계사이해

 

이 책에서는 모두가 잘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잘 알고 있지 못하는 사실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자 하였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역사를 이해하는 첫 걸음이자 새로운 남북관계를 모색하는 디딤돌이 되기 때문이다.


과거 남북관계를 남과 북이 필요에 따라 서로에게 유리하게 서술하기도 하고, 한국의 경우 정권이 바뀜에 따라 상반된 평가를 내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남북관계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우선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남북관계를 되돌아보고, 이에 기초해 미래의 남북관계를 사고해야 한다이것이 이 책에서 그 동안 논쟁이 되어 온 대북 인도적 지원문제, NLL문제, 삐라 살포문제 등을 구체적으로 다룬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의 말>

 

이 책은 본격적인 역사서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남북관계의 중요 장면을 간추리고, 그로부터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을 끄집어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책에 담긴 20개의 장면에는 안타까운 적대의 역사도 있고, 희망에 부풀었던 꿈만 같던 역사도 있다. 남북관계의 웃고, 울었던 역사를 되돌아보며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고자 했다. 남북관계의 형성과 변화, 그리고 현재의 모습은 우리가 지나온 남북관계를 성찰하고, 새로운 남북관계를 만들어가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이 책이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힘이라도 되었으면 한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