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레터(글)2018.06.19 23:52

[이슈]


한반도 평화의 봄, 시민사회는 무엇을 할 것인가

 

윤철기

 

한반도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6개월은 오랜만에 가슴 설레는 시간이었다. 냉전과 분단의 역사가 종착역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남과 북의 정상이 군사분계선을 오가며 악수하는 순간, 새로운 역사는 시작되었다. 판문점은 더 이상 분단의 상징이 아니다. 도보다리는 남과 북의 정상이 함께 거니는 순간, 지난 70년간 분단의 모순과 상처를 치유할 오작교가 되었다. 판문점 선언은 남과 북이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남북 정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선언할 때 다시 판문점에서 만났다. 그리고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612일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대통령이 손을 맞잡았다.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평화는 약속으로 시작되지만 실천으로 완성된다. 남북 모두는 한국전쟁의 경험을 통해서 대화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전쟁의 역설이다. 그래서 남북한은 대화를 포기 하지 않았고, 지난 70년 동안 여러 차례 중요한 합의들을 했다. 7·4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선언, 6·15공동선언과 10·4공동선언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약속이 이행되지 않을 때마다 남북한 간의 긴장은 고조되고, 서로에 대한 불신은 깊어졌다. 경제적 손해도 컸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고 개성공단이 갑자기 폐쇄되면서 그 손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갔다. 분단비용을 실감할 수 있는 고통스러운 시간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하루하루의 삶을 걱정해야 하는 속세의 필부들이 견디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억겁의 세월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포기 하지 않았다.

 

분단이 남긴 마음 속 깊은 곳의 상처는 평화의 실천으로만 치유될 수 있다.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약속의 이행이 중요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반도의 평화는 남북한 정상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라고 했던가. , , 미 정상은 지난 6개월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었다. 예술이 아니라 마술과도 같은 시간이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하지만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정착을 권력의 손에만 맡겨둘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결국 남, , 미 정상들에게도 큰 부담이다. 지금 이 순간 남, , 미 정상의 정치적 의지를 의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권력의 의도가 곧 현실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분단구조를 끝장 낼 평화의 정치는 최고지도자들에 의해서 시작되었지만,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사회의 도움이 필요하다. 분단의 역사에서 권력은 필요에 따라 의도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키고 갈등을 조장하기도 했다. 분단구조에서 끝임 없이 권력은 적을 만들어 냈다. 남북한 관계에서 권력은 어렵게 합의한 내용들을 명확한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깨뜨리고는 했다. 국가안보와 이데올로기는 합의 파기와 불이행의 가장 중요한 명분이었다. 한반도 평화의 문제를 전적으로 정치에 맡길 수 없는 이유이다. 경제와 사회문화 영역에서의 인도적 지원과 교류와 협력은 안보의 위기가 도래하면 한 순간에 중단되었다. ‘창구단일화의 논리가 당연시 받아들여졌다.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지키고자 어렵게 쌓아올린 공든 탑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결국 적을 만드는 정치가 부활하였다.

 

분단구조의 정치는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적을 만든다. 적을 만드는 정치는 그 정당성을 스스로 찾지 않는다. 적의 문제를 비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래서 적을 만드는 정치는 위험한 정치이다. 평화를 위협하는 정치이다. 평화는 적과의 공존을 요구하는 일이기에 정당성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분단구조 하에서 적을 만드는 정치는 언제고 다시 나타날 수 있다. 어렵게 찾아온 한반도의 봄을 정치에만 모두 맡길 수 없는 이유이다. 적을 만드는 정치는 탈분단과 평화를 실현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분단의 정치를 끝장 낼 수 있는 것은 위정자(爲政者)들이 아니다. 분단구조 하에서 권력이 평화를 통해서 정당성을 입증하도록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시민이다. 정치가 평화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선포했지만, 그 평화를 지키는 일은 시민사회의 몫이다. 시민사회는 때로는 지지와 직접적 행동을 통해서, 때로는 비판과 견제를 통해서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나갈 주체이다.

 

본래 정치는 사회와의 대화를 즐거워하지 않는다. 정치권력은 연극무대에서 배우의 방백(傍白)처럼 혼자 떠들어대면 사회가 알아서 자신에게 충성하고 복종하기를 원할 뿐이다. 그래서 대의제 민주주의에서는 정치적 공론장을 제도화했다. 바로 의회이다. 의회는 시민의 대표들이 시민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고 이해관계를 조절하는 제도적 공론장이다. 그런데 한국의 국회는 남북한 관계의 문제에서 정치사회와 시민사회의 의견을 조율하는 기능을 하지 못했다. 정치적으로 제도화된 공론장도 안보위기가 발생하면 사실상 무력화되었다. 게다가 국제정치 무대에는 제도화된 공론장이 부재하다. 국제여론이 있지만 그 영향력은 취약하다. 국제정치 무대에서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투영될 공간은 극히 제한적이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국내외에서 자신들의 이해와 요구를 권력에 요구할 수 있는 수단을 거의 가지지 못했다. 특히 정치가 안보위기라고 규정하면 시민사회의 발언권은 사라졌다. 분단구조 하에서 안보위기는 언제나 실재한다. 따라서 안보위기의 양상과 수준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필요했다. 지난 시기 개성공단이 문을 닫을 정도의 안보위기의 상황이었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했다. 그렇지만 안보위기의 수준에 대한 평가는 철저히 권력의 판단에 맡겨졌다. 개성공단이 문을 닫을 때 입주기업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시민사회가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확대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지속가능한경제협력 모델이 추진되어야 한다. 개성공단은 남북한 경제협력의 상징이다. 개성공단이 다시 문을 열 수 있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남북한 정부가 필요에 따라 쉽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는 경제협력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남북한의 대화와 협력의 공간이 지속되는 것은 평화체제로의 이행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경제협력을 통해서 남북한의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이 증대될 때,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협력의 외연을 확대하고 참여자들을 확대함으로써 남북한 경제와의 연계성을 높여야 한다. 그래야만 권력이 자의적 판단으로 경제협력을 중단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남북한 경제협력은 북한이 노동력과 토지와 같은 생산요소를 제공하고 남한이 자본과 기술을 투입하는 기능적인 모델이었다. 그리고 생산품은 남한 기업들에 의해서 남한경제나 수출을 통해서 유통되었다. 북한경제 보다는 남한경제와 연계되어 있었다. 그래서 통일부가 개성공단의 문을 닫는다고 할 때, 북한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평화를 지키기에는 상호의존성이 낮았다. 그래서 외연을 확대하고 북한의 공장과 기업소들이 경제협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남북한 사람들이 참여할 공간을 확대해야 한다. 당장에는 한국 시민들의 참여가 중요할 것이다. 협동조합과 같은 형태로 경제협력에 참여함으로써 조합원 자격의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권력은 시민들의 참여가 확대되었기에 자의적으로 경제협력을 중단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 결과 남북한의 상호의존성이 증가하고 경제협력이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오래되고 낡은 창구단일화의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에서 정부의 허락 없이 시민사회의 대북 교류와 지원은 불가능하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 지속되면서 한국정부는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해 대북제재를 결정했다. 그리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 정부는 대북지원과 교류를 중단할 것을 기업과 시민단체에 요구했다. 또 다시 남북한 관계에서 정부만이 유일한 행위자가 되었다. 창구단일화의 논리는 남북한 관계의 긴장이 고조될 때, 출구를 찾기 쉽지 않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정부의 공식적인 대화 채널이 막혔을 때 남북한 간 교류·협력 사업을 하는 기업과 시민단체는 공식적·비공식적 대화채널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안보 위기 국면에서 시민사회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있는 충분한 힘과 능력을 가지기 어렵다. 안보위기는 민주적인 정책결정을 중단시키는 이유가 되며 시민사회는 하향식(top-down) 결정에 문제를 제기하기 보다는 복종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는 민주적 과정을 통해서 성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시민사회의 참여를 확대하고 창구를 다원화해야 한다. 이는 남북한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적대적 인식을 변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과 서신왕래를 비롯해서 다양한 사회문화 교류가 자유롭게 진행됨으로써 평화가 남북한 사람들 모두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점을 시나브로 깨닫게 해줄 것이다. 이는 적대적 인식에서 호혜적이고 평화적인 인식으로의 대전환이다. 또한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정착을 가로막는 세력들이 등장하는 것을 견제함으로써 평화를 지킬 수 있게 해줄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정착은 평화체제와 같이 남과 북의 정치권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제도에 의해서만 공고화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항구적으로 지키려는 남북한 사람들의 관심과 격려, 비판과 견제, 그리고 교류와 협력과 같은 직접적인 소통과 참여에 의해서 사회적으로구성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북미정상회담도 끝났다. 한반도의 평화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분단의 역사가 길었던 만큼 평화를 완성하기 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반도에서 완전히 핵이 사라지고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정부와 시민사회의 협력이 필요하다. 특히 시민사회의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시민들의 눈을 가리고 적대적인 분단구조를 이용해서 권력을 가지려는 세력이 언제 어느 때이고 부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은 평화를 위협하는 정치세력을 비판하고 견제하며 민주적인 과정과 방식으로 평화를 지켜나갈 수 있는 유일한 주체이다. 평화는 누군가가 주는 선물이 아니라 시민들이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이제는 시민들이 나설 차례이다.

 

윤철기사회불평등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정치학 공부를 시작했다. 북한 정치경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서울교육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평화와 정의에 대한 여러 이슈들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06.19 23:42

[시선-한반도 평화읽기]


2018, 평화의 시대를 맞는 한반도의 오늘과 내일


장용훈


5월 26일 통일각에서 다시 만난 남북 정상 [공공누리에 따라 청와대의 공공저작물 이용]


612일 싱가포르에서 첫 만남을 가지는 북미 정상 [사진제공-싱가포르 정보통신부]

 

#장면1. 문재인 정부 첫 정상회담 이후 한 달이 채 안된 5 26일 오후 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만나 두 번 째 정상회담을 갖고 북미정상회담 등에 대해 논의한다. 문 대통령은 회담 다음날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회담은) 지난 4월의 역사적인 판문점회담 못지않게, 친구 간의 평범한 일상처럼 이뤄진 이번 회담에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남북은 이렇게 만나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라고 밝혔다.

 

#장면2. 612일 오전 9시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 김정은 위원장과 처음으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좋은 대화가 있을 것이다. 북한과 매우 훌륭한 관계를 맺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후에 발표된 공동성명에는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북미관계수립이 조선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면서, 호상 신뢰구축이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추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명시했다.

 

한반도에서 믿음의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한반도 불안정성의 근본 원인은 불신에서 비롯됐다. 6·25전쟁을 통해 서로가 상대방을 향해 총부리를 겨눴던 남북한과 미국의 사이에서 신뢰가 만들어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현재 한반도에서 진행 중인 정세 변화는 신뢰와 믿음을 쌓아가는 작업으로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우선 지난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은 6·25 전쟁에서 서로가 총을 겨눴던 적대적 관계의 당사자인 미국과 북한의 최고지도자의 만남이어서 눈길을 끈다. 더군다나 작년 북미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드라마틱하다. 작년 11월까지 북한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이어가며 미국령인 괌에 대한 직접적인 포위 사격을 하겠다고 공갈을 했고, 그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를 거론하면서 강력 대응 의지를 밝혀 북미 대립이 절정에 달했던 것을 고려하면 말 그대로 급반전이다.

 

이번 북미정상회담은 적대관계에 있는 양국의 최고지도자가 만나 상대방의 생각과 의중을 직접 들음으로써 신뢰의 기반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개최 자체에 적잖은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공동성명을 통해 앞으로 양국관계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 만들기의 이정표를 세운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명에는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등 북한과 미국의 대결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무엇을 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명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대북 체제안전보장의 하나로 "조만간 실제로 종전선언이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심지어 미군 전략 자산의 한반도 전개에 따른 과도한 비용 문제를 거론하며 한미연합군사 훈련의 중단 가능성까지 밝히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북한의 안보 우려 해소와 이를 위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노력이 당장 시작될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정상회담 후 한 방송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정말로 (북한과) 매우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 어떤 대통령도 이걸 하지 못했다. 나는 가서 그(김 위원장)에게 신뢰를 줬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정은이 우리에게 많은 걸 줬다""7개월간 미사일 실험과 발사가 없었고, 8개월 반 동안 핵실험도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에게 위대한 영웅들의 유해도 돌려줬다. 매우 많은 사람들, 아버지, 어머니, 딸과 아들들이 나에게 (유해송환을) 간청했었다. 아무도 그게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사이에 신뢰가 쌓이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앞서 지난 427일 오전 930분 군사분계선(MDL) 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악수는 찰나였지만 그 맞잡은 두 정상의 손은 한반도에 겹겹이 쌓인 분단과 대결을 밀어내고 새로운 시작의 발걸음을 뗐다. 이날 판문점에서 이뤄진 모든 순간은 분단 이후 최초로 기록됐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MDL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왔다는 사실 자체도, 국군 의장대 사열도 처음이었다.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관리할 남북한의 통일·외교업무 수장 뿐 아니라 국방장관과 야전군 사령관까지 총출동해 남북 양 정상을 수행함으로써 평화 구축 의지를 뒷받침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이날 서로 오간 군사분계선은 무의미해졌고 판문점에는 대결 대신 대화가 자리 잡았다.

 

두 정상은 오전 1015분부터 각각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김여정 당 제1부부장과 김영철 당 통일전선부장만 배석시킨 채 100분간의 회담을 한데 이어 오후에는 친교를 위해 도보다리를 산책하면서 배석자 없는 사실상의 '단독 회담'30분간 가졌다. 허심탄회하고 솔직하게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눈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날 오후 3개 장 13개 조항으로 이뤄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합의했다.

 

여기엔 남북관계와 군사적 충돌방지, 한반도 평화체제구축과 비핵화 등 불안정한 평화를 종식하고 항구적 평화를 싹 틔우기 위한 내용이 담겼다. 선언에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남과 북은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앞으로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하였다"고 명시된 것이 골자였다. 남북회담에서 비핵화를 위한 노력에 합의한 것은 19921월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이후 26년 만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당국회담 개최,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방안, 8·15 이산가족 상봉, 민간 교류 활성화 등을 담았다.

 

사실 남북 간에 유의미한 내용을 담은 합의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7·4남북공동성명, 기본합의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6·15공동선언, 10·4선언 등 다양한 합의가 있었지만 이행하지 않으면서 남북관계는 늘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따라서 합의를 이행해 달라진 한반도를 만드는 것은 앞으로 남북간에 남겨진 과제가 됐다.

 

전망은 긍정적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역사적인 이런 자리에서 기대하는 분도 많고 아무리 좋은 합의나 글이 나와도 발표돼도, 그게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면 오히려 이런 만남을 갖고도 좋은 결과에 기대를 품었던 분들에게 더 낙심을 주지 않겠나"라고 반문하며, 회담 합의 이행의지를 강력히 피력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면서 "서로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해 정기적 회담과 직통전화로 수시로 논의 하겠다"고 말해 앞으로 판문점 선언의 이행상황을 남북정상이 직접 관리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한반도 분단의 주요 당사국인 남한과 북한, 미국의 최고 지도자 사이에서 믿음과 신뢰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작이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갓 태어난 아기 다루듯 해야만 하는 이유다. 신뢰 만들기의 출발이기 때문에 아직도 서로는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판단이 남아 있고 이를 새로운 언어로 바꾸는데도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첫 걸음을 떼었기에 다음 발걸음을 떼면서 한걸음씩 신뢰가 쌓이면 한반도에서는 대결보다 대화와 화해를 보게 될 것이다. 앞으로의 걸음이 중요한 이유다.

 

장용훈연합뉴스 통일외교부 기자로 2011년 제42회 한국기자상 대상을 수상했다. 한반도평화포럼 사무총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06.19 23:31

[시선 | 평화의 마중물]


아이티 대지진 현장에서


송강호


2010111일 중앙아메리카의 작은 섬나라 아이티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사망자만 인구의 십 분의 일인 30만 명으로 추산되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무너진 건물더미 아래 깔려 압사당한 상황에서 마지막 생존자들을 찾아내고 시신들을 꺼내는 처참한 장면이 보도되면서 전 세계는 이 미증유의 대재난에 안타까움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3명의 개척자들1) 요원과 함께 이 재앙의 복구와 난민 구호활동을 위해 수도 포트프랭스에서 약 20~30km정도 떨어진 레오간 지역에 파견되었다.

 

주석1) 개척자들은 교회와 인류의 화해와 일치를 추구하는 공동체로 평화(Shalom)를 실현하는 것을 미션(Mission)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전쟁, 재난, 기아 등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는 현장에 나가 평화를 위해 활동합니다.

 

아이티의 지진 [사진제공=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

 

대재난이 벌어지면 순수하게 인도주의적인 동기에서 이들을 도우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사건 사고에 대한 의미를 해석하려 들고 그 해석에 따라 자신의 활동에 동력을 불어넣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 중에는 기독교 선교단체들이 있다. 이들은 2004년 말 아체에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도 그러했고 2006년 파키스탄에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도 그러했다. 이들은 이 모든 지진이나 해일들이 강고한 이슬람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고 주장했다. 아랍 이슬람의 고통에 대한 보수 기독교 지도자들의 아집과 편견은 지나칠 정도여서 2001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걸프 전쟁까지도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하고 아랍 이슬람권에 대한 선교의 문이 열리게 된 축하할 만한 사건이라고 설교하였다. 그리고 아이티 대지진 때도 자신들의 입장에서 그 의미를 부여했다. 이 해석은 더 악의적이고 냉혹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자 팻 로버트슨 목사는 아이티의 대재앙이 그들이 악마를 숭배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린 심판이라고 주장하였다. 나는 아이티에 가서야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이해할 수 있었고 또 그의 말이 얼마나 현실을 왜곡하고 고통에 빠진 아이티 국민들에게 더 깊은 상처를 주는 지를 알 수 있었다.

 

부두교: 악마를 숭배하는 사람들


나는 아이티에서 기독교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았다. 부두교는 아프리카의 토속 종교다. 이 종교가 기독교를 만나면서 기독교와 합성된 기괴한 짬뽕종교가 되었다. 아이티에서 시골 마을에 가면 가장 크고 잎이 무성한 나무 그늘 아래에 서있는 검은 십자가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십자가는 염소의 해골이나 녹슨 체인 같은 것들로 장식되어 있어 음산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런 십자가 근처에는 예배당 같은 건물이 있어서 이곳이 가톨릭 성당이나 개신교 예배당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건물 입구에는 한 손에는 예수를 안고 다른 손에는 미국의 달러 뭉치들이 가득한 돈자루를 들고 있는 여인상이 그려져 있다. 부두교판 성모 마리아다. 세속적인 욕망의 신이 너무 노골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충격적이다. 예배처소 안 중앙은 둥근 기둥이 차지하고 있고 그 기둥을 감싸고 있는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이 기둥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상징하고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또 다른 벽에는 피 묻은 칼을 들고 있는 미카엘 천사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후미진 제단의 담배들과 많은 바늘들이 꼽혀있는 인형의 모습으로 보아 증오와 복수를 간청하는 기도를 드리는 장소임을 짐작하게 한다. 부두교는 악마를 숭상한다. 이들은 증오와 복수를 성취시켜주는 신을 믿는다. 적어도 부두교도들에게는 증오가 사랑보다 진하고 저주와 복수가 축복보다 더 강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이들을 이런 악마 숭배로 몰아간 자들은 누구일까? 바로 그리스도인들이었다. 빛과 생명을 표상으로 내세우지만 서구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은 끝없는 탐욕과 지배욕으로 아이티 원주민들을 멸종시켰고 그 빈자리에 부릴 노예가 필요해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쇠사슬로 묶어 이 멀고도 낯선 아메리카의 한 섬에 가두어놓고 강제 노역을 시켰다. 이 악랄하고 잔인한 빛의 천사들을 자기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서 아이티의 흑인 노예 투생 루베르튀르는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 악마의 힘으로 독립전쟁을 벌였고 1804년 아이티는 역사상 최초로 노예들의 반란에 의해 독립과 해방을 쟁취한 나라가 되었다. 이를 두고 미국의 보수적인 기독교 지도자들은 험담과 저주를 늘어놓는 것이다. 나는 이 소위 악마 숭배자들과 함께 살면서 이들도 다른 보통 사람들처럼 인정 많고 정의를 위해 불의에 맞서 싸울 줄 알며, 자연을 사랑하고 남을 도울 줄 아는 착한 사람들임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기독교의 대표로 그 땅을 지배했었던 불란서의 제국주의자들이야 말로 탐욕과 살인과 착취를 일삼던 악마의 화신들이었다.

 

아이들의 도시(Cite Timon)


매우 조심스러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아이티 난민 구호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주민들의 마음속에 강고하게 자리 잡은 노예근성이었다. 개척자들은 주민들이 함께하지 않으면 우리도 안 한다는 입장이다. 자기 집을 복구하려는 데 주인이 두 손 놓고 바라만 볼 리가 있겠냐마는 실제로 그런 일이 재난 피해지역에서는 종종 발생한다. 심지어 국제구호단체가 지어준 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부셔버리는 경우까지도 있다. 아이티에서 가장 힘든 일은 마을 주민들이 자기 땅을 터무니없이 비싸게 파는 것이었다. 우리는 동족의 재난을 폭리 취득의 기회로 삼는 사람들과 싸우면서 가진 것이라고는 낡은 천막 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해야만 했다.

 

우리는 개척자들의 구호활동 매뉴얼에 따라 난민들의 천막을 두 개 얻어 그 안에서 살아가면서 난민들의 필요를 파악하는 일부터 했다. 처음에 한 일은 화장실을 짓는 일이었다. 난민촌 주민들이 모여 함께 지었다. 너무 절실했던 탓이다. 마을회관을 지어 난민촌 주민들의 소통 공간을 만들려고 했으나 땅을 구할 수 없었다. 우리는 주민들이 땅을 내놓지 않으면 마을 주민회관을 지을 수 없다고 했다, 자기 집도 못 짓는 데 무슨 마을회관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 난민촌 주민들의 결집이 각 개인이나 가족의 안식처보다 더 중요해 보였다. 왜냐하면 이 난민촌 모두를 날려버릴 한 외국 합작회사의 난민촌 토지 점유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기업의 난민촌 주민들의 토지 강탈이나 쓰레기 처리업체의 난민촌 쓰레기 무단 방류 등 별별 갈등과 충돌 현장에서 가진 것 없는 난민들과 함께 힘 있는 가진 자들과 싸워야했다. 난민들을 쫓아내기 위해서 덤프트럭에 모래를 퍼와 무작정 난민천막에 부어 모래더미에 파묻히기도 했고 쓰레기차의 운전자를 가로 막고 서다 수박만한 주먹으로 얼굴을 강타당해 서너 발 치 뒤로 나가떨어지기도 했다. 그날 밤 난민들이 모두 몰려와 이 쓰레기차를 포위한 채 다시 쓰레기를 트럭에 담아 돌려보낸 것은 내게 감동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 나에게 난민 구호는 그들이 겪는 수치와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었다.

 

모래를 붓는 덤프트럭 [사진제공=개척자들]

 

개척자들이 그나마 무엇인가 물질적으로 난민들을 도운 것이 있다면 영양실조에 빠진 어린 아이들에게 기름진 밥과 영양가 있는 고기를 제공한 것일 거다. 각 가정에 돈이나 음식을 나누어 주는 것보다는 직접 요리를 해서 어린 아이들에게 먹여주는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되었으나 그럴 수 있는 인력이나 장비를 동원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런데 난민촌에 살면서 보니 각 가정에 어린이들이 많아서 좀 더 자란 청소년들이 자기보다 더 어린 아이들을 잘 돌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즈음에 국제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이 어린이 보호를 위해 플라스틱으로 된 간이 울타리와 천막 두 개를 설치했다가 단체는 활동을 마치고 떠났고 시설은 방치되어 있었다. 그러자 난민들은 너도 나도 울타리를 잘라서 자기 집 염소 우리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어린 아이들을 불러서 마을 사람들이 절취해간 울타리들을 다시 거둬 오도록 했고 다시금 원래의 보호마당을 복구했다. 그리고 이 보호마당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어린이들의 도시(Cite Timon)라는 놀이를 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도시의 식품 시장 [사진제공=개척자들]

 

아이들의 도시의 어린이 엄마들 [사진제공=개척자들]

 

아이들의 도시의 어린이 경찰 [사진제공=개척자들]

 

어린이들의 도시는 놀이를 통해서 영양이 부족한 어린이들에게 영양을 보충하는 것과 민주주의의 훈련을 하는 종합적인 활동이었다. 매주 금요일에 이 보호마당에는 어린 아이들만 들어올 수 있다. 어린 아이들은 어린이들의 도시의 시장과 경찰을 스스로 뽑았고 15살 이상의 여자 어린이들은 마마(엄마)가 되어 10명 이상의 더 어린 아이들을 가족으로 구성했다. 이 어린 마마들은 자기 집에서 취사를 위한 화로를 가져와야 하고 모든 어린이들은 자기 그릇과 숟가락과 포크를 가져와야 했다. 우리는 보호마당 안에 식자재를 파는 시장을 만들고 마마들에게 마을 화폐를 나누어 주어 그 화폐로 자기들의 고기와 구미에 맞는 음식 재료를 구입하게 하였다. 마을 화폐는 표식을 해놓은 코카콜라 병뚜껑이었다. 나중에는 이상한 병뚜껑이 나돌았다. 아이들이 만든 위조화폐였다. 린이 경찰들이 범인들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우스웠다. 아무튼 그런 와중에서도 여자 아이들은 마치 자기들이 진짜 엄마라도 되는 것처럼 즐겁게 요리를 했고 어린 아이들은 그 공간에서 마음껏 뛰어 놀았다. 식사시간에는 어린 아이들의 가족들이 모두 둘러 앉아 평소에 먹지 못했던 영양과 맛이 풍부한 식사를 했다. 이 어린 엄마들은 자기들끼리 더 단단한 우정과 결속을 하게 되었고 자기들끼리 동아리처럼 활동도 했다.

 

어린이들의 도시는 재난 현장에서 난민들이 스스로 어떻게 창조적으로 자기를 도울 수 있는 지를 우리 자신이 배울 수 있었던 의미심장한 경험이었다. 도움은 마중물처럼 그들 안에 있는 힘을 길어 올리는 정도여야 한다. 마중물은 너무 적어도 안되고 너무 많을 필요도 없다. 난민들이 계속 구호물품에 의존하도록 길들여진다면 그런 구호는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인 셈이다. 2005년 쓰나미가 난 아체에서 주민들이 해 준 이야기가 귓가에 쟁쟁하다. “처음에는 바다에서 쓰나미가 몰려와 사람이 죽고 집들이 사라졌습니다. 그 다음에는 국제구호단체들이 몰려와 마을 공동체를 파괴시켰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두 번째로 겪은 더 무서운 쓰나미였습니다.”

 

송강호장로회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 철학으로 석사 학위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실천신학으로 박사 학위(Th. D.)를 받았다. 사단법인 개척자들의 대표, 분쟁지역 파견 선교사 담당 간사 등의 활동을 하였으며, 현재 제주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반대 활동 중이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06.19 23:19

[시선 | 평화를 그리는 화가들]


신념을 위한 암살, 그리고 전쟁의 시작


김소울


1900년대에 접어들면서 유럽의 식민지 욕심은 점점 높아져 갔다. 산업은 날로 발달하였고, 그들은 물건을 만들 원료, 그리고 물건을 팔 시장이 필요했다. 그들이 선택한 곳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였다. 원료도 풍부하고 물건을 팔 시장도 넓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두개의 대륙은 제국주의라는 이름하에 유럽의 군대에 지배당하게 되었고, 한순간에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가장 많은 식민지를 소유하고 있었고, 뒤늦게 식민지 확보에 참여하려는 독일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유럽 내에서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던 1914년 어느 날, 세계를 뒤흔든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사라예보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사라예보 사건은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세르비아의 한 청년에 의해 암살당했던 사건이다. 그리고 이 하나의 암살사건은 1,000만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제 1차 세계대전의 시초가 된다.


아킬레벨트람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부의 암살』 (1914)

 

주요인물에 대한 암살사건은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정치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주요한 암살사건은 세계사의 흐름을 뒤바꾸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몰래 죽인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암살은 의외로 어두운 밤에 발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암살 대상이 움직이고 접근하기 쉬운 백주대낮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아킬레벨트람의 그림 속에 그려진 암살 사건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한 낮에 사건이 발생했음을 한 눈에 보여준다. 그림 속의 청년은 황태자 부부의 바로 앞에서 총을 겨누고 있다. 이 청년뿐만 아니라 많은 암살자들은 자신이 암살 대상을 살해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리지 않을 뿐,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몰래 사람을 죽이는 것은 모두 암살에 포함될까? 사적인 감정에 휩싸여 바람난 남자친구를 죽이거나, 거액의 돈을 노리고 누군가를 청부살해 하는 것은 암살이 아니다. 영향력이 있는 인물을 대상으로 감행되는 기습적인 살인만이 암살의 범주에 포함된다. 그렇기때문에 암살의 대상은 주로 최고 권력자이고 동기는 주로 종교적 이유나 정치적 이유 즉, 신념을 포함한다.

 

세르비아 청년 역시 암살을 저지른 배경에는 신념이 깔려있었다. 세르비아는 발칸반도에 위치한 1878년에 독립했던 국가이다. 발칸반도는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곳으로 1300년대부터 오스만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세르비아는 독립 이후 주변의 지역을 합치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는데, 1908년 어느 날,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 주변 지역인 헤르체고비나와 보스니아를 차지해 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세르비아 사람들은 분노한다.

 

1914년 사라예보 사건을 이유로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한다. 그리고 전쟁이 시작된 지 1주일 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탈리아를 제외한 유럽의 모든 열강이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이탈리아, 독일과 함께 삼국동맹을 맺고 있었는데, 이 동맹은 어느 한 나라가 다른 나라로부터 위협받을 때 군사를 보내 서로 돕자는 내용이었다. 과거 프랑스혁명 이후의 빈(Wien)체제, 그리고 지금의 한미동맹이 그와 비슷할 것이다. 그리고 이 삼국동맹에 맞서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삼국협상이다. ‘삼국협상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동맹관계로, 이들은 독일이 힘을 키우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오스트리아의 선전포고와 함께 제 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자 독일은 프랑스와 러시아를 밟고 세계 최대 강국이 되려는 야심으로 프랑스를 공격하였지만, 예상과는 달리 프랑스와 러시아군의 저항은 강력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았고, 전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전쟁에서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었던 오스트리아의 항복과 함께 1918년 제 1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리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의 일이다.

 

폴 내시, 메닌거리(1919)

 

폴 내시는 군인의 꿈을 키우던 영국의 화가였다. 전쟁 발발 직후, 그는 망설임 없이 예술가부대에 입대하게 되었고, 수많은 그림으로 전쟁의 기록을 남기게 된다. <메닌거리>19184, 영국전쟁기념위원회로부터 전쟁의 기록에 대한 전시를 의뢰받아 그린 가로 182cm의 거대한 작품이다. 이 그림은 그가 참전했다가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이프로 전투의 장면으로, 폐허가 된 거리의 단상을 뿌연 연기와 함께 묘사하고 있다.

 

<메닌거리>에서 묘사된 회색빛 연기로 뒤덮인 도시의 모습, 그리고 잎 하나 남지 않은 그루터기는 당시 전쟁의 참혹함을 여과 없이 묘사하고 있다.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사망자는 약 1,000만 명, 그리고 부상자는 약 2,000만 명으로 추정된다. 전쟁은 목적을 잃고, 그 누구도 원하는 바를 달성하지 못하였다. 다시는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할 역사의 한 장면. 이 많은 희생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김소울 |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의 심리상담학과 특임교수로 재직중이며, <아이마음을 보는 아이그림>을 비롯한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였다. 현재 미술 작가이자 플로리다 마음연구소 대표로서, 치유적 활동과 미술창작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06.19 23:09

[시선 | 브루더호프에서 날아온 평화 편지]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


원마루


안녕하세요? 어깨동무 친구 여러분!

여름의 길목에서 인사드립니다. 어쩌면 벌써 봄을 건너뛰고 여름으로 향하고 계신지도 모르겠네요.

 

먼저 드리는 소식은 박새가 알을 깐 소식입니다. 지난 3월 중순 막내 창호의 여섯 살 생일을 맞아 새가 알을 낳을 수 있는 상자를 함께 만들어서 숲속의 나무 위에 달았습니다. 나무상자에 지름 2.5센티미터 정도의 구멍을 뚫어 나무에 달면 푸른 박새가 둥지를 틀수도 있다고 해서 한 번 만들어 봤습니다. 아이와 함께 작은 나무판자들을 나사못으로 조여서 숲으로 들고 갔습니다. 그런데 막내가 자기가 쉽게 볼 수 있는 나지막한 곳을 고집하는 거예요. 새 보호 단체의 안내문에는 최소한 2미터 높은 곳에 달아야 박새가 안심하고 둥지를 튼다고 했지만, 아이 생각을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도 안 지나서 막내가 아빠, 박새가 조그만 알을 일곱 개나 낳았어요!”라고 했을 때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 달 반이 지나니까 아빠, 아기 새들이 엄마 부르는 소리가 나요.”라고 하는 겁니다. 어찌나 신이 나던지요. 작은 생명이 엄마 새의 정성스런 돌봄으로 태어나서 자라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도 즐거운데, 그걸 가까이 보게 된다니까 왠지 모를 경외감을 느끼게 됐습니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우리네 삶으로 이어졌습니다. 주변에 노는 아이들을 다시 보게 됐고, 그 아이들에게 평화로운 세상을 물려주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오랜 세월 갈등과 반목, 전쟁의 위협 속에 살고 있는 한반도의 아이들이 평화로운 미래를 살 수 있는 대화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숲속 나무 위에 단 새 상자

 

새 상자 안에 어린 푸른 박새들이 불청객의 방문에 몸을 웅크리고 있다.

 

물론 평화를 이루는 길은 순탄하지만은 않지요. 야생의 박새에게는 알을 호시탐탐 노리는 뱀이 늘 무서운 존재이고, 때로는 저같이 자연의 순리는 모른 채 호기심만 많은 아빠가 나무를 타고 올라가 박새 새끼를 관찰하려고 하는 위험도 존재합니다! 모처럼 시작된 북한과 미국의 대화도 숱한 고비를 만나고 있지요. 그런 뉴스를 BBC 아침 뉴스 머리기사로 접하는 저희 같은 사람은 말 그대로 애간장이 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렇게 소극적으로 상황을 대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겁만 내고 있을 것이 아니라 작은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집어든 것이 이억배 화백의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이라는 그림책입니다. 이 책은 저희 아이들이 하도 좋아해서 모서리가 닳았고, 이미 한 번의 수선을 거친 책입니다. ··일 세 나라가 공동으로 기획한 평화 그림책 시리즈의 하나인 이 책은 북한에 고향을 둔 어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비무장지대에는 물범과 고라니, 수달과 연어, 산양 등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지만, 할아버지는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먼 고향땅을 바라봐야만 합니다. 아내와 저는 이 책을 영어로 번역해서 마을 식구들에게 읽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일요일 아침 동네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모이는 자리에서 책을 함께 읽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책 표지

 

5월초 일요일 아침, 마을 식구들이 식당에 모두 모였습니다. 커튼을 치고 앞 무대에 슬라이드를 보여줄 준비를 해 놓았기 때문에 모두 뭘 보게 될까 궁금해 하는 모양이었습니다. 모임이 시작되고 비무장지대에 관한 간단한 설명을 한 후에 바로 그림책을 봤습니다. 아내가 영어로 이야기를 읽어주었고요. 아이들은 처음 보는 비무장지대의 모습이 신기한 듯 바라보다가 익살스러운 물범 가족, 엄마 오리를 따라 줄지어 헤엄치는 오리 새끼들, 물속에서 재주를 넘는 수달을 보면서는 신이 났습니다. 아마 어떤 아이들은 행군하는 군인 아저씨들을 보며 멋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빨간 세모 표지판에 쓰여 있는 지뢰(mine) 표시를 보고는 조금 겁이 났겠지요.

 

이야기는 계속됐습니다. 비무장지대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왔고, 그곳에 사는 군인들의 일상은 계속되었으며, 전망대에도 관광객이 계속 찾아왔지만 이제 할아버지는 더는 전망대에 오르고 싶지 않습니다. 그 대신 굳게 닫힌 철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비무장지대에 들어가 양지바른 풀밭에 누워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이 장면을 읽어주면서 책 양쪽 면의 종이로 접힌 통일문을 열어 보이는 순간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그 앞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비무장지대의 자연에 탄성을 질렀고, 할아버지가 북녘의 형제를 만나 얼싸안는 장면에는 모두 흐뭇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모임이 끝나자 많은 분이 찾아와 고맙다고, 한국의 평화를 위해 기도해준다고 말씀해 주셔서 힘이 났습니다.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일은 단번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할 일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곁에 있는 사람과 마음과 힘을 모으면 어려울 때가 와도 이기기 마련이고, 끝내는 진정한 마음이 승리하는 때를 보게 되겠지요. 사실 저는 며칠 전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회담을 취소하는 발언을 했을 때 많이 걱정했습니다. 모처럼 얻은 대화의 기회가 맥없이 끝나는 줄 알았거든요. 그때 아는 분 소개로 듣게 된 어울림 아리랑이라는 노래를 듣고 힘을 얻었습니다. 전에 보내 드린 편지에 소개한 밝은 누리라는, 생명 평화를 삶으로 살아내려는 분들이 순례를 다니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진도아리랑에 노랫말을 붙인 이 노래를 함께 부르며 모두 용기를 내시면 좋겠습니다. 이분들이 지은 노랫말을 따라 부를 수도 있고, 나름대로 노랫말을 부쳐서 흥겹게 부르며 신나는 하루, 평화로운 여름이 되시길 바래요.

 

<어울림 아리랑>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헤에헤

아리랑 음음음 생명평화로구나

 

(후렴, 일부)

남북 하늘에 원통을 풀고 우리네 가슴속에 해원을 담자

안산 제주에 눈물을 닦고 동북아 흩어진 겨레를 품자

한라 백두를 넘어 가보자 차별없는 사랑으로 어질게 살자

이땅 원통함 모두 풀어지고 모든 아픔상처가 사라진다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추고 온생명 곱게곱게 어울리는구나

 

 노래듣기


2018530

너도밤나무 숲에서, 마루와 아일린 드림

 


원마루아내와 함게 세 명의 개구쟁이 아이들(6, 2, 유치원)을 기르며 영국 도버 근처의 너도 밤나무(Beech Grove) 브루더호프에서 살고 있다. 어린이가구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왜 용서해야 하는가>, <희망이 보이는 자리> 등을 번역했다. Bruderhof.com/ko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06.19 22:59

[시선 |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결국은 살아가야 한다는 것


심은보


어느 월요일 아침이었다. 한 녀석이 자리를 매주 월요일마다 바꾸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휙 던졌다. 그 동안 우리 반은 달마다 자리를 바꾸어 앉고 있었다. 몇몇 친구들의 맞장구가 있었고, 결국 그 제안은 월요일 아침이면 하는 우리반 회의에 안건으로 채택되었다. 자리를 바꾸는 횟수를 늘리겠다는 원칙이 강했던 것일까. 왜 그러해야 하는 것인지, 그렇게 했을 때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이 나쁜지에 대한 검토도 없이 두세 가지 방법을 발표하더니 바로 표결에 돌입하는 녀석들. 잘 되었다 싶었다. 이참에 다수결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결정 사항에 따라 월요일인 그 날 바로 자리를 바꾸었다. 자리를 바꾸는 방법은 내 마음대로... 여기저기 투덜투덜 거리는 모습들이 보인다. 한참을 지켜보다 아이들에게 회의란 것이 무엇이어야 할까 하는 이야기부터 꺼내놓았다.

 

회의를 하라고 했더니 각각에 대한 검토 없이 다수결로 무엇인가를 순식간에 결정해버리고 말았던 우리들의 모습을 먼저 짚고, 결국 합의를 해놓은 게 언제 자리를 바꿀 것인가를 빼고 아무 것도 없지 않은가 하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회의가 올바로 진행되려면 각각의 방법에 대한 장점과 단점을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충분한 토론이 있은 후에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하는 이야기로 흘러가는 것이 적절하지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 또 해당 시기마다 자리를 바꾸었을 때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을 어떻게 보완하며 자리를 정할 것인가 하는 방법까지도 의논했어야 맞지 않겠는가 하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덧붙여 우리가 회의를 한다는 것은 다수결로 어떤 것을 결정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선 안 된다는 이야기와 함께 삶 속에서 회의가 가지는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결국 아이들은 회의를 다시 진행하겠노라고 했고, 어설프고 불편했지만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결론은 주마다 자리를 바꾸는 것으로 하고 자리를 정하는 방법도 결정했다. 더 나아가 자리 바꾸는 주기가 짧아지면 예상되는 문제에 대한 보완책도 정해 놓고서 마무리를 지었다.

 

아이들의 회의는 차츰 습관적인 다수결을 넘어서는 무엇인가로 변해가고 있었다. 요사이 진행되고 있는 목공수업의 과정에서 아이들의 변화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우리 학교 5,6학년 아이들은 해마다 목공수업을 한다. 무엇인가 조그만 물건을 만들어 가곤 하는 목공체험이 아니라 함께 사용할 무엇인가를 만들거나 꾸미는 그야말로 목공수업을 진행한다. 작년 5,6학년은 목공수업을 통해 소리마루라고 하는 놀이터를 하나 만들었고, 현재는 전체 학생들이 즐겁게 뛰어 노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올해는 중앙현관을 꾸며보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두 주간은 아이들과 무엇을 만들 것인가 하는 수업을 진행했다. 각자 모눈종이에 디자인을 해보고 친구들 앞에서 발표를 했다. 처음에는 책상과 책장, 의자에 갇혀 있던 아이들의 생각이 두 주 째는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큐브 형태의 방을 만들자는 이야기부터 책장을 계단 삼아 올라갈 수 있는 다람쥐통 형태의 독서방, 전교생의 소원을 매달 수 있는 소원나무, 신발걸이 등 다양한 생각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이야기들을 칠판에 적어 놓고 먼저 모둠별로 무엇을 만들면 좋을 것인가 하는 것을 두 가지 정도씩 정하도록 했다. 그리고 나선 전체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결정하는 시간. 모둠별로 만들고자 하는 것을 꺼내놓고 토론을 이어갔다. 모둠 안에서 차근차근 의견들이 정리되어 가기 시작했고, 모둠별 의견을 듣고 토론을 통해 하나로 모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 다른 의견들 속에서도 아이들은 다른 친구들의 의견을 듣고 자신들의 의견을 또 꺼내 놓았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합리적이다 생각하면 수긍을 하기도 했고, 때론 다른 생각들에 맞서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설득하고자 애 쓰는 모습들이 역력했다. 이 과정에서 다수결로 결정하자는 이야기를 할만도 한데 어느 누구도 다수결을 꺼내들지 않고 모든 친구들이 합의할 때까지 회의를 이어가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뒤에서 지켜보는 내 입장에서도 신기한 모습이었지만 목공 선생님께서 놀라워하셨던 모습이기도 하다.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고 하셨다.


 

긴 시간의 아이디어 회의 끝에 전교생의 소원을 매단 소원 나무를 만들고, 그 아래에는 어두운 중앙 현관을 간접 조명으로 밝혀줄 수 있는 구멍이 뚫려있는 치즈형태의 의자(안에는 오렌지색 조명을 포함)를 만들자는 의견으로 결정되었다.

 

지난주까지의 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어제부턴 공방에 가서 목공 작업을 진행하였다. 작업은 두 모둠으로 나누어 진행하였다. 한 모둠은 치즈등상자를 만들고, 또 한 모둠은 소원나무를 만들기 시작했다. 한 모둠은 10명의 친구들이 작업을 하고, 또 한 모둠은 11명의 친구들이 작업을 했다. 함께 하기에는 모둠마다 속한 사람의 수가 많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한명도 소외됨 없이, 커다란 갈등도 없이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으며 모든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참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치즈등상자를 만드는 모둠 아이들 모습 속에서는 치수를 재어가며 못 박을 자리를 정하는 과정부터 구멍을 뚫고 나사를 박아 조립하는 과정까지 서로가 서로를 도와가며 모든 친구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가는 과정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소원나무를 만드는 모둠 아이들은 이후 활용까지 고민하며 나무줄기와 나뭇가지의 배치를 놓고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는 모습과 함께 나무의 자리를 표시하기 위한 방법을 의논하는 모습, 또 도와가며 구멍을 뚫고 마무리까지 해내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이후 녀석들이 만든 것들은 학교에 들어서면 만나게 될 중앙현관의 한 쪽 벽면을 수놓게 될 것이다. 어쩌면 조금은 거칠고 투박할지 모르지만 학교 공간에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가 스며들게 되는 것이다.




 

학교 민주주의도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때론 조금은 투박하고 거칠지라도 아이들의 자리를 조금 더 넓혀 주는 것, 조금은 더디 가고,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가는 것... 그런 것 말이다.

 

학교에서 민주주의 이야기를 하다보면 거창한 프로그램 이야기나 교장, 교감을 비롯한 관리자에 중심을 두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부분도 중요하겠지만 나는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구체적인 우리들의 모습이 더욱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배운다는 건 결국은 살아가는 일이니 민주주의를 아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민주적으로 살아가는 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민주주의를 겪어 본 아이들이 또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어 갈 테니 말이다.

 

어느 날 오후 지금은 중3에 올라가서 생활하고 있는 OO이의 아버지로부터 카톡이 하나 도착했다. “아침에 OO이와 학교에 가는데, OO이가 죽백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더군요. 왜냐니까 토론으로 수업하는 게 좋은 거라는 것을 지금은 알겠다고 하더군요. 좋은 오후 되세요.”


심은보 8년차 혁신학교 죽백초등학교에서 행복한 배움터를 일궈가며 일곱 해 째를 보내고 있습니다. 2018년에는 심과 함께’ 6학년 1반 아이들과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혁신교육을 생각하다2’, ‘평화시대를 여는 통일시민교과서를 쓰는 일에 함께 했습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04.19 10:39

[이슈]


어떻게 해야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가 될까


은종복



지금 한반도는 평화로운가 당장 총싸움을 하지 않으니 평화롭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누군가 말하기를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했다. 한반도 남과 북 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불안으로 떨고 있다


왜 그럴까. 북녘은 핵무기를 갖고 있고 남녘은 미국산 첨단 무기를 끝없이 사오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무기 가 있어서 평화를 지켜준다고 말을 한다. 만약 이라크에 핵무기가 있었으면 미국이 그 나라를 쳐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을 한다. 일면은 맞다. 그 생각은 미국 정책입안자들이 미국 백성을 사랑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말 이다. 북녘 정권이 핵무기로 미국 본토를 폭격해서 미국 사람들이 많이 죽는 것을 미국 정책입안자들이 두려워할 까. 그럴 수도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 본토에 북녘 핵무기가 떨어지면 한반도 북녘은 쑥대밭이 된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살 수 없는 곳이 된다. 북녘 핵무기가 잠깐의 평화를 보장해 줄 진 몰라도 영원한 평화를 가져올 순 없다. 마찬가지로 남녘을 미국산 첨단무 기로 도배를 하면 평화가 보장될까. 절대 아니다. 한반도 가까이 있는 일본, 중국, 러시아가 가만있을까. 그 나라들은 그것을 빌미로 더욱 경쟁적으로 군사력을 키운다. 이렇게 한반도 남과 북에서 군사력을 키워서 힘들어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가난한 사람들이다. 불안을 안 고 사는 대다수 사람들이다.

 

일본에 있는 평화활동가 더글러스 러미스는 이런 말을 했다. “나라가 있으면 군대가 있어야 하고 군대가 있으면 다른 나라에 분쟁이 일어나면 총을 들고 쏘게 되고 결국을 평화를 깨게 된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을 해보자. 평화를 지키려면 다른 나라에 분쟁이 있을 때 총 대신 먹을거리와 의약품을 들고 가고 그러면 군대가 필요 없고 군대가 없어도 되면 나라와 민족도 필요 없다.”

 

사실 러미스 생각을 현실에서 이루기는 힘들다. 하지만 상상력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남과 북이 끝없이 군대 힘 을 키우는 속에서는 절대 평화를 이룰 순 없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북녘이 먼저 미국 본토를 쳐들어가진 않는다. 그런 일이 생기면 북녘은 돌이킬 수 없는 전쟁의 참화에 휩싸인다. 결국 미국이 북녘을 공격할 수 있다. 그날은 전쟁을 일으켜서 더욱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생각할 때다. 지금처럼 남녘에서 미국 무기를 끝없이 사오고 미국 부자들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면 미국이 북 녘까지 자신들 물건을 팔 수 있는 곳이 되게 하려고 전 쟁을 일으킨다. 그런데 그렇지 않을 때는 어떨까. 남녘이 미국산 무기를 안 사오고 미국 물건이 덜 팔리고 북녘은 여전히 미국 말을 듣지 않을 때. 돈에 눈 먼 미국 사람들 이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을 때 전쟁을 일으킨다.


이때 전쟁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뭘까. 나는 한반도 남녘에 있는 사람들이 미국이 일으킨 전쟁에 총을 들고 나 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한반도 사람들이 전 쟁 반대를 외치며 미국 편을 들지 않는다면 미국은 전쟁 에서 이길 수 없을 뿐 더러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꿈이다. 전쟁이 나면 한반도에 사는 젊은 사람들은 군대에 동원 된다. 평소에 평화를 외치던 사람들 도 전쟁에 휘말리고 싸움터에 나가는 것을 막지 못한다. 1950년 한국전쟁 때도 남과 북에 있는 젊은 사람들은 왜 전쟁을 해야 하는지 모르면서 서로 싸우다가 죽었다. 하 루는 인민군이 되고 다음 날은 국군이 되기도 했다.

 

남북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 전쟁을 통해서 하나가 되어 서는 안 된다. 그것은 될 수도 없고 되고 나서도 아픔이 너무 크다.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 되는 길은 단 하나다. 남북에 사는 사람들 가슴 속에 평화 씨앗이 자라게 하는 것이다. 북녘은 핵무기를 가지려 해서는 안 된다. 남녘은 미국산 첨단무기를 더 이상 사오면 안 되고 미군은 모 두 돌아가야 한다. 결국 우리나라가 평화롭게 하나가 되려면 다른 나라들이 쳐들어와도 맨 몸으로 맞설 수 있는 평화정신무장이 되어 있어야 한다.



군대 없는 나라 코스타리카를 보라. 물론 그 나라는 인구가 500만 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이지만 50년 넘게 군대 없이도 잘 살고 있다. 누군가가 물었다. 당신네는 다른 나라에서 쳐들어올까봐 무섭지 않냐고. 그랬더니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군대가 필요 없다. 다른 나라가 쳐들어오면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서 싸울 것이다. 총이나 대포가 없어도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다. 쳐들어온 나라 사람들 말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이것은 꿈같은 이야기다. 코스타리카에는 군대가 없기 때문에 그만큼 백성들이 풍요롭게 살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는 지금 남북이 갈라져 있고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살에 버티기 힘들다. 그래도 한 번쯤은 생각해야 한다. 군대 없는 나라.

 

어린이 글을 쓰다가 지난 2007년에 돌아가신 권정생 선생은 내가 가장 따르는 사람이다. 그 분은 이런 말을 했다. 이 땅에 애국자가 없으면 좋겠다고. 지금은 거짓 애국자가 넘쳐난다. 나라를 지키겠다는 이름으로 한반도 곳곳을 군사기지로 만들었다. 그 뒤에는 언제나 미국이 있다. 제주 강정미군기지, 평택미군기지는 얼마 전에 만들었다. 미군 기지를 만드는 일에는 이전의 보수적인 정권이나 지금의 정권이나 모두 마찬가지다.

 

평화공부를 해야 한다. 한반도가 평화롭게 하나 되는 길은 남과 북을 다스리는 통치자들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 미국이 북녘을 쳐들어가도 남녘 사람들이 미국을 도와 북녘 동포들에 총부리를 겨누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이 있다면 절대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아까도 말했지만 꿈이다. 꿈을 현실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코스타리카 백성들처럼 군대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작은 것부터 하자. 내 생각이 현실성이 없다는 것을 안다. 일제강점기에는 하루 8시간을 일하자고 주장하면 빨갱이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 지금은 당연한 것이 그때는 그랬다. 상상력이 있어야 한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기본소득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농사꾼들에게 한 달에 50만 원씩 주자. 다음으로는 일을 하고 싶은데 일자리를 못 찾는 젊은이들에게 한 달에 50만 원씩 주자. 문재인 정부에서도 고고도미사일방어망을 만들려고 군사비를 22조 넘게 늘렸다. 그 돈이면 위에 말한 기본소득을 할 수 있다. 돈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아서 못 하는 거다. 남녘 사회가 바뀌어야 북녘도 바뀌고 통일은 앞당겨진다.


마지막으로 남녘 사회가 제대로 된 민주주의 나라가 되려면 다음 세 가지가 없어져야 한다. 일등주의, 학력중심주의, 경제성장지상주의다. 많이 배우지 않은 사람도 가난하지만 서로 도우면 사는 세상을 꿈꾼다. 그날이 와야 통일이 온다.

 

2018326일 월요일

서울 명륜동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 일꾼 은종복 씀.

 



은종복서울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앞에서 25년 동안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을 꾸리고 있다. 내 꿈은 두 가지. 온 세상 아이들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는 날을 맞는 것,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 되는 날을 맞는 것이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04.19 10:38

[한반도 평화읽기]



담대한 구상과 유리그릇 :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고 있다


정창현


연속적인 정상회담에 합의

 

조만간 남쪽 예술단이 방북해 공연한다. 공연 제목은 봄이 온다이다. 제목처럼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이 지나가고 평화의 봄이 찾아오고 있다.


남과 북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의 정세를 대화·협상 국면으로 반전시켰다. 평창올림픽 개막식 참석차 방한한 김여정 특사(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는 청와대를 예방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고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다.


한 달쯤 뒤인 35일 남쪽의 대북특사단이 방북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1시간의 짧은 회담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남과 북은 4월 말 판문점 우리 측 지역인 평화의 집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했다. 북한은 비핵화와 북·미 관계 정상화를 주제로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점을 밝히고 남측을 향해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남북 정상 간의 핫라인 설치도 합의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속적인 노력과 북측의 호응으로 남북 화해와 협력, 남북정상회담으로 가는 기회의 창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대북특사단을 통해 북미정상회담도 제안했다. 대북특사단의 북한 방문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정의용 실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 위원장의 특별메시지를 전달했다. 김 위원장은 전례 없는 북미정상회담에 함께하면 두 정상이 역사적인 돌파구(historic breakthrough)를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을 전했고, 공개되지 않은 특별메시지에는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신뢰구축의 일환으로, 매우 포괄적인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리스크(위험)가 있다는 참모들의 우려를 무시하고 즉석에서 정상회담 제안을 수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믿는다고도 했다. 북한이 제시한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 중단, 비핵화 회담 의지 표명에 일단 신뢰를 보낸 것이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간 접촉뿐만 아니라 북미 간에도 상당한 물밑접촉이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제한적 대북 예방공격 검토 등 한반도 전쟁위기설이 나돌던 지난해 말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흐름이다. 신년사에서 99(북한 정권수립 70주년)의 대규모 행사를 위한 평화적 환경조성을 언급한 북한이 예상보다 전향적으로, 속전속결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임기 1년 안에 남북대화에서 성과를 내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의지, 올해 중간선거를 앞두고 외교성과가 필요한 트럼프 행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이기도 하다.

 

 

정전협정 65년 만에 종전선언나오나

 

남북, 북미정상회담 합의로 한반도 정세는 엄청난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4월과 5월 한반도에서는 한반도 운전자론에 입각한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구상’, 트럼프 행정부의 최고의 압박과 개입을 골자로 하는 대북정책, 전략국가론에 입각한 북한의 포괄적 세계전략이 부딪히는 정상외교의 장이 펼쳐진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를 출범시켜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미국, 중국, 일본과 정상회담을 통해 공조다지기에 들어갈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새롭게 외교라인을 구축하고 있다북한도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상무조(태스크포스팀)를 조직해 남북, 북미정상회담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326일 마침내 김정은 위원장이 첫 정상외교에 나서 전격적으로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와 회담했다.

 

평창올림픽 북측 고위급 대표단이 청와대를 찾아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하고 있다

출처 : 청와대(2018년 작성)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사진으로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남측의 대북 특사단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접견하고 있다

출처 : 청와대(2018년 작성)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사진으로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이번 남북, 북미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는 한반도비핵화와 평화체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구체적인 성과로는 종전선언이 거론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2차 회의에서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언급하며 진전 상황에 따라서는 남··3국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등 한반도 문제를 놓고 역사적 담판을 짓는 데 필요하다면 김정은 위원장, 트럼프 대통령과 셋이서 직접 머리를 맞대자는 얘기다. 성사가 된다면 한반도 문제의 결정적 돌파구를 마련하는 자리가 될 수 있고, 종전선언에도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담대한 구상이다.

 

이를 위해 문재인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남북정상회담에서 의견 조율 후 미국과 중국이 참여하도록 한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른바 ‘2+2회담방식이다. 남북정상회담북미정상회담··미정상회담···중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정상외교를 통해 종전선언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를 논의를 위한 6자회담과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남···중의 4자회담을 병행 추진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서울과 평양에 남북연락사무소가 개설되고, 뒤이어 평양과 워싱턴에도 북미연락사무소가 개설될 수 있다. 세부적인 사안으로 한미연합훈련의 유연성 확보, 동북아 군사적 균형자 역할로의 주한미군의 지위 변화 등이 모색되고, 남북관계의 안정적 발전을 위한 포괄적인 협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 북미정상회담은 남북관계와 북핵문제의 선순환 구도를 핵심으로 하는 문재인 대통령의의 정책시험대이자 실현과정이다. 단계별로 회담결과를 예정하고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단계별로 상황을 돌파하면서 평화만들기를 실현해 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도 언급한 것처럼 지금의 대화국면은 과거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조심스럽게, 신중하게 추진하지 않으면 쉽게 깨질 수 있는 유리그릇과도 같다. 현재로선 전초전 격인 4월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되고 5월 북미정상회담으로 순조롭게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지만 최종적인 한반도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이라는 출구로 나가기 위해서는 많은 단계와 국면을 거쳐 최대 난제인 검증과 체제보장문제가 타결되어야 한다. 정상회담에서 큰 틀의 합의가 있더라도 실무회담에서 많은 우여곡절이 예상되지만 남이나 북이나 한 번은 거쳐야 할 과정이고 장기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다.

 

본 원고는 2018327일에 작성되었습니다.

 


정창현현대사연구소 소장. 중앙일보 현대사전문기자와 <민족21> 편집주간을 역임했으며, 국가기록원과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04.19 10:37

[시선 | 평화의 마중물]



로힝야 난민촌에서 묻는다. “평화가 무엇인가?”


송강


당신은 평화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이 내게 자주 묻는 질문이다. 그 순간 여러 가지 생각들이 마음속에 맴돈다. 예수의 산상수훈, 간디의 비폭력 저항, 마틴 루터 킹의 꿈, 갈퉁의 적극적 평화 등등. 그러나 이럴 때마다 떠오르는 여러 가지 상념의 파편들 아래로 지극히 단순한 대답이 침전된다. 나에게 평화란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모든 만물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이 평화이고 자기 자리에서 쫓겨난 이들을 다시금 본래의 자기 자리로 돌려보내는 것이 평화 운동이 아닐까?

 

나는 이 평화에 대한 진실을 로힝야 족의 현실 속에서 더 실감하고 있다. 미얀마에 살고 있던 로힝야족은 1992년부터 지금까지 방글라데시로 여러 차례에 걸쳐 추방당했다. 이렇게 강제로 쫓겨난 로힝야 족의 수가 70만 명에 이르고 그 과정에서 6천 여명이 학살당하고 2만 여명의 여인들이 강간을 당하는 끔찍한 참화를 겪었다. 국경을 이루는 나프강과 인도양을 배로 건너다 배가 파선하거나 침몰하여 죽은 사람도 부지기수다. 그러나 이런 비참한 현실에 대해서 미얀마 민주주의의 아이콘이자 실제 정치에서도 실권자가 된 아웅산 수치여사나 자비를 가르치는 미얀마 불자들도 동정이나 연민을 표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군부독재의 탄압에 저항했던 미얀마의 민주 투사들조차도 로힝야족의 비참한 현실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1824년 영국이 미얀마를 침공하여 식민지로 삼을 때 당시 인도에 살고 있던 로힝야족을 데려와 앞잡이로 부렸기 때문에 미얀마 사람들에게는 로힝야족이 자신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이방인들이요 쫓아내는 것이 정당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로힝야족의 주장은 다르다. 그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이미 7~8세기에 자신들이 살고 있던 라카인 주에 이주해 와서 살고 있었고 이미 당시부터 이슬람지도자 술탄이 라카인 지역을 통치했었다고 엇갈린 주장을 하고 있다. 그 어느 주장이 사실이든 현재 로힝야족이 당하고 있는 대량학살과 강간, 강제 추방과 인종차별은 비인도적인 만행으로 국제 사회의 규탄과 응징을 받아야만 한다.

 

나는 개척자1)들의 로힝야족 현지 조사팀의 일원으로 작년 말부터 이번 달까지 두 차례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촌에 파견되었었다. 난민촌이 시작되는 쿠트팔롱에 들어섰던 첫날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수많은 난민 천막들의 행렬을 보면서 내 눈을 의심했다. 아비규환의 지옥에 들어온 것 같았다. 얼기설기 엮은 대나무 위에 검은 비닐을 덮은 허술한 천막집에서 여러 세대의 대가족들이 함께 살고 있는 모습이 마치 나치 독일이나 전쟁 포로들의 집단 수용소 같아 보였다. 방글라데시와 미얀마 접경지역의 로힝야 난민촌은 약 10여 군데의 지역에 분산되어 있다. 비좁은 땅 덩어리에 작게는 4~5만에서 10만 명이상 되는 난민들이 다닥다닥 붙은 천막들 속에서 발 디딜 틈 없이 모여 살고 있다. 각각의 난민촌 안에는 다시 A, B, C, D순으로 나뉘어진 블록들이 있는데 한 블록 안에는 대강 100가정이 모여 산다


1) 개척자들은 교회와 인류의 화해와 일치를 추구하는 공동체로 평화(Shalom)를 실현하는 것을 미션(Mission)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전쟁, 재난, 기아 등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는 현장에 나가 평화를 위해 활동합니다.


각 블록에는 마지라는 봉사자가 있는데 실상 이들은 방글라데시 군경에 협조하는 감시자이기도 하다. 국제 사회는 탄압을 피해 미얀마를 탈출한 로힝야족을 불쌍한 난민들이라고 여기지만 방글라데시 군인들은 이들을 자기 나라에 불법 침입한 범죄자로 취급한다. 그래서 난민들은 방글라데시 군경에 의해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다. 로힝야 난민들이나 그들의 자녀들은 정식 교육을 받지도 못하고 날품팔이 이외에 취업 허가를 받을 수도 없다. 바닥에 기초를 놓고 영구적으로 살아갈 집을 짓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로힝야 족에게 있어서 현재의 난민촌은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는 막장과도 같다


수많은 눈에 잘 띄는 큰길가에는 구호 단체나 정부 기관들이 로힝야를 위해 돕고 있는 000”, “로힝야를 위한 인도주의적 지원, 000”, “인도주의의 챔피언 000” 등등 요란스럽게 자기 활동을 선전해 대지만 정작 로힝야족이 스스로의 힘으로 앞길을 헤쳐 나가도록 보이지 않게 묵묵히 돕고 있는 단체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무엇보다 자기 종족의 운명을 스스로 헤쳐 나가려는 로힝야족 청년들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로힝야 난민촌

 

개척자들이 난민촌에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어린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다. 사람들은 난민촌의 어린이들이 배고프고 아프고 지쳐서 슬픈 기색으로 힘없이 쓰러져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겠지만 실상은 병들어 누워 있는 소수의 어린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그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마치 놀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처럼 스스로 별별 희한한 놀이를 만들어 친구들과 명랑하게 뛰어 논다. 어디서 그런 창의력과 에너지가 생기는지 경이롭고 신기할 따름이다.


우리가 난민촌 마을을 찾아가 돗자리를 펴고 크레용과 종이를 놓아두면 아이들은 오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꾸역꾸역 모여들어 종이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또 자기 자녀들이 그리는 그림을 보고 싶어서 부모들과 이웃들이 기웃거린다. 찰흙을 갖고 어떤 모양을 만들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호기심으로 가득 찬 난민촌의 어린이들과 주민들을 만날 수 있는 접촉점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알게 된 아이들과 함께 집을 방문해 보면 아이들의 아빠가 죽었거나 가족 가운데 장애인이나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만성질환 환자가 있는 경우를 종종 만나게 된다. 난민촌의 어두운 천막 안으로 들어가 보아야만 UN이나 국제 구호단체들의 일반적인 난민 지원 활동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들은 이런 취약한 난민들을 찾아내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친구가 되고 있다.

 

돗자리학교

 

난민촌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들

 

남을 도와주면서도 욕을 먹기가 쉽다. 다른 사람은 도움을 받는데 자신은 도움을 못 받게 되면 불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도움은 모두에게 공정하게 베풀어야 한다. 그러나 난민촌의 한 블록에 만도 수백, 수천 명이 밀집해서 살고 있는데 모두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게 지원을 한다는 것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자원과 세심한 분배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여러 난민촌에서 활동하면서 적은 돈으로 아무도 불만이 생기지 않게 도움을 주고 수혜를 받지 못하는 이웃 난민들에게 조차 감사와 환대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누가 보아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절대적인 약자들을 찾아내 그들을 돕는 것이다.


로힝야 난민촌에는 미얀마 군인들의 학살로 남편이 죽어서 과부가 된 여인들이 많다. 이 여인들은 이슬람 관습에 따라 홀로는 외부 출입을 할 수 없어서 거의 어두운 천막 안에서만 살아가고 있다. 감옥 안의 감옥에 갇힌 셈이다. 매달 두 번씩 배급 받는 양식을 받으러 갈 수가 없어서 받는 양식의 일부를 수고비 대신 주어서라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또 강제 추방 과정에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은 병들어 누워 있어도 돌볼 사람이 없다. 시설이 잘 갖춰진 일반 사회에서도 살아가는 것이 어려운 장애인들에게 난민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가득한 지옥 같은 현실이다.


로힝야 난민촌에는 다른 난민촌에 비해 비교적 많은 천막 병원들이 설치되어 있다. 국경없는 의사회(MSF)나 적신월사(무슬림국가의 적십자사)와 같은 국제적인 민간단체들 뿐 아니라 많은 이슬람 단체들의 의료지원 활동도 눈에 띈다. 가히 민간 의료 시민단체들이 봉사 경쟁을 하는 각축장과도 같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난민촌 병원들이 감기나 배탈정도를 치료하는 데 필요한 1차 진료소라는 게 문제다. 당뇨나 고혈압, 관절염과 같은 만성 질환의 환자들이나 수술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에게는 도움이 못된다. 난민촌에는 이렇게 근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거나 장기적인 의료지원이 필요한 환자들이 방치되어 있다. 영양실조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가는 어린 아이들도 많다. 우리를 돕고 있는 한 로힝야 족 친구는 만삭이 된 아내와 작은 나무배를 타고 피란하면서 3일 밤 3일 낮을 배 안에서 지내야 했다. 칠흑 같이 어두운 밤 출렁이는 배 위에서 아내가 아이를 출산했다. 그리고 난민촌에 새롭게 정착하면서 아기는 필요한 영양을 섭취하지 못했고 결국 4개월 만에 아기를 방글라데시의 모래 언덕에 묻어야 했다.


로힝야 난민캠프에는 특별히 도움이 필요한 여인들이 있다. 바로 미얀마 군인들에 의해 강간피해를 당한 여인들이다. 국제 기관들은 그 숫자가 2만명 이상이라고 한다. 피해 여성들 가운데는 결국 임신하게 되어 아비 없는 아이들을 출산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유기되거나 아무도 돌보려 들지 않는 불행한 고아가 되어버린다.


특히 이런 성폭행의 희생자들이 당하는 고통은 이들을 불쌍히 여기고 돌보려 들기 보다는 저주하고 수치스러워 하는 이슬람 사회에서 더 극심하다. 피해 여성들은 대부분 가족 안에서 더 가혹한 2차 피해를 당한다. 성폭행을 당한 어린 소녀들이 가족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할 경우 쉽게 인근 콕스 바자르나 수도 다카 혹은 인도의 콜카타 등지에 성매매를 위해 팔려 나가게 된다. 무슬림 사회에서 매매춘은 당연히 불법이다. 그러나 관광지인 콕스 바자르의 후락한 골목들 안에는 성매매를 위한 허름한 모텔들이 늘어서 있고 이 매음굴에서 로힝야족의 어린 소녀들을 쉽게 소개 받을 수 있다. 이들이 이렇게 로힝야족 통행금지 구역까지 팔려 나온 데에는 10군데 넘는 방글라데시 군인과 경찰의 검문소에서 군경들과 인신매매단 사이의 불법적인 거래가 있었기 때문이다.

 

쿠트팔롱 난민촌의 평화학교

 

난민들을 함께 돕고자 하는 로힝야 청년들

 

어디에서나 그렇듯이 로힝야 난민촌에도 이런 약자들을 돕는 일을 시샘하거나 불만을 갖고 방해하려 드는 이웃들은 없다. 남을 돕는데도 오히려 환영하고 사랑하고 존경한다. 우리는 이런 일을 우리가 직접 나서서 하기 보다는 로힝야 청년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그들과의 사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로힝야 청년들이 주체적으로 자기 부족 가운데 이런 연약한 지체들을 돕기 위한 단체를 결성하도록 권면하고 있다. 그러나 로힝야 난민들이 그런 회합을 하거나 단체를 결성하게 되면 방글라데시 군경에 의해 체포되거나 수감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벌이나 강제추방과 같은 가혹한 불이익을 무릅쓰고 라도 동족을 돕기 위해 비밀 조직을 결성하는 청년들을 만나게 되었다. 개척자들은 이런 청년들과 함께 이들이 쫓겨난 자신들의 고향 라카인 주까지 다시 돌아가는 멀고 험한 길을 동행할 것이다. 자기 땅이 있고 자기 집이 있었던 그곳, 자기 부모들이 대대로 살아오며 마셔왔던 샘물을 다시 찾아가기까지 길동무가 되어줄 것이다. 떠나온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그 길이 평화의 길이라고 믿고 있다.

 

 

송강호장로회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 철학으로 석사 학위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실천신학으로 박사 학위(Th. D.)를 받았다. 사단법인 개척자들의 대표, 분쟁지역 파견 선교사 담당 간사 등의 활동을 하였으며, 현재 제주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반대 활동 중이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04.19 10:35

[시선 | 평화를 그리는 화가들]



노예제도, 인간이 인간에게 빼앗은 인권


김소울


자유와 평등의 나라라는 슬로건을 건 신생 국가 아메리카. 그러나 실제로 그들에게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념에 완전하게 반하는 뜨거운 감자가 있었으니, 바로 노예제도이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전에 이미 아메리카 대륙에 살던 땅의 주인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서양인들에게 끝까지 저항했고, 그들을 노예로 완전하게 부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자 서양인들은 끔찍한 방법을 생각해 냈다. 바로 노예사냥꾼을 이용하여 흑인을 납치하고, 이들을 이용하여 부족한 노동력을 충당하는 것이었다.


아래의 그림은 영국의 화가 윌리엄 터너가 그린 노예선이다. 이 그림의 부제는 <폭풍우가 밀려오자 죽거나 죽어가는 이들을 바다로 던지는 노예상인들>, 납치되어 배에 실려 팔려가던 노예들이 바다에서 겪은 실제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1783년 노예들은 족쇄가 채워져서 몸을 움직이기조차 힘든 비좁은 배의 바닥에 누워 몇 개월 동안의 항해를 견뎌야 했다. 최대한 많은 노예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선실에 노예들을 눕혔고, 노예들은 물건처럼 온 몸이 고정되었다. 폭풍우가 몰아치며 항해가 어려워지고 음식이 부족해지자 상인들은 다치거나 병드는 등 살아있는 이들마저 바다에 던져버리고 만다. 이 항해 도중 1/3 이상이 사망하였다.

 

윌리엄 터너, 노예선(1840)

 

노예제도는 비단 미국만의 일이 아니었다. 1672년 영국의 찰스 2세는 왕립회사에 노예무역에 대한 독점권을 부여한다. 이 회사는 이후 약 90년간 백만 명이 넘는 노예를 서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운반 판매하게 되는데, 이 노예무역은 많은 경제적 이익을 가져왔기에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참여하였고 17C-19C 거래된 흑인 노예들의 수는 1,5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과거에는 단 맛을 내는 식품 재료는 꿀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슬람교도에 의해서 코란과 함께 서쪽으로 꿀보다 달콤한 설탕이 전해지게 된다. 11세기 말 설탕이 유럽에 상륙하자 유럽인들은 순식간에 설탕의 강력한 단 맛을 탐닉하게 된다. 그러나 설탕의 원료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노동력이 필요했고, 이러한 이유로 새로운 경작지를 위해 식민지 건설에 박차를 가하면서 엄청난 인원이 노예무역시장의 희생자가 되었다. 노예로 팔려간 이들은 끌려간 땅에 사탕수수 모종을 심고, 수확하였으며, 그것을 빻아 설탕을 만들어 냈다. 1800년경 당시 영국인 250명의 연간 설탕 소비량이 1톤에 달한 것으로 집계될 만큼 그들의 설탕에 대한 사랑은 대단하였으며 1톤의 설탕은 흑인노예 한명이 평생을 바쳐 수확해 내는 양이었다. 설탕에 가장 탐닉했던 영국이 서인도제도에 노예들을 팔기 위해 보낸 선박의 수는 2,704척이다. 이러는 가운데 200-400만 명의 노예가 항해 중 사망하게 된다.


 프랑수와 오귀스트 비아르, 노예무역(1833)

 

비아르가 그린 <노예무역>이라는 그림 안에서 흑인 노예들을 납치해 온 흑인 족장이 백인 상인과 흥정을 하고 있고, 오른쪽 아래에 그려진 백인 귀족은 편하게 앉아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시 빈번하게 일어났던 노예무역, 그리고 흑인노예를 그저 경매의 대상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은 백인들의 끔찍했던 과거를 기록한 작품이다. 노예는 서양인들에게 화물이나 말과 같이 거래해야 할 물건에 불과했고, 그런 노예에게 인권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미국의 노예제도는 17세기부터 시작되었지만, 흑인 노예문제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였다. 이 당시 전 세계가 양모 대신 면으로 옷을 만들어 입기 시작하면서 면직물 산업이 크게 번성하였으며, 면화 재배를 위해서는 노예들이 꼭 필요했다. 면화농장에서 일하는 흑인 노예들에게 그들은 처참하게 채찍질을 했고, 도망가다가 붙잡히면 손을 자르거나 목숨을 뺏는 일까지 일삼았다. 그러던 중, 1873년 버지니아 주에서 냇 터너라는 흑인 노예가 폭동을 일으켜 백인들을 살해하면서 이에 대한 보복으로 흑인노예 100명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런 사건이 벌어지고 얼마 되지 않아 스토 부인이 쓴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라는 책이 출간되었고, 착한 흑인 노예 톰이 목화밭에서 일을 하다 비참하게 죽어가는 내용을 읽은 미국인들은 노예제도의 잔혹함에 대해 상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노예제의 반인권적 행위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커져가던 18614, 노예제를 중심으로 하는 길고 소모적이며 비극적인 남북전쟁이 시작되었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29, 링컨 대통령은 중대한 노예 해방령을 내렸다. 그는 남부 연합의 일부를 이루는 주에 사는 모든 노예의 해방을 선포하고 북부에서도 노예제를 사실상 금지했다. 그러나 실제로 켄터키, 미주리, 메릴랜드, 델라웨어, 웨스트버지니아주의 노예를 해방시키지는 못했으며, 노예제 해방령은 부분적으로 밖에 실시되지 못하였다.

 

1864년 대통령 재선을 위한 선거운동에서 링컨은 완전한 노예제 폐지를 위한 헌법수정을 제시했으며, 1865년 초 의회를 통해 수정안을 강행한 후, 링컨 대통령은 암살당하게 된다. 헌법을 완전하게 수정하기 전 까지 법적으로 노예제를 폐지하지 못했던 미국은 1865년 헌법수정안을 선포하고 미국과 그 영토 내 노예제도를 헌법상 사라지게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많은 미국의 주들이 노예제도를 유지했고, 1995년이 되어서야 미시시피주를 마지막으로 미국의 모든 주가 이 제도를 비준하게 된다.



김소울 |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의 심리상담학과 특임교수로 재직중이며, <아이마음을 보는 아이그림>을 비롯한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였다. 현재 미술 작가이자 플로리다 마음연구소 대표로서, 치유적 활동과 미술창작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