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레터(글)2017.12.20 11:38

[시선 |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학교는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

 

심은보


찬이 녀석은 1학기 끝자락에 전학 온 우리 반 친구다. 그 날은 탈곡을 하는 날이었다. 한참 탈곡을 하고 있는데 녀석이 보이질 않았다. 찾고 보니 저쪽 한쪽에서 놀고 있었다. 힘들어서 그랬다고 했다. 그러게 말이다. 너무나 힘든 일이다. 힘들어야 되는 일, 그러기 위해서 하는 일이다. 편리한 기계가 있는데도 우리는 왜 이렇게 손으로 모를 심고, 자라는 모들 사이에 들어가 흙범벅이 되면서도 피를 뽑으며, 위험할 수도 있는데 낫으로 벼를 베는 일을 하는 것일까. 점심밥을 먹고 아이들과 학교란 곳에서 우리가 왜 이렇게 힘들게 벼농사를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이야기를 한참 나눴다. 편리한 방법을 버리고 위험을 무릅써가며 우리는 왜 이런 수업을 하고 있는가 하는 이야기를. 납득한 것인지, 납득한 척 해 준 것인지 모르지만, 점심밥을 먹고 그 녀석은 탈곡기에 붙어 서서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리 학교는 3, 4학년 아이들이 스스로 힘으로 한 마지기 논에 벼농사를 짓는다. 볍씨를 싹틔워서 모판을 만들고, 모를 기르고, 논에 거름을 뿌리고, 논을 갈아 물을 가둬두고, 손으로 모내기를 한다. 중간에 피도 뽑아주고, 가을이 되면 낫을 들고 함께 가을걷이도 한다. 와롱이를 돌려가며 탈곡을 하고, 학교 안에서 도정 작업까지 아이들이 하게 된다.   


기계를 쓰면 혼자서도 뚝딱 모를 심을 수 있고, 추수와 함께 탈곡까지 할 수 있는데 여럿이 함께 여러 날을 왜 이렇게 우리는 사서 고생하고 있는 것일까. 속도와 편리의 시대, 무엇이든 소비가 강요되는 이 시절, 학교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일까. 어쩌면 사람이 사는 일 중에 중요한 일들은 속도와 편리와 소비의 시대와 맞서는 일 속에서 지켜나갈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쉬이 결과가 나오지 않고 내가 마음을 기울이고 몸을 움직이며 차근차근 과정들을 밟아가야만 엮여지는 어떤 결과들, 그 안에서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소중함, 쌀 한 톨 안에 스며있는 다양한 이야기들, 적어도 그런 이야기들이 귀하게 여겨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세상에서 강요되는 모습이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학교에서는 그런 것이 중요함을 이야기해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세상이 그렇다고 해도 세상을 따라가지 않고, 세상은 비록 이럴지라도 적어도 학교는, 아니 학교부터라도 그런 세상을 향해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더 중요한 게 있노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희망이 좀 있지 않을까. 



학교 안에서 아이들과 살아가는 일상에 대해 끊임없이 되묻곤 한다. 이 시절 학교는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일까 하고. 묻고 물으며 내가 찾아 가고 또 살아가려는 이야기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교실이란 기꺼이 시도하고 실패해 볼 수 있는 곳

- 경쟁보다는 협력을 통해 더 잘 배울 수 있다.

-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

- 학력이란 아이들이 행복하게 성장하며 잘 살아갈 수  있는 힘 

- 앎이란 삶과 연결되었을 때 의미가 있는 법

- 수업의 주인공은 아이들! 아이들의 말과 삶을 귀하게  여길 것 

- 배우는 과정에 사람 이야기가 담겨야 할 것

- 교사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며 배울 수 있는 터를 마련해 주는 사람 

- 몸소 겪기, 드러내기, 이해하기, 해결하기, 행하기, 나누기가 일련의 흐름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것

- 나를 올곧게 볼 수 있는 눈, 내 둘레 사람들의 삶을 헤아릴 수 있는 시선, 다른 사람을 위해 흘릴 수 있는 눈물, 땀 흘려 일하는 것의 소중함, 나눔, 배려, 생태, 인권, 평화의 가치들을 삶 속에서 나눌 것


그리고 요사이 또 하나 학교를 향해 많이 던지곤 하는 질문은 ‘학교는 어떤 사람을 환대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학교의 존재 이유와 관련된 물음이기도 하다.


올해 1학기 우리 학교에 민이라는 친구가 전학을 왔다. 이 녀석은 학교를 돌고 돌아 벌써 몇 번째 학교였다. 이 아이에게 학교는 무엇이었을까. 학교 폭력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자신을 배제하고 거부하던 그런 곳이자, 자신에게 문제아라는 편견의 꼬리표를 달아 주며 헤어날 수 없는 구렁텅이로 자꾸만 몰아대는 그런 곳이었다.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인 그 녀석에게 학교는 참으로 가혹한 곳이었다. 이 녀석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묻지 않았고, 이 녀석의 마음이 어떤지 살피려 들지 않았다. 이 녀석이 어떤 과정을 거치며 성장해야 하는 것인지 돌보려 들지 않았다. 사실 이 녀석의 가장 아픈 부분은 가정에 있었다. 재혼 가정인지라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겪어야 할 것들을 제대로 겪지 못하며 자라나고 있었다. 몸이 성장함에 따라 마음도 성장해야 하는 데 그 성장을 건너뛸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 학교는 그 상황들을 충분히 헤아려 주지 못하고 있었다. 민이 녀석을 처음 만났을 때 마음이 아프고 또 아팠다.     


선생님들과 둘러앉아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어떻게 우리가 이 아이를 도와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이야기를. 이 녀석에게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판단을 함께 했다. 여러 번의 갈등과 여러 번의 벗어남이 있었다. 욱하며 친구들에게, 선생님에게 욕을 해대기도 하고 친구들과 주먹다짐을 하며 싸우기도 했다. 수업 시간에 앉아 있기 힘들다며 교실에서 뛰쳐나오기도 했다. 녀석에겐 그동안 본인이 생존해왔던 경험과 얽혀서 얼마나 힘든 일이었겠는가. 안전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했고, 그 외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학교 구성원 모두 함께 품어 나가기를 반복했다. 


언젠가 중간 놀이 시간에 녀석이 보이질 않아 찾아 나섰는데 학교 밖에서 간식을 먹으며 학교를 향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교감 선생님이 교문 바로 앞에 찾아 나섰다가 녀석을 만났는데 “나를 찾았어요? 그 동안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라고 했다는 녀석의 말이 참 아프게 다가왔다. 집에서 아침을 못 먹고 온다는 녀석에게 한 선생님은 날마다 도시락을 챙겨 먹이고 있고 다들 녀석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그 기운을 머금고 녀석은 조금씩 조금씩 마음에 따뜻한 성장의 기운을 담아가고 있다. 물론 여전히 규칙과 틀에서 벗어나는 모습은 수시로 보여주고 있긴 하다. 그래도 이제는 외부의 시선과 규칙들을 의식한다는 것, 그래도 때론 잘 해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 달라져가고 있는 모습이다. 또 외발자전거에 푹 빠져 친구들과 함께 타기도 하며, 아이들과 함께 어우러져 갈등 없이 노는 날도 생겨나고 있다. 주말에도 친구들 집에 가서 함께 노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으며 한 친구 엄마에게 이모, 이모 하며 그 집에 놀러 가서 한참을 대화 나누다 오기도 한다.   

반 년 사이 녀석에게 학교는 제법 편안해졌고, 이제 더 이상 거부하고 싶지 않은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여전히 겪어가며 배워야 할 것들이 하나 둘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녀석의 모습 속에서 다시 학교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적어도 학교는 모르는 자, 부족한 자, 익숙하지 않은 자가 환대 받아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학교는 그런 부족한 부분을 공부나 활동을 통하여 겪어가고 채워가며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곳은 아니겠나 생각한다. 심지어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까지도 좀 더 치열하게 겪어나가며 배워갈 수 있어야 하는 곳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안전한 학교 안에서 말이다. 


학력 학력 하며 배우는 속도가 좀 더딘 아이들을 학습부진아로 규정짓고, 학폭 학폭 거리며 아직 관계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을 학교 폭력을 범한 자로 낙인 찍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학교. 이 속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 그런 규정 속에 내가 속하지 않기 위해 불안에 떨며 경쟁에 전력을 다하거나, 그 규정에 내가 속하지 않기 위해 작은 갈등에도 남을 탓하며 손가락질 하는 것을 배우게 되지 않겠는가. 언제쯤 우리네 학교는 좀 달라질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학교 탓이 아닐지 모른다. 우리 사회가 학교를 향해 요구하는 모습들이 그러하기 때문은 아닐까. 이제 우리 함께 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학교에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겪게 할 것인지 말이다. 적어도 학교가 아이들 성장을 원하는 곳이라면 도대체 학교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지 말이다.


심은보 ㅣ 일곱 해 된 경기도 혁신학교 평택 죽백초등학교에 여섯 해 째 행복한 배움터 만들기에 애쓰고 있다. 학교에서 맡은 일은 희망을 일궈가는 우리 선생님 한 분 한 분 응원하며 함께 가고자 뜻과 마음 모아가는 죽백초 희망부장이다. 아이들 속에선 심슨으로 살고 있으며 좌충우돌 모두에게 의미있는 나날 가꿔가기 위해 4학년 아이들과 끊임없이 이야기 나누며 길을 찾아가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