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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4_3 정경화_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평화주의자 안중근

by 어린이어깨동무 2017. 4. 25.

[시선 평화를 이야기하는 철학자들]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평화주의자 안중근


정경화


불과 60여년 전까지만 해도 소수 열강이 다수의 약소국들을 식민지화하는 제국주의가 전세계적으로 득세하던 시대였고, 우리나라도 1910부터 1945년까지 35년간 일제에 의해 식민통치를 당하는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이 시기 일제에 맞서 용감히 싸운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었는데, 그 중 조선통감부의 통감 이토 히로부미에게 총격을 가해 쓰러뜨린 안중근 의사의 명성은 특별히 높아 최근에는 여러 예능프로그램에서 다루어질 정도이다. 하지만 동양평화론을 주장한 평화사상가로서의 안중근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황해도 대지주 향반집안에서 태어난 안중근은 적극적이고, 의협심이 강한 성품을 타고 났다고 한다. 아버지의 영향 아래에서 유학, 개화사상, 천주교 등을 접하며 넓은 식견을 갖추게 된 그는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는 청년으로 성장한다. 특히 일제에 의한 침탈이 본격화된 이후에는 교육자, 애국계몽운동가, 의병장으로서 우리 민족이 처한 불행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전방위적 활동을 주도하게 된다. 이와 같은 안중근 의사의 역동적 삶의 동기로 직접 작용한 것은 당연 나라를 되찾기 위한 애국정신이었으나 그 밑바탕에는 강한 자의 약한 자에 대한 폭력과 착취의 근절을 소망하는 평화사상이 자리하고 있다.


안중근은 1899년에는 뮈델 천주교 주교에게 대학교 수준의 학교를 설립해 줄 것을 건의하고, 1906년에는 직접 가산을 정리하여 삼흥학교(이후 오성학교로 개명)를 설립하고, 이후 천주교 본당에서 운영하는 돈의학교의 교장을 맡는 등, 국력향상에 교육이 가지는 중요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교육활동에 헌신한다. 돈의학교 교장시절 교사와 학생을 대상으로 한 훈화 내용을 통해서, 교육이 단지 개인적 입신과 국가적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더 넓게 평화로운 세상을 이룩하기 위한 것이라는 안중근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

 

…… 외세가 기승을 부리고 호시탐탐 침략을 일삼고 있을 때 이 엄청난 세력을 막을 길은 민족교육을 철저히 받은 졸업생이 앞장서서 단련된 교육사상을 가지고 정신문화사적으로 방어하면서 교육 문화를 고취하고 드높이는데 있는 것이다. …… 그것이 곧 동양의 평화정착을 보장한다고 굳게 믿는다.”

 

안중근의 평화주의자로서의 면모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의병으로서 활동할 당시이다. 안중근은 1907년 헤이그 특사파견을 빌미로 고종황제가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퇴위당하고 한국군이 강제해산 당하자 항일의병투쟁에 가담한다. 안중근이 대중에게 의병 참여를 독려했던 말 속에서도 그의 평화사상이 드러나는데, 의병활동은 단순히 일제에 대한 독립투쟁이 아니라 동양 전체의 평화를 위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평화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동양 전체가 오랫동안 공존하여 영구히 평화와 그 사상을 유지하려면 그 적극적인 방해자 즉 파괴자인 일제와 그 추종졸개들을 전원 섬멸함은 가장 당연한 평화유지의 확연한 기초적 원리인 것이다.”

 

19088월 의병전투에서 안중근이 참모준장으로서 이끈 부대가 승리하여 약 10여명의 일본 군인과 상인을 포로로 잡게 된다. 이때 안중근은 만국공법(국제법)에 근거하여 포로들에게 인도주의적 처사를 베푼다. 일본군 포로들이 이토 히로부미의 계책에 어쩔 수 없이 동조하게 되었다고 판단하여 이들을 모두 놓아주게 되는데, 이 때문에 부대원들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게 된다. 당시 일본군은 의병은 물론 의병군이 나온 동네까지 초토화시키는 비인간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어서 안중근의 포로들에 대한 관대한 처사에 다른 부대원들의 불만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에 대해 안중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적들이 그같이 폭행하는 것은 하느님과 사람들이 다 노하는 것인데, 이제 우리들마저 야만의 행동을 하는가. 또 일본의 사천만 인구를 모두 다 죽인 뒤에 국권을 도로 회복하려는 계획인가. …… 우리는 약하고 저들은 강하니 악전(惡戰)할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충성된 행동과 의로운 거사로서 이토 히로부미의 포악한 정략을 성토하여 세계에 널리 알려서 열강의 동정을 얻은 다음에라야 한을 풀고 국권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니, 그것이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물리치고, 어진 것으로 악한 것을 대적하는 것이다.”

 

의병전투라는 폭력투쟁 속에서도 동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국주의자로 적을 한정하여, 포로들에 대한 인간애를 실천하는 모습 속에서 안중근이 평화의 가치를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엿볼 수 있다안중근은 우리나라를 침탈하고 동아시아 국가들의 평화적 연대를 깨뜨리는 주범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꼽았다. 그를 제거하는 것을 통해 우리나라의 독립과 동아시아의 평화를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한 안중근은 19091026일 하얼빈역에서 3발의 총격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쓰러뜨린다. 현장에서 곧바로 체포된 안중근은 이후 법정에서도 이토 히로부미의 죄 15가지를 열거하는 가운데 동양 평화를 파괴한 죄를 든다. 안중근은 일제에 의해 결국 사형 선고를 받고 19103263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안중근은 옥중에서 <동양평화론>를 집필하여 자신의 평화사상을 구체화할 계획을 가지고, 사형집행을 늦춰달라는 요청을 한다. 구두로 연기를 약속 받으나 이후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집행이 이루어져, 애초 서문, 전감, 현상, 복선, 문답으로 구성될 예정되었던 <동양평화론>은 서문과 전감만 집필된 채 미완성으로 남는다.


<동양평화론>에 포함되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주요 내용은 사형집행 연기 요청을 위해 이루어진 안중근과 뤼순 고등법원장 사이의 면담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안중근은 자신이 구상한 동양평화를 위한 방안을 설명하는데, 그 골자는 다음과 같다. 첫째, 뤼순항을 개방하여 3국이 공동 관리하는 군항으로 만든다. 둘째, ··일 삼국이 평화회의를 구성한다. 셋째, 재정확보를 위해 3국 공동은행을 설립하고 공동화폐를 발행한다. 넷째, 3국의 공동 군단을 편성한다. 안중근은 이 방안이 실현된다면 일본의 주도 아래 한국과 중국도 경제적으로 성장하게 되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자발적으로 평화회의에 가입하여 아시아 전체 차원으로 연대가 확대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안중근이 제시한 동아시아 연대 정책은 정치, 군사, 경제, 문화적 교류와 의존을 통해 함께 번영하는 지역공동체를 건설하여 아시아 국가 간 평화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을 우선적인 목적으로 하고, 나아가 서구열강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대한 방어력을 높이는 목적도 가지는 것이었다. 이러한 구상은 실제 1990년대 유럽연합(EU)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안중근이 놀라울 정도의 혜안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의 실효성 여부를 떠나 그가 몸소 보여주었던 실천적 평화주의자로서의 삶 자체가 주는 울림이 더욱 크다. 제국주의의 폭압에 온몸으로 저항하며 죽는 순간까지도 평화로운 세상 그리기에 여념이 없었던 안중근의 선각자적 기개에 절로 고개가 숙여질 따름이다.


우리나라는 일제 패망과 함께 해방되었지만, 곧바로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민족 간 전쟁을 겪었고, 현재까지도 총부리를 서로에게 겨누고 있는 극단적 비평화의 상태에 놓여있다. 사회 내부적으로도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권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다수자와 소수자 사이에 제국주의시절에 비견할 만한 폭력과 차별이 계속되고 있다. 안중근 의사가 서거한지 10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동아시아의 평화, 세계의 평화 시대를 열기는커녕 오히려 남북의 대치, 사회 내 갈등 심화로 내적 비평화의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실정이어서, 우리는 아직도 안중근 의사가 그토록 경계하였던 야만의 행동이 끝없이 일어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평화가 극도로 위협받는 때에 평화와 공존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기 위해서는 평화를 견지하는 넓은 시야를 가지면서도 현실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실천적 저항정신을 겸비한 21세기 안중근이 필요하다. 그래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2016년 현재, 대한민국의 수구세력이 역사를 왜곡하고 국정을 농단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우리가 작은 안중근으로 깨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끝까지 촛불을 놓지 않는 저항이 이어진다면, 국민의 주권을 되찾고, 궁극적으로는 평화를 향한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다.

 

 

정경화 | 대학에서 때때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세상에 정착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녹록하지 않아 늘 궁시렁대지만, 작은 힘이나마 보태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세상 만드는데 일조하고픈 소망은 꼭 쥐고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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