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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4_4 김동진_누가 평화를 만드는가?

by 어린이어깨동무 2017. 4. 25.

[시선 | 아일랜드에서 쓰는 평화학 이야기]


누가 평화를 만드는가?


김동진


매해 712일이 되면 북아일랜드에서는 오렌지 윌리엄 공의 제임스 2세에 대한 승전을 기념하는 가두행진이 열린다. 윌리엄이 개신교도, 제임스는 천주교도였던 탓에 712일 가두행진은 아일랜드 정체성을 가진 천주교인들에게는 매우 불쾌하고 공격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여진다. 영국 정체성을 가진 개신교인들은 이 가두행진을 자신들의 문화라 주장하며, 일부러 천주교도들이 사는 지역으로 행진을 하여 천주교인들을 자극하기도 한다. 12일 전날 밤에는 아파트 7-8층 높이의 나무 탑을 쌓아 놓고 아일랜드 국기와 함께 이를 불태우는 의식을 거행한다. 1998년 성금요일 평화 협정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이 연례행사는 북아일랜드의 평화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분명 정치인들이 평화 협정에 합의했고, 이전에 비해 폭탄 테러와 같이 눈에 보이는 폭력 행위가 크게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사이의 장벽은 여전한 것이다.


▲매해 7월 12일이 되면 북아일랜드에서는 오렌지 윌리엄 공의 제임스 2세에 대한 승전을 기념하는 가두행진이 열린다

Ⓒen.wikipedia.org/wiki/Orage_walk#


정치인들 간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북아일랜드 사람들의 관계가 좀처럼 쉽게 회복되지 않는 이유로 많은 북아일랜드 학자들은 북아일랜드 정치의 권력공유 방식을 제시한다. 북아일랜드의 주요 정당들은 여전히 갈등집단을 가르는 강한 정체성을 배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표를 얻기 위한 지지 세력 집결에 북아일랜드 갈등을 이용한다. 물리적 폭력을 제거하는데 합의하고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상대 집단에 대한 적개심 고취가 가져다주는 내부 정치적 이익은 아직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평화학자 요한 갈퉁(Johan Galtung)이 적극적 평화를 논하면서 진정한 평화는 물리적 폭력이 없는 상태뿐만 아니라 구조적 폭력이 함께 제거된 상태를 말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요한 갈퉁이 말하는 구조적 폭력에는 불합리한 정치적 권력구조뿐 아니라, 가난, 배고픔, 사회적 소외, 경제적 독점 등 불공평한 사회구조로 인한 폭력이 모두 포함된다. 직접적 폭력의 경우에서처럼 가해자와 피해자의 폭력적 관계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심지어 개인적으로는 전혀 모르는 관계인 경우도 있지만, 분명 이로 인해 이익을 얻는 사람들과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어떤 사람은 그가 분명 이룰 수도 있었던 목표를 사회구조상 절대 이룰 수 없는 경우가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사회구조로 인해 이익을 누리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이는 한 국가 사회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전 지구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세계화 시대의 지구사회가 가진 폭력적 구조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를 다른 국가에 종속되게도 만들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다른 나라 사람들을 억압하게도 만든다. 물리적 폭력이 없는 상태라 하더라도 구조적 폭력이 만연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평화를 느끼지 못한다.


문제는 폭력적 구조로 인해 이익을 얻는 집단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자꾸만 외부로 돌리려 한다는 점이다. 구조적 폭력으로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의 분노가 폭력의 원인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집단으로 향한다면 폭력적 구조를 유지하기에 매우 용이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이미 너무나도 잘 알려진 정치적 전략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매우 효과적인 수단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의 대선 결과와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 결과는 사회에 만연한 구조적 폭력에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외부로부터의 이주민과 난민이라는 적을 제시해 줌으로써, 기득권의 권력이 유지되는 과정을 잘 보여 준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누가 평화를 만들 수 있을까? 최근 유럽의 매일 아침 뉴스에는 세계 전역의 전쟁으로 인해 상처입고 죽어가는 어린이들에 대한 보도가 계속 등장한다. 뉴스를 시청하는 한 개인으로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무력감이 들 때가 있다. 과연 평화는 정치인들과 외교관들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인가? 712일 가족과 함께 벨파스트에 올라가 가두행진을 지켜보았다. 열두 살인 필자의 아들은 다시는 벨파스트에 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필자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평화를 공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아들에게 교훈을 준다는 마음으로 북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서로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인 어린이들을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아침 뉴스에 나오는 전쟁 지역에 있는 아이들의 아픔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평화교육가인 한 친구와 이 이야기를 공유하다가 꾸중을 들었다. 필자의 친구는 전 세계 전쟁의 아픔, 경제부정의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매일 뉴스에 등장함에도 사람들이 무감각해지고, 오히려 뉴스를 멀리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무력감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세상의 폭력과 부정의가 너무 크고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한 개인의 힘으로 이를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여겨진다는 것이다. 하물며 열두 살 어린이에게 이런 현상을 자꾸 접하게 하면서, 이를 위해 지금 무언가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결국 성인이 되어 사회문제를 외면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충고였다. 아직 어리니까 어른이 되어 이 경험을 가지고 평화를 위해 일하라는 교훈보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논의하며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해 보라는 제안도 곁들였다.


누가 평화를 만드는가? 정치인들과 외교관의 역할만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더 힘이 센 어른이 되기를 기다리거나, 다른 사람의 역할만을 기대하거나, 눈과 귀를 닫고 살기에는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이 너무 크다. 작은 변화라도 이끌어 낼 수 있다면, 단 한 사람이라도 함께 평화의 희망을 공유할 수 있다면, 작은 힘이지만 지금 평화를 살기 위해 노력하는 평범한 우리가 평화를 만들 수 있는 진정한 힘이 아닐까?

 

 

김동진 | 한신대에서 신학을, 시드니대학에서 평화학을,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의 국제평화학 겸임교수로 평화학을 강의하면서, 북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비교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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