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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5_5 최관의_아이 정강이를 걷어찬 나

by 어린이어깨동무 2017. 5. 9.

[시선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아이 정강이를 걷어찬 나


최관의


종오! 이리 와라.”

1학년 아이들이 길게 줄을 서 기다리고 있는 점심시간. 미경이 배를 걷어차면서 거친 욕을 해대는 종오 모습이 제 눈에 들어왔어요.

얼른 이리 오란 말이다.”

가는 말이 고아야 오는 말이 곱다고 우리 종오 눈빛에 날이 섰어요.

왜요?”

뭘 잘못했다고 그런 말투로 날 부르냐는 거지요. 사춘기 6학년 아이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몸짓을 1학년 녀석에게서 보게 되다니. 자존심이 확 상하면서 화가 치고 올라왔어요. 순간 자존심 상한다는 느낌이 올라오는 걸 우아하게 억누르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솟아나는 화만은 어쩌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지요.

종오! 너 이리 안 올래!”

왜요? 뭘 잘못 했다고 그래요. 미경이가 먼저 욕했단 말이에요.”

세상에, 녀석은 오라는데도 꼼짝 안 한 채 한쪽 다리를 옆으로 삐딱하게 하고는 짜증과 화와 원망이 가득 찬 얼굴로 이렇게 투덜대며 발을 굴렀어요.

! 짜증나.”

그 말을 듣자마자 내 입에서도 거친 혼잣말이 튀어나왔어요.

저 자식이, 저게 뭐 하자는 거야.”


그럼과 동시에 당장 종오에게 달려가 발로 걷어차 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온몸을 뜨겁게 휘감았습니다. 순간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심호흡을 했지요. 그러고는 잠깐 그 자리를 떠나 다른 반 아이들이 밥 먹고 있는 곳을 한 바퀴 돌아보며 감정을 다스렸습니다.

아이들과 살아오는 동안 이처럼 화를 치밀게 하는 일을 겪은 게 한두 번이 아니지요. 그럴 때 감정을 자제하지 못 해 후회할 일을 저지른 게 적지 않았어요. 또 그런 일을 저지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그 자리를 피한 겁니다. 이렇게 마음을 추스르는 동안 지난 해 제가 저지른 잘못이 떠올랐어요. 지금도 그 일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고 부끄러워집니다.


그 때도 점심시간이었지요. 6학년 담임을 하고 있었는데요, 아이들이 밥 먹는 걸 어느 정도 살핀 뒤 옆 반 담임과 함께 밥을 받아 한두 숟가락 떴을 때였어요. 좀 떨어진 곳에 앉아 있는 6학년 남자 아이가 의자를 발로 차며 자극적이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겁니다. 그 소리가 아주 귀에 거슬리고 지나가는 아이가 다칠 위험도 있어 녀석과 눈을 마주치고는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며 더 이상 그러지 말라는 눈빛을 줬어요.

멈출 거라고 믿고 밥을 먹는데 또 그 소리가 들려요. 밥 먹다 말고 다시 녀석과 눈이 마주쳤어요. 이번에는 손을 들어 엑스 자를 그렸지요. 녀석도 알았다는 표정을 짓기에 그야말로 이번에는 멈추리라 생각하며 막 숟가락을 드는 데 또 그 자극적인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녀석에게 달려갔어요. 그러고는 발로 녀석 정강이를 걷어찼지요. 그것도 두 번이나.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어요. 녀석은 밥 먹다 말고 놀라서 나를 쳐다보고 옆에 있던 아이들마저 놀랐어요. 녀석 눈에서는 눈물이 솟아오르고 내 머리에는 아차! 내가 잘못을 저질렀구나. 꼭지가 돌고 말았어. 교사로서 하지 말아야 할 짓, 폭력을 휘두른 거야.’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솟구치던 화는 후회와 자괴감과 나 스스로에 대한 미움과 실망으로 바뀌고 말았어요. ‘이 녀석 마음에 상처가 클 텐데, 주변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이 갈 텐데.’, ‘그 동안 내 몸과 마음에 배인 나쁜 습관 고치자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내가 이게 무슨 꼴이야.’하는 뼈저린 후회와 뉘우침이 올라왔어요.


이런 생각은 순식간에 내 머리와 가슴과 몸을 스치고 지나갔고 이 엄청난 사태를 수습해야 했지요. 놀라서 울고 있는 녀석을 안아주며 말했어요.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많이 놀랐지. 미안해. 정말 미안하다.”

아이의 눈동자는 떨리고 있었고, 손도 떨리고 있었어요.

아니에요.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 한 거예요.”


차라리 대들기라도 하면 마음이 덜 힘들 텐데 괜찮다는 거예요. 자기가 잘못 한 거라고 하니 더 마음이 무겁고 힘들더라고요. 녀석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고는 자리에 돌아와 밥을 먹는데 밥맛을 모르겠더군요. 옆 반 담임이 굳어진 제 표정을 보면서 위로해줬지만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내가 능력이 부족하고 몰라서 아이들에게 못 하는 것은 그나마 봐줄 만하다. 하지만 이게 뭐냐? 속에서 올라오는 화와 충동을 억제하지 못 해 아이에게 상처를 줘? 아이고 그러면서 교육이 어떻고 아이들이 어떻고 입으로 말은 잘 한다.’


밥 몇 숟가락 떠 넣다 고개 들어 보니 녀석은 함께 먹던 아이들과 식판을 정리하고 교실로 올라갔더군요. 저도 서둘러 식판을 정리하고 교실로 뛰어 올라갔어요. 아무래도 안 되겠더라고요. 이 녀석을 만나 한 번 더 사과하고 마음을 달래줘야지. 아이를 찾아 교실, 복도, 화장실 여기저기 돌아다녔지만 못 만났어요. 결국 그 다음 날 다시 만나 어제 내가 한 짓에 대해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며 마음의 상처를 덜어주려 했지만 엎어진 물이요 시위 떠난 화살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지요. 그 뒤로 졸업하는 날까지 녀석에게 마음을 쓰고 농담도 하고 하면서 아이 가슴에 뿌린 어둠을 걷어내려 했지만 지금까지도 그 날의 아픈 기억이 자꾸 올라옵니다.


그런데 한 해가 지난 지금 이 순간 또다시 종오 정강이를 걷어차고 싶다는 충동이 또 솟아오르다니! 섬뜩했어요. 등골이 오싹하더군요. ‘아이를 발로 차려는 이 충동은 도대체 어디서 오고 왜 되풀이하는 걸까?’하는 안타까운 물음이 떠오르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에서 치고 올라오는 그 무서운 충동에 휘말리지 않은 게 고마웠어요. 치솟는 화와 충동을 마주 바라보고 조절하는 힘이 조금이라도 생긴 게 그나마 다행이라 여기며 종오에게 하던 잔소리를 멈췄어요. 이런 감정으로 종오에게 잔소리하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느낌이 들었거든요.


종오야! 들어가 밥 먹을 준비하거라. 지금 미경이랑 부딪치는 거는 멈추고 더 이상 하지 마라. 미경이가 욕한 건 따로 말 하마.”

그렇게 들여보내고 나니 빠르게 마음이 가라앉더군요. 담임 가슴에서 한바탕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친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종오와 미경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웃고 장난치며 밥을 먹네요. 그 모습을 보며 솟구치는 화와 충동을 잘 추스른 나 자신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교실로 올라와 종오를 무릎에 앉혀 놓고 이야기했어요.

종오야! 아까 그러고 들어가서는 미경이랑 웃으며 밥 먹더라.”

미경이랑 서로 사과했어요.”

그래. 잘 했고 큰 공부했다. 멋지다.”


솔직히 이 날 큰 공부한 사람은 종오가 아니라 저였습니다. 인권, 평화교육 어쩌고 하면서도 그 동안 몸과 마음에 배어들어와 있는 틀과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는 걸 절실히 깨달은 날이니까요. 그게 얼마나 어렵고 큰 공부인지도.

 

 

최관의 |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회원이고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 ‘있을 건 있고 없을 건 없는 학교를 꿈꾸며 서울세명초등학교에서 1학년 아이들과 살고 있다. 청소년 시절 이야기를 담은 열다섯, 교실이 아니어도 좋아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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