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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7_1 황윤옥_남과 북의 ‘사랑과 전쟁’

by 어린이어깨동무 2017. 6. 19.

[이슈]


남과 북의 '사랑과 전쟁'


황윤옥(하자센터 센터장)


겨울이면 아이들의 허리까지 올 정도로 내리는 눈이 예사였다고 한다. 바다가 멀지 않아 생선도 먹을 수 있었고, 밭농사도 지을 수 있어서 감자는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올 해 여든 넷, 친정엄마의 고향은 일제강점기의 함경도 영흥군이다. 지금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남도 금야군. 태어났을 때는 일본이, 지금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주인인 땅. 여든 넷의 할머니는 그곳에 어린 시절과 엄마 산소를 두고 남으로 내려와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었다. 그런데 고향을 두고 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국민이 된 대한민국은 전쟁을 벌였고, 고향은 적진(敵陣)이 되었다. 38선을 넘어서 내려 온 서울에서 다시 부산까지 피난을 가야했던 친정엄마에게 전쟁은 고향을 잃은 상실로, 북의 군대에 쫓겼던 공포로 남았다. 그 전쟁의 경험은 할머니의 삶 가장 밑바닥에 국가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생존감각을 자리하게 하였다.


지금 일하고 있는 하자센터는 청소년기관이어서 청소년들의 활동리듬에 맞추어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운영하고 월요일에 휴관한다. 언젠가 토요일 행사 중에 친정엄마의 전화를 받게 되었는데, 토요일은 쉬는 날이 아니냐고 해서 하자센터는 월요일에 쉰다고 했더니, 바로 왜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느냐는 한숨이다. 근무일도 다 나라가 정하는 것이고, 그것을 어기면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걱정은 곧 여든 넷 할머니가 국가에 대해 갖는 두려움이다. 북쪽 국가에 쫓겨 고향을 잃었고, 이제 남쪽 국가의 말을 잘 들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정작 당신은 두려움이라고 느끼지 조차 못하고 있는 두려움.


그렇다. 지난 60년을 넘는 기간 동안 북쪽의 국가와 남쪽의 국가는 모두 전쟁을 통치의 수단으로 삼아, 국민이 겪은 전쟁의 경험과 상처 위에 군림하였다. 정전이 아니라 휴전이어서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위협은 늘 유효했다. 60년도 넘는 세월동안 그렇게 친정엄마는 국가가 필요할 때마다 전쟁의 경험을 소환 당했다. 치유와 회복의 기회는 없었다. 그래서 올 해 현충일 추념식에서 전쟁의 후유증을 치유하기보다 전쟁의 경험을 통치의 수단으로 삼았던 이념의 정치, 편가르기 정치를 청산하겠습니다라고 한 대통령의 고백은 놀랍고 고맙다. 전쟁을 국민들을 겁주고 휘두르는 통치의 수단으로 삼았음을 드디어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인정하였다는 데서 놀랍고, 이제 전쟁의 경험에 눌리지 않고 상실과 공포의 경험에서 벗어나는 치유와 회복을 할 수 있겠구나 싶어서 고맙다.


▲ 2012년 어린이어깨동무의 날 '6.25를 평화의 날로' 


난학교*의 시작도 쫓겨남이었다. 한남동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일본인 건물주가 비싼 값에 싸이에게 건물을 팔면서 갑자기 운영을 포기하고 쫓겨나야하는 재난을 맞는다. 일방적 통고, 강제집행 등 내몰림과 쫓겨남의 젠트리피케이션*에 맞서면서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오히려 재난에서 배우는 학교를 만들었다. 그리고 재난학교라는 이름 사이에 아름다울 미()를 넣었다. ‘난학교’, 재난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 그것의 출발은 재난을 직시하는 힘이다. 전쟁은 지난 역사에서 한반도의 가장 큰 재난이었고, 여든 넷 할머니의 온 삶을 쥐고 흔들어 놓은 재난이었다. 전쟁이 통치의 수단을 벗어났으니 이제야말로 우리의 전쟁 경험을 직시하고 한반도를 재난 학교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내친 김에 하나 더.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도시 베로나의 두 가문, 몬태규가와 캐플릿가 사이에는 어디에서 왜 시작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원한이 있다. 두 가문의 이 해묵은 원한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애틋한 연인들,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적 사랑의 전제이자 배경이다. 원한을 자기 가문의 힘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배경으로 삼고 있는 어른들 덕분에, 원수 집안이지만 왜 원수가 되었는지는 모르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비극이다. 원한에 대해 질문할 수 없기에 결국 죽음으로 지킬 수밖에 없는 사랑. 한반도의 재난학교는 남과 북의 원한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사랑으로 시작하면 어떨까.


올해 625일은 전쟁의 경험을 소환하는 날이 아니라 남과 북이 전쟁을 넘어서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한반도라는 재난학교에서 마음 놓고 사랑하는 남과 북의 로미오와 줄리엣들을 상상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 재미난학교 : ‘젠트리피케이션의 대표적인 예로 소개되고 있는 한남동의 문화공간 테이크아웃드로잉은 드로잉 사태를 재난이라고 명명하며, 재난의 공공성을 선언했다. 이후 재난현장에 난학교를 스튜디오 형태로 세워 문화와 예술로 재난을 넘어서는 활동을 하고 있다.


* 젠트리피케이션 : 상업지역 재활성화와 함께 급격한 임대료 상승으로 기존 소규모 임차인이 비자발적인 이동을 하게 되고, 그 자리에 대형 프랜차이즈가 들어서는 잠식현상



황윤옥 | 어린이어깨동무 이사이자, 하자센터 센터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사무총장, 어린이어깨동무 사무총장을 지내면서 남녘 어린이와 북녘 어린이들을 위한 일을 고루 해왔습니다. 얼마 전까지 서울시교육청 참여·소통보좌관으로도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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