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7_3 정경화_겸애(兼愛)를 주장한 세계시민주의자 묵자: 무엇이 묵자(墨子)를 전쟁에 뛰어들게 하였는가?

by 어린이어깨동무 2017. 6. 19.

[시선 | 평화를 이야기하는 철학자들]


겸애(兼愛)를 주장한 세계시민주의자 묵자

: 무엇이 묵자(墨子)를 전쟁에 뛰어들게 하였는가?


정경화


묵자는 중국 춘추시대 말 전국시대 초 사람으로 유가와 비교될 정도로 일가를 이룬 사상가이다. 특히 국가 간 전쟁으로 민중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었던 당시, 묵가(墨家)라는 집단을 형성하여 평화를 이루기 위한 일에 직접 뛰어들어 여러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묵자는 가족애를 강조했던 유가사상을 비판하였는데, 이런 묵자에 대해 맹자는 애비도 모르는 금수와 같은 존재라고 비난하기도 했지만, “겸애를 주장하여 머리끝에서 발꿈치에 이르기까지 온 몸이 다 닳도록 천하에 이로운 일이라면 행하던 사람이었다.”고 말하여 묵자의 실천가로서의 헌신을 높게 평가했다.


▲ 묵자 - 사진출처 : 네이버지식백과


묵자가 살던 시대 중국은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던 때로 열강의 주변 약소국에 대한 침략이 끊이지 않았다. 전쟁의 규모가 점점 더 커지고 장기화 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은 더욱 더 피폐해지고 있었다. 이러한 침략전쟁을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사람이 묵자이다. 묵자는 전쟁을 반대하는 자신의 의견을 비공(非攻)이라는 말로 압축적으로 표현하는데, 전쟁은 의롭지도 이롭지도 않기 때문에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강한 국가가 약한 국가를 침탈하는 것은 우리가 남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훔치는 것과 같이 도덕적으로 정당하지 않다. 또한 지배자의 입장에서야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고 거느리는 백성을 수를 늘려 이로움을 취할 목적이 있겠지만, 전체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이로울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묵자는 보다 근본적으로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이 무엇인지 설명하는데, 우리가 타인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을 해치지 않지만 남을 해치곤 한다. 이렇게 나와 남을 구별하는 마음에서 여러 가지 갈등이나 부도덕한 일들이 일어나듯이 전쟁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쟁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남을 나처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이런 마음으로 말미암아 천하의 큰 이익이 생겨난다.


이러한 마음, 타인을 자신과 같이 위하는 마음이 겸애(兼愛)이다. 묵자는 겸애를 특정한 타인만을 사랑하는 별애(別愛)와 구별한다. ()이라는 한자어는 두 개의 벼 화자()와 한 개의 손 수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람이 손으로 두 포기의 벼를 모아 쥔 형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겸애는 모두를 아우르는 인류애적인 사랑을 뜻하는 것이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두루 모든 사람을 사랑한 후에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된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두루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을 기다리지 않는다. 두루 모두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 때문에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된다.

 

묵자는 가족애나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사랑과 같이 차별적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느 누구에 대한 사랑 때문에 다른 이를 공격하고 착취할 수 있기에 모든 인류에 대한 보편적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겸애가 평화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태도임에도 당장 전쟁이 계속 일어나는 속에서 겸애를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전쟁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안 묵자는 보다 직접적인 행동에 나선다. 침략전쟁을 일으키는 편에 맞서 싸울 평화유지군의 필요성을 느낀 묵자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 뿐 아니라 군사전술을 개발하고 전쟁에 대비한 훈련을 실시한다. 실제 묵자의 무리는 강력한 군사조직이 되어 전쟁을 막는 성과를 이룬다. 강대국인 초나라가 성 공격 기술이 뛰어난 공수반을 앞세워 약소국인 송나라를 공격할 계획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묵자는 열흘밤낮을 걸어 초나라의 혜왕을 만나 전쟁을 만류하지만 혜왕은 전혀 전쟁의 의지를 거두지 않았다. 이에 묵자는 혜왕이 보는 앞에서 공수반의 성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내는 수성 전술의 시범을 보였다. 공수반이 묵자를 먼저 죽이고 송나라로 쳐들어가면 되지 않느냐고 주장하지만 묵자는 동료들이 송나라에서 대비하고 있음을 알려 혜왕이 결국 전쟁을 포기하게 만든다.


이와 같이 묵자는 나의 평화, 자국의 평화만을 걱정한 애국주의자가 아니라 전 인류의 평화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침략자에 맞서는 방어전쟁까지 불사한 실천가였다. 겸애라는 사랑이 미치는 범위가 어느 한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떤 곳이라도 미치기 때문이다. 게다가 묵자는 겸애가 공간 뿐 아니라 시간을 초월하는 사랑임을 주장한다.

 

넓은 지역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과 좁은 지역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과는 같은 것이다 겸애의 입장에서 보면 그러한 것이다. 과거의 사람들을 사랑하던 것과 미래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과 현재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과는 모두 같은 것이다.

 

묵자는 전쟁과 같은 불행에서 인류를 구제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세계시민주의 활동가일 뿐 아니라, 미래 인류에 대해서도 걱정한 사람으로 요새로 치면 지속가능성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같은 입장인 것이다.


묵자는 겸애를 실천하는 것은 곧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 주장한다. “하늘의 의지는 사람들이 힘이 있으면 서로 일을 도와주고, 재물이 있으면 서로 나누어 주고, 올바른 도를 알고 있으면 서로 가르쳐 주기를 바란다.” 하늘의 의지를 따르게 되면 국가 간 전쟁이 사라지고, 사회는 평등해져 모든 사람이 평화로운 삶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묵자가 인류의 평화를 위해 헌신했던 때로부터 2500여년이 지난 지금, 전쟁은 사라지지 않고 인류 전체가 평화로워지는 날은 요원해 보인다. 묵자가 당시 목격했던 민중의 삶은 굶주린 자가 먹지 못하고, 추운 자가 입지 못하며, 피곤한 자가 쉬지 못하는 것이었다. 현대인 또한 무력전쟁으로 인해 그리고 불평등한 사회로 인해 생존과 건강을 위협받고 있다. 현대인들이 여전히 평화와 평등의 가치를 빼앗긴 채 살고 있는 것은 연대와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겸애가 인간사회의 바탕이 되지 못하고, 자기만 그리고 자기 가족과 주변인들만 위하는 별애가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는 특권층일수록 별애가 커서 하늘의 뜻을 거슬러 힘도, 재물도, 지식도 독점하고 타인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일삼아 민중의 삶이 더욱 각박해지고 있다. 게다가 최근 별애가 매우 각별한 정치인들에게 나라를 맡기는 불운을 겪은 바 있어 민중의 고통이 극심한데, 특히 미래에 대한 배려가 없어 청년과 어린이들이 가장 위협받고 있다. 평화로운 세상, 평등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겸애를 키우고, 별애는 잠재우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더하여 진정한 하늘의 뜻을 온전히 받들어 겸애의 정치를 실행할 정치지도자, 머리끝에서 발꿈치에 이르기까지 온 몸이 다 닳도록 천하에 이로운 일이라면 행할 실천가로서의 정치지도자 또한 절실하다.

 



정경화 | 대학에서 때때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세상에 정착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녹록하지 않아 늘 궁시렁대지만, 작은 힘이나마 보태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세상 만드는데 일조하고픈 소망은 꼭 쥐고 살아가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