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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7_6 김동진_아일랜드에서 바라보는 한반도 평화 2

by 어린이어깨동무 2017. 6. 19.

[시선 아일랜드에서 쓰는 평화학 이야기]


아일랜드에서 바라보는 한반도 평화 2


김동진


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가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이후, 세계 많은 분쟁 지역에서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이들의 아일랜드 방문이 늘어나고 있다. 일례로 필자가 피스레터를 쓰고 있는 오늘, 518, 스리랑카의 타밀과 싱할라 사람들이 아일랜드 사람들과 함께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와 데리에 모여, 2009년 스리랑카 타밀 지역 물리바이칼 대학살을 기리는 벽화 제막식을 거행했다. 광주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 대한 한국 신문 기사를 읽으며 하루를 시작한 필자는, 거의 30년 뒤 같은 날 타밀 민족에게 발생한 학살과 아픔을 기억하는 행사 가운데, 국가 폭력으로 희생당한 분들의 얼굴이 인종과 국경을 넘어 하나로 겹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1972년 블러디 선데이를 경험한 아일랜드 사람들이, 타밀 대학살에 대한 행사를 후원하고 조직한 것도 단순한 공감을 넘어, 타민족의 고통 속에 자기민족의 아픔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 제막식 내내 눈물을 흘리던 타밀 여성 한 분은 마치 다시 돌아 갈 수 없는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며, 아일랜드 행사 준비 관계자에게 감사를 표했다. 유엔, 유럽연합 의회, 영국, 미국 등 세계 여러 곳을 돌며, 타밀 대학살을 증언해 온 이 여성은 그동안 자신의 증언을 들어 준 사람들도 매우 고마웠지만, 아일랜드에서는 동정을 넘어 진정으로 자신의 아픔을 이해하고, 같이 연대하기를 원하는 마음을 온 몸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9년 만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된 오늘, 타밀 지역 물리바이칼에서는 희생자를 기리는 마음으로 작은 조약돌에 이름을 써넣는 행사마저도 금지되어 있다. 고향에서 금지된 행사를 타국의 환대 속에 진행한 타밀 사람들의 아픔은 어떤 한 민족만의 아픔이 아닐 것이다.


▲ 5월 18일, 스리랑카의 타밀과 싱할라 사람들이 아일랜드 사람들과 함께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와 데리에 모여, 2009년 스리랑카 타밀 지역 물리바이칼 대학살을 기리는 벽화 제막식을 거행했다. 

@ www.tamilnet.com


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가 한창이던 2000년대 중후반 한반도와 스리랑카의 평화 프로세스는 위기를 거듭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결국 중단되었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시 전쟁이 재발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위기론이 등장하기도 했다. 스리랑카의 경우는 이보다 한 발 더 나아가 결국 싱할라 정부의 타밀 지역 폭격으로 전쟁이 시작되고 수십만 타밀 민간인이 학살당하는 비극을 겪었다. 물론 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도 순탄한 길을 걸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IRA 등 무장단체의 무장 해제 문제, 과거사 청산 문제, 권력 공유 문제 등 평화 프로세스의 걸림돌로 인해 의회가 붕괴되는 등 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는 2000년대 중반까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북아일랜드 무장단체들은 결국 무장 해제를 선언했다. 강경파인 신페인당과 민주연합당이 평화 프로세스에 참여하여 권력 공유를 이끌어 냈다. 아일랜드와 영국 정부, 유럽연합은 지속적으로 시민사회의 평화교류협력 사업을 독려했다.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 낸 걸까? 북아일랜드 시민사회 평화단체들을 방문한 타밀과 싱할라 사람들은 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타밀과 싱할라 시민사회의 평화 활동과 화해작업이 아일랜드보다 덜 역동적이었기 때문일까. 아일랜드 단체의 사람들은 그 때문이 아니라고 강하게 주장하며, 자신들이 얼마나 운이 좋았는가에 대해 역설했다. 물론 자신들의 평화 활동이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지정학적 환경이 우호적이었기 때문에 이를 지속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영국, 유럽연합 모두 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가 성공하기 위해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유럽연합의 성공을 위해 아일랜드의 평화정착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스리랑카의 평화 프로세스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치르던 미국의 지정학적 전략에 도움이 되지 않는 프로세스였다. 타밀 반군이 둘러싸고 있던 트링코말리 항구는 세계 수준의 자연항으로 중동에서의 임무를 수행하는 미군 핵잠수함이 정박하기에 최적의 전략항구였다. 미국은 스리랑카 싱할라 정부와의 동맹을 강화하면서 군사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이는 타밀과 싱할라 사이의 군사적 균형을 무너뜨려, 싱할라 정부가 대 타밀 전쟁과 학살을 기획하는데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결국 타밀과 싱할라 시민사회 사이의 협력은 물거품이 되었고, 수십만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 이후 타밀 지역은 싱할라 정부의 군사 통치 지역이 되었다.


한반도에서도 지정학적 악조건은 평화 프로세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미국 부시 행정부의 악의 축 발언으로 촉발된 북미 관계 악화, 북한의 계속된 핵개발, 미사일 실험은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계속 증가시켰다. 민간의 교류협력 사업은 결국 전면 중단되었다. 새로운 한국 정부가 평화 프로세스 재개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와 같은 강대국들이 둘러싼 지정학적 환경이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은 무시할 수 없는 변수이다.


한편 안타깝게도,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와 함께 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의 지정학적 환경도 점차 부정적으로 변화되고 있다.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은 브렉시트 찬성을 추진했고, 신페인당은 다시 통일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결국 올 해 초 북아일랜드 의회가 붕괴되었고, 아직까지 정부가 구성되지 못한 채로 불안정한 상황을 이어가고 있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순간 다시 한 번 남북 아일랜드 사이에 군사분계선이 설치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도 커져가고 있다.


아일랜드에서 한반도와 스리랑카를 함께 바라보는 오늘, 필자는 갈등의 핵심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한, 평화 프로세스는 지정학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항상 위기에 봉착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정말 어렵게 시작한 평화 프로세스가 너무나도 어이없게 무너져 내리는 이유이다. 결국 지정학적 상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지역 갈등 집단의 지도자가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해결을 최우선 전략으로 삼을 수 있는가가 평화 프로세스의 지속가능성에 가장 중요한 열쇠로 보인다. 하지만 갈등 집단의 정치 군사지도자들에게 이런 평화에의 헌신을 기대하는 것이 현실적인 일일까? 갈등과 외부위협을 활용해 자기 집단의 충성도와 자기 권력을 강화하고 싶은 유혹은 어느 지도자에게나 매한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 좌절하기는 이르다. 아일랜드에서 열린 타밀 5.18 행사에 참석한 모든 이들은 한목소리로 우리는 혼자가 아님을 느꼈다고 말한다. 타밀 대학살만을 바라볼 때, 타밀 사람들은 세계가 자신들을 버렸고, 이는 타밀만의 고통이라고 느꼈지만, 아일랜드 사람들과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눌 때, 이들은 전 세계에서 전쟁과 갈등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꿈꾸기 시작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꿈꾸는 우리가 다른 민족의 아픔과 평화 프로세스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한 국가의 시민사회가 가진 힘만으로 한 지역의 평화 프로세스가 처한 지정학적 상황을 바꾸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서로를 격려하며 서로의 상황을 널리 알릴 때, 이는 갈등과 전쟁을 활용해 권력을 유지하는 매력적인 정치 전략의 효과를 떨어뜨리는 가장 강력한 평화적 수단이 될 수 있다.

 


김동진 한신대에서 신학을시드니대학에서 평화학을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을 공부했다현재는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의 국제평화학 겸임교수로 평화학을 강의하면서북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비교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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