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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8_1 이산(이이화)_2017년 여름 평화의 편지: 증오의 다리를 건너면 무엇을 만날까

by 어린이어깨동무 2017. 8. 1.

[이슈]


2017년 여름 평화의 편지: 증오의 다리를 건너면 무엇을 만날까


이산(이이화) 연구공간 파랗게날 대표연구원 


8, 우리 현대사를 회고하는 것은 깊은 상심을 동반한다. 극악한 35년 일제 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났으나 잘못 낀 첫 단추는 대가가 처참하다. 반민족 과거 청산에 실패하고 단일 민족정부 수립에 실패한 과오는 두 세대가 흘렀어도 현존 문제로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빼앗긴 나라에서 시달리던 민족혼이 되찾은 나라에서도 부대끼는 이런 이율배반이 어디서 오는가? 하얼삔역의 총탄이자 아오내장터의 태극기이듯 그릇된 흐름에 맞서는 불굴의 혼마저 죽은 것은 아니어서 19604.19혁명, 1980서울의 봄’, 1987‘6월 항쟁으로 생명력은 분출했으나, 이내 5.16 군사정변, 5.18 광주학살, 민주세력의 분열로 억눌렸다. 이 땅에 두 세대가 지나갔어도 나와 다른 생각엔 여전히 증오의 화살을 주저하지 않는 광장에 서 있다. 우리는 그 증오의 다리 어디쯤 있는가?


이념에 휘둘린 해방’(역사가 바로 서고 상처를 보듬어 시나브로 어우러지는 해맑은 광복의 날을 고대한다)정국을 살아낸다는 것은 칼날 위 묘기여야 했다. 낮밤으로 뒤바뀌는 세상을 단지 살아남는 것이 목표였던 이 땅 구석구석 덮친 피비린내는 인간본성을 회의하게 한다. 제주, 여수순천, 문경, 보도연맹, 노근리, 함평, 산청함양, 거창……. 얼떨결에 맞이한 해방으로 쥐구멍을 찾던 친일세력의 야수성을 도구로 이승만 정권은 자신의 잠재적인 정치적 반대세력을 제거하는 데 양민학살을 활용하였고, 여순사건을 제압하고 만들어낸 국가보안법은 뒤이은 아류 독재정권들에게도 요긴한 올가미였다. 시커멓게 탄 민의는 깊이 묻어야 하는 엄혹한 시대가 참 길었다.

 

2009년 귀향한 나를 찾아와 조용히 글이나 쓸까 하던 성유보 선생께 한 말씀 주십사 2012526, 동호서당에서 마련한 다섯 번째 강좌는 이후 고택에서 듣는 인문학 강좌의 향방에 영감을 제시했다. 일생 정론직필의 언론인으로 살아온 선생은 관용을 주제로 삼으면서 우리 사회의 관용할 수 없는 것들을 분명히 짚었다. 남북분단으로 몰아간 김일성·이승만의 정치야욕, 반민특위 해체의 반민족 행위, 국가보안법의 폐해 등. 일생 듣고 싶은 것만 듣고자 하던 지역 어른 몇몇의 입에서 곧 빨갱이란 증오의 말이 튀어나왔다. 나와 같지 않은 생각을 경청하지 않는 경직된 시대에 정면으로 맞서야겠다는 역사학도로서의 존재이유를 일깨운 자리였으니, 선생은 물론 그 어른들과의 해후가 얼마나 고마운지. 억지 죄목으로 갇혀 망가진 몸으로도 굳건하던 선생은 그 1년 뒤(2014. 10. 8.) 살아온 삶을 다 연재하지 못한 채 심장마비로 홀연 떠났다. ‘통일레일의 해맑은 포부를 말하던 그 모습 선한데, 다시 여쭤들을 수 없으니 가슴 아프다. 선생이 떠난 한 달 뒤 고등법원에서, 이듬해 봄 대법원에서, 선생을 옭아맸던 국가보안법 위반재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고고하고자 하던 심신을 망가뜨린 동시대인의 행위가 왜 살아서는 화해를 구하지 못했을까? 애초 무죄였던 선생은 마석모란공원 묘역에 누였으나 편히 잠들 수나 있을까? 선생의 원고에 이런 말이 있었다.

 

진정한 민주주의자가 절대왕정과 공존할 수 있겠는가? 진정한 민주주의자가 군국주의자를 관용할 수 있겠는가? ‘관용사회의 모델이라고 할 만한 프랑스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이 문제에 부닥쳤다. 나치 협력자 숙청 문제였다. 카뮈는 반 나치 저항신문 <콩바combat전투>지에, ‘누가 감히 용서를 말할 수 있는가? [···] 내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증오가 아니라 기억을 기초로 하는 정의이다.’라고 기고했다.”

 

현대사의 원혼을 달래는 길은 옥죄는 금기를 하나씩 풀어헤치는 것이다. 하나둘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고 나와 너를 가르는 경계선을 허물 때,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기약하는 유연한 묘안들이 나타날 것이다. 사방이 트인 공간, 고택 누마루에 앉아 술렁술렁 바람을 맞으며 절감한다. ‘대화라는 꼭지로 이질의 가치관들이 만나 어떻게 부대끼고 깎여지는지 지켜보는 일은 절절하다. 2015년 해방 70년의 과제를 생각하며 빨치산과 토벌대의 만남도 그 선상에 놓였다. 한국 현대사의 상처가 깊은 지리산 벽송사 선방에 이제 팔순 구순에 접어든 어르신 여러 분이 마주 앉았다. 혈기방장하던 청년일 때 서로 죽여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들. 우리 동지를 죽인 자들과 한 자리에 앉을 수 없다며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했고 덕담 한마디 오가지 못했으나, 헤어지면서는 그동안 참 애썼소. 건강하게 오래 사시오.”라고 말 건넸으니, 그 깊은 주름에 증오도 좀 묻히는 것인가. 그 자리를 알리는 말에 이렇게 적었다.

 

저 들에 나가 밭갈이하는 농부에게 물어보라. 자본주의가 무엇이고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과연 제대로 답할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지리산 싸움에서 죽은 수많은 군인과 경찰과 빨치산들에게 너희는 무엇을 위해 목숨을 바쳤냐고 물어보라. 민주주의를 위해서 혹은 공산주의를 위해서 목숨을 바쳤다고 말할 자가 과연 몇 명이나 있겠는가? [] 이 싸움은 어쩔 수 없이 하지만, 후에 세월이 가면 다 밝혀질 것이다.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에 끼어 벌어진 부질없는 동족상잔이었다고.”

 

자유롭고자 하던 영혼들에게도 현대사의 칼바람은 비켜가지 않았다. “8·15해방은 그의 모순을 극단적인 비극의 형식으로 연출하였다. 그가 태어나고 사랑했던 도시 서울은 그가 들었던 민주주의 민족문학의 깃발에 불법의 낙인을 찍었고, 그가 선택했던 도시 평양은 그의 치열했던 삶을 반역의 죄명으로 모욕하지 않았던가. 날짜도 모르게 처형된 그의 쇠약한 심신은 반세기가 넘는 오늘까지 하늘 아래 어느 한 곳 안식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참기 힘든 안타까움을 선사한다. 그의 삶은 식민지시대의 위험한 지뢰밭을 횡단하고 있고, 그의 죽음은 민족분단과 동족상잔의 가장 아픈 상처에 직결되어 있다.”라고 한 임화(고택에서듣는인문학강좌47_염무웅, <임화의 해방전후>, 2015. 11. 28.(), 둔산재)가 그랬고, 정치 문인으로 갈아타기 힘든 한결같은 문학주의자 백석(고택에서듣는인문학강좌 48_박태일, <백석, 어디 있는가?>, 2015. 12. 26.(), 영승서원)이 그랬다.

 

분단 한반도는 통일 독일을 자꾸 쳐다보게 된다. 연착륙 통독에 이르게 된 씨앗이 바로 신뢰에 기초한 소통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독의 동방정책Ostpolitik은 빌리 브란트라는 진보적 지도자가 대화로 평화공존을 강화하면서 화해를 통한 변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정책이었다. 이런 기조는 이후 헬무트 콜 등 보수 정권으로 바뀌고도 그대로 유지되어 결국 억누를 수 없는 동독인의 통일 열망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5년마다 바뀌는 정권이 모든 것을 뒤집어엎어 증오로 원점 회귀하는 우리에겐 뼈아프다. 더욱이 지정학적 요지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을 녹록하게 할 국제관계의 역량을 고심하게 한다. 해방 70년의 과제를 짚은 일환으로 고택을 찾으신 노교수의 말씀 몇 대목은 지금도 되뇌고 있다.

 

해양세력을 겨누는 또는 대륙으로 침략해 들어가는 다리’.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그렇게 인식되었다. 한말 제국세력들은 동강난 다리나 부러진 로 만들어 한반도를 나눠 갖고자 하였으니, 일제의 독식이 마감하면서 결국 그리 되었다. 침략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피하고

자 한반도 중립지대 안이 개화파 지식인들에게서 나왔으나, 미력했다. 지난 세기의 제국주의와 냉전주의 잔존물을 극복하여 불행한 이며 다리가 되어버린 남북분단을 허물고 세계 평화로 나아갈 해양과 대륙을 잇는 진정한 평화가교는 어느 즈음인가?”(고택에서듣는인문학강좌 45_강만길, <분단시대의 역사를 위하여>, 2015. 9. 26.(), 침류정) 신념의 인간은 향기롭다. 좌에 섰건 우에 섰건, 적이었건 동지였건, ‘보다 우리를 앞세웠던 그 삶은 숙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들을 한자리에 모시고 방법은 달랐지만 공동체를 위한 헌신과 공로는 한결같았습니다. 서럽고 불편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정권을 한번 가져보고 싶었다. 만주벌판을 달리던 독립군의 말발굽처럼 민적을 찢고 스스로 목을 친 이주환의 자귀처럼 생명력 넘치는 불굴의 혼은 2017년으로 넘어오면서 광장의 촛불에서 그런 꿈을 꾸었었다.

 

8월의 상심은 전쟁 없는 평화를 간절히 꿈꾼다. 인간의 것이 아닌, 짐승의 것인 전쟁에 좋은 전쟁이 어디 있고 나쁜 전쟁이 어디 있는가. 그 본질은 증오이다. 이 증오의 다리를 건너 따뜻한 인간애를 만나고 싶다. 힘이 아닌 오로지 이해로 이루어지는 평화 아닌가.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 새벽 4시에 맛보는 8월의 대기는 쌉싸름하다.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파랗게 날 돋는 바람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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