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레터(글)2017.10.30 15:07

[시선 | 브루더호프에서 날아온 평화 편지]


평화를 위해 촛불을 밝힙니다

 

원마루


안녕하세요, 어깨동무 식구 여러분. 다시 한번 영국 너도밤나무 숲에서 인사드립니다.

지난 8월 초, 한국에서 잠시 뵈어서 참 반가웠습니다. 어깨동무 사무국 식구들이 크리스토프 할아버지 추모식에 와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2주동안 책 발간식과 추모 모임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이번에 특히 뜻 깊었던 것은 한국에서 더불어 사는 삶을 살아가고 건설하고 계신 분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겁니다. 추모식은 서울 인수동의 마주 이야기라는 마을찻집에서 열렸는데요, 사실 마주 이야기 찻집 지기님들은 밝은누리라는 운동의 청년분들이 창업을 한 곳입니다.

1991년 몇 명의 청년들이 모여 한국이 처한 아픔을 함께하고, 희망을 살아내고자 하는 꿈으로 시작된 이 운동은 현재 인수동과 강원도 홍천 서석마을에서 청년들과 가족들이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유기농 마을 밥상 같은 마을 식당을 운영하고, 생태건축법을 배워 집을 짓고, 공동육아에서부터 생동중학교, 대학 교양 과정인 삼일학림에 이르기까지 배움과 가르침을 통해 서로를 살려가고 있습니다. 



저는 잠시나마 이곳에서 사는 청년들을 만나며 얼마나 많은 한국의 청년이 더욱 평화로운 미래를 꿈꾸며 조용히 자기 자리에서 삶을 일구어가고 있는지 실감했고, 그 실험을 응원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의 장난기 어린 미소는 한 여름의 피로를 덜어주었습니다.




▲ 8월 7일 서울 인수동에서 열린 크리스토프 아놀드 추모식 및 

<희망이 보이는 자리> 발간식에 모인 사람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모습.             

사진 <복음과 상황> 이범진 기자



추모식 때 짧은 강연을 해 주신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님을 기억하시죠? 한국 전쟁 때 아버지를 북한군에게 잃고, 동생도 전쟁터에 나간 뒤로 영영 소식을 듣지 못하는 아픔을 겪은 분입니다. 피난 시절 해군에 입대에 미군 해군에서 훈련을 받다가 만난 친구를 통해 미국 유학길에 오르고, 귀국해서는 이화여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던 서광선 선생님은 1991년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국제회의에 참석했다가 북한의 대표단들과 평화에 관해 토론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원수의 아들’인 북한 그리스도교 연합 강량욱 목사의 통역을 맡아주게 됐습니다. 



북한 인사의 통역을 해 주면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의 적용을 받아 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고 결심했는데 북한의 기독교계 인사들을 돕는다는 게 내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서광선 선생님은 그날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면서 가슴에 와 닿은 말을 기억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 갚는 최선의 길은 원수를 도와주고 화해하고 사랑하는 일이다.” 끝내 선생님은 통역을 허락했는데 뜻밖에 그 일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는 경험이었습니다. 서광선 선생님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순간 증오에서 벗어났습니다.”라는 말씀을 하고 멈춘 순간 잠시 침묵을 지키던 청중이 크게 손뼉을 치던 순간을 기억하시죠? 



한국을 2주동안 방문하고 돌아온지 3주가 넘었지만 여전히 저희 부부는 그때의 만남을 다시 생각하고, 그때 저희를 따뜻하게 맞아준 분들 한 분 한 분을 떠올리며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 실험이 이어지고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이 강경한 발언을 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숨도 못 쉴 정도로 팽팽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8월 초 한국에서 만난 분들이 저희에게 일러주신 것은 ‘평화로운 미래를 향한 확신을 품고 지금 하는 작은 일을 그대로 하라.’ 였습니다. ‘두려움에 지지 말고, 화해와 용서가 답이니 포기하지 말라’였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도 어린 세 아들과 함께 저녁마다 촛불을 밝히고 평화를 위한 노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왠지 마음에 힘이 생기고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은 영국인 친구들에게 남북문제에 폭력이 답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어야 하겠습니다. 



며칠 전 저녁에 열린 공동체 모임에서 제가 이런 한국의 상황을 알리고, 걱정을 나누었더니 모임 후에 한 할아버지가 제게 용기를 주셨습니다. “한국의 얘기를 해 줘서 고마워. 내가 어렸을 때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라 한밤중에 대피하는 일이 많았어. 공습 사이렌이 울리면 우리 가족이 사는 3층에서 지하실까지 뛰어 내려가는 일이 수도 없이 많았고. 하지만 그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우리에게 안정감을 제공해 주셨어. 뭐 큰 말씀을 하신 건 아니었어. 나에게 늘 미소지으면서 따뜻하게 말씀해 주셨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함께 기도해 주셨어. 그렇게 부모님이 함께한다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에 두려움도 이겼던 것 같아.” 



이렇게 저희는 아이들과 함께 한국과 세계 곳곳의 평화를 기원하며 촛불을 밝히겠습니다. 그리로 응원의 마음을 담아 저희 부부가 아이들과 함께 한국을 생각하며 부르는 노래 가사를 한국말로 번역해서 보내 드립니다. 이 노래는 어린이들의 목소리로 인터넷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QCN893hzueQ




내 마음속의 작은 빛(This Little Light of Mine)


내 마음속의 작은 빛 

이 빛을 빛나게 할 거야(3번 반복)


어디를 가든지

이 빛을 빛나게 할 거야(3번 반복)


밤이 새도록

이 빛을 빛나게 할 거야(3번 반복)


한국에까지(원하는 나라 또는 사람 이름을 넣을 수 있음)

이 빛을 빛나게 할 거야(3번 반복)




2017년 9월 7일

너도밤나무 숲에서, 마루와 아일린 드림





원마루  아내와 함게 세 명의 개구쟁이 아이들(6, 2, 유치원)을 기르며 영국 도버 근처의 너도밤나무(Beech Grove) 브루더호프에서 살고 있다. 어린이가구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왜 용서해야 하는가,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 등을 번역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