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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2_1 이호규_국민은 객체가 아니다

by 어린이어깨동무 2017. 4. 24.

[이슈]

 

국민은 객체가 아니다

 

이호규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났더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기로 결정했다고 모든 매체에서 이구동성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사드라니? 그게 뭐야? 왜 그걸 배치해야 해?" 

"사드가 반드시 필요한가? 다른 방법은 없나? "

"당연하지 이 기회에 북한의 미사일을 무력화 시켜야지. 너무 잘했네."

 

이렇게 사드 배치를 두고 시민들로부터 저마다의 반응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남북한 관련 문제는 항상 긍정과 부정의 이분법적 양태를 보여 왔다. 사드 배치에 대한 찬반도 중요하지만, 왜 사드를 배치하는 결정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졌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정부에서는 사드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고려하지도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해왔다. 그런데 왜 갑자기 국가안보전략회의에서 번갯불에 콩 구어 먹듯이 결정을 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사드 배치결정에 이어 지역선정까지 국민적 합의 없이 순식간에 이루어진 현재 상황에서 대다수의 국민과 성주 주민들의 분노는 정부여당에 대한 민심이반으로 나타나고 있다.

 

왜 우리는 항상 정부에서 하라는 대로 해야 하는지. 특히 사드와 같이 우리들의 생명과 안전, 한반도와 동아시아 국제질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한 결정이 밀실에서 이루어져야 하는지. 이런 의문을 가진 국민들은 소통을 하지 않는 정부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소통은 무엇인가?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견을 솔직히 말하여 동의를 구하는 것 혹은 합의를 이끌어내는 행위라고 사전에서 정의하고 있다. 평생을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한 필자도 커뮤니케이션의 정확한 뜻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다만 커뮤니케이션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따라서 커뮤니케이션은 ex-communication 이기도 하다. 누구와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는 행위는 누구를 배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누구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누구를 배제하고 어떻게 결정되는가? 이 점이 가장 중요하다. 그것은 바로 커뮤니케이션하고자 하는 주체의 마음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커뮤니케이션에는 주체와 객체가 공존한다는 이야기일까? 그렇다. 현재 우리들이 상식 수준에서 논의하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정의는 주체의 입장이 반영되어 있다. 커뮤니케이션 주체가 거꾸로 객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단순히 주체의 입장에서 객체로부터의 동의 혹은 합의를 추구하는 행위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주체가 누구와 상대하고 누구를 배제하는지는 자신이 상대방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달려 있다. , 상대방을 주체로 인정하는가 안하는가에 따른다. 현 정부는 자신만이 주체이고, 그 이외 모든 우수마발(牛溲馬勃)들을 객체라고 보는 것 같다왜 자신들만 주체라고 생각하는가? 자신들의 의견이 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에서 비록 자신이 믿고 있는 의견이 진리일지라도 상대방과 자유로운 토의를 통해 그들이 인정하지 못하면 도그마라고 했다.

 

사람들은 항상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 일반 사람들을 속인(俗人)이라고 하는 이유는 글자 그대로 계곡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아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반면에 선인(仙人)은 산의 정상에 있기 때문에 사방팔방 두루 살피면서 현상을 파악할 수 있다. 마치 현 정부는 자신들이 속인이 아니라 선인이라고 자칭하는 것 같다. 현 정부가 이러한 진리를 외면하고 있으니, 추락된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커뮤니케이션이 주체의 입장에서 정의되고 있다면, 왜 사람들은 커뮤니케이션을 해 왔고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요구된다. 사람의 지식 혹은 인식은 한계가 있다. 모든 것을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따라서 남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함으로써,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무엇을 제대로 이해 못하였는지를 파악해야한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델포이 신전의 글이 떠오른다. 왜 많은 사람들은 현 정부를 불통의 이미지로 인식하고 있는가? 그것은 현 정부가 자신들만이 이 사회의 주체라고 보는데서 기인한다. 또한 그것은 다른 말로 자신들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이 사회의 영원한 객체라고 간주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불순분자’, ‘위험한 사람들’, ‘이 사회에 암적인 존재들이라는 말이 암시하듯이, 자신들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 주체가 아니라 ex-communication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다. 현 정부는 창조성의 보복을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다. 항상 자신의 의견이 진리일 수 없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미 날갯짓을 시작한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자신의 피곤한 날개를 어디에서 접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호규 | 강원도 문막 포진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대학교를 마치고 미국 인디애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한 이후에 현재 동국대학교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전공분야는 커뮤니케이션 철학과 매체 역사이며 남북한 주민들의 교류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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