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3_5 최관의_욕 대장 종오가 질투를?

by 어린이어깨동무 2017. 4. 24.

[시선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욕 대장 종오가 질투를?


최관의


민준아! 과제 갖고 나와라. 다른 애들 다 끝났다.”

민준이는 앞을 못 봐요. 약시 정도가 아니라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어요. 국어공책을 꺼내 들고 아이들 책상 사이로 더듬더듬 나오는 걸 보고는 몸을 돌려 수업 준비를 하는 데 종오 목소리가 들려요.

앞도 못 보는 게 저리 꺼져. 장애인 새끼가.”

칠판 쪽을 보며 수학책을 꺼내고 있다가 놀라 뒤돌아보니 아닌 게 아니라 종오가 민준이를 밀치며 한 말이었어요. 앞이 안 보이니까 민준이가 더듬다가 종오 몸을 더듬은 겁니다. 순간 화가 욱하고 솟구치는 걸 참았어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내가 그동안 해온 것처럼 입에서 나오는 대로 잔소리했다가는 부작용이 크겠다는 감이라고 할까 느낌이 떠오르는 겁니다. 입을 콱 다물었지요. 속을 삭히는 새 종오와 눈이 마주쳤어요.

민준이한테 사과해라.”

거친 말을 해 놓고는 자기도 아차 싶은지 잘못을 인정하고 얼른 사과하네요. 더 이상 아무 말 안 하고 민준이 과제를 살피고 수업도 했어요. 잔소리를 안 하고 이 문제를 해결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이가 문제행동을 할 때 입으로 잔소리하고 야단쳐서 본전도 못 건진 경우가 많거든요. 더구나 종오처럼 거친 행동이 지속되고 있는 아이일수록 효과는 그만두고 부작용만 더 크더라고요.


놀이 시간이 다가오네요. 아이들 우유를 먹일 시간입니다. 우유 상자를 들어다 칠판 앞에 놓고는 털썩 주저앉아 우유를 나누어주기 시작했어요.

놀이동산 입장권 받아가세요.”

우유 먹고 놀러 나가란 뜻입니다. 민준이가 우유 가지러 나오다 또 종오 자리로 들어서는 겁니다. 안 보는 척 종오가 어떻게 하나 날을 세우고 귀 기울였어요.

여긴 내 자리야. 이리와 나랑 같이 우유 갖고 들어가자.”

차마 1학년 아이 입에서 나왔다고 믿기 어려운 거친 말을 하더니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드네요. 담임이 바로 코앞에 앉아 우유를 나누어주고 있어 그러나 싶기도 하지만 진심이 묻어나는 말투와 몸짓을 보며 아까는 순간 화가 나서 그랬나 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일이 있고 며칠 뒤 민준이 보조 선생님이 종오 이야기를 심각하게 하는 겁니다. 담임 모르게 민준이한테 욕하고 밀치기도 한다고요. 어쩌다 한 번 그런 거라면 모를까 되풀이 된다면 이건 작은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어요. 그 뒤로 며칠 동안 종오를 살피고는 이 모든 일의 일차적인 원인은 민준이에 대한 질투라고 결론 냈어요. 그 뿌리를 더 파고들면 수많은 까닭이 있지만 일단 겉으로 드러난 건 질투라는 거지요.


앞을 못 보다보니 입학한 날부터 담임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 사람들이 모두 민준이에게 관심을 주고 우리 반 아이들도 마음써주는 게 불편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해 봤어요. 그렇다면 종오에게 도움이 필요한 게 뭐지? 드러내 놓고 관심을 줄 만한 게 뭐가 있지? 아 맞다! 민준이는 앞을 못 보고 종오는 밥을 차분히 못 먹어. 자기가 좋아하는 수학이나 그림 그리기를 할 때는 집중을 잘 하는데 밥 먹을 때만은 전교에 소문이 날 정도로 잠시도 못 앉아 있어. 돌아다니고 수저로 식탁을 치거나 의자를 들었다 놨다 하고 밥 한 번 먹으려면 거짓말 안 보태고 열 번은 넘게 수돗가를 오가고. 다른 아이들 건드리고 뛰어다니고. 이걸 건드려 보자.


하루는 밥 먹다 종오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어요.

종오야! 오늘만 꼼짝 안 하고 밥 먹어줄래?”

이게 무슨 소리야 하는 눈빛으로 대답했어요.

밥 남기면 안 돼요?”

그냥 더 이상 묻지 말고 오늘만 그렇게 해줄래? 제발 부탁이다. 하루만 나 봐줘.”

대답도 안 듣고 급히 서둘러 종오 맞은편에 있는 자리로 가서 밥을 먹는데 녀석이 뭔가 감을 잡았는지 목소리는 내지 않고 입모양으로 물어보는 겁니다. 재미있다는 표정으로요.

왜요?”

조용히 하라고 손가락을 입에 대고는 턱으로 달 반 담임샘을 가리켰어요. 녀석은 더 구미가 당기는지 웃음 띤 얼굴로 왜 그러냐는 표정을 짓네요. 다시 종오에게 다가갔어요.

달 반 샘하고 내기했다니까. ‘니가 한 번도 안 움직이고 밥 먹는다.’에 걸었어.”

이기면 뭐 있어요?”

몰라. 그건 말 못 해.”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입니다. 눈치가 빤한 저 녀석이 관심을 보일까 싶었지만 안 먹히더라도 담임과 옆 반 샘이 관심 갖고 있다는 건 느낄 테고 잔소리하는 것보다는 부작용이 적겠다 싶어 시작한 일입니다. 그런데 저 재미있어 죽겠다는 웃음 띤 얼굴을 보니 저도 재미있어지네요. 이 내기에서 종오가 이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날 종오는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꼼짝도 안 했어요. 다만 온 몸을 비비 틀고 옆에 있는 의자를 발로 툭툭 차고 난리를 쳤지만 엉덩이를 떼고 일어서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성공을 하고 집에 갔어요.


다음 날 아침 어제 한 내기를 잊었는지 하루 종일 물어보지도 않더군요. 그 날은 점심 먹을 때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다른 날과 똑같이 돌아다니고 밥 남기고 그랬지만 간섭 안 했지요. 아이들을 모두 하교 시키고는 교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녀석이 방과후 수업을 마치고 교실에 들렸어요. 인사하고는 교실 앞문을 나서는 걸 불러 세웠지요. 제 앞에 온 종오에게 아무 말도 안 하고 실실 웃기만 했어요.

관샘! 왜요?”

…….”

태권도 차 기다려요. 말 안 하면 그냥 갈래요.”

이거 먹어라.”

제주도 초코크런치라는 과자를 한 개 내밀었어요.

너 먹어.”

별로 안 좋아해요.”

먹어 둬. 어제 네가 점심시간에 번 거야. 내기에서 번 거라고. 나도 하나 먹고 너도 하나 먹자.”

그제서야 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집니다. 담임이 껍질 까서 입에 넣어주니 싫다고 하던 녀석이 맛있게 먹고는 신나서 나갔어요.

요즘 우리 일학년 샘들은 종오에게 자주 말도 걸고 밥 먹기 내기도 해요. 힘들어 죽겠다고 하기 싫다고 하면서도 종오 이 녀석은 그걸 즐기고요. 오늘 장보러 시장에 갔다가 종오에게 줄 과자를 샀지요.

종오 이 녀석의 가슴에 있는 상처를 조금이라도 감싸주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잔소리하고 야단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그저 이렇게 해볼 뿐입니다. 막말 자꾸 해서 남은 말할 것도 없고 스스로 상처받고 거칠어지는 일이 줄어들도록 약효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최관의 |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회원이고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 ‘있을 건 있고 없을 건 없는 학교를 꿈꾸며 서울세명초등학교에서 1학년 아이들과 살고 있다. 청소년 시절 이야기를 담은 열다섯, 교실이 아니어도 좋아를 썼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