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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4_1 이경란_공동육아가 시국선언을 했다

by 어린이어깨동무 2017. 4. 25.

[이슈]


공동육아가 시국선언을 했다


이경란


아이들에게 정의로운 나라, 생명과 인권이 존중되는 공동체를 물려주고 싶습니다라는 제목으로 1121일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은 회원 단체인 어린이집과 방과후, 지역아동센터들과 개인회원들을 포함한 6,018명의 이름으로 시국선언을 했습니다. 다른 시민단체들에 비해 좀 늦은 감이 드는 시기에 시국선언을 하기까지,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았고 좀 꿈지럭거린 면이 없지 않습니다.


공동육아가 시국선언을 해야 할까? 연대활동을 하고 있으니 연대조직의 이름으로 내면 되는 걸까, 독자적으로 시국선언을 하는 것이 좋을까? 독자적으로 하게 된다면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가진 회원들이 이 시국선언이란 방식에 동의할까?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 걸까? 시국선언방식은 법인이름으로 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모든 회원단체의 동의를 얻어 내야하는 걸까? 그걸 고민하고 있는 사이, 공동육아어린이집교사회가 먼저 결단을 내렸습니다. 교사회는 공동육아의 가치와 지향이 이 사회에서 무너져 가고 있다는 것에 동감하면서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며 운영위원회에 시국선언과 공동행동을 제안했습니다. 운영위원회 위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동의했습니다.


시국선언문 작성팀이 꾸려졌고, 이사회 몇 분께 사전 동의와 방향에 관한 의견을 들었습니다. 작성팀은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시국선언문을 작성하면서 어떤 논조로 공동육아의 입장을 드러낼 것인가에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우리의 주장에 대통령 퇴진을 넣을 것인가 아니면 철저한 수사와 공정한 처벌을 강조할 것인가로 갈라졌습니다. 그런데 논의를 하다 보니 외부에 대한 요구는 달랐지만, 그 배경이 되는 우리가 갖고 있는 세상과 시국에 대한 관점은 놀랍게도 같았습니다.


공동육아 사람들은 아이를 함께 키우면서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자고 약속하고 모여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린이집을 육아공동체로 운영하고 마을을 만들어가고 생애과정을 함께 꾸려가자고 마음먹고 준비하는 이 모든 것이 지금 여기에서부터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살기 위해서임을 다 알고 있습니다. 미래는 미래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리 될 수 있음을 경험으로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공동육아 사람들은 정부가 세월호 아이들을 수수방관하며 구하지 않는 현실에 가슴 아파하고, 누리과정이나 맞춤형 보육, 탄력보육과 같이 국가책임보육을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안에서는 그것을 무너뜨리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에 저항하고, 아이들에게 획일적인 역사의식을 강요하려는 국정교과서를 반대해 왔습니다. 거기에 더해 오랜 시간 싸워오면서 겨우 이루어지기 시작했다고 믿었던 법치주의마저 대통령과 정부에 의해 무너지는 상황에 말할 수 없는 참담함을 느꼈습니다.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사실에 모두 동의했습니다. 그 생각과 느낌을 선언문에 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세상에서는 죄지은 자는 철저하게 수사 받고 공정하게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앞에 오게 되었습니다. 대통령 한 개인을 넘어 이 사회가 공적으로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이 주장은 약해보이지만 더 근본적인 질문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시국선언의 주체를 누구로 해야 하는가를 논의했습니다. 빠르게 진행하자면 시국선언문을 이사회에서 결의하고 바로 공표하면 됩니다. 하지만 이 결의가 힘을 얻고 공동육아 성원들의 뜻을 담으려면 각 회원조직들의 이름을 넣어야 한다는 입장이 컸습니다. 운영위원회와 어린이집조합대표자회의, 방과후조합대표자회의, 지역아동센터를 연결하는 지역공동체학교네트워크가 각 회원조직들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시일이 촉박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회원조직이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참여를 하지 못한 회원조직은 개인이나 교사회 이름으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6,018명이란 숫자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공동육아 사람들 한사람 한사람이 이에 동의하고 함께 하겠다고 약속한 6,018명의 선언입니다. 이 숫자는 계속 늘어갈 것입니다. 시국선언 이후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의 깃발을 들고 매주 토요일 광장에서 공동육아 식구들이 모입니다. 서로를 확인한 후 모이는 모습은 그 전과 다르더군요.


구구절절 공동육아의 시국선언 과정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과정 자체가 시국에 대한 공동육아다운 저항이고 대안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투명하고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을 거쳐 공적으로 진행되었어야 할 수많은 것들이 무너진 현실에 참담함을 느끼는 그 순간, 모두 나는 어떠한가를 다시 돌아봤을 것입니다. 이 상황이 지나고 나서 다시 세우는 질서는 어떠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은 한사람 한사람인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시국선언의 과정이 완전하지 못하고 아쉬운 점 투성이지만 구성원들의 이름을 넣고자 한 것은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은 이사진 몇몇이 주인이 아니라, 회원들이 주인임을 확인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평화란 평화로운 과정과 평화로운 마음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 비폭력은 비폭력의 마음과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실현된다는 것을 다 압니다. 그것을 알았을 때, 다음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의사결정과정과 행동을 어떻게 하는가라는 실천입니다. 참 쉽지 않습니다. 욱 하고 올라오는 마음과 빨리 어떻게 해버려야 한다는 조급함과 부셔버리고 싶은 화남이 우리 안에 여전하게 있으니까요. 이번 공동육아시국선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을 중심으로 생각해보자, 회원들을 연명해서 주인이 되게 하자는 여러분들의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제안들이 급한 마음을 잡았습니다. 그 덕에 시국선언을 마치고 당당하게 옆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고 우리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아픈 시절에 그래도 웃을 수 있었습니다.

  

 

이경란 | 지금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역사를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아이들을 공동육아어린이집과 방과후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키우면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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