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레터(PDF)2017.08.01 12:04


평화를 보는 새로운 시선 <피스레터> 합본호가 발간되었습니다. 

2016년 7월 창간 시기부터 2017년 6월까지 발간한 통권1호~통권7호의 내용을 묶어 발간한 이번 합본호를 통해, 깊이 있는내용과 쉬운 글로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받은 글을 주제와 필자별로 보다 쉽게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합본호의 용량이 커서 분할하여 업로드 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합본호_전자책_단면_분할_1.pdf

합본호_전자책_단면_분할_2.pdf

합본호_전자책_단면_분할_3.pdf

 

'피스레터(PDF)'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스레터 7호(통권9호)  (0) 2017.10.30
피스레터 6호(통권8호)  (0) 2017.08.01
피스레터 합본호(통권1호-7호)  (0) 2017.08.01
피스레터 5호(통권7호)  (0) 2017.07.26
피스레터 4호(통권6호)  (0) 2017.07.26
피스레터 3호(통권5호)  (0) 2017.07.26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05.09 05:22

[팩트체크 사진에 담긴 국경읽기]


남북 관계를 있는 그대로 배우는  다른 창(窓) 만들기


강주원


 압록강변의 북한 사람들이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이를 보고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해석을 할까 (2016년)  Ⓒ강주원



있는 그대로 본다혹은 배운 대로 본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배운 대로 본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한 표현이다.…… 자문화중심주의란 넓은 의미에서는 자신의 문화에 대한 성찰이나 비판 없이 이를 당연시하는 태도나 자신의 문화의 여러 특질들의 존재에 대해 무관심을 공유하는 것도 포함된다.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한국문화인류학회 편, 2003-

 

2010년 대한민국 정부는 대북 제재의 일환으로 ‘5.24 조치를 발표하였다. 그 이후 한국 사회는 남북 관계와 관련되어 평화로운 만남 보다는 단절과 반목의 이정표가 세워진 길을 걸어가는 것에 익숙해진 모양새이다. 그리고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 그때 태어난 아이가 가짜 뉴스가 화두인 20173월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최근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이 학원에서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본 친구들이 그러는데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하네, 엄마 위험하니까 집 밖에 나가지 마!”라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듣는 순간, 나는 남북 관계의 모습들이 초등학생들에게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고민하였다.


답답한 마음은 2010년의 중학생들이 20대가 되었다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그들에게 남북 관계를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 보게 하였을까?’ 아니면 배운 대로 보게 하였을까?’ 참으로 다시 돌아가기에는 긴 여정을 걸어온 것 같다는 느낌은 나만의 생각이었으면 좋겠다.


 목탄차는 한국 사회에서 북한 사회의 어려움을 설명하는 대명사이다. 하지만 북한 사회에는 신형화물 트럭도 운행을 한다. 이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한국 사회의 자화상 아닐까! (2016년) Ⓒ강주원

 

 

압록강에서 쏘아올린 작은 공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쟁이였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하나만 옳았다. 그 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2000-

 

이러한 생각의 꼬리 물기는 이어졌다. 몇 달 전, 압록강의 수풍댐으로 유람선을 타고 가다가 십년 넘게 북한을 공부했다는 30대의 북한 연구자가 강박사님, 저기 보이는 북한의 마을과 건물들 그리고 화물트럭들이 생각보다 너무 깨끗하고 신형이네요! 모두 선전마을과 선전물이죠?”라고 질문을 하였다.


그는 나의 초등학교 시절(80년대 초반)에 배웠던 낯익은 단어이자 몇 년 전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노년의 학자가 압록강변의 북한 아파트를 가리키면서 말했던 북한의 선전마을과 선전물이라는 단어를 반복하였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표정 앞에 잠시 할 말을 잃은 나를 대신해 40대의 조선족은 한마디 했다. “휴전선의 북한 마을은 그럴 수 있겠지만, 북한사람들이 압록강에 기대어 어울려 사는 중국사람들에게 왜 보여주기를 합니까? 여기는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배운 대로 보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세요!” 이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나는 한국 사회의 높고 견고한 두 개의 장벽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수풍댐 근처 북한 마을을 보고 한국사람은 선전 마을이라 단언을 하고 단둥사람은 고개를 젓는다. (2016년) Ⓒ강주원


나는 압록강은 다르게 흐른다(2016)에서 한국 사회는 이 국경(압록강) 지역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는 질문을 하면서 압록강에서 쏘아올린 작은 공을 설명하고자 노력을 했다. 하지만 나는 2017년에도 압록강과 남북 관계와 관련되어 반복되는 한국 언론의 오보와 왜곡 앞에서 내가 이러려고 연구하고 책을 출판 하였나 자괴감이 든다!”


단둥사람들은 단순 음주단속 정도로 생각하는 행위를 , 접경지역 경비 대폭 강화”(<SBS> 2017216일자)라는 제목과 함께 단둥시내 대낮에도 검문한다고 보도하는 한국 언론의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 장벽이 높게만 느껴진다. 여기에다 2010년부터 한국 언론으로부터 남북 관계를 배운 대로 볼 수밖에 없는 새로운 세대들이 한국 사회에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힘은 더 빠진다.


그렇다고 두 손을 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 이 순간 남북 관계를 있는 그대로 배우는 다른 창 만들기를 위해 무엇을 해야 될까? 나는 압록강에서 쏘아올린 작은 공어깨동무가 걸어가는 길에서 찾고자 한다. 그 작은 공이 한국 사회와 남북 관계에 놓인 장벽들을 넘나드는 꿈을 꾸어본다.


 

강주원 | 남북정상회담이 있던 2000년부터 중·조 국경과 연을 맺고 있다. 주 연구대상은 한국어와 삶을 공유하는 북한사람, 북한화교, 조선족, 한국사람이다. 이들을 통해서 통일에 대한 고민을 업으로 하는 인류학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저서는 나는 오늘도 국경을 만들고 허문다(2013)압록강은 다르게 흐른다(2016) 등이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05.09 03:36

[팩트체크 사진에 담긴 국경읽기]


2017년 남북관계를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강주원



 2017년과 비교되는 2007년 신의주 풍경이다. (2007년) Ⓒ강주원


▲ 2017년 신의주 풍경에서 한국 사회가 놓치고 있는 시각과 역사는 무엇일까? (2017년) Ⓒ강주원



2016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1년 뒤 한국 사회의 모습

 

201616, 북한은 4차 핵실험을 했다. 이후 한국 정부는 개성공단 폐쇄이외에도 다양한 대북제재 조치를 꾸준히 발표했다. 1년이 지난 201716일 아침, 나는 중국 단둥에 가기 위해 인천공항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일부러 맞춘 것은 아니지만 나름 의미 있는 날짜라고 생각했다. 작년에 7번 갔지만 2017년 처음으로 대북제재의 현주소를 파악할 수 있는 단둥과 압록강에 간다는 사실에 설레었다.


나는 버스 안에서 한 시간 남짓 북한 4차 핵실험대북제재등의 키워드를 활용해서 뉴스를 검색했다. 그런데 능력 부족인지 아니면 최순실 사태이후로 북한과 대북제재 관련 뉴스 비중이 확연히 줄어든 여파인지, “내일 4차 핵실험 1…… 출구 없는 남북 단절’”(<뉴스1> 201715) 보도 이외에는 검색되는 뉴스를 찾기가 힘들었다.

 

북한은 지난해 16일 기습적으로 4차 핵실험을 감행한 데 이어 한 달 후인 27일 장거리 로켓(미사일)을 발사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남북교류 협력의 마지막 보루였던 개성공단 가동 중단을 선언했다. …… 정부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발맞춰 독자 제재안을 발표하며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KBS> 201716일-

 

위의 뉴스는 중국 다롄에서 단둥행 고속열차에서 그나마 검색한 몇 개의 뉴스 가운데 하나이다. 나만의 관심사일까? 그래도 북한의 4차 핵실험은 지난 1년 동안 한국 사회 그리고 남북관계에 영향을 준 사건이자 다양한 대북제재 조치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그렇다면 “20171월의 한국 사회는 남북관계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을 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자문을 만주벌판을 가로질러 압록강으로 달려가는 기차 창밖을 바라보면서 했다.

 

 

개성공단 폐쇄는 모든 남북관계의 단절일까?

 

지난 1년 동안의 남북관계를 정리한 위의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또 다른 문제의식을 가져보았다. 북한의 4차 핵실험, 개성공단 폐쇄, 대북제재안 발표는 사실이다. 하지만 201716일 이후에도, 한국의 언론은 개성공단 폐쇄가 북한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혹은 가장 강력하다고 한국 정부가 주장하는 대북제재안들이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에 대한 관심은 없어 보인다.


이와는 별도로 남북관계를 연구하고 있는 연구자로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개성공단 폐쇄남북교류 협력의 완전 중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한국 언론은 보도를 하고 한국 사회는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북경협기업인들의 표현도 다르지 않다.

 

정부의 ‘5.24조치와 금강산관광 중단으로 피해를 입은 남북경협기업인들의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 100일 철야농성이 11일 막을 내렸다. …… 이들은 성명서에서 1998년 남북경협 시작을 되새기며, “남북경제협력은 남과 북의 정치군사적 긴장에 흔들리며 요동쳤다. 20162월 드디어 마지막 남은 개성공단마저 중단되며 이로써 모든 남북관계는 단절되었다고 꼬집었다. (<통일뉴스> 2017111)

 

과연 마지막 문장은 사실일까? 그동안 남북경협에서 일했던 그들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놓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쓴 공식적 역사와 시각 그리고 휴전선만을 놓고 보면 2017년 모든 남북관계는 단절되었다. 하지만 1998(금강산 관광사업 협의)이 아닌 1988(북한 교역품목 최초 반입 승인)부터 공식적인 남북경협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또한 20105.24 조치, 20162월 개성공단 폐쇄 이후에도 남북관계가 단절되지 않은 공간이 있다.(구체적인 내용은 압록강은 다르게 흐른다(눌민출판사 2016) 참고)

 

 중국 단둥에서 북한 여권은 제재의 대상이 아닌 선물을 받는 기준이다. (2017년) Ⓒ강주원

 


2017년 단둥의 한반도 달력들과 호텔의 선물

 

넓게는 두만강과 압록강의 중국 국경도시들, 좁게는 단둥에 살고 있는 남북의 사람들이 기록하고 있는 비공식적인 남북관계와 경협 그리고 공존과 공생의 삶은 멈춘 적이 없다. 남북관계에서 개성공단의 상징성을 강조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이로 인해 한국 사회에서 망각되고 주목받지 못하는 단둥에 눈이 자꾸만 간다. 그곳에는 1992년 한중 수교 전후부터 현재진행형으로 진행되고 있는 남북 만남의 현장들이 산재해있다. 2017년 인류학의 기록 남기기 작업은 단둥 호텔 프런트의 문구를 촬영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본 호텔에 숙박하는 조선 손님들은 여권으로 작은 선물을 받아갈 수 있습니다.

 

16일 오후에 도착한 단둥 호텔 로비에는 중국 사업 파트너들을 기다리는 북한사람들뿐만 아니라 아랍권 사람들이 섞여있었다. 북한사람들이 선물한 여러 종류의 북한 달력을 주겠다고 했던 북한화교 지인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고려항공 승무원들이 등장하는 달력도 들려있었다.


나는 북한 달력을 한국에 가지고 가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단둥사람들에게 선물한 한국 달력은 2017년 한 해 내내, 북한 주재원들의 왕래가 비번한 조선족과 북한화교의 대북사업 사무실의 한 면을 차지고하고 있을 것이다. 남북을 연결하는 사업을 하는 그들에게 한반도의 두 개의 달력은 사업 일정을 계획할 때 요긴하게 사용될 것이다.


호텔 직원은 여권을 흔들면서 북한사람들에게만 선물을 준다고 설명을 하였다. “이 호텔의 주 고객은 북한사람인 것을 안다. 그래도 나 역시 7년 넘게 이 호텔에 다니는 사람인데라는 말을 하자, 직원은 당신에게만!”이라고 하면서 작은 선물을 주었다.


2017년 북한과 한국 달력이 공존하는 단둥, 한국 정부의 대북제재와 상관없이 북한 여권이 제재의 대상이 아닌 선물을 받는 기준이 되는 공간이 단둥이다. 나는 호텔 프런트 문구를 보면서 휴전선만을 상정한 남북교류 협력의 완전 중단이라는 한국 사회의 시각과 역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2017년 한국 사회는 남북관계를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강주원 | 남북정상회담이 있던 2000년부터 중·조 국경과 연을 맺고 있다. 주 연구대상은 북한사람, 북한화교, 조선족, 한국사람이다. 이들을 통해서 통일에 대한 고민을 업으로 하는 인류학의 길을 걸어가는 꿈을 키우고 있다. 저서는 나는 오늘도 국경을 만들고 허문다(2013)압록강은 다르게 흐른다(2016) 등이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05.02 12:22

[팩트체 사진에 담긴 국경읽기]


2016년 남북 만남의 그림은 미래일까?


강주원


2016년 한국 사회가 그린 남북 관계의 자화상과 상상화

 

2016년 달력도 한 장 남았다. 한국 사회는 2016년 어떤 그림 달력에 둘러싸여 살아왔을까? 특히 남북 관계를 상징하는 키워드들은 지난 11장의 달력에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새해 벽두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이후, 한국 사회는 대북제재로 달력의 첫 장을 그리기 시작했다.

부끄럽지만 개성공단용 초코파이는 일반 판매용보다 3g 가벼웠다.(<SBS> 2013611일자, “갈 곳 잃은 개성공단 초코파이산처럼 쌓인 재고”). 그렇지만 십 년 넘게 한국의 초코파이를 좋아하는 개성공단의 북한 노동자 모습은 남북 만남의 상징적인 그림이었다. 또한 이 공간에서의 통일과 관련된 만남은 상상이 아닌 현실이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한국 정부는 2월의 달력에 개성공단 폐쇄라는 소재로 회화를 그렸다. 북한을 연구하는 어떤 학자들은 대북제재의 명분에 동참하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밑그림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네 집단(북한사람, 북한화교, 조선족, 한국사람)이 거리에서 장기를 두고 구경도 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한국 사회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이를 두고 미래, 혹은 상상 속의 통일풍경이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현실에 바탕을 둔 그림으로 바라볼까? Ⓒ강주원

 

이번 제재는 20105·24 조치와 20133차 핵실험 이후 유엔 제재에 비해 효과를 거둘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다. 그 이유는 제재가 포괄적일 뿐 아니라 중국이 동참할 확률도 커졌기 때문이다. 만약 무역으로 떼돈을 벌던 권력층과 시장 활동을 통해 겨우 살아가던 주민들이 제재로 인해 이 기회를 상실하면 불만이 비등할 것이다.

-<중앙일보> 2016310일자-

 

위의 신문 사설은 지금은 가야 하는 이 길(제재와 압박)을 힘을 다해 달려야 한다.”로 마무리한다. 이 문구에 말문이 막히고 어떤 우문현답을 할지 고민하는 사이에 대북제재 효과를 강조한 상상화만으로 가득한 갤러리들이 한국 사회에 1년 내내 성황이었다.

도대체 북한 붕괴론그림은 누가 무엇을 위해 기획했을까? 한국 사회의 누구를 위한 작품이었고, 누구를 위해서 그린 것일까? 반대로 대북제재를 반대하는 한쪽에서는 2월 개성공단 폐쇄 이후, 남북 만남을 미래로만 상정하는 작품에 의미부여를 하고 해석하기 시작했다. “한반도 통일미래를 논하는 학술대회와 강연들의 개최 날짜들은 봄·여름·가을 달력에 계속 표시되었다.

 

 

2016년 남북은 여전히 만나고 있다

 

3월에 접어들면서 한국 정부는 개성공단 폐쇄에 이어, 해외에 산재한 북한식당 출입 자제를 한국 국민들에게 권고했다. 연이어 매월 단둥의 북한식당들이 문을 닫았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한 해가 마무리되고 촛불집회가 광화문과 전국을 밝히는 11월에도 제재 여파로 단둥 대표적 북한식당 폐업”(<YTN> 2016111일자)이라는 제목은 신문 혹은 방송의 북한 뉴스로 언급되었다.

문제는 이와 같은 내용이 사실이 아니다.”라는데 있다. 단둥의 북한식당들은 대북제재 때문에 폐업한 곳이 없다. 또한 20161111일 나의 카메라에 담긴 북한식당 송도원은 영업 중이었다.

한국 언론들이 “3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 제재를 내놓은 뒤 한국 정부가 관광객들에게 북한식당 이용 자제령을 내리면서 매출이 뚝 떨어졌다.”고 설명하면서 폐업했다고 언급한 바로 그 식당이다. 그렇다면 2016년뿐만 아니라 20105.24 조치 이후, 한국 사회에는 남북 관계 혹은 만남과 관련되어 상상화통일미래 이야기만이 가득했다고 말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쯤에서 나는 한 장의 그림을 컴퓨터에 그려보았다. 소재는 “2016년 여름, 단둥의 조선족 거리에서 북한사람과 조선족이 장기를 두고 있고 북한화교와 한국사람이 구경을 하는 모습이다. 이 풍경화를 광화문 한복판에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를 두고 사실에 바탕을 둔 그림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한국 사회에 많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 그림은 상상과 미래에 바탕을 두지 않았다. 내가 20168월 단둥에서 촬영한 사진을 밑그림으로 활용하였다.*

5.24 조치 이후에도 중국 단둥에서는 한국어를 공유하는 네 집단의 사람들이 장기를 두는 이웃사촌으로 지내면서, 현재진행형으로 삼국(중국, 북한, 한국)을 연결하는 경제 교류를 하고 있다. 이런 삶의 모습이 낯설지 않은 공간이 단둥이다.


나는 압록강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한국 사회의 어떤 이들은 대북제재와 압박이 가득한 상상의 길을 힘을 다해 달려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2016년 그림 달력을 만들어왔다. 그렇다면 광화문에서 촛불을 밝힌 사람들 한 명, 한 명은 2017년 달력에 사실에 바탕을 둔 그림을 하나둘 채우고 감상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될까? 분명한 것은 남북이 어깨동무하면서 걸어가는 현실의 길을 담은 그림이 사실이고, 또한 아름답다는 것이다. 이런 그림들이 가득한 달력들이 어린이들 방마다 걸리기를!


 2016년 한 여름, 단중의 조선족거리에서는 조선족과 북한사람이 장기를 두고 네 집단의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다. 통일 이후엔 이런 장면이 쉽게 연출될 것이다. 단둥에서는 이미 현실 그 자체로 벌어지고 있다. 단둥은 그런 곳이다. (2016) Ⓒ강주원


 2016년 해외의 북한식당은 대북제재 효과를 증명하는 소재로 한국언론에 자주 등장했다. 하지만 최소한 단둥의 경우 "대북제재 여파로 북한 식당 폐업"은 오보이다. 물론 폐업하는 북한식당은 있다. 이를 두고 단둥사람들은 대북제재의 여파라고 말하지 않는다. 북한식당 가운데 한두 개는 영업부진 등 일반적인 이유로 매년 문을 닫았고, 또 다른 북한식당 간판이 걸리곤 한다. (2016년) Ⓒ강주원

 


이 때의 현지조사 내용들은 <압록강은 다르게 흐른다> (눌민출판사, 2016) 참고 



강주원 | 남북정상회담이 있던 2000년부터 중·조 국경과 연을 맺고 있다. 주 연구대상은 북한사람, 북한화교, 조선족, 한국사람이다. 이들을 통해서 통일에 대한 고민을 업으로 하는 인류학의 길을 걸어가는 꿈을 키우고 있다. 저서는 나는 오늘도 국경을 만들고 허문다(2013)압록강은 다르게 흐른다(2016) 등이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04.24 18:16

[팩트체크 사진에 담긴 국경읽기]


압록강과 두만강은 열린 강이자 교류의 강


강주원


압록강과 두만강은 휴전선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공유 하천인 한강 하구를 DMZ 영역으로 예단하곤 한다.(피스레터창간 준비 2호에서 다룸) 이런 경향이 반복되는 강이 한국 사회에 더 있다. 2010년대를 살아가는 한국사람들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그 자체로 보지 않고 남북을 가로지르는 휴전선의 렌즈로 바라보곤 한다. 이런 시각은 한 학자의 칼럼에 압축되어있다.

 

간도에서 바라본 북녘 땅은 지척이었으나 가뭄에 한껏 말라붙은 강은 도강(渡江)을 허용하지 않았다. 마른 강은 국경이었다. …… 지금은 막힌 강, 헐벗은 강, 초라한 능선만 드러낸 불임(不姙)의 강이 되었다. 분단 70년 동안 그랬고, 광복 70주년을 맞는 오늘도 그러하다. 간도 이편에서 바라본 저 강은 오랫동안 건널 수 없는 강, 국경이었다.

-《중앙일보2015713일자-

 

이처럼 한국사람들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하나의 넘어갈 수 없는 단절의 국경 즉 휴전선의 이미지와 동일시한다. 그 결과 그들은 강의 폭 전체를 압축된 하나의 선으로 생각하는 통념이 강화된 채 한국으로 돌아간다. 이는 압록강과 두만강의 삶의 모습과 방식을 외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휴전선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펼쳐지는 남북 만남의 역사와 현재를 놓치는 모양새로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공유한다

 

1960년대 초반 북한과 중국이 맺은 국경 조약들이 현재의 중·조 국경의 큰 틀이자 바탕인 것이 현실이다. ·조 국경은 양 국가가 비공개 형식으로 체결한 것으로 알려진 196210월의 국경조약국경문제합의서그리고 19643월 국경에 관한 의정서에 근거를 두고 있다. 내용 가운데 핵심은 북한과 중국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국경 넓이는 어떤 때를 막론하고 모두 수면의 넓이를 기준으로 하고 양국 간의 경계하천은 양국이 공유하며 공동 관리하고 항행, 어렵, 하수 사용 등을 포함하여 공동 사용한다고 하였다.

-박선영, 2005, 秘密解剖: 조선과 중국의 국경 조약을 중심으로」 『중국사연구38-

 

때문에 압록강변 사람들은 강 너머 신의주(단둥)에 발을 올려놓아도 배에서 손만 놓치지 않으면 상대방 국경을 침범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한다. 그들은 이를 등안(登岸)은 했지만 월경(越境)은 하지 않았다라는 문구로 정리한다. 단둥사람과 신의주사람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압록강에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그들에게 압록강은 양 국가를 연결하는 경제적 삶의 수단이 되고 있다. 단둥사람의 삶의 영역이 국경으로 제한 혹은 단절되는 것이 아니고 국경 너머의 북한사람과 교류하고 공유한다. 단둥사람들은 압록강에는 국경이 없다라는 말을 하면서 실제로 압록강을 삶의 터전으로 여긴다. 압록강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한국 사회에서 국경은 단절의 이미지가 강하다. 반면에 국경과 관련된 압록강과 두만강의 핵심은 공유이다. 두만강 발원지에 가면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2015) Ⓒ강주원


 단둥과 신의주 사람들은 압록강, 물안개 그리고 해와 달만을 공유하지 않는다. 한국사람이 포함된 그들은 압록강에서 삶을 공유하고 있다(2013)  Ⓒ강주원


압록강은 황해에서 대동강 그리고 한강의 물길과 섞인다

 

2016년 초 대북제재 이후, 압록강을 휴전선의 연장선상에서 다루고 생각하는 글과 말이 넘치고 있다. 하지만 압록강은 경계의 국경선이 아니다. 때문에 이쪽과 저쪽, 단둥과 신의주, 북한과 중국 그리고 한국을 구분하지도 않는다. 압록강은 새들만이 넘나들 수 있는 장벽이 쳐진 국경이 아니다. 사람들 또한 공유하는 강이고, 그들에게 국경을 넘나들면서 사는 방식을 제공해주는 강이다. 1992년 한·중 수교 전후부터 단둥에서 터전을 일구고 있는 북한사람, 북한화교, 조선족 그리고 한국사람은 압록강에 발을 담그고 삼국이 공존하는 삶을 살아 왔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압록강의 물결과 마찬가지로 20년이라는 세월 넘게 그런 삶의 흐름은 멈춘 적이 없다.

지금도 네 집단의 관계맺음의 결실이 녹아 흐르는 압록강은 흐르고 흐르다 황해에서 대동강과 한강에서 흘러나온 물과 섞인다. “있는 그대로의 압록강을 보면 남북이 연결되어 더불어 살아오며 일군 경제 교류와 평화의 강줄기가 보인다. 한국 사회의 희망적 사고와 달리 압록강은 다르게 흐른다.

 

 

강주원 | 남북정상회담이 있던 2000년부터 중·조 국경과 연을 맺고 있다. 주 연구대상은 북한사람, 북한화교, 조선족, 한국사람이다. 이들을 통해서 통일에 대한 고민을 업으로 하는 인류학의 길을 걸어가는 꿈을 키우고 있다. 저서는 나는 오늘도 국경을 만들고 허문다(2013)압록강은 다르게 흐른다(2016) 등이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04.24 17:02

[팩트체크 사진에 담긴 국경읽기]


한강하구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민낯


강주원


평화의 섬 교동도에서 철조망과 중립지역을 만나다

 

201510월 나는 12일 일정으로 ()어린이어깨동무가 매년 주최하는 DMZ 평화기행 평화야 함께 걷자에 가족과 함께 다녀왔다. 답사 일정에 포함된 교동도에서 분단의 상징인 철조망을 바라보다 지역 전문가인 김영애 우리누리평화운동 대표의 이야기를 듣는 기회를 가졌다.

 

"남쪽의 교동도와 북쪽의 연백평야 사이의 강이자 바다인 저 곳은 남·북의 중립지역입니다. 철조망이 생기기 전 교동도 주민들은 갯벌에 나가 조개를 채취했습니다. ·북 사이에 이런 공유지역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너무 몰라요.

북쪽 사람들은 요즘도 갯벌에 나와 어업활동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철조망에 갇혀 있습니다.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우리는 못하고 있습니다."

 

교동도의 삶의 역사와 현재가 담긴 그녀의 설명을 들으면서 나는 왜 이 섬을 감싸 도는 강이자 바다인 공간을 휴전선의 눈으로만 바라봤을까? 막연히 단절된 공간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곳에 철조망이 있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겼을까? 남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 혹은 망각하고 있는가?

 

다른 의미로 다가온 교동도의 철조망을 바라보다가 이와 관련된 일들을 회상하면서 자책했다. 오래 전에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방문했을 때 보았던 조감도에는 ·북 중립지역이 표시되어 있었는데, 그 이후에 방문했을 때에는 그 표시가 사라져 있었다.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을 품기만 하고 더 이상 찾아보지 않았다그 기억을 떠올리며 손에 들고 있던 평화의 섬 교동도 관광안내지도를 꼼꼼히 되살펴보게 되었다. 2015년에 제작된 지도에는 선명하게 교동도와 연백평야 사이로 군사분계선이 그어져 있었다. 중립지역과 군사분계선 그리고 현장의 목소리와 문화체육관광부 표준지침으로 만들어진 지도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될지 막막했다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정치가들이 간혹 대한민국 유일의 DMZ가 아닌 중립지역(한강하구 프리존)”을 언급하는 사례가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관심은 크지는 않은 것 같았다. 오히려 다수를 이루는 기사는 휴전협정 이후 그곳에는 철조망이 있었고 군사분계선의 의미를 강조하는 내용과 지도가 많았다.

 

휴전협정의 당사자(미국, 중국, 북한)들은 한반도 서쪽 끝 한강어귀 교동도에서 동쪽 끝 고성 명호리 해변까지 248km에 이르는 구간에 철조망을 치고 군사분계선이라는 팻말 1,292개를 박았다

주간경향2015310일자 -

 

교동도와 관련된 블로그와 카페의 여행 후기를 살펴보아도 비슷하다. “철조망의 역사를 약 20년으로 인식하는 것보다는 약 60년 넘은 것으로, 연백평야와 교동도 사이의 공간을 공유지역혹은 중립지역이 아닌 군사분계선의 연장선으로 보는 시각이 더 강하다. 그러나 그녀의 이야기와 일치하는 다른 목소리도 있었다.

 

교동섬은 북한 연백군 바닷가와 불과 2~3km 떨어져 있지만 남·북 화해 무드가 일기 직전까지도 철책이 없었다. 하지만 1997년 해안선 37km 가운데 25.5km에 높이 3m가 넘는 견고한 군사용 철책이 쳐졌다. 섬 주민 황아무개(66)씨는 “6·25 전쟁 이후 50년 가까이 비교적 자유롭게 물에 나가 고기도 잡았는데 지금은 철책 탓에 엄두도 못 낸다.” 

-《한겨레신문2006219일자-

 

국내 국제법 전문가들은 정전협정 15항에 따라 한강하구는 남·북의 공유 하천이자 국경지역으로, 군사적 의미가 없는 민간의 출입이 가능한 지역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법의 존재를 몰랐던 우리는 DMZ 영역으로 예단하며 분단의 철조망을 스스로 쳤던 셈이다

-《오마이뉴스2005711일자-

 

한강하구 중립지역은 정전협정 제 15에 규정되어 있고, 이 내용을 1953103일 비준한 추가합의서를 통해 보강하고 있다. 주요 내용 가운데, “2항 한강하구 수역과 각방 군사통제지역의 경계선은 만조시의 수륙 접촉선으로 한다.”10항 일반의 선박은 타방의 통제수역과 강안에 들어가지 못하며 한강하구 수역의 타방의 경계선으로부터 100m 이내로 접근하지 못한다.”가 있다. 한편 이 중립지역에서 가장 폭이 넓은 곳은 10km이고 가장 폭이 좁은 곳은 900m이다. 나는 만조시, 100m 그리고 900m”라는 단어와 숫자 앞에서 1997년 이전 철조망이 없던 시절의 다양한 장면들을 상상해본다.

 

 

한국 사회에서 2016년 한강하구는 어떤 지역으로 자리매김을

 

20166,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과 관련되어 한국 언론은 이 지역을 “63년 만에 재조명되는 한강하구 중립지역또는 초민감 지역이라는 시각에서 주목하고 국방저널7월호에서 설명한 육지의 비무장지대(DMZ)처럼 남북 간의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해 한강하구에 설정한 남북한의 완충지대로 규정하고 있다.  한강하구 중립지역에 대해서 공부가 부족한 나로서는 생각이 복잡해진다. 한편으로 20166월 한국 언론의 표현대로, 이 지역이 “63년 만에 중립지역으로 재조명되는 사실이 반갑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앞에서 언급한 교동도 어민의 삶의 터전이자 대한민국 유일의 DMZ가 아닌 중립지역보다는 민간인 통제구역이자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육지의 DMZ”로만 설명되고 있는 기사 내용들에 답답하다. 이 지역의 특징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떠나,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나는 무엇을 기억 혹은 망각하고 있는 것인가?”를 되묻게 된다.

 


강주원 | 남북정상회담이 있던 2000년부터 중·조 국경과 연을 맺고 있다. 주 연구대상은 북한사람, 북한화교, 조선족, 한국사람 그리고 탈북자이며, 이들을 통해서 통일에 대한 고민을 업으로 하는 인류학자의 길을 걸어가는 꿈을 키우고 있다. 저서는 나는 오늘도 국경을 만들고 허문다가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04.24 12:28

[팩트체크 사진에 담긴 국경읽기]


또 하나의 휴전선, 북한식당


강주원


▲ 한국 언론은 대북제재의 효과로 단둥의 북한식당들이 폐업을 하였다고 보도한다


▲  폐업을 했다는 북한식당은 불과 100여 미터 장소이전을 한 뒤 영업을 하고 있다 


남북 만남의 공간을 하나 더 잃었다

 

나는 2000년부터 중·조 국경 지역을 다니면서 수없이 북한식당에 갔고, 그 곳에서 다양한 남북 만남을 목격하였다.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일화는 남북 젊은이 사이의 전화 통화이다. 2013년 나는 압록강에 발 담그고 과일을 먹자라는 주제에 동참한 일행들과 함께 중·조 국경을 여행했다. 마지막 날, 대련 공항에서 지인이 중국 단둥에서 북한식 냉면을 먹으면서 북한 여성 종업원과 함께 손잡고 합창을 했던 북한식당에 전화를 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그의 행동이었다. 하지만 전화 내용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궁금했습니다. 북한식당에 전화를 하면 너무나 노래를 잘하던 그 여성 종업원과 통화가 가능한지. 그런데 너무나 쉽게 바꾸어 주더군요. 그녀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아프지도 말고 늙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고! 그래서 저도 그러자고 대답했습니다.” 그 다음해 그는 단둥에서 그녀를 다시 만나 눈인사를 나누었지만 거기까지였다.


1년 뒤, 나는 그에게 그녀가 북한으로 돌아가자마자 시집을 갔고 딸을 낳았다고 전해주었다.

북한식당에서 남북의 만남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한국 여행자들은 남북의 특별한 만남에 조금은 설레고 조금은 긴장한 마음으로 북한식당에 간다. 기대와는 달리, 차가운 그녀들의 태도에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넉살 좋은 한국사람은 그곳에서 대접을 받기도 한다. 가이드의 상술에 메뉴판보다 비싸게 음식을 먹기도 하고 한국 소주 가격에 익숙한 그들은 술값이 비싸다.”고 말한다. “원래 중국에서 음식값 보다 술값이 더 많이 나온다.”는 현지인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마냥 기대했던 냉면은 그 맛이 아니다.”라고 이구동성 이야기를 하면, 나는 사실은 대부분의 북한식당 요리사는 중국사람이다.”라는 말을 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 고민을 한다. 북한 여종업원의 공연을 본 뒤, 한국사람의 반응은 호불호가 갈린다.

 

 

단둥에서 북한 종업원들이 일하는 식당은 북한식당이자 중국식당이다

 

이처럼 중국의 북한식당은 한국사람들에게 그동안 남북 만남을 통해서 애증을 확인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런 공간에 대해서 한국 정부는 2016년 대북제재의 연장선상에서 북한식당을 주목했고, 한국 언론은 대북제재 효과가 어떻게 북한식당의 영업에 부정적으로 미치고 있는지를 연일 보도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개성공단에 이어 북한식당도 또 하나의 휴전선이 되기를 희망하는 모양새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해외식당 130여개를 운영해 연 평균 1,000만 달러(135억원) 정도를 상납 받고 있다.”며 

현재 절반 이상의 식당이 상납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 된다.”고 설명했다

-<국민일보> 2016410-

 

정부가 해외 북한식당의 이용 자제를 권고한 후

북한식당이 가장 많이 몰려있는 중국 동북 3성의 북한식당들이 된서리를 맞고 있습니다

10곳 중 1곳이 폐업했고 다른 식당들도 손님들이 급감했다고 합니다. … 

단둥의 북한식당 15곳 중 이 곳을 포함해 3곳이 폐업했습니다. … 

강력한 대북 압박과 제재 국면 속에 현지인과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겼기 때문입니다. 

-<KBS 9시 뉴스> 201647일-

 

2016년 대북제재 이후, 나는 단둥에 네 번 다녀왔다. 북한식당과 관련된 한국 정부의 발표와 언론의 보도를 접할 때마다, 내가 알고 있는 단둥의 북한식당 현황과 너무나 다름에 당황스럽다식당 수도 틀리고 폐업을 했다는 북한식당들은 건물을 옮겨서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 중에 하나는 이전 식당 자리에서 불과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똑같은 식당 이름을 내걸고 있었다. 한국 언론이 겨울철 문을 닫은 모습을 취재하면서 폐업을 했다고 보도하던 K식당은 여행 성수기를 맞아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H식당은 중국 손님으로 가득했고 어림잡아 손님은 천여 명이 넘었다. 그 이외에 한국 정부의 발표와 언론의 보도가 모르고 있고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단둥의 북한식당의 규모는 한국 언론이 보도하는 약 15개가 아니다. 북한 여성 종업원들이 일하는 약 25개의 식당이 있고 손님의 대부분은 한국 사람이 아니고 중국 사람이다. 주 요리는 중국 요리이고 북한 요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낮다. 그들은 보통 한국사람 보다 몇 배의 요리를 주문한다. 때문에 매출에서 한국 손님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 사회가 생각하는 만큼은 아니다천여 명의 손님을 받을 수 있는 두 개의 식당 가운데 하나는 단둥에서 북한식당이 아닌 중국식당으로 명성이 높다. A호텔은 중국사람이 사장이지만 식당과 조식 서빙은 북한 여성 종업원들이 담당한다. 이처럼 북한식당은 중국 자본과 북한 노동력이 결합된 형태이다. 단둥사람들은 북한식당에 가지 말라는 이야기는 중국식당에 가지 말라는 이야기와 똑같다.” 라는 말을 한다.


2016년 단둥의 북한식당의 현주소는 대북제재의 효과가 미치지 않고 있고 미칠 수 있는 영역도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가 북한식당을 만남의 공간에서 또 하나의 휴전선으로 만들면서 얻는 것은 무엇이고 잃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자문을 하게 된다. 나는 간판이 사라진 식당을 찍은 뒤, 100여 미터를 걸어서 똑같은 식당 이름으로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북한식당 앞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강주원 | 남북정상회담이 있던 2000년부터 중·조 국경과 연을 맺고 있다. 주 연구대상은 북한사람, 북한화교, 조선족, 한국사람 그리고 탈북자이며, 이들을 통해서 통일에 대한 고민을 업으로 하는 인류학자의 길을 걸어가는 꿈을 키우고 있다. 저서는 나는 오늘도 국경을 만들고 허문다가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