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레터(PDF)2017.08.01 12:04


평화를 보는 새로운 시선 <피스레터> 합본호가 발간되었습니다. 

2016년 7월 창간 시기부터 2017년 6월까지 발간한 통권1호~통권7호의 내용을 묶어 발간한 이번 합본호를 통해, 깊이 있는내용과 쉬운 글로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받은 글을 주제와 필자별로 보다 쉽게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합본호의 용량이 커서 분할하여 업로드 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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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06.19 14:30

[시선 | 평화를 이야기하는 철학자들]


겸애(兼愛)를 주장한 세계시민주의자 묵자

: 무엇이 묵자(墨子)를 전쟁에 뛰어들게 하였는가?


정경화


묵자는 중국 춘추시대 말 전국시대 초 사람으로 유가와 비교될 정도로 일가를 이룬 사상가이다. 특히 국가 간 전쟁으로 민중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었던 당시, 묵가(墨家)라는 집단을 형성하여 평화를 이루기 위한 일에 직접 뛰어들어 여러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묵자는 가족애를 강조했던 유가사상을 비판하였는데, 이런 묵자에 대해 맹자는 애비도 모르는 금수와 같은 존재라고 비난하기도 했지만, “겸애를 주장하여 머리끝에서 발꿈치에 이르기까지 온 몸이 다 닳도록 천하에 이로운 일이라면 행하던 사람이었다.”고 말하여 묵자의 실천가로서의 헌신을 높게 평가했다.


▲ 묵자 - 사진출처 : 네이버지식백과


묵자가 살던 시대 중국은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던 때로 열강의 주변 약소국에 대한 침략이 끊이지 않았다. 전쟁의 규모가 점점 더 커지고 장기화 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은 더욱 더 피폐해지고 있었다. 이러한 침략전쟁을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사람이 묵자이다. 묵자는 전쟁을 반대하는 자신의 의견을 비공(非攻)이라는 말로 압축적으로 표현하는데, 전쟁은 의롭지도 이롭지도 않기 때문에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강한 국가가 약한 국가를 침탈하는 것은 우리가 남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훔치는 것과 같이 도덕적으로 정당하지 않다. 또한 지배자의 입장에서야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고 거느리는 백성을 수를 늘려 이로움을 취할 목적이 있겠지만, 전체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이로울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묵자는 보다 근본적으로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이 무엇인지 설명하는데, 우리가 타인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을 해치지 않지만 남을 해치곤 한다. 이렇게 나와 남을 구별하는 마음에서 여러 가지 갈등이나 부도덕한 일들이 일어나듯이 전쟁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쟁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남을 나처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이런 마음으로 말미암아 천하의 큰 이익이 생겨난다.


이러한 마음, 타인을 자신과 같이 위하는 마음이 겸애(兼愛)이다. 묵자는 겸애를 특정한 타인만을 사랑하는 별애(別愛)와 구별한다. ()이라는 한자어는 두 개의 벼 화자()와 한 개의 손 수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람이 손으로 두 포기의 벼를 모아 쥔 형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겸애는 모두를 아우르는 인류애적인 사랑을 뜻하는 것이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두루 모든 사람을 사랑한 후에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된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두루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을 기다리지 않는다. 두루 모두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 때문에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된다.

 

묵자는 가족애나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사랑과 같이 차별적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느 누구에 대한 사랑 때문에 다른 이를 공격하고 착취할 수 있기에 모든 인류에 대한 보편적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겸애가 평화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태도임에도 당장 전쟁이 계속 일어나는 속에서 겸애를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전쟁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안 묵자는 보다 직접적인 행동에 나선다. 침략전쟁을 일으키는 편에 맞서 싸울 평화유지군의 필요성을 느낀 묵자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 뿐 아니라 군사전술을 개발하고 전쟁에 대비한 훈련을 실시한다. 실제 묵자의 무리는 강력한 군사조직이 되어 전쟁을 막는 성과를 이룬다. 강대국인 초나라가 성 공격 기술이 뛰어난 공수반을 앞세워 약소국인 송나라를 공격할 계획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묵자는 열흘밤낮을 걸어 초나라의 혜왕을 만나 전쟁을 만류하지만 혜왕은 전혀 전쟁의 의지를 거두지 않았다. 이에 묵자는 혜왕이 보는 앞에서 공수반의 성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내는 수성 전술의 시범을 보였다. 공수반이 묵자를 먼저 죽이고 송나라로 쳐들어가면 되지 않느냐고 주장하지만 묵자는 동료들이 송나라에서 대비하고 있음을 알려 혜왕이 결국 전쟁을 포기하게 만든다.


이와 같이 묵자는 나의 평화, 자국의 평화만을 걱정한 애국주의자가 아니라 전 인류의 평화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침략자에 맞서는 방어전쟁까지 불사한 실천가였다. 겸애라는 사랑이 미치는 범위가 어느 한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떤 곳이라도 미치기 때문이다. 게다가 묵자는 겸애가 공간 뿐 아니라 시간을 초월하는 사랑임을 주장한다.

 

넓은 지역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과 좁은 지역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과는 같은 것이다 겸애의 입장에서 보면 그러한 것이다. 과거의 사람들을 사랑하던 것과 미래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과 현재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과는 모두 같은 것이다.

 

묵자는 전쟁과 같은 불행에서 인류를 구제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세계시민주의 활동가일 뿐 아니라, 미래 인류에 대해서도 걱정한 사람으로 요새로 치면 지속가능성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같은 입장인 것이다.


묵자는 겸애를 실천하는 것은 곧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 주장한다. “하늘의 의지는 사람들이 힘이 있으면 서로 일을 도와주고, 재물이 있으면 서로 나누어 주고, 올바른 도를 알고 있으면 서로 가르쳐 주기를 바란다.” 하늘의 의지를 따르게 되면 국가 간 전쟁이 사라지고, 사회는 평등해져 모든 사람이 평화로운 삶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묵자가 인류의 평화를 위해 헌신했던 때로부터 2500여년이 지난 지금, 전쟁은 사라지지 않고 인류 전체가 평화로워지는 날은 요원해 보인다. 묵자가 당시 목격했던 민중의 삶은 굶주린 자가 먹지 못하고, 추운 자가 입지 못하며, 피곤한 자가 쉬지 못하는 것이었다. 현대인 또한 무력전쟁으로 인해 그리고 불평등한 사회로 인해 생존과 건강을 위협받고 있다. 현대인들이 여전히 평화와 평등의 가치를 빼앗긴 채 살고 있는 것은 연대와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겸애가 인간사회의 바탕이 되지 못하고, 자기만 그리고 자기 가족과 주변인들만 위하는 별애가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는 특권층일수록 별애가 커서 하늘의 뜻을 거슬러 힘도, 재물도, 지식도 독점하고 타인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일삼아 민중의 삶이 더욱 각박해지고 있다. 게다가 최근 별애가 매우 각별한 정치인들에게 나라를 맡기는 불운을 겪은 바 있어 민중의 고통이 극심한데, 특히 미래에 대한 배려가 없어 청년과 어린이들이 가장 위협받고 있다. 평화로운 세상, 평등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겸애를 키우고, 별애는 잠재우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더하여 진정한 하늘의 뜻을 온전히 받들어 겸애의 정치를 실행할 정치지도자, 머리끝에서 발꿈치에 이르기까지 온 몸이 다 닳도록 천하에 이로운 일이라면 행할 실천가로서의 정치지도자 또한 절실하다.

 



정경화 | 대학에서 때때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세상에 정착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녹록하지 않아 늘 궁시렁대지만, 작은 힘이나마 보태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세상 만드는데 일조하고픈 소망은 꼭 쥐고 살아가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05.09 03:06

[시선 | 평화를 이야기하는 철학자들]


미래에서 온 비폭력 저항의 화신, 간디


정경화


평화주의자하면 우리는 간디를 떠올린다. 1948년 급진주의 흰두교도에 의해 암살되어 79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간디는 독립운동가, 사회개혁가, 종교지도자로서 평화로운 세상 만들기에 평생을 바친다.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인도의 독립을 위한 비폭력 저항운동을 일으키고, 억압과 착취로 고통 받는 민중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갔으며, 인도 내 이슬람교와 흰두교의 화합을 위해 헌신했던 것이다.


간디가 인도의 독립과 사회개혁에 헌신하게 된 계기가 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구라자트 지역 자이나공동체의 부유한 집안 출신인 간디는 영국 런던대학에서 법학을 수학하고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사회활동을 시작한다. 하지만 간디는 법정에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변론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선천적으로 심약한 성품을 타고났다. 그러던 중 변호사인 형의 대리인 자격으로 인도 주재 영국 관리인 올리반트를 만나기 위해 경찰서를 방문하는데, 런던에 있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올리반트가 간디를 모욕하며 폭력적으로 경찰서 밖으로 쫓아낸다. 이 사건 후 간디는 인도인이 당하는 부당한 처사를 절대 묵과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얼마 뒤 남아프리카로 이주하게 된 간디는 본격적으로 저항운동가로 나서게 되는 일을 겪는다. 남아프리카에서 인도인들이 겪는 인종차별을 직접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요하네스버그로 이동하기 위해 올라탄 기차에서 간디는 일등석 표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화물칸으로 이동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이를 거부한 간디는 결국 기차에서 강제로 쫓겨났고, 이 일을 계기로 인도인들을 조직하여 나탈 인도의회(Natal Indian Congress)’를 설립한다. 이 모임의 투쟁을 통해 인도인들의 일등석 탑승이 허용되고, 그 동안 과하게 부과되었던 인두세(매년 성인 한 사람당 일률적으로 부과되는 세금)를 낮추는 성과를 낸다. 이후 간디는 남아프리카에서 그리고 본토로 돌아온 후에도 모든 차별과 억압을 끊기 위한 일에 온전히 헌신하게 된다.


간디는 저항운동가로서 당연히 그 누구보다도 더 치열하고 격정적인 삶을 살아가지만 동시에 가장 소박하고 고요한 삶을 살아간다. 간디는 자신의 모든 재산과 변호사로서의 수입을 저항운동가들의 공동체 건설을 위해 내놓고, 가족과 함께 인도인 집단 거주지로 이주하여 검약한 생활을 시작한다. 그가 얼마나 금욕적인 생활을 했는지는 간디 암살 당시 소장품이 말해주는데, 명주옷을 감싸는 외투 두벌, 손목시계 하나, 안경, 세권의 책, 나무 밥그릇 두개와 숟가락, 나무샌들 한 켤레와 지팡이가 전부였다. 그의 절제된 생활이 암시하듯이 간디가 택한 저항의 방식은 비폭력 저항이다. 불복종, 서신 항의, 단식, 행진, 투옥 등, 가장 투쟁적이면서도 고요한 저항을 간디는 이어나갔다.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가 1930년에 있었던 소금행진(Dandi Salt March)’이다. 영국은 인도에서 소금을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것을 금지하고 영국에서 수입된 소금에 대한 세금을 갈취하고 있었다. 이에 항의하기 위해 간디는 인도에서 전통적으로 소금을 생산했던 해안가 지방을 잇는 370킬로미터를 26일간 걷는다간디의 비폭력 저항 정신의 바탕에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간디의 철학이 담겨있다.

 

비폭력은 우리 인류의 법칙이며 폭력은 야만스런 짐승의 법칙이다. 영혼은 짐승들 속에서는 활동하지 않으므로 오로지 물리적인 힘의 법칙만 알 뿐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더 높은 법칙을 따를 것을 요구한다. 인류를 다스리는 것은 바로 사랑의 법칙이다. 만일 폭력과 증오가 인간을 지배한다면 우리는 오래 전에 멸종되었을 것이다. 인류는 오직 비폭력을 통해서만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증오는 오직 사랑에 의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간디에게 있어 인간이 진정으로 인간다워지는 때는 사랑을 할 때이다. 폭력을 행사하는 비인간성을 용납할 수 없을뿐더러, 설령 폭력이 폭력을 막기 위해 행하여졌을지라도 이는 또 다른 폭력의 씨앗을 남겨두는 것이다. 완전한 폭력의 근절을 위해서는 비폭력으로써 폭력에 맞서야 하는 것이다.


억압과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간디의 투쟁에서 사랑은 두 가지 방향으로 향하는데, 첫째는 투쟁의 근거가 되는 고통 받는 자에 대한 공감이고, 둘째는 투쟁의 대상에 대한 존중이다. 먼저 존중에 대한 간디의 생각은 모든 비폭력 투쟁의 목표는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합의점에 도달하는 것이지, 상대방을 격퇴하거나 경멸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에 잘 나타나 있다. 간디는 폭력과 억압을 일삼던 투쟁의 대상에 대해서도 인간적 존중의 태도를 잃지 않아야 함을 강조한다. 그들을 적대시하기보다는 함께 합의를 이루어낼 대화상대로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투쟁의 힘은 고통 받는 민중에 대한 사랑에서 생겨난다. 간디는 지도자로서 특히 명심해야 할 것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의심이 들 때면 항상 다음과 같은 방법을 시도해보라. 당신이 그동안 본 사람 가운데 가장 가난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의 얼굴을 회상하고, 당신이 의도한 일이 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그 사람이 그것으로 조금이라도 이익을 얻을 수 있는가? 그것이 그로 하여금 삶과 운명을 다스리게 만들어주는가? 달리 말하면, 그것이 굶주리고 영적으로 지친 수천만 우리 동포들이 자치의 길로 갈 수 있게 만드는가?”

 

간디가 인도 독립 후 가장 역점을 두었던 사회운동 중 하나가 인도사회의 고질적 사회악인 불가촉천민 차별 폐지 투쟁이었다. 불가촉천민은 인도 신분계급 카스트의 가장 낮은 계급인 수드라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주거지와 거리통행에도 제한을 받는 등, 각종 사회적 차별과 가난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다. 간디는 이들을 위한 투쟁을 하며 영국의 식민지 정부와 인도의 정부를 비교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식민지 정부를 악마적이라고 비난한다면, 우리 역시 불가촉천민 형제들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이 뱃가죽으로 땅을 기게 했고, 코로 땅바닥을 문지르게 했으며, 분노에 찬 시뻘건 눈으로 그들을 기차 칸으로부터 밀어냈다. 우리들은 불가촉천민을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곧 불가촉천민의 제국이 되었다.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나야만 할 것이다. 그래야만 그들에게 덧씌워진 슬픔과 고통과 모욕을 나누며, 나 자신과 그들의 비참한 조건에서 자유롭게 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간디는 비폭력 저항운동의 지도자로서 다방면에서 출중한 능력을 보여주었음은 매우 유명하다. 특권계층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을 감복시켜 자신의 저항운동에 동참시키는가 하면, 물레를 돌리는 것과 같은 기발한 저항의 전략을 구사하고, 뛰어난 갈등 중재 능력으로 극렬히 대립하는 당사자들의 합의를 결국 이끌어냈다. 유머감각까지 뛰어나, 간디가 평상복 차림으로 영국의 왕을 예방한 것에 대해 영국 언론인들이 당혹감을 표시했을 때, 간디는 국왕 폐하의 복장만으로도 우리 두 사람에게는 충분했습니다!”라고 태연하게 대응한다. 한편 간디의 지도자로서의 다양한 능력 중에서도 특히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있는데, 간디가 저항의 즉각적 성과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추후 민중들이 자립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실행했다는 것이다.


당장의 억압, 착취, 차별, 폭력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의와 평화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민중이 사회경제적으로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고 자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통찰한 간디는 마을공동체를 되살리는 것에 힘을 쏟는다. 남아프리카에서 비폭력 저항에 동참하는 운동가를 위해 공동체인 톨스토이 농장을 설립하는 것을 시작으로, 인도에서도 아쉬람이라 불리는 공동체를 설립한다. 간디가 참파란 지역 농민의 지대 반환운동을 지도하여 결국 영국 지주들이 지역에서 철수하는 성과를 냈을 때에도 지역공동체의 자치가 탄탄해지도록 농부들에 대한 교육을 실행하였다간디가 세계의 미래라는 갈퉁의 말은 간디라는 위대한 존재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간디는 전 세계에서 하나의 미래이다. 그 미래는 여러 나라와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통해 봐야만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지역의 사회적 변화와 자치인데, 간디가 살던 마을은 지방의 자치도시로 잘 알려진 곳으로 모든 사람을 위한 미래 세계의 표지석이 될 것이다. 세계는 하나의 집이며, 가정이다. 간디는 그 길을 보여주었고, 그리고 그 길이 바로 그 자체로서 인류의 목표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 요한 갈퉁(스웨덴 평화학자)

 

억압과 폭력이 만연한 세상에서 민중에 의한 비폭력 저항이 어떻게 가능한지, 평화로운 세상을 어떻게 일굴 수 있는지를 우리는 간디의 일생을 통해 선명히 볼 수 있었다. 간디가 있었기에 현재 우리가 꿈꾸는 평화로운 세상은 헛된 꿈이 아니라 분명 실현 가능한 미래라는 것을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정경화 | 대학에서 때때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세상에 정착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녹록하지 않아 늘 궁시렁대지만, 작은 힘이나마 보태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세상 만드는데 일조하고픈 소망은 꼭 쥐고 살아가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04.25 12:07

[시선 평화를 이야기하는 철학자들]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평화주의자 안중근


정경화


불과 60여년 전까지만 해도 소수 열강이 다수의 약소국들을 식민지화하는 제국주의가 전세계적으로 득세하던 시대였고, 우리나라도 1910부터 1945년까지 35년간 일제에 의해 식민통치를 당하는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이 시기 일제에 맞서 용감히 싸운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었는데, 그 중 조선통감부의 통감 이토 히로부미에게 총격을 가해 쓰러뜨린 안중근 의사의 명성은 특별히 높아 최근에는 여러 예능프로그램에서 다루어질 정도이다. 하지만 동양평화론을 주장한 평화사상가로서의 안중근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황해도 대지주 향반집안에서 태어난 안중근은 적극적이고, 의협심이 강한 성품을 타고 났다고 한다. 아버지의 영향 아래에서 유학, 개화사상, 천주교 등을 접하며 넓은 식견을 갖추게 된 그는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는 청년으로 성장한다. 특히 일제에 의한 침탈이 본격화된 이후에는 교육자, 애국계몽운동가, 의병장으로서 우리 민족이 처한 불행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전방위적 활동을 주도하게 된다. 이와 같은 안중근 의사의 역동적 삶의 동기로 직접 작용한 것은 당연 나라를 되찾기 위한 애국정신이었으나 그 밑바탕에는 강한 자의 약한 자에 대한 폭력과 착취의 근절을 소망하는 평화사상이 자리하고 있다.


안중근은 1899년에는 뮈델 천주교 주교에게 대학교 수준의 학교를 설립해 줄 것을 건의하고, 1906년에는 직접 가산을 정리하여 삼흥학교(이후 오성학교로 개명)를 설립하고, 이후 천주교 본당에서 운영하는 돈의학교의 교장을 맡는 등, 국력향상에 교육이 가지는 중요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교육활동에 헌신한다. 돈의학교 교장시절 교사와 학생을 대상으로 한 훈화 내용을 통해서, 교육이 단지 개인적 입신과 국가적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더 넓게 평화로운 세상을 이룩하기 위한 것이라는 안중근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

 

…… 외세가 기승을 부리고 호시탐탐 침략을 일삼고 있을 때 이 엄청난 세력을 막을 길은 민족교육을 철저히 받은 졸업생이 앞장서서 단련된 교육사상을 가지고 정신문화사적으로 방어하면서 교육 문화를 고취하고 드높이는데 있는 것이다. …… 그것이 곧 동양의 평화정착을 보장한다고 굳게 믿는다.”

 

안중근의 평화주의자로서의 면모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의병으로서 활동할 당시이다. 안중근은 1907년 헤이그 특사파견을 빌미로 고종황제가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퇴위당하고 한국군이 강제해산 당하자 항일의병투쟁에 가담한다. 안중근이 대중에게 의병 참여를 독려했던 말 속에서도 그의 평화사상이 드러나는데, 의병활동은 단순히 일제에 대한 독립투쟁이 아니라 동양 전체의 평화를 위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평화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동양 전체가 오랫동안 공존하여 영구히 평화와 그 사상을 유지하려면 그 적극적인 방해자 즉 파괴자인 일제와 그 추종졸개들을 전원 섬멸함은 가장 당연한 평화유지의 확연한 기초적 원리인 것이다.”

 

19088월 의병전투에서 안중근이 참모준장으로서 이끈 부대가 승리하여 약 10여명의 일본 군인과 상인을 포로로 잡게 된다. 이때 안중근은 만국공법(국제법)에 근거하여 포로들에게 인도주의적 처사를 베푼다. 일본군 포로들이 이토 히로부미의 계책에 어쩔 수 없이 동조하게 되었다고 판단하여 이들을 모두 놓아주게 되는데, 이 때문에 부대원들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게 된다. 당시 일본군은 의병은 물론 의병군이 나온 동네까지 초토화시키는 비인간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어서 안중근의 포로들에 대한 관대한 처사에 다른 부대원들의 불만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에 대해 안중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적들이 그같이 폭행하는 것은 하느님과 사람들이 다 노하는 것인데, 이제 우리들마저 야만의 행동을 하는가. 또 일본의 사천만 인구를 모두 다 죽인 뒤에 국권을 도로 회복하려는 계획인가. …… 우리는 약하고 저들은 강하니 악전(惡戰)할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충성된 행동과 의로운 거사로서 이토 히로부미의 포악한 정략을 성토하여 세계에 널리 알려서 열강의 동정을 얻은 다음에라야 한을 풀고 국권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니, 그것이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물리치고, 어진 것으로 악한 것을 대적하는 것이다.”

 

의병전투라는 폭력투쟁 속에서도 동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국주의자로 적을 한정하여, 포로들에 대한 인간애를 실천하는 모습 속에서 안중근이 평화의 가치를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엿볼 수 있다안중근은 우리나라를 침탈하고 동아시아 국가들의 평화적 연대를 깨뜨리는 주범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꼽았다. 그를 제거하는 것을 통해 우리나라의 독립과 동아시아의 평화를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한 안중근은 19091026일 하얼빈역에서 3발의 총격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쓰러뜨린다. 현장에서 곧바로 체포된 안중근은 이후 법정에서도 이토 히로부미의 죄 15가지를 열거하는 가운데 동양 평화를 파괴한 죄를 든다. 안중근은 일제에 의해 결국 사형 선고를 받고 19103263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안중근은 옥중에서 <동양평화론>를 집필하여 자신의 평화사상을 구체화할 계획을 가지고, 사형집행을 늦춰달라는 요청을 한다. 구두로 연기를 약속 받으나 이후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집행이 이루어져, 애초 서문, 전감, 현상, 복선, 문답으로 구성될 예정되었던 <동양평화론>은 서문과 전감만 집필된 채 미완성으로 남는다.


<동양평화론>에 포함되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주요 내용은 사형집행 연기 요청을 위해 이루어진 안중근과 뤼순 고등법원장 사이의 면담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안중근은 자신이 구상한 동양평화를 위한 방안을 설명하는데, 그 골자는 다음과 같다. 첫째, 뤼순항을 개방하여 3국이 공동 관리하는 군항으로 만든다. 둘째, ··일 삼국이 평화회의를 구성한다. 셋째, 재정확보를 위해 3국 공동은행을 설립하고 공동화폐를 발행한다. 넷째, 3국의 공동 군단을 편성한다. 안중근은 이 방안이 실현된다면 일본의 주도 아래 한국과 중국도 경제적으로 성장하게 되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자발적으로 평화회의에 가입하여 아시아 전체 차원으로 연대가 확대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안중근이 제시한 동아시아 연대 정책은 정치, 군사, 경제, 문화적 교류와 의존을 통해 함께 번영하는 지역공동체를 건설하여 아시아 국가 간 평화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을 우선적인 목적으로 하고, 나아가 서구열강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대한 방어력을 높이는 목적도 가지는 것이었다. 이러한 구상은 실제 1990년대 유럽연합(EU)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안중근이 놀라울 정도의 혜안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의 실효성 여부를 떠나 그가 몸소 보여주었던 실천적 평화주의자로서의 삶 자체가 주는 울림이 더욱 크다. 제국주의의 폭압에 온몸으로 저항하며 죽는 순간까지도 평화로운 세상 그리기에 여념이 없었던 안중근의 선각자적 기개에 절로 고개가 숙여질 따름이다.


우리나라는 일제 패망과 함께 해방되었지만, 곧바로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민족 간 전쟁을 겪었고, 현재까지도 총부리를 서로에게 겨누고 있는 극단적 비평화의 상태에 놓여있다. 사회 내부적으로도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권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다수자와 소수자 사이에 제국주의시절에 비견할 만한 폭력과 차별이 계속되고 있다. 안중근 의사가 서거한지 10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동아시아의 평화, 세계의 평화 시대를 열기는커녕 오히려 남북의 대치, 사회 내 갈등 심화로 내적 비평화의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실정이어서, 우리는 아직도 안중근 의사가 그토록 경계하였던 야만의 행동이 끝없이 일어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평화가 극도로 위협받는 때에 평화와 공존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기 위해서는 평화를 견지하는 넓은 시야를 가지면서도 현실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실천적 저항정신을 겸비한 21세기 안중근이 필요하다. 그래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2016년 현재, 대한민국의 수구세력이 역사를 왜곡하고 국정을 농단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우리가 작은 안중근으로 깨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끝까지 촛불을 놓지 않는 저항이 이어진다면, 국민의 주권을 되찾고, 궁극적으로는 평화를 향한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다.

 

 

정경화 | 대학에서 때때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세상에 정착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녹록하지 않아 늘 궁시렁대지만, 작은 힘이나마 보태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세상 만드는데 일조하고픈 소망은 꼭 쥐고 살아가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04.24 17:26

[시선 | 평화를 이야기하는 철학자들]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통해 본 한반도의 평화


정경화


세계평화는 어떻게 이룰 수 있는 것일까? 미국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위체계) 미사일 배치와 북핵실험으로 한반도에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는 이때에 남북한 사이의 긴장해소라는 긴급한 과제를 코앞에 두고 세계평화를 꿈꾸는 것은 너무나 낭만적인 일일까? 아마도 우리가 세계의 평화를 염원하지 않았기에 거꾸로 한반도 평화정착이 이리도 지난한지 모르는 일이다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세계평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소원했던 인물 중의 하나로 그의 말년 저작들에서 전쟁이 사라진 평화로운 세상을 인류가 도달해야할 역사적 목적지로 지목하고 있다. 칸트는영구평화론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세계평화를 기획하는데, 단지 국가 간 전쟁이 멈춰진 일시적 평화가 아닌 전쟁발발의 가능성이 영원히 차단된 영구적인 평화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영구평화론은 기본적으로 법률 조항이 나열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먼저 여섯 개의 예비조항이 제시된 후, 세 개의 확정조항이 핵심조항으로서 제시되고 있다. 이어서 영구평화의 보증과 비밀 조항에 관한 두 개의 추가 조항 그리고 도덕과 정치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피력한 두 개의 부록도 같이 실려 있다.

 

예비 조항

1. 장차 전쟁의 화근이 될 수 있는 내용을 암암리에 포함한 채 맺은 어떠한 평화 조약도 유효하지 않다.

2. 어떠한 독립국가도, 작던 크던지 간에, 상속, 교환, 매매 혹은 증여에 의해 다른 국가의 지배하에 놓일 수 없다.

3. 상비군은 조만간 완전히 폐지되어야한다.

4. 국가 간 대외분쟁과 관련한 어떠한 국채도 발행되어서는 안 된다.

5. 어떠한 국가도 다른 국가의 체제와 통치에 강제적으로 간섭해서는 안 된다.

6. 다른 나라와의 전쟁 동안 장래의 평화 시기에 상호 신뢰를 불가능하게 하는 다음과 같은 적대 행위, 암살자나 독살자의 고용, 항복 조약의 파기, 적국에서의 반역 선동을 해서는 안 된다.

 

확정 조항

- 1의 확정 조항: 모든 국가의 시민적 정치 체제는 공화정이어야 한다. (공화제 국가)

- 2의 확정 조항: 자유로운 국가들의 연방 체제에 기초한 국제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국제연방법)

- 3의 확정 조항: 세계시민법은 보편적 우호 조건에 의해 제한되어야한다. (세계시민권)

 

먼저 예비조항의 내용을 크게 세 가지 요점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 우선 모든 국가가 다른 국가의 간섭, 지배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즉 모든 국가의 완전한 독립 상태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설령 전쟁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전후 평화적 관계 회복을 위하여 전쟁 중 서로에게 적대적인 감정이 쌓이는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 최종적으로는 전쟁을 대비한 상비군 유지를 포기하는 것, 즉 모든 국가가 전쟁발발의 가능성조차 상상하지 않는 것이 세계평화를 이루는 길인 것이다사실, 예비조항이 모든 국가에 의해 준수된다면 이미 세계평화가 충분히 성취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에 군대가 없어진 상태, 서로에 대한 앙금이 남아있지 않고, 주권 침해의 의심이 사라진 상태에서 국가 간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칸트는 공화제 국가’, ‘국제연방법’, ‘세계시민권을 확정조항으로 둔 것일까?


예비조항이 적대적 관계 형성이나 전쟁과 같은 비평화적 상황이 생기는 것을 직접적으로 막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과 달리, 확정조항은 공화정과 국제연방이라는 법에 기초한 정치체제 속에서만 비로소 평화가 성취되었다 흔들렸다 하는 불안정한 상태를 벗어나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이런 법적 기초 위에 형성된 영구평화는 모든 사람이 지구상 어느 곳에서나 같은 지구인으로서 환대 받을 권리인 세계시민권의 형태로 압축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세 가지 확정조항 중에서도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할 것은 제1의 확정조항으로 모든 국가가 공화정이라는 정치체제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영구적 세계평화의 기초 중에서도 기초라고 볼 수 있다. 칸트에 의하면 공화정이란 전제적 정치체제에 반대되는 것으로 모든 구성원이 인간으로서 자유를 누리고, 하나의 공통된 법률 아래에서 주체가 되어, 시민으로서 법적 평등을 보장받는 사회이다. 칸트는 입법과 행정의 분리를 공화정의 특징으로 꼽고 있는데, 지금으로 말하면 삼권분립을 통해 권력자들이 시민의 자유와 평등에 반해 국가를 통치하는 것을 막는 민주적인 입헌정치체제가 공화정인 것이다.


칸트는 공화정이라는 체제에서는 영구적인 세계평화의 가능성이 한결 높아진다고 본다. 공화정에서 통치자가 전쟁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직접 몸 바쳐 싸워야하고, 천문학적 전쟁비용을 부담하게 되며, 한 번 일어나면 이후 계속적으로 반복될 위협에 시달리게 되는 대재앙이 곧 전쟁이라는 것을 아는 시민은 전쟁선포에 매우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전쟁을 통한 갈등 해결을 포기한 공화정은 대신 세계 연방을 결성하여 국제법의 적용 아래에서 각 국가의 권익을 보장받는 평화로운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또한 연방국가체제에서 개인은 다른 나라의 영토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세계시민으로서 적대시되지 않을 권리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칸트의 영구적 평화의 구상 한 가운데에는 공화정이 있다. 세계평화는 모든 국가가 국민의 자유와 평등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공화국이 되는 것을 통해 달성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통치자들이 권력분립의 원칙을 무시하고 모두 한통속이 되어 국민을 기만하고 불법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부정부패의 국가, 법치의 근간을 무너뜨려 국가의 주인을 국가로부터 소외시키는 전제국가가 세계적으로 주종을 이루는 한, 전쟁의 영원한 종식이라는 인류사적 목적은 달성될 수 없는 것이다.

 

칸트의 영구평화론이 현재 한반도의 상황에 던지는 메시지는 비교적 명확한 편이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두 공화국 사이의 평화정착이 칸트가 기획한 영구적 세계평화 추구의 방식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예비조항에서 강조되었듯이 서로를 간섭하거나 지배하려 하지 않고, 긴장감을 조성하거나 적대적 감정을 자극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군비축소 등을 통해 전쟁의 가능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남과 북 모두 평화를 원하는 시민의 뜻에 따라 국가가 운영되는 공화국, 국가다운 국가가 되는 것이 선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현정부 들어 북한 붕괴를 가정하고, 긴장감을 높이는 사드 미사일 배치를 강행하고, 북한 인민을 선동하는 듯 한 발언을 국가원수가 직접 하는 일들을 보면, 우리 정부가 거의 모든 예비조항에 반하는 행동을 일삼는 것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전쟁의 불씨에 부채질하고 있는 격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문제 상황에 놓인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가 칸트가 말하는 공화국의 면모를 거의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남과 북 모두 우선은 제대로 된 공화국을 건설하는 일에 온 힘을 다해 평화구축의 기반을 다지고, 궁극적으로는 통일을 이루어 세계평화에 이바지해야 하지 않겠는가.

 

 

정경화 | 대학에서 때때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세상에 정착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녹록하지 않아 늘 궁시렁대지만, 작은 힘이나마 보태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세상 만드는데 일조하고픈 소망은 꼭 쥐고 살아가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04.24 16:12

[시선 | 평화를 이야기하는 철학자들]


(): 사랑으로 일구는 화평한 사회를 꿈꾸었던 공자


정경화


몇 년 전부터 인터넷 상이나 기사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신조어가 헬조선이다. 젊은 층들이 주로 사용하는 말로 지옥을 뜻하는 영어 ‘hell’과 한반도 마지막 왕조국가 조선이 합쳐져 지옥 같은 대한민국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말의 사용이 점점 더 광범위해지고 그 빈도도 매우 높아지고 있어, ‘헬조선은 더 이상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 잠시 통용되다가 사라지는 비속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어쩌면 몇 년 후에는 국어사전에 실려, 2016년 즈음의 우리 사회의 우울한 자화상으로 오랫동안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상이 가능한 것은 헬조선을 뒷받침하는 온갖 자조 섞인 표현들이 끝임 없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갑질’, ‘수저론은 우리사회의 근본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각종 인간관계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자인 이 약자인 에게 안하무인격으로 행하는 폭력이 갑질로 표현되고 있고,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부가 그대로 대물림되는 현상이 금수저 대 흙수저로 표현되기도 한다.


현재 우리 국민들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팍팍한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낙담 속에서, 일부 특권층이 부당하게 누리는 부와 권력행사를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현실에 내몰려 있다. 조선시대와 같은 세습사회에서 지배계층의 폭정과 착취 아래에서 고통 받았던 평민의 삶이 연상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가장 최근에는 교육부 고위공무원이 영화 내부자의 대사를 인용하여 국민을 상위 1%와 하위 99%로 나누고 99%, 돼지로 천시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이만하면 우리나라가 정말 이민을 생각해볼 정도로 살기 싫은 나라, 2세 갖기가 불안한 나라, 99%가 불행한 헬조선이 되어있는 것은 아닌가 고민해 볼 문제이다.


만약 공자가 살아 돌아온다면 현재 대한민국이 헬조선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조선왕조는 유학을 건국이념으로 삼았고, 이후 내내 유학의 전통에 입각하여 나라가 통치되었던 역사를 생각했을 때, 조선시대 유학자들 그리고 유가의 시조인 공자는 각종 사회 문제로 멍든 대한민국이 헬조선이라고 불리는 것에 아마도 적잖이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공자가 그리고 그를 따른 이들이 꿈꾸었던 세상은 지옥 같은 곳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평화로운 사회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잦은 전쟁과 사회적 혼란으로 민중의 고통이 극에 달했던 중국 춘추시대 말기의 사람으로, 그의 사상에는 사회질서를 바로잡고 평화를 되찾아 사람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하는 인류애가 그대로 담겨 있다. 하지만 공자의 사상 중에서 후대에 주로 강조되었던 것, 그리고 실제로 유가 전통의 핵심으로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는 것은 ()’이다. 유교사회에서는 가족 사이, 친구 사이, 군주와 신하 사이 등,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상황에 맞는 각자의 역할과 처신이 무엇이지, 그리고 어떤 법도를 지켜 제사 등의 예식을 치러야 하는지 등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다음의 구절을 통해 ()’는 어디까지나 ()’을 담기 위한 형식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사람이 인()하지 못한데 예()는 무슨 소용이며, 사람이 인()하지 못한데 음악은 무슨 소용인가?”

 

공자 사상의 핵심은 ()’으로 우리말로는 어질다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는 한자이지만, 공자는 그 의미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인이라는 글자가 원래 두 사람(二人)’을 의미하는 표의문자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사랑의 바탕 위에 성립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르는데 예를 갖추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말했던 것이다. 예는 타인에 대한 사랑을 밖으로 표현하는 적절한 방법으로서 강조되었던 것이며, 효제충신의 강조도 가족과 가까운 이에 대한 기본적 사랑을 충실히 할 때 인간에 대한 보편적 사랑으로 키워갈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공자가 생각하는 사랑의 의미가 다음의 구절에서 명확하게 나타나있다.

 

()자는 자신이 서고자 할 때 남도 서게 하며, 자신이 도달하고자 함에 남도 도달하게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에 비추어 다른 이를 이해할 뿐 아니라 다른 이도 함께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나의 행복과 남의 행복이 모두 중요하게 되는 것, 자신의 행복을 위하는 것이 곧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행복, 더 넓게는 인류 전체의 행복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모두가 행복한 평등사회를 실현하려는 것이 사랑인 것이다.

공자가 꿈꾸었던 세상은 인자가 많아져서 이들에 의해 사회 전체의 행복이 잘 돌보아진 세상이다.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책임 있는 지위가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세상인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1% 안에 들기 위해 노력하거나 1%만을 위한 일에 복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뭣이 중헌지또렷이 알 것이고, 공자의 다음과 같은 말씀에 깊이 공감할 것이다.

 

내가 듣기를, 나라와 집안을 경영하는 자는 백성이 적은 것을 근심하지 않고 분배가 균등하지 않는 것을 걱정하며, 가난함을 걱정하지 않고 안정되지 못함을 걱정한다고 한다. 대개 균등하면 가난이 없고, 화합하면 부족이 없으며, 안정되면 위태로움이 없는 법이다.”

 

 

정경화 | 대학에서 때때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세상에 정착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녹록하지 않아 늘 궁시렁대지만, 작은 힘이나마 보태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세상 만드는데 일조하고픈 소망은 꼭 쥐고 살아가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04.24 11:43

[시선 평화를 이야기하는 철학자들]


염증상태의 나라에서는 끝나지 않을 전쟁 플라톤이 말하는 전쟁의 기원


정경화


우리에게는 매해 함께 떠올리는 역사적 사건들이 있다. 봄의 초입엔 3·1운동, 연두빛 찬란한 때엔 4·19혁명, 장미꽃이 만발하면 5·18광주민주화운동까지 일제와 독재에 목숨 걸고 저항했던 선현들에 대한 기억이 봄에 가장 생생하다. 가을에는 백성을 어여삐 여긴 세종대왕의 한글 반포가 109일 한글날로 지정되어 기억되기도 한다무더운 여름이 성큼 다가온 지금 우리를 기억하게 하는 사건은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가 가장 잊고 싶어 하는 기억,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인 19506월 한국전쟁 발발일 것이다. 평화를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무너뜨리는 전쟁의 경험, 그것도 남과 북으로 갈리어 우리 민족끼리 죽이고 죽임을 당했던 참극은 우리 민족의 가슴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것은 헛된 일일까? 고대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아마도 인류가 지금과 같은 형태의 삶을 유지하는 한 전쟁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하는 듯하다플라톤은 인류가 나라(폴리스)의 형태를 이루어 살게 된 기원을 설명하면서, 나라가 세 단계로 발달하였다고 말한다. 첫 번째 나라는 최소한도의 나라로 네다섯 명의 사람이 분업을 통해 의식주를 함께 해결하는 생활공동체이다. 각각의 구성원이 농사짓기, 집짓기, 직물 짜기 등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도의 노동 중 한 가지 종류만 맡음으로써 혼자서 모든 일을 해야 하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살아가는 형태이다.


두 번째 나라는 다양한 직종들이 더해진 보다 큰 규모의 나라이다. 각종 생산도구를 만드는 장인들, 농사나 운반에 필요한 가축을 돌보는 목부, 나라에서 생산되지 않는 필수품을 수입하는 무역상 등이 생겨나게 된다. 이 나라에서 사람들은 소박하지만 풍요로운 삶을 영위한다. 돗자리를 깔고 생활하고, 빵과 포도주를 만들어 먹으며, 과일과 콩 등의 후식을 즐기고, 여가생활을 누리는 등 구성원들이 모두 건강하게 장수하는 참된 나라’, ‘건강한 나라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건강한 나라의 규모가 유지되지 못하고 확장되면 호사스러운 나라’, ‘염증상태의 나라가 된다. 이 세 번째 나라에서는 각종 가구, 귀금속과 같은 사치품, 다양한 기호음식 등이 생산, 소비되면서 관련된 수많은 직업이 다시 추가된다. 육식을 많이 하는 등 건강하지 않은 생활습관 때문에 더 많은 수의 의사가 필요하기도 하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의 형태인 세 번째 나라에는 특히 매우 특수한 종류의 직업이 필요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군인(수호자)이다. 더 많은 자원이 필요하게 된 호사스러운 나라는 넓은 영토 또한 필요하게 된다. 결국 이웃나라와 영토분쟁이 불가피해지고, 무력으로 영토를 빼앗거나 지키기 위한 전쟁 수행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필요하게 된다는 것이다전쟁은 이와 같이 호사스러운 나라가 만들어내는 인간 탐욕의 결정체와 같은 것이다. 플라톤이 전쟁의 기원을 자원 확보를 위한 것으로 보고 있어서 종교, 이데올로기와 같은 신념의 대립에 의해 촉발된 전쟁에는 그 이야기가 잘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떠한 명분을 내세운 전쟁일지라도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모든 종류의 전쟁은 지구의 자원을 그리고 다른 사람을 착취하려는 욕망의 염증을 양분으로 하여 자라다가 터져 나오는 것일 것이다.


6월의 기억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우리가 한국전쟁과 관련해서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은 사실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휴전 중일 뿐 남과 북은 아직도 엄청난 규모의 군사력을 유지하며 전쟁의 긴장 속에 대치하고 있다플라톤의 전쟁기원론을 비추어 생각해보면 현재 극단적으로 호사스러운삶을 누리고 있는 우리가 전쟁을 끝낸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현 정부가 주장하는 통일 대박론에 귀가 솔깃하기도 하지만, 탐욕을 품은 경제논리로 접근해서는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전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다 통일이 된다 한들 평화가 오기보다 대박을 좇는 소리 없는 전쟁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을 끝내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준비는 현재의 염증상태의 나라를 최대한 건강한 나라로 만드는 일이 아닐까? 크고 화려한 것만 좇는 것이 아니라 소박한 풍요로움을 누리는 사회를 우리가 손수 만들었을 때, 작은 공동체들이 생동하고 건강한 삶의 장면이 넘쳐나는 장수사회가 되었을 때, 그 때만이 우리는 비로소 평화통일을 추진할 의지와 역량을 갖추었다고 자신할 수 있지 않을까?

 


정경화 | 대학에서 때때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세상에 정착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녹록하지 않아 늘 궁시렁대지만, 작은 힘이나마 보태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세상 만드는데 일조하고픈 소망은 꼭 쥐고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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