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포지엄2018.11.29 17:44

어린이어깨동무_2018평화교육심포지엄_내지편집v4.pdf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심포지엄

평화프로세스에서 평화교육의 역할


세션1. 북아일랜드

스토리텔링, 예술, 평화교육 

- 포드릭 오투마 Padraig O Tuama (코리밀라 리더·Corrymeela Community Leader)

분쟁지역 청소년의 평화교육과 사회통합

- 알란 화이트 Alan Waite (알시티 대표 매니저 · RCITY PROJECT Co founder & Senior Manager)  


세션2. 한반도

어깨동무 평화덕목과 평화교육 교안 만들기

- 박종호 (신도림고등학교 교사)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평화교육

- 정영철 (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 소장 ? 서강대학교 교수)


피스톡

- 세션1·세션2 발표자

- 김동진(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 IRC 마리퀴리 펠로우)

- 윤철기(서울교육대학교 교수)

- 정진화(강신중학교 교사)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10.19 00:58

[특집]


다시 백두산에서 평화를 맞이하다

 

이기범

 

나는 지난 918일부터 20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대통령 특별수행원으로 참가했다. 두 정상은 공동선언문을 발표하여 남북 협력과 비핵화를 더 진전시킬 것을 다짐했다.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는 언론에서 많이 다루었으므로 나는 회담 일정에 참가한 몇 가지 느낌을 나누고 싶다.



 ▲ 5.1경기장에서 문재인 대통령 연설을 듣고 있는 평양시민들

 



▲ 문재인 대통령 내외에게 꽃을 전달하기 위해 서있는 어린이들

 

문재인 대통령이 15만 명에 이르는 북녘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방북에 앞서 나름대로 대부분의 일정을 예측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공항에서 영접하리라는 것, ‘깜짝 행사로 꼽힌 백두산 등정도 마지막 날에 진행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이 끝나고 김정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을 소개할 때 그저 인사로 그칠 줄 알았다. 김위원장이 다시 문재인 대통령에게 다시 한 번 뜨겁고 열렬한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소개하자 더 큰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문 대통령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머리에서부터 온 몸에 전율이 일어났다. 충격과 감동 그리고 대형경기장을 가득 메운 함성에 압도되어 더 이상의 생각을 이어가기 어려웠다. 분단 이후 최초이자 최대로 극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고 그 현장에 내가 있다는 사실만이 너무 또렷했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연설에 어느 정도의 후유증이 따른다는 것을 알고도 연설을 진행했다. 두 정상이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공유하고 있고, 연설을 통하여 그 의지를 남과 북 그리고 세계에 알리려는 뜻도 공유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문 대통령의 연설은 북녘 인민들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갔을까? 그 현장에 평양 사람들만이 아니라 공연에 참여하느라 전국 각지에서 모인 다양한 남녀노소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내가 앉은 자리 바로 아래쪽에 북녘 사람들의 자리가 있어서 그이들의 표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이들의 얼굴에 놀라움과 감동이 벅차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이들의 환호와 박수는 진심과 기대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 들렸다. 남북 관계와 남녘에 대한 이미지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 변화가 그이들의 의식에 혼란을 일으키든 마음에 희망을 불어넣든 커다란 파도로 일어났으리라. 문 대통령의 연설은 7분에 불과한 짧은 장면이었지만 정치 행위를 넘어선 문화적 사건이다.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의 파장은 한반도와 세계로 널리 퍼져나갔을 것이다. 현장에 있는 내가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이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의 한 장면

 

그 다음날 백두산 방문을 위해 어두컴컴한 5시경 호텔에서 공항으로 출발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천지를 볼 수 있겠나 하는 걱정을 나누며 공항으로 가는 길에 환송인파를 만났다. 새로 조성된 려명거리 쯤에서부터 꽃술을 흔들며 우리를 배웅하는 사람들이 비와 어둠 속에서 불쑥 나타났다. 어제 밤의 사건을 꿈처럼 떠올리며 마음 어드메에 둘지 갈피를 잡으려는 여명(黎明)의 시각에 나타난 사람들의 무리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대통령은 모르겠으되 내가 그런 환송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당황스러웠다. 나중에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 답방에 대하여 내가 아직 서울에서 환영받을 만큼 일을 많이 못했다.”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 그럼 그 많은 인민들의 환호는 신들, 앞으로 평화를 위한 일을 많이 하라는 외침으로 들어야 하나? 여하튼 그때에는 적어도 세시쯤부터 빗속에 서있었을 그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서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진심으로 화답했다.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선팅이 된 버스 창이었지만 사위가 아직 어두워서 실내등을 켜고 손을 흔드는 우리를 사람들이 볼 수 있었던 게 다행이었다. 새벽 그 시각에 우리는 한 마음이 되었을까?

 

남녘의 어떤 사람들은 평양의 환영과 환송 인파가 강제로 동원되었다고 꼬집는다. 북녘 관계자들은 직장 단위로 동원되었지만 스스로 나온 사람들도 많다고 말한다. 그러니 사람들이 오롯이 강제로 동원되었는가는 살펴봐야 한다. 이미 두 번이나 만난 두 정상이 함께 평양 시내를 누비는 대단한 구경거리이니 누군들 궁금하여 거리로 나서지 않겠는가? 거의 90도로 허리를 꺾어 인사하는 남녘 대통령을 보면서 어찌 감동이 없겠는가? 남녘에서도 사람들을 행사에 동원하고 있고 과거에는 국가행사에 대규모로 동원했다. 나도 고등학생이었던 19748월 육영수 여사의 국민장에 동원되어 광화문거리에서 아침 8시부터 대기했다. 막상 장례식은 11시쯤에나 시작되어 뙤약볕에서 땀깨나 흘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즈음에 고교생들은 전국체전 같은 행사에 매스게임(집단체조)과 카드섹션(배경대)을 하라고 자주 강제로 동원되었다. 지금은 강제 동원은 사라졌고 대부분 자발적인 참여로 행사가 이루어진다. 언젠가는 북녘에서도 동원이 필요 없게 되고 사라질게다. 그러니 그때까지는 강제동원의 역사가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 떼면서 비난하기보다는 수고하는 북녘 인민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 온당한 태도가 아닌가 한다.

 



.첫 날 평양대극장의 북측 공연종목

 

남북이 대화하고 협력하려면 역지사지의 태도와 상호주의적인 인식이 필요한데 우리는 여전히 그런 것에 인색하다. 앞의 사진은 회담 첫째 날 평양대극장의 북측 공연 종목이다. ‘뒤 늦은 후회’, ‘아침이슬’, ‘차집의 고독등 남쪽 노래를 북측 배우(북에서는 가수도 배우라고 부름)들이 북측 노래보다 더 많이 불렀다. 집단체조 공연 중 특별장 평화, 번영의 새 시대에서도 계몽기 가요(일제시대 때 노래)부터 최근 노래까지 남쪽 노래를 많이 불렀다. 지난 4월 남측이 평양에서 공연할 때는 가수 서현이 북측 노래로 푸른 버드나무딱 한 곡을 불렀다. 얼마 전에 어떤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평양 정상회담 때 왜 평양에 태극기가 없었냐고 물어보았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에 오면 인공기를 휘날릴 수 있겠냐고 반문하여 웃음을 자아냈다. 한 언론계 후배로부터 잘 아는 언론사 기자가 자기 회사 지국을 평양에 만들어야겠다라고 해서, “북측의 <로동신문> 지국도 서울에 만들어야 겠네라고 했더니 그건 안된다고 하더라는 말을 들었다. 북측은 회담기간 동안 우리 일행이 호텔 방 티비에서 남녘의 네 개 방송을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때 그와 동등하게 조선중앙티비를 방영할 수 있을까?

 


한반도기로 장식된 평양대극장


 


옥류관 냉

 

간만에 북녘에 다녀 온 나에게 젊은 사람들은 옥류관 냉면 먹은 소감을 물었고, 더 나이든 사람들은 백두산 방문 소감을 물었다. 이번에는 공식 오찬이라 냉면에 앞서 여러 음식이 나왔지만 나는 냉면 200그램을 먹고 쟁반 200그램을 더 먹었다. 과식은 언제나 즐겁다. 남녘의 유명한 셰프가 북녘 자료를 인용하며 옥류관 냉면이 검어진 이유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 메밀이 부족하여 전분을 섞어서 그렇게 되었다는 글을 썼다. 식량 사정이 어렵더라도 옥류관 조차 메밀이 부족했다는 말을 믿기 어려웠기에 이번에 옥류관 복무원(종업원)에게 검어진 이유를 물으니 영양가를 높이기 위하여 메밀을 덜 깎아서 그렇다는 답을 들었다. 어느 말이 옳은가는 각자 판단하시기 바란다.




백두산 천지에서



마지막 일정, 백두산 방문에서 천지 물에 회담의 감상을 후련하게 담아냈다. 2004 6월 처음으로 백두산에 올라 어린이어깨동무 일행들과 함께 남북 어린이들이 백두에서 한라까지 어깨동무할 그날이 곧 오도록 모두 노력하자고 약속했었다. 14년이 지나서야 백두산을 다시 찾았다. 그 약속은 아직 지키지 못하고 있다. 아쉬움과 뉘우침이 크다. 그래도 평화와 번영의 약속이 이루어지고 있어 안심하려고 한다.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회장 자격으로 정상회담에 참가하였으니 남북 당국 모두 민간협력에 더 힘을 쏟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믿는다. 다시 백두산에 서서 한반도의 평화를 맞이한다.


 


사진으로 전하는 ‘2018 양 이야기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서 공연중인 어린이들

 



▲ 만경대학생소년궁전 자수반 어린이들. 박원순 서울시장도 보인다.



 

▲ 평양교원대학 학생들의 수업 시연

 



▲ 평양어깨동무학용품공장. 숙소 바로 옆인데도 가보지 못하여 아쉬었다.




▲ 순안공항 이륙 전 공군1호기 앞에서

 


이기범어린이어깨동무 설립에 참여하여 초대 사무총장으로 10년 동안 일했고 지금은 이사장을 맡고 있다. 남북의 어린이들이 교류하며 한반도 평화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길을 만들고 그 길을 함께 가기를 소망한다. 최근, 지난 20년간의 어린이어깨동무 활동을 담은 <남과 북 아이들에겐 철조망이 없다>를 발간했다. 숙명여대에서 교육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10.19 00:13

[이슈]


오늘의 청소년, 내일의 한반도 평화를 상상하다

 

임수연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판문점선언을 시작으로 분단 70여 년 간 한반도를 둘러싼 남북의 반목과 화해가 재조명되고 있다.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가 푸른 가을 하늘 위로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처럼 높아만 간다. 종전이 선언되고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정착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뉴스에서 반복되어 다루어지고 친구들과의 점심식탁 위에 심심치 않게 오르내린다. 그런데, ‘~되어진다? 이야기 속의 주어를 찾으려니, 고개를 가우뚱하게 된다. 남북 두 정상의 악수와 포옹의 이미지가 강렬한 나머지 대화를 나누는 는 큰 야구장의 외야석 뒤에 앉은 관중처럼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 듯 느껴지기도 한다.

 

당장 내일이라도 닥칠 것만 같은 한반도 평화 시대를 뚜벅뚜벅 걸어 나아가야할 주인공인 청소년들은 어떤 느낌일까? 칠십삼 년 전에는 하나의 나라였고 지리적으로도 가깝지만 마음속에서는 너무도 먼 나라. 지난 10년간 학교 안과 밖에서 남과 북의 소통에 대해서 특별히 고민할 기회 없이 자라온 청소년들에게 의 존재를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티브이에서 연일 보도되는 장면들은 유명인들의 결혼발표처럼 나와 상관없는 갑작스러운 이벤트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서울청소년창의서밋

<오늘 시민, 오늘 민주주의 NOW HERE>


한반도의 평화체제의 안착에 대한 기대가 시시각각 고조되는 오늘, 미래시대를 살아갈 청소년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알아볼 수 있는 자리들이 많이 마련되고 있는 가운데, 하자센터1)에서 지난 9월 초에 열린 제10회 서울청소년창의서밋을 소개하고자 한다. <오늘 시민, 오늘 민주주의 NOW HERE>라는 부제로 열린 이 행사는 5월초부터 청소년기획단에 의해 준비되었다. 시민으로 '오늘''한국'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미래를 생각할 때 외면할 수 없는 네 가지 주제는 다르지만 괜찮은 삶에 대한 상상’, ‘행복한 페미니즘에 대한 상상’, ‘한반도 평화 시대에 대한 상상’, ‘청소년 참정권에 대한 상상인데, 이 중 반갑지만 갑작스러운 한반도의 평화에 어떻게 말 걸기를 시도하였는지 궁금하다.

 

1) 하자센터(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는 청소년의 자기주도성과 창의성 기반을 둔 창의적 공공지대(creative commons)’1999년 겨울에 문을 열어 영등포에서 열아홉 번째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웹사이트 www.haja.net

 

문재인 정권 때 남북관계가 회복되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지만, 이번 남북정상회담일 줄은 생각도 못했기에 저에게 큰 충격이었어요

 

주변 사람들의 기대와 불안을 접하면서, 어쩌면 우리는 탈분단에 대해 너무 일차원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북 사이에 총을 든 군인들이 사라지고 이산가족이 다시 만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닐텐데 말이죠

 

북한에 대해 알고 있는 부분이 지극히 적다고 생각해요. 사실상 북한에 대한 정보는 금기시 되었을 뿐더러 북한의 폭력적인 부분들과 도움이 필요한 모습만 강조 되어 왔잖아요.”

 

다음 세대의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탈분단이 한 발짝 앞으로 다가온 지금 시점에 남한의 청소년들은 탈분단, 통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 지 이야기 나눠봤으면 좋겠어요.”

 

우선 다른 청소년들도 이렇게 막연한 지 혹은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 지 알아보기 위해 온라인으로 설문을 진행하였다. 기획단 각자가 가진 편견과 막연한 기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보고 활동가의 자문을 받으며 설문 응답지를 만들고 수정했다. 여는 행사<오늘 시민, 청소년 일상의 민주주의를 말하다>의 세 번째 이야기로 <한반도에 대한 상상> 세션에서 객석의 200여명의 청소년들과 <한반도 평화 시대 상상하기> 설문 결과를 공유하고, 이후 서밋 기간 동안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문장으로 만들어 소통해보는 공동 작업을 제안하였다.

 

더불어, 블라디보스토크부터 베를린까지 24일간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고 돌아온 여행학교 주말 로드스꼴라 청소년들의 <서울역을 국제역으로!>라는 퍼포먼스가 개막식과 이튿날 플래시몹으로 선보였고, 프로젝트 공유회 <사뿐사뿐 대륙을 횡단하다>도 진행되었다. 한반도 평화의 시대에 경의선을 타고 서울부터 열차로 유라시아횡단을 하게 될 상상을 키워가는 흥겨운 여정이었다고 한다.




<한반도 평화시대 상상하기> 온라인 설문결과


한반도 평화의 시대, 종전 후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삶이 어떻게 달라질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 하나의 체제로 하나의 국가로 통일한다는 응답은 단 19.9%로 나타났다. ‘국가는 나누어져있지만 자유롭게 교류한다50.6%가 응답하였고, ‘하나의 국가가 되지만 각각 독립적인 체제를 유지한다에 응답한 경우도 20.6%에 달하였으며, ‘전쟁의 위협은 사라졌으면 하되, 그 밖의 변화는 원하지 않는다에 응답한 5%까지 포함하면, 76.2%가 무리한 통일보다 체제유지 하에서의 평화적 공생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답한 이유로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전쟁위기 해소’, ‘국력강화와 국제경쟁력 상승’, ‘북측과의 문화교류라는 응답이 있었고, 부정적인 측면에서는 두 집단 간의 편견과 차별’, ‘급격한 변화로 인한 사회혼란’, ‘북한 난개발과 부동산 투기등의 의견에 답한 비율이 높았다.


평화협정이 이루어지고 남북 간의 관계개선이 이루어지면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북한 도시 방문하기부터 친구 사귀기살아보기까지 처음 가는 해외여행지에서 기대하는 바와 유사한 것들도 있었다. 한편, ‘북한 문화공연 관람이나 남북 청소년 교류에 대한 희망과 개마고원 락페스티벌’, ‘평양 퀴어 퍼레이드등 다양한 문화교류의 상상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모두의 식탁에 둘러앉을 주인공들을 상상하며


2004615일 어깨동무의 스태프로 어린이들과 함께 백두산 정상에 오른 적이 있다. 그날 역시 천지는 백 여명의 어깨동무 방북단에게 큰 품을 열어주었다. 웅장한 정상의 모습도 장관이었지만, 내려오는 길 중턱의 잔디밭에서 도시락을 나누어 먹고 연을 날리던 찰나의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삶의 터전을 떠나 도망가면서도 아이들과 함께 멋진 하모니로 노래를 부르던 사운드 오브 뮤직의 한 장면처럼, 그 순간만은 어떠한 머뭇거림 없이 평화로웠다.


<서울청소년창의서밋>의 피날레는 마당에 너른 식탁을 펼치고 참여 청소년들과 이들을 응원하는 비청소년들이 소박한 저녁식사를 나누는 <모두의 식탁>으로 마무리 된다.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던, 어떤 원치 않는 두려움을 겪어왔던 관계없이 한반도에서 평화롭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가진 청소년들이 어느 볕 좋은 날 풍성한 식탁에 둘러앉는 순간을 상상해본다. 아무런 긴장감 없이 각자의 꿈과 함께 만들어갈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눌 수 있는 하나의 점 같은 순간들이 반복되어 선이 되고 면을 이룰 수 있는 시간이 머지않아 우리에게 깃들기를 소망해본다.



 

임수연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하자센터교육기획팀장.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팀 간사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후, 아시아의 평화환경을 키워드로 다음세대인 청소년들이 여러 꼴의 갈등을 포착하고 조정하며 평화롭게 살아갈 세상을 만들어 가는 길에 손을 보태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10.18 20:54

[시선 | 평화를 그리는 화가들]


위태로운 유럽의 평화를 풍자하다. 오노레 도미에

 

김소울

 

모든 회화가 그러하듯 풍자화라는 장르가 처음부터 존재해 왔던 것은 아니다. 정치인들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민중을 향한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진 최초의 풍자 화가는 프랑스의 사실주의 미술가 오노레 도미에(Honore Daumier)였다. 정치를 풍자한 장르가 처음이었던 만큼, 그는 최초의 반체제 화가로 불리고 있으며 평생을 민중의 편에서 활동하였다.

 

1800년 중반 유럽은 혼란의 시기였다. 1849년 수립된 로마 공화국은 나폴레옹 3세에 의해 붕괴되었고, 프랑스군은 1866년까지 이탈리아 전역을 지배하게 된다. 나폴레옹 3세는 1852년부터 18년간 군림하며 식민지획득 전쟁에 열을 올렸고,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 중남미 등 각지에서 전쟁을 벌였다. 1864년 멕시코를 점령한 나폴레옹 3세는 막시밀리안을 황제로 세우려 했지만 이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내전상황이 계속되면서 1864년 프랑스군은 물러나게 되었고, 막시밀리안은 고립되어 자신의 장군들과 함께 총살당하게 된다.

 

멕시코 사건이 있은 후, 유럽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유럽은 오랜만에 피와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이 진정한 평화를 되찾은 것은 아니었다. 도미에는 이들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평화를 겨우 붙잡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노레 도미에, 유럽의 균형(1866)

 

이 그림은 도미에가 1866년 작업한 석판화 <유럽의 균형>이다. 그림의 하단부에는 독일과 프랑스, 터키, 그리고 영국 군인이 총검을 모아 지구를 위태롭게 들고 있다. 당장 전쟁은 일어나고 있지 않지만 실제로 유럽인들은 지금의 평화가 일시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들 중 한 명이라도 약속을 어기거나 다른 곳에 한눈을 판다면 이 균형은 유지 될 수 없다. 누구 하나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평화로운 지구는 한 순간의 실수로도 와르르 무너지고 바닥으로 곤두박질 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도미에는 단순하게 지금의 상황을 풍자하려고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그림은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지만, 그 안에는 지금의 평화가 조금이라도 더 유지되기를 바랐던 그의 작은 소망이 담겨있었다.


 

오노레 도미에, 유럽의 균형(1867)

 

도미에는 유럽의 위태로운 상황을 이야기하며 평화의 여신 이레네를 자신의 작품에 적극 활용했다. 그가 작업한 또 다른 동명의 작품 <유럽의 균형>에는 평화의 여신이 폭탄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양 팔을 벌려 균형을 잡고 있지만, 실상 이 평화는 여신이 조금이라도 중심을 잃는 순간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여신의 곧 넘어질 듯 표정에 긴장감이 가득하다.

 

어쩌면 이 폭탄은 1866년에 그린 위태롭게 총검 위에 놓여 진 지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렵게 균형을 잡고 있던 평화의 여신이 넘어지는 순간 지구는 폭탄이 되어 또 다시 많은 사람들의 피로 물들 것이다.



오노레 도미에, 평화가 칼을 삼킬 때(1867)

 

평화의 여신은 급기야 자신의 입에 칼을 집어넣고야 만다. 칼을 입에 넣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결국 자신을 죽이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녀가 이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름답던 평화의 여신은 이제 늙고 지친 모습이다. 지긋지긋한 이 전쟁을 스스로를 희생해서라도 끝내고 싶은 것이다. 칼의 반 이상을 입에 집어넣은 평화의 여신의 뒤에는 수많은 민중들과 군인의 모습이 보인다.

 

유럽의 평화는 이 그림을 그리고 난 일 년 후인 1968년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전쟁으로 쉽게 무너지고 만다. 그러나 자신을 희생해 가면서도 전쟁을 끝내고 싶던 군중들과 도미에의 소망은 처절하게 그림에 남겨졌다.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평화의 여신은 오늘도 칼을 삼키고 또 삼킨다.


 

김소울 |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의 심리상담학과 특임교수로 재직중이며, <아이마음을 보는 아이그림>을 비롯한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였다. 현재 미술 작가이자 플로리다 마음연구소 대표로서, 치유적 활동과 미술창작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10.18 20:32

[시선 |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극도로 예민한 중2 스물아홉이 모였다.

그중 담임이 가장 예민할 때 생기는 일들에 관하여.

너의 눈, ,

 

주예지

 

조회에 들어가면 마치 카메라가 인물의 얼굴을 인식하듯 아이들 얼굴이 들어 있는 작은 네모 상자 스물아홉 개가 교실에 둥둥 떠다닌다. 10분간 분석을 시작한다.

 

오늘 정현이가 엎드려 있군. 컨디션이 별로인가 보네. 건들지 말아야지. 지우는 오늘 왜 저렇게 들떴지. 서영이는 얼굴이 어두워 보이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나. 준희는 인상을 엄청 찌푸리고 있네. 예서는 졸려 보이네. 어제 늦게 잤나. 재우는 왜 내 눈치를 보지. 뭐 잘못했나. 지서는 멍 때리기 대회 나가면 1등 하겠다.……

 

보통 중2 아이들의 아침 표정은 각자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 짜증스러움과 피곤함, 귀찮음이 잔뜩 묻어 있다. 아직 2년 차 새내기 교사에게 비교 대상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유독 우리 반 아이들의 표정이 매섭게 느껴진다. 짜증스러움이 가득 담겨서 톡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예민한 눈, , 입을 보고 있노라면 얼른 교실 문을 나서고 싶어 종이 치기를 간절히 기다리다가 후다닥 나간다.

 

그나마 다수를 상대하는 교실 상황에서 아이들을 마주하는 것은 견딜만하다. 잠시나마 아이들의 얼굴을 피하고 싶을 때 아이와 아이 사이의 허공을 보면 좀 낫다는 것을 터득했다. 일대일로 마주하면 속에서 열불이 올라오곤 한다. 학기 초부터 표정이 계속 신경 쓰이는-좀 더 솔직해지자면 거슬리는- 남자아이가 있다. 대들거나 대놓고 삐딱선을 타는 건 아닌데 건들거리는 태도와 항상 불만이 가득한 뚱한 표정이 신경을 묘하게 긁는다. 이 아이의 눈, , 입은 혼낼 때 진면모가 드러난다. 한문 시간이 끝난 이후였다. 한문 선생님이 이 아이가 수업 시간에 지나치게 방해를 해 벌점을 주셨다고 한다. 1학기에도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불러서 차분히 이야기한다. 물론 잔소리를 들을 때도 표정이 안 좋았지만, 한문 선생님께 찾아가서 사과드리고 앞으로 수업 시간에 어떻게 할 것인지 말씀드리라고 하니 똥 씹은 표정이 된다. 옆으로 돌리는 고개, 찌푸려지는 미간, ‘-’하면서 한숨 쉬는 입, 꾹 참는 듯한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 나중에 한문 선생님께 확인할 거라고 하니 억지로 알겠다고 하며 교무실로 내려간다. 종례를 마치고 교무실에 내려가 보니 한문 선생님이 안 계신지 계속 기다리고 있다. 확인해보니 오늘 한문 선생님이 일찍 가시는 날이다. 내일은 방학식이라서 미루면 안 될 것 같아 아이에게 편지지를 건네며 여기에 한문 선생님께 편지를 쓰라고 하니 이제는 거의 한 대 칠 것 같은, 날 것의 표정이 그대로 나타난다. 순간 속에서 더운 김이 확 올라온다. 침을 한 번 꾹 삼키고 말을 꺼낸다.

 

혹시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 불만이 있니?”

아니요.”

 

표정은 아닌 것 같은데. 선생님도 너랑 웃으며 좋은 이야기만 하고 싶어. 너 남겨서 이런 이야기하는 거 결코 마음 편하고 쉬운 일 아니야. 그런데 지금 그런 표정으로 쳐다보면 선생님 기분이 어떨까?”

 

기분 나쁠 것 같아요

 

맞아. 안 그래도 내 새끼가 다른 선생님께 혼나서 속상해 죽겠는데 너까지 그런 표정으로 보면 더 속상해. 앞으로 한문 시간에 선생님 말씀 잘 듣고 표정 풀고 다니자. 알겠지?”

 

.”(여전히 똥 씹은 표정이다.)

 

2 아이들의 예민함은 표정에서 극명히 드러나는 듯하다. 반항적인 말과 행동이 드러나지 않는 아이들에게서도 순간 돌변하는 눈빛이나 구겨지는 표정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표정은 정말이지……-말줄임표로 대신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표정이 선생님에게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표정은 빈번하게 공격이 되어 날아간다.

 

우리 반의 자리 바꾸기 규칙은 2주에 한 번, 제비뽑기로 정해 남녀 무작위 짝으로 앉는 것이다. 2주에 한 번 자리를 바꾸는 것은 보통 한 달에 한 번씩 바꾸는 다른 반에 비해 자주 바꾸는 편에 속한다. 다양한 친구들과 고루고루 짝을 해보면서 얼른 친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그런데 두어 번 정도 자리를 바꾸고 난 뒤 4월 즈음에 분위기가 이상하다. 제비뽑기하고 자리를 바꾸는데 남자아이들이 주고받는 눈빛이 심상치 않다. 유독 한 아이가 탄식을 내지르고 다른 아이들이 웃으면서 눈빛을 주고받는다. 저번에도 웅성웅성 하길래 그냥 눈빛만 쏘아주고 넘어갔는데 이번에는 안 되겠다. 쉬는 시간에 탄식을 내지른 아이를 불러 내려서 이야기해본다. 우리 반에 겉도는 여자아이 세 명이 있는데 자기가 계속 그 아이들과 번갈아 가며 짝이 되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아이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온몸으로 싫어하는 티를 꼭 내야만 하는 걸까. 그 뾰족함에 기어코 생채기가 난다.

 

다음 번 자리 바꿀 때는 우리 반이 너무 시끄럽다는 핑계로 앞으로는 제비뽑기가 아니라 내 마음대로 할 거라며 한 줄씩 떼어 놓고 임의로 자리를 배치한다. 자리를 배치할 때 우선 겉도는 세 아이들의 자리를 먼저 정한다. 세 아이들의 출석 번호가 연달아 있어서 다른 아이들이 셋을 묶어서 뒤에서 별칭을 만들어 놀린 전력이 있기 때문에 최대한 같이 안 앉힌다. 그리고 그 주위에 그나마 괜찮은아이들을 배치한다. 괜찮은 아이들이란 주위에 세 아이들이 있어도 대놓고 표정을 구기지 않는 아이들, 싫은 티를 온몸으로 내지 않는 아이들, 좀 순한 아이들을 일컫는다. 두세 번은 그래도 자리를 정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시끄러운 아이들도 떼어 놓으니까 수업 분위기도 좀 괜찮아졌고, 세 아이들에게도 전보다는 불편한 상황이 줄어든 것 같아서 만족했다. 친한 친구를 만들어주는 마법은 못 부려도 교실에서 그나마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금의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대로 계속 짝을 바꾸다 보니 의문이 들었다. 잘하고 있는 건가? 이게 진짜 그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건가? 그 아이들이 내년, 내후년에도 이런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오히려 안전이라는 핑계로 다른 아이들과 소통할 기회를 빼앗아버리는 건 아닐까? 항상 그 아이들 주변에 앉는 아이들은? 내가 세 아이들을 보호해준다는 걸 다른 아이들이 모를까?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세 아이들 주변에 배치할 수 있는 아이들이 제한적이어서 자리를 바꾸어도 비슷한 느낌이다. 아이들이 눈치 못 챌 리가. 그렇게 2학기가 시작되었다. 자리를 바꾸려고 이리저리 배치해 보는 일요일 저녁 시간. 계속 이어지는 의문과 갈등 속에서 결국 작업하던 창을 닫고 아침에 한동안 쓰지 않았던 제비뽑기 숟가락을 꺼내 교실에 들어간다. 제비뽑기가 끝난 후 초조한 마음으로 두 아이를-한 아이는 1학기가 끝나고 난 후 전학을 갔다.- 확인한다. 세상에. 앞뒤는

괜찮지만 옆이 문제다. 옆 분단에 쭈루룩 1학기 때 갈등이 있었던 남자아이들이 앉아 있다. 아니나 다를까 수업 시간에 종종 열심히 자기들끼리 눈짓을 주고받느라 바쁜 눈동자가 보였지만 그래도 별 탈 없이 넘어갔다. 2주가 지나고 다시 제비뽑기를 했다. 이번엔 다행히 자리를 잘 뽑았다. 주변에 갈등이 있는 아이도 없고 괜찮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 롤러코스터를 앞으로 몇 번이고 더 타야 한다니 벌써 속이 울렁거린다.

 

우스갯소리로 중2 애들 너무 예민하다고, 근데 그중에 담임인 내가 제일 예민하다고 친구한테 하소연하며 떠들던 게 생각난다. 여고, 여대에서 치열하게 눈치 싸움을 하며 살아남아 학습한 덕분일까. 아이들 간의 관계가 민감하게 다가오고, 서로 주고받는 미묘한 눈짓, 몸짓, 무언가 꾹 눌러 참는 입술 하나하나가 걸린다. 경력이 많은 노련한 옆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신다. 그냥 넘어갈 줄도 알아야 한다고. 너무 깊게 알려고 하지 말라고.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 될 때도 있다고. 늘 선을 지키는 것이 어렵다.

 

내일은 월요일이다. 아이들의 눈, , 입이 가장 굳어 있는 시간. 심지어 내일은 자리도 바꾸는 날이다. 아이들의 표정을 떠올리는 와중에 문득 궁금하다. 아이들의 눈에 비친 나의 표정은 어떨까. 학기 초에는 그래도 웃으면서 아이들을 반기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나는데 아이들과 여러 모난 일들을 겪으면서 어느 샌가 교실 문을 들어서는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아마 나의 눈, , 입도 날카로운 선이 되어 때로는 아이들의 마음을 벨 때도 있겠지. 신경이 곤두서는 월요일이 지나고 마음이 넉넉해지는 금요일에는 서로의 눈, , 입이 둥근 곡선으로 맞닿을 수 있게 얼굴 근육을 풀어 놓아야겠다.

모두 개구리-------!

 


주예지 국어가 어렵다는 아이들의 투정 어린 원성에 나도 어렵다며 유치한 설전을 벌이며 살아가고 있는 국어교사입니다. 작년에 목동중학교에 교사로서 첫발을 디디고 2년 동안 중2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으며 내년에는 중2를 맡지 않겠다며 벼르고 있는 중입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PDF)2018.10.1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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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평화총서2018.09.13 15:59


"사람이 만난다, 남북이 웃는다"

이기범 교수가 북에 콩우유공장, 연필공장, 어린이병원을 만들며 겪은 방북이야기. 

스무해 넘게 천 명 넘는 사람들과 북녘을 방문하면서 땅의 경계와 마음의 경계를 뛰어넘은

생생한 기록을 만나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08.20 00:23

[이슈]


'적군 묘지' 앞에서 생각하는 평화

 

박종호


지난 6월 29일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 콜로키움 ‘회복적 사회를 위한 평화교육’에 참석한 아일랜드 평화교육 실천가 데릭 윌슨(Derick Wilson)과 김동진 박사(트리니티 칼리지)를 2년 만에 반갑게 다시 만났다. 2017년 2월 아일랜드 평화교육 현장답사에서 만나고 이번에 서울에서 다시 만났으니 그 반가움은 컸다. 데릭 윌슨은 콜로키움에서 평화교육과 회복적인 사회, 이를 위한 교육자들의 실천에 대한 발표를 하였는데, 그야말로 아일랜드의 남북대립과 갈등의 한복판에서 회복적 실천을 위해 달려 온 자신의 평생에 걸친 노력의 알맹이를 풀어놓았다.


‘회복적 실천은 삶의 방식이자 일하는 방식이다. 다른 이를 희생양으로 삼거나 비난하기보다 책임을 지는 것이다. 상대를 정당하게 대하고, 타인과 차이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갖고, 그 차이를 축복하는 것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며, 시간, 상상, 창조적인 에너지와 희망이 새로운 현실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받아 적은 말이다.


나와 너, 우리 학교, 사회, 그리고 이웃하고 있는 나라에 대해서도 같이 적용되고 실천해야 할 덕목들이다. 평화교육이 해야 할 일이 이렇게 많고, 또 먼 걸음을 시작해야 한다. 아울러 폭력에 대해서도 상대의 폭력은 부당하지만 자기 진영의 폭력에 대해서는 변명하는 데서 벗어나서, 모든 폭력에 대해 거부하고, 비폭력을 옹호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들었다. 우리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어려운 말인줄 알면서도 또 얼마나 절박한 말인가.


다음 날인 6월 30일 이른 아침, 데릭 윌슨과 김동진 박사, 그리고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 교육과정연구모임에서 배우고 실천하는 초등·중고등학교 교사, 대학생, 어깨동무 활동가 20여명은 파주 ‘적군 묘지’를 찾아가기로 하였다. ‘회복적 평화’를 떠올려 보기에 적절한 곳이라 여겨서 고른 곳이다. 자유로를 지나 문산 방향으로 37번 국도를 달리다가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자장리부근에서 큰길가에 차를 세우고 일행은 모두 내렸다. 얼핏 지나치면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세워진 간판은 '북한군 중국군 묘지 안내도'이다. 적군 곧 한국전쟁에서 남쪽과 서로 적으로 맞선 상대, 북한군과 중국군의 무덤이다. 제1묘역, 제2묘역으로 표시된 입간판이 함께 서 있었다. '적군 묘지'로 알려져 있고, 군부대가 관리하는 곳인데, 직접 지키는 사람은 없다. 두 묘역 사이에는 농사를 짓는 밭이 있어서 실제로 일하는 분들이 무심하게 우리를 건너다보고 일을 하고 있기도 한다. "이곳은 6.25전쟁(1950.6.25.-1953.7.27.)에서 전사한 북한군과 중국군 유해, 6.25전쟁 이후 수습된 북한군 유해를 안장한 묘지입니다. 대한민국은 제네바 협약과 인도주의 정신에 따라 1996년 6월 묘역을 구성하였으며, 묘역은 6,099㎡로 1묘역과 2묘역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잠깐 입간판의 내용을 읽은 뒤에 오른편 2묘역으로 먼저 가서 우리는 무덤 가운데 서서 작은 꽃다발을 놓고 묵념을 올렸다. 무덤마다 놓인 비석에는 누구의 무덤인지, 어디에서 전사했는지 등의 기록이 적혀 있다. 한국 전쟁 때 치열한 전투에서 죽은 북한군과 중국군의 유해가 함께 안장되어 있다가, 중국군 유해는 2014년 무렵에 송환되었다. 더러 ‘무명인’ 비석이 눈에 들어온다. 이름도 없이 스러져 간 젊은 넋이 여기에 누워 있는 것이다.



다시 걸음을 돌려 처음 들어선 쪽으로 가서 1묘역으로 들어섰다. 이곳은 조금 더 잘 단장되어 있는 곳이다. 역시 함께 모여서 묵념을 하고, 준비해 간 구상 시인의 시 ‘적군 묘지 앞에서’를 정지영 선생님이 낭독하고, 또 다른 시 ‘휴전선’을 대학생이 낭독하고, 데릭 윌슨의 말씀도 들었다. 이런 고통스런 아픔의 현장을 찾아서 나누는 모습이 회복적 사회로 나아가는 걸음이 될 것을 확신한다는 말을 하셨다.



1묘역의 말끔히 단장된 무덤을 돌아보다, 문득 무덤이 모두 북쪽을 향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휴전선까지 불과 몇 십리, 비록 육신은 땅에 묻혔지만 영혼이라도 고향을 바라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배려한 것이리라. 누구였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위아래를 설득하고 그렇게 북쪽으로 배치하려고 애쓴 사람이 새삼 고맙다.


여기 이곳에 묻혀 있는 저 무덤 속 젊은이들이 자기 고향 땅으로 돌아 갈 날은 언제일까? 남과 북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는 문제라고 한다. 북한과 미국이 북쪽에 안장되어 있던 미국 군의 유해를 발굴하고 송환하는 뉴스를 보면서 더욱 우리 남과 북 모두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화해와 평화, 회복의 실천이 더욱 필요하고 중요한 것을 거꾸로 확인하는 셈이다.


자신이 남에서 태어나, 북의 원산에서 자라고, 남쪽으로 내려 온 뒤, 한국 전쟁 때는 종군 기자로 참여하고, 이곳을 지나다가 시를 남긴, 어쩌면 그 누구보다도 남과 북 모두에 대해서 같은 눈높이로 바라보며 아파한 시인 구상(1919-2004)이 쓴 ‘적군 묘지 앞에서’를 다시 읽어 보면서 답사의 소감으로 갈음하고자 한다.



적군 묘지 앞에서


구상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고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바른 드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로다.


이 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삽십(三十) 리면

가루 막히고

무주 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램 속에 깃들여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北)으로 흘러 가고


어디서 울려 오는 포성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



박종호ㅣ십여 년 전 어린이어깨동무 후원회원으로 인연을 맺었다. 현재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 연구위원, 신도림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지내고 있으며, 학생들과 손잡고 금강산, 백두산으로 수학여행을 가는 꿈을 꾸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08.20 00:05

[시선-한반도 평화읽기]


한반도 평화체제와 군축


정욱식


대전환의 한반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가 그야말로 대전환의 문을 노크하고 있다. 그 문이 활짝 열릴지, 반만 열린 상태로 남을지, 아니면 또다시 닫힐지는 예단키 어렵다. 전환의 양상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는 북한의 ‘선군’ 정치에서 ‘선경’ 정치로의 전환이다. 이는 길게는 2013년 3월 31일에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 노선”을 채택할 때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병진 노선은 김정은식의 ‘변증법적 국가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가 미완성 상태로 물려준 ‘앙탄일성’을 서둘러 추진해 “국가핵무력 건설 완성”을 선언한 것이 ‘정(正’)이었다면,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국면 전환이라는 ‘반(反)’을 만들어내고, 한미와의 적대 관계 청산 및 안보적 우려 해소, 그리고 경제발전을 향한 ‘합(合)’을 도모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듯 북한은 2018년 4월 20일에 노동당 결정서를 통해 “병진노선의 위대한 승리를 선포”하면서 “당과 국가의 전반사업을 사회주의경제건설에 지향시키고 모든 힘을 총집중할 것”이라고 결정했다. 또한 이러한 전략적 목표가 순조롭게 이행된다면 내년이나 후년에 “조미 대결에서 위대한 승리를 가져온 국가 핵무력의 역사적 소임은 끝났다. 이제 국가 핵무력의 완전한 폐기를 엄숙히 선언한다”고 발표할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는 한반도 핵 시대의 종언이다. 한반도 핵문제는 네 가지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제1의 핵 시대’는 1945년 한반도 해방 및 분단부터 1990년대 초 미국의 전술핵무기 철수 및 한반도 비핵화 선언 채택까지를 가리킨다. 이 시기는 한반도에서 미국의 핵 독점 시대였다. ‘핵 시대 1.5’는 북핵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1992년부터 협상을 통해 문제 해결을 시도했던 2008년까지를 의미한다. ‘반전 드라마’라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역동적인 시기였다. ‘제2의 핵 시대’는 협상이 단절된 2009년부터 2017년 북한이 ‘국가 핵무력 건설 완성’을 선언한 시기까지를 의미한다. 끝으로는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는 시기로 2018년부터 그 끝을 알 수 없는 미래까지이다. 한반도에서 핵 시대가 완전히 끝나고 “핵 없는 한반도”가 도래할 것인가의 여부가 판가름나는 시기이다.


셋째는 한반도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이다. ‘평화체제 없는 비핵화는 맹목이고 비핵화 없는 평화체제는 공허하다’고 할 때, 한반도의 핵시대의 종식은 평화체제를 수반할 수밖에 없고 또한 그래야만 한다. 일단 남북미 3자는 평화체제 입구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의 수준에 발맞춰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의회 상원의 비준을 거치는 대북 안전보장 방안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는 북미 간의 70년 적대관계의 청산이다. 미국과의 정치적·경제적 관계의 완전 정상화는 북한의 오랜 열망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대북정책은 북한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트럼프의 개인기와 북한을 적으로 남겨두고 싶어 하는 상당수 미국 주류 사이의 ‘갈등의 변주곡’을 품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적인 현상 변경은 현상 유지를 통해 추구해왔던 미국의 굴절된 이익체계도 건드릴 수밖에 없다. 무기 수출 위축이라는 ‘기대이익의 감소’와 북한의 위협을 빌미로 중국을 염두에 둔 미사일방어체제(MD) 및 한미일 삼각동맹을 추구해왔던 ‘전략의 차질’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미국의 정치적 급변사태, 즉 트럼프의 탄핵 여부가 한반도 문제의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그의 탄핵 시 대북 강경파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다섯째는 남북관계의 전환이다. 분단 이후 남북관계는 부정과 절멸의 대상에서 체제 경쟁의 시대로, 체제 경쟁의 종식과 한국의 대북 포용과 흡수통일 시도가 오락가락한 시대를 거쳐왔다. 그런데 2018년부터는 남북연합의 시대로 향하고 있다. 2국가 2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유럽연합과 흡사한 모델이 나올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평화체제와 군축


한반도 문제 해결의 성패는 군사 문제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군비통제와 군축 논의는 제자리를 맴돌았다. 북한은 냉전 시대에는 이른바 ‘4대 군사노선’을 통해, 그리고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선군 정치’를 통해 체제 생존을 도모했고 이 사이에 북한은 거대한 병영 국가처럼 되고 말았다.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군사력도 비약적으로 성장했음은 물론이다. 보수정권은 군비통제 및 군축 자체에 부정적이었고, 개혁진보 정권은 때때로 보수 정권보다 더 강력한 군비증강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평화, 새로운 시작’의 관건은 70년 가까이 누적되어온 군사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그 성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4.27 판문점 선언’에는 군사 문제 해결의 포괄적인 내용이 담겼다. 전문 첫머리에 담긴 ‘부전(不戰)의 약속’에서부터, 2조 한반도 군사적 긴장 완화에 담긴 “일체의 적대행위 전면 중단” 및 “비무장지대의 실직적인 평화지대”와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의 평화수역” 만들기, 그리고 3조에 담긴 “불가침 합의” 및 “단계적 군축 실현”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합의 내용만 놓고 볼 때에는 ‘남북 평화협정’에 근접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단계적 군축”이 눈에 띈다. 그런데 “단계적 군축”은 문재인 정부가 준비해온 국방개혁 2.0과 정면으로 충돌할 소지가 크다. 국방개혁 2.0의 요체는 국방비를 대폭 늘려 대규모의 전력 증강을 꾀하겠다는 것이 핵심적인 요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하듯 국방부는 대규모 국방비 증액 계획을 거의 그대로 유지키로 했다. 국방부는 2019년 국방예산으로 올해 대비 8.6% 증가된 46조 9천억 원을 요구하는 등 5년간 국방개혁에 필요한 예산을 약 270조 7000억원으로 추산했다. 별다른 변동 없이 이러한 계획이 추진되면 2023년 한국의 국방비는 60조원을 훌쩍 넘어설 것이고, 일본의 국방비마저 추월하게 될 것이다.


대규모 국방비 증액은 새롭게 시작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스스로 장애물을 설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군비증강과 한반도 평화체제·비핵화 실현 노력은 양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천문학적인 국방비 증액은 민생과 복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상기한 국방부의 국방비 증액 계획과 국방비 동결을 비교해보면 명확히 드러난다. 가령 향후 5년간 올해 수준(43조 4000억원)으로 국방비를 동결하면 약 60조원의 누적액의 차이가 발생한다. 누적액의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커지게 됨은 물론이다.


이렇게 절약한 국방 예산을 복지, 교육, 일자리 창출, 자영업 지원책, 미세먼지를 비롯한 환경 대책에 사용한다면, 국가안보의 내실을 기하면서도 인간안보도 튼튼하게 할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다. 아쉽게도 문재인 정부가 스스로 표방한 ‘포괄 안보’의 정신이 정작 국방개혁에서는 실종되고 만 것이다.


하여 문재인 정부는 두 가지를 자문해봐야 한다. 하나는 국방개혁 2.0이 과연 판문점 선언에 부합하느냐는 것이다. 또 하나는 ‘망진자(亡秦者)는 호야(胡也)’라는 우를 스스로 범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외부의 위협 대비에 치중한 나머지 내부의 모순을 완화·해결할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정욱식ㅣ고려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과 북한학을 공부하고, 현재 평화네트워크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한반도문제에 대한 의사소통의 활성화와 올바른 여론형성을 도모하여, 물리적인 냉전구조 못지않게 고착화된 냉전적 의식구조를 극복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평화공동체 실현에 기여하고자 연구와 실천을 병행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08.19 20:50

[시선 |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빈틈을 잘 살피는 세심함이 필요하다


심은보


이후 이야기가 많이들 궁금하셨을 우리 1빠 선생! 결국 녀석은 나에 의해서여섯 번째 학교로 가버렸다. ‘학교는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라는 이야기를 꺼내놓으며 스스로 녀석의 담임을 맡았던 나에 의해서말이다. 참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며 마음을 썼고, 또 많은 이들이 응원을 했다. 나 또한 나의 온 삶을 통해 응원하며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했다.

 

하지만 담임이 치열하게 고민을 하고 있고, 부모님들이 함께 마음을 모아 그런 담임을 지원하고 있다는 이 아름다운 상황이 결과마저 아름다워야 한다는 강박을 만들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의 목표는 녀석을 이 속에 잘 녹아들게 해서 졸업시키는 게 목표였지만, 중요한 것은 녀석과 함께 다른 아이들, 특히 상처를 많이 받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에게 그 상황을 통해 무엇인가 가르칠 수 있는 것도 보이질 않았고, 또 녀석에게 이 공간이 학습시키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보았을 때 변화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찾을 수가 없었다. 무언가 그 상황을 돌파할 녀석이 조금이라도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 하나라도 엿보였다면 아마도 모든 걸 다 걸었을 것이다. 치유를 넘어선 치료의 영역까지 학교가, 담임이 홀로 어찌할 순 없는 일이었다.

 

담임인 나의 신고를 통해 학폭 절차를 밟았고, 결국 녀석은 전학을 갔다. 학폭 절차는 녀석을 내치기보다는 다른 아이들과 공간을 분리해두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진행한 절차였다. 나로서는 참으로 안타깝고 아팠지만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소진된 몸의 기운 만큼 마음의 기운마저 소진되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전학 이후 교육청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학교와 전문가들이 함께 하는 회의를 열었고, 또 교육청 위센터1)에서는 녀석을 위한 정기적인 상담 프로그램이 운영되기 시작했다. 관심과 지원이 지속되는 것과 함께 그저 업무적인 일처리에 그치지 않는 것이 중요할 텐데 그리 될 수 있을 진 모르겠다. 우리 학교에서도 도움을 주셨던 상담 선생님께서도 정기적으로 녀석의 삶을 살피며 정기적으로 상담하는 일도 맡아 주셨다.

 

주석1) 위센터(Wee)는 학교, 교육청, 지역사회가 연계하여 학생들의 건강하고 즐거운 학교생활을 지원하는 다중의 통합지원 서비스망을 말한다.

 

그로부터 시간이 두어 달 흘렀다. 그 사이 녀석은 세 차례 학교에 아침 일찍부터 갑작스레 찾아오곤 했다. 전학 간 학교가 녀석을 우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모두들 환대해주는 분위기는 아니었을 테고, 또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 곳을 떠나고 보니 학교가 주었던 따스함이, 또 자신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함께 놀아주었던 친구들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담임의 입장에선 녀석을 잘 설득하여 돌려보내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반 친구들은 다시 분위기를 추스르고 잘 지내고 있다. 학기 말 즈음 몇 차례 집단 상담을 통해 나머지 학급 아이들에 대한 점검과 진단을 해보기도 했다. 2학기 시작할 즈음 두 차례 가량 더 진행하며 다시 새로운 학기를 열어갈 생각이다.

 

들려오는 이야기엔 ‘1빠 선생이 잘 지내고 있진 못하는 것 같다. 학교에선 겉돌고 있고 녀석이 바깥에서 일으키고 있는 사건들 이야기도 귀에 들려온다. 참으로 내게는 아프고 또 아픈 이야기들이다. 아니, 녀석은 우리 교육과 사회의 빈틈이 만들어 낸 참으로 안타깝고 아픈 모습이다. 우리 지역와 옆의 지역까지 녀석에 대해선 알 만한 사람들이 다 아는 데도 이 학교 저 학교 돌리는 일 말고는 학교도, 지역 사회도 녀석을 돌보고 지원할 변변한 시스템하나 없는 우리 사회의 빈틈 말이다.

 

요사이 온 나라 곳곳에서 학교폭력이라는 이름으로 학교를 난도질하고 아이들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구분 짓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으나, 가해자인 아이들의 삶의 결을 바꿔 내거나 갈등의 교육적이고 평화적인 해결에는 별로 다가가고 있지 못하는 현실은 다시 한 번 살펴야 할 모습이 아닐까 싶다.

 

우리네 학교를 좀 더 평화롭고, 좀 더 민주적으로 바꾸는 일은 좀 더 세심하게 살피지 않으면 그 빈틈들로 인해 또 다시 겪게 되는 어려운 일들이 참 많은 듯싶다. 우리 1빠 선생 역시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꺼내놓았던 정책들이 오히려 녀석을 더욱 더 안 좋은 쪽으로 강화시켰고, 그를 돌볼 다른 장치들이 하나도 없는 빈틈들 속에서 녀석은 더욱 힘들어 하고 있는 꼴이니 말이다.

 

요사이 뜨거웠던 평교사도 지원 가능한 내부형 교장 공모제 이야기도 그러하다. 서울의 두 학교가 내부형 교장 공모 심사를 놓고 어려움이 있었던 듯하다. 네 해 전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지라 그 빈틈들을 잘 알고 있다.

 

2013년이었을 게다. 학교 안에서 내부형 교장 공모를 추진하기 위해 의견을 모아 가는 데 지역 교감단들의 방해가 무시무시하게 심했다. 우리는 학교를 좀 더 민주적으로 만들기 위한 일이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승진해야 할 본인들의 자리 중 한 자리를 빼앗기는 일이기 때문이었을 게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 무사히 내부형 공모제를 신청했고 경기도 교육청에서 지정하는 두 학교 중 한 학교로 선택을 받아냈다.

 

문제는 그 이후에 생각하지도 않았던 부분에서 계속 발생했다. 지역 교감 중 한 사람이 후보로 들어왔고, 학교 심사 이후 지역 교육청 심사 과정에서 눈에 띄게 편파적인 심사가 이루어졌다. 결국 학교 심사 결과 1,2등 순위를 뒤집히도록 심사를 해서 도교육청으로 추천을 올리는 상황이 펼쳐졌다. 다행스럽게도 도교육청에서 다시 순서가 뒤집혀 우리 학교에서 함께 근무하던 동료 교사가 교장으로 4년을 함께 했다. 그 결과 학교는 나날이 더 민주적인 곳으로 거듭 변해 나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보게 된 교육을 둘러싼 지역 승진 그룹들의 일사분란함과 그 일사분란한 움직임이 가능할 수 있는 빈틈들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지역교육청에서 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심사하는 그 과정이 그러했다. 이번에 서울 학교들의 경우에도 지역교육청 심사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무사히 평교사형 내부형 공모 교장을 선출한 학교들도 아마 여러 어려움들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정책이 펼쳐지고 또 그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곳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빈틈들을 세심하게 살피고 지혜들을 모아가며 방법들을 찾아 나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 좀 더 평화롭고, 민주적인 학교에서 아이들이 삶을 통해 배우며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그 아이들이 자란 세상은 좀 더 평화롭고 좀 더 민주적일 수 있을 것이다.

 

역사의 새로운 기운은 언제나 틈새에서, 사이에서, 경계에서 새어 나오는 법이다. 어쩌면 지금 이 곳 저 곳에서 보여지는 틈들에서 세상을 더욱 더 평화롭고, 민주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역사를 쓸 수 있는 기운들을 찾아나갈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부디 이번 교장공모 과정에서 시끌벅적하게 우리가 마주하게 된 이 틈들을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데 잘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끝으로 1빠 선생의 앞날에 행복과 행운이 깃들기를 두 손 모아 빌며 이야기를 마무리 할까 한다.

 



심은보8년차 혁신학교 죽백초등학교에서 행복한 배움터를 일궈가며 일곱 해 째를 보내고 있습니다. 2018년에는 심과 함께’ 6학년 1반 아이들과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혁신교육을 생각하다2’, ‘평화시대를 여는 통일시민교과서를 쓰는 일에 함께 했습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