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포지엄2018.11.29 17:44

어린이어깨동무_2018평화교육심포지엄_내지편집v4.pdf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심포지엄

평화프로세스에서 평화교육의 역할


세션1. 북아일랜드

스토리텔링, 예술, 평화교육 

- 포드릭 오투마 Padraig O Tuama (코리밀라 리더·Corrymeela Community Leader)

분쟁지역 청소년의 평화교육과 사회통합

- 알란 화이트 Alan Waite (알시티 대표 매니저 · RCITY PROJECT Co founder & Senior Manager)  


세션2. 한반도

어깨동무 평화덕목과 평화교육 교안 만들기

- 박종호 (신도림고등학교 교사)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평화교육

- 정영철 (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 소장 ? 서강대학교 교수)


피스톡

- 세션1·세션2 발표자

- 김동진(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 IRC 마리퀴리 펠로우)

- 윤철기(서울교육대학교 교수)

- 정진화(강신중학교 교사)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평화총서2018.11.20 21:14


어깨동무 평화교육시리즈 1

한반도 평화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남북의 경계를 넘어 평화공동체로 한 걸음 더!

평화교육 사례와 과제 그리고 우리의 미래


남북의 경계를 넘어 사회적 상상력이 살아나는 평화교육_이기범

평화통일을 위한 길 찾기: 평화를 위한 통일, 통일을 위한 평화_정영철

평화시대를 여는 통일교육, 시민성교육이 필요하다_정용민

아일랜드 평화교육에서 한반도 평화를 생각하다_정진화

원반럭비로 배우는 평화_최관의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의 사례와 과제_이기범,이성숙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심포지엄2018.11.20 20:09

[평화교육 심포지엄 & 워크숍] 

평화프로세스에서 평화교육의 역할 & 활동가와 함께하는 평화교육 워크숍  

 

#. 심포지엄

2018년 11월 12일과 13일 양일에 걸쳐 '어린이어깨동무 2018 평화교육 심포지엄'과 '워크숍'이 개최되었습니다. 먼저 12일 낮 2시에 개최된 심포지엄 '평화프로세스에서 평화교육의 역할'에서는  북아일랜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평화교육 활동가와 한국사회에서 평화교육을 고민하고 있는 발표자들이 함께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서 평화교육의 역할에 대해 활발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행사 시작 전에는 평양에서 가지고온 커피는 나누어 마시며 북아일랜드와 한국사회의 요즘 정세와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환담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평양에서 날아온 사탕과 초콜렛이 인기를 끈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겠죠? 본격적인 심포지엄은 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의 정영철소장의 인사말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어서 진행된 '세션1. 북아일랜드'는 코리밀라의 리더Corrymeela Community Leader)인 포드릭 오투마(Pádraig Ó Tuama)의 '스토리텔링, 예술, 평화교육'과 알시티의 대표 매니저(RCITY PROJECT Co founder & Senior Manager) 인 알란 화이트(Alan Waite)의 '분쟁지역 청소년의 평화교육과 사회통합'발표로 구성되었습니다. 


1998년부터 진행된 북아일랜드의 평화프로세스 과정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코리밀라 대표와 신교도, 구교도 청소년들이 함께 공동체의 미래를 구상하는 알시티 대표의 발표는 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집중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쉬는 시간에는 2018년 한해동안 어린이어깨동무가 발행한 두 권의 책을 살펴보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평화교육에 대해 더욱 진진한 고민을 해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쉬는시간에 이어 진행된 '세션2. 한반도'에서는 평화교육센터 연구위원인 박종호선생님(신도림고등학교)의 '어깨동무 평화덕목과 평화교육 교안 만들기'와 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 소장인 정영철교수님(서강대학교)의 '남북관계 변화와 평화교육' 발표를 통해 어깨동무가 1년간 고민해온 내용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어 진행된 피스톡(종합토론) 시간에는 1,2세션 발표자와 함께 토론자인 정진화선생님(강신중학교), 1세션 사회자(김동진,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 IRC 마리퀴리 펠로우)와 ​2세션 사회자(윤철기, 서울교육대학교 교수)가 함께 참가자들의 질문을 듣고 답을 하며 내용을 풍성하게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워크숍

다음날 진행된 '활동가와 함께하는 평화교육 워크숍' 에서는 알란 화이트(알시티 대표)와 포드릭 오투마(코리밀라 리더)가 실제로 북아일랜드에서 진행하고 있는 ​평화교육의 일부를 참가자들과 함께 진행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를 통해 참가자들은 우리와 북아일랜드 평화교육의 공통점도 발견할 수 있었고, 북아일랜드만의 새로운 접근도 경험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같은 새로운 만남과 경험을 통해 더욱 깊어진 평화교육에 대한 고민과 내용을 통해 한반도 평화교육에 한 발 더 나아가는 디딤돌을 만들겠습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10.19 00:58

[특집]


다시 백두산에서 평화를 맞이하다

 

이기범

 

나는 지난 918일부터 20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대통령 특별수행원으로 참가했다. 두 정상은 공동선언문을 발표하여 남북 협력과 비핵화를 더 진전시킬 것을 다짐했다.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는 언론에서 많이 다루었으므로 나는 회담 일정에 참가한 몇 가지 느낌을 나누고 싶다.



 ▲ 5.1경기장에서 문재인 대통령 연설을 듣고 있는 평양시민들

 



▲ 문재인 대통령 내외에게 꽃을 전달하기 위해 서있는 어린이들

 

문재인 대통령이 15만 명에 이르는 북녘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방북에 앞서 나름대로 대부분의 일정을 예측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공항에서 영접하리라는 것, ‘깜짝 행사로 꼽힌 백두산 등정도 마지막 날에 진행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이 끝나고 김정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을 소개할 때 그저 인사로 그칠 줄 알았다. 김위원장이 다시 문재인 대통령에게 다시 한 번 뜨겁고 열렬한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소개하자 더 큰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문 대통령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머리에서부터 온 몸에 전율이 일어났다. 충격과 감동 그리고 대형경기장을 가득 메운 함성에 압도되어 더 이상의 생각을 이어가기 어려웠다. 분단 이후 최초이자 최대로 극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고 그 현장에 내가 있다는 사실만이 너무 또렷했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연설에 어느 정도의 후유증이 따른다는 것을 알고도 연설을 진행했다. 두 정상이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공유하고 있고, 연설을 통하여 그 의지를 남과 북 그리고 세계에 알리려는 뜻도 공유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문 대통령의 연설은 북녘 인민들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갔을까? 그 현장에 평양 사람들만이 아니라 공연에 참여하느라 전국 각지에서 모인 다양한 남녀노소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내가 앉은 자리 바로 아래쪽에 북녘 사람들의 자리가 있어서 그이들의 표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이들의 얼굴에 놀라움과 감동이 벅차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이들의 환호와 박수는 진심과 기대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 들렸다. 남북 관계와 남녘에 대한 이미지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 변화가 그이들의 의식에 혼란을 일으키든 마음에 희망을 불어넣든 커다란 파도로 일어났으리라. 문 대통령의 연설은 7분에 불과한 짧은 장면이었지만 정치 행위를 넘어선 문화적 사건이다.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의 파장은 한반도와 세계로 널리 퍼져나갔을 것이다. 현장에 있는 내가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이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의 한 장면

 

그 다음날 백두산 방문을 위해 어두컴컴한 5시경 호텔에서 공항으로 출발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천지를 볼 수 있겠나 하는 걱정을 나누며 공항으로 가는 길에 환송인파를 만났다. 새로 조성된 려명거리 쯤에서부터 꽃술을 흔들며 우리를 배웅하는 사람들이 비와 어둠 속에서 불쑥 나타났다. 어제 밤의 사건을 꿈처럼 떠올리며 마음 어드메에 둘지 갈피를 잡으려는 여명(黎明)의 시각에 나타난 사람들의 무리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대통령은 모르겠으되 내가 그런 환송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당황스러웠다. 나중에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 답방에 대하여 내가 아직 서울에서 환영받을 만큼 일을 많이 못했다.”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 그럼 그 많은 인민들의 환호는 신들, 앞으로 평화를 위한 일을 많이 하라는 외침으로 들어야 하나? 여하튼 그때에는 적어도 세시쯤부터 빗속에 서있었을 그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서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진심으로 화답했다.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선팅이 된 버스 창이었지만 사위가 아직 어두워서 실내등을 켜고 손을 흔드는 우리를 사람들이 볼 수 있었던 게 다행이었다. 새벽 그 시각에 우리는 한 마음이 되었을까?

 

남녘의 어떤 사람들은 평양의 환영과 환송 인파가 강제로 동원되었다고 꼬집는다. 북녘 관계자들은 직장 단위로 동원되었지만 스스로 나온 사람들도 많다고 말한다. 그러니 사람들이 오롯이 강제로 동원되었는가는 살펴봐야 한다. 이미 두 번이나 만난 두 정상이 함께 평양 시내를 누비는 대단한 구경거리이니 누군들 궁금하여 거리로 나서지 않겠는가? 거의 90도로 허리를 꺾어 인사하는 남녘 대통령을 보면서 어찌 감동이 없겠는가? 남녘에서도 사람들을 행사에 동원하고 있고 과거에는 국가행사에 대규모로 동원했다. 나도 고등학생이었던 19748월 육영수 여사의 국민장에 동원되어 광화문거리에서 아침 8시부터 대기했다. 막상 장례식은 11시쯤에나 시작되어 뙤약볕에서 땀깨나 흘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즈음에 고교생들은 전국체전 같은 행사에 매스게임(집단체조)과 카드섹션(배경대)을 하라고 자주 강제로 동원되었다. 지금은 강제 동원은 사라졌고 대부분 자발적인 참여로 행사가 이루어진다. 언젠가는 북녘에서도 동원이 필요 없게 되고 사라질게다. 그러니 그때까지는 강제동원의 역사가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 떼면서 비난하기보다는 수고하는 북녘 인민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 온당한 태도가 아닌가 한다.

 



.첫 날 평양대극장의 북측 공연종목

 

남북이 대화하고 협력하려면 역지사지의 태도와 상호주의적인 인식이 필요한데 우리는 여전히 그런 것에 인색하다. 앞의 사진은 회담 첫째 날 평양대극장의 북측 공연 종목이다. ‘뒤 늦은 후회’, ‘아침이슬’, ‘차집의 고독등 남쪽 노래를 북측 배우(북에서는 가수도 배우라고 부름)들이 북측 노래보다 더 많이 불렀다. 집단체조 공연 중 특별장 평화, 번영의 새 시대에서도 계몽기 가요(일제시대 때 노래)부터 최근 노래까지 남쪽 노래를 많이 불렀다. 지난 4월 남측이 평양에서 공연할 때는 가수 서현이 북측 노래로 푸른 버드나무딱 한 곡을 불렀다. 얼마 전에 어떤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평양 정상회담 때 왜 평양에 태극기가 없었냐고 물어보았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에 오면 인공기를 휘날릴 수 있겠냐고 반문하여 웃음을 자아냈다. 한 언론계 후배로부터 잘 아는 언론사 기자가 자기 회사 지국을 평양에 만들어야겠다라고 해서, “북측의 <로동신문> 지국도 서울에 만들어야 겠네라고 했더니 그건 안된다고 하더라는 말을 들었다. 북측은 회담기간 동안 우리 일행이 호텔 방 티비에서 남녘의 네 개 방송을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때 그와 동등하게 조선중앙티비를 방영할 수 있을까?

 


한반도기로 장식된 평양대극장


 


옥류관 냉

 

간만에 북녘에 다녀 온 나에게 젊은 사람들은 옥류관 냉면 먹은 소감을 물었고, 더 나이든 사람들은 백두산 방문 소감을 물었다. 이번에는 공식 오찬이라 냉면에 앞서 여러 음식이 나왔지만 나는 냉면 200그램을 먹고 쟁반 200그램을 더 먹었다. 과식은 언제나 즐겁다. 남녘의 유명한 셰프가 북녘 자료를 인용하며 옥류관 냉면이 검어진 이유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 메밀이 부족하여 전분을 섞어서 그렇게 되었다는 글을 썼다. 식량 사정이 어렵더라도 옥류관 조차 메밀이 부족했다는 말을 믿기 어려웠기에 이번에 옥류관 복무원(종업원)에게 검어진 이유를 물으니 영양가를 높이기 위하여 메밀을 덜 깎아서 그렇다는 답을 들었다. 어느 말이 옳은가는 각자 판단하시기 바란다.




백두산 천지에서



마지막 일정, 백두산 방문에서 천지 물에 회담의 감상을 후련하게 담아냈다. 2004 6월 처음으로 백두산에 올라 어린이어깨동무 일행들과 함께 남북 어린이들이 백두에서 한라까지 어깨동무할 그날이 곧 오도록 모두 노력하자고 약속했었다. 14년이 지나서야 백두산을 다시 찾았다. 그 약속은 아직 지키지 못하고 있다. 아쉬움과 뉘우침이 크다. 그래도 평화와 번영의 약속이 이루어지고 있어 안심하려고 한다.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회장 자격으로 정상회담에 참가하였으니 남북 당국 모두 민간협력에 더 힘을 쏟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믿는다. 다시 백두산에 서서 한반도의 평화를 맞이한다.


 


사진으로 전하는 ‘2018 양 이야기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서 공연중인 어린이들

 



▲ 만경대학생소년궁전 자수반 어린이들. 박원순 서울시장도 보인다.



 

▲ 평양교원대학 학생들의 수업 시연

 



▲ 평양어깨동무학용품공장. 숙소 바로 옆인데도 가보지 못하여 아쉬었다.




▲ 순안공항 이륙 전 공군1호기 앞에서

 


이기범어린이어깨동무 설립에 참여하여 초대 사무총장으로 10년 동안 일했고 지금은 이사장을 맡고 있다. 남북의 어린이들이 교류하며 한반도 평화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길을 만들고 그 길을 함께 가기를 소망한다. 최근, 지난 20년간의 어린이어깨동무 활동을 담은 <남과 북 아이들에겐 철조망이 없다>를 발간했다. 숙명여대에서 교육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10.18 20:32

[시선 |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극도로 예민한 중2 스물아홉이 모였다.

그중 담임이 가장 예민할 때 생기는 일들에 관하여.

너의 눈, ,

 

주예지

 

조회에 들어가면 마치 카메라가 인물의 얼굴을 인식하듯 아이들 얼굴이 들어 있는 작은 네모 상자 스물아홉 개가 교실에 둥둥 떠다닌다. 10분간 분석을 시작한다.

 

오늘 정현이가 엎드려 있군. 컨디션이 별로인가 보네. 건들지 말아야지. 지우는 오늘 왜 저렇게 들떴지. 서영이는 얼굴이 어두워 보이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나. 준희는 인상을 엄청 찌푸리고 있네. 예서는 졸려 보이네. 어제 늦게 잤나. 재우는 왜 내 눈치를 보지. 뭐 잘못했나. 지서는 멍 때리기 대회 나가면 1등 하겠다.……

 

보통 중2 아이들의 아침 표정은 각자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 짜증스러움과 피곤함, 귀찮음이 잔뜩 묻어 있다. 아직 2년 차 새내기 교사에게 비교 대상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유독 우리 반 아이들의 표정이 매섭게 느껴진다. 짜증스러움이 가득 담겨서 톡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예민한 눈, , 입을 보고 있노라면 얼른 교실 문을 나서고 싶어 종이 치기를 간절히 기다리다가 후다닥 나간다.

 

그나마 다수를 상대하는 교실 상황에서 아이들을 마주하는 것은 견딜만하다. 잠시나마 아이들의 얼굴을 피하고 싶을 때 아이와 아이 사이의 허공을 보면 좀 낫다는 것을 터득했다. 일대일로 마주하면 속에서 열불이 올라오곤 한다. 학기 초부터 표정이 계속 신경 쓰이는-좀 더 솔직해지자면 거슬리는- 남자아이가 있다. 대들거나 대놓고 삐딱선을 타는 건 아닌데 건들거리는 태도와 항상 불만이 가득한 뚱한 표정이 신경을 묘하게 긁는다. 이 아이의 눈, , 입은 혼낼 때 진면모가 드러난다. 한문 시간이 끝난 이후였다. 한문 선생님이 이 아이가 수업 시간에 지나치게 방해를 해 벌점을 주셨다고 한다. 1학기에도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불러서 차분히 이야기한다. 물론 잔소리를 들을 때도 표정이 안 좋았지만, 한문 선생님께 찾아가서 사과드리고 앞으로 수업 시간에 어떻게 할 것인지 말씀드리라고 하니 똥 씹은 표정이 된다. 옆으로 돌리는 고개, 찌푸려지는 미간, ‘-’하면서 한숨 쉬는 입, 꾹 참는 듯한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 나중에 한문 선생님께 확인할 거라고 하니 억지로 알겠다고 하며 교무실로 내려간다. 종례를 마치고 교무실에 내려가 보니 한문 선생님이 안 계신지 계속 기다리고 있다. 확인해보니 오늘 한문 선생님이 일찍 가시는 날이다. 내일은 방학식이라서 미루면 안 될 것 같아 아이에게 편지지를 건네며 여기에 한문 선생님께 편지를 쓰라고 하니 이제는 거의 한 대 칠 것 같은, 날 것의 표정이 그대로 나타난다. 순간 속에서 더운 김이 확 올라온다. 침을 한 번 꾹 삼키고 말을 꺼낸다.

 

혹시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 불만이 있니?”

아니요.”

 

표정은 아닌 것 같은데. 선생님도 너랑 웃으며 좋은 이야기만 하고 싶어. 너 남겨서 이런 이야기하는 거 결코 마음 편하고 쉬운 일 아니야. 그런데 지금 그런 표정으로 쳐다보면 선생님 기분이 어떨까?”

 

기분 나쁠 것 같아요

 

맞아. 안 그래도 내 새끼가 다른 선생님께 혼나서 속상해 죽겠는데 너까지 그런 표정으로 보면 더 속상해. 앞으로 한문 시간에 선생님 말씀 잘 듣고 표정 풀고 다니자. 알겠지?”

 

.”(여전히 똥 씹은 표정이다.)

 

2 아이들의 예민함은 표정에서 극명히 드러나는 듯하다. 반항적인 말과 행동이 드러나지 않는 아이들에게서도 순간 돌변하는 눈빛이나 구겨지는 표정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표정은 정말이지……-말줄임표로 대신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표정이 선생님에게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표정은 빈번하게 공격이 되어 날아간다.

 

우리 반의 자리 바꾸기 규칙은 2주에 한 번, 제비뽑기로 정해 남녀 무작위 짝으로 앉는 것이다. 2주에 한 번 자리를 바꾸는 것은 보통 한 달에 한 번씩 바꾸는 다른 반에 비해 자주 바꾸는 편에 속한다. 다양한 친구들과 고루고루 짝을 해보면서 얼른 친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그런데 두어 번 정도 자리를 바꾸고 난 뒤 4월 즈음에 분위기가 이상하다. 제비뽑기하고 자리를 바꾸는데 남자아이들이 주고받는 눈빛이 심상치 않다. 유독 한 아이가 탄식을 내지르고 다른 아이들이 웃으면서 눈빛을 주고받는다. 저번에도 웅성웅성 하길래 그냥 눈빛만 쏘아주고 넘어갔는데 이번에는 안 되겠다. 쉬는 시간에 탄식을 내지른 아이를 불러 내려서 이야기해본다. 우리 반에 겉도는 여자아이 세 명이 있는데 자기가 계속 그 아이들과 번갈아 가며 짝이 되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아이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온몸으로 싫어하는 티를 꼭 내야만 하는 걸까. 그 뾰족함에 기어코 생채기가 난다.

 

다음 번 자리 바꿀 때는 우리 반이 너무 시끄럽다는 핑계로 앞으로는 제비뽑기가 아니라 내 마음대로 할 거라며 한 줄씩 떼어 놓고 임의로 자리를 배치한다. 자리를 배치할 때 우선 겉도는 세 아이들의 자리를 먼저 정한다. 세 아이들의 출석 번호가 연달아 있어서 다른 아이들이 셋을 묶어서 뒤에서 별칭을 만들어 놀린 전력이 있기 때문에 최대한 같이 안 앉힌다. 그리고 그 주위에 그나마 괜찮은아이들을 배치한다. 괜찮은 아이들이란 주위에 세 아이들이 있어도 대놓고 표정을 구기지 않는 아이들, 싫은 티를 온몸으로 내지 않는 아이들, 좀 순한 아이들을 일컫는다. 두세 번은 그래도 자리를 정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시끄러운 아이들도 떼어 놓으니까 수업 분위기도 좀 괜찮아졌고, 세 아이들에게도 전보다는 불편한 상황이 줄어든 것 같아서 만족했다. 친한 친구를 만들어주는 마법은 못 부려도 교실에서 그나마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금의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대로 계속 짝을 바꾸다 보니 의문이 들었다. 잘하고 있는 건가? 이게 진짜 그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건가? 그 아이들이 내년, 내후년에도 이런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오히려 안전이라는 핑계로 다른 아이들과 소통할 기회를 빼앗아버리는 건 아닐까? 항상 그 아이들 주변에 앉는 아이들은? 내가 세 아이들을 보호해준다는 걸 다른 아이들이 모를까?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세 아이들 주변에 배치할 수 있는 아이들이 제한적이어서 자리를 바꾸어도 비슷한 느낌이다. 아이들이 눈치 못 챌 리가. 그렇게 2학기가 시작되었다. 자리를 바꾸려고 이리저리 배치해 보는 일요일 저녁 시간. 계속 이어지는 의문과 갈등 속에서 결국 작업하던 창을 닫고 아침에 한동안 쓰지 않았던 제비뽑기 숟가락을 꺼내 교실에 들어간다. 제비뽑기가 끝난 후 초조한 마음으로 두 아이를-한 아이는 1학기가 끝나고 난 후 전학을 갔다.- 확인한다. 세상에. 앞뒤는

괜찮지만 옆이 문제다. 옆 분단에 쭈루룩 1학기 때 갈등이 있었던 남자아이들이 앉아 있다. 아니나 다를까 수업 시간에 종종 열심히 자기들끼리 눈짓을 주고받느라 바쁜 눈동자가 보였지만 그래도 별 탈 없이 넘어갔다. 2주가 지나고 다시 제비뽑기를 했다. 이번엔 다행히 자리를 잘 뽑았다. 주변에 갈등이 있는 아이도 없고 괜찮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 롤러코스터를 앞으로 몇 번이고 더 타야 한다니 벌써 속이 울렁거린다.

 

우스갯소리로 중2 애들 너무 예민하다고, 근데 그중에 담임인 내가 제일 예민하다고 친구한테 하소연하며 떠들던 게 생각난다. 여고, 여대에서 치열하게 눈치 싸움을 하며 살아남아 학습한 덕분일까. 아이들 간의 관계가 민감하게 다가오고, 서로 주고받는 미묘한 눈짓, 몸짓, 무언가 꾹 눌러 참는 입술 하나하나가 걸린다. 경력이 많은 노련한 옆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신다. 그냥 넘어갈 줄도 알아야 한다고. 너무 깊게 알려고 하지 말라고.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 될 때도 있다고. 늘 선을 지키는 것이 어렵다.

 

내일은 월요일이다. 아이들의 눈, , 입이 가장 굳어 있는 시간. 심지어 내일은 자리도 바꾸는 날이다. 아이들의 표정을 떠올리는 와중에 문득 궁금하다. 아이들의 눈에 비친 나의 표정은 어떨까. 학기 초에는 그래도 웃으면서 아이들을 반기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나는데 아이들과 여러 모난 일들을 겪으면서 어느 샌가 교실 문을 들어서는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아마 나의 눈, , 입도 날카로운 선이 되어 때로는 아이들의 마음을 벨 때도 있겠지. 신경이 곤두서는 월요일이 지나고 마음이 넉넉해지는 금요일에는 서로의 눈, , 입이 둥근 곡선으로 맞닿을 수 있게 얼굴 근육을 풀어 놓아야겠다.

모두 개구리-------!

 


주예지 국어가 어렵다는 아이들의 투정 어린 원성에 나도 어렵다며 유치한 설전을 벌이며 살아가고 있는 국어교사입니다. 작년에 목동중학교에 교사로서 첫발을 디디고 2년 동안 중2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으며 내년에는 중2를 맡지 않겠다며 벼르고 있는 중입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PDF)2018.10.18 20:17

피스레터_통권_15호_웹.pdf





이기범  |  다시 백두산에서 평화를 맞이하다


임수연  |  오늘의 청소년, 내일의 한반도 평화를 상상하다


전현준  |  평양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의 평화


송강호  |  그란샤크 학교 이야기


정진헌  |  2018년, 1968년의 독일을 생각하며...


김소울  |  위태로운 유럽의 평화를 풍자하다. 오노레 도미에


주예지  |  너의 눈, 코, 입



'피스레터(PDF)'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스레터 13호(통권15호)  (0) 2018.10.18
피스레터 12호(통권14호)  (0) 2018.08.19
피스레터 11호(통권13호)  (0) 2018.06.19
피스레터 10호(통권12호)  (0) 2018.04.19
피스레터 9호(통권11호)  (0) 2018.02.19
피스레터 8호(통권10호)  (0) 2017.12.20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심포지엄2018.10.17 17:28


* 11월 12일 심포지엄

-스토리텔링, 예술, 평화교육(포드릭 오투마) 

-분쟁지역 청소년의 평화교육과 사회통합(알란 화이트)

-어깨동무 평화덕목과 평화교육 교안 만들기(박종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평화교육(정영철) 


*11월 13일 워크숍

-북아일랜드 평화교육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활동가와 함께하는 평화교육 워크숍’ 


※ 오시는 길을 누르시면 약도와 교통수단을 보실 수 있습니다.

심포지엄 오시는 길

- 워크숍 오시는 길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평화총서2018.09.13 15:59


"사람이 만난다, 남북이 웃는다"

이기범 교수가 북에 콩우유공장, 연필공장, 어린이병원을 만들며 겪은 방북이야기. 

스무해 넘게 천 명 넘는 사람들과 북녘을 방문하면서 땅의 경계와 마음의 경계를 뛰어넘은

생생한 기록을 만나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08.20 00:23

[이슈]


'적군 묘지' 앞에서 생각하는 평화

 

박종호


지난 6월 29일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 콜로키움 ‘회복적 사회를 위한 평화교육’에 참석한 아일랜드 평화교육 실천가 데릭 윌슨(Derick Wilson)과 김동진 박사(트리니티 칼리지)를 2년 만에 반갑게 다시 만났다. 2017년 2월 아일랜드 평화교육 현장답사에서 만나고 이번에 서울에서 다시 만났으니 그 반가움은 컸다. 데릭 윌슨은 콜로키움에서 평화교육과 회복적인 사회, 이를 위한 교육자들의 실천에 대한 발표를 하였는데, 그야말로 아일랜드의 남북대립과 갈등의 한복판에서 회복적 실천을 위해 달려 온 자신의 평생에 걸친 노력의 알맹이를 풀어놓았다.


‘회복적 실천은 삶의 방식이자 일하는 방식이다. 다른 이를 희생양으로 삼거나 비난하기보다 책임을 지는 것이다. 상대를 정당하게 대하고, 타인과 차이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갖고, 그 차이를 축복하는 것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며, 시간, 상상, 창조적인 에너지와 희망이 새로운 현실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받아 적은 말이다.


나와 너, 우리 학교, 사회, 그리고 이웃하고 있는 나라에 대해서도 같이 적용되고 실천해야 할 덕목들이다. 평화교육이 해야 할 일이 이렇게 많고, 또 먼 걸음을 시작해야 한다. 아울러 폭력에 대해서도 상대의 폭력은 부당하지만 자기 진영의 폭력에 대해서는 변명하는 데서 벗어나서, 모든 폭력에 대해 거부하고, 비폭력을 옹호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들었다. 우리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어려운 말인줄 알면서도 또 얼마나 절박한 말인가.


다음 날인 6월 30일 이른 아침, 데릭 윌슨과 김동진 박사, 그리고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 교육과정연구모임에서 배우고 실천하는 초등·중고등학교 교사, 대학생, 어깨동무 활동가 20여명은 파주 ‘적군 묘지’를 찾아가기로 하였다. ‘회복적 평화’를 떠올려 보기에 적절한 곳이라 여겨서 고른 곳이다. 자유로를 지나 문산 방향으로 37번 국도를 달리다가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자장리부근에서 큰길가에 차를 세우고 일행은 모두 내렸다. 얼핏 지나치면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세워진 간판은 '북한군 중국군 묘지 안내도'이다. 적군 곧 한국전쟁에서 남쪽과 서로 적으로 맞선 상대, 북한군과 중국군의 무덤이다. 제1묘역, 제2묘역으로 표시된 입간판이 함께 서 있었다. '적군 묘지'로 알려져 있고, 군부대가 관리하는 곳인데, 직접 지키는 사람은 없다. 두 묘역 사이에는 농사를 짓는 밭이 있어서 실제로 일하는 분들이 무심하게 우리를 건너다보고 일을 하고 있기도 한다. "이곳은 6.25전쟁(1950.6.25.-1953.7.27.)에서 전사한 북한군과 중국군 유해, 6.25전쟁 이후 수습된 북한군 유해를 안장한 묘지입니다. 대한민국은 제네바 협약과 인도주의 정신에 따라 1996년 6월 묘역을 구성하였으며, 묘역은 6,099㎡로 1묘역과 2묘역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잠깐 입간판의 내용을 읽은 뒤에 오른편 2묘역으로 먼저 가서 우리는 무덤 가운데 서서 작은 꽃다발을 놓고 묵념을 올렸다. 무덤마다 놓인 비석에는 누구의 무덤인지, 어디에서 전사했는지 등의 기록이 적혀 있다. 한국 전쟁 때 치열한 전투에서 죽은 북한군과 중국군의 유해가 함께 안장되어 있다가, 중국군 유해는 2014년 무렵에 송환되었다. 더러 ‘무명인’ 비석이 눈에 들어온다. 이름도 없이 스러져 간 젊은 넋이 여기에 누워 있는 것이다.



다시 걸음을 돌려 처음 들어선 쪽으로 가서 1묘역으로 들어섰다. 이곳은 조금 더 잘 단장되어 있는 곳이다. 역시 함께 모여서 묵념을 하고, 준비해 간 구상 시인의 시 ‘적군 묘지 앞에서’를 정지영 선생님이 낭독하고, 또 다른 시 ‘휴전선’을 대학생이 낭독하고, 데릭 윌슨의 말씀도 들었다. 이런 고통스런 아픔의 현장을 찾아서 나누는 모습이 회복적 사회로 나아가는 걸음이 될 것을 확신한다는 말을 하셨다.



1묘역의 말끔히 단장된 무덤을 돌아보다, 문득 무덤이 모두 북쪽을 향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휴전선까지 불과 몇 십리, 비록 육신은 땅에 묻혔지만 영혼이라도 고향을 바라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배려한 것이리라. 누구였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위아래를 설득하고 그렇게 북쪽으로 배치하려고 애쓴 사람이 새삼 고맙다.


여기 이곳에 묻혀 있는 저 무덤 속 젊은이들이 자기 고향 땅으로 돌아 갈 날은 언제일까? 남과 북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는 문제라고 한다. 북한과 미국이 북쪽에 안장되어 있던 미국 군의 유해를 발굴하고 송환하는 뉴스를 보면서 더욱 우리 남과 북 모두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화해와 평화, 회복의 실천이 더욱 필요하고 중요한 것을 거꾸로 확인하는 셈이다.


자신이 남에서 태어나, 북의 원산에서 자라고, 남쪽으로 내려 온 뒤, 한국 전쟁 때는 종군 기자로 참여하고, 이곳을 지나다가 시를 남긴, 어쩌면 그 누구보다도 남과 북 모두에 대해서 같은 눈높이로 바라보며 아파한 시인 구상(1919-2004)이 쓴 ‘적군 묘지 앞에서’를 다시 읽어 보면서 답사의 소감으로 갈음하고자 한다.



적군 묘지 앞에서


구상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고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바른 드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로다.


이 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삽십(三十) 리면

가루 막히고

무주 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램 속에 깃들여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北)으로 흘러 가고


어디서 울려 오는 포성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



박종호ㅣ십여 년 전 어린이어깨동무 후원회원으로 인연을 맺었다. 현재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 연구위원, 신도림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지내고 있으며, 학생들과 손잡고 금강산, 백두산으로 수학여행을 가는 꿈을 꾸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08.20 00:05

[시선-한반도 평화읽기]


한반도 평화체제와 군축


정욱식


대전환의 한반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가 그야말로 대전환의 문을 노크하고 있다. 그 문이 활짝 열릴지, 반만 열린 상태로 남을지, 아니면 또다시 닫힐지는 예단키 어렵다. 전환의 양상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는 북한의 ‘선군’ 정치에서 ‘선경’ 정치로의 전환이다. 이는 길게는 2013년 3월 31일에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 노선”을 채택할 때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병진 노선은 김정은식의 ‘변증법적 국가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가 미완성 상태로 물려준 ‘앙탄일성’을 서둘러 추진해 “국가핵무력 건설 완성”을 선언한 것이 ‘정(正’)이었다면,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국면 전환이라는 ‘반(反)’을 만들어내고, 한미와의 적대 관계 청산 및 안보적 우려 해소, 그리고 경제발전을 향한 ‘합(合)’을 도모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듯 북한은 2018년 4월 20일에 노동당 결정서를 통해 “병진노선의 위대한 승리를 선포”하면서 “당과 국가의 전반사업을 사회주의경제건설에 지향시키고 모든 힘을 총집중할 것”이라고 결정했다. 또한 이러한 전략적 목표가 순조롭게 이행된다면 내년이나 후년에 “조미 대결에서 위대한 승리를 가져온 국가 핵무력의 역사적 소임은 끝났다. 이제 국가 핵무력의 완전한 폐기를 엄숙히 선언한다”고 발표할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는 한반도 핵 시대의 종언이다. 한반도 핵문제는 네 가지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제1의 핵 시대’는 1945년 한반도 해방 및 분단부터 1990년대 초 미국의 전술핵무기 철수 및 한반도 비핵화 선언 채택까지를 가리킨다. 이 시기는 한반도에서 미국의 핵 독점 시대였다. ‘핵 시대 1.5’는 북핵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1992년부터 협상을 통해 문제 해결을 시도했던 2008년까지를 의미한다. ‘반전 드라마’라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역동적인 시기였다. ‘제2의 핵 시대’는 협상이 단절된 2009년부터 2017년 북한이 ‘국가 핵무력 건설 완성’을 선언한 시기까지를 의미한다. 끝으로는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는 시기로 2018년부터 그 끝을 알 수 없는 미래까지이다. 한반도에서 핵 시대가 완전히 끝나고 “핵 없는 한반도”가 도래할 것인가의 여부가 판가름나는 시기이다.


셋째는 한반도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이다. ‘평화체제 없는 비핵화는 맹목이고 비핵화 없는 평화체제는 공허하다’고 할 때, 한반도의 핵시대의 종식은 평화체제를 수반할 수밖에 없고 또한 그래야만 한다. 일단 남북미 3자는 평화체제 입구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의 수준에 발맞춰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의회 상원의 비준을 거치는 대북 안전보장 방안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는 북미 간의 70년 적대관계의 청산이다. 미국과의 정치적·경제적 관계의 완전 정상화는 북한의 오랜 열망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대북정책은 북한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트럼프의 개인기와 북한을 적으로 남겨두고 싶어 하는 상당수 미국 주류 사이의 ‘갈등의 변주곡’을 품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적인 현상 변경은 현상 유지를 통해 추구해왔던 미국의 굴절된 이익체계도 건드릴 수밖에 없다. 무기 수출 위축이라는 ‘기대이익의 감소’와 북한의 위협을 빌미로 중국을 염두에 둔 미사일방어체제(MD) 및 한미일 삼각동맹을 추구해왔던 ‘전략의 차질’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미국의 정치적 급변사태, 즉 트럼프의 탄핵 여부가 한반도 문제의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그의 탄핵 시 대북 강경파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다섯째는 남북관계의 전환이다. 분단 이후 남북관계는 부정과 절멸의 대상에서 체제 경쟁의 시대로, 체제 경쟁의 종식과 한국의 대북 포용과 흡수통일 시도가 오락가락한 시대를 거쳐왔다. 그런데 2018년부터는 남북연합의 시대로 향하고 있다. 2국가 2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유럽연합과 흡사한 모델이 나올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평화체제와 군축


한반도 문제 해결의 성패는 군사 문제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군비통제와 군축 논의는 제자리를 맴돌았다. 북한은 냉전 시대에는 이른바 ‘4대 군사노선’을 통해, 그리고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선군 정치’를 통해 체제 생존을 도모했고 이 사이에 북한은 거대한 병영 국가처럼 되고 말았다.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군사력도 비약적으로 성장했음은 물론이다. 보수정권은 군비통제 및 군축 자체에 부정적이었고, 개혁진보 정권은 때때로 보수 정권보다 더 강력한 군비증강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평화, 새로운 시작’의 관건은 70년 가까이 누적되어온 군사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그 성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4.27 판문점 선언’에는 군사 문제 해결의 포괄적인 내용이 담겼다. 전문 첫머리에 담긴 ‘부전(不戰)의 약속’에서부터, 2조 한반도 군사적 긴장 완화에 담긴 “일체의 적대행위 전면 중단” 및 “비무장지대의 실직적인 평화지대”와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의 평화수역” 만들기, 그리고 3조에 담긴 “불가침 합의” 및 “단계적 군축 실현”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합의 내용만 놓고 볼 때에는 ‘남북 평화협정’에 근접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단계적 군축”이 눈에 띈다. 그런데 “단계적 군축”은 문재인 정부가 준비해온 국방개혁 2.0과 정면으로 충돌할 소지가 크다. 국방개혁 2.0의 요체는 국방비를 대폭 늘려 대규모의 전력 증강을 꾀하겠다는 것이 핵심적인 요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하듯 국방부는 대규모 국방비 증액 계획을 거의 그대로 유지키로 했다. 국방부는 2019년 국방예산으로 올해 대비 8.6% 증가된 46조 9천억 원을 요구하는 등 5년간 국방개혁에 필요한 예산을 약 270조 7000억원으로 추산했다. 별다른 변동 없이 이러한 계획이 추진되면 2023년 한국의 국방비는 60조원을 훌쩍 넘어설 것이고, 일본의 국방비마저 추월하게 될 것이다.


대규모 국방비 증액은 새롭게 시작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스스로 장애물을 설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군비증강과 한반도 평화체제·비핵화 실현 노력은 양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천문학적인 국방비 증액은 민생과 복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상기한 국방부의 국방비 증액 계획과 국방비 동결을 비교해보면 명확히 드러난다. 가령 향후 5년간 올해 수준(43조 4000억원)으로 국방비를 동결하면 약 60조원의 누적액의 차이가 발생한다. 누적액의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커지게 됨은 물론이다.


이렇게 절약한 국방 예산을 복지, 교육, 일자리 창출, 자영업 지원책, 미세먼지를 비롯한 환경 대책에 사용한다면, 국가안보의 내실을 기하면서도 인간안보도 튼튼하게 할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다. 아쉽게도 문재인 정부가 스스로 표방한 ‘포괄 안보’의 정신이 정작 국방개혁에서는 실종되고 만 것이다.


하여 문재인 정부는 두 가지를 자문해봐야 한다. 하나는 국방개혁 2.0이 과연 판문점 선언에 부합하느냐는 것이다. 또 하나는 ‘망진자(亡秦者)는 호야(胡也)’라는 우를 스스로 범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외부의 위협 대비에 치중한 나머지 내부의 모순을 완화·해결할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정욱식ㅣ고려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과 북한학을 공부하고, 현재 평화네트워크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한반도문제에 대한 의사소통의 활성화와 올바른 여론형성을 도모하여, 물리적인 냉전구조 못지않게 고착화된 냉전적 의식구조를 극복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평화공동체 실현에 기여하고자 연구와 실천을 병행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