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레터(글)2019.08.16 07:00

[이슈]

평화의 시대, 우리 아이들의 평화를 찾아서   

정진화

 

평화의 시대에 청소년들은 안녕한가?
도무지 뚫릴 수 없는 철옹성같던 남북미 관계가 작년부터 놀라운 반전과 진전을 보여주고 세계의 주목을 받는 한반도의 평화 시대가 오고 있다. 식민지와 전쟁에 멍든 기성세대와 달리 우리의 미래이자 희망인 청소년들의 일상은 그래서 얼마나 더 평화로울까. 어른들은 하루 8시간 노동, 주 52시간 노동이 정착되어 간다는데, 학생들은 학교 수업 끝나면 서둘러 저녁도 잘 못 먹고 학원 갔다가 한밤중에 돌아오는 일상이 되풀이 되고 있다. 자유학년제가 전국으로 확대되어 중학교 1학년은 시험으로부터 자유롭고 진로탐색 할 여유시간이 늘어났다지만, 학원 가는 시간은 더 길어졌다. 수업이 끝나고 동아리활동도 하고 방과후 활동도 하면서 놀다가, 집에 가서 저녁 먹고 가족들과 이야기도 나누면 얼마나 좋을까? 텔레비전 보고 인터넷도 들여다보면서 숙제하고, 읽고 싶은 책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펴다가 잠들기에도 저녁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더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현재의 직업은 머잖아 대부분 사라질 것이고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게 될지 불확실하다는 사실 하나만 분명한 사실인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2017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초중고 학생들의 수면시간을 조사하였는데, 6시간도 안 자는 중고생이 50.1%, 고등학생은 41%나 되었다. 이전의 세대보다 청소년들은 더 불평등한 사회에서 못 자고 못 쉬고 공부만 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다 해 줄게. 그저 공부만 잘하면 돼”라는 압박에 많은 청소년들은 자신을 성적순에 따라 이미 불행하고 망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2008년 이명박정부 초기에 청소년들이 거리에 나와 “잠 좀 자자, 밥 좀 먹자”라고 외쳤던 목소리는 불행히 지금도 유효하다. 2009년에 학교생활만족도가 24.3%에서 2019년 38.0%로, 삶의 만족이 26%에서 43.2%로 늘었다는 데에 안도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도시와 농산어촌에 사는 청소년들의 다른 일상
어른들은 청소년들에게 다른 일을 해보거나 한눈을 팔고 세상을 두리번두리번 할 기회를 좀처럼 주지 않는다. 도시의 청소년들이 학교 밖에 갈 데라고는 노래방과 피시방이 고작이다. 돈 있으면 쇼핑 하거나 영화를 본다. 얼마 전 ‘스카이 캐슬’이라는 드라마가 장안의 화제를 모으며 우리 모두에게 생각해보게 한 것은 무엇일까? 이 드라마는 상류층의 학업에 대한 엄청난 집착과 고도의 학업관리가 아이를 몰아세우고 가정을 무너뜨리는 과정을 보여준 수작이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그 드라마를 다 본 어느 부모들은 우리도 저렇게 코디를 수십억 들여 두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러지 못해서 우리 아이가 실패하고 있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니 같은 드라마를 봐도 어쩌면 이토록 다를까. 누구를 탓하랴. 

도시의 청소년들은 학업 부담과 시험에 시달리면서 학교와 학원 외에는 다른 곳에 갈 기회도, 할 수 있는 일도 거의 없다. 공부는 흥미롭고 인간과 세계, 자연과 우주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키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심리적으로 예민하고 여유가 없으며, 누가 뭐라 하면 날카롭게 반응하고 자기보다 약한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풀어 학교폭력을 일으키기도 한다. 무리를 지어 조금 다른 친구를 은따 시키거나 친구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고 엎드려 있거나 심지어 집안에 은둔해있는 청소년들도 있다. 이번 생은 망했다고 스스로 목숨을 던지는 청소년들이 줄어들지 않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런 현상에 교사도 학부모도 당혹스러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오늘날 만연하게 되었다. 

하지만 입시경쟁과 학교폭력, 사교육의 번창과 같은 흔히 말하는 교육문제들은 주로 도시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농산어촌에서는 한 반에 몇 명 되지 않고 학급 수도 작을 뿐 아니라, 학생들의 이름과 가정형편까지 교사들이 잘 안다. 학원이 없어서 늦게까지 다닐래야 다닐 수도 없다. 학교의 도서관과 시설도 잘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자신의 생활이 답답하고 뒤처져 있고, 별 볼일 없다는 생각에 도시로 갈 기회를 꿈꾸며 탈출하려고 한다. 돈 벌러 도시에 간 부모를 기다리며 농산어촌 청소년들의 상당수가 조손가정과 다문화가정에서 자라고 있다. 자기도 언젠가 떠날 수만 있다면 도시로 떠나겠다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도시로 가면 어떤 미래가 그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다행히 올해 귀농귀촌 하는 젊은이들이 늘었다는 기사는 도시의 한계를 드러내며 농촌이 새로운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짐 로저스의 이야기를 빌지 않아도 21세기 첨단산업이자 4차 산업혁명에서도 꼭 필요한 것이 농업이라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수긍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소중한 사람이라는 깨달음, 인정과 대화
학생들에게 진정 중요한 것은 자신이 소중한 존재이며 삶이란 누리고 살 만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러려면 자기가 스스로 결정하고 해보는 일이 많아야 한다. “아무 것도 하지 마. 공부만 해. 나머지는 내가 다 해 줄게.”하는 어른들의 말이야말로 청소년들을 매우 힘들고 무기력하게 하고 삶의 의미와 성취를 느끼지 못하게 한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 말고는 어른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없으니 보이지 않는 밧줄로 책상에 묶여있는 신세나 다름없다. 

늘 바빠서 쫓기듯 사는 청소년들은 새로운 것을 상상하고 도전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래서 부모와 교사들이 기다려주고 믿어주며 아이가 스스로 제 길을 찾아가도록 인정해준다면 관계는 편안하게 이어질 수 있다. 힘든 일이 닥쳐도 헤쳐 나갈 힘을 얻는다. 청소년의 행동이 잘못했다고 판단해도 어른들이 단정하여 야단치지 말고 “왜?” 그런가를 묻는다면 뜻밖의 답을 들을지도 모른다. 집안일도 같이 하고 요리도 하고 심부름도 보내고 가족 행사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게 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주관적인 행복지수가 내내 꼴찌인 것은 ‘나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자긍심이 부족하고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즐겁게 일 하는 아이들, 평화로운 마을공동체 
학생들은 일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시킨 일을 하는 것을 싫어한다. 제가 하고 싶어서 스스로 하는 일에 대해서는 마음을 내어 집중하여 열심히 구슬땀을 흘리면서 한다. 

이전에 내가 있던 중학교에서 청양으로 하루 농촌봉사활동을 떠난 적이 있었다. 버스 두 대로 80명 모집을 했는데, 하루 만에 마감이 되었다. 주변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과연 힘든데 가려고 할까 하는 우려를 했는데, 왠걸. 수업을 빼먹고 간다는 점도 작용했겠지만 아이들은 신이 나서 서로 일하러 가겠다고 했다. 특히 활동적이고 가만히 있지 못하여 야단을 많이 맞는 학생들이 더 적극적이었다. 미리 청양의 농민단체와 이야기하여 열 집을 신청 받아 학생들이 여덟 명씩 한 모둠을 이루어 들어갔다. 비닐을 제거하고 고추를 따고, 콩 껍질을 까고, 무거운 물건을 날랐는데, 학생들은 교실에서보다 훨씬 집중하여 일하고 참 즐거워했다. 중간에 새참을 먹고 웃으며 장난치다가 다시 일을 하고, 저녁은 음식점을 전세 내다시피 하여 시끌벅적 맛있게 먹고 올라왔다. 교실에서는 천덕꾸러기처럼 수업 방해하고 교사에게 대들던 학생들이 거뜬하게 일하며 기뻐하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작년에는 예산의 사과농장에 가서 사과를 땄다. 흠을 내면 안 되니까 사과는 조금만 따고 상자를 사과나무 아래 나르는 일을 한참 했다. 중간에 사과는 원 없이 먹고 나중에 한 봉지씩 싸줘서 선물까지 한 아름 안고 돌아왔다. 한참 일하다가 힘들었던 한 학생은 “학교 가고 싶어요. 공부가 제일 쉬워요”라고 말해서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 학생도 자기가 그런 말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많은 대안학교에서 노작교육을 하고 농산어촌에 자리 잡고 있는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일을 하면서 자존감이 높아지고 자연을 닮는다. 언젠가 변산공동체에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는 아이 둘을 보낸 적이 있다. 그 아이 둘 다 거기서 농사일 하며 제 하고 싶은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지냈다. 바느질도 하고 흙집도 짓고 빨래도 하면서 지리산도 가고 계절학교도 진행하였다. 그 애들은 상처를 딛고 제 앞가림을 하면서 남다른 삶을 스스로 개척해나가고 있다. 자연 속에서 땀 흘리는 농사일이 이처럼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아이들을 키워주었다고 생각한다.

올해 봄에 상영된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도시에서 상처받은 젊은이들이 농사일도 하고, 맛있고 건강한 먹을거리를 만들어 먹으며 마을 친구들과 어울려 자신을 회복하고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는 이야기이다. 싱싱하고 풋풋하고 맑고 밝은 자연 속에서 이웃과 나누며 사는 평화로운 마을공동체가 우리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희망찬 터전이고 미래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반도 평화의 봄이 오듯이, 남과 북의 젊은이들이 농사를 지으며 먹을 것을 해결하고 문화와 예술이 꽃피는 평화마을을 꿈꾸어본다.

 

어린이들의 모내기 - 출처 : 피스레터 통권8호_학교는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 @심은보


정진화ㅣ빛고을 광주에서 태어나 서울로 올라와 중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다. 교육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고 청소년들이 행복하게 웃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청소년문화연대 킥킥을 만들어 이런저런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반도 평화의 시대를 맞아 평화마을만드는사람들 모임에 참여하여 파주에 첫 삽을 뜨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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