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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23_4 남동훈_문화예술로 하나된 남과 북

by 어린이어깨동무 2020. 8. 19.

[사람 사는 이야기, 연극] 

 

문화예술로 하나 된 남과 북

남동훈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다시 시작된 남북 교류 협력은 급물살을 탔다. 4월 27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회담까지 열리게 된다. 이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문화예술 행사가 있었다. 2018년 4월 1일 평양에서 열린 <2018 남북평화협력기원 남측예술단 평양공연 봄이 온다> 공연이 그것이다. 2008년 이후 꽁꽁 얼어붙은 남북 간의 대립과 불신의 장벽이 이 순간 무너졌다. 도대체 문화예술이 어떤 힘을 지녔기에 남과 북의 주민들은 물론 전 세계인의 가슴에 감동의 불꽃을 지필 수 있었을까.

 

2018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환영공연을 관람한 뒤 두 정상이 무대 위에서 악수하고 있다.  

남북 민간교류는 정치적 상황의 제약 아래 양측 정부 당국의 개입과 조정을 전제로 이루어져 왔다. 이런 조건 속에서 남북 문화예술 교류는 1985년 이후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크게 1985년부터 90년대 이전, 90년대, 98년부터 2007년까지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1985년 9월 20일 :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 공연예술 교류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 공연예술 교류는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1985년 9월 20일에 성사된 이산가족 고향방문이 계기가 되었다. 분단 이후 30년 만이었다. 양측 예술공연단은 서울 국립중앙극장과 평양대극장을 동시에 방문하는 형태로 교환공연을 했다. 이때 남에서는 김정구, 김희갑, 남보원, 하춘화 등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와 코미디언, 전통예술인, 무용인들이, 북한에서는 민속예술과 전통가무 중심의 공연단이 참여했다.
 
하지만 환호와 박수, 감동의 눈물은 전혀 없었다. 남측은 북측 공연에 대해 ‘북한의 공연내용은 전반적으로 우리의 옛 전통을 찾아볼 수 없었으며 전반적으로 인간성이 상실된 획일화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1985년 9월 27일 대한 뉴스)라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북측 역시 이에 뒤질세라 ‘남한의 무용은 말세기적(세기말적)인 것이고, (줄임) 마지막에 껴안고 입까지 맞추는 것이 아니라 벌거벗다시피하고 (줄임)’라며 험담을 쏟아냈다. 당시 냉전 체제 아래에서 남과 북 모두 자기 체제의 우월성을 상대방에게 선전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남북한 동시 교환공연을 진행한 실질적인 이유였다. ‘혹시 우리를 잡아놓고 안 보내주면, 이쪽에 서도 잡고 안 보내주려고 잡아놓고 있었다.’는 거였다. 가수 하춘화 씨가 평양공연 뒤 정부에서 마련한 공식 환영행사에서 정부 관계자로부터 들은 말이라고 한다. 북측 역시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정치적 불신의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던 남북관계는 문화예술마저 인질로 삼았던 것이다. 이후 남북 간 공연예술교류의 문은 오랜 시간 동안 굳게 닫혔다.

 

1985년 9월 남북예술단 교환공연 행사로 평양을 방문했던 남한예술단원들이 판문점을 통과해 남쪽으로 돌아오고 있다.


1990년~1997년 : 정치색은 NO, 동질성은 OK 

 

1989년부터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기 시작하면서 세계는 탈냉전 체제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남북 당국 간에도 기존의 냉전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관계정립이 필요했다. 결국 1990년 9월부터 남북 총리를 수석대표로 하는 남북 고위급 회담이 개최됐다. 

한편 남북 간 민간교류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돌파구를 만들어 갔다. 정치색은 최대한 배제하고 실패에 대한 부담은 최소화할 수 있는 데 비해 그 파급력은 큰 분야이기 때문이다. 이전과는 달리 남과 북의 정서적 동질성을 바탕으로 조심스레 접근해나갔다. 자연스레 전통예술 분야가 중심이 됐다. 1990년 평양에서 열린 <제1회 범민족통일음악회>*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같은 해 12월, 서울에서의 <송년음악회>가 뒤를 이었다. 이번에는 북의 공연단이 판문점을 통해 서울로 왔고 민간교류로서는 첫 방남 공연을 진행했다. 두 공연 모두 독일에서 활동하던 작곡가 윤이상이 주선했다. 그 이후 다수의 공연이 이어졌다. 그러나 대부분 해외동포나 해외 단체를 매개로 제3국에서 한 공연이었다. 남북 민간 당사자가 직접 만난 교류 또한 아니었다. 하지만 이전의 정부 차원 교류와 비교하자면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제1회 범민족통일음악회>는 남측 17명(서울전통음악연주단. 황병기, 오정숙,김덕수, 노동은 등)과 북측 음악인 100명, 미주동포 음악인 500명 등이 참여했다. 10월 18일부터 23일까지 평양 2.8문화회관, 동평양대극장, 봉화예술극장 등 8곳에서 공연을 했다. 민간 차원의 교류로 남과 북, 해외동포의 합동공연이자 남측 민간단체의 첫 방북 공연으로 판문점을 통해 평양으로 들어갔다. 

정부 당국 간의 관계도 큰 진전을 이루었다. 남북 고위급 회담의 결과, 1991년 12월 13일,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 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했다. 하지만 오랜 시 간 쌓아 왔던 상호 정치적 불신의 벽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1992년 북한 핵문제가 불거지자 어렵사리 물꼬를 튼 남북 교류는 또다시 답보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1998년~2007년 : 최초의 남북정상회담과 민간교류 활성화

 

1998년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뒤 2000년 최초의 남북정상 회담이 평양에서 성사되고 ‘6.15 남북 공동선언’이 발표되었다. 분단 이후 55년 만의 일이었다. 이후 2007년까지 약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남북문화예술 교류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질적, 양적으로 크게 증폭되었다. ‘햇볕정책’이 만들어낸 성과였다. 민간교류는 크게 늘어났고, 공연예술 교류는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특히 대중예술분야의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시민들과의 접점도 넓어졌다. 이 시기 공연의 횟수와 참여자들만으로도 그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뮤지컬로서 최초의 방북공연이었던 가극 <금강>의 한 장면. 가극 <금강>은 동학농민혁명의 생성, 전개, 소멸의 과정을 그렸다. <금강> 공연은 분단 이전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남과 북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강렬한 정서적 공감대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민간교류가 본격화되면서 남과 북 모두 정서적 동질성을 회복하는 것이 평화와 통일의 밑거름이라는 인식을 공유해나 갔다. 접근 방식도 정교해졌다. 인적 교류 없이 작품만 주고받으면 되는 미술, 사진 분야에서 시작해 사람들이 직접 만나야 하는 공연예술 분야로 넓혀 나간 것이다. 앞서 급격한 인적 교류가 불러온 부작용에 대한 학습효과였다.

 


<전국 노래자랑> 평양 편: 일회성을 넘어 일상성으로

 

1985년 처음 시작된 남북 문화예술 교류는 정치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지속과 단절을 거듭해왔다. 이제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준비하며 남북 문화예술 교류에도 새로운 질문과 전망이 필요하다. 

2003년 8월 15일 대한민국 방방곡곡의 평범한 주민들이 자신들의 숨은 끼와 노래실력을 선보이던 <전국 노래자랑>이 처음으로 평양에 갔다. 지금까지는 북쪽의 전문 예술인들의 노래만 보고 들었다면 드디어 북쪽 일반 시민들의 노래를 대한민국의 안방에 앉아서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북쪽 주민들의 생활상과 문화활동에 대한 남쪽 주민들의 관심은 예상보다 컸다. 방영일인 8월 21일 <전국 노래자랑>의 시청률 은 29%였다. 평소 시청률 10~15%에 견주면 무려 두 배 가량이나 높았다. 실제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난생처음 들어 본 북한 가요들이 참 신선했다.”, “평양이 생각보다 멀지 않더라.”라는 반응을 보였다.
 
<전국 노래자랑> 평양 편은 남북 문화예술 교류의 상상력을 평범한 시민들 간의 교류로 확장시켰다는 점, 일회성·행사성 교류에서 정기적이고 지속적인 교류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객석에 앉아서 관객으로 바라만 보던 주민들이 무대 위에서 서로의 일상생활 경험과 정서를 주기적으로 나눌 수 있게 된다면 그 파급효과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고도 남는다.



남북 주민들의 직접 교류를 꿈꾸며

 

남과 북 주민들 사이의 직접적인 문화예술 교류의 목적과 필요성은 차고 넘친다. 그렇다면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만약 10개 이상 지역의 남북 주민들 간의 합동 공연이 몇 년 만이라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남북 주민들 사이에 형성될 정서적 교류와 공감, 인간적 연대와 유대 감은 그 어떤 지원과 교류로도 이룰 수 없는 이해와 공감, 화해와 평화, 공존과 번영의 가장 값진 밑거름이 될 것이다.   

남북 문화예술교류에도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우선 남북 문화예술교류를 단순 일회성 이벤트로만 여기는 관습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메가 이벤트 중심에서 벗어나 지역 간, 예술단체 간 등 교류로 형태를 세분화해야 한다. 단순 교환·합동공연에서 벗어나 사전 워크숍, 공동제작 등 질적 교류가 필요하다. 상대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충분하고도 점진적인 과정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허황된 꿈을 꾸고 있다고 믿는 자들에게 꿈은 현실이 된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향한 꿈 또한 그렇다. 소리모아 외치면 외칠수록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남동훈 | 연출가. 공연 창작과 더불어 성미산마을극단 무말랭이 상임연출, 성미산동네연극축제 예술감독, 전국생활문화축제 총감독 등 시민문화예술활동도 함께 해왔다. 지금은 극단 고릴라 Go-LeeLa 대표로 활동하며 참여연대 아카데미 시민연극워크숍을 4년째 진행 중이다.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공존의 시선으로 남북을 잇다>를 함께 펴냈다.

 

※ 본 글은 2020년 4월 발행된 『어린이어깨동무 교양시리즈2. 공존의 시선으로 남북을 잇다』에 실린 필자의 글 「문화예술로 하나 된 남과 북」을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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