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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28_5 김지혜_ 서로에게 말을 거는 존재가 된다면

by 어린이어깨동무 2021. 11. 19.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1] 

서로에게 말을 거는 존재가 된다면

김지혜

 

선생님!! 드디어 내일! 악 어떡해!!! 너무 기대되요오오오~~~~”

 

어린이들이 최고로 기대하는 날, 어린이날 전날이 아니다. 오늘은 부계초 4학년 학생들을 만나기 전날이다. 부계초는 경북 군위에 있는 시골 초등학교다. 광명초등학교에서 출발하여 대중교통으로 일곱 시간 정도 걸리는 곳, 한 학년의 학생이 7명인 곳, 가장 가까운 다이소에 가기 위해 대중교통을 4시간 타야 하는 곳, 그곳 학교 선생님과 내가 우연히 연결되어서 쌍방향 수업 플랫폼을 활용하여 교실 교류를 하게 되었다. 부계초 학생들을 만나기 전부터 들떠있는 우리반 아이들. 한 아이의 표현으로는 심장아 나대지마란다. 그렇게 기분 좋은 떨림과 낯선 설렘을 가득 안고, 아이들은 온라인 쌍방향 플랫폼을 통해 우리 학교와 자그마치 222km나 떨어져 있는 한 농촌 마을의 4학년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우물쭈물하던 아이들이 쌍방향으로 두 번 정도 만나자 드디어 입을 텄다. 아이들의 열렬한 반응에 교사 둘도 상기되었다. “선생님, 오늘 저희 반에 다른 반 선생님들이 오셔서 광명초랑 부계초랑 만나는 거 참관하고 가셨는데, 다들 어떻게 한 번도 안 만난 애들이 이렇게나 서로 애틋해하면서 관계 맺을 수 있는지 신기해하셨어요. 애들이 광명 지역의 도시 문제라고 하니까 수업에 엄청 열심히 집중하구요. 우리반 애들은 학교 오면 맨날 광명초 애들 얘기밖에 안해요~!”

 

우리반도 마찬가지다. 평소 수업에 소홀히 참여하는 학생도, ‘부계초 친구들에게 보낼 도시 초대장을 만들어라~’하면 배신감이 느껴질 만큼 성심성의껏 과제를 해냈다. 주말을 지내고 난 이야기를 할 때면, 전화번호 교환을 한 부계초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는 소식이 들렸고, 다른 아이들은 그 경험을 넋 놓아 부러워했다.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들처럼 아이들은 서로의 소식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세 번째로 만나는 날, 우리반 댕이가 만들어 온 헤어짐의 동영상을 상영했다. 그러자 부계초의 한 아이가 왕왕 울음을 터트렸다. 원래는 세 번 교류하기로 계획을 세웠었지만, 부계초 아이들이 선생님께 칭찬 받으면 받는 별100개 모아서 광명초랑 또 만나고 싶다는 소원을 빌어 우리는 총 네 번의 수업을 함께하게 되었다.

수업의 마무리로 지역의 특산물을 교환하기로 하였다. 부계초에서는 학교 예산으로 대추칩과 사과를 보내왔지만, 우리는 예산이 따로 없어 아이들이 개인적으로 용돈을 써서 졸망졸망 선물을 모았다. 상자 가득 부계초에 보낼 선물이 채워졌다. 그 열기는 교사가 부계초에 우리반 티셔츠를 보내면 어떨까?” 의견을 냈더니 너도나도 자기 것을 기부하겠다고 손을 쑥쑥 들어서 치열한 가위바위보 끝에 기부자를 선정할 정도였다. 교류 물품과 함께 아이들의 마음이 배송되었다.

그 후에 인구 소멸문제로 뉴스에 군위군이 몇 번 언급되었다. 아이들은 그 뉴스를 보며 진심으로 군위군과 그곳에 사는 자신의 친구들을 걱정하였다. 쌍방향 온라인으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전혀 몰랐을 남 일이, 어느덧 감정을 공유하는 친구의 일이 되어버렸다.

 

1015일에 어린이어깨동무에서 온라인 쌍방향으로 데릭 윌슨 교수님을 초청하여 <희망을 가꾸는 평화교육>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공부를 함께 하는 선생님들께 데릭 교수님의 이야기는 많이 전해 들었지만,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겪었던 쌍방향 온라인 연수는 대부분 연수자가 혼자 강의를 하고, 참가자는 모두 경청을 하는 형식이었는데, 데릭 교수님의 워크숍은 처음부터 참가자의 질문과 교수님의 답변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니 정말 우리가 소통하는 느낌이 들었고, 글로는 알 수 없었던 데릭 교수님이 마음이 느껴졌다. 그가 어린이어깨동무 평화 모임을 진심으로 아끼고, 이 곳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하나라도,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주고 싶어한다는 마음이 읽혔다.

 

신기한 일이었다. 이역만리 떨어진 북아일랜드의 한 서재에 앉아 있는 사람의 마음이 통신망을 타고 전해져 그와 내가 조금 가깝게 느껴지다니... 우리 아이들도 그랬을까?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북의 어린이들과도 온라인 쌍방향으로 만날 수 없을까?’ 예전에는 꼭 물리적으로 만나야 그 마음의 파장을 받을 수 있었다면, 요즘은 기술의 발전 덕택에 각각의 장소에서 서로를 인터넷으로 연결하여 만날 수 있다. 하긴, 가장 큰 걸림돌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정치적 문제가 해결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완전히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어린이어깨동무를 통하여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남북 어린이가 직접 만났듯이, 증오와 불신을 넘어선 상상이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으로 차츰차츰 실현이 되었지 않았는가. 높으신 분들의 마음과 정치 상황도 중요하지만,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간절하게 상상하는 힘도 무시할 수 없을테다. 물론 이런 바람이 현실이 되려면 극복해야 하는 높은 벽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쌍방향 소통을 꿈꾸는 까닭은 어떻게든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비로소 인간이 존재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경험적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남북의 어린이들이 온라인 쌍방향으로 만나서 좋아하는 음식을 말하고, 어제 본 만화영화를 이야기하고, 심심할 때 무얼 하고 노는지를 나눌 수 있다면. 도시와 시골 어린이가 연결되듯이 남과 북의 어린이들도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면, 온 나라에 평화가 한 발자국 성큼 다가올테다.

김지혜 | '지혜네 노랑꽃집'(우리반 이름)의 한 구성원 '노랑꽃'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신념으로 오늘도 흔들리고 흔들리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것 보다 흔들리지 않는 것을 더 경계하며 살아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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