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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41_5 이재정_‘빛과 바람의 혁명’ 광장이 일깨운 민주주의

by 어린이어깨동무 2025. 2. 19.

[나중 아니고 지금] 

‘빛과 바람의 혁명’ 광장이 일깨운 민주주의

이재정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은 중대한 분기점을 맞이했다.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선포해 헌정질서를 뒤흔들었고, 이에 맞서 시민들은 두 달이 넘는 시간을 광장에서 보내고 있다. 나 역시 그날 이후 동세대 친구들과 '윤석열 퇴진을 위해 행동하는 청년들(이하 윤퇴청)'을 만들어 광장에 결합하고 있다. 때로는 기자회견, 집회, 토론회 등을 직접 열기도 하고, 온오프라인을 통해 만난 청년들과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렇게 그날은 나의 일상에도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사람들과 이를 무너뜨린 세력 간의 갈등은 점점 격화되고 있다. 계엄은 국회의 발 빠른 대처로 저지되었지만, 이후 이어진 ‘국민의 힘’의 내란 옹호, 극우 유튜버들의 가짜 뉴스 배포, 극우 세력의 결집과 서부지법에 대한 폭동까지,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더욱이 윤석열의 언론 플레이와 일부 정치인들의 선동이 이어지면서 사태를 부추기고 있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상식으로 여겼던 원칙들이 흔들리고, 시민들은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고 분열되고 있다. 윤석열 탄핵과 정권교체가 이뤄지더라도 지금의 갈등이 봉합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내란 사태’가 지속될 것이라는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다시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간 절망이 피어난 자리를 희망으로 다시 메울 수 있던 건 온전히 광장에서 만난 시민들 때문이었다. 비상계엄이 선포되던 날, 국회로 달려나가 국회 출입을 막은 경찰에 항의하고 계엄군을 막아선 시민들이 있었다. 뿐만 아니다. 그날 애타는 마음으로 집에서 표결을 지켜보며 가슴 졸인 시민들도 있었다. 매번 윤퇴청 깃발 아래 함께 행진하는 한 참여자는 타 지역 주민이라 그날 여의도로 바로 달려가지 못했던 부채감을 갚고자 매주 집회에 나온다고 말했다. 그날 여의도에 대신 가주어 고마웠다며 삼삼오오 후원금을 모아 윤퇴청에 후원금을 보내주신 전남 주민 분들도 계셨다. 함께 했던 마음, 함께 하지 못했던 마음들이 모두 연결되어 지금까지 광장의 시간을 만들고 있다. 여의도에서 시작된 광장은 남태령에서, 한강진에서, 그 너머의 여러 공간으로 이어지고 있다.

광장에 참여하며 민주주의가 법과 제도를 넘어 시민들의 연대와 실천 속에 살아 숨 쉰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특히 이번 광장은 지난 2016년 박근혜 탄핵 집회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어둠을 밝히는 불빛은 다채로워졌고, 깃발은 재기발랄 개성이 강조되고 있다. KPOP 음악이 집회 플레이리스트를 장악했고, 이에 맞춘 EDM 구호도 등장했다. 민중가요를 함께 배우는 시간도 가져 민중가요와 KPOP이 나란히 울려 퍼지는 장면도 연출되고 있다. 차별과 혐오 발언은 현저히 줄었고, 그것이 주는 안도감이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안전하다는 감각을 만들고 있다. 응원봉과 깃발로 상징되는 '빛과 바람의 혁명'은 나아갈 이정표가 되고 더 너른 연대의 길을 트고 있다. 

 

남태령 집회 현장 (출처 : 윤퇴청)
한강진 집회 현장 (출처 : 윤퇴청)

 

특히 남태령 고개에서 길이 막힌 농민들과 이들을 돕기 위해 달려간 여성, 성소수자, 청년 등의 뜨거운 연대는 광장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남태령은 서로 다르다고 느꼈던 존재들 간의 연대 가능성을 확인하게 했고, 이름도 모르는 옆 사람과 나눈 핫팩과 음식, 약품 등을 통해 서로를 돌봤으며, 끝내 트랙터 행렬이라는 승리를 경험했다. 지는 것에 익숙하던 이들이 함께 이뤄낸 승리는 연대자들의 마음에 깊게 남았다. 연대의 마음은 남태령 고개를 넘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지하철 시위로, 동덕여대 민주화 투쟁으로, 거제 조선하청노동자 투쟁으로, 옵티컬 해고 노동자 투쟁 등으로 이어졌다. 연대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이들에겐 ‘말벌 시민’이라는 애칭이 붙었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에도 은박 담요를 뒤집어쓰고 밤을 지새운 한강진 시민들에겐 '키세스단'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그 뜨거운 연대는 전국 곳곳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광장은 더 이상 단순한 저항의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민주주의를 설계하는 출발점이 되고 있다. 우리는 단순한 퇴진 운동이 아니라, 이후의 사회를 만들어가는 주체로서,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켜내고 확장할 것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이번에야말로 87세대가 만들어낸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선 일상의 민주주의를 뿌리내릴 차례가 되었다. 지난 1월 23일 윤퇴청은 광장 참여 청년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1월 1일~1월 13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광장 참여 청년들의 63.1%가 광장의 가장 중요한 요구사항으로 '윤석열 탄핵'이나 ‘내란 범죄 처벌’보다 ‘사회대개혁을 위한 사회문제 해결’을 꼽았다. 비상계엄 충격으로 거리로 나온 청년들이 이젠 사회대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윤석열의 파면과 내란동조세력에 대한 단호한 처벌을 완수해나감과 동시에 이제는 무엇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길인지 성숙된 논의가 필요하다. 광장에 나온 사람들은 윤석열 퇴진 만으론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모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광장에 울려퍼지는 여러 목소리들을 통해 더욱 잘 알고 있다. 광장에는 사회적 참사, 불안정 노동, 성차별, 폭력과 혐오, 기후위기, 전세사기 등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윤석열 퇴진 광장이 이토록 다채로운 건, 윤석열 정부에서 억압받은 이들이 이렇게 다양하다는 걸 보여준다. 가장 고통받던 사람들이 더 이상 이렇게 살 순 없다며 윤석열 퇴진과 사회대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여성, 성소수자,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농민 등 윤석열 정부에서 배제되었던 존재들이 이제는 힘을 모아 윤석열 정부의 말로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광장에는 많은 여성들의 참여가 눈에 띈다. 앞서 언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성(66.4%)에 비해 여성(71.6%) 청년이 ‘계엄선포 이전부터 윤석열 정부의 정책과 행태에 실망해서' 집회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응답이 높았다. 이는 그동안 윤석열 정권이 후보 시절부터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여성가족부 폐지를 예고하고 임기 내내 사실상 부처 기능을 무력화 시켰으며, 여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예산을 삭감하고, 직장 내 성희롱을 상담하는 민간고용평등상담실을 전면 폐지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윤퇴청 설문조사 거리 홍보 (출처 : 윤퇴청) 
윤퇴청과 청년단체 (출처 : 윤퇴청)

 

윤석열 퇴진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 광장의 정치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차별받거나 배제되지 않고 평등하게 대우받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범주를 확장하며 차별과 배제를 해소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이제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광장이 일깨운 돌봄과 연대의 정신이야말로 사회대개혁의 가장 중요한 방향이 될 것이다. 

한국사회엔 중요한 이중 과제가 놓여있다. 우선 내란 범죄를 일으킨 자들과 헌정질서를 위협한 자들에 대한 단호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한 편으로는 부정선거, 가짜뉴스를 진심으로 믿어버린 극단에 놓인 이들과도 함께 민주주의를 구축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 세대가 해결해야 할 시대적 숙명이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서로에 대한 높아진 불신과 적대는 그동안 쌓아온 합의와 질서를 위태롭게 할 것이다. 이것은 정치권에서 주로 호명하는 ‘젠더 갈등’만의 문제가 아니라 복지, 노동, 연금 등 사회 정책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게다가 우리에겐 예견된, 대응해야 하는 위기들도 있다. 기후위기, 디지털 전환으로 인한 일의 변화, 고령화와 지역소멸 등이 눈앞에 닥쳐왔다. 이런 위기들을 적시에 대응하지 못한다면 그 타격은 가장 약한 고리들을 먼저 덮쳐올 것이다. 소모적인 정쟁과 가짜뉴스 대응으로 소비하기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극단의 정치가 아닌 다층적인 협력과 통합의 정치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더 다양하고 단단한 연대가 광장을 메운 것처럼,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건 차별이나 배제가 아닌 다양성과 포용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서로의 힘을 믿고 사회대개혁의 구체적인 방향을 모색해나가자.

 

 

이재정 | 활동판의 프로 n잡러? 사회정책을 연구하는 대학원생이기도 하고, 비상계엄 이후에는 <윤석열퇴진을위해행동하는청년들(윤퇴청)>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매주 행진 사회도 봅니다. 그동안 여러 시민단체, 국회 등에서 일했고, 시민운동과 정치 영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시민의 힘을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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