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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41_6 남동훈_평범한 동네주민들의 연극 도전기 Ⅳ '산토끼'를 향하여

by 어린이어깨동무 2025. 2. 19.

 

[사람 사는 이야기, 연극] 

무말랭이 연극만들기 - 평범한 동네주민들의 연극 도전기 Ⅳ

'산토끼'를 향하여

남동훈

 

우리 시대의 제사(祭祀)를 다루다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겪게 되는 큰 고민거리들이 몇 가지 있다. 그 가운데 제사는 아차 하면 부부 사이는 물론 한 가정과 가족, 나아가 가문과 친족 간의 관계에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민감한 이슈이다. 실제로 제사를 모시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가족 간에 심각한 사건들이 발생하는 걸 언론을 통해 접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그 시한폭탄 같은 이슈에 무말랭이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창작극에 도전하면서 다루기로 한 소재가 결혼과 제사였고, 전작 ‘어린 부부’에서 결혼을 다루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출발은 역시나 디바이징 시어터(Devising Theatre)의 방식을 취했다. 제목은 ‘산토끼’.

 

디바이징 시어터(Devising Theatre)란

일반적으로 공연은 준비된 희곡 즉, 극작가가 생산한 텍스트에서 출발한다. 디바이징 시어터는 배우를 중심으로 한 공연 참여자들이 극 구성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공동창작방식으로 완성해가는 제작방식 및 공연을 이르는 말이다. 개입의 범위는 소재 및 주제 선정과 자료 조사부터 인터뷰 등을 통한 글감과 이야기 마련, 즉흥연기 등을 통한 장면구성과 공연창작에 이르기까지 폭넓다. 그리고 제작 의도와 환경, 참여 주체 등에 따라 각각 다르다.* 그렇다면 무말랭이의 ‘산토끼’는 어디쯤에 해당할까. 

* 디바이징 시어터의 제작방식과 공연에 관한 최근의 대중적인 사례로는 서울시뮤지컬단이 2022년 10월 제작 발표한 디바이징 뮤지컬 ‘다시, 봄’을 꼽을 수 있다. 

 

어떤 창작도 시간과 계획이 필요하다

전문 극작가가 희곡 한 편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얼마나 될까. 정답은 없다. 학부나 대학원 전공 과정을 기준으로 하면 한 학기, 대략 6개월쯤으로 가늠할 수 있겠다.(물론 이마저도 작업 출발의 시점을 창작의 발상부터 잡는다면 오리무중이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없는 건 아니다. 계획을 잡으면 된다. 디바이징 씨어터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어린 부부’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예로 살펴보자. 

대략 초고를 탈고하기까지 약 6개월, 연습과 공연까지 약 2개월, 합쳐서 8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물론 앞선 6개월은 주 1회 연습이긴 했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기간이다.

 

창작의 고통과 기쁨

이쯤되니 참여자들의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린 부부’ 작업에 참여했던 아난도는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말려야 진정으로 맛있는 무말랭이가 될 수 있는 걸까? 하나의 무가 조각으로 잘리고 말려져서 무말랭이가 되는 것처럼, 나를 자르지 않고는 진정한 무말랭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이 다음엔 어떤 과정이 또 나를,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라고 묻는다. 좀 이상하다, 진정한 무말랭이가 되기 위한 고통에 대해 저리도 처절하게 토로함과 동시에 다음 작업에 대한 모종의 기대감을 드러내다니. 좀 이상하다, 제정신일텐데...  한편, 함께 참여한 저별은 

“생애 두 번째 무대! 창작극을 하게 될 줄이야~~ 창작극을 해보겠다고 무모하게 덤빈 까닭으로 무말랭이 모두는 꼬들꼬들, 제대로 말려지는 과정을 겪었지요. 맛 좋게 말린 무말랭이들을 한데 모아 무치고 양념하여 한 상 푸짐히 차렸습니다. 모두들 맛있게 드시기만 하세요!”

 

라고 외친다. 상당히 보람찬 뉘앙스다. 역시 이상하다... 하지만 고통을 승화시키면 저렇게나 드높은 경지에 이를 수도 있구나, 싶다. 아난도의 모종의 기대감도 이해가 된다, 싶다.**

** 두 개의 소감문은 각각 아난도와 저별이 무말랭이 카페에 올린 ‘어린부부’ 공연 후기에서 가져옴.

 

산토끼 토끼야, 어디로 갔느냐

‘산토끼’ 역시 나를 자르는 고통과 그 승화의 기쁨을 통해 만들어졌다. 전작에 이어 필자를 포함한 부추(작가 조정일)와 파스텔(무대디자이너 박은혜), 시원(의상디자이너 최윤희) 등 전문연극인들과 밍(성미산마을극장 이경선)과 하마형님(무말랭이)이 제작진으로 참여했다. 출연진은 시작, 짱가, 물방울, 무지개, 쏭, 저별, 달군, 다람쥐 등 창작의 고통을 금새 까먹었거나, 첫 경험의 기대감만으로 마냥 행복하기만 했던 무말랭이 동네 배우 9명이 참여했다. 

‘산토끼’ 무대제작 광경
‘산토끼’ 무대

 

‘산토끼’는 어떤 이야기일까

작은 할아버지 역할로 참여한 짱가형님의 작품해설에서 부분 발췌 및 인용해본다. 

설을 코앞에 둔 어느 날 새벽. 양지바른 산자락에 오래된 묘 몇몇 기가 옹기종기 자리 잡고 있다. 4대가 함께 모여 사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주고받는 말을 보면 부자지간이 분명한데 나이는 거꾸로다. 가장 윗대 어른으로 보이는 남자는 20대의 혈기왕성한 젊은이, 그의 증손자라는 남자는 일흔은 훌쩍 넘긴 외모를 하고 있다. 부부지간에도 나이는 뒤죽박죽이다. 남편은 쉰을 갓 넘긴 것 같은데 부인은 일흔 줄로 보인다. 저승에 와도 귀신이 된 그때 그대로 살아가니 나이가 뒤죽박죽일 수밖에. 그곳에서 자신들의 기제사며 명절 제사 때 이승의 후손들 찾아가 제상 받아먹고 오는 낙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를 어쩌랴! 그동안 선조들이 대대로 지내오던 명절제사 기제사를 이승의 후손들이 싹 없애버리고, 신정 때 딱 한 번으로 줄인다는 것이다. 게다가 장사밑천 마련한다고, 자식 미국 유학 보낸다고 자신들이 묻혀있는 선산 마저 팔아치운다는 것 아닌가? ...(후략)...

 

2011년 무말랭이의 세 번째 공연이자 두 번째 창작극 ‘산토끼’는 이렇게 시작한다. 독특하다. 작가 특유의 우화적 스타일이 반짝반짝 빛난다. 이제 연습만 남았다. 저리도 아름답게 비어있는 무대는 과연 어떤 말로, 몸짓으로 채워졌을까.

 

 

남동훈 | 연출가. 공연 창작과 더불어 성미산마을극단 무말랭이 상임연출, 성미산동네연극축제 예술감독, 전국생활문화축제 총감독, 참여연대아카데미 시민연극워크숍 강사 및 연출 등 시민문화예술활동도 함께 해왔다. 지금은 창작집단 고릴라조합Go-LeeLa 대표로 활동 중이다.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공존의 시선으로 남북을 잇다>를 함께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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