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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20_5 김영환_친일청산과 역사정의의 실현으로 평화의 길을 열다

by 어린이어깨동무 2019. 11. 18.

[평화를 담은 공간-1]

 

친일청산과 역사정의의 실현으로 평화의 길을 열다
-민족문제연구소, 식민지역사박물관-

김영환

2018년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은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일본기업(일본제철)에 강제동원되어 강제노동 피해를 당한 원고들에게 역사적인 승소판결을 내렸습니다. 1997년부터 일본과 한국의 법정에서 자신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싸워 온 피해자들이 20여년의 기나긴 투쟁 끝에 마침내 승리한 것입니다. 대법원 판결은 국제인권법의 성과를 반영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명확히 하고, 식민지배와 직결된 강제동원·강제노동이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식민주의의 극복을 향한 첫 걸음을 내디딘 세계사적인 판결이라 할 것입니다. 아울러 냉전과 분단체제 아래에서 피해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강요한 ‘65년 체제’를 피해자들과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연대하여 극복한 역사적인 성과이기도 합니다. 

그로부터 1년, 해방 70여년이 지나도록 실현되지 못한 자신들의 인권회복과 정의의 실현을 고대해 온 피해자들의 기대는 처참히 짓밟히고 있습니다. 아베 정권은 한국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하고 사죄, 반성하기는커녕 ‘국제법 위반’을 운운하며 사법주권을 침해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으며, 피고 기업들에게 노골적으로 압력을 가하여 판결의 이행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경제규제와 노골적인 배외주의를 선동하여 일본 사회 전체를 ‘혐한의 광풍’으로 몰아넣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러한 ‘혐한의 광풍’ 속에서 재일조선인들은 일상적으로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고 있으며,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평화의 소녀상 전시 문제에서 드러나듯 역사왜곡과 혐한발언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는 언론 보도를 통해 일본사회 전체가 ‘재특회’처럼 되었다는 우려의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 이후 지난 1년 동안 악화의 한 길을 걷고 있는 한일관계는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의 역사가 아직도 청산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 ‘반일종족주의’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한국사회의 현실은 역사왜곡과 친일청산의 과제가 비단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현재 하루 빨리 청산해야 하는 한국사회의 과제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본의 극우세력과 뜻을 같이 하는 이러한 역사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은 식민지 지배의 피해를 극복하고 인간의 존엄을 실현하기 위해 한 평생을 싸워 온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노력을 모욕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1965년의 굴욕적인 한일협정에 분노한 고 임종국 선생은 친일문제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1966년 『친일문학론』을 비롯하여 친일파 관련 저작을 발표했습니다. 선생은 친일파의 행적을 자신의 손으로 낱낱이 기록한 1만 3천 장의 인명카드를 남기고 1989년 작고했습니다. 1991년, 임종국 선생이 남긴 뜻을 이어받아 민족문제연구소가 탄생했습니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2009년 선생의 인명카드는 친일파 청산을 열망하는 시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친일파 4,389명이 기록된 『친일인명사전』으로 태어났습니다. 

친일인명사전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문제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시민의 참여를 통한 역사문제의 대중화에도 힘을 기울여 적극적으로 역사왜곡을 막기 위한 실천운동을 벌여왔습니다. 박정희기념관 건립반대, 김활란상 제정 반대, 박흥식 동상 철거, 친일문학인상 반대 등 일제 잔재와 친일청산을 위한 실천운동과 함께 그동안 조명을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의 발굴,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강행된 뉴라이트 교과서 채택,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운동 등 역사정의를 실천하기 위한 실천운동을 꾸준히 이어왔습니다.

또한 민족문제연구소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과거사 문제의 해결을 위한 운동에도 앞장 서 왔습니다. 지난해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 낸 강제동원 소송의 사무국을 맡고 있으며, 야스쿠니신사 합사취소 소송을 비롯하여 한국과 일본의 법정에서 대일과거사 청산을 위해 일본의 시민사회와 연대하여 소송투쟁을 벌이는 한편 강제동원의 진상규명을 위한 연구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로 병합된 지 108년이 되는 2018년 8월 29일, 민족문제연구소는 ‘식민지역사박물관’의 문을 열었습니다. 식민지주의의 극복과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활동의 거점으로 마련된 ‘식민지역사박물관’은 강제병합의 역사, 민중의 입장에서 본 식민지지배의 실상, 한 시대를 다르게 걸어 온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대조적인 삶,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의 목소리, 그리고 과거를 극복하기 위해 함께 싸워 온 한일시민연대의 역사를 기록하고 전시하는 일제강점기 역사박물관입니다.

 

식민지역사박물관 입구
역사정의를 지키고 가꾸는 사람들

특히 ‘식민지역사박물관’은 민족문제연구소가 그동안 모아온 3만여 점의 역사자료와 4만여 점의 관련도서 외에도 재일동포를 비롯한 해외동포들, 한국과 일본의 수많은 시민들이 보내준 기증 자료와 성금으로 마련되어 순수하게 시민들의 힘으로 세워졌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습니다. 박물관의 입구에 들어서면 벽면을 가득 채운 ‘역사정의를 지키고 가꾸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밖에도 ‘3.1 독립선언서’ 초판본, 난징대학살에 가담한 일본군의 일장기, 남산에 세워진 조선신궁의 기록, 강제동원 피해자의 절절한 편지, 이광수, 최남선, 김성수, 김활란 등의 친일 행적, 친일인명사전 편찬의 역사, 한일시민연대의 기록 등을 보고 박물관을 나서면서 여러분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한국사회 곳곳에서는 분단과 냉전체제를 방패삼아 ‘반공’이라는 무기로 자신들의 친일행적을 숨기고 역사를 왜곡하는 세력들이 여전히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큰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2020년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창간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그들이 친일의 과오를 반성하고 사죄하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합니다. 친일잔재의 청산과 역사정의의 실현은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이 땅에 진정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길에서 우리가 내디뎌야 할 첫걸음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이 시민여러분과 함께 그 길을 열어가겠습니다.



김영환 ㅣ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 동아시아공동워크숍, 평화자료관·쿠사노이에(草の家), 평화박물관에서 평화운동을 했다. 동아시아 시민들이 국가와 민족의 벽을 넘어 이곳에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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