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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21_5 임요한_뜨겁게 뜨겁게 안녕

by 어린이어깨동무 2020. 2. 17.

[죄충우돌 교실이야기]

 

뜨겁게 뜨겁게 안녕   

 

임요한

 

2020년 2월. 학교는 바야흐로 인사의 계절이다. 누군가는 학교를 떠나고, 누군가는 학교에 새로 오고. 나도 딱 1년 전인 2019년 2월에 인사 발령으로 이곳에 왔다. 부임한 지 3년밖에 안 된 송도국제도시의 신송고와 쿨내 진동하는 작별 인사를 하고, 이곳 옹진군 영흥면 내리에 있는 영흥고로 와서 부임 인사를 했다. 인천광역시 교육청은 지난 2월 7일 2020학년도 중등교사 정기 전보 인사를 발표했다. 몇 분은 학교를 떠나시게 되었고, 또 그 자리에 새로운 분들이 오게 되었다. 학생들도 새로운 출발을 준비해야 한다. 고3들은 6년 간 정들었던 영흥중고를 떠나 이 섬 밖으로,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고, 우리 반 영흥고 2학년 2반도 곧 3학년 2반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나도 이들을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T.S.엘리엇은 4월이 잔인한 달이라고 그랬던가. 학교에서의 2월은 애틋한 달이다.

 

 

아이들과의 기억들을 떠올려본다. 3월 첫날 무뚝뚝하고 무서워 보이는 내 인상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던 아이들의 표정, 이후 수업이 진행되면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내 이야기에 웃음 지어 주기 시작한 모습들, 3월 내 생일날 깜짝 파티를 해주었던 것, 아직은 약간의 어색함이 남아 있던 시기에 함께 가서 서로 많이 친해지게 된 제주로의 수학여행, 1학기 중간고사 끝나고 같이 뭍에 나가서 영화도 보고 볼링도 치면서 즐거웠던 시간, 케이크 하나 가지고 매 교시 돌려쓰면서 들어오시는 선생님마다 불러드렸던 스승의 은혜 노래, 태권도 도복을 입고 했던 체육 대회, 그 태권도 도복 덕분에 받은 상금으로 한 한밤의 치킨 파티, 김수영 문학관으로의 문학 기행, 광장시장에서의 점심 식사, 식사 후 갔던 창경궁, 부여‧공주로의 첫 융합 답사, 1학기 기말고사 끝나고 캐리비안 베이에서 했던 물놀이, 여름 방학 때 십리포 해수욕장에서 했던 불꽃놀이, 2학기 중간고사 끝나고 갔던 전주‧군산으로의 두 번째 융합 답사,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모두가 완주한 영흥 챌린지 국사봉 트레킹, 말도 많고 탈도 많고, 투닥거리며 준비했지만 축제 때 가장 빛났던 우리 반 공연과 장사 잘 되었던 우리 반 카페 어디야 영흥점, 축제 뒤풀이 파티와 노래방에서의 광란의 밤, 2학기 기말 고사 끝나고 인제 백담사에 가서 갑자기 만난 눈, 온통 하얀 세상이었던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 고성에서 함께 바라본 북녘 땅, 대한민국 최북단 중국집에서 먹은 짬뽕, 2층 객석에 쪼르르 앉아서 난생 처음 직관한 뮤지컬 그리스. 1년 만에 너무도 많은 추억이 생겨버렸다. 늘 평화롭지만은 않았고, 등교 시간을 지키지 않아서 화가 난 적도, 조종례 시간과 수업 시간에 너무 소란스러워 싫은 소리를 한 적도,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잔소리를 퍼부어 댄 적도 있었지만 이제 와서는 그 모든 시간이 다 고맙고 소중하다.

 

 

성산일출봉에서

 

 

국사봉에서

 

김수영문학관으로의 문학기행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지난 1년을 함께 한 아이들과의 이별이 그 어떤 해보다 더 서운하게 느껴지는 것은 영흥도라는 낯선 섬에 처음 온 나에게 그들이 선사한 큰 감동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내 딴에는 오랜만에 하는 담임이기도 했고, 시내 학교와는 달리 적은 학급당 인원수로 유초중등을 쭉 함께 다녀서 형성된 가족적인 학급 분위기도 참 좋았다. 그러나 가장 좋았던 것은 ‘선생님, 제가 하겠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와 같은 이런 아름다운 말들을 이들은 나에게 참 많이 해주었다는 것이다. 흔하디흔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씁쓸하게도 지난 몇 년 간 학생들에게 참 듣기 힘들었던 말들이기도 하다. 실은 작년 연말 즈음 우리 학교 1, 2학년 학생들로부터 내년 담임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많이 받았다. 물론 학교 인사라는 것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업무 분장 희망원을 어떻게 작성할지 고민이 많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주변 선생님들로부터도 지금 반 아이들을 데리고 3학년으로 올라가서 대학까지 보내야 하지 않겠냐는 권유도 받긴 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나는 아이들만 3학년 2반으로 올려 보내기로 마음먹었고, 감사하게도 나는 내가 희망한 대로 지금의 자리에서 올라오는 2학년 2반을 맞이하게 될 것 같다. 겨울 방학이 끝나고 종업식까지 아이들과 마지막 한 주간이다. 아이들을 떠나보내기로 마음먹고 개학해서 다시 만난 이놈들이 왜 이렇게 사랑스러운지, 아침에 학교에 조금 늦어도, 조종례 때 지들끼리 마구마구 떠들어서 전달 사항을 전달하지 못할 지경이 되어도, 청소 좀 깨끗이 하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하는 둥 마는 둥 빗자루만 들고 왔다갔다해도, 이제는 화가 치밀어 오르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한 명 한 명 아이들과 작별 인사를 한다.

 

 

스승의 날

 

학기 초 반장 선거 때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아 공정한 선거가 될 수 있도록 해주었던 몸짱 범준, 전교부회장으로 늘 학교 행사에 열심이었던 깜멍 선웅, 우리 반 OO관리위원회 위원장 역을 가장 많이 해준 세상 착한 흰멍 선웅, 내가 주먹 하이파이브를 하자고 주먹을 내밀면 늘 보자기를 내밀면서 나를 이겨 먹었던 유쾌한 채영, 지난 호 피스레터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에 출연했던 국수 순삭 마술사 상민, 너무 믿음직스러워서 오히려 안쓰럽고 미안했던 우리 반 반장 소린, 내년에는 직업 위탁 과정에서 전기기술자의 꿈을 키울 인성이, 사장이라는 직함이 잘 어울리는 노래를 잘하는 백 사장 명열이, 몸이 약해서 자주 아팠지만 늘 성실하고 야무지게 자기 일 잘했던 은혜, 지난 3월에 나랑 같이 연수구에서 영흥면으로 새로 온 얼음 공주 시온이, 이쁜 짓 잘하고 애교가 많아 누나들이 좋아하는 연상 킬러 진우, 마냥 잘해주고만 싶었던 내 아픈 손가락, 감성파괴자 수민, 꿈에 대한 열정을 인정받아 전국 단위 장학생이 된 듬직한 우리 반 부반장 승민, 감각적인 스타일리스트가 될, 글씨체만 보면 전교 1등 예원, 음악도 잘하고, 영상도 잘 만들고, 분위기도 잘 띄우는, 별을 사랑하는 기범, 늘 신나고 즐거운 우리 반 분위기 메이커 하늘. 2019학년도 인천영흥고 2학년 2반, 내 아들만큼 소중한, 때로는 원수같이 밉다가도 때로는 잠든 아기마냥 사랑스러운 내 새끼들.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보고 싶었다. 영원히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며칠 후면 다시 수업 시간에는 만날 아이들인데도 마음이 이렇게 허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울러 작년부터 시작한 피스레터의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연재도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인사를 해야 한다. 국어를 전공했지만 워낙 독서량도 없고, 글 솜씨가 없다 보니 간혹 들어오는 이런저런 원고 청탁에는 늘 도망 다니기 일쑤였다. 국어 교사만 아니었어도 별 부담 없이 개발괴발 글을 써 보내기도 하였을 터인데……. 피스레터에 교실 이야기를 연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에도 고민이 좀 되긴 하였지만 내가 워낙에 어깨동무에 기여한 바가 없어서 망신당할 각오를 하고 졸필이나마 솔직하게 써서 보내면 알아서 잘 편집해주시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글을 보내 왔다. 그저 이것으로 어깨동무에 진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었으면, 또 우리 학교 아이들이 자신들의 이야기가 이런 좋은 매체에 나온 것에 대해 기뻐해 준다면 그걸로 만족하겠다는 마음으로.

 

결과적으로는 나에게 원고 청탁을 해준 어깨동무에 정말 감사한 일이 되었다. 피스레터를 통해 반 아이들과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아이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불러줄 수 있게 되었고, 아이들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몇 장이라도 더 남겨둘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피스레터 마지막 장에 실리는 내 글을 지나치지 않고 읽어주셨던 평화를 사랑하시는 많은 피스레터 독자님들과 원고 마감이 다가오면 내 글을 기다리는 독자들이 너무 많다며 칭찬 산삼인지, 독촉 채찍인지를 하사해주신 어깨동무 이성숙 팀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정답게 인사하고 이만 물러난다.

 

 

소중했던 날들이여 이젠 안녕. 또 새롭게 다가올 날들이여, 안녕?

 

 

 

임요한ㅣ인천영흥고등학교 국어 교사. 아이들에게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은 책 읽는 것보다 노는 것이 더 좋은 국어 교사. 여러 길 돌고 돌아 교사가 되었지만 아직도 자신이 무얼 잘하는지, 이다음에 뭐가 될지 궁금해 하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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