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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22_4 남동훈_평범한 동네 주민들의 연극배우 도전기 2

by 어린이어깨동무 2020. 5. 18.

[사람 사는 이야기, 연극]

 

무말랭이 연극 만들기

 

평범한 동네 주민들의 연극배우 도전기 2 

 

 

남동훈

 

 

강평회를 준비하며

 

공연이 끝난 뒤에 남는 건 무대 위의 정적만이 아니다. 사진이 남는다. 배우들의 눈빛과 몸짓, 공간을 가득 채웠던 빛과 소리들, 무대와 소품, 의상들을 한순간에 멈춰 세운다. 관객이 받은 인상들은 입에서 입으로, 일부는 짧게나마 정리된 글로 남겨진다. 무엇보다 연습과 공연의 매순간마다 촉발됐던 배우들의 생각과 정서들이 강렬하게 남는다. 손때 묻은 연습대본은 그 수명을 연장시켜준다. 이 모든 건 ‘기억’으로 집약된다.

 

강평회를 앞두고 연출로서 모두의 기억을 중심으로 공연을 돌이켜봤다. 주로 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며 어떤 방식을, 어떤 이유로 선택했었는지, 그렇게 해서 이룬 것은 무엇이고, 앞으로 계속 가져 가야할 건 무엇일까에 대한 것들이다.

 

 

공연이 공연에게 남긴 것들

 

먼저 우리가 하는 공연의 성격과 참여 방식에 대한 원칙과 공유가 필요했다.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동네 연극에 대해: 나는 연극으로 생활하는 사람이지만 무말랭이들은 생활하면서 연극하는 사람들이다. 절대 연극이 생활보다 우선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즐기려고 하는 연극이다. 그러니 연기도 생활하던 대로 하시라. 잘해야겠다는 부담감은 절대 갖지 말고.

 

- 공연 중 역할에 대해: 배우와 스태프의 구분은 없다. 모든 참여 배우는 공연 제작에 필요한 모든 스태프 역할을 각자의 관심과 특기에 따라 분담, 진행한다.

 

- 디자인과 제작에 대해: 무대, 조명, 의상 디자인 등 전문성 (디자인 컨셉과 설계)가 필요한 영역은 전문예술가와 협업 한다. 단 실제 제작은 모든 무말랭이들이 함께 만든다.

 

파스텔 ( 무대디자이너 박은혜님 ) 의 무대스케치와 디자인에 따라 무대를 제작하고 있는 무말랭이들

 

주요 작품과 배역선정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 작품 선정에 대해: 『오아시스세탁소습격사건』은 중심사건은 뚜렷했고,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연극의 주 공간인 세탁소와 등장인물들의 모양새도 친근했기에 일반인들이 접근하는데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인지 무말랭이에서 이미 독회를 했고, 창단 공연작으로 강력한 추천을 받고 있었다.)

 

- 배역 선정에 대해: 개인이 원하는 배역은 무엇인지 먼저 파악했다. 그리고 각자의 개성을 잘 발휘할 수 있는 배역을 중심으로 연출이 선정했다. 배우 수에 비해 등장인물이 많다 보니 성별과 관계없는 일인다역은 물론 젠더-프리 gender free 방식도 활용했다.

 

안미숙 역할의 구름 ( 남 ) 과 안경우 역할의 무지개 ( 여 ),  아들 강대 영 역할의 엘리 ( 여 )

 

* 성미산마을 주민들은 이름 대신 별칭(닉네임)을 쓴다.

 

- 연기에 대해: 연습기간 중 대학로에서 『오아시스세탁소습격사건』이 장기공연 중이었는데, 절대 관람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참고가 될 수도 있지만, 자칫 자신만의 빛깔로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연기가 아닌 기성연기의 단순 모방으로 흐를 가능성이 더 우려됐기 때문이었다.

 

결국 무말랭이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연극을 지속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느냐에 모든 제작의 기준들을 맞춘 셈이었다. 이 시도들은 모두 성미산마을극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무엇보다 중요했던 각자의 기억들

 

무엇보다 궁금했던 건 무말랭이들 각자의 리뷰였다. 무말랭이들 저마다 연극을 하기로 마음먹은 이유와 목표들이 달랐기에, 성취한 것들과 아쉬웠던 점들도 조금씩 달랐다. 물론 아쉬움보다는 성취감이 훨씬 컸고, 아난도가 그 핵심을 명확하게 정리했다.

 

“내가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에 대해서 그 누가 뭐라고 말을 해도 그냥 좋다. 적어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와 같은 느낌을 받았고, 나와 함께 호흡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에는 그리 좌우되지 않는 것 같다.”

 

20년 된 기다림의 주인공, 시작(별명이 시작임)은 어땠을까. 주로 다른 사람의 얘기들을 듣기만 했다. 다만 몇몇 무말랭이들의 들쭉날쭉했던 연습 참여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강평회가 끝나고 따로 전해 들었다. 단 한 번도 연습에 빠진 적 없이 완주한 그였기에 할 수 있는 얘기였다. 굳이 강평회 자리에서 꺼내지 않은 배려도 여전히 느낄 수 있었지만 생활하면서 연극 하는 사람들이란 걸 강조했던 탓일까, 싶어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모든 과정을 무말랭이와 함께했다는 거다. 홀로 존재할 땐 마냥 평범하기만 했던 사람들이 무말랭이라는 이름으로 무대 위에 섰을 때 이전과는 다른, 더 밝고 분명한 빛깔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난생 처음 무대라는 낯선 공간과 인물들 사이에서 어색하게 서성이다 남들도 모르게 울었을 각자만의 성장통을 앓아가며, 그렇게 삶처럼 인생처럼 따로 또 같이 말이다.

 

멍석 위에 올라가면 세상 흔하디흔한 무말랭이들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

 

문제는 다음이다. 아난도가 다시 말한다.

 

“그런데, 만약 이다음에 또 연극을 한다면, 그땐 그런 것들이 신경 쓰일 것 같다. 어떤 책임감도 생각해야 할 것 같고... 그래서 처음이 부담이 없고 좋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 뭐든 처음은 좋다. 중요한 건 계속한다면 어떤 책임감을 갖고 얼마나 충실하게 해나갈 수 있느냐다. 그렇다면 시작의 마음은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문득 어떤 책임감이 생기다

 

몇 주 뒤, 대학로에서 『오아시스세탁소습격사건』을 관람했다. 극장을 나오자마자 짱가가 “대사 템포만 빼면 우리 공연이 훨씬 좋네!”라며 싱글벙글 웃는다. 나 역시 맞장구치며 동의했지만, 마냥 웃을 일만은 아니었다. 대사 템포, 본질적으로 공연의 템포를 만들어내고, 자유자재로 조절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리듬과 템포야말로 모든 공연요소의 감각적 총화라는 점에서 거의 공연의 본질이 아닌가. 그런데 ‘템포만 빼고’라니.

 

하지만 세상을 다 가진 어린아이의 그것과도 같은 짱가 특유의 천진난만한 표정에 어찌 찬물을 끼얹을 수 있으랴. 어떻게 해야 템포의 중요성에 대해 상처받지 않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니, 설명할 필요도 없이 어떻게 본인들이 직접 공연을 통해 체감하게 할 수 있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결국 이렇게 다시 함께하게 되는구나, 앞으로 나는 어떤 책임감을 어떻게 짊어져야 할까 싶어서였다.

 

멍석 위에 올라가면 세상 흔하디흔한 무말랭이들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 .

 

 

남동훈 | 연출가. 공연 창작과 더불어 성미산마을극단 무말랭이 상임연출, 성미산동네연극축제 예술감독, 전국생활문화축제 총감독 등 시민문화예술활동도 함께 해왔다. 지금은 극단 고릴라 Go-LeeLa 대표로 활동하며 참여연대 아카데미 시민연극워크숍을 4년째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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