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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22_5 최관의_온라인 개학, 아이들이 먼저다.

by 어린이어깨동무 2020. 5. 17.

[좌충우돌 교실이야기]

 

온라인 개학, 아이들이 먼저다.   

 

최관의

 

코로나19로 아이들 얼굴을 보지도 못한 채 온라인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 목소리나 영상으로 근근이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어려운 상황이다. 온라인 개학! 이 상황에서 우리가 놓칠 수 있는 교육의 핵심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인터넷망, 컴퓨터와 관련기기, 콘텐츠, 콘텐츠 제작 기법,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다양한 최신 앱 등이 교사들에게 제공되고 있고 이런 주어진 환경과 자료를 활용해 수업을 구상하여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만 갖고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행정력과 예산 그리고 교사들의 열정을 쏟아붓고는 있으나 자칫 교육의 핵심을 놓치고 있지 않나 마음이 쓰인다.

대명초등학교에 근무할 때였다. 출퇴근 길목에 야생화 화원이 있었다. 퇴근하다 자주 들러 차 한잔하며 식물 키우는 이야기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하며 지냈는데 어느 날 오후 연세 지긋한 할머니 한 분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이 분은 윤기 흐르고 온갖 꽃망울을 맺고 있는 예쁜 것들은 놔두고 출입문 오른쪽 구석 버릴걸 모아 놓은 데를 기웃거렸다. 뭘 보시 나 했더니 줄기는 말라가고 잎이라고는 몇 개 없는 화분을 자세히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이거 얼마나 해요?” 
“화분이 필요하세요? 분갈이할 흙은 있으시고요?”
“분갈이한 지 얼마 안 돼 보이는데.” 
“시원치 않아 버릴 건데. 그럼 화분값만 받고 드릴게요.” 
“그럼 고맙지.” 
“사실 분갈이한 지 얼마 안 돼 거름은 넉넉할 겁니다.” 

예쁘게 잘 키운 꽃과 나무가 넘치는데 유독 그걸 키우겠다는 할머니 마음이 궁금해 물어봤다. 

“웬만한 걸 사다 키우시지 왜 꼭 그걸 키우려 하세요?” 
“자식들 다 키워서 독립시켰고 서방은 세상 먼저 떠났고. 꽃 키우는 재미에 사는데 저렇게 시원찮은 놈 가져다 키우는 재미가 너무 좋아요.” 
“손이 많이 가잖아요?” 
“다 죽어가던 가지에서 새잎 나고 무성해지는 거 보는 재미 그거 말로 못 해요. 자식 키우는 거 같아. 어떤 땐 눈물이 난다니까요.”

나는 할머니와 헤어진 뒤로 이날의 장면을 자주 떠올린다. 교실에서 보면 담임이나 부모의 손길이 많이 안 가도 혼자 힘으로 잘 성장할 힘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 대부분이라고 본다. 그런데 잠시만 마음을 덜 써도 생활이 흔들리고 뭔가 문제가 생기는 아이들이 있다. 유독 더 많은 섬세한 손길 이 가야 하는, 그러지 않으면 삶이 흔들리는 아이들이 있다는 뜻이다.

온라인 개학이라는 아무도 겪어보지 않은 이 상황에서 비대 면 수업을 하고 있다. 기기와 인터넷망과 프로그램에 의지해 만남을 이어가면서 수업을 한다. 담임은 아이의 몸과 마음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살피며 거기에 맞게 반응을 보이고 자극을 줘야 하지만 쉽지 않다. 부모도 일을 해야 하기에 아이만 집에 있거나 할아버지 할머니 또는 다른 분들을 모셔다 놓고 출근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학습 의욕이 강하거나 학습태도가 안정되어있는 아이들이 더 잘할 수밖에 없다. 누가 곁에서 제대로 부추겨주고 잡아주고 격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위에서 할머님이 시들시들한 식물을 사다가 키우는 장면을 떠올려 본다. 시들어간다는 것은 화분에 있는 영양분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걸 뜻한다. 몸에 좋은 온갖 영양분이 화분에 있건만 그걸 내 안으로, 내 몸으로 흡수할 힘이 부족하다는 거다. 이런 식물에겐 화분과 주변 환경을 활용해 건강하게 자랄 힘이 생기도록 도와주는 손길이 절실하다. 할머니는 그 역할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분이다. 어려운 고비만 넘어가도록 도와주면, 스스로 영양분을 빨아들일 어느 정도의 힘만 갖춰주면 가지에 물이 오르고 기운이 돌면서 잎이 돋고 무성해지기 시작한다. 혼자 살아갈 힘이 생긴 거다.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개학을 위해 정부에서 내려오는 지침이나 지원 방안은 인터넷망 설치, 컴퓨터 및 태블릿 PC 구입, 교사의 통신비 지원, 긴급 돌봄 예산 지원 등이다. 이건 교사가 비대면 상태에서 최소한의 교육활동을 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에 불과하다. 거칠게나마 온라인 개학이 이루어질 그런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고 수업 내용을 구성해서 운영하는 것은 학교 현장 구성원들의 몫이다. 이제 이런 기본 판 위에서 학교 현장의 담임이 어떻게 엮어내는가라는 핵심 과제가 남아 있다.

한 번도 겪어본 사례가 없는 상황에서 교사들은 앱과 프로그램을 활용한 수업 구상과 콘텐츠 제작에 힘을 쏟고 있다. 느닷없이 찾아온 코로나19 상황에서의 온라인 개학이지만 이런 교사들의 노력은 앞으로 교육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고 변화의 계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 기기와 프로그램을 활용한 온라인 수업이라고 하는 낯선 수업 진행 방법에 몰입하다 보면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 그것은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거나 수업내용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 하는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적극적인 상호작용이다.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그럴 수밖에 없는 심리적, 물리적 환경에 놓여 있는 아이들에게 마음의 힘을 주어야 하는데 이걸 놓칠 수 있다는 말이다.

아이들과의 첫 만남에서 교사의 마음이 아이에게 가 있는지 아니면 수업에 가 있는지에 따라 아이 가슴에서 움직이고 솟아나는 게 다르다. 수업은 아이의 성장을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수업내용을 조금이라도 최신 기법과 편리한 방법으로 알차고 재미있게 구성하는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새로운 기법을 배워 수업을 구상하고 제작하는 과정에 몰입하느라 정작 아이들의 힘든 상황을 놓친다면 수단과 목적이 뒤바뀌는 일이 벌어진다.

코로나19로 사람과 사람 사이가 끊어져 있다. 특히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 시기는 더욱 고통스럽고 위험한 상황이다. 비대면 수업이라 아이들 특성을 파악하는 게 어렵고 한계가 있지만, 이 특별한 상황을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마음에 어둠을 갖고있는 아이들을 위한 기회로 활용한다면 평소보다 더 큰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외롭고 심심해 학교생활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한 지금의 코로나19 상황을 역이용하면 어떨까. 격리되어 있다는 고립감에서 벗어나 선생님이, 학교와 사회가 나를 소중히 여기며 존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거다. 이 느낌은 아이가 스스로 배우고 성장할 힘을 만들어주는 바탕이 된다. 

온라인 개학의 목적은 나 자신을 가꾸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힘을 잃지 않도록 생활 흐름을 유지해주고 북돋아주는 것이다. 세상에 널려 있는 마음과 몸에 좋은 영양분을 스스로 빨 아들일 힘을 갖도록 곁에서 기다려주고 응원하는 것이다. 이것만 있으면 내가 어떻게 해보겠다고 할 때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도와주는 것 그것이 교사의 핵심 역할이다. 아이들이 선생님은 나를 외롭게 놔두지 않으며 존중하고 있다는 믿음 이 깊어지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온라인 개학의 초점을 기 기와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에게, 아이들에게 맞춰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온라인 개학식을 동영상으로 진행하고 있는 최관의 선생님


최관의  | 서울율현초등학교에서 교장으로서 아이들과 선생님, 학부모와 지지고 볶으며 살고 있다. 지은 책으로<열다섯, 교실이 아니 어도 좋아>(보리), <열일곱 내길을 간다>(보리)가 있으며, 월간<작은책>에 "교장일기"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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