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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25_5 강경구_나는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by 어린이어깨동무 2021. 3. 12.

[좌충우돌 교실이야기1]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강경구

 

“얘들아, 담임으로서 두 가지만 부탁할게요."
코로나19의 엄중한 상황 속에서 지난 2월 19일에 신입생 학교생활 안내를 하였습니다. 간단히 학교생활을 안내하고, 교과서를 나눠주고 나서 학급 담임으로서, 처음 고등학교 교실에 들어와 살짝 긴장하고 어색해하고 또 한편으로는 살짝 들뜬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얘들아, 담임으로서 두 가지만 부탁할게요. 이것만은 잘 지켜줬으면 좋겠어요. 하나는 지각이나 결석을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불가피한 경우에는 어쩔 수 없지만 시간을 잘 지켜서 지각이나 결석을 하지 말자는 말입니다. 다른 하나는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읽자는 것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라거나 잘하라는 말은 하지 않겠지만, 꾸준하게 한 달에 한 권씩 읽고 독서기록장을 쓰기로 합시다. 잘 들어줄 거죠?”

이 말을 하게 된 사연은 이렇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고된 일들이 많이 있지만,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힘든 일로 치자면 2학년 남자 문과반(이제는 계열을 없이 하니 문과반이라는 말이 불필요하지만) 담임일 것입니다. 지난 학교에서 세 번이나 2학년 남자 문과반 담임을 맡으면서 여러 가지 고민들이 많았는데, 세 번째로 2학년 문과 남학생 학급 담임을 맡으면서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그 많은 것들을 다 말한다고 학생들이 다 들어주고 기억해 줄 것이라는 생각은 접어두고, 생활과 관련된 말 하나와 학습과 관련된 말 하나, 두 가지 정도의 말은 들어주고 기억해 주겠지 하는 생각에 위의 두 가지 말을 맨 처음 만난 자리에서 학생들에게 간곡하게 말하였습니다.

내 마음을 잘 받아들여 주었는지(아니면 내가 학생들을 억눌렀는지) 우리 반 학생들은 지각, 결석도 다른 반에 비해 월등히 적게 하였고, 독서기록장은 가장 많이 제출한 여학생 학급에서 낸 독서기록장보다 더 많이 내어 학년 말에 독서 관련 대회와 시상에서 여러 학생들이 수상하는 성과까지 내었습니다.

이런 성과에 눈이 멀었는지 학교를 옮겨서 1학년 담임을 세 번째 맡으면서 학급 담임으로서 맨 처음 만난 학생들에게 이 말들을 부탁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정말 두 가지만 말한 걸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두 가지 말에 담긴 생각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지각이나 결석을 하지 말라는 말에는 생활 습관을 몸에 익혀 앞으로 사회생활을 할 때에도 흔히들 말하는 부지런한 사람이 되라는 생각과, 흔히들 말하는 학급 분위기를 좋게 하고 싶다는 소망, 거기다가 지각 결석의 연쇄 현상으로 학생들이 휩쓸리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들이 있었습니다. ‘공부를 잘 하지 않아도 좋지만’이라는 전제를 달면서 책을 꾸준히 읽으라는 말에는, 지금은 공부에 관심이 없다고 하면서 공부와 거리를 두고 있지만 언젠가 공부할 필요를 느끼게 되면 글자와 거리를 그래도 일정 정도 가까이 지내다 보면 공부를 다시 하게 될 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과, 좀 더 현실적으로는 학교생활기록부 독서 기록을 풍부하게 하여 대학 입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과, 그래도 책을 읽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꼰대 같은 생각 들이 들어 있는 말입니다.

과연 이러한 생각들을 담은 말이 적절한 말인가를 돌아보면, 지금도 여전히 흔들립니다. 무엇을 어찌 해보겠다는, 무엇을 어찌 해 보면 좋겠다는 뜻을 담은 말은 과연 적절한지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99일의 온라인 수업
이러한 고민은 학교생활기록부를 완성해 갈 때에도 비슷합니다. 작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학생들과의 관계 형성이 더 어려웠고, 그로 인해 학교생활기록부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을 쓰는 데 무척 애를 먹었습니다.

3월을 온라인 학습기간으로 보내고 4월 중순이 넘어서야 학생들의 등교가 이루어졌습니다. 모두들 조심하는 상황에다가 신입생이라는 처지, 거기다가 유난히 조용한 아이들이 모여 있어서 그런지 담임인 저는 물론이고, 수업을 들어오시는 선생님들마다 너무 조용하고 말이 없다는 말씀들이 대부분이셨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종례 시간에 아이들 기를 살리고 분위기를 끌어올리려고 다 같이 큰 소리로 “야~~~”하고 소리를 질러 보자고 제안한 뒤 ‘하나 둘 셋’을 하고 난 뒤에 소리를 지르기로 하였습니다. 잠시 후 하나 둘 셋 하고 난 뒤에 아이들은 아무도 소리를 지르지 않고, 저만 아주 큰 소리로 함성을 질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오고, 무안하기도 하고 그러네요.

대체로 학급 학생들은 3월이 지나면 서로 친해져서 분위기도 자연스러워지고 말들도 주고받고 했을 텐데, 작년에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이런 기회도 없었고, 아이들의 특성도 적지 않게 작용한 듯하고 해서 반응을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던 듯합니다. 그리고 학교 활동들이 이제까지 해 왔던 대로 이루어진 것이 거의 없어서 평소에 아이들의 생활이나 수업 시간 중의 활동들을 관찰할 기회가 매우 적어서 학교생활기록부의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을 작성하는 것이 매우 힘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교사들이 해마다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을 작성하면서 고민하는 부분은 비슷할 것입니다. 이 평가가 과연 학생들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기록하는지, 그리고 내가 학생들을 평가하는 관점은 적절한지, 그리고 이 평가기록을 대학 입시에 반영할 때 과연 교사의 평가가 아이들의 대학입시에 적절하게 반영되고, 교사가 기록한 뜻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하는지 등일 것입니다.

작년에는 학급 담임으로서 코로나 사태로 인해 99일의 온라인수업을 하게 되면서, 카카오톡 대화방의 라이브톡이나 투표, 줌, 문자메시지 등 다양한 방법으로 조회를 실시하였습니다. 수업도 실시간 화상수업부터 과제 제시형 수업, 콘텐츠 제시형 수업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실시했었고, 집에서 편하게 하다 보니 늦잠 자서 수업에 늦거나 빠지는 경우도 꽤 있었고, 거기다가 초상권에 대한 인식까지 높아져서 얼굴은 보여주지 않거나 아예 카메라를 꺼 놓고 수업을 듣는 경우까지 생기면서 온라인상에서 가까워질 기회도 적었고, 학교에 나와 대면 수업을 하는 경우에도 모두들 조심스럽다 보니 서로 대화하거나 함께 활동할 기회가 줄어들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학생들을 관찰할 기회가 적어 평가하기는 더욱 힘이 들었습니다.

그나마 자신이 정한 진로와 관련된 활동을 꾸준히 하거나 학교에서 실시하는 행사에 열심히 참여하는 학생들은 그 활동 내용에 대해 여러 가지를 평가할 수 있었지만, 그저 조용히 있는 학생들은 평가할 꺼리가 매우 적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을 평가하는 말에는 그 학생이 학교 생활하면서 보인 행동 특성이나 그 학생 자체의 종합적인 평가가 적절하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요?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요? 이제 내일 입학식을 하고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할 우리 학생들에게 나는 또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강경구 |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자신의 목소리와 글로 자신 있고 당당하게 드러낼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꿈꾸는 오금고등학교 국어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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