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31_5 김지혜_만나고 돌아보고 부끄럽게 다시 만나고

by 어린이어깨동무 2022. 8. 18.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1] 

만나고 돌아보고 부끄럽게 다시 만나고 

김지혜

 

때려놓고는 사랑한다는

 

주말 내내 불편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난 그 자리에서 무어라고 말했으면 좋았을까?

 

지난 금요일, 우리 반 아이들은 외국인에게 우리글이 왜 필요한지 알려주는 연극을 했다. 며칠 전에 초정리 편지라는 책을 함께 읽으며 한글이 없던 시대의 불편한 삶을 배웠기 때문에, 아이들이 한글의 필요성을 간단한 연극으로 표현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초정리 편지는 한글을 반포하기 전에 세종대왕이 평민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쳐준다는 판타지 역사 소설이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우리 반 어린이들은 이번에도 삼삼오오 꼬물거리며 연극 준비에 정성을 쏟는다. 그런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어서 교사는 국어() 9단원에 한글에 관한 글이 있으니 그것도 읽어보라고 조언을 한다. 다음날, 학교에 일찍 와서 부산스럽게 대본을 외우며 오늘 공연할 연극 연습을 하고 있으니, 그 마음만으로도 예쁘고 기특한 아이들이다.

 

완성도 있는 공연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들 스스로 한글의 필요성을 생각해보고, 표현할 것을 논의하여, 간단하게 몸으로 되짚어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공연을 본 교사는 심란해졌다. 6팀 중 4팀이 한글의 필요성이 아니라 한글의 우수성을 주제로 연극을 했기 때문이다. 교과서에 실린 한글의 우수성을 대본으로 적어와 줄줄 읽었다.

 

교사는 아이들이 주제에서 벗어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몇 가지 걸리는 지점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사태를 해결하는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 아이들 탓을 하고 만 것이다. 공연 후 피드백을 하는 자리에서 열심히 준비한 정성은 잘 알고 있지만 한글이 우수해서 우리글로 쓰는게 아니다, 한글이 필요한 이유는 과학적이고 우수한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왜 스스로 배우고 느낀 것을 자신있게 담지 못했냐, 교과서가 답이 아니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방향을 잃지 않는거다등등 장황한 잔소리를 해댔다. 이에 아이들과 글쓰기 후속 활동을 하나 더 했고, 무거워진 교실 분위기에 나는 내심 하루종일 미안했다. 평소보다 더 잘해주고 친절하려고 애썼지만, 이런 행동이 때려놓고는 사랑한다는’. 약한 자아를 형성하는 동시에 나에게 더 의존적으로 만드는 기술적 그루밍이다 싶어 괴로웠다.

 

공연준비와 공연하는 어린이들

 

그냥 심오한 꼰대

 

그 자리에서 연극이 잘못되었다 짚은 까닭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한글의 필요성을 우수성으로 대체하면, 우수함을 존재 가치로 왜곡하는 사고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나아가 뛰어난 자가 더 귀한 존재이며, 대접받아야 한다는 차별적 의식을 키울 수 있다. 두 번째로 교과서가 절대적 진리라는 믿음은 곧, 세상에 정답이 존재한다는 무의식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폐쇄적인 생각은 권위적인 사회와 억압된 자아를 키운다.

 

그러나 아이들은 말의 내용보다 교사가 보여주는 행동의 메시지로 더 많은 것을 받아들인다. 뜻이 심오하면 뭣하나. 아마 내가 행동으로 보여준 메시지는 열심히만 하지 말고, 교사가 원하는 정답을 내놓아라.’였으리라. 교과서가 정답이 아니라 교사에게 맞추어라를 가르쳤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 부근이 화끈거렸다. 가르침은 교사의 정체성에서 오고, 그 정체성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밝혀진다. 현재 밝혀진 나의 정체는 그냥 심오한 꼰대였다!

 

주말 이야기

 

사과를 해야겠다. 물론 진지하게 했던 말을 철회한다면, 교사에 대한 신뢰가 낮아질까 하는 우려도 들었다. 그러나 잘못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아주 작은 일이지만, 내가 살자고 말하는 내용만큼 살아내는 걸 아이들에게 보여주는게 교육이다. 또한 내가 약자인 상황으로 이 경우를 생각해보면, 예를 들어 학교장이 일을 시켜놓고 마지막에 교사가 방향을 잘못 짚었느니 어쨌느니 하면서 교사에게 잘못을 돌린다면, 후에 진지한 사과를 받아야 그 사람을 다시 신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월요일이 되었다. 월요일마다 우리반은 주말 이야기를 한다. 아이들의 주말이야기를 듣고, 나도 내 주말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실 선생님은 주말 동안 고민을 많이 했어요. 금요일에 우리 쌀들이 연극을 했었는데, 선생님이 여러분들이 주제를 잘 찾지 못했다고 뭐라고 했었잖아요. 그래도 우리 쌀들이 열심히 한건데 선생님이 그 수고로움을 미처 다 봐주지 못하고 너무 뭐라고 한 것 같아서 마음이 많이 불편했어요. 그리고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선생님이 애초부터 여러분들에게 주제를 자세하고 충분히 잘 안내하지 못한 탓도 있고, 중간에 괜히 교과서를 언급해서 혼란을 주었어요. 또 중간중간에 여러분들이 연극 준비하는 것을 봐 주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때 선생님이 바빠서 일을 한다고 여러분 준비를 충분히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선생님이 잘못한 것도 있는데 쌀들한테만 뭐라고 한 것 같아요. 앞으로는 여러분이 하는 것을 잘 봐줄게요.”

 

마치 설레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머뭇머뭇거리며 진지하게 사과를 하였다. 중간에 아이들의 눈빛이 바뀌는 것을 느꼈다.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말을 마치자 난데없이 어린이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쳐다보니 몇몇 어린이들의 눈시울이 붉다. 나도 눈물이 돌았다. 쑥쓰러워 꾸벅 인사를 했다. 세상에 사과만으로 풀리지 않을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단지 몇 마디의 사과로 많은 마음들을 돌려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아이들의 눈빛을 보니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어린이들은 모를거라 생각했는데, 사실 다 알고 있었다.

 

 

부끄러워도 다시 한번

 

교실 속에서는 보이는 모습보다 보이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그것들이 반복하여 뒤섞이면서 공동의 정체성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부모와 교사가 아이들에게 대하는 모습 그대로, 아이들은 서로와 자신을 대한다. 예를 들어, 공부를 잘하게 하려고 사회와 가정·학교가 경쟁 분위기를 조성하면 아이들은 남과 비교를 하고, 이기고 지는 것에 철저해진다. 무엇이든 열심히 경쟁적으로 하게 된다. 이런 철저한 분위기는 비단 공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아이들 간의 관계에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도, 각자의 마음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일이 한 해, 두 해 반복되면 개인의 정체성을 넘어 집단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많은 비판을 받는 2030세대의 공정논리는 사실 무한 경쟁을 부추기고 강자가 되어라 교육한 어른과 사회가 만들어낸 보편적 결과라 볼 수 있다.

 

이제 인간을 온통 산업 인력으로만 취급하는 렌즈가 곧 교실에 침투할 것이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로 학생들을 제작하라 요구할 것이다. 그러므로 교사는 어린이들에게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존재로서 내 마음과 생각과 행동을 가다듬어야겠다. 어느 순간 아이들을 산업 인력으로 보지 않도록, 어린이들에게 너희의 목표가 단지 인재가 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명력있는 자아의식을 가꾸어 주기 위해서 더욱 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나를 돌아보아야겠다. 그리고 잘못하면 덮어두지 말고 힘껏 되돌려야겠다. 부끄러워도 다시 한번.

 

 

김지혜 | '지혜네 노랑꽃집'(우리반 이름)의 한 구성원 '노랑꽃'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신념으로 오늘도 흔들리고 흔들리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것 보다 흔들리지 않는 것을 더 경계하며 살아가려 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