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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철32

피스레터 합본호(통권1호-7호) 평화를 보는 새로운 시선 합본호가 발간되었습니다. 2016년 7월 창간 시기부터 2017년 6월까지 발간한 통권1호~통권7호의 내용을 묶어 발간한 이번 합본호를 통해, 깊이 있는내용과 쉬운 글로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받은 글을 주제와 필자별로 보다 쉽게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합본호의 용량이 커서 분할하여 업로드 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2017. 8. 1.
피스레터 No7_2 정영철_20세기 마지막 전위 예술: 1,001마리의 소떼가 휴전선을 넘다 [시선 | 평화적 시각에서 재해석한 남북관계사] 20세기 마지막 전위 예술: 1,001마리의 소떼가 휴전선을 넘다 정영철 1998년 6월은 한반도의 뜨거운 여름으로 기억된다. 집념의 기업인이라 불리던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그 누구도 보여주지 못했던 20세기의 가장 멋진 퍼포먼스를 펼쳤다. 바로 자신이 애지중지 아끼던 ‘서산농장’의 소떼 500마리가 판문점을 거쳐 북으로 넘어가는 장면이었다. 이를 두고 프랑스의 기 소르망은 ‘20세기의 마지막 전위 예술’이라 이름 했고, 영국의 가디언지는 과거 미국과 중국을 이어주었던 ‘핑퐁외교’에 빗대 세계 최초의 민간 ‘황소외교’라 이름 했다. 이름이야 어찌되었든 500마리의 소떼가 판문점을 넘는 그 광경은 감동과 아름다움이었다. 서로가 총을 겨누고, 한 치의 양.. 2017. 6. 19.
피스레터 No6_2 정영철_이산의 아픔, 분단의 비극 [시선 | 평화적 시각에서 재해석한 남북관계사] 이산의 아픔, 분단의 비극 정영철 1983년 6월 30일은 이산가족 상봉의 역사에서 길이 기억될 만한 날이었다. KBS 텔레비전에서 한국전쟁 33주년을 맞아 편성한 특별방송 가 전파를 타고 첫 방송된 날이었다. 이 프로그램이 방송되자 전국의 생사를 모르던 이산가족들이 KBS로 몰려와 너도나도 가족을 찾기 위해 출연 신청을 하였다. 하여 원래 75분으로 기획되었던 프로그램은 그 해 11월 14일 새벽 4시에 10,189번째 상봉자가 만날 때까지 전체 기간 138일간의 역사적 드라마를 연출하게 되었다. 임시로 만들어 놓은 여의도 ‘만남의 광장’에는 애끓는 사연을 담은 가로 60cm, 세로 40cm의 벽보가 41,636장이나 게시되었다. 저마다의 사연을 담은 벽.. 2017. 5. 9.
피스레터 No5_2 정영철_구국의 이름으로 : 유신의 광풍과 반공의 나라 만들기 [시선 | 평화적 시각에서 재해석한 남북관계사] 구국의 이름으로 : 유신의 광풍과 반공의 나라 만들기 정영철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뒤, 온 나라가 통일의 열기로 들끓고 있던 시기, 박정희와 그 몇몇 측근들은 오랫동안 비밀리에 새로운 조치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시기 박정희는 동맹국 미국에 대한 배신감, 안보 위기, 그리고 60년대의 고도 성장이 한풀 기세가 꺽이고, 부정부패로 인한 거대한 사회적 스캔들 등으로 안팎의 위기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1971년의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예상 밖의 고전을 겪게 되었고, 이는 자신의 영구집권에 커다란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1972년 10월 17일 대통령 특별선언을 발표하면서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발동하였다. 일명 유신.. 2017. 5. 9.
피스레터 No4_2 정영철_남과 북, 처음으로 마주하다 : 7.4 남북공동성명 [시선 | 평화적 시각에서 재해석한 남북관계사] 남과 북, 처음으로 마주하다 : 7.4 남북공동성명 정영철 1972년 7월 4일 오전 10시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내외신 기자 107명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지난 5월 박정희 대통령의 뜻에 따라 평양에 다녀왔습니다”로 시작된 기자회견은 남북 분단의 70년사에 아로새겨질 거대한 전환의 한 장면을 연출했다. 같은 날 같은 시각 북한의 평양에서도 박성철 부수상이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었으니, 남북한 모두에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셈이다. 1950-60년대의 치열한 냉전이 점차 약화되더니, 닉슨 미국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하면서 열어젖힌 데탕트는 남북관계에도 심각한 변화를 강제하였다. 서로의 실체마저 부정하던 남북이 70년대 초, 이처.. 2017. 4. 25.
피스레터 No3_2 정영철_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4.19를 넘어 통일로 [시선 | 평화적 시각에서 재해석한 남북관계사]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4.19를 넘어 통일로 정영철 1960년의 4월은 핏빛 그 자체였다.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젊은 학생들은 자신의 몸을 희생하면서 부정의한 정권에 맞섰고, 이승만 정부는 이를 총칼로 틀어막고자 했다. 나이 어린 고등학생들, 그리고 대학의 교수들까지 집단적인 항거에 나선 4.19 혁명은 결국 이승만 정권의 하야로 끝을 맺었다.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의 승리를 알리는 최초의 역사적 장면이었다. 4.19의 열린공간은 남북의 분단 이후, 우리 역사에서 통일에 대한 논의가 백가쟁명식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진 시기였다. 이 시기에 대표적으로 제기되었던 통일논의는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은 폐기되었지만, 유엔 감시하.. 2017. 4. 24.
피스레터 No2_2 정영철_전쟁 후 첫 만남 [시선 | 평화적 시각에서 재해석한 남북관계사] 전쟁 후 첫 만남 정영철 중공군 포함 약 6백만 명의 인명을 앗아간 한국 전쟁이 마침내 끝났다. 불안한 정전상태이지만 전투행위는 중단되었고, 새로운 분단선인 휴전선이 그어졌다. 물론 전투는 끝났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정전협정이 조인된 후, 공산군과 유엔군은 포로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지속적인 만남을 가졌고, 나아가 정전협정에서 합의한 정치회담을 열기 위한 접촉을 시도했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지만, 정전협정 4조 60항에는 한국전쟁 이후 전쟁을 완전히 종식시키고 ‘한국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회담 개최가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전쟁 이후, 공산군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그리고 남한)은 정치회담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자연스레 정치회담.. 2017. 4. 24.
피스레터 No1_2 정영철_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기원하는 곳, 판문점 [시선 | 평화적 시각에서 재해석한 남북관계사]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기원하는 곳, 판문점 정영철 판문점, 어느 이름 없는 조그만 주막이 있던 마을이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한국전쟁 때문이었다. 일진일퇴를 거듭한 한국전쟁은 어느 누구도 압도적인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였고, 더 이상의 손실을 원치 않던 서로의 이해관계 속에서 휴전을 모색하였다. 2년여의 지리한 협상 끝에 타결된 정전협정은 단지 ‘당면의 전투-군사적 적대행위’를 중단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그래서 한국전쟁은 전투는 중단되었지만, 전쟁은 중단되지 못한 기이한 형태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 전투 중지에 서로 합의하고 서명했던 곳이 바로 판문점이다. 판문점이 지금처럼 군사분계선으로 구분되어 공동경비구역이 아닌 ‘분할’경비구역으로 .. 2017. 4.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