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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188

피스레터 No35_1 김성경_전쟁을 살아가는 것 [한반도 이슈] 전쟁을 살아가는 것 김성경(어린이어깨동무 이사・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평화는 상투적’ “놀러 온 김에 숙모 책 좀 읽어 봐줄래?” 출판사에 단행본 최종 교정지를 넘기기 직전, 소설가를 꿈꾸는 조카에게 슬쩍 원고를 내민다. 똑똑하고 예술적 감수성이 충만한데다 예술가들이 모여든다는 예술학교에서 서사 창작을 공부하고 있는 조카에게 마지막 점검을 받고 싶은 마음이 컸다. “북한 여자들이 이렇게 살았다니 놀라운 데요! 지금까지 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몰랐는데 신기해요.” 구성이나 가독성과 같은 글쓰기 전반에 대한 평가를 듣고 싶던 나에게 조카는 의외의 반응을 내비친다. “숙모가 북한에 대한 연구를 한다고 했을 때 도대체 뭘 하는 거지? 이런 생각을 잠깐 했었는데. 나도 제 또래 친구들도 북.. 2023. 8. 17.
피스레터 No35_6 주예지_틈 사이로 보는 건너편 세상 [한반도 평화교육 2] 틈 사이로 보는 건너편 세상 주예지 틈만 나면 작은 틈만 나면 나는 태어날 거야. 쑥쑥 자랄 거야. -『틈만 나면』, 이순옥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공원의 벤치 틈 속으로 비집고 올라오는 싱그러운 풀들과, 척박한 모래와 돌 틈에서 낑낑대며 피어난 작은 꽃들과, 단단한 쇠붙이 맨홀 뚜껑에서 용감히 솟아오르는 풀잎들이, 그것들이 마치 우리들의 모습이라면. ◎ 사이프러스에서 귀한 분이 오셨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 한반도'라는 문구를 접했던 어렸을 적 기억이 꽤나 충격적이었던지 다른 분단국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늘 새롭다. 사이프러스는 그중에서도 더 생소한 나라이다. 이름조차 낯선 그곳에서 온 평화활동가라니. 게다가 초등학교 교사라니. 만나기 전부터 묘한 동지애가 꿈틀거렸.. 2023. 8. 17.
피스레터 No35_7 최관의_아이들이 기획하고 엮어가는 공연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아이들이 기획하고 엮어가는 공연 최관의 “공연 기획하는 일 해보고 싶은 사람?” “그게 뭔데요?” “연예기획사라고 들어봤지?” “SM, JYP 이런 소속사요?” “맞아요, 맞아. 샘이 요즘 가만히 보니까 공연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더라고. 우리 6학년에. 그 사람들이 공연할 자리를 만들어주는 거지.” “기획하는 사람들이 공연하는 건 아니지요?” “그렇지. 공연하기 좋도록 도와주는 거야. 공연할 장소 구하고 방송시설 정비하고 영상이나 음향 틀어주고, 관람하기 좋게 도와주는 일만 하면 돼. 영상 찍고 편집도.” 눈빛을 보니 관심있는 애들은 있는데 머뭇거린다. “다들 학원이다 뭐다 바빠서 쉽지는 않을 건데 틈틈이 시간 되는 사람이 조금 더 하면 돼. 하다보면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힘.. 2023. 8. 17.
피스레터 No34_1 김영환_'사죄'에 대하여 [한반도 이슈] ‘사죄’에 대하여 김영환 “동은아, 고등학교 때 네가 매우 고통스럽고 슬픈 일을 겪은 것에 대해 마음이 아파.” 지워지지 않는 학교 폭력의 상처와 피해자의 끈질긴 복수를 다룬 화제작 ‘더 글로리’의 한 장면을 상상해 본다. 가해자인 연진이가 피해자인 동은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면 동은이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연진이의 진심 어린 사죄를 받았다며 처절한 복수를 멈추었을까? 지난 5월 7일 한국을 찾은 기시다 총리의 입에 비상한 관심이 쏟아졌다. 기시다 총리는 한국 정부가 그토록 목매어 기대하는 ‘성의 있는 호응’을 밝힐 것인가에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웠다. “윤 대통령의 결단으로 3월 6일 발표된 조치에 대한 한국 정부의 노력이 진행되는 가운데 많은 분이 과거의 아픈 기억을 잊지 않으면서도 .. 2023. 5. 18.
피스레터 No34_2 이주영_어린이 해방 선언 100주년의 의미와 오늘의 과제 [평화 이슈] 어린이 해방 선언 100주년의 의미와 오늘의 과제 이주영 1999년 ‘새 천년 어린이 선언’ - ‘어린이 평화 선언’ 2023년 5월 1일, 어린이 해방 선언 100주년을 맞이하는 기념행사가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주변에서 열렸습니다. 어린이문화연대와 함께하는 약 300여 어린이 관련 단체와 어린이를 포함한 시민 약 2,000여 명이 참여했습니다. 100년 전 1923년 5월 1일, 일제침략자들 탄압 속에서도 두 가지 뜻깊은 행사가 열렸습니다.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열린 노동절 기념행사였고, 또 하나는 1922년 5월 1일 천도교소년회 창립 1주년 기념으로 선포한 어린이날 첫 돌을 맞이하여 소년운동협회(회장 방정환) 이름으로 어린이 해방 선언을 발표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이라는 이름으로.. 2023. 5. 18.
피스레터 No34_3 김경민_나도 5·18 피해자입니다 [문학으로 읽는 나의 평화감수성] 나도 5·18 피해자입니다 김경민 5・18 최루증 이 글을 쓰는 오늘은 세월호참사가 일어난 지 아홉 해 째 되는 날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봄날의 풍경은 어제와 다름없는데, 아니 잔뜩 흐렸던 어제보다 더 화창한데, 마음은 더 무겁다. 무거운 마음으로 다음 날 할 수업을 준비하려고 펼쳐 든 소설은 하필 더 무거운 내용이다. 수업이 4·16 다음날인 것을 알고 선정한 텍스트이기에 ‘하필’이라기보다는 ‘마침’이 더 어울리겠다. 소설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와 세월호를 동시에 떠오르게 하는⎡몰:mall:沒⎦, 그리고 그 소설이 실린 소설집 제목은 『기억하는 소설』. 5·18에 관한 글을 쓰려고 앉아 4·16을 떠올린 것은 단지 오늘이 4월 16일이어서만은 아니다. 적어도 내게 있어.. 2023. 5. 18.
피스레터 No34_4 데이빗 벤바우_이 밤이 끝나기는 할까? [여우굴에서 온 편지] 이 밤이 끝나기는 할까? 데이빗 벤바우 여우굴에서 다시 긴 밤을 보낸다. 밤마다 DMZ 철책선 근처 여우굴에 앉아 있노라면 나의 생각은 천릿길을 헤맨다. 깜깜한 데서 아홉 시간을 앉아 누가 나를 죽이러 오지 않는지 살피고, 듣고, 냄새를 맡는다. 그러다 보면 졸리고 때로는 겁이 나고, 늘 긴장이 되고 신경이 곤두선다. 지금은 지루하고 불안하다. 그래도 이곳에서는 바쁜 것보다는 지루한 것이 낫다.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물을 한 통만 가지고 왔다. 더 가져왔으면 좋았을 텐데. 포도 맛 쿨에이드를 물에 탔다. 야전 식량으로 나온 복숭아 캔이 있지만 야식으로 남겨둘 참이다. 주스를 마시고 복숭아 조각을 먹으면서 새로운 날로 달력이 바뀌는 걸 축하해야겠다. 그런데 이곳 모기는 방충.. 2023. 5. 18.
피스레터 No34_5 박종호_세 번째 코리밀라 방문, 사과나무 두 그루 [한반도 평화교육] 세 번째 코리밀라 방문, 사과나무 두 그루 박종호 언덕 위에 오밀조밀하게 지은 집들이 모여 있고, 텃밭에는 직접 기르고 가꾼 채소들이 자라고 있다. 토끼와 닭, 소도 어슬렁거리면서 집 주위를 돌아다닌다. 저 언덕 아래는 파란 바닷물이 흐르고 있고, 저 건너 멀리 보이는 곳은 스코틀랜드인가, 먼 옛날에는 수영을 해서 건너다녔다고 한다. 코리밀라 공동체,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달려야 하는 밸리캐슬에 있다. 이 공동체에 2017년 겨울, 2019년 겨울에 어깨동무 평화교육 연수로 방문하고 2022년 이번에는 여름에 다시 찾았다. 당신은 도대체 왜 그리 먼 곳까지 가는가? 질문을 바꾸어 묻자. 나는 코리밀라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가? 세 번씩이나 가서 얻고 싶은 .. 2023. 5. 18.
피스레터 No34_6 최관의_우리는 껌부 사이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우리는 껌부 사이 최관의 관샘! 우리 봐요! 6학년 115명에는 마음 쓰이는 아이들이 반마다 서너 명씩 있다. 조금 깊이 따지고 들면 마음 쓰이지 않는 아이는 없지만 어지간한 아이들은 이리저리 알맞게 흔들리면서 클 거라는 믿음이 있다. 마음이 쓰이지만 다른 반 아이들이라 늘 곁에서 뭔가 교육적인 자극을 주기는 어렵다. 만날 때마다,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붙잡고 말을 건다. 수업 시작하고도 교실에 들어가지 않고 교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세 녀석이 있다. 교실에서도 수업 흐름을 방해하고 분위기를 흔들어 담임으로 하여금 머리 아프게 만드는 아이들이다. 한 번은 비가 제법 쏟아지는 점심시간에 밥을 먹다 창밖 운동장을 보니 세 녀석이 일을 벌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화단에.. 2023. 5. 18.
피스레터 No33_1 이기범_절망에서 평화의 희망을 빚어내는 대화 [한반도 이슈] 절망에서 평화의 희망을 빚어내는 대화 이기범(어린이어깨동무 이사장) 이탈리아에 ‘죽어가는 도시’가 있다. ‘치비타 디 바뇨레지오’라는 도시인데 크기가 워낙 작아서 마을이라고 보는 것이 옳겠다. 에투리아 사람들이 외부 공격을 방어하려는 목적으로 2500년 전쯤에 바위산의 깎아지는 절벽 위에 만든 마을이다. 그 마을을 죽어가는 도시로 부르는 이유는 지반이 약해서 침식과 산사태가 자주 일어나고 마을이 점차 깎여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은 그 이름을 거부한다. 대신 ‘살려고 온 힘을 다하는 도시’라고 부른다고 한다. 온 마을 사람들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마을을 고치고 살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있다. 절망이 몰아치는 절벽 끄트머리.. 2023. 2. 16.
피스레터 No33_2 심은보_코리밀라에서 함께 한 Nurturing Hope Summer School [한반도 평화교육] 코리밀라에서 함께 한 Nurturing Hope(희망 가꾸기) Summer School 심은보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홀로 산책을 했다. 그러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서 있는 십자가 앞에 섰다. 하늘 높이 우뚝 솟아 있는 십자가가 아니라 땅에 튼튼하게 자리 잡고 있는 십자가였다. 발 딛고 선 땅 위에 튼튼하게 자리하고 있는 이 십자가를 마주하며 나는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곳’에 대해 생각했다. 또 내가 발 딛고 선 곳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평화를 이야기하는 일도 하늘 위에 솟아 있는 게 아니라 땅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저 십자가와 같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전히 진행형인 코로나-19를 뚫고 내가 아직은 .. 2023. 2. 16.
피스레터 No33_3 역사를 통한 평화 만들기_강화 평화마을 이야기 [기억과 평화] 강화 평화마을 이야기 역사를 통한 평화 만들기 강화지역 민간인학살과 갈등문화 확대 한국전쟁 당시 강화에서는 최소 1천 명 이상의 주민들이 세 차례에 걸쳐 집단 희생되었다. 첫 번째로 인민군 후퇴 시기인 1950년 10월 초, 약 70명의 주민들이 내무서원(사회안전원) 등에 체포되어 강화군 양사면 인화리 인화성과 개성 송악산 등지로 이송되어 학살되었다. 내무서(사회안전기관)는 각 면의 분주소와 민간인 치안대가 체포한 약 3백 명의 주민들을 강화읍 산업조합 등지에 구금한 후 이들 중 일부를 인화성 등지로 이송한 후 학살한 것이다. 두 번째, 10월 초부터 12월까지 부역혐의로 경찰과 민간인 자치치안대에 의해 체포된 주민 수백 명이 강화읍 경찰서, 각 면 지서 등지에 구금되었다가 이 중 3백여.. 2023. 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