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피스레터188

피스레터 No33_4 데이빗 벤바우_방탄조끼 [여우굴에서 온 편지] 방탄조끼 데이빗 벤바우 다음은 제가 DMZ의 경험을 생각하며 1995년에 쓴 시입니다. 방탄조끼 은백색 싸구려 사물함이 그의 1969년 주소로 배달됐다. 파병 기간이 끝이 나서 전역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으므로 우편료는 미군 본부가 부담했다. 사물함을 열어보니 예전에는 헐렁했지만 이제는 작아져버린 카키색 바지와 셔츠 그리고 보이스카우트 배지같이 생긴 훈장과 리본 같은 개인 물품이 보였다. 녹색의 잡동사니들, 초록 양말 아홉 켤레, 헤진 속옷, 손가락 없는 양모 장갑, 낡은 천막 반쪽, 허름한 판초 우의와 위장용 병장 계급장이 붙은 야전잠바도 보였다. 잠바 어깨에는 인디언 헤드 부대 마크, 가슴에는 임진 정찰대 약장이 붙어 있었다. 사물함 안에는 래커를 칠한 작고 검은 나무 상자 두 .. 2023. 2. 16.
피스레터 No33_5 최관의_철민이와 노마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1] 철민이와 노마 최관의 2022학년도 2학기는 내게 특별한 시기였다. 내부형 교장 임기 4년을 마무리하고 9월 1일 자로 이수초등학교에 발령받아 3, 5학년 체육교과를 했다. 4년 전 4학년 담임에서 교장으로, 다시 교사로. 역할이 바뀜에 따라 거기에 맞춰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해야 했다. 주변은 잠시도 적응할 여유를 주지 않았고 나는 빠르게 그 역할에 맞게 행동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경계인, 이 쪽도 저 쪽도 아닌 경계선에 서 있는 나는 경계인이다. 이제 1년 뒤 정년퇴임이라는 또 다른 변화가 기다리고 있다. 변화가 두렵다거나 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게 다가오는 것이 곧 나다.’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려 하지만 쉽지는 않다. 경계선에 서서 홀로 내 나름의 길을 .. 2023. 2. 16.
피스레터 No33_6 주예지_안녕, 친구야!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2] 안녕, 친구야! 주예지 안녕, 친구야! 어린이어깨동무 회원이라면 무척이나 친숙한 인사말로 시작해 본다. 특히나 어린이어깨동무 행사에 참여해 본 적이 있는 회원이라면 ‘안녕, 친구야!’를 외치며 손바닥을 얼굴 옆으로 내보이고 활짝 웃은 단체사진 몇 개쯤 있을 것이다. 같은 눈높이에서 환대해주는 순수함과 해맑 음, 무언가 우리가 좋은 관계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과 정겨움을 풍기는 인사말이다. 어느덧 2022년 평화상상나래 동아리 활동이 끝이 나고 방학을 맞았다. 동아리 마지막 활동일이 11월이라 그런지 마지막이라는 아쉬움이 덜 났더랬다. 한 해 동안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평화를 향한 상상의 날개를 펼쳤느냐고 감히 물어보기가 겁나서 은근슬쩍 평화선언문을 작성해 보자고 .. 2023. 2. 16.
피스레터 30호 (통권 32호) [한반도 이슈] 정영철 ㅣ 짙어지는 위기, 다시 평화 [음식의 눈으로 읽는 북녘] 김양희 ㅣ 인민들에게 맛있는 외국음식을 공급하라 [여우굴에서 온 편지] 데이빗 벤바우 ㅣ DMZ 여름밤의 기억 [기억과 평화] 임재근 ㅣ 볕으로 나온 뼈들이 말을 한다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최관의 ㅣ원반 놀이 모둠 짜는 건 너무 어려워! 주예지 ㅣ포근한 스웨터. 곶감. 살랑살랑 [살아가는 이야기] 김지혜 ㅣ 마음껏 슬퍼하고 울어도 된다 2022. 11. 18.
피스레터 No32_1 정영철_짙어지는 위기, 다시 평화 [한반도 이슈] 짙어지는 위기, 다시 평화 정영철(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 소장) 평화가 위협받고 있다 그래서 다시, 평화이다 애써 쌓아온 한반도 평화가 지난 5개월 사이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지난 2018년 남북이 합의한 ‘9.19 군사분야 공동합의서’는 누가 먼저 합의를 파기하느냐의 문제만 남았을 뿐, 사실상 사문화되고 있다. 이를 넘어 남북이 서로를 향해 더 센 미사일을 가지고 있다며 자랑하기에 바쁘다. 여기에 더해 상대방을 완전히 무력화시킬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며 그 힘을 과시하기에도 바쁘다. 사실, 한반도는 이미 서로를 완전히 파괴할 수 있는 능력과 무기가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남북의 폭주를 제어할 아무런 장치도, 주변국의 손길도 찾아보기 어렵.. 2022. 11. 18.
피스레터 No32_2 김양희_인민들에게 맛있는 외국음식을 공급하라 [음식으로 읽는 북녘] 인민들에게 맛있는 외국음식을 공급하라 김양희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 최근 북한의 어린이 유튜버가 유창한 영어로 북한 곳곳을 알리는 동영상을 올려 주목을 받았다. 11살 송아라고 자신을 소개한 어린이가 평양의 대표 명소인 문수물놀이장에 있는 파도풀, 미끄럼틀을 비롯, 정구장, 암벽체험장 등을 소개하기도 하고, 하교길 길거리 매대에서 빙수를 사 먹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북한에서는 일반 주민들에게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인터넷 접속이 허용되지 않아, 만들어진 이미지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현재 북한의 모습 일부를 볼 수 있기에는 충분하다. 북한에서 김정일 시대에는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살자’, ‘오늘을 위한 오늘을 살지 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을 살자’라는 구호를.. 2022. 11. 18.
피스레터 No32_3 데이빗 벤바우_ DMZ 여름밤의 기억 [여우굴에서 온 편지] DMZ 여름밤의 기억 데이빗 벤바우 어느 봄날 밤, 내가 여섯인가 일곱 살이었을 때 밤에 자다가 깬 적이 있다. 바람이 불고 있었고, 2층 침실 창문을 통해 어두운 뒤뜰을 바라보고 있었다. 울타리를 따라 심어진 노란색 개나리꽃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결에 그림자들이 춤을 추었다. 갑자기 무서워서 아버지를 불렀고, 잠옷 바람으로 오신 아버지는 창가에 앉으셨다. “아빠, 뒤뜰에 사람들이 있어요. 울타리 옆을 걸으면서 얘기하는 게 보이세요?” 내 말에 아버지는 “그냥 개나리 줄기가 바람에 흔들리는 거야.” 하고 대답하셨지만, 나는 “깜깜한 밤이 무서워요.”라고 말했다. 아버지가 “낮에 뜰에 없었던 것은 저녁에도 없어.”라고 안심시켰기 때문에 나는 마음이 놓여 침대에 누워 다시 잠이 들.. 2022. 11. 18.
피스레터 No32_4 임재근_볕으로 나온 뼈들이 말을 한다 [기억과 평화] 볕으로 나온 뼈들이 말을 한다 - 골령골 민간인 학살 사건 유해 발굴 이야기 임재근 표정.. 땅속 뼈들이 말하고 있다 표정은 마음속 감정이나 정서 등이 얼굴에 드러난 모양을 말한다. 표정은 입술이나 주름 등 피부를 통해 만들어 낸다. 그런데 피와 살이 흙 속으로 되돌아가고 단단한 뼈들마저 삭아 버렸지만, 산내 골령골의 차갑고 어두운 땅 속에서 흙을 뚫고 나온 두개골을 보고 있노라면 표정이 느껴진다. 고통스런 표정 또는 분노하는 표정이다. 대전 산내 골령골은 한국전쟁 당시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20여 일간 법적 절차 없이 충남지구CIC, 제2사단 헌병대, 대전지역 경찰 등에 의해 대전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원 등 최소 1,800명 이상, 최대 7천여 명의 민간인들이 집.. 2022. 11. 18.
피스레터 No32_6 주예지_포근한 스웨터. 곶감. 살랑살랑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2] 포근한 스웨터. 곶감. 살랑살랑 주예지 가을 단어들 박하은 가을이 왔다. 단풍. 겨울의 시작. 옥수수. 도토리 아직 남은 여름의 싱그러움. 가장 기분 좋은 계절 은행나무. 떨어진 은행들. 예쁜 노을 포근한 스웨터. 곶감. 살랑살랑 달! 머릿속에 가득 가을다운 나뭇잎을 밟아보자. 단풍들을 밟아보자. 만져보자. 느껴보자. 맞아보자. 뭉개보자! 가을이 왔다. 이토록 설레는 첫 문장이라니. 시험 기간에 지친 아이들을 위해 쉬어가는 시간으로 황인숙의 이라는 시를 패러디하는 활동을 했더니, 한 아이가 가을 내내 두고두고 읽고 싶은 시를 선물해 줬다. 포근한 스웨터. 곶감. 살랑살랑. 자꾸 소리 내어 말하고 듣고 싶은 구절이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가을 바람은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까? 9.. 2022. 11. 18.
피스레터 No32_7 김지혜_마음껏 슬퍼하고 울어도 된다 [살아가는 이야기] 마음껏 슬퍼하고 울어도 된다 김지혜 얼마 전, 우리 반 모두가 청천벽력 같은 일을 겪었다. 교실 한 가운데가 커다란 흙구덩이로 뭉텅 꺼져 버린 느낌이었다. 눈앞이 깜깜한지, 머리통이 깜깜해진 건지, 세상이 어둠으로 덮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3시까지 교실에 남아 나와 같이 시를 썼던 한 아이가 갑작스레 하늘의 별이 되었다. 빨간 패딩에 새하얀 얼굴을 드러내고 배시시 웃던 아이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선생님’ 부르고 슬쩍 내 눈치를 보던 조그마한 아이의 책상에는 한동안 국화꽃과 편지와 생전에 좋아했던 간식들이 가득 올려져 있었다. 믿기지 않았지만 현실이었고, 우리는 추모를 해야 했다. 이 일을 숨겨 아이들에게 돌아갈 충격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어른들이 속인다고 해서 아이들.. 2022. 11. 18.
피스레터 No31_1 김영환_한일관계의 파탄, 수백조 원의 비즈니스 기회, 그리고 ‘99엔’ [한반도 이슈] 한일관계의 파탄, 수백조 원의 비즈니스 기회, 그리고 ‘99엔’ 김영환(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로 강제 동원되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지 못한 채 온갖 노동을 강요당했던 피해자인 원고들은 정신적 손해배상을 받지 못하고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정신적 고통을 지나치게 가볍게 보고 그 실상을 조사·확인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채 청구권협정을 체결한 것일 수도 있다. 청구권협정에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에 관하여 명확하게 정하지 않은 책임은 협정을 체결한 당사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것이고 이를 피해자들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 201.. 2022. 8. 18.
피스레터 No31_2 김양희_북한이 민족음식을 강조하는 이유는? [음식으로 읽는 북녘] 북한이 민족음식을 강조하는 이유는? 김양희 ‘버드나무 잎이 코로나를 예방한다?’ 북한이 최근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주민들의 코로나 예방법으로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민간요법을 장려해 눈길을 끈 바 있다. 북한에서는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1호 약품들까지 동원해야 할 만큼 의약품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2년여 동안 국경을 폐쇄하고 무역을 최소화하다 보니 일반적인 물자들도 부족하지 않다면 그것이 이상할 정도로 북한은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노력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등을 통해 코로나19를 예방하기 위해 ‘금은화를 한 번에 3~4g씩 또는 버드나무 잎을 한 번에 4~5 g 씩 더운물에 우려서 하루.. 2022. 8.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