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레터(글)2019.02.20 00:54

[시선-한반도 평화읽기]


코리밀라 공동체에서 보낸 꿈같은 시간

평화는 만남과 용기두려움을 감소시키는 행동

박종호


북아일랜드에 온 지 셋째 날, 115, 코리밀라에 가는 날이다. 나는 20172월에도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 연수에 참여하여 이곳에 온 적이 있다. 두 해 만에 다시 가는 길, 그 사이에 얼마나 바뀌어 있을까, 내가 알아 볼 사람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틀 밤을 묵을 준비를 하면서 짐을 꾸려서 버스에 탄다. 모두 열여섯이 함께 움직이는 터라 부산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버스는 벨파스트를 벗어나 밸리캐슬로 달려간다. 한 시간 반 정도 달려서 코리밀라에 도착하자, 데릭 윌슨 박사, 포드릭 오투마 대표가 반갑게 맞아 준다. 데릭은 서울에 오셨을 때 파주 북한군 중국군 묘지에 같이 간 적이 있는데, 그때를 기억하면서 반가워해주셨다. 어깨동무와 인연이 깊은 자원봉사자 오진의 선생도 반갑게 만났다.

 

짐을 풀고, 등 뒤로 바다가 보이는 큰 방에 나는 그 때 그 자리에 다시 앉아서 포드릭과 인사를 나누었다. 포드릭은 코리밀라의 역사를 찬찬히 소개하고, 둘레를 돌아다니면서 공간에 대한 사연을 풀어놓는다. 이곳에 평생을 바친 봉사자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정원, 우리가 머무는 곳의 벽에 걸린 자전거 그림에 얽힌 사연을 들으면서 코리밀라 공동체가 걸어 온 길이 그저 그런 시간이 지나가서 쌓여 온 곳이 아니고 열정과 헌신, 지치지 않고 느리지만 목표를 향해 걸어 온 이들의 땀과 기도가 일군 곳임을 알았다.

 

코리밀라(Corrymeela) 공동체는 북아일랜드의 혼돈과 대립, 갈등의 시기에 젊은이들이 서로 다른 이들과 만나서 풀어가는 공간을 마련하는데서 출발하였다. 경치가 좋은 곳에, 바깥에서 일정하게 분리 고립된 곳에서 만남과 대화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그 환경이 주는 이점을 살리고, 이를 공간을 가꾸고 만드는 일에도 어김없이 실현하고자 한다.





포드릭은 강의를 시작하면서 바로 우리들에게 돌아가면서 이곳에 와서 지금 마음에 어떤 질문을 품고 있는지 나누자고 한다. 이 공간에 와서 무슨 궁금한 것이 생겼나? 잠깐 생각하고 나는 차례가 되자 두 해 전에 이곳이 왔을 때는 바다가 보이는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만 들었는데, 오늘 다시 와서 둘러보면서 이곳에서 꿈을 이루고자 애쓴 분들의 뜻이 곳곳에 스며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제 벨파스트에서 북아일랜드 평화프로세스 이야기를 들으면서 평화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심지어 북아일랜드 평화프로세스를 지원하는 경제 지원 프로젝트 제목이 ‘Peace’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평화가 돈이라는 점에도 신기하고 놀랐다. 정말 내가 아는 평화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내 이야기를 종이 칠판에 적은 데릭 윌슨은 “WHAT IS PEACE?”라고 적었다.

 

자유에 대해, 공부에 대해, 관계에 대해 같은 물음이 이어지고, 큰 종이 두 장에 가득 질문을 적은 뒤에 포드릭은 찬찬히 이야기를 이어간다. 사람이 만나는 것은 내러티브가 만나는 것이고, 갈등도 그대로 내러티브에 반영되어 나타난다. 궁금증, 호기심(Curiosity)이 배움과 만남에 정말 중요하다. 책 읽기가 호기심을 채우는데 필요하며 읽기에서 상상력, 감수성이 발휘된다. 책을 읽는 일은 상상력을 키우고, 상상력은 사람을 만나거나 할 때 필요한 공감능력을 키우는데 필요하다. 적대적인 사람들이 만나는 일은 서로 다른 내러티브가 함께 펼쳐지고, 위험한 상황이 따르지만, 그래도 여기서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평화로 가기 어렵다. 예를 들면 젠더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여성이 참여하지 않으면 어떤 문제도 해결이 불가능하다. 사람들이 조약을 먼저 맺고 그 다음에 만나라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다. 모든 것을 따라서 해라 하면, 그냥 이끄는 것이고, 뜻을 이룰 수 없다. 사람들이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가 필요하고, 그 안전한 장소에 모이는 위험을 감수하고 모인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 놓고, 다른 사람의 자유로운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 코리밀라에 모이면 다양한 질문이 나오고, 자기 이야기가 나온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내러티브가 이곳에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퍼실리테이션(촉진자)도 필요하다. 아일랜드, 여기 코리밀라 대화의 공간에는 불을 피우는 장작불, 불태우는 공간이 있다. 장작불은 아일랜드 말로 심장 박동 소리를 뜻한다. 장작불이 타는 소리가 사람의 심장 박동 소리이다.

 

어떤 질문을 갖고 있는가를 묻는 것은 이 사람들이 이미 궁금해 하고 있는 것은 뭘까? 이미 갖고 있는 의문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호기심은 지성을 동반한다. 교육활동이나 사회에서 보통 호기심을 많이 가진 사람은 기피하거나, 처벌을 받게 된다. 그렇지만 평화는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평화로운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우리가 지금 현재평화로운 행동을 하지 않으면 평화로운 미래는 오지 않는다. 우리 코리밀라 공동체는 궁금해 하고, 호기심을 갖는데 용기를 가진 사람들과 지내기를 좋아한다. 그 사람들이 변화를 만든다고 믿는다. 그 사람들이 신뢰받는 사람일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을 많이 불러 모을 수도 있다.

 

한편, 궁금증이 많은 사람들은 쉽게 지칠 수 있다. 의심도 많이 받고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호기심 많은 이들을 지원하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 평화활동가들을 만나는 공간, 일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들이 이 공동체에 와서 쉴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프로그램을 많이 하기보다는, 사람들이 그냥 와서 쉴 수 있는 공간, 생각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가고자 한다.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은 현재 권력 관계에서 보면 위험한 사람들이다. 소외된 사람들이기도 하다. 호기심을 가진 사람은 두려움을 동반한 성숙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이다. 두려움을 갖는 것은 괜찮은 일이다. 분쟁은 예측할 수 있지만, 오히려 평화는 예측 가능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두려움을 두려워하는 것 때문에 평화를 얻기 어렵다. 우리가 궁금함을 갖지 못하고, 용기를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은 두려움 자체가 아니라 그 두려움을 두려워하는 것 때문이다. 앞서 평화는 무엇인가 질문한 사람이 있는데, 그것에 대한 한 가지 대답은 우리는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평화를 가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져 본 것은 만남이고 용기이고, 어떤 두려움을 감소시키는 행동이고, 그런 것을 우리가 해 온 것이다.”

 

포드릭은 내가 한 물음, 평화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답을 주었다. 한 개의 대답이라고 했다. 다른 더 많은 대답은 나한테 달려 있다. 내가 만나고,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가고 찾아가야 한다.




저녁을 먹고 만난 이본 네일러 선생님도 그랬다. 인형극과 평화교육 강의, 인형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에서 실마리를 잡아서 자기 이야기를 이어간다. 종교 상징물을 들고 상대가 어떤 느낌을 표현하는지, 돌아가며 듣다 보니 내 손에 든 달마상을 보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다르고, 사람마다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편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서로 다른 사람들, 사람들 사이의 갈등하는 이야기를 인형을 가지고 풀어낼 수 있다. 왕따, 싸움, 소외, 고통을 상대의 처지에서 말하고, 느껴 볼 수 있는 것. , 그래서 인형극이라는 형식을 넘어서 인형극 내용에서 자기 모습을, 다른 사람의 모습을 느껴보고 연대하고, 공감해 보는 것. 이래서 인형극과 평화교육이 닿는다. 가슴 절절하게 느끼고 공감을 나눌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끌어 나가는 이본 네일러 선생님의 내공이 무서울 정도로 엄청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내공은 하루아침에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쩌다 30년 가까이 교실에서 학생들과 살아 온 나는 어떤 내공을 이야기로 내보일 수 있을까? 재작년 서울에서 이본을 만났을 때 그때는 느끼지 못한 놀라운 능력을 보았다. 평생을 특수교육에 애쓰면서 인형을 가지고 만나고 소통하는 일에 전념해 온 사람이 보여 주는 모습은 감동이다.

 

9시 전체 명상 기도 모임에 가 보았다. 동굴 같은 방에 어린이까지 스무 명 남짓 둘러 앉아 기도문을 같이 읽고, 이본 네일러 선생님이 만남, 갈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상황을 가지고 인형극을 보여주셨다. 모두가 숨죽이며 인형극을 보고, 생각을 나눈다. 이본은 앞서 두 시간 강의를 하고, 바로 이어서 또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 주신다. 다 같이 다짐하는 노래를 부르고 헤어졌다.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살짝 흐려서 별은 쏟아지지 않지만, 거센 소용돌이가 친다는 저편 바다도 고요하다. 그리고 파란 잔디가 자리를 잡은 마당을 천천히 걸어서 밤 숙소로 돌아와 몸은 피곤하지만,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한다. 여기 코리밀라에서 느끼는 이 뜨거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를 생각하면서 타자를 치면서 기록을 한다. 내일도 코리밀라를 이끌어 온 네 분을 만나야 한다. 션 페터스, 쇼나 벨, 콜린 크렉, 데릭 윌슨. 정말 기대가 되는 만남. 궁금한 것을 묻고 또 묻기로 한다. (2019. 1. 15.)



 

박종호십여 년 전 어린이어깨동무 후원회원으로 인연을 맺었으며, 현재 어깨동무평화교육센터 연구위원, 신도림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지내고 있으며, 학생들과 손잡고 금강산, 백두산으로 수학여행을 가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08.20 00:23

[이슈]


'적군 묘지' 앞에서 생각하는 평화

 

박종호


지난 6월 29일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 콜로키움 ‘회복적 사회를 위한 평화교육’에 참석한 아일랜드 평화교육 실천가 데릭 윌슨(Derick Wilson)과 김동진 박사(트리니티 칼리지)를 2년 만에 반갑게 다시 만났다. 2017년 2월 아일랜드 평화교육 현장답사에서 만나고 이번에 서울에서 다시 만났으니 그 반가움은 컸다. 데릭 윌슨은 콜로키움에서 평화교육과 회복적인 사회, 이를 위한 교육자들의 실천에 대한 발표를 하였는데, 그야말로 아일랜드의 남북대립과 갈등의 한복판에서 회복적 실천을 위해 달려 온 자신의 평생에 걸친 노력의 알맹이를 풀어놓았다.


‘회복적 실천은 삶의 방식이자 일하는 방식이다. 다른 이를 희생양으로 삼거나 비난하기보다 책임을 지는 것이다. 상대를 정당하게 대하고, 타인과 차이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갖고, 그 차이를 축복하는 것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며, 시간, 상상, 창조적인 에너지와 희망이 새로운 현실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받아 적은 말이다.


나와 너, 우리 학교, 사회, 그리고 이웃하고 있는 나라에 대해서도 같이 적용되고 실천해야 할 덕목들이다. 평화교육이 해야 할 일이 이렇게 많고, 또 먼 걸음을 시작해야 한다. 아울러 폭력에 대해서도 상대의 폭력은 부당하지만 자기 진영의 폭력에 대해서는 변명하는 데서 벗어나서, 모든 폭력에 대해 거부하고, 비폭력을 옹호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들었다. 우리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어려운 말인줄 알면서도 또 얼마나 절박한 말인가.


다음 날인 6월 30일 이른 아침, 데릭 윌슨과 김동진 박사, 그리고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 교육과정연구모임에서 배우고 실천하는 초등·중고등학교 교사, 대학생, 어깨동무 활동가 20여명은 파주 ‘적군 묘지’를 찾아가기로 하였다. ‘회복적 평화’를 떠올려 보기에 적절한 곳이라 여겨서 고른 곳이다. 자유로를 지나 문산 방향으로 37번 국도를 달리다가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자장리부근에서 큰길가에 차를 세우고 일행은 모두 내렸다. 얼핏 지나치면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세워진 간판은 '북한군 중국군 묘지 안내도'이다. 적군 곧 한국전쟁에서 남쪽과 서로 적으로 맞선 상대, 북한군과 중국군의 무덤이다. 제1묘역, 제2묘역으로 표시된 입간판이 함께 서 있었다. '적군 묘지'로 알려져 있고, 군부대가 관리하는 곳인데, 직접 지키는 사람은 없다. 두 묘역 사이에는 농사를 짓는 밭이 있어서 실제로 일하는 분들이 무심하게 우리를 건너다보고 일을 하고 있기도 한다. "이곳은 6.25전쟁(1950.6.25.-1953.7.27.)에서 전사한 북한군과 중국군 유해, 6.25전쟁 이후 수습된 북한군 유해를 안장한 묘지입니다. 대한민국은 제네바 협약과 인도주의 정신에 따라 1996년 6월 묘역을 구성하였으며, 묘역은 6,099㎡로 1묘역과 2묘역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잠깐 입간판의 내용을 읽은 뒤에 오른편 2묘역으로 먼저 가서 우리는 무덤 가운데 서서 작은 꽃다발을 놓고 묵념을 올렸다. 무덤마다 놓인 비석에는 누구의 무덤인지, 어디에서 전사했는지 등의 기록이 적혀 있다. 한국 전쟁 때 치열한 전투에서 죽은 북한군과 중국군의 유해가 함께 안장되어 있다가, 중국군 유해는 2014년 무렵에 송환되었다. 더러 ‘무명인’ 비석이 눈에 들어온다. 이름도 없이 스러져 간 젊은 넋이 여기에 누워 있는 것이다.



다시 걸음을 돌려 처음 들어선 쪽으로 가서 1묘역으로 들어섰다. 이곳은 조금 더 잘 단장되어 있는 곳이다. 역시 함께 모여서 묵념을 하고, 준비해 간 구상 시인의 시 ‘적군 묘지 앞에서’를 정지영 선생님이 낭독하고, 또 다른 시 ‘휴전선’을 대학생이 낭독하고, 데릭 윌슨의 말씀도 들었다. 이런 고통스런 아픔의 현장을 찾아서 나누는 모습이 회복적 사회로 나아가는 걸음이 될 것을 확신한다는 말을 하셨다.



1묘역의 말끔히 단장된 무덤을 돌아보다, 문득 무덤이 모두 북쪽을 향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휴전선까지 불과 몇 십리, 비록 육신은 땅에 묻혔지만 영혼이라도 고향을 바라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배려한 것이리라. 누구였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위아래를 설득하고 그렇게 북쪽으로 배치하려고 애쓴 사람이 새삼 고맙다.


여기 이곳에 묻혀 있는 저 무덤 속 젊은이들이 자기 고향 땅으로 돌아 갈 날은 언제일까? 남과 북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는 문제라고 한다. 북한과 미국이 북쪽에 안장되어 있던 미국 군의 유해를 발굴하고 송환하는 뉴스를 보면서 더욱 우리 남과 북 모두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화해와 평화, 회복의 실천이 더욱 필요하고 중요한 것을 거꾸로 확인하는 셈이다.


자신이 남에서 태어나, 북의 원산에서 자라고, 남쪽으로 내려 온 뒤, 한국 전쟁 때는 종군 기자로 참여하고, 이곳을 지나다가 시를 남긴, 어쩌면 그 누구보다도 남과 북 모두에 대해서 같은 눈높이로 바라보며 아파한 시인 구상(1919-2004)이 쓴 ‘적군 묘지 앞에서’를 다시 읽어 보면서 답사의 소감으로 갈음하고자 한다.



적군 묘지 앞에서


구상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고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바른 드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로다.


이 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삽십(三十) 리면

가루 막히고

무주 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램 속에 깃들여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北)으로 흘러 가고


어디서 울려 오는 포성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



박종호ㅣ십여 년 전 어린이어깨동무 후원회원으로 인연을 맺었다. 현재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 연구위원, 신도림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지내고 있으며, 학생들과 손잡고 금강산, 백두산으로 수학여행을 가는 꿈을 꾸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