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레터(글)2019. 11. 19. 09:39

[이슈]

새로운 터전에서 ‘제대로 된 평화혁명’으로 나아갑니다   

이기범

 

드디어 어깨동무를 오롯이 담을 수 있는 터전을 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마냥 기뻐하지 못하는 까닭은 그렇게 가까이 왔던 남북의 평화가 다시 질척거리고 있어서입니다. 한반도의 평화는 쉽게 곁을 허락하지 않네요. 그야말로 ‘기나긴 혁명’을 거쳐야만 닿을 수 있나 봅니다. 과거의 남북 관계와는 또 다른 낯선 길을 열어갈 각오를 단단히 다져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새 터전이 그렇게 각별하게 여겨집니다. 기나긴 길로 나설 채비를 할 수 있는 곳. 같이 걸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 걷고 또 걷다 돌아올 수 있는 곳. 험한 봉우리 넘은 사연을 나누고 더 험한 봉우리 넘을 궁리를 하는 곳. 굽고 험한 길을 가다가 함께 모이고 먹고 웃을 수 있는 곳. 평화의 날을 맞이하는 잔치를 예비하는 곳. 새 터전이 기나긴 ‘평화혁명’을 이어가는 길의 시작이자 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새로운 터전을 마련할 수 있도록 뜻을 모아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건물을 살 수 있는 재원을 오랫동안 모아왔네요. 설립 초기에 임원들께서 밑천으로 내어주신 종잣돈과 회원들이 내주시는 후원금에 크게 힘입어서 푼푼이 돈을 모아왔습니다. 기꺼이 자비를 쓰면서 활동한 임원들과 내내 살림을 알뜰하게 챙겨온 사무국 활동가들 덕분에 쌈짓돈을 목돈으로 키워서 건물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돈을 모아놓고도 우리에게 독립건물이 꼭 필요한가를 고민하는 시간이 꽤 길었습니다. 이사회에서 의결을 한 뒤에도 적합한 지역과 건물을 찾는데 더 시간이 걸렸습니다. 매물로 나온 건물들을 보러 다니면서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는데 따르는 책임감과 전망을 다져갔습니다. 앞서 세워진 국내외의 평화 공간들을 공부하면서 상상을 펼쳤습니다. 그 공간에 녹아있는 사람들의 기억과 열망을 보았습니다. 새로운 터전에 어깨동무의 역사를 새기고 희망을 내다보는 구상이 무르익을 즈음 지금의 건물이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그 건물이 그때까지 어깨동무를 기다린 것 같았습니다.

 

새로운 터전이 환대의 공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평화를 배우고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을 환영하고,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다시 배움을 길어내는 일을 환영하는 공간이 되어야겠지요. 연대의 공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선 ‘어린이 세상’을 펼쳐가는 데 함께 뜻을 모았던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과 ‘동거인’이 되었으니 더 멀리 갈 수 있는 날개를 단 셈입니다. 두 단체의 소통과 결합을 통해 평화 네트워크를 더 촘촘하게 엮어나갈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고 상상과 개척의 공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곳에 오면 일상의 관성과 기존의 합리성을 뛰어 넘어서 무모하고 황당한 평화의 가능성을 펼치고 다듬을 수 있게 되기 바랍니다. 저만 하더라도 남녘 사회와 남북 관계의 앞날을 그릴 수 있는 생각의 자원이 소진되어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제까지 해오던 방식으로는 공동의 삶의 질을 진전시키고 숙성시킬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떤 상상으로 어떻게 평화의 지평을 개척할 수 있을까요? 여기에 모여서 함께 이야기하고 나아갈수 있기 바랍니다.

 

▲ 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 입구
▲ 교육공간으로 활용될 '안녕친구야홀'
▲ 북녘 친구들을 가까이 만날 수 있는 '평화자료실'

제 소망을 이야기하다 보니 이런 일을 하기에 우리 터전이 넉넉한가라는 걱정이 듭니다. 하고 싶고 담고 싶은 일이 많다보니 공간 크기가 턱없이 모자라서 맥이 빠졌을 때 역시 구원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그분들 덕분에 일하고 쉴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되었습니다.

기나긴 평화혁명으로 글을 시작했으니 그로서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D. H. 로렌스는 ‘제대로 된 혁명’이라는 시에서 “혁명을 하려면 웃고 즐기며 하라/ 소름끼치도록 심각하게는 하지 마라/ 너무 진지하게도 하지 마라/ 그저 재미로 하라”라고 말합니다. 그저 재미로 할 수는 없지요. 그러나 ‘엄숙주의’를 깨고, 웃고 즐기며 재미있게 무리 지으면 세상을 조금 더 살 만하고 조금 더 평화롭게 바꿔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곳에서 ‘제대로 된 평화혁명’의 걸음을 길게 이어가겠습니다. 앞으로 터전에서 자주 뵐 수 있기를 바라고 계속 격려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후원 역시 웃고 즐기며 재미있게 해주시면 더 큰 힘이 되겠습니다. 제대로 된 평화혁명을 위하여!

 


이기범ㅣ어린이어깨동무 설립에 참여하여 초대 사무총장으로 10년 동안 일했고, 현재는 이사장을 맡고 있다. 남북의 어린이들이 교류하며 한반도 평화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길을 만들고 그 길을 함께 가기를 소망한다. 숙명여대에서 교육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최근 저서로 <남과 북 아이들에겐 철조망이 없다> <한반도 평화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가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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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2019. 11. 19. 09:03

[한반도평화읽기]

 

희망의 근거  -정부와 시민사회의 연대-

 

정영철

 

남북관계가 심상치 않다. 지난 8월 북의 조평통(조국평화통일위원회)은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 이상 할 말도 없으며 다시 마주앉을 생각도 없다’고 선언했고, 그 이후 10월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금강산을 현지지도하면서 ‘남측 시설들을 싹 들어내도록’지시하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 열린 ‘비동맹정상회의’에 참석한 북의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의장은 ‘역사적인 남북 선언들이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남조선당국의 외세의존정책과 사대적 근성’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남북관계의 개선은 외세의존정책에 종지부를 찍고 민족 앞에 지닌 자기의 책임을 다할 때에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북의 발언은 남북관계가 공동선언에도 불구하고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한 마디로 남의 미국에 대한 종속성, 사대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남북관계의 개선은 국제사회와 미국의 제재로 인해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으며, 제재의 대상이 아닌 관광과 여타의 협력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의 소극적인 자세로 인해 제대로 된 남북 협력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겉으로야 이러저러한 대북제안을 하고 있지만 (돼지열병 방역등)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 대부분이다. 아무리 좋은 제안을 해도 실행에 옮길 수가 없는 상황,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미리 준비하고 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현재의 대북 제안은 말 그대로 명분 쌓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뿐이다. 통일부 장관조차도 비무장지대에 발을 들여놓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유엔사의 간섭으로 인해) 대북제안의 실질적인 이행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타미플루 지원의 경우에는 유엔사가 비무장지대 차량 출입을 통제하면서 무산되기도 했는데, 이 역시 국제적인 제재를 명분으로 한 노골적인 간섭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진행되는 일련의 상황을 보면, 우리 정부의 태도는 엄혹한 대북 제재 그리고 북미관계 개선이라는 희망에 모든 것을 의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마디로 ‘현상유지에서는 자율성’을, 그러나 ‘현상타파에서는 종속성’을 보이고있다. 지난해에 숨 가쁘게 진행되었던 남북 간의 역사적인 회담과 합의를 어떻게 실행에 옮길 것인지는 뒤로 미뤄놓고, 오로지 북과 미국의 만남에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 내세웠던 ‘담대한 여정’에서 ‘담대’는 쏙 빠지고, 오로지 중재자만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북이 강조했듯이 우리는 중재자가 아니라 당사자여야 한다. 하루빨리 ‘중재자의 신화’에서 빠져나와야 할 것이다.

다른 문제로 넘어가보자. 우리 정부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핵심 키워드로 제시하고 있고, 지난해 판문점 선언과 평양 공동선언에서도 이와 관련된 역사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실제는 어떤가? 국방비는 ‘이전의 10년 정권’보다도 더한 증액이 이루어지고 있고, 더욱 파괴적인 무기가 도입되고 있다. 평화를 주장하고, 이를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력증강은 대북 강경정책을 펼치던 정권보다 더한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니, 이를 바라보는 북의 입장에서 과연 남의 진정성을 신뢰할 수 있을까? 지난 평양에서 열렸던 월드컵 예선에 대해 통일부 장관까지 ‘실망스럽다’고 했지만, 정작 ‘실망’을 표해야 하는 쪽은 북이 아닐까?

물론 우리 정부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국제사회의 제재를 풀 수 있는 현실적인 힘이 우리에게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고, 북미관계의 개선이 남북관계의 개선의 결정적인 힘으로 작동하고 있는 현실도 인정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 정부가 스스로를 ‘중재자’의 울타리에 가두어놓고, 북과 미국의 사이에서 ‘중재’를 한다는 것이 별다른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지난 역사적 경험을 보면, 우리는 남북관계의 힘을 통해 오히려 미국을 협상장으로 끌어들이고, 남북관계 개선–북미관계 개선의 선순환을 만들어내었다. 과거 2000년 정상회담을 전후한 시기가 그러했고, 당장 지난해 판문점 ‘번개회동’을 통해 좌초 위기였던 북미회담을 성사시켰던 경험이 이를 보여준다. 한반도 문제에서 우리가 힘을 낼 수 있는 유일한 원천은 바로 남북관계의 힘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남북관계의 힘을 바로 세우는 것은 정부의 노력과 함께 시민사회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그리고 통일을 위해 힘을 합칠 때만 가능하다. 과거 2000년 정상회담을 전후하여 정부와 함께 시민사회가 남북관계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힘을 합쳤고, 지난해 2018년에는 전쟁 위기의 한반도를 벗어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길에 정부와 시민사회가 뜻을 같이하였다. 정부와 시민사회의 연대는 우리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노력에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고, 시민사회는 국제사회와 미국의 제재를 향해서 우리 내부의 목소리를 보여줌으로써 남북의 교류와 화해를 위한 협력의 정당성과 그를 위한 동력을 마련해주게 될 것이다. 든든한 내부의 동력이 마련된다면, 우리의 목소리를 국제사회도 쉽게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지난해부터 남북관계는 정부가 주도하고 시민사회는 한 발옆으로 비켜서 있었다. 어찌 보면 시민사회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모두가 ‘평양’행 비행기에 올라타는 꿈만을 이야기했지, 평화와 번영의 공고한 토대를 만드는 것에서는 소홀히 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는 모두가 ‘평양’행 비행기를 놓칠 수 있는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이제라도 정부와 시민사회는 힘을 합치고, 지혜를 모아야 할것이다. 최근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 범국민운동본부’가 만들어져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서 마지막 희망의 끈을 발견하게 된다. 다만, 우리 정부가 하루라도 빨리 ‘종속’의 함정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 지금처럼 북미관계에 모든 것을 의탁하는 자세로는 남북관계의 문제를 풀 수도 없고, 우리가 희망하는 방향으로 만들어내지도 못할 것이다. 진정으로 제대로 된 남북관계의 힘은 남북의 정부와 시민사회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그리고 통일’을 위한 연대를 만들어 내었을 때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언제나 든든히 의지해야 할 ‘희망의 근거’가 될 것이다.

정영철ㅣ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서울로 상경해 공학을 전공하다 진로를 바꿔 사회학을 공부하였다. 북한, 통일, 평화에 대한 연구가 관심사이며, 지금은 서강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반도 평화가 곧 어린이의 미래라는 생각에 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에 발을 들여놓고 일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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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2019. 11. 18. 18:18

[평화의 마중물]

 

코리밀라 공동체에서 보낸 꿈같은 시간(4)

분노를 넘어 희망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필요한 까닭 

 

박종호

 

지난 밤 김동진 박사 평화 책 잔치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서 최관의, 심은보, 댄 가즌, 김경옥 선생님과 ‘벨파스트의 마지막 밤’을 잠으로 보낼 수 없다면서 기네스 맥주를 신나게 마셨다. 젊은 두 사람을 남겨 두고 방에 올라와서 눈을 붙인 시간이 새벽 2시, 어찌어찌해서 맥주를 사느라고 지갑을 털린(^^) 최관의 선생님은 주무시지도 않고, 기다렸다는 듯이 뭐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그냥 눈을 감았다 뜨니, 오전 모이는 시간이 코앞에 와 있다.

오늘 마지막 방문지인 벨파스트 교육청 지원센터(Belvoir Youth Centre)에 들어섰다. 북아일랜드 사회통합을 위해 교육청이 하는 여러 일 가운데, 분리 교육이 시행되고 있는 신교도, 구교도 지역 학교들을 일정한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여 협력하는 교육프로그램으로 연결하는 공유교육을 지원하는 곳이다. 깔끔한 시설과 부지런하고 친절한 직원들을 보면서 부러워하며, 이런 노력들이 풍부한 기금 지원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교육청 관계자들과 만나는 시간을 앞두고, 한 시간 정도 회의실에 둥글게 둘러앉았다. 데릭 윌슨 박사님이 김동진박사와 함께 사회를 보고, 이번 연수에서 배우고 느낀 바를 함께 나누는 ‘총화’ 시간이다. 데릭 선생님은 자연스럽게 우리들에게 이번 연수에서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을 말하고, 두 번째는 이번 연수에서 얻어 가는 게 무엇인지 말해 보자고 하신다. 우리는 시계 방향으로 바로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평화, 평화교육을 처음 경험한 기회였는데, 어제 기네스를 좀 많이 마셔서 저를 관리하지 못한 게 아쉽고, 함께한 선생님들 기운을 받아서 하나부터 열까지 좋은 경험을 해서 고맙다.”(김경옥)

“코리밀라에서 데릭 교수님 집에 가서 겪은 밤이 많이 생각난다. 모둠으로 나누어 파티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문화는 제도나, 행정으로는 만들 수 없는 부러운 문화였다. 평화로운 세상 만들기는 평화로운 문화를 만드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일상에서, 학교에서, 집에서 내가 하는 행동을 다시 돌아봐야 하고, 의심의 눈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최관의)

“데릭선생님 댁을 방문했을 때 희망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 답을 찾을 수 없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사람이 희망이다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생각한다. 평화는 더디게 천천히 오지만 멈추지 말고 함께 나아가야 한다.” (이향숙)

“활동가들이 서로 영감을 주는 게 감동 깊었고, 이번 연수에서 어쩌면 평생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평화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었다. 코리밀라에서 강의를 들으면서 여러 가지로 선명하지 않아서 혼란스럽기도 했는데, 이런 혼란은 우리나라 주입식 교육의 문제점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기도했다. 그래도 변화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가슴에 담았다.” (주예지)

“워크숍이 좋았고, 영감을 많이 받았다. 김동진 박사님, 여러분들에게, 그리고 어젯밤 종호, 경옥 선생님 노래에서 좋은 영감 많이 받았다. 그런 경험을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전할 수 있는지 앞으로 많이 고민하려고 한다.” (댄 가즌)

“평화교육을 깊이 경험하게 되어 좋았고, 지금 고민은 이것을 돌아가서 어떻게 나눌 것인지, 어깨동무에서 함께 일하는 활동가들이 성장하고 어떤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숙제를 안고 간다.” (김윤선)

“다음에 또 오게 된다면 중간에 소화할 시간을 좀 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극은 받았는데, 그냥 돌아가면 잊혀질까 두렵기도 하고. 이곳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을 보면서, 끊임없이 나는 왜 저분들만큼 자신감이 없을까?를 자문하며, 좀더 과감해져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성숙)

“평화라는 말이 훅 들어오는 느낌. 평화는 목적이 아니고 과정이다. 우리 남과 북은 통일이 목적이지만, 그 이후도 끊임없는 과정이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려고 한다.” (강명희)

“알시티에서 청소년과 대화해 본 일, 코리밀라 워크숍에서 프로그램을 배운 일, 통합학교를 방문해서 학생들과 이야기 나눈 일이 좋았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평화, 평화교육은 이제 시작이라는 점, 어떻게 적용해야 할 것인가, 무엇을 해야 할까에 대해 천천히 더 생각해 보겠다.”(정진화)

“곳곳에서 벽을 만났는데, 이름에 평화(Peace)라고 해서 놀랐고, 여기서 알시티, 코리밀라 같은 만남의 장들이 있고, 그곳에서 상상력을 많이 받았다. 잠깐 스치는 경험이지만, 돌아가서 실제 삶 속에서 다양한 만남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심은보)

 

우리들이 이야기하는 사이에, 데릭 윌슨 박사님은 짧게, 그렇지만 울림이 있는 말을 해 주었다. 어쩌면 평생을 날마다 보이거나 보이지 않은 갈등과 전쟁의 한복판을 온몸으로 겪어내면서 희망을 길어 올린 사람이기에 해 줄 수 있는 말을 건네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지식을 전수받는 게 학습이라 생각하는데, 진짜 학습은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모른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다리로 먼저 걷고, 머리가 따라간다. 뭔지 몰라도 일단 걷는다. 그래도 걷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운 관계 속에서 변화한다.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는 사회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신념은 좁은 공간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으로 만날 때 공간이 넓어진다. 신념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내 차례가 오자 이렇게 말했다. “두 번째로 온 북아일랜드에서 또 많은 걸 느끼고 깨닫고 간다. 삼십 년 넘게 교사로 살면서 나를 지탱한 것은 분노였고, 다른 한편에는 무력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그래서 내가 만난 학생들에게 오히려 해를 끼친 것 같아 미안하다. 기회가 닿는다면 다시 코리밀라에 와서 배우고 싶다.”

내 말을 듣고 데릭 선생님이 마무리 삼아 하신 말씀을 들으면서 가슴에서 뭔가 울컥한다.

“완벽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좌절에 이르는 길이다. 분노는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하지만, 분노만으로는 더 나아가지 못한다. 희망을 가지면, 미래를 보게 되고, 그 미래를 위한 계획과 전략을 세운다. 이것이 우리가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는 까닭이다. 희망을 공유하는 배움의 공동체. 이 희망을 여러분과 나눌 수 있어서 고맙다.”

일정을 마치고 헤어지는 시간. 우리를 태운 버스 앞에서 데릭 선생님과 진하게 포옹을 했다. 부디 건강하시기 바란다고 말씀드리자 선생님은 말없이 한 번 더 안아 주셨다.
(2019. 2. 18.)

 


박종호|십여 년 전 어린이어깨동무 후원회원으로 인연을 맺었으며, 현재 어깨동무평화교육센터 연구위원, 신도림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지내고 있으며, 학생들과 손잡고 금강산, 백두산으로 수학여행을 가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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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2019. 11. 18. 16:33

[평화를 담은 공간-1]

 

친일청산과 역사정의의 실현으로 평화의 길을 열다
-민족문제연구소, 식민지역사박물관-

김영환

2018년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은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일본기업(일본제철)에 강제동원되어 강제노동 피해를 당한 원고들에게 역사적인 승소판결을 내렸습니다. 1997년부터 일본과 한국의 법정에서 자신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싸워 온 피해자들이 20여년의 기나긴 투쟁 끝에 마침내 승리한 것입니다. 대법원 판결은 국제인권법의 성과를 반영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명확히 하고, 식민지배와 직결된 강제동원·강제노동이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식민주의의 극복을 향한 첫 걸음을 내디딘 세계사적인 판결이라 할 것입니다. 아울러 냉전과 분단체제 아래에서 피해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강요한 ‘65년 체제’를 피해자들과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연대하여 극복한 역사적인 성과이기도 합니다. 

그로부터 1년, 해방 70여년이 지나도록 실현되지 못한 자신들의 인권회복과 정의의 실현을 고대해 온 피해자들의 기대는 처참히 짓밟히고 있습니다. 아베 정권은 한국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하고 사죄, 반성하기는커녕 ‘국제법 위반’을 운운하며 사법주권을 침해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으며, 피고 기업들에게 노골적으로 압력을 가하여 판결의 이행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경제규제와 노골적인 배외주의를 선동하여 일본 사회 전체를 ‘혐한의 광풍’으로 몰아넣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러한 ‘혐한의 광풍’ 속에서 재일조선인들은 일상적으로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고 있으며,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평화의 소녀상 전시 문제에서 드러나듯 역사왜곡과 혐한발언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는 언론 보도를 통해 일본사회 전체가 ‘재특회’처럼 되었다는 우려의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 이후 지난 1년 동안 악화의 한 길을 걷고 있는 한일관계는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의 역사가 아직도 청산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 ‘반일종족주의’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한국사회의 현실은 역사왜곡과 친일청산의 과제가 비단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현재 하루 빨리 청산해야 하는 한국사회의 과제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본의 극우세력과 뜻을 같이 하는 이러한 역사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은 식민지 지배의 피해를 극복하고 인간의 존엄을 실현하기 위해 한 평생을 싸워 온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노력을 모욕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1965년의 굴욕적인 한일협정에 분노한 고 임종국 선생은 친일문제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1966년 『친일문학론』을 비롯하여 친일파 관련 저작을 발표했습니다. 선생은 친일파의 행적을 자신의 손으로 낱낱이 기록한 1만 3천 장의 인명카드를 남기고 1989년 작고했습니다. 1991년, 임종국 선생이 남긴 뜻을 이어받아 민족문제연구소가 탄생했습니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2009년 선생의 인명카드는 친일파 청산을 열망하는 시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친일파 4,389명이 기록된 『친일인명사전』으로 태어났습니다. 

친일인명사전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문제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시민의 참여를 통한 역사문제의 대중화에도 힘을 기울여 적극적으로 역사왜곡을 막기 위한 실천운동을 벌여왔습니다. 박정희기념관 건립반대, 김활란상 제정 반대, 박흥식 동상 철거, 친일문학인상 반대 등 일제 잔재와 친일청산을 위한 실천운동과 함께 그동안 조명을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의 발굴,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강행된 뉴라이트 교과서 채택,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운동 등 역사정의를 실천하기 위한 실천운동을 꾸준히 이어왔습니다.

또한 민족문제연구소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과거사 문제의 해결을 위한 운동에도 앞장 서 왔습니다. 지난해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 낸 강제동원 소송의 사무국을 맡고 있으며, 야스쿠니신사 합사취소 소송을 비롯하여 한국과 일본의 법정에서 대일과거사 청산을 위해 일본의 시민사회와 연대하여 소송투쟁을 벌이는 한편 강제동원의 진상규명을 위한 연구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로 병합된 지 108년이 되는 2018년 8월 29일, 민족문제연구소는 ‘식민지역사박물관’의 문을 열었습니다. 식민지주의의 극복과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활동의 거점으로 마련된 ‘식민지역사박물관’은 강제병합의 역사, 민중의 입장에서 본 식민지지배의 실상, 한 시대를 다르게 걸어 온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대조적인 삶,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의 목소리, 그리고 과거를 극복하기 위해 함께 싸워 온 한일시민연대의 역사를 기록하고 전시하는 일제강점기 역사박물관입니다.

 

식민지역사박물관 입구
역사정의를 지키고 가꾸는 사람들

특히 ‘식민지역사박물관’은 민족문제연구소가 그동안 모아온 3만여 점의 역사자료와 4만여 점의 관련도서 외에도 재일동포를 비롯한 해외동포들, 한국과 일본의 수많은 시민들이 보내준 기증 자료와 성금으로 마련되어 순수하게 시민들의 힘으로 세워졌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습니다. 박물관의 입구에 들어서면 벽면을 가득 채운 ‘역사정의를 지키고 가꾸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밖에도 ‘3.1 독립선언서’ 초판본, 난징대학살에 가담한 일본군의 일장기, 남산에 세워진 조선신궁의 기록, 강제동원 피해자의 절절한 편지, 이광수, 최남선, 김성수, 김활란 등의 친일 행적, 친일인명사전 편찬의 역사, 한일시민연대의 기록 등을 보고 박물관을 나서면서 여러분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한국사회 곳곳에서는 분단과 냉전체제를 방패삼아 ‘반공’이라는 무기로 자신들의 친일행적을 숨기고 역사를 왜곡하는 세력들이 여전히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큰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2020년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창간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그들이 친일의 과오를 반성하고 사죄하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합니다. 친일잔재의 청산과 역사정의의 실현은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이 땅에 진정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길에서 우리가 내디뎌야 할 첫걸음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이 시민여러분과 함께 그 길을 열어가겠습니다.



김영환 ㅣ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 동아시아공동워크숍, 평화자료관·쿠사노이에(草の家), 평화박물관에서 평화운동을 했다. 동아시아 시민들이 국가와 민족의 벽을 넘어 이곳에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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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싶은 이야기2019. 2. 26. 15:46

평화는 천천히 오는 것이다

-2019 어린이어깨동무 북아일랜드 평화교육연수- 



어린이어깨동무는 2019년 1월 ‘북아일랜드 평화교육연수’를 진행했습니다. 이번 연수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속에서 우리 평화교육이 나아가야할 방향과 내용을 함께 모색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북녘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미래를 준비하고자 초중고 선생님, 연구자, 활동가 등 다양한 구성원이 함께 했습니다.  


북아일랜드는 우리보다 앞서 20년간의 평화프로세스 과정을 통해 대립과 폭력의 역사를 화해와 공존의 삶으로 변화시키는 경험을 해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진행해온 평화교육의 경험, 성과, 한계를 모두 함께 나누며 앞으로의 평화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이번 연수는 교육청, 학교, 민간단체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정책입안자, 교육자, 활동가, 학생 등을 모두 만날 수 있어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시작

기나긴 일정의 시작인 첫 날. 우리는 벨파스트 시내를 15분가량 걸어 코리밀라의 벨파스트 사무소로 갔습니다. 가정집들 사이에 위치한 소박한 공간에서의 첫 일정은 북아일랜드 사회의 분쟁과 평화의 역사를 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바로 이어 북아일랜드 교과과정 저자 Carmel Gallagher이 북아일랜드의 교과과정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북아일랜드 사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오후에는 구교도지역과 신교도지역을 나누는 Peace Wall을 둘러보고, 두 지역의 경계에서 청소년들의 통합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R-City Project를 방문하여 청소년들의 활동을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코리밀라 벨파스트사무소 앞에서


 Peace Wall


▲ R-City Project 청소년 활동모습


코리밀라에서의 이틀

벨파스트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코리밀라로 간 우리 일행은 이틀간 코리밀라에 머물며 다양한 평화교육을 직접 경험해볼 수 있었습니다. 스토리텔링, 인형극, 역사교육, 대화활동 등 분쟁지역에서의 화해와 공존을 위한 다양한 평화교육 활동은 한반도평화시대를 맞은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또한 Derick Wilson 등 평생 북아일랜드 평화교육의 길을 걸어온 활동가, 교육가, 학자들과의 만남의 시간은 ‘평화는 천천히 오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하는 동시에 서로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시간이었습니다. 


▲ Corrymeela 공간설명


▲ 역사교육에 대해 이야기 중인 Sean Pettis


▲ Colin Craig와 함께하는 워크숍 모둠활동


공존의 첫 걸음, 만남 

코리밀라의 일정을 마친 우리들은 Derry로 이동했습니다.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사건’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이곳은 양측의 갈등 또한 첨예했던 곳이고 그 만큼 통합을 위한 노력도 어려운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의 통합학교 방문은 우리를 긴장과 설렘의 그 어디쯤에 있게 했습니다. 드디어 만나게 된 통합학교의 학생들은 의외로 신구교의 갈등에 대해 무겁게 받아들이기 보다는 ‘만나보지 않은 어른들의 오해와 고집’으로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만남’이 통합과 화해의 첫걸음임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 통합학교 전경


▲ Peace Bridge


현실적인 고민, 교육청의 공유교육

교육청 관계자들과의 만남은 우리의 현실과도 그 고민이 맞닿아 있었습니다. 교육청은 통합교육에 대해서도 지지하지만 현실적으로 사회통합정책에 기반을 둔 공유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모든 학교가 신구교의 통합학교로 구성될 수 없기 때문에 교육과정 일부를 공유하는 것에서 통합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며 우리 교육현장으로 고민이 돌아오는 마지막 일정이었습니다. 


▲ 교육청관계자들과의 만남

 

Peace Wall과 Peace Bridge

짧지 않은 시간을 북아일랜드에 머물며 우리의 모습을 반추해본 경험을 아주 짧게 줄이면 Peace Wall과 Peace Bridge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교도와 구교도가 서로의 삶과 생각을 나누는 담장 Peace Wall은 최소한의 평화를 위해 더 이상의 화해와 진전을 막는 벽입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 우리 한반도의 모습이 이와 비슷할 것입니다. 남과 북은 휴전선으로, 남한 내부에서는 생각이 다른 이들에 대한 불인정과 외면으로 나뉘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북아일랜드의 사람들이 양측 지역을 연결하는 Peace Bridge를 만들고 통합학교를 만들며 조금씩 만남의 장을 넓혀가며 평화프로세스를 발전시켜 온 것 또한 Peace Wall과 동시에 존재하는 평화를 위한 노력이라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우리가 70여 년간 어려운 시기를 지나오며 다섯 번의 정상회담과 셀 수 없는 민간교류를 해온 역사가 있듯이 말입니다. 평화는 천천히 오는 것이지만, 가만히 앉아있다고 저절로 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지치지 않고 평화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있다면 반드시 올 현재이자 미래입니다.   


▲ Corrymeela 앞바다의 무지개



어린이어깨동무 북아일랜드 평화교육연수 주요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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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2019. 2. 20. 01:01

[이슈]


신년의 희망과 다짐

평화로 한 걸음 더평화를 위한 모두의 어깨동무!

 

정영철


2018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평화와 번영의 첫 발을 뗀 한 해였습니다. 전쟁의 위기를 딛고 남북의 정상이 세 번씩이나 만나 전쟁없는 한반도를 선언했고, 70여 년을 적대관계로 대결해왔던 북과 미국이 만나 평화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합의하였습니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2018년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거대한 발자국을 뗀 해로 역사에 기록되기 충분하다 하겠습니다.

 

이제 새로운 희망의 2019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이미 많이 알려졌듯이, 북은 2019년 신년사를 통해 북미간 회담은 물론이고 남북간에는 화해와 협력을 더욱 가속화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였습니다. 신년사에서 밝힌 대로, 김정은 위원장은 연초에 중국을 방문하여 더욱 적극적인 외교적 행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고,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이야기도 벌써부터 일정과 장소 문제를 중심으로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신년사를 통해 한반도 평화의 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고, 올해 더욱 속도를 낼 것이라고 하여, 평화를 향한 행보를 지속할 것을 천명하였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올 한해도 남북 그리고 미국과 중국을 엮는 드라마같은 변화가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는 한반도 평화를 향한 한 걸음 더 의미있는 진전이 되리라고 기대됩니다.

 

다가오는 2차 북미 정상회담과 서울에서의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게 되면, 지금의 답답한 교착상태가 풀릴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렇게 되면 지난 시기 남북관계의 단절을 상징했던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재개도 북의 비핵화에 발 맞추어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대북제재가 해제되고 남북의 협력이 차질없이 진행되어야 하겠지만, 올해 남북이 밝힌 신년사와 최근의 북중, 북미간 움직임을 통해 그럴 가능성이 한층 높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남북관계는 평화와 번영으로 한발 더 내딛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지금까지의 움직임이 모두 정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부가 중심이 되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다각도의 노력이 진행되는 것은 바람직하고, 앞으로도 더 적극적인 발걸음이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한반도의 평화는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정부의 평화를 위한 발걸음에 민간도 함께할 때 더 공고한 평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한 해가 모두를 당황스럽게 할 정도의 속도와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민간이 미처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면, 올 해는 민간도 그 길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해야 할 것입니다. 모두 평양을 방문하고자 하는 희망과 단절되었던 북과의 교류와 협력을 말하지만, 이 길을 가장 확실하게 열어젖히는 방법은 한반도에 평화가 공고화되고, 남북의 공존과 번영에 대한 가치가 확고해지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는 정부대로, 민간은 민간대로 평화와 번영을 위한 자기의 역할을 다하는 길 이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아직은 우리 사회 곳곳에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보다는 여전히 대결과 적대를 원하는 세력, 북과 미국의 만남에 불만을 가지는 세력이 적지 않게 남아 있습니다. 남북의 정부, 미국 그리고 중국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변화의 길목에서 이들이 언제든지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민간이 평화를 위한 여정에 든든한 받침대가 되고 전 국민이 평화와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올 해 우리의 과제는 평화로 한 걸음 더: 평화를 위한 모두의 어깨동무!’가 되어야 합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올 한해 <어린이어깨동무>도 이 길을 변함없이 걷고자 합니다. 끊어졌던 대북 인도적 지원의 재개를 비롯해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다양한 사업들을 펼치고자 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의 길에 함께 할 수 있도록 어깨동무의 평화교육과 평화활동을 강화할 것이며,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북녘의 어린이들을 위한 지원활동도 더욱 창의적이고 서로의 온기를 느낄 수 있도록 전개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우리 회원분들과 어깨동무를 지지하고 격려해주신 모든 분들이 함께 해야 합니다.

 

어깨동무의 모든 회원분들 그리고 어깨동무를 지지하고 격려해주신 모든 분들과 함께 평화와 번영의 길에서 함께 하기를 기원하며, 2019년의 새해 인사를 대신합니다. 흔히들 꿈은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하면 실현된다고 합니다. 새해가 벌써 한 달을 넘긴 이 시점에 이 평범한 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곱씹어 봅니다. 모두가 어깨동무하는 그 길에 평화와 번영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2019평화를 위한 모두의 어깨동무의 길을 걷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분들의 가정에 올 한해를 상징하는 복된 돼지가 한 아름 안기길 바라면서, 평화와 번영의 길에서 두 손 꼬~옥 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영철 |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서울로 상경해 공학을 전공하다 진로를 바꿔 사회학을 공부하였다. 북한, 통일, 평화에 대한 연구가 관심사이며, 지금은 서강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반도 평화가 곧 어린이의 미래라는 생각에 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에 발을 들여놓고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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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2019. 2. 20. 00:54

[시선-한반도 평화읽기]


코리밀라 공동체에서 보낸 꿈같은 시간

평화는 만남과 용기두려움을 감소시키는 행동

박종호


북아일랜드에 온 지 셋째 날, 115, 코리밀라에 가는 날이다. 나는 20172월에도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 연수에 참여하여 이곳에 온 적이 있다. 두 해 만에 다시 가는 길, 그 사이에 얼마나 바뀌어 있을까, 내가 알아 볼 사람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틀 밤을 묵을 준비를 하면서 짐을 꾸려서 버스에 탄다. 모두 열여섯이 함께 움직이는 터라 부산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버스는 벨파스트를 벗어나 밸리캐슬로 달려간다. 한 시간 반 정도 달려서 코리밀라에 도착하자, 데릭 윌슨 박사, 포드릭 오투마 대표가 반갑게 맞아 준다. 데릭은 서울에 오셨을 때 파주 북한군 중국군 묘지에 같이 간 적이 있는데, 그때를 기억하면서 반가워해주셨다. 어깨동무와 인연이 깊은 자원봉사자 오진의 선생도 반갑게 만났다.

 

짐을 풀고, 등 뒤로 바다가 보이는 큰 방에 나는 그 때 그 자리에 다시 앉아서 포드릭과 인사를 나누었다. 포드릭은 코리밀라의 역사를 찬찬히 소개하고, 둘레를 돌아다니면서 공간에 대한 사연을 풀어놓는다. 이곳에 평생을 바친 봉사자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정원, 우리가 머무는 곳의 벽에 걸린 자전거 그림에 얽힌 사연을 들으면서 코리밀라 공동체가 걸어 온 길이 그저 그런 시간이 지나가서 쌓여 온 곳이 아니고 열정과 헌신, 지치지 않고 느리지만 목표를 향해 걸어 온 이들의 땀과 기도가 일군 곳임을 알았다.

 

코리밀라(Corrymeela) 공동체는 북아일랜드의 혼돈과 대립, 갈등의 시기에 젊은이들이 서로 다른 이들과 만나서 풀어가는 공간을 마련하는데서 출발하였다. 경치가 좋은 곳에, 바깥에서 일정하게 분리 고립된 곳에서 만남과 대화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그 환경이 주는 이점을 살리고, 이를 공간을 가꾸고 만드는 일에도 어김없이 실현하고자 한다.





포드릭은 강의를 시작하면서 바로 우리들에게 돌아가면서 이곳에 와서 지금 마음에 어떤 질문을 품고 있는지 나누자고 한다. 이 공간에 와서 무슨 궁금한 것이 생겼나? 잠깐 생각하고 나는 차례가 되자 두 해 전에 이곳이 왔을 때는 바다가 보이는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만 들었는데, 오늘 다시 와서 둘러보면서 이곳에서 꿈을 이루고자 애쓴 분들의 뜻이 곳곳에 스며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제 벨파스트에서 북아일랜드 평화프로세스 이야기를 들으면서 평화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심지어 북아일랜드 평화프로세스를 지원하는 경제 지원 프로젝트 제목이 ‘Peace’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평화가 돈이라는 점에도 신기하고 놀랐다. 정말 내가 아는 평화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내 이야기를 종이 칠판에 적은 데릭 윌슨은 “WHAT IS PEACE?”라고 적었다.

 

자유에 대해, 공부에 대해, 관계에 대해 같은 물음이 이어지고, 큰 종이 두 장에 가득 질문을 적은 뒤에 포드릭은 찬찬히 이야기를 이어간다. 사람이 만나는 것은 내러티브가 만나는 것이고, 갈등도 그대로 내러티브에 반영되어 나타난다. 궁금증, 호기심(Curiosity)이 배움과 만남에 정말 중요하다. 책 읽기가 호기심을 채우는데 필요하며 읽기에서 상상력, 감수성이 발휘된다. 책을 읽는 일은 상상력을 키우고, 상상력은 사람을 만나거나 할 때 필요한 공감능력을 키우는데 필요하다. 적대적인 사람들이 만나는 일은 서로 다른 내러티브가 함께 펼쳐지고, 위험한 상황이 따르지만, 그래도 여기서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평화로 가기 어렵다. 예를 들면 젠더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여성이 참여하지 않으면 어떤 문제도 해결이 불가능하다. 사람들이 조약을 먼저 맺고 그 다음에 만나라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다. 모든 것을 따라서 해라 하면, 그냥 이끄는 것이고, 뜻을 이룰 수 없다. 사람들이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가 필요하고, 그 안전한 장소에 모이는 위험을 감수하고 모인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 놓고, 다른 사람의 자유로운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 코리밀라에 모이면 다양한 질문이 나오고, 자기 이야기가 나온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내러티브가 이곳에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퍼실리테이션(촉진자)도 필요하다. 아일랜드, 여기 코리밀라 대화의 공간에는 불을 피우는 장작불, 불태우는 공간이 있다. 장작불은 아일랜드 말로 심장 박동 소리를 뜻한다. 장작불이 타는 소리가 사람의 심장 박동 소리이다.

 

어떤 질문을 갖고 있는가를 묻는 것은 이 사람들이 이미 궁금해 하고 있는 것은 뭘까? 이미 갖고 있는 의문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호기심은 지성을 동반한다. 교육활동이나 사회에서 보통 호기심을 많이 가진 사람은 기피하거나, 처벌을 받게 된다. 그렇지만 평화는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평화로운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우리가 지금 현재평화로운 행동을 하지 않으면 평화로운 미래는 오지 않는다. 우리 코리밀라 공동체는 궁금해 하고, 호기심을 갖는데 용기를 가진 사람들과 지내기를 좋아한다. 그 사람들이 변화를 만든다고 믿는다. 그 사람들이 신뢰받는 사람일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을 많이 불러 모을 수도 있다.

 

한편, 궁금증이 많은 사람들은 쉽게 지칠 수 있다. 의심도 많이 받고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호기심 많은 이들을 지원하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 평화활동가들을 만나는 공간, 일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들이 이 공동체에 와서 쉴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프로그램을 많이 하기보다는, 사람들이 그냥 와서 쉴 수 있는 공간, 생각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가고자 한다.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은 현재 권력 관계에서 보면 위험한 사람들이다. 소외된 사람들이기도 하다. 호기심을 가진 사람은 두려움을 동반한 성숙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이다. 두려움을 갖는 것은 괜찮은 일이다. 분쟁은 예측할 수 있지만, 오히려 평화는 예측 가능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두려움을 두려워하는 것 때문에 평화를 얻기 어렵다. 우리가 궁금함을 갖지 못하고, 용기를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은 두려움 자체가 아니라 그 두려움을 두려워하는 것 때문이다. 앞서 평화는 무엇인가 질문한 사람이 있는데, 그것에 대한 한 가지 대답은 우리는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평화를 가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져 본 것은 만남이고 용기이고, 어떤 두려움을 감소시키는 행동이고, 그런 것을 우리가 해 온 것이다.”

 

포드릭은 내가 한 물음, 평화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답을 주었다. 한 개의 대답이라고 했다. 다른 더 많은 대답은 나한테 달려 있다. 내가 만나고,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가고 찾아가야 한다.




저녁을 먹고 만난 이본 네일러 선생님도 그랬다. 인형극과 평화교육 강의, 인형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에서 실마리를 잡아서 자기 이야기를 이어간다. 종교 상징물을 들고 상대가 어떤 느낌을 표현하는지, 돌아가며 듣다 보니 내 손에 든 달마상을 보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다르고, 사람마다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편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서로 다른 사람들, 사람들 사이의 갈등하는 이야기를 인형을 가지고 풀어낼 수 있다. 왕따, 싸움, 소외, 고통을 상대의 처지에서 말하고, 느껴 볼 수 있는 것. , 그래서 인형극이라는 형식을 넘어서 인형극 내용에서 자기 모습을, 다른 사람의 모습을 느껴보고 연대하고, 공감해 보는 것. 이래서 인형극과 평화교육이 닿는다. 가슴 절절하게 느끼고 공감을 나눌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끌어 나가는 이본 네일러 선생님의 내공이 무서울 정도로 엄청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내공은 하루아침에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쩌다 30년 가까이 교실에서 학생들과 살아 온 나는 어떤 내공을 이야기로 내보일 수 있을까? 재작년 서울에서 이본을 만났을 때 그때는 느끼지 못한 놀라운 능력을 보았다. 평생을 특수교육에 애쓰면서 인형을 가지고 만나고 소통하는 일에 전념해 온 사람이 보여 주는 모습은 감동이다.

 

9시 전체 명상 기도 모임에 가 보았다. 동굴 같은 방에 어린이까지 스무 명 남짓 둘러 앉아 기도문을 같이 읽고, 이본 네일러 선생님이 만남, 갈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상황을 가지고 인형극을 보여주셨다. 모두가 숨죽이며 인형극을 보고, 생각을 나눈다. 이본은 앞서 두 시간 강의를 하고, 바로 이어서 또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 주신다. 다 같이 다짐하는 노래를 부르고 헤어졌다.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살짝 흐려서 별은 쏟아지지 않지만, 거센 소용돌이가 친다는 저편 바다도 고요하다. 그리고 파란 잔디가 자리를 잡은 마당을 천천히 걸어서 밤 숙소로 돌아와 몸은 피곤하지만,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한다. 여기 코리밀라에서 느끼는 이 뜨거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를 생각하면서 타자를 치면서 기록을 한다. 내일도 코리밀라를 이끌어 온 네 분을 만나야 한다. 션 페터스, 쇼나 벨, 콜린 크렉, 데릭 윌슨. 정말 기대가 되는 만남. 궁금한 것을 묻고 또 묻기로 한다. (2019. 1. 15.)



 

박종호십여 년 전 어린이어깨동무 후원회원으로 인연을 맺었으며, 현재 어깨동무평화교육센터 연구위원, 신도림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지내고 있으며, 학생들과 손잡고 금강산, 백두산으로 수학여행을 가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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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2019. 2. 19. 23:54

[시선 | 베를린 윤이상하우스에서 보내는 평화의 편지]


평화의 북소리를 그리며


 정진헌

 

기해년, 황금돼지해라는 새해가 밝았습니다. 독일에서 새 해 첫날은 카운트다운과 함께 쏘아 올리는 크고 작은 폭죽 소리와 불빛으로 시작합니다. 평상시 조용히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독일인들도 저마다 거리로 쏟아져 나와 각자 가져온 폭죽에 불을 붙여 하늘로 쏘아 올립니다. 일 년 중 12월말 단 며칠만 폭죽을 판매하고 연말연시에만 터뜨릴 수 있기에 가족 단위로 혹은 친구들과 함께 요란하다 싶게 새해를 맞이합니다. 그러나 새해맞이 법석도 그때뿐입니다. 독일에서 1월은 그리 유쾌한 달이 아닙니다. 밤은 긴데 짧은 낮 동안에도 해 보기가 어려운 날씨 탓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쉽게 감기에 걸리거나, 우울해 합니다. 성탄절 장터에서 흥겹게 보내는 12월과는 일상의 분위기가 다릅니다. 그래서 간혹 저는 1월을 보내봐야 독일에서 왜 철학이나 신학 등이 발달했는지 이해한다는 농담을 하곤 합니다. 존재 자체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계절이 새해 첫 달인 1월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올 해는 연초부터 불운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일은 꼬였고, 경제적 손실도 생겼으며, 감정도 상했습니다. 액땜이라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억울한 일로 심리적 고통을 겪는 와중에 든든하게 내 편이 되어준 분들이 많았다는 것. 그렇게 마음 한 켠을 추스르며 스스로 평온을 찾으려 했으나 쉽지 않았습니다. 억울함과 분함을 부추기는 자존심과 정의감, 포기와 좌절을 종용하는 개인주의, 저항과 대안을 시도해보려는 모험심 등 내 안의 다양한 욕구와 가치관들이 서로 엉키거나 부딪쳤습니다. 그러나 개인의 내면이 요동치는 와중에도 이역 땅 베를린에서는 역사적인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그 중 첫 번 째는 세계 남자 핸드볼 선수권대회에 남북단일팀이 참가한 것이었습니다. 작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이어 스포츠가 평화와 화해에 기여함을 보여준 사례라며 독일 외무성 장관이 개막식 인사에서 유난히 강조하였습니다. 비록 독일과의 개막전에서 패했지만 남북한 선수들처럼, 북측 대사관 소속 직원과 가족들도 남측 사람들과 함께 공동 응원단으로 참가하였었기에 의미가 컸습니다. 장벽을 거두어 낸지 이제 곧 서른 해를 맞는 베를린은 남과 북에게 잠정적 통일과 화합을 선경험케 해 주는 접촉 공간(contact zone)이 되어 주었습니다. 경기장 밖은 빨리 어두워지고 춥고 바람이 불었지만, 단 백 명밖에 안 되는 남북 응원단이 35천의 독일 관중 속에서도 뒤지지 않고 목청껏 코리아 이겨라를 외치며 뜨거웠습니다.


 

세계 남자 핸드볼 선수권대회 남북단일팀

 

민족의 하나됨을 염원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과거사와 현재를 두루 살피는 일과 떨어질 수 없습니다. 핸드볼 대회가 마무리된 후 베를린에는, 현재 일본에서 부당하게 차별받고 있는 조선학교 상황을 알리고 연대하고자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아동인권위원회에 일본 정부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조선학교 학부모회와 그분들을 지지하기 위한 한국시민연대 그리고 해외동포연대 분들이 참석하셨습니다. 조선학교 학부모님들은 독일까지 오시지는 못한 채 귀국하셨고, 대신 한국과 미국에서 오신 활동가분들과 함께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우리는 며칠 전부터 손님맞이와 행사 준비를 나누어 진행했고, 다양한 연령대의 교민은 물론, 일본여성모임과 독일 활동가들도 초대했습니다. 남북이 하나 되는 길은 단지 한반도 영토안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750만 정도 되는 해외 한인들도 분단국가의 축소판을 경험합니다. 그 중에서 재일 조선학교의 현재와 미래는 진정한 한반도 평화의 내용성을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기에 동포 연대를 통한 국제적 지지세력 확보는 매우 중요합니다.



베를린 조선학교 간담회

 

우리의 근현대사는 고난의 서사시임에 분명합니다. 성공적 이야기를 위해 과거의 고난이 더욱 부각되기도 합니다. 최근 한국은 3050클럽 즉, 5천만 이상 인구를 지닌 국가 중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불을 넘는 국가들 대열에 일곱 번째로 들어섰다고 합니다. 식민지를 경험한 국가로서는 처음이라니, 굴곡 많은 근현대사를 돌아보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성공 신화가 미완의 역사적 과제와 현재적 어려움 등을 가리는 구호가 될 수는 없습니다. 최근 한국은 계층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우리의 젊은 세대들은 무한 경쟁 구도 속에서 인성과 감수성이 피폐화되고 있습니다. 다들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상황에서는 더 힘든 약자가 보이질 않고,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도 근시안적으로 접근하게 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중시하면 결국 구관이 명관이 된다는 식으로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현실과 타협하거나 굴복하는 대신 무엇이 옳은 길인지 외로워도 꿋꿋이 걸어가는 삶은 고결합니다. 우리는 올 1월에 그러한 어르신을 잃었습니다. 14살 어린 소녀로 끌려가 22살까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셨던 김복동 할머니. 고인께서는 1993년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최초로 위안부 문제를 직접 증언하신 이후 국제 평화와 인권을 위한 운동가로 향년 93세까지 한길을 걸으셨습니다. 고인의 혼은 이제 나비가 되어 훨훨 저 세상으로 떠나셨지만, 고인의 유지는 이제 우리 후대의 몫이 되었습니다. 고인의 넋을 기리고자 윤이상하우스에 작은 소녀상과 함께 추모 공간을 만들어 제를 올렸습니다.

 

윤이상하우스 김복동 할머니 추모공간

 

그리고 할머니의 단호한 외침이 새겨진 손목 띠를 차기로 했습니다; “There must never be another victim like us (다시는 우리와 같은 희생자가 나와서는 안됩니다)” Kim Bok-Dong


할머니께서는 과거의 희생자이시지만, 과거에 머물러 계시지 않고 미래적 열망을 실천해 오신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육신이 갈가리 찢기는 고통을 겪으셨고, 오랜 동안 피해 사실을 숨겨야 했던 사회문화적 폭력에 크나큰 마음의 상처를 입으셨을 텐데도 고인의 바람은 현재와 미래 모두에서 더 이상 할머니 같은 피해자가 나와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바람은 그토록 지켜지기 어려운 걸까요? 일본 정부나 천황의 진정성 어린 사과를 받아내는 게 그리도 어려운 일일까요?

 

2차 세계 대전 패망국 독일은 그 죄과로 분단이 되었고, 나치 전범들을 끝까지 찾아내 단죄함은 물론이요, 동방정책의 일환으로 빌리 브란트는 폴란드 바르샤바 유태인 추모비 앞에 무릎 꿇고 국가적 사죄를 올렸습니다. 세계적으로 유태인 세력이 컸던 이유도 있지만, 이러한 역사적 참회는 지금도 공공의 기억으로 재생되고 있습니다. 반면에 일본은 전범으로서 어떠한 처벌을 받았고 스스로 참회를 했던가요? 분단도 조선반도가 당했고 그로 인한 동족상잔의 비극도 조선땅에서 벌어졌습니다. 위안부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민간의 일이거나 개인적 선택의 문제였다는 지극히 몰역사적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을 뿐이지요. 물론 지난 박정희 정권 시기 그리고 그의 딸 박근혜 정권 시기를 거치며 한국 정부도 절반의 책임을 안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우리 안의 파시즘 역시 성찰하며, 할머니의 유지처럼 미래지향적 역사의식을 반듯하게 세워야 하는 과제를 위해 예술, 학문, 일상의 영역에서 다각도로 노력해야 합니다.

 

윤이상 선생님은 고통에 대한 인지를 작곡가의 생명으로 보셨습니다. 1983년 하신 말씀입니다; “A composer cannot view the world in which he lives with indifference. Human suffering, oppression, injusticeall that comes to me in my thoughts. Where there is pain, where there is injustice, I want to have a say through my music. (무심하게 살아가는 작곡가는 세상을 볼 수 없다. 나는 인간의 고통, 억압, 불의에 대해 생각한다. 고통이 있는 곳, 불의가 있는 곳에서 나는 나의 음악을 통해 말하고 싶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가 수면위로 올라오기 전인 1986, 일본 도쿄에서 교향곡 제4“Im Dunkeln singen (어둠속에서 노래하라)”가 세계 초연됩니다. 이 작품은 전쟁 중에 수탈당하고 상처받은 여성들, 다시 말해, 일본군 위안부들의 고통을 위안하고, 평화를 염원하고자 작곡한 것입니다. 김복동 할머니께서 자신의 고통이 미래에도 반복되지 않도록 염원하셨듯이, 윤이상 선생께서는 위안부 여성들의 아픔을 보편적 언어인 음악을 통해 승화시키셨던 것입니다. 그것도 전범국 일본의 수도에서 말이지요.

 

올해는, 북측에서는 3.1 인민봉기라 불리는 3.1운동 백주년이자, 상해 임시정부 수립 백주년을 기리는 해이기도 합니다. 2차 북미회담도 곧 열린다고 하니,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도 한 단계 진전되리라 봅니다. 이럴 때일수록 과거의 잘못에 대해 보다 엄격해야 합니다. 구습은 아주 쉽게 되풀이되고, 기득권 세력들은 기회를 틈타 항상 자신들의 자리를 재생산하려 합니다. 과거를 덮고 통 큰 화해를 얘기하는 건 약자와 피해자의 권리와 관용이지, 기득권자의 몫이 아닙니다. 역사의 상흔을 감성으로 느끼고 공감하며 미래지향적으로 승화시키는 노력은 이제 모든 영역에서, 그리고 국가를 초월하여 실천해야 합니다.

 

독일에서도 3.1운동 백주년을 기리는 뜻 깊은 공연이 기획되어 있습니다. 윤이상 선생님의 초기 음악활동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다름슈타트 시의 현대음악제 폐막 작품인 타악기 독주곡 마르시아스(Marsyas)가 그것입니다. 작곡가 코드 마이에링(Cord Meijering) 선생이 3.1절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을 윤이상하우스 상주음악가 정은비씨가 31일에 연주합니다. 마르시아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숲의 정령으로, 자신의 피리 연주에 도취되어 아폴로와 경쟁했다가 지고 맙니다. 그 형벌로 피부가 벗겨져 그 피부는 북이 됩니다. 그 북을 칠 때마다 마르시아스는 고통을 느꼈다지만, 그의 고통은 오히려 북소리로 승화되어 악기의 전설로 전해지게 되었답니다. 3.1운동과 만난 마르시아스는 일제의 총칼에 맨몸으로 저항한 조선 백성, 일본군 폭압에 짓밟힌 위안부가 됩니다. 평화적 시위는 무참히 짓밟히고, 위안부 소녀들의 아픔도 오랜 동안 무시되었었지만, 그 정신은 다시 살아나 더 큰 평화를 향한 열망의 몸짓과 소리로 재현됩니다. 수십 개 다양한 타악기들의 울림으로 부활할 나비의 꿈. 새로운 역사의 봄도 힘찬 북소리로 깨어나리라 기대해 봅니다.

 


마르시아스 타악연주가 정은비 & 공연복장을 협찬해 준 소녀상 작가 김서경

 

우울하고 힘들었던 기해년 첫 달을 보내며 다시 한 번 역사를 돌아보고 마음가짐 역시 새로이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까치까치 설날이 왔습니다. 정초의 불운은 음력 지난해로 넘기고, 올 한해 어깨동무하며 다시 새 역사의 한길 더불어 갈 수 있겠습니다. 어깨동무 친구들 모두 평화의 북소리가 울리는 기해년 되시길 바랍니다.

 


정진헌어린이어깨동무 간사 출신으로,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독일 괴팅엔 소재 막스플랑크 종교와 민족다양성 연구원 선임연구원을 역임한 후, 현재 베를린 자유대학교 역사와 문화학부 한국학과 연구교수로 재직하며, 윤이상하우스 운영을 맡고 있다. 저서 및 공저로는, Migration and Religion in East Asia (2015), Building Noah's Ark (2015), 무엇이 학교 혁신을 지속가능하게 하는가 (2015), 한국의 다문화주의 현실과 쟁점 (2007), 북한에서 온 내친구(200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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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2019. 2. 19. 23:34

[시선 | 평화의 마중물]


역사의 길에서 평화를 찾다

 

김영환

내가 처음으로 일본 땅을 밟은 것은 1997년 여름의 일이다

 

남북어린이어깨동무의 자원봉사 활동을 하던 친구들과 함께 일본 최북단의 땅 홋카이도(北海道) 슈마리나이(朱掬内)를 찾았다.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조선에서 머나먼 혹한의 땅으로 강제연행되어 혹독한 강제노동의 끝에 죽어간 희생자들의 유골을 발굴하기 위해 열린 한일대학생공동워크숍’(현재 동아시아공동워크숍)에 참가하기 위해 나선 길이었다.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로 얼룩진 역사의 진실과 마주하기 위해 달려온 일본인, 재일조선인, 아이누1)친구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리며 삽을 들었다.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두 나라의 역사를 상징하는 듯 빽빽하게 얽힌 대나무 뿌리를 걷어내고, 조심스레 한 뼘 한 뼘 땅을 깎아 내려가자 쪼그린 자세로 유골이 되어 묻혀있는 이름 모를 강제동원 희생자와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 교과서로만 배우고 말로만 들은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처음으로 눈앞에 마주한 순간이었다.

 1)아이누: 일본 홋카이도와 러시아의 사할린, 쿠릴열도 등지에 분포하는 선주(先住) 민족

 

이름도, 국적도 알 수 없는 희생자는 유골이 되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고통과 암흑의 세월을 딛고 역사의 증인으로 모습을 드러내어 그 자리에 함께 한 사람들에게 수많은 물음을 던졌다.

 

이 사람은 식민지에서 끌려온 조선인인가 아니면 빚에 쫓겨 온 일본인 노동자인가? 이 사람은 어디에서 어떻게 이곳까지 끌려왔을까? 왜 이 사람은 1945년 해방이 되고 60여년이 지나도록 아무도 찾지 않는 오지의 숲속에 묻혀 있을까? 고향에는 이 사람을 기억하는 가족들이 있을까?’

 

60여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본 강제동원 희생자는 그 자리에 함께 한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만남을 선사했다. 한국인, 재일조선인, 일본인, 아이누 등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가진 존재들이 유골을 통해 과거의 역사를 함께 마주하고, 서로의 다름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곳에서 분단의 현실을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재일조선인 친구들을 처음으로 만났고, 70년대부터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의 역사를 밝히고 평화를 일구기 위해 애써온 일본의 시민들과 처음으로 손을 잡았다.

 

그곳에서 국가와 민족 벽을 넘어 손을 잡은 사람들은 참혹한 강제노동의 끝에 죽어간 희생자가 던진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길에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자신들의 삶을 변화시켜 왔고 지금도 그 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다. 나 역시 일본에서 5년 동안 평화운동을 배웠고, 지금도 역사의 길에서 평화를 찾는 활동을 하며 살고 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났다

 

20181030, 한국 대법원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제철(신일철주금 주식회사’)에 동원되어 강제노동을 당한 원고 4명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들이 입은 강제동원 피해에 대해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하여 피고 신일철주금이 원고들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1943년 일본으로 끌려가 강제노동을 당한 19세의 청년 이춘식은 94세의 노인이 되어 법정에서 승소판결을 들었다. 그러나 2013년 고등법원에서 승소판결을 받고 함께 만세를 부르며 기쁨을 나눴던 원고 여운택 할아버지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1997년부터 21년 동안 일본과 한국의 법정에서 함께 싸워 온 신천수 할아버지도, 2005년부터 13년 동안 한국의 법정에서 함께 싸워 온 김규수 할아버지의 모습도 이날 법정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박근혜의 청와대와 외교부는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한 정치적 야합을 꾀하면서 한일관계의 악화를 빌미로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미루도록 지시했다. 양승태의 사법부와 피고 일본 기업의 대리인 김앤장은 한통속이 되어 온갖 꼼수를 동원하는 재판거래를 통해 확정판결을 고의로 지연시켰다. 국가권력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자들이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목숨을 대가로 추악한 재판거래를 벌이는 동안 이 날을 평생 기다려왔을 세 분의 피해자는 끝내 승소판결의 기쁨을 맞지 못하고 이미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누구를 위한 국가이고, 누구를 위한 정부이며, 누구를 위한 사법부인가?

 

1997년부터 일본 법정에서 시작된 재판투쟁을 지원해 온 일본 시민들도 이 날 법정에서 승소판결의 기쁨을 함께 했다.

 

우에다 게이시(上田慶司), 나카타 미쓰노부(中田光信). 40대의 공무원 신분으로 재판지원 활동을 시작해 온 두 사람은 여운택 할아버지가 재판을 위해 처음으로 일본을 찾은 날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당신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오라며 자신들에게 돈을 주었는데, 처음에는 일본 사람은 못 믿겠다며 할아버지가 돈을 맡기기를 주저했다는 것이었다. 그 뒤 2003년까지 일본에서 진행된 재판을 위해 할아버지가 일본을 찾을 때마다 지원자들은 할아버지와 술잔을 주고받으며 부자지간처럼 막역한 사이가 되었고, 한국에서의 재판투쟁도 지원하며 할아버지의 곁을 지켜왔다. 할아버지가 끝내 승소판결을 듣지 못하고 돌아가신 뒤에는 매년 성묘를 거르지 않는 정성을 쏟아왔다. 할아버지를 회상하며 두 사람은 애써 참아왔던 눈물을 훔쳤다.

 


왼쪽부터 우에다 게이시(上田慶司) , 여운택 할아버지, 나카타 미쓰노부(中田光信)

 

강제동원 판결을 둘러싸고 한일관계의 악화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1965한일협정을 졸속으로 맺어 일제 피해자들의 권리를 짓밟았다. 2015년 박근혜는 외교참사로 일컬어지는 이른바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한 합의를 발표하여, 수십 년 동안 자신들의 존엄의 회복을 위해 싸워 온 일본군 위안부피해자들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았다.

 

2018년 대법원의 승소판결이 있기까지 역사 정의와 피해자들의 권리회복을 위해 노력해 온 것은 필요할 때만 국익을 말해온 권력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바로 외로운 투쟁을 포기하지 않고 견뎌 온 피해자들, 그리고 그들의 손을 잡아 온 수많은 이름 없는 시민들이다. 국익을 들먹이며 한일관계의 악화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피해자의 곁에서 손잡아 온 이들에게 동아시아의 평화로운 내일이 있다.

 


김영환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 동아시아공동워크숍, 평화자료관·쿠사노이에(), 평화박물관에서 평화운동을 했다. 동아시아 시민들이 국가와 민족의 벽을 넘어 이곳에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살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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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2019. 2. 19. 23:25

[시선 | 음식으로 만나는 남과 북]


대한민국의 대표 생선이 된 함경도의 생선과 음식 문화

명태

 

박정배 음식칼럼니스


명태는 북한을 대표하는 생선이자 한민족 특유의 음식이었다. 러시아어 민타이(минтай), 중국어 밍타이(明太), 일본어 멘타이(明太)는 모두 명태에서 유래한 말이다. 명태에 관해 가장 오래된 기록은 함경도 회령에서 근무했던 무관(武官) 부자(父子)의 일기인 부북일기(赴北日記) 1645420일자에 판관이 생대구 2마리, 생명태(生明太) 5마리를 보내주었다로 나온다.

 

함경도의 생선 명태와 명태매운탕

 

명태라는 이름이 명천씨에서 왔다는 임하필기(林下筆記, 1871)의 전설 같은 이야기도 함경북도 명천이 무대다. 북한에서는 칠보산 근처 명천읍 보천마을에 명태란 이름을 만든 주인공인 태씨가 사는 '명태집'이 있다는 이야기가 잡지나 책에 자주 등장한다. 명태는 함경도의 특산물로 빠지지 않는다. 특히 신포의 명태와 명란젓이 유명하다. 북한의 천리마(200910) 잡지에는 명태에 관한 과장이 섞인 기사가 나온다. '명태 생선국은 입맛을 잃고 죽음의 문어구에서 헤매던 사람들에게도 생기와 활력을 주는 특효 있는 명약이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한겨울에 뜨뜻한 아래 구들에서 얼벌벌하게(얼얼하게) 한 그릇만 먹어도 10년 묵은 고뿔이 뚝 떨어진다는 명태 생선국이며 명태의 내장은 다 꺼내고 대신 갖은 양념을 한 순대 감을 다져 넣어 처마 끝에 주렁주렁 매달았다가 설명절 날 아침에 센 불에 푹 쪄내는 명태 통 순대, 대소한의 강추위에 얼대로 얼고 마를대로 말라 잘 타갠 솜 같이 부풀어 난 북어(마른 명태)를 쭉쭉 찢어 먹는 맛이란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지경이다.' 재료 그대로의 맛에 얼큰한 고춧가루를 섞어 먹는 함경도식 조리법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 명태매운탕은 2017년에 북한의 국가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명태매운탕은 줄여서 명태국으로도 부른다. 조리법은 기본적으로 명태 대가리 국물에 명태와 알, 고지(명태 수컷 정소), 두부를 넣고 고추장으로 간을 한 음식이다. 여기에 게살을 넣어 맛을 돋구기도 하고 소고기 맑은 장국을 국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용대리 황태덕장

 

 

북한 명태 사정과 남북한 명태 방류 사업

 

북한에서는 음력 11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를 명태철(명태잡이철)’이라고 한다.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중반까지 명태는 북한의 중요한 식량자원이었다. 김일성은 우리나라에서는 인민들의 부식물 문제를 푸는 데서 물고기 생산을 늘이는 것이 축산업을 발전시키는 것보다 더 낫습니다.'(로동신문 19751125일자)라고 했다. 당시 명태 어로를 '명태폭포 쏟아지네' (조선문학 19743)라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북한에서도 최근 들어 남한과 마찬가지로 명태 수확량이 줄어들면서 2017년부터 함경북도 련진수산사업소의 주도 하에 명태 인공알 받이새끼명태 기르기를 시도해 20174월말부터 5월 상순까지 수십만 마리의 새끼명태를 여러 차례에 걸쳐 동해에 놓아주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남한의 명태는 거의 사라졌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고성 앞바다에 명태 1226000마리를 방류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재포획된 방류 개체는 총 4마리가 전부다. 해양수산부는 2019년부터 수산자원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에서 명태의 포획금지기간을 연중으로 신설함에 따라 앞으로는 대한민국 산 명태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완전이 없어졌다. 조선시대부터 함경도, 강원도 앞 바다에서 잡힌 명태의 주 소비처는 서울과 경상도를 중심으로 한 한반도 전체였다. 겨울에는 얼린 동태로, 봄 여름 가을에는 북어나 황태로 남쪽 사람들의 밥상과 제사상에 명태는 빠지지 않던 생선이었다.



고성 해양심층 고성태

 

명태를 부르는 다양한 이름들

 

명태는 크게 생태와 마른 명태로 나누어 이름이 구분된다. ‘선태鮮太는 생선명태生鮮明太의 약자인데, ‘태어太魚와 함께 생태를 지칭한다. ‘동태凍太는 동해안 일대와 서울에서 부르던 명칭으로 몽둥이처럼 딱딱하게 자연상태에서 얼은 생태를 말한다. 망태網太는 일반적으로 그물로 잡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함경남도의 방언으로 그물로 잡는 것 중에서도 가장 크면서 비싼 명태를 지칭한다. 크기에 따른 구분으로는 왜태애태가 있는데, 왜태는 함경남도의 방언으로 특대特大의 명태를 말한다. 왜태와 반대되는 의미의 애태 역시 함경남도 방언으로 막물태로도 불린다. ‘또는 아기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아주 작은 명태를 말한다. 잡히는 지역으로 명태를 구분하기도 한다. ‘강태江太는 강에서 잡히는 명태가 아니라 강원도에서 잡히는 명태를 말한다. 서울 지역에서는 색이 검고 가벼워 품질이 나쁜 건명태를 부르는 말이었다. ‘간태杆太는 강원도 간성군 연안의 명태를 일컫던 말이다. 원산에서도 강원도산 명태를 강태 또는 간태라 불렀다. 그밖에 반 건조한 코다리와 어린 명태인 노가리도 있다. 현재 북한에서 많이 먹는 마른 명태로는 짝태가 있다.

 

 

북한의 노랑태 대한민국에서 황태가 되다

 

원산 이북의 추운 땅에서 만들어진 북어를 사람들은 노랑태 또는 더덕북어라 불렀다. 지금 우리가 먹는 황태다. 속이 노랗고 포실하게 살이 오른 황태는 분단 이전에는 남한 땅에서 만들 수 있는 먹거리가 아니었다. 부드러운 황태가 1950년대 말 실향민들에 의해 횡계의 용대리에서 본격적으로 생산되면서 남한 사람들은 황태를 비로소 소비하기 시작했다. 현재 대한민국의 황태나 북어는 러시아산 명태를 인제군 용대리와 평창군 횡계리에서 주로 가공한다. 북한의 음식 문화가 남한에 가장 안정적으로 정착한 예다. 1973312동아일보기사는 남한에서의 황태 역사를 선명히 증언해주고 있다. “휴전 3년 뒤인 1956년이었지요. 그해 봄부터 노랑태를 만들 수 있음직한 곳을 찾아 헤매던 중 대관령에 들렀을 때 손뼉을 쳤지요. 대관령 원주민들이 가을에 동해안에 내려가 명태를 사다가 일부는 먹고 나머지는 다음해에 먹으려고 새끼로 꿰어 처마 밑에 걸어두곤 하는데 이것이 봄이 되면 껍질이 노랗게 되고 고깃살도 폭신폭신해지는 게 훌륭한 노랑태가 아니겠어요.”

 

우리 명태는 없지만 황태와 북어 문화는 남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명태가 사라지면서 생태 문화도 대한민국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다. 북이건 남이건 명태가 풍성한 동해 바다를 기대한다. 점심에는 횡계에서 북어 해장국을 먹고, 저녁에는 함경도의 명태 매운탕을 먹을 날을 꿈꾼다.



고성 거진항 황태국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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