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레터(글)2019.02.20 01:01

[이슈]


신년의 희망과 다짐

평화로 한 걸음 더평화를 위한 모두의 어깨동무!

 

정영철


2018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평화와 번영의 첫 발을 뗀 한 해였습니다. 전쟁의 위기를 딛고 남북의 정상이 세 번씩이나 만나 전쟁없는 한반도를 선언했고, 70여 년을 적대관계로 대결해왔던 북과 미국이 만나 평화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합의하였습니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2018년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거대한 발자국을 뗀 해로 역사에 기록되기 충분하다 하겠습니다.

 

이제 새로운 희망의 2019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이미 많이 알려졌듯이, 북은 2019년 신년사를 통해 북미간 회담은 물론이고 남북간에는 화해와 협력을 더욱 가속화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였습니다. 신년사에서 밝힌 대로, 김정은 위원장은 연초에 중국을 방문하여 더욱 적극적인 외교적 행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고,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이야기도 벌써부터 일정과 장소 문제를 중심으로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신년사를 통해 한반도 평화의 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고, 올해 더욱 속도를 낼 것이라고 하여, 평화를 향한 행보를 지속할 것을 천명하였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올 한해도 남북 그리고 미국과 중국을 엮는 드라마같은 변화가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는 한반도 평화를 향한 한 걸음 더 의미있는 진전이 되리라고 기대됩니다.

 

다가오는 2차 북미 정상회담과 서울에서의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게 되면, 지금의 답답한 교착상태가 풀릴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렇게 되면 지난 시기 남북관계의 단절을 상징했던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재개도 북의 비핵화에 발 맞추어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대북제재가 해제되고 남북의 협력이 차질없이 진행되어야 하겠지만, 올해 남북이 밝힌 신년사와 최근의 북중, 북미간 움직임을 통해 그럴 가능성이 한층 높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남북관계는 평화와 번영으로 한발 더 내딛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지금까지의 움직임이 모두 정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부가 중심이 되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다각도의 노력이 진행되는 것은 바람직하고, 앞으로도 더 적극적인 발걸음이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한반도의 평화는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정부의 평화를 위한 발걸음에 민간도 함께할 때 더 공고한 평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한 해가 모두를 당황스럽게 할 정도의 속도와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민간이 미처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면, 올 해는 민간도 그 길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해야 할 것입니다. 모두 평양을 방문하고자 하는 희망과 단절되었던 북과의 교류와 협력을 말하지만, 이 길을 가장 확실하게 열어젖히는 방법은 한반도에 평화가 공고화되고, 남북의 공존과 번영에 대한 가치가 확고해지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는 정부대로, 민간은 민간대로 평화와 번영을 위한 자기의 역할을 다하는 길 이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아직은 우리 사회 곳곳에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보다는 여전히 대결과 적대를 원하는 세력, 북과 미국의 만남에 불만을 가지는 세력이 적지 않게 남아 있습니다. 남북의 정부, 미국 그리고 중국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변화의 길목에서 이들이 언제든지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민간이 평화를 위한 여정에 든든한 받침대가 되고 전 국민이 평화와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올 해 우리의 과제는 평화로 한 걸음 더: 평화를 위한 모두의 어깨동무!’가 되어야 합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올 한해 <어린이어깨동무>도 이 길을 변함없이 걷고자 합니다. 끊어졌던 대북 인도적 지원의 재개를 비롯해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다양한 사업들을 펼치고자 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의 길에 함께 할 수 있도록 어깨동무의 평화교육과 평화활동을 강화할 것이며,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북녘의 어린이들을 위한 지원활동도 더욱 창의적이고 서로의 온기를 느낄 수 있도록 전개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우리 회원분들과 어깨동무를 지지하고 격려해주신 모든 분들이 함께 해야 합니다.

 

어깨동무의 모든 회원분들 그리고 어깨동무를 지지하고 격려해주신 모든 분들과 함께 평화와 번영의 길에서 함께 하기를 기원하며, 2019년의 새해 인사를 대신합니다. 흔히들 꿈은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하면 실현된다고 합니다. 새해가 벌써 한 달을 넘긴 이 시점에 이 평범한 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곱씹어 봅니다. 모두가 어깨동무하는 그 길에 평화와 번영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2019평화를 위한 모두의 어깨동무의 길을 걷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분들의 가정에 올 한해를 상징하는 복된 돼지가 한 아름 안기길 바라면서, 평화와 번영의 길에서 두 손 꼬~옥 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영철 |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서울로 상경해 공학을 전공하다 진로를 바꿔 사회학을 공부하였다. 북한, 통일, 평화에 대한 연구가 관심사이며, 지금은 서강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반도 평화가 곧 어린이의 미래라는 생각에 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에 발을 들여놓고 일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9.02.20 00:54

[시선-한반도 평화읽기]


코리밀라 공동체에서 보낸 꿈같은 시간

평화는 만남과 용기두려움을 감소시키는 행동

박종호


북아일랜드에 온 지 셋째 날, 115, 코리밀라에 가는 날이다. 나는 20172월에도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 연수에 참여하여 이곳에 온 적이 있다. 두 해 만에 다시 가는 길, 그 사이에 얼마나 바뀌어 있을까, 내가 알아 볼 사람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틀 밤을 묵을 준비를 하면서 짐을 꾸려서 버스에 탄다. 모두 열여섯이 함께 움직이는 터라 부산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버스는 벨파스트를 벗어나 밸리캐슬로 달려간다. 한 시간 반 정도 달려서 코리밀라에 도착하자, 데릭 윌슨 박사, 포드릭 오투마 대표가 반갑게 맞아 준다. 데릭은 서울에 오셨을 때 파주 북한군 중국군 묘지에 같이 간 적이 있는데, 그때를 기억하면서 반가워해주셨다. 어깨동무와 인연이 깊은 자원봉사자 오진의 선생도 반갑게 만났다.

 

짐을 풀고, 등 뒤로 바다가 보이는 큰 방에 나는 그 때 그 자리에 다시 앉아서 포드릭과 인사를 나누었다. 포드릭은 코리밀라의 역사를 찬찬히 소개하고, 둘레를 돌아다니면서 공간에 대한 사연을 풀어놓는다. 이곳에 평생을 바친 봉사자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정원, 우리가 머무는 곳의 벽에 걸린 자전거 그림에 얽힌 사연을 들으면서 코리밀라 공동체가 걸어 온 길이 그저 그런 시간이 지나가서 쌓여 온 곳이 아니고 열정과 헌신, 지치지 않고 느리지만 목표를 향해 걸어 온 이들의 땀과 기도가 일군 곳임을 알았다.

 

코리밀라(Corrymeela) 공동체는 북아일랜드의 혼돈과 대립, 갈등의 시기에 젊은이들이 서로 다른 이들과 만나서 풀어가는 공간을 마련하는데서 출발하였다. 경치가 좋은 곳에, 바깥에서 일정하게 분리 고립된 곳에서 만남과 대화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그 환경이 주는 이점을 살리고, 이를 공간을 가꾸고 만드는 일에도 어김없이 실현하고자 한다.





포드릭은 강의를 시작하면서 바로 우리들에게 돌아가면서 이곳에 와서 지금 마음에 어떤 질문을 품고 있는지 나누자고 한다. 이 공간에 와서 무슨 궁금한 것이 생겼나? 잠깐 생각하고 나는 차례가 되자 두 해 전에 이곳이 왔을 때는 바다가 보이는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만 들었는데, 오늘 다시 와서 둘러보면서 이곳에서 꿈을 이루고자 애쓴 분들의 뜻이 곳곳에 스며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제 벨파스트에서 북아일랜드 평화프로세스 이야기를 들으면서 평화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심지어 북아일랜드 평화프로세스를 지원하는 경제 지원 프로젝트 제목이 ‘Peace’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평화가 돈이라는 점에도 신기하고 놀랐다. 정말 내가 아는 평화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내 이야기를 종이 칠판에 적은 데릭 윌슨은 “WHAT IS PEACE?”라고 적었다.

 

자유에 대해, 공부에 대해, 관계에 대해 같은 물음이 이어지고, 큰 종이 두 장에 가득 질문을 적은 뒤에 포드릭은 찬찬히 이야기를 이어간다. 사람이 만나는 것은 내러티브가 만나는 것이고, 갈등도 그대로 내러티브에 반영되어 나타난다. 궁금증, 호기심(Curiosity)이 배움과 만남에 정말 중요하다. 책 읽기가 호기심을 채우는데 필요하며 읽기에서 상상력, 감수성이 발휘된다. 책을 읽는 일은 상상력을 키우고, 상상력은 사람을 만나거나 할 때 필요한 공감능력을 키우는데 필요하다. 적대적인 사람들이 만나는 일은 서로 다른 내러티브가 함께 펼쳐지고, 위험한 상황이 따르지만, 그래도 여기서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평화로 가기 어렵다. 예를 들면 젠더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여성이 참여하지 않으면 어떤 문제도 해결이 불가능하다. 사람들이 조약을 먼저 맺고 그 다음에 만나라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다. 모든 것을 따라서 해라 하면, 그냥 이끄는 것이고, 뜻을 이룰 수 없다. 사람들이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가 필요하고, 그 안전한 장소에 모이는 위험을 감수하고 모인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 놓고, 다른 사람의 자유로운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 코리밀라에 모이면 다양한 질문이 나오고, 자기 이야기가 나온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내러티브가 이곳에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퍼실리테이션(촉진자)도 필요하다. 아일랜드, 여기 코리밀라 대화의 공간에는 불을 피우는 장작불, 불태우는 공간이 있다. 장작불은 아일랜드 말로 심장 박동 소리를 뜻한다. 장작불이 타는 소리가 사람의 심장 박동 소리이다.

 

어떤 질문을 갖고 있는가를 묻는 것은 이 사람들이 이미 궁금해 하고 있는 것은 뭘까? 이미 갖고 있는 의문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호기심은 지성을 동반한다. 교육활동이나 사회에서 보통 호기심을 많이 가진 사람은 기피하거나, 처벌을 받게 된다. 그렇지만 평화는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평화로운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우리가 지금 현재평화로운 행동을 하지 않으면 평화로운 미래는 오지 않는다. 우리 코리밀라 공동체는 궁금해 하고, 호기심을 갖는데 용기를 가진 사람들과 지내기를 좋아한다. 그 사람들이 변화를 만든다고 믿는다. 그 사람들이 신뢰받는 사람일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을 많이 불러 모을 수도 있다.

 

한편, 궁금증이 많은 사람들은 쉽게 지칠 수 있다. 의심도 많이 받고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호기심 많은 이들을 지원하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 평화활동가들을 만나는 공간, 일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들이 이 공동체에 와서 쉴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프로그램을 많이 하기보다는, 사람들이 그냥 와서 쉴 수 있는 공간, 생각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가고자 한다.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은 현재 권력 관계에서 보면 위험한 사람들이다. 소외된 사람들이기도 하다. 호기심을 가진 사람은 두려움을 동반한 성숙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이다. 두려움을 갖는 것은 괜찮은 일이다. 분쟁은 예측할 수 있지만, 오히려 평화는 예측 가능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두려움을 두려워하는 것 때문에 평화를 얻기 어렵다. 우리가 궁금함을 갖지 못하고, 용기를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은 두려움 자체가 아니라 그 두려움을 두려워하는 것 때문이다. 앞서 평화는 무엇인가 질문한 사람이 있는데, 그것에 대한 한 가지 대답은 우리는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평화를 가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져 본 것은 만남이고 용기이고, 어떤 두려움을 감소시키는 행동이고, 그런 것을 우리가 해 온 것이다.”

 

포드릭은 내가 한 물음, 평화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답을 주었다. 한 개의 대답이라고 했다. 다른 더 많은 대답은 나한테 달려 있다. 내가 만나고,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가고 찾아가야 한다.




저녁을 먹고 만난 이본 네일러 선생님도 그랬다. 인형극과 평화교육 강의, 인형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에서 실마리를 잡아서 자기 이야기를 이어간다. 종교 상징물을 들고 상대가 어떤 느낌을 표현하는지, 돌아가며 듣다 보니 내 손에 든 달마상을 보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다르고, 사람마다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편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서로 다른 사람들, 사람들 사이의 갈등하는 이야기를 인형을 가지고 풀어낼 수 있다. 왕따, 싸움, 소외, 고통을 상대의 처지에서 말하고, 느껴 볼 수 있는 것. , 그래서 인형극이라는 형식을 넘어서 인형극 내용에서 자기 모습을, 다른 사람의 모습을 느껴보고 연대하고, 공감해 보는 것. 이래서 인형극과 평화교육이 닿는다. 가슴 절절하게 느끼고 공감을 나눌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끌어 나가는 이본 네일러 선생님의 내공이 무서울 정도로 엄청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내공은 하루아침에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쩌다 30년 가까이 교실에서 학생들과 살아 온 나는 어떤 내공을 이야기로 내보일 수 있을까? 재작년 서울에서 이본을 만났을 때 그때는 느끼지 못한 놀라운 능력을 보았다. 평생을 특수교육에 애쓰면서 인형을 가지고 만나고 소통하는 일에 전념해 온 사람이 보여 주는 모습은 감동이다.

 

9시 전체 명상 기도 모임에 가 보았다. 동굴 같은 방에 어린이까지 스무 명 남짓 둘러 앉아 기도문을 같이 읽고, 이본 네일러 선생님이 만남, 갈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상황을 가지고 인형극을 보여주셨다. 모두가 숨죽이며 인형극을 보고, 생각을 나눈다. 이본은 앞서 두 시간 강의를 하고, 바로 이어서 또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 주신다. 다 같이 다짐하는 노래를 부르고 헤어졌다.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살짝 흐려서 별은 쏟아지지 않지만, 거센 소용돌이가 친다는 저편 바다도 고요하다. 그리고 파란 잔디가 자리를 잡은 마당을 천천히 걸어서 밤 숙소로 돌아와 몸은 피곤하지만,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한다. 여기 코리밀라에서 느끼는 이 뜨거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를 생각하면서 타자를 치면서 기록을 한다. 내일도 코리밀라를 이끌어 온 네 분을 만나야 한다. 션 페터스, 쇼나 벨, 콜린 크렉, 데릭 윌슨. 정말 기대가 되는 만남. 궁금한 것을 묻고 또 묻기로 한다. (2019. 1. 15.)



 

박종호십여 년 전 어린이어깨동무 후원회원으로 인연을 맺었으며, 현재 어깨동무평화교육센터 연구위원, 신도림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지내고 있으며, 학생들과 손잡고 금강산, 백두산으로 수학여행을 가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9.02.19 23:54

[시선 | 베를린 윤이상하우스에서 보내는 평화의 편지]


평화의 북소리를 그리며


 정진헌

 

기해년, 황금돼지해라는 새해가 밝았습니다. 독일에서 새 해 첫날은 카운트다운과 함께 쏘아 올리는 크고 작은 폭죽 소리와 불빛으로 시작합니다. 평상시 조용히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독일인들도 저마다 거리로 쏟아져 나와 각자 가져온 폭죽에 불을 붙여 하늘로 쏘아 올립니다. 일 년 중 12월말 단 며칠만 폭죽을 판매하고 연말연시에만 터뜨릴 수 있기에 가족 단위로 혹은 친구들과 함께 요란하다 싶게 새해를 맞이합니다. 그러나 새해맞이 법석도 그때뿐입니다. 독일에서 1월은 그리 유쾌한 달이 아닙니다. 밤은 긴데 짧은 낮 동안에도 해 보기가 어려운 날씨 탓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쉽게 감기에 걸리거나, 우울해 합니다. 성탄절 장터에서 흥겹게 보내는 12월과는 일상의 분위기가 다릅니다. 그래서 간혹 저는 1월을 보내봐야 독일에서 왜 철학이나 신학 등이 발달했는지 이해한다는 농담을 하곤 합니다. 존재 자체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계절이 새해 첫 달인 1월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올 해는 연초부터 불운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일은 꼬였고, 경제적 손실도 생겼으며, 감정도 상했습니다. 액땜이라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억울한 일로 심리적 고통을 겪는 와중에 든든하게 내 편이 되어준 분들이 많았다는 것. 그렇게 마음 한 켠을 추스르며 스스로 평온을 찾으려 했으나 쉽지 않았습니다. 억울함과 분함을 부추기는 자존심과 정의감, 포기와 좌절을 종용하는 개인주의, 저항과 대안을 시도해보려는 모험심 등 내 안의 다양한 욕구와 가치관들이 서로 엉키거나 부딪쳤습니다. 그러나 개인의 내면이 요동치는 와중에도 이역 땅 베를린에서는 역사적인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그 중 첫 번 째는 세계 남자 핸드볼 선수권대회에 남북단일팀이 참가한 것이었습니다. 작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이어 스포츠가 평화와 화해에 기여함을 보여준 사례라며 독일 외무성 장관이 개막식 인사에서 유난히 강조하였습니다. 비록 독일과의 개막전에서 패했지만 남북한 선수들처럼, 북측 대사관 소속 직원과 가족들도 남측 사람들과 함께 공동 응원단으로 참가하였었기에 의미가 컸습니다. 장벽을 거두어 낸지 이제 곧 서른 해를 맞는 베를린은 남과 북에게 잠정적 통일과 화합을 선경험케 해 주는 접촉 공간(contact zone)이 되어 주었습니다. 경기장 밖은 빨리 어두워지고 춥고 바람이 불었지만, 단 백 명밖에 안 되는 남북 응원단이 35천의 독일 관중 속에서도 뒤지지 않고 목청껏 코리아 이겨라를 외치며 뜨거웠습니다.


 

세계 남자 핸드볼 선수권대회 남북단일팀

 

민족의 하나됨을 염원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과거사와 현재를 두루 살피는 일과 떨어질 수 없습니다. 핸드볼 대회가 마무리된 후 베를린에는, 현재 일본에서 부당하게 차별받고 있는 조선학교 상황을 알리고 연대하고자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아동인권위원회에 일본 정부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조선학교 학부모회와 그분들을 지지하기 위한 한국시민연대 그리고 해외동포연대 분들이 참석하셨습니다. 조선학교 학부모님들은 독일까지 오시지는 못한 채 귀국하셨고, 대신 한국과 미국에서 오신 활동가분들과 함께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우리는 며칠 전부터 손님맞이와 행사 준비를 나누어 진행했고, 다양한 연령대의 교민은 물론, 일본여성모임과 독일 활동가들도 초대했습니다. 남북이 하나 되는 길은 단지 한반도 영토안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750만 정도 되는 해외 한인들도 분단국가의 축소판을 경험합니다. 그 중에서 재일 조선학교의 현재와 미래는 진정한 한반도 평화의 내용성을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기에 동포 연대를 통한 국제적 지지세력 확보는 매우 중요합니다.



베를린 조선학교 간담회

 

우리의 근현대사는 고난의 서사시임에 분명합니다. 성공적 이야기를 위해 과거의 고난이 더욱 부각되기도 합니다. 최근 한국은 3050클럽 즉, 5천만 이상 인구를 지닌 국가 중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불을 넘는 국가들 대열에 일곱 번째로 들어섰다고 합니다. 식민지를 경험한 국가로서는 처음이라니, 굴곡 많은 근현대사를 돌아보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성공 신화가 미완의 역사적 과제와 현재적 어려움 등을 가리는 구호가 될 수는 없습니다. 최근 한국은 계층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우리의 젊은 세대들은 무한 경쟁 구도 속에서 인성과 감수성이 피폐화되고 있습니다. 다들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상황에서는 더 힘든 약자가 보이질 않고,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도 근시안적으로 접근하게 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중시하면 결국 구관이 명관이 된다는 식으로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현실과 타협하거나 굴복하는 대신 무엇이 옳은 길인지 외로워도 꿋꿋이 걸어가는 삶은 고결합니다. 우리는 올 1월에 그러한 어르신을 잃었습니다. 14살 어린 소녀로 끌려가 22살까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셨던 김복동 할머니. 고인께서는 1993년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최초로 위안부 문제를 직접 증언하신 이후 국제 평화와 인권을 위한 운동가로 향년 93세까지 한길을 걸으셨습니다. 고인의 혼은 이제 나비가 되어 훨훨 저 세상으로 떠나셨지만, 고인의 유지는 이제 우리 후대의 몫이 되었습니다. 고인의 넋을 기리고자 윤이상하우스에 작은 소녀상과 함께 추모 공간을 만들어 제를 올렸습니다.

 

윤이상하우스 김복동 할머니 추모공간

 

그리고 할머니의 단호한 외침이 새겨진 손목 띠를 차기로 했습니다; “There must never be another victim like us (다시는 우리와 같은 희생자가 나와서는 안됩니다)” Kim Bok-Dong


할머니께서는 과거의 희생자이시지만, 과거에 머물러 계시지 않고 미래적 열망을 실천해 오신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육신이 갈가리 찢기는 고통을 겪으셨고, 오랜 동안 피해 사실을 숨겨야 했던 사회문화적 폭력에 크나큰 마음의 상처를 입으셨을 텐데도 고인의 바람은 현재와 미래 모두에서 더 이상 할머니 같은 피해자가 나와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바람은 그토록 지켜지기 어려운 걸까요? 일본 정부나 천황의 진정성 어린 사과를 받아내는 게 그리도 어려운 일일까요?

 

2차 세계 대전 패망국 독일은 그 죄과로 분단이 되었고, 나치 전범들을 끝까지 찾아내 단죄함은 물론이요, 동방정책의 일환으로 빌리 브란트는 폴란드 바르샤바 유태인 추모비 앞에 무릎 꿇고 국가적 사죄를 올렸습니다. 세계적으로 유태인 세력이 컸던 이유도 있지만, 이러한 역사적 참회는 지금도 공공의 기억으로 재생되고 있습니다. 반면에 일본은 전범으로서 어떠한 처벌을 받았고 스스로 참회를 했던가요? 분단도 조선반도가 당했고 그로 인한 동족상잔의 비극도 조선땅에서 벌어졌습니다. 위안부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민간의 일이거나 개인적 선택의 문제였다는 지극히 몰역사적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을 뿐이지요. 물론 지난 박정희 정권 시기 그리고 그의 딸 박근혜 정권 시기를 거치며 한국 정부도 절반의 책임을 안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우리 안의 파시즘 역시 성찰하며, 할머니의 유지처럼 미래지향적 역사의식을 반듯하게 세워야 하는 과제를 위해 예술, 학문, 일상의 영역에서 다각도로 노력해야 합니다.

 

윤이상 선생님은 고통에 대한 인지를 작곡가의 생명으로 보셨습니다. 1983년 하신 말씀입니다; “A composer cannot view the world in which he lives with indifference. Human suffering, oppression, injusticeall that comes to me in my thoughts. Where there is pain, where there is injustice, I want to have a say through my music. (무심하게 살아가는 작곡가는 세상을 볼 수 없다. 나는 인간의 고통, 억압, 불의에 대해 생각한다. 고통이 있는 곳, 불의가 있는 곳에서 나는 나의 음악을 통해 말하고 싶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가 수면위로 올라오기 전인 1986, 일본 도쿄에서 교향곡 제4“Im Dunkeln singen (어둠속에서 노래하라)”가 세계 초연됩니다. 이 작품은 전쟁 중에 수탈당하고 상처받은 여성들, 다시 말해, 일본군 위안부들의 고통을 위안하고, 평화를 염원하고자 작곡한 것입니다. 김복동 할머니께서 자신의 고통이 미래에도 반복되지 않도록 염원하셨듯이, 윤이상 선생께서는 위안부 여성들의 아픔을 보편적 언어인 음악을 통해 승화시키셨던 것입니다. 그것도 전범국 일본의 수도에서 말이지요.

 

올해는, 북측에서는 3.1 인민봉기라 불리는 3.1운동 백주년이자, 상해 임시정부 수립 백주년을 기리는 해이기도 합니다. 2차 북미회담도 곧 열린다고 하니,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도 한 단계 진전되리라 봅니다. 이럴 때일수록 과거의 잘못에 대해 보다 엄격해야 합니다. 구습은 아주 쉽게 되풀이되고, 기득권 세력들은 기회를 틈타 항상 자신들의 자리를 재생산하려 합니다. 과거를 덮고 통 큰 화해를 얘기하는 건 약자와 피해자의 권리와 관용이지, 기득권자의 몫이 아닙니다. 역사의 상흔을 감성으로 느끼고 공감하며 미래지향적으로 승화시키는 노력은 이제 모든 영역에서, 그리고 국가를 초월하여 실천해야 합니다.

 

독일에서도 3.1운동 백주년을 기리는 뜻 깊은 공연이 기획되어 있습니다. 윤이상 선생님의 초기 음악활동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다름슈타트 시의 현대음악제 폐막 작품인 타악기 독주곡 마르시아스(Marsyas)가 그것입니다. 작곡가 코드 마이에링(Cord Meijering) 선생이 3.1절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을 윤이상하우스 상주음악가 정은비씨가 31일에 연주합니다. 마르시아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숲의 정령으로, 자신의 피리 연주에 도취되어 아폴로와 경쟁했다가 지고 맙니다. 그 형벌로 피부가 벗겨져 그 피부는 북이 됩니다. 그 북을 칠 때마다 마르시아스는 고통을 느꼈다지만, 그의 고통은 오히려 북소리로 승화되어 악기의 전설로 전해지게 되었답니다. 3.1운동과 만난 마르시아스는 일제의 총칼에 맨몸으로 저항한 조선 백성, 일본군 폭압에 짓밟힌 위안부가 됩니다. 평화적 시위는 무참히 짓밟히고, 위안부 소녀들의 아픔도 오랜 동안 무시되었었지만, 그 정신은 다시 살아나 더 큰 평화를 향한 열망의 몸짓과 소리로 재현됩니다. 수십 개 다양한 타악기들의 울림으로 부활할 나비의 꿈. 새로운 역사의 봄도 힘찬 북소리로 깨어나리라 기대해 봅니다.

 


마르시아스 타악연주가 정은비 & 공연복장을 협찬해 준 소녀상 작가 김서경

 

우울하고 힘들었던 기해년 첫 달을 보내며 다시 한 번 역사를 돌아보고 마음가짐 역시 새로이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까치까치 설날이 왔습니다. 정초의 불운은 음력 지난해로 넘기고, 올 한해 어깨동무하며 다시 새 역사의 한길 더불어 갈 수 있겠습니다. 어깨동무 친구들 모두 평화의 북소리가 울리는 기해년 되시길 바랍니다.

 


정진헌어린이어깨동무 간사 출신으로,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독일 괴팅엔 소재 막스플랑크 종교와 민족다양성 연구원 선임연구원을 역임한 후, 현재 베를린 자유대학교 역사와 문화학부 한국학과 연구교수로 재직하며, 윤이상하우스 운영을 맡고 있다. 저서 및 공저로는, Migration and Religion in East Asia (2015), Building Noah's Ark (2015), 무엇이 학교 혁신을 지속가능하게 하는가 (2015), 한국의 다문화주의 현실과 쟁점 (2007), 북한에서 온 내친구(2002) 등이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9.02.19 23:07

[시선 |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극도로 예민한 중2 스물아홉이 모였다.

그중 담임이 가장 예민할 때 생기는 일들에 관하여.

 

마지막 이야기. 다정한 작별

 

주예

 

 

대학 시절, 부산에서 온 친구가 있었다. 새내기 오티에서 처음 얼굴을 보고 대학 다니던 내내 강의도 같이 듣고 졸업해서 임용 공부도 같이 했던, 마음을 같이한 단짝친구였다. 친구가 서울에서의 짐을 정리하고 부산으로 가던 날, KTX를 타기 전 친구를 붙들고 한참을 울었다. 청춘 드라마에 나오는 아름다운 이별 장면은 아니었다. 추운 겨울날에 눈물, 콧물 찔찔 흘리면서 가지 말라고 한 번 더 질척이는 완벽한 진상이었다.-심지어 연인도 아닌 친구이다.-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서 서로 웃곤 한다. 그 때는 이제 다시 지난 6년간의 세월처럼 같이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고 생각을 나누고 하루 종일 붙어 지내는 시간이 없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크게 다가왔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는 말이 있지만 울지 말라는 이야기는 없지 않은가. 한참을 울고 난 이후에야 친구를 놓아줄 수 있었다.

 

 

겨울 방학이 지났다. 봄방학까지 남은 일주일 동안 학교에 나와 마무리 정리를 한다. 교실 사물함과 책상 속도 비우고, 청소도 하고, 친구들과 인사도 하고. 새해가 된지 한 달 정도가 지났지만 보던 얼굴들이 익숙해서 그런지 여전히 2018년인 듯하다. 참 애매한 일주일이다. 생활기록부 점검 등 업무는 많지만 수업을 하기에는 곤란하다. 방방 뜨는 분위기에 집중해서 수업을 듣는 것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뭐를 할까 고민하다가 자습이나 독서를 시키고 심심한 아이들은 국어 관련 퀴즈를 준비해가서 학습지를 채우면 사탕을 나누어 주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다 보니 마지막 수업 날이 왔다. 사실 교과 수업에 들어가는 반은 딱히 이별 멘트를 준비하지 않았다. 물론 국어가 일주일에 네 시간이나 들어서 정이 든 아이들도 많지만 기본적으로 담임이 아니어서 내 새끼(?)라는 생각이 덜하기 때문일까. 이별이 그렇게 아쉽지만은 않다. 그래도 마지막을 얼굴도 제대로 못보고 고개 숙인 정수리만 보고 헤어지기는 아쉬워 고민하다가 종치기 2분 전에 잠깐 얼굴 보면서 인사하고 헤어지자고 슬쩍 말을 건네 본다. 자다가 일어나라는 소리에 귀찮아서 눈을 반쯤 뜨는 아이, 문제집 풀다가 슬쩍 눈길을 주는 아이, 종 치기만을 기다리면서 시계에서 눈을 못 떼는 아이, 무슨 말을 할까 궁금증이 묻어 있는 아이. 가지각색의 얼굴들이 교실에 차오른다. 그냥 잘 지내라고 인사나 하려고 했는데 날 쳐다보는 아이들의 눈빛에 잠시 후회한다. 뭔 말이라도 준비해 올 걸. 준비 안 된 상투적인 아무 말이 입 밖으로 나온다.

 

1년 동안 고생했어요. 2반 덕분에 즐겁게 수업할 수 있었어요. , 올해 3학년은 안 할 것 같기는 한데 마주치면 인사 정도는 해 줄 거죠? 방학 잘 보내세요.

 

글로 보니까 더 멋없다. 그래도 1년 동안 얼굴을 맞댄 아이들인데. 스스로의 멋없음에 탄식하면서 문 쪽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박수 소리가 들린다. 충동적인 마지막 인사에 예상치 못한 박수여서 더 놀랐다. 이런 멋없는 마지막 멘트에도 박수를 쳐 주는 아이들이 참 고맙다. 1년 동안 수업할 때 가장 애 먹은 반도 예외 없이 박수를 보내 주었다. 박수를 친 건 아이들이었지만 정작 받는 사람이 더 고맙고 참 기분 좋은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교과 수업 아이들과 마지막을 보내고 이제 우리 반 아이들이 남았다. 교사가 되기 전에 마지막 헤어짐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꽤나 어렸을 적부터 선생님을 꿈꿔 왔기 때문에 나중에 학교에 가면 아이들과 하고 싶은 이것저것 목록이 있었는데 그 중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 바로 마지막 헤어짐이다. 마지막으로 아이들과 헤어질 때 감동적인 장면, 눈물과 함께하는 뭐 그런. 작년에는 신규인 것을 고백했었다. 아이들이 몇 살이냐, 선생님 처음이냐, 어디 학교에서 왔느냐끈질기게 물어도 중학교는 처음이야^^”라면서 철벽 방어를 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너희들이 첫 제자였다고 털어 놓았다. 그동안 서툴렀던 것들이 많았을 텐데 이해해주고 잘 따라와 줘서 고맙다고 나름 혼자만의 감동을 받았었다. 서른 명이 다 모인 교실에서 아이들을 이렇게 마주하는 순간이 마지막이라는 것이 참 아쉬웠다. 이제 다시는 아이들을 이렇게 볼 수 없다는 것이 퍽 섭섭했다. 이별의 공허함은 다시는 이 순간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아쉬움에서 온다. 아이가 먼 곳으로 전학을 가거나 해외로 유학을 갈 때 어쩌면 이 아이와 평생 못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괜히 울컥한다. 아이들을 다음 학년으로 올려 보낼 때도 이제 각자 다른 반으로 뿔뿔이 흩어져 다시는 이렇게 서른 쌍의 눈동자를 마주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괜히 울컥한다.

 

첫 해에 비해 아이들과의 관계가 어려웠던 이번 아이들은 마지막까지 어려웠다. 아이들을 떠나보내는 마음은 보통 시원섭섭함인데, 이 중 시원함과 섭섭함이 차지하는 비율이 문제이다. 다 끝난 마당에 솔직해지자면 이번 아이들은 '시원'섭섭하다. 더 이상 아이들 간의 관계 문제로 골머리 앓지 않아도 되는 구나. 더 이상 학부모들과의 전화로 긴장할 일이 없겠구나. 물론 또 다른 아이들, 또 다른 학부모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적어도 이 반을 벗어난다는 것이 해방감을 주었다. 그래도 막상 마지막으로 본다고 하니 마음이 또 싱숭생숭하다. 마지막 종례를 하러 들어가는데 교실 불이 꺼져있다. 들어서는데 칠판에 정성스럽게 쓰인 주예지 선생님, 사랑합니다.’ 글씨와 꽃다발과 편지를 건네주는 작은 손이 보인다. 남자 아이들은 서로 안아드리라고 장난을 치고 있다.-물론 아무도 안아주지 않았다.- 나도 머쓱하게 괜한 말을 해본다. “우리 이런 거 하는 사이 아니잖아, 왜 이래.”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터라 놀라우면서도 민망하다. 깜짝 파티가 한 세심한 여자 아이의 주도 아래 진행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내심 기특하고 고맙다.

 

방송으로 종업식이 끝나고 마지막 종례이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돌이켜 보면 미안한 것도 많았고, 고마운 것도 참 많았다. 당부하고 싶은 것은 차고도 넘쳤다. 그런데 얼른 가고 싶어 가방을 매고 친구들과 눈짓을 주고받으며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는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으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그래, 이런 아이들이다. 끝나고 친구들과 같이 놀러 갈 피씨방과 맛있게 먹을 떡볶이가 눈에 아른거려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건강하고 예쁜 아이들이다. 결국 1년 동안 고생했다는 말 한 마디만 전한 채 마지막 단체 사진을 찍고 아이들을 보냈다. 아무리 시원함이 컸다고 해도 조금 남아 있는 섭섭함이 고개를 들어 존재감을 알린다. 다정한 말 한 마디 못하고 보낸 것이 못내 섭섭하다.

 

 

부산 친구 이야기를 더 해보자면, 사실 대학 초부터 그 친구는 졸업하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별을 두려워하던 쫄보였던 나는 언젠가 그 친구에게 큰 마음을 먹고 통보했었다. 어차피 너 부산 가야 하니까 너무 친해지지 말자고. 지금부터 정 떼자고. 그런 바보 같은 모진 소리에도 대학 내내 곁을 지켜주었던 친구가 참 고맙다. 부산으로 떠날 때 친구는 참 다정했다. 또 보면 된다고, 부산에 친구가 있으면 놀러 오기 얼마나 좋은 줄 아냐고, 자주 보자고.-친구 말대로 부산에 친구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매 여름마다 부산에 놀러 간다.- 또 보자고 안아주던 친구의 다정한 작별처럼 아이들도 다음을 기약하며 이제 놓아주어야겠다. 5년 뒤 스무 살의 나에게 쓴 편지를 인질로 강제 소환할 그 때까지.

 

다정하게, 안녕.


 

주예지 국어가 어렵다는 아이들의 투정 어린 원성에 나도 어렵다며 유치한 설전을 벌이며 살아가고 있는 국어교사입니다. 2017년에 목동중학교에 교사로서 첫발을 디디고 2년 동안 중2 아이들과 함께 지냈고 2019년에는 중2를 맡지 않겠다며 벼르고 있는 중입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12.20 10:17

[시선 |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극도로 예민한 중2 스물아홉이 모였다.

그중 담임이 가장 예민할 때 생기는 일들에 관하여.

운 놈 떡 하나 더 주기

주예지


극도로 예민한 중2 스물아홉이 모였다.

“왜 불렀는지 아니?”

“네, 떠들고 수업 방해해서요.”

“수업을 방해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계속 선생님 말에 예의 없게 툭툭 말을 내뱉으면 (…) 다음부터는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알겠지?”

“네.”

“젤리 하나 가져 가.”(큰 젤리 통을 품에 안고 있었다.)

“네? 왜요?”

“왜긴 왜겠어. 미운 놈 뭐겠어.”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라는 속담은 미울수록 매 대신 떡을 준다는 것으로 미운 사람에게 오히려 잘 대해준다는 뜻이다. 정신분석학에서 이야기하는 반동형성의 개념과 비슷하다. 반동형성은 무의식 중에 감정이나 욕구와는 정반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억압된 감정이나 욕구가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방어기제 중 하나인 셈이다. 예컨대, 첫째 아이가 부모님의 사랑을 빼앗아버린 동생이 미운데 오히려 지나치게 친절하게 대하고 잘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유독 거슬리는 아이들에게 더 친절하고 살갑게 대하는 나의 저열한 속내가 무엇인지 섬뜩하다. 하지만 우리의 속담은 무언가 정이 느껴진다. 아직 떡 하나 더 줄 정도면 그래도 미운 정이라도 남아 있다는 말은 아닌지. 미운 사람일수록 떡 하나 더 줘서 정을 쌓으라는 건 아닌지. 미운 사람일수록 내 편으로 만들라는 건 아닌지. 미워서 매몰차게 돌아서서 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밉지만 자꾸 미련이 남게 한다. 미움에 마음으로 대응하라는 지혜에 온기가 감돈다.



2학기 들어서 국어 공책을 내내 가져오지 않는 아이가 있다. 1학기에는 그래도 잘 따라왔는데 못내 아쉬워하던 참에 어느 하루는 공책을 가져 왔다고 자랑을 한다. 잘했다고 엄지 척을 하며 수업 끝나고 따라오면 사탕을 주겠다고 정말이지 폭풍칭찬을 한다. 그랬더니 앞에 앉아 있던 아이가 물어본다.

“저는 왜 안 줘요? 맨날 공책 가져오는데.”

“너는 항상 갖고 오고 잘하잖아.”

그러더니 뒤에 앉아 있는 아이와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유독 크게 귀에 꽂힌다.

“못하는 애는 한 번 잘하면 칭찬 받고, 늘 잘하는 애는 한 번 못하면 욕먹어.”



나름대로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애들을 단기간만이라도 참여 시키게 하는 방법이 있다. 수업 내용에 무언가 잠깐 관심을 보일 때, 학습지를 채우는 시늉이라도 할 때를 놓치지 않고 조용히 다가가 은밀한 제안을 한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오늘처럼 수업을 잘 들으면 ‘수업 태도가 뚜렷이 좋아짐’이라는 항목으로 상점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 항목은 다른 것과 다르게 상점이 3점이라는 것 또한 은밀하게 속삭인다. 백이면 백 다 넘어온다. 이 제안을 할 때 다른 아이들이 웅성웅성 난리가 난다.


“수업 태도 좋아지면 상점주는 거예요? 그럼 오늘부터 잘 안 듣고 다음 주에 잘 들어서 상점 받아야겠다!”

“그럼 수업 태도가 뚜렷이 ‘안’ 좋아짐으로 벌점 10점 줄거야!”



미운 놈에게 더 주는 떡 하나가 아이들은 못내 서운했나보다. 하긴 항상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래도 생각해보니 다른 아이들이 억울할 만하다. 그 설움을 모르는 바가 아닌데. 지금도 나는 어머니께 가끔 대들곤 한다. 평소에 지지리도 속 썩이는 자식은 한 번 잘하면 이런 효자가 없고, 평소에 백번 잘하는 자식은 한 번 못하면 세상에 이런 불효자가 없지 않느냐고. 그 말이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니까 참 묘하고 싱숭생숭한 기분이 든다. 아이들을 보다 보면 알아서 잘하고, 수업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고, 예의 바르고, 별 문제 없는 아이들은 잘 안 보이고 떠들고, 수업 안 듣고, 반항하고, 거슬리게 행동하고, 틱틱거리는 아이들만 보인다. 잘했다고 칭찬하는 것은 전자의 아이들이지만 더 많이 생각하고 마음을 쓰는 아이들은 역설적이게도 사실 후자의 아이들이다. 서른 명 중에 한 명이 미우면 그 반 전체가 부담스러워서 수업에 들어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잘하고 예쁜 아이들이 압도적으로 대다수임에도 말이다. 왜 이렇게 미운 놈이 더 커 보이는 걸까? 아무리 미운 놈을 달래고 달래서 떡 하나를 더 먹여도 어쩔 때는 뱉어버리니 영 신통치가 않다. 왜 좋은 것은 뒤로 하고 안좋은 것만 크게 보이는 걸까?



교원능력개발평가 결과가 나왔다. 교원능력개발평가 실시 여부를 가지고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일단 제쳐 두고 아이들의 의견이 나왔으니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다. 구체적인 수치보다는 자유서술식이 궁금하다. 무언가 안 좋은 말이 있지는 않을까 상처 받기 싫어 보고 싶지 않다가도 인간이란 게 호기심을 버릴 수 없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고야 만다. 괜스레 손가락을 튕기며 스크롤바를 내린다.


칭찬을 많이 해주신다. 재미있는 활동을 자주하게 해주신다. 항상 꼼꼼하게 잘 가르쳐주십니다. 수업시간에 정말 열심히 수업을 하시고 이해도 잘 되게끔 노력하신다. 국어와 관련된 영상을 틀어주시고 비 올 때 노래 틀어 주시는 게 좋다. 수업진행이 매끄럽고 원활합니다. (…) 글씨를 좀 더 이쁘게 써주시면 좋을 것 같다. 말을 느리게 해주셨으면 좋겠고 글씨를 정확하게 써주셨으면 좋겠다. 이대로 2학년 끝날 때까지만 이어 나가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기분에 따라 우리에게 대하시는 태도가 다르다. 시험 끝나자마자 수행평가 하는 건 힘들어요.. 학습지가 많아요.(…)


여기에서도 미운 놈이 크게 보인다. 예상했던 이야기도 있고 고쳐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고 웃음이 나는 것도 있다. 근데 그 와중에 하나 미운 놈. ‘선생님의 기분에 따라 우리에게 대하시는 태도가 다르다.’ 아직 갈무리되지 않은 수많은 감정을 뒤로 한 채 웃으면서 밝게 수업하려고 안간힘을 썼던 숱한 순간들이 떠오르고 이내 억울한 마음까지 샘솟는다. 그동안 교단에 선 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비춰졌던 걸까? 나도 사람인데 당연히 감정이 겉으로 드러날 수도 있지. 기분이 안 좋다보면 좀 예민하게 굴었을 수도 있지. 괜한 합리화를 해보지만 별 소득은 없다. 곧 반성을 한다.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 감정을 정 못 감출 때는 쉬어 가거나 차라리 아이들에게 솔직히 이야기를 하자. 여기까지는 좋다. 문제 인식도 했고 반성도 했고 다짐도 했다. 훌륭하다. 지금부터가 문제다. 저 한 문장이 뭐라고-심지어 문법적으로 비문이다.- 수업에 들어가서 아이들을 볼 때마다 생각이 나고 누가 썼을까 괘씸하고 밉다. 지금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좋은 이야기들도 참 많다. 그런데 잘 보이지 않는다. 좋은 이야기는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질문이 도돌이표다. 왜 늘 좋은 것은 뒤로 하고 안 좋은 것만 크게 보일까?



잘하는 아이보다 못하는 아이에, 좋은 점보다 안 좋은 점에 늘 시선이 간다. 미운 놈이 떡 맛을 알아버렸는지 끈질기게 쫓아온다. 떡 하나 더 주면서 체하지 않게 살살 달래서 돌려보내야할 텐데. 결국 사탕을 못 받아 구시렁거렸던 아이의 말이 계속 맴돌아서 원래 주려고 했던 아이뿐 아니라 반 전체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었다. 잘 하는 아이들은 평소에 잘 해서 주는 의미로, 못했던 아이들은 앞으로 잘할 거라고 믿는다는 의미로. 물론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심정으로 주는 애도 있다는 사족도 역시 잊지 않고 덧붙였다. 다 같이 사탕을 맛있게 오물거리며 하루가 지나간다.


주예지  국어가 어렵다는 아이들의 투정 어린 원성에 나도 어렵다며 유치한 설전을 벌이며 살아가고 있는 국어교사입니다. 작년에 목동중학교에 교사로서 첫발을 디디고 2년 동안 중2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으며 내년에는 중2를 맡지 않겠다며 벼르고 있는 중입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PDF)2018.12.19 01:09

통권16호_웹_최종.pdf



주희영  |  내게 단비가 되어준 평화교육 워크숍


조성렬  |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과속은 없다


송강호  |  평화를 가르치는 꿈


정진헌  |  우리 모두 "어깨동무"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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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 10호(통권12호)  (0) 2018.04.19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심포지엄2018.11.29 17:44

어린이어깨동무_2018평화교육심포지엄_내지편집v4.pdf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심포지엄

평화프로세스에서 평화교육의 역할


세션1. 북아일랜드

스토리텔링, 예술, 평화교육 

- 포드릭 오투마 Padraig O Tuama (코리밀라 리더·Corrymeela Community Leader)

분쟁지역 청소년의 평화교육과 사회통합

- 알란 화이트 Alan Waite (알시티 대표 매니저 · RCITY PROJECT Co founder & Senior Manager)  


세션2. 한반도

어깨동무 평화덕목과 평화교육 교안 만들기

- 박종호 (신도림고등학교 교사)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평화교육

- 정영철 (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 소장 ? 서강대학교 교수)


피스톡

- 세션1·세션2 발표자

- 김동진(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 IRC 마리퀴리 펠로우)

- 윤철기(서울교육대학교 교수)

- 정진화(강신중학교 교사)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평화총서2018.11.20 21:14


어깨동무 평화교육시리즈 1

한반도 평화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남북의 경계를 넘어 평화공동체로 한 걸음 더!

평화교육 사례와 과제 그리고 우리의 미래


남북의 경계를 넘어 사회적 상상력이 살아나는 평화교육_이기범

평화통일을 위한 길 찾기: 평화를 위한 통일, 통일을 위한 평화_정영철

평화시대를 여는 통일교육, 시민성교육이 필요하다_정용민

아일랜드 평화교육에서 한반도 평화를 생각하다_정진화

원반럭비로 배우는 평화_최관의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의 사례와 과제_이기범,이성숙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심포지엄2018.11.20 20:09

[평화교육 심포지엄 & 워크숍] 

평화프로세스에서 평화교육의 역할 & 활동가와 함께하는 평화교육 워크숍  

 

#. 심포지엄

2018년 11월 12일과 13일 양일에 걸쳐 '어린이어깨동무 2018 평화교육 심포지엄'과 '워크숍'이 개최되었습니다. 먼저 12일 낮 2시에 개최된 심포지엄 '평화프로세스에서 평화교육의 역할'에서는  북아일랜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평화교육 활동가와 한국사회에서 평화교육을 고민하고 있는 발표자들이 함께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서 평화교육의 역할에 대해 활발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행사 시작 전에는 평양에서 가지고온 커피는 나누어 마시며 북아일랜드와 한국사회의 요즘 정세와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환담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평양에서 날아온 사탕과 초콜렛이 인기를 끈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겠죠? 본격적인 심포지엄은 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의 정영철소장의 인사말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어서 진행된 '세션1. 북아일랜드'는 코리밀라의 리더Corrymeela Community Leader)인 포드릭 오투마(Pádraig Ó Tuama)의 '스토리텔링, 예술, 평화교육'과 알시티의 대표 매니저(RCITY PROJECT Co founder & Senior Manager) 인 알란 화이트(Alan Waite)의 '분쟁지역 청소년의 평화교육과 사회통합'발표로 구성되었습니다. 


1998년부터 진행된 북아일랜드의 평화프로세스 과정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코리밀라 대표와 신교도, 구교도 청소년들이 함께 공동체의 미래를 구상하는 알시티 대표의 발표는 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집중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쉬는 시간에는 2018년 한해동안 어린이어깨동무가 발행한 두 권의 책을 살펴보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평화교육에 대해 더욱 진진한 고민을 해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쉬는시간에 이어 진행된 '세션2. 한반도'에서는 평화교육센터 연구위원인 박종호선생님(신도림고등학교)의 '어깨동무 평화덕목과 평화교육 교안 만들기'와 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 소장인 정영철교수님(서강대학교)의 '남북관계 변화와 평화교육' 발표를 통해 어깨동무가 1년간 고민해온 내용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어 진행된 피스톡(종합토론) 시간에는 1,2세션 발표자와 함께 토론자인 정진화선생님(강신중학교), 1세션 사회자(김동진,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 IRC 마리퀴리 펠로우)와 ​2세션 사회자(윤철기, 서울교육대학교 교수)가 함께 참가자들의 질문을 듣고 답을 하며 내용을 풍성하게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워크숍

다음날 진행된 '활동가와 함께하는 평화교육 워크숍' 에서는 알란 화이트(알시티 대표)와 포드릭 오투마(코리밀라 리더)가 실제로 북아일랜드에서 진행하고 있는 ​평화교육의 일부를 참가자들과 함께 진행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를 통해 참가자들은 우리와 북아일랜드 평화교육의 공통점도 발견할 수 있었고, 북아일랜드만의 새로운 접근도 경험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같은 새로운 만남과 경험을 통해 더욱 깊어진 평화교육에 대한 고민과 내용을 통해 한반도 평화교육에 한 발 더 나아가는 디딤돌을 만들겠습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10.19 00:58

[특집]


다시 백두산에서 평화를 맞이하다

 

이기범

 

나는 지난 918일부터 20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대통령 특별수행원으로 참가했다. 두 정상은 공동선언문을 발표하여 남북 협력과 비핵화를 더 진전시킬 것을 다짐했다.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는 언론에서 많이 다루었으므로 나는 회담 일정에 참가한 몇 가지 느낌을 나누고 싶다.



 ▲ 5.1경기장에서 문재인 대통령 연설을 듣고 있는 평양시민들

 



▲ 문재인 대통령 내외에게 꽃을 전달하기 위해 서있는 어린이들

 

문재인 대통령이 15만 명에 이르는 북녘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방북에 앞서 나름대로 대부분의 일정을 예측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공항에서 영접하리라는 것, ‘깜짝 행사로 꼽힌 백두산 등정도 마지막 날에 진행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이 끝나고 김정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을 소개할 때 그저 인사로 그칠 줄 알았다. 김위원장이 다시 문재인 대통령에게 다시 한 번 뜨겁고 열렬한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소개하자 더 큰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문 대통령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머리에서부터 온 몸에 전율이 일어났다. 충격과 감동 그리고 대형경기장을 가득 메운 함성에 압도되어 더 이상의 생각을 이어가기 어려웠다. 분단 이후 최초이자 최대로 극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고 그 현장에 내가 있다는 사실만이 너무 또렷했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연설에 어느 정도의 후유증이 따른다는 것을 알고도 연설을 진행했다. 두 정상이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공유하고 있고, 연설을 통하여 그 의지를 남과 북 그리고 세계에 알리려는 뜻도 공유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문 대통령의 연설은 북녘 인민들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갔을까? 그 현장에 평양 사람들만이 아니라 공연에 참여하느라 전국 각지에서 모인 다양한 남녀노소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내가 앉은 자리 바로 아래쪽에 북녘 사람들의 자리가 있어서 그이들의 표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이들의 얼굴에 놀라움과 감동이 벅차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이들의 환호와 박수는 진심과 기대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 들렸다. 남북 관계와 남녘에 대한 이미지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 변화가 그이들의 의식에 혼란을 일으키든 마음에 희망을 불어넣든 커다란 파도로 일어났으리라. 문 대통령의 연설은 7분에 불과한 짧은 장면이었지만 정치 행위를 넘어선 문화적 사건이다.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의 파장은 한반도와 세계로 널리 퍼져나갔을 것이다. 현장에 있는 내가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이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의 한 장면

 

그 다음날 백두산 방문을 위해 어두컴컴한 5시경 호텔에서 공항으로 출발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천지를 볼 수 있겠나 하는 걱정을 나누며 공항으로 가는 길에 환송인파를 만났다. 새로 조성된 려명거리 쯤에서부터 꽃술을 흔들며 우리를 배웅하는 사람들이 비와 어둠 속에서 불쑥 나타났다. 어제 밤의 사건을 꿈처럼 떠올리며 마음 어드메에 둘지 갈피를 잡으려는 여명(黎明)의 시각에 나타난 사람들의 무리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대통령은 모르겠으되 내가 그런 환송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당황스러웠다. 나중에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 답방에 대하여 내가 아직 서울에서 환영받을 만큼 일을 많이 못했다.”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 그럼 그 많은 인민들의 환호는 신들, 앞으로 평화를 위한 일을 많이 하라는 외침으로 들어야 하나? 여하튼 그때에는 적어도 세시쯤부터 빗속에 서있었을 그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서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진심으로 화답했다.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선팅이 된 버스 창이었지만 사위가 아직 어두워서 실내등을 켜고 손을 흔드는 우리를 사람들이 볼 수 있었던 게 다행이었다. 새벽 그 시각에 우리는 한 마음이 되었을까?

 

남녘의 어떤 사람들은 평양의 환영과 환송 인파가 강제로 동원되었다고 꼬집는다. 북녘 관계자들은 직장 단위로 동원되었지만 스스로 나온 사람들도 많다고 말한다. 그러니 사람들이 오롯이 강제로 동원되었는가는 살펴봐야 한다. 이미 두 번이나 만난 두 정상이 함께 평양 시내를 누비는 대단한 구경거리이니 누군들 궁금하여 거리로 나서지 않겠는가? 거의 90도로 허리를 꺾어 인사하는 남녘 대통령을 보면서 어찌 감동이 없겠는가? 남녘에서도 사람들을 행사에 동원하고 있고 과거에는 국가행사에 대규모로 동원했다. 나도 고등학생이었던 19748월 육영수 여사의 국민장에 동원되어 광화문거리에서 아침 8시부터 대기했다. 막상 장례식은 11시쯤에나 시작되어 뙤약볕에서 땀깨나 흘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즈음에 고교생들은 전국체전 같은 행사에 매스게임(집단체조)과 카드섹션(배경대)을 하라고 자주 강제로 동원되었다. 지금은 강제 동원은 사라졌고 대부분 자발적인 참여로 행사가 이루어진다. 언젠가는 북녘에서도 동원이 필요 없게 되고 사라질게다. 그러니 그때까지는 강제동원의 역사가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 떼면서 비난하기보다는 수고하는 북녘 인민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 온당한 태도가 아닌가 한다.

 



.첫 날 평양대극장의 북측 공연종목

 

남북이 대화하고 협력하려면 역지사지의 태도와 상호주의적인 인식이 필요한데 우리는 여전히 그런 것에 인색하다. 앞의 사진은 회담 첫째 날 평양대극장의 북측 공연 종목이다. ‘뒤 늦은 후회’, ‘아침이슬’, ‘차집의 고독등 남쪽 노래를 북측 배우(북에서는 가수도 배우라고 부름)들이 북측 노래보다 더 많이 불렀다. 집단체조 공연 중 특별장 평화, 번영의 새 시대에서도 계몽기 가요(일제시대 때 노래)부터 최근 노래까지 남쪽 노래를 많이 불렀다. 지난 4월 남측이 평양에서 공연할 때는 가수 서현이 북측 노래로 푸른 버드나무딱 한 곡을 불렀다. 얼마 전에 어떤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평양 정상회담 때 왜 평양에 태극기가 없었냐고 물어보았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에 오면 인공기를 휘날릴 수 있겠냐고 반문하여 웃음을 자아냈다. 한 언론계 후배로부터 잘 아는 언론사 기자가 자기 회사 지국을 평양에 만들어야겠다라고 해서, “북측의 <로동신문> 지국도 서울에 만들어야 겠네라고 했더니 그건 안된다고 하더라는 말을 들었다. 북측은 회담기간 동안 우리 일행이 호텔 방 티비에서 남녘의 네 개 방송을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때 그와 동등하게 조선중앙티비를 방영할 수 있을까?

 


한반도기로 장식된 평양대극장


 


옥류관 냉

 

간만에 북녘에 다녀 온 나에게 젊은 사람들은 옥류관 냉면 먹은 소감을 물었고, 더 나이든 사람들은 백두산 방문 소감을 물었다. 이번에는 공식 오찬이라 냉면에 앞서 여러 음식이 나왔지만 나는 냉면 200그램을 먹고 쟁반 200그램을 더 먹었다. 과식은 언제나 즐겁다. 남녘의 유명한 셰프가 북녘 자료를 인용하며 옥류관 냉면이 검어진 이유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 메밀이 부족하여 전분을 섞어서 그렇게 되었다는 글을 썼다. 식량 사정이 어렵더라도 옥류관 조차 메밀이 부족했다는 말을 믿기 어려웠기에 이번에 옥류관 복무원(종업원)에게 검어진 이유를 물으니 영양가를 높이기 위하여 메밀을 덜 깎아서 그렇다는 답을 들었다. 어느 말이 옳은가는 각자 판단하시기 바란다.




백두산 천지에서



마지막 일정, 백두산 방문에서 천지 물에 회담의 감상을 후련하게 담아냈다. 2004 6월 처음으로 백두산에 올라 어린이어깨동무 일행들과 함께 남북 어린이들이 백두에서 한라까지 어깨동무할 그날이 곧 오도록 모두 노력하자고 약속했었다. 14년이 지나서야 백두산을 다시 찾았다. 그 약속은 아직 지키지 못하고 있다. 아쉬움과 뉘우침이 크다. 그래도 평화와 번영의 약속이 이루어지고 있어 안심하려고 한다.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회장 자격으로 정상회담에 참가하였으니 남북 당국 모두 민간협력에 더 힘을 쏟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믿는다. 다시 백두산에 서서 한반도의 평화를 맞이한다.


 


사진으로 전하는 ‘2018 양 이야기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서 공연중인 어린이들

 



▲ 만경대학생소년궁전 자수반 어린이들. 박원순 서울시장도 보인다.



 

▲ 평양교원대학 학생들의 수업 시연

 



▲ 평양어깨동무학용품공장. 숙소 바로 옆인데도 가보지 못하여 아쉬었다.




▲ 순안공항 이륙 전 공군1호기 앞에서

 


이기범어린이어깨동무 설립에 참여하여 초대 사무총장으로 10년 동안 일했고 지금은 이사장을 맡고 있다. 남북의 어린이들이 교류하며 한반도 평화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길을 만들고 그 길을 함께 가기를 소망한다. 최근, 지난 20년간의 어린이어깨동무 활동을 담은 <남과 북 아이들에겐 철조망이 없다>를 발간했다. 숙명여대에서 교육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