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레터(글)2019.02.20 01:01

[이슈]


신년의 희망과 다짐

평화로 한 걸음 더평화를 위한 모두의 어깨동무!

 

정영철


2018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평화와 번영의 첫 발을 뗀 한 해였습니다. 전쟁의 위기를 딛고 남북의 정상이 세 번씩이나 만나 전쟁없는 한반도를 선언했고, 70여 년을 적대관계로 대결해왔던 북과 미국이 만나 평화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합의하였습니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2018년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거대한 발자국을 뗀 해로 역사에 기록되기 충분하다 하겠습니다.

 

이제 새로운 희망의 2019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이미 많이 알려졌듯이, 북은 2019년 신년사를 통해 북미간 회담은 물론이고 남북간에는 화해와 협력을 더욱 가속화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였습니다. 신년사에서 밝힌 대로, 김정은 위원장은 연초에 중국을 방문하여 더욱 적극적인 외교적 행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고,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이야기도 벌써부터 일정과 장소 문제를 중심으로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신년사를 통해 한반도 평화의 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고, 올해 더욱 속도를 낼 것이라고 하여, 평화를 향한 행보를 지속할 것을 천명하였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올 한해도 남북 그리고 미국과 중국을 엮는 드라마같은 변화가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는 한반도 평화를 향한 한 걸음 더 의미있는 진전이 되리라고 기대됩니다.

 

다가오는 2차 북미 정상회담과 서울에서의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게 되면, 지금의 답답한 교착상태가 풀릴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렇게 되면 지난 시기 남북관계의 단절을 상징했던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재개도 북의 비핵화에 발 맞추어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대북제재가 해제되고 남북의 협력이 차질없이 진행되어야 하겠지만, 올해 남북이 밝힌 신년사와 최근의 북중, 북미간 움직임을 통해 그럴 가능성이 한층 높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남북관계는 평화와 번영으로 한발 더 내딛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지금까지의 움직임이 모두 정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부가 중심이 되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다각도의 노력이 진행되는 것은 바람직하고, 앞으로도 더 적극적인 발걸음이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한반도의 평화는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정부의 평화를 위한 발걸음에 민간도 함께할 때 더 공고한 평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한 해가 모두를 당황스럽게 할 정도의 속도와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민간이 미처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면, 올 해는 민간도 그 길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해야 할 것입니다. 모두 평양을 방문하고자 하는 희망과 단절되었던 북과의 교류와 협력을 말하지만, 이 길을 가장 확실하게 열어젖히는 방법은 한반도에 평화가 공고화되고, 남북의 공존과 번영에 대한 가치가 확고해지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는 정부대로, 민간은 민간대로 평화와 번영을 위한 자기의 역할을 다하는 길 이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아직은 우리 사회 곳곳에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보다는 여전히 대결과 적대를 원하는 세력, 북과 미국의 만남에 불만을 가지는 세력이 적지 않게 남아 있습니다. 남북의 정부, 미국 그리고 중국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변화의 길목에서 이들이 언제든지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민간이 평화를 위한 여정에 든든한 받침대가 되고 전 국민이 평화와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올 해 우리의 과제는 평화로 한 걸음 더: 평화를 위한 모두의 어깨동무!’가 되어야 합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올 한해 <어린이어깨동무>도 이 길을 변함없이 걷고자 합니다. 끊어졌던 대북 인도적 지원의 재개를 비롯해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다양한 사업들을 펼치고자 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의 길에 함께 할 수 있도록 어깨동무의 평화교육과 평화활동을 강화할 것이며,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북녘의 어린이들을 위한 지원활동도 더욱 창의적이고 서로의 온기를 느낄 수 있도록 전개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우리 회원분들과 어깨동무를 지지하고 격려해주신 모든 분들이 함께 해야 합니다.

 

어깨동무의 모든 회원분들 그리고 어깨동무를 지지하고 격려해주신 모든 분들과 함께 평화와 번영의 길에서 함께 하기를 기원하며, 2019년의 새해 인사를 대신합니다. 흔히들 꿈은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하면 실현된다고 합니다. 새해가 벌써 한 달을 넘긴 이 시점에 이 평범한 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곱씹어 봅니다. 모두가 어깨동무하는 그 길에 평화와 번영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2019평화를 위한 모두의 어깨동무의 길을 걷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분들의 가정에 올 한해를 상징하는 복된 돼지가 한 아름 안기길 바라면서, 평화와 번영의 길에서 두 손 꼬~옥 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영철 |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서울로 상경해 공학을 전공하다 진로를 바꿔 사회학을 공부하였다. 북한, 통일, 평화에 대한 연구가 관심사이며, 지금은 서강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반도 평화가 곧 어린이의 미래라는 생각에 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에 발을 들여놓고 일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9.02.19 23:34

[시선 | 평화의 마중물]


역사의 길에서 평화를 찾다

 

김영환

내가 처음으로 일본 땅을 밟은 것은 1997년 여름의 일이다

 

남북어린이어깨동무의 자원봉사 활동을 하던 친구들과 함께 일본 최북단의 땅 홋카이도(北海道) 슈마리나이(朱掬内)를 찾았다.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조선에서 머나먼 혹한의 땅으로 강제연행되어 혹독한 강제노동의 끝에 죽어간 희생자들의 유골을 발굴하기 위해 열린 한일대학생공동워크숍’(현재 동아시아공동워크숍)에 참가하기 위해 나선 길이었다.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로 얼룩진 역사의 진실과 마주하기 위해 달려온 일본인, 재일조선인, 아이누1)친구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리며 삽을 들었다.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두 나라의 역사를 상징하는 듯 빽빽하게 얽힌 대나무 뿌리를 걷어내고, 조심스레 한 뼘 한 뼘 땅을 깎아 내려가자 쪼그린 자세로 유골이 되어 묻혀있는 이름 모를 강제동원 희생자와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 교과서로만 배우고 말로만 들은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처음으로 눈앞에 마주한 순간이었다.

 1)아이누: 일본 홋카이도와 러시아의 사할린, 쿠릴열도 등지에 분포하는 소수 민족

 

이름도, 국적도 알 수 없는 희생자는 유골이 되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고통과 암흑의 세월을 딛고 역사의 증인으로 모습을 드러내어 그 자리에 함께 한 사람들에게 수많은 물음을 던졌다.

 

이 사람은 식민지에서 끌려온 조선인인가 아니면 빚에 쫓겨 온 일본인 노동자인가? 이 사람은 어디에서 어떻게 이곳까지 끌려왔을까? 왜 이 사람은 1945년 해방이 되고 60여년이 지나도록 아무도 찾지 않는 오지의 숲속에 묻혀 있을까? 고향에는 이 사람을 기억하는 가족들이 있을까?’

 

60여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본 강제동원 희생자는 그 자리에 함께 한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만남을 선사했다. 한국인, 재일조선인, 일본인, 아이누 등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가진 존재들이 유골을 통해 과거의 역사를 함께 마주하고, 서로의 다름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곳에서 분단의 현실을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재일조선인 친구들을 처음으로 만났고, 70년대부터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의 역사를 밝히고 평화를 일구기 위해 애써온 일본의 시민들과 처음으로 손을 잡았다.

 

그곳에서 국가와 민족 벽을 넘어 손을 잡은 사람들은 참혹한 강제노동의 끝에 죽어간 희생자가 던진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길에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자신들의 삶을 변화시켜 왔고 지금도 그 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다. 나 역시 일본에서 5년 동안 평화운동을 배웠고, 지금도 역사의 길에서 평화를 찾는 활동을 하며 살고 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났다

 

20181030, 한국 대법원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제철(신일철주금 주식회사’)에 동원되어 강제노동을 당한 원고 4명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들이 입은 강제동원 피해에 대해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하여 피고 신일철주금이 원고들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1943년 일본으로 끌려가 강제노동을 당한 19세의 청년 이춘식은 94세의 노인이 되어 법정에서 승소판결을 들었다. 그러나 2013년 고등법원에서 승소판결을 받고 함께 만세를 부르며 기쁨을 나눴던 원고 여운택 할아버지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1997년부터 21년 동안 일본과 한국의 법정에서 함께 싸워 온 신천수 할아버지도, 2005년부터 13년 동안 한국의 법정에서 함께 싸워 온 김규수 할아버지의 모습도 이날 법정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박근혜의 청와대와 외교부는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한 정치적 야합을 꾀하면서 한일관계의 악화를 빌미로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미루도록 지시했다. 양승태의 사법부와 피고 일본 기업의 대리인 김앤장은 한통속이 되어 온갖 꼼수를 동원하는 재판거래를 통해 확정판결을 고의로 지연시켰다. 국가권력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자들이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목숨을 대가로 추악한 재판거래를 벌이는 동안 이 날을 평생 기다려왔을 세 분의 피해자는 끝내 승소판결의 기쁨을 맞지 못하고 이미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누구를 위한 국가이고, 누구를 위한 정부이며, 누구를 위한 사법부인가?

 

1997년부터 일본 법정에서 시작된 재판투쟁을 지원해 온 일본 시민들도 이 날 법정에서 승소판결의 기쁨을 함께 했다.

 

우에다 게이시(上田慶司), 나카타 미쓰노부(中田光信). 40대의 공무원 신분으로 재판지원 활동을 시작해 온 두 사람은 여운택 할아버지가 재판을 위해 처음으로 일본을 찾은 날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당신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오라며 자신들에게 돈을 주었는데, 처음에는 일본 사람은 못 믿겠다며 할아버지가 돈을 맡기기를 주저했다는 것이었다. 그 뒤 2003년까지 일본에서 진행된 재판을 위해 할아버지가 일본을 찾을 때마다 지원자들은 할아버지와 술잔을 주고받으며 부자지간처럼 막역한 사이가 되었고, 한국에서의 재판투쟁도 지원하며 할아버지의 곁을 지켜왔다. 할아버지가 끝내 승소판결을 듣지 못하고 돌아가신 뒤에는 매년 성묘를 거르지 않는 정성을 쏟아왔다. 할아버지를 회상하며 두 사람은 애써 참아왔던 눈물을 훔쳤다.

 


왼쪽부터 우에다 게이시(上田慶司) , 여운택 할아버지, 나카타 미쓰노부(中田光信)

 

강제동원 판결을 둘러싸고 한일관계의 악화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1965한일협정을 졸속으로 맺어 일제 피해자들의 권리를 짓밟았다. 2015년 박근혜는 외교참사로 일컬어지는 이른바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한 합의를 발표하여, 수십 년 동안 자신들의 존엄의 회복을 위해 싸워 온 일본군 위안부피해자들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았다.

 

2018년 대법원의 승소판결이 있기까지 역사 정의와 피해자들의 권리회복을 위해 노력해 온 것은 필요할 때만 국익을 말해온 권력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바로 외로운 투쟁을 포기하지 않고 견뎌 온 피해자들, 그리고 그들의 손을 잡아 온 수많은 이름 없는 시민들이다. 국익을 들먹이며 한일관계의 악화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피해자의 곁에서 손잡아 온 이들에게 동아시아의 평화로운 내일이 있다.

 


김영환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 동아시아공동워크숍, 평화자료관·쿠사노이에(), 평화박물관에서 평화운동을 했다. 동아시아 시민들이 국가와 민족의 벽을 넘어 이곳에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살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PDF)2019.02.19 11:02

통권17호_웹_최종.pdf




정영철 | 평화로 한 걸음 더 : 평화를 위한 모두의 어깨동무!


박종호 | 평화는 만남과 용기, 두려움을 감소시키는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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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 역사의 길에서 평화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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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2018.12.20 10:28

[시선 | 평화를 그리는 화가들]


평생에 걸쳐 반전화를 그린 화가, 베레시차긴

 

김소울


국에서 러시아 미술은 그리 익숙지 않다. 서양미술사를 소개하는 책에서도 우리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그리고 미국의 미술을 주로 접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여러가지 문화적인 편식이 강한 편이고, 특히 예술분야에 있어서 공산주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는 편이다. 그러나 러시아야 말로 수 없이 반복된 전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로, 평화와 반전의 시각에서 러시아 미술은 눈여겨보아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

 

바실리 베레시차긴(Vasily Vereshchatin)19세기 러시아에서 활동한 반전화가였다. 우리는 모네, 마네, 고흐 등 수많은 19세기의 서양화가들을 알고 있지만 평생에 걸쳐 반전화를 그린 그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한다. 한국에 잘 소개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국경지대, 그리고 전쟁을 담고 있으며 희생자와 승리자 모두의 입장에서 그림을 써내려갔다. 그는 피땀 흘려 일한 노동의 대가를 전쟁을 위한 세금으로 빼앗겨야 했던, 그리고 소중한 아들과 아버지를 싸늘한 주검으로 맞이해야 했던 러시아 민중의 고통을 대변했던 화가였다.

 

베레시차긴은 10대에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 해군으로 복무를 하였다. 그리고 투르키스탄 전쟁을 비롯한 발칸전쟁, 러시아-터키전쟁 등 여러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해군사관학교 당시 우수한 학생이었기에 주변에서는 그가 장교가 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군사미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그는 페테르부르크 미술아카데미에서 야간으로 그림을 배우다가 사관학교 졸업과 함께 페테르부르크 미술 아카데미에 정식 주간으로 입학하게 된다.


 

바실리 베레시차긴, 전쟁 예찬(1871)

 

<전쟁 예찬>은 그가 참전했던 전쟁을 주제로 한 연작 투르키스탄 연작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는 20세기 반전 포스터에 수 없이 사용되고 또 사용되었을 정도로 단순 명료하게 반전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황량하고 메마른 대지에는 해골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을 맞이해 주는 것은 굶주린 까마귀들 뿐이다. 그는 자신의 그림이 나타내는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해 종종 액자에 문장을 기입하곤 했는데 <전쟁예찬>의 액자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위대한 정복자에게 바친다라는 문구를 적음으로써 전쟁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그리고 비참함을 불러일으킬 뿐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예로부터 전쟁에서 승리의 상징은 적장의 목을 베어 그것을 자랑하는 것이었다. 상대방이 살아있던 죽었던 상관없이 말이다. 이미 죽은 사람들의 목을 전시하듯 높게 쌓아 올린 모습, 그리고 오른쪽 위에 보이는 누군가가 살았던 부서진 집은 너무나도 참혹하지만 하늘은 푸르르기만 하다.



 바실리 베레시차긴, They celebrate(1872)

 


바실리 베레시차긴, 죄수들의 휴식장소(1879)

 

적군의 목을 베어 걸어놓는 인간의 잔인함에 대한 비난은 다음 해에 그린 <They celebrate>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가운데에 서 있는 흰 옷을 입은 인물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전쟁이 끝난 후 전쟁의 결과를 알리고 있는 모습이다. 편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고 낙타나 백마의 등에 탄 사람들도 있고 앉아있는 개의 모습도 보인다.

 

이들은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 자리를 축하하고 있는 중이다. 전쟁을 거치며 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지만 그 과정과 희생은 중요하지 않다. 역사는 항상 승리자의 편에서 쓰이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로 하얗고 긴 장대가 우뚝 서 있고, 그 위에는 적의 머리가 승리의 상징처럼 자랑스럽게 걸려있다.

 

승리자들은 전쟁의 결과를 축하하지만 전쟁에서 포로가 된 자들의 입장은 다르다. 1878년부터 1879년까지 1년에 걸쳐 완성된 <죄수들의 휴식장소>는 가릴 것이라고는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 주저앉아 눈보라를 맞고 있는 죄수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제목처럼 그들은 정말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눈보라에 버려진 고장난 수레바퀴는 마치 고장나고 그릇된 역사와도 같다.

 

베레시차긴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화가로서 전력을 다해 전쟁을 비난하지만 그것이 효과적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정면으로 맞서 가차없이 비난한다.” 러시아-터키전쟁을 향해 비난의 시선을 던진 그를 당시 알렉산더 2세는 인간 쓰레기 아니면 미친 놈이라고 언급했다. 베레시차긴은 단념하지 않고 러시아를 떠나 전 세계를 떠돌며 반전작품들을 그려나갔고, 결국 미국과 유럽에서 인정받게 된다.

 

현대사회에서 베레시차긴의 시대와 같은 대규모 전쟁이나 학살은 부재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타인을 짓밟은 대가를 과시하는 인간의 잔인함은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하며 그것의 치열함은 그 시대의 전쟁과 같지 않은가.


김소울 |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의 심리상담학과 특임교수로 재직중이며, <아이마음을 보는 아이그림>을 비롯한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였다. 현재 미술 작가이자 플로리다 마음연구소 대표로서, 치유적 활동과 미술창작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12.20 10:17

[시선 |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극도로 예민한 중2 스물아홉이 모였다.

그중 담임이 가장 예민할 때 생기는 일들에 관하여.

운 놈 떡 하나 더 주기

주예지


극도로 예민한 중2 스물아홉이 모였다.

“왜 불렀는지 아니?”

“네, 떠들고 수업 방해해서요.”

“수업을 방해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계속 선생님 말에 예의 없게 툭툭 말을 내뱉으면 (…) 다음부터는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알겠지?”

“네.”

“젤리 하나 가져 가.”(큰 젤리 통을 품에 안고 있었다.)

“네? 왜요?”

“왜긴 왜겠어. 미운 놈 뭐겠어.”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라는 속담은 미울수록 매 대신 떡을 준다는 것으로 미운 사람에게 오히려 잘 대해준다는 뜻이다. 정신분석학에서 이야기하는 반동형성의 개념과 비슷하다. 반동형성은 무의식 중에 감정이나 욕구와는 정반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억압된 감정이나 욕구가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방어기제 중 하나인 셈이다. 예컨대, 첫째 아이가 부모님의 사랑을 빼앗아버린 동생이 미운데 오히려 지나치게 친절하게 대하고 잘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유독 거슬리는 아이들에게 더 친절하고 살갑게 대하는 나의 저열한 속내가 무엇인지 섬뜩하다. 하지만 우리의 속담은 무언가 정이 느껴진다. 아직 떡 하나 더 줄 정도면 그래도 미운 정이라도 남아 있다는 말은 아닌지. 미운 사람일수록 떡 하나 더 줘서 정을 쌓으라는 건 아닌지. 미운 사람일수록 내 편으로 만들라는 건 아닌지. 미워서 매몰차게 돌아서서 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밉지만 자꾸 미련이 남게 한다. 미움에 마음으로 대응하라는 지혜에 온기가 감돈다.



2학기 들어서 국어 공책을 내내 가져오지 않는 아이가 있다. 1학기에는 그래도 잘 따라왔는데 못내 아쉬워하던 참에 어느 하루는 공책을 가져 왔다고 자랑을 한다. 잘했다고 엄지 척을 하며 수업 끝나고 따라오면 사탕을 주겠다고 정말이지 폭풍칭찬을 한다. 그랬더니 앞에 앉아 있던 아이가 물어본다.

“저는 왜 안 줘요? 맨날 공책 가져오는데.”

“너는 항상 갖고 오고 잘하잖아.”

그러더니 뒤에 앉아 있는 아이와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유독 크게 귀에 꽂힌다.

“못하는 애는 한 번 잘하면 칭찬 받고, 늘 잘하는 애는 한 번 못하면 욕먹어.”



나름대로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애들을 단기간만이라도 참여 시키게 하는 방법이 있다. 수업 내용에 무언가 잠깐 관심을 보일 때, 학습지를 채우는 시늉이라도 할 때를 놓치지 않고 조용히 다가가 은밀한 제안을 한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오늘처럼 수업을 잘 들으면 ‘수업 태도가 뚜렷이 좋아짐’이라는 항목으로 상점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 항목은 다른 것과 다르게 상점이 3점이라는 것 또한 은밀하게 속삭인다. 백이면 백 다 넘어온다. 이 제안을 할 때 다른 아이들이 웅성웅성 난리가 난다.


“수업 태도 좋아지면 상점주는 거예요? 그럼 오늘부터 잘 안 듣고 다음 주에 잘 들어서 상점 받아야겠다!”

“그럼 수업 태도가 뚜렷이 ‘안’ 좋아짐으로 벌점 10점 줄거야!”



미운 놈에게 더 주는 떡 하나가 아이들은 못내 서운했나보다. 하긴 항상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래도 생각해보니 다른 아이들이 억울할 만하다. 그 설움을 모르는 바가 아닌데. 지금도 나는 어머니께 가끔 대들곤 한다. 평소에 지지리도 속 썩이는 자식은 한 번 잘하면 이런 효자가 없고, 평소에 백번 잘하는 자식은 한 번 못하면 세상에 이런 불효자가 없지 않느냐고. 그 말이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니까 참 묘하고 싱숭생숭한 기분이 든다. 아이들을 보다 보면 알아서 잘하고, 수업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고, 예의 바르고, 별 문제 없는 아이들은 잘 안 보이고 떠들고, 수업 안 듣고, 반항하고, 거슬리게 행동하고, 틱틱거리는 아이들만 보인다. 잘했다고 칭찬하는 것은 전자의 아이들이지만 더 많이 생각하고 마음을 쓰는 아이들은 역설적이게도 사실 후자의 아이들이다. 서른 명 중에 한 명이 미우면 그 반 전체가 부담스러워서 수업에 들어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잘하고 예쁜 아이들이 압도적으로 대다수임에도 말이다. 왜 이렇게 미운 놈이 더 커 보이는 걸까? 아무리 미운 놈을 달래고 달래서 떡 하나를 더 먹여도 어쩔 때는 뱉어버리니 영 신통치가 않다. 왜 좋은 것은 뒤로 하고 안좋은 것만 크게 보이는 걸까?



교원능력개발평가 결과가 나왔다. 교원능력개발평가 실시 여부를 가지고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일단 제쳐 두고 아이들의 의견이 나왔으니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다. 구체적인 수치보다는 자유서술식이 궁금하다. 무언가 안 좋은 말이 있지는 않을까 상처 받기 싫어 보고 싶지 않다가도 인간이란 게 호기심을 버릴 수 없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고야 만다. 괜스레 손가락을 튕기며 스크롤바를 내린다.


칭찬을 많이 해주신다. 재미있는 활동을 자주하게 해주신다. 항상 꼼꼼하게 잘 가르쳐주십니다. 수업시간에 정말 열심히 수업을 하시고 이해도 잘 되게끔 노력하신다. 국어와 관련된 영상을 틀어주시고 비 올 때 노래 틀어 주시는 게 좋다. 수업진행이 매끄럽고 원활합니다. (…) 글씨를 좀 더 이쁘게 써주시면 좋을 것 같다. 말을 느리게 해주셨으면 좋겠고 글씨를 정확하게 써주셨으면 좋겠다. 이대로 2학년 끝날 때까지만 이어 나가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기분에 따라 우리에게 대하시는 태도가 다르다. 시험 끝나자마자 수행평가 하는 건 힘들어요.. 학습지가 많아요.(…)


여기에서도 미운 놈이 크게 보인다. 예상했던 이야기도 있고 고쳐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고 웃음이 나는 것도 있다. 근데 그 와중에 하나 미운 놈. ‘선생님의 기분에 따라 우리에게 대하시는 태도가 다르다.’ 아직 갈무리되지 않은 수많은 감정을 뒤로 한 채 웃으면서 밝게 수업하려고 안간힘을 썼던 숱한 순간들이 떠오르고 이내 억울한 마음까지 샘솟는다. 그동안 교단에 선 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비춰졌던 걸까? 나도 사람인데 당연히 감정이 겉으로 드러날 수도 있지. 기분이 안 좋다보면 좀 예민하게 굴었을 수도 있지. 괜한 합리화를 해보지만 별 소득은 없다. 곧 반성을 한다.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 감정을 정 못 감출 때는 쉬어 가거나 차라리 아이들에게 솔직히 이야기를 하자. 여기까지는 좋다. 문제 인식도 했고 반성도 했고 다짐도 했다. 훌륭하다. 지금부터가 문제다. 저 한 문장이 뭐라고-심지어 문법적으로 비문이다.- 수업에 들어가서 아이들을 볼 때마다 생각이 나고 누가 썼을까 괘씸하고 밉다. 지금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좋은 이야기들도 참 많다. 그런데 잘 보이지 않는다. 좋은 이야기는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질문이 도돌이표다. 왜 늘 좋은 것은 뒤로 하고 안 좋은 것만 크게 보일까?



잘하는 아이보다 못하는 아이에, 좋은 점보다 안 좋은 점에 늘 시선이 간다. 미운 놈이 떡 맛을 알아버렸는지 끈질기게 쫓아온다. 떡 하나 더 주면서 체하지 않게 살살 달래서 돌려보내야할 텐데. 결국 사탕을 못 받아 구시렁거렸던 아이의 말이 계속 맴돌아서 원래 주려고 했던 아이뿐 아니라 반 전체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었다. 잘 하는 아이들은 평소에 잘 해서 주는 의미로, 못했던 아이들은 앞으로 잘할 거라고 믿는다는 의미로. 물론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심정으로 주는 애도 있다는 사족도 역시 잊지 않고 덧붙였다. 다 같이 사탕을 맛있게 오물거리며 하루가 지나간다.


주예지  국어가 어렵다는 아이들의 투정 어린 원성에 나도 어렵다며 유치한 설전을 벌이며 살아가고 있는 국어교사입니다. 작년에 목동중학교에 교사로서 첫발을 디디고 2년 동안 중2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으며 내년에는 중2를 맡지 않겠다며 벼르고 있는 중입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PDF)2018.12.19 01:09

통권16호_웹_최종.pdf



주희영  |  내게 단비가 되어준 평화교육 워크숍


조성렬  |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과속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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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지엄2018.11.29 17:44

어린이어깨동무_2018평화교육심포지엄_내지편집v4.pdf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심포지엄

평화프로세스에서 평화교육의 역할


세션1. 북아일랜드

스토리텔링, 예술, 평화교육 

- 포드릭 오투마 Padraig O Tuama (코리밀라 리더·Corrymeela Community Leader)

분쟁지역 청소년의 평화교육과 사회통합

- 알란 화이트 Alan Waite (알시티 대표 매니저 · RCITY PROJECT Co founder & Senior Manager)  


세션2. 한반도

어깨동무 평화덕목과 평화교육 교안 만들기

- 박종호 (신도림고등학교 교사)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평화교육

- 정영철 (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 소장 ? 서강대학교 교수)


피스톡

- 세션1·세션2 발표자

- 김동진(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 IRC 마리퀴리 펠로우)

- 윤철기(서울교육대학교 교수)

- 정진화(강신중학교 교사)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10.19 00:58

[특집]


다시 백두산에서 평화를 맞이하다

 

이기범

 

나는 지난 918일부터 20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대통령 특별수행원으로 참가했다. 두 정상은 공동선언문을 발표하여 남북 협력과 비핵화를 더 진전시킬 것을 다짐했다.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는 언론에서 많이 다루었으므로 나는 회담 일정에 참가한 몇 가지 느낌을 나누고 싶다.



 ▲ 5.1경기장에서 문재인 대통령 연설을 듣고 있는 평양시민들

 



▲ 문재인 대통령 내외에게 꽃을 전달하기 위해 서있는 어린이들

 

문재인 대통령이 15만 명에 이르는 북녘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방북에 앞서 나름대로 대부분의 일정을 예측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공항에서 영접하리라는 것, ‘깜짝 행사로 꼽힌 백두산 등정도 마지막 날에 진행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이 끝나고 김정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을 소개할 때 그저 인사로 그칠 줄 알았다. 김위원장이 다시 문재인 대통령에게 다시 한 번 뜨겁고 열렬한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소개하자 더 큰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문 대통령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머리에서부터 온 몸에 전율이 일어났다. 충격과 감동 그리고 대형경기장을 가득 메운 함성에 압도되어 더 이상의 생각을 이어가기 어려웠다. 분단 이후 최초이자 최대로 극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고 그 현장에 내가 있다는 사실만이 너무 또렷했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연설에 어느 정도의 후유증이 따른다는 것을 알고도 연설을 진행했다. 두 정상이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공유하고 있고, 연설을 통하여 그 의지를 남과 북 그리고 세계에 알리려는 뜻도 공유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문 대통령의 연설은 북녘 인민들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갔을까? 그 현장에 평양 사람들만이 아니라 공연에 참여하느라 전국 각지에서 모인 다양한 남녀노소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내가 앉은 자리 바로 아래쪽에 북녘 사람들의 자리가 있어서 그이들의 표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이들의 얼굴에 놀라움과 감동이 벅차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이들의 환호와 박수는 진심과 기대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 들렸다. 남북 관계와 남녘에 대한 이미지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 변화가 그이들의 의식에 혼란을 일으키든 마음에 희망을 불어넣든 커다란 파도로 일어났으리라. 문 대통령의 연설은 7분에 불과한 짧은 장면이었지만 정치 행위를 넘어선 문화적 사건이다.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의 파장은 한반도와 세계로 널리 퍼져나갔을 것이다. 현장에 있는 내가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이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의 한 장면

 

그 다음날 백두산 방문을 위해 어두컴컴한 5시경 호텔에서 공항으로 출발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천지를 볼 수 있겠나 하는 걱정을 나누며 공항으로 가는 길에 환송인파를 만났다. 새로 조성된 려명거리 쯤에서부터 꽃술을 흔들며 우리를 배웅하는 사람들이 비와 어둠 속에서 불쑥 나타났다. 어제 밤의 사건을 꿈처럼 떠올리며 마음 어드메에 둘지 갈피를 잡으려는 여명(黎明)의 시각에 나타난 사람들의 무리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대통령은 모르겠으되 내가 그런 환송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당황스러웠다. 나중에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 답방에 대하여 내가 아직 서울에서 환영받을 만큼 일을 많이 못했다.”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 그럼 그 많은 인민들의 환호는 신들, 앞으로 평화를 위한 일을 많이 하라는 외침으로 들어야 하나? 여하튼 그때에는 적어도 세시쯤부터 빗속에 서있었을 그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서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진심으로 화답했다.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선팅이 된 버스 창이었지만 사위가 아직 어두워서 실내등을 켜고 손을 흔드는 우리를 사람들이 볼 수 있었던 게 다행이었다. 새벽 그 시각에 우리는 한 마음이 되었을까?

 

남녘의 어떤 사람들은 평양의 환영과 환송 인파가 강제로 동원되었다고 꼬집는다. 북녘 관계자들은 직장 단위로 동원되었지만 스스로 나온 사람들도 많다고 말한다. 그러니 사람들이 오롯이 강제로 동원되었는가는 살펴봐야 한다. 이미 두 번이나 만난 두 정상이 함께 평양 시내를 누비는 대단한 구경거리이니 누군들 궁금하여 거리로 나서지 않겠는가? 거의 90도로 허리를 꺾어 인사하는 남녘 대통령을 보면서 어찌 감동이 없겠는가? 남녘에서도 사람들을 행사에 동원하고 있고 과거에는 국가행사에 대규모로 동원했다. 나도 고등학생이었던 19748월 육영수 여사의 국민장에 동원되어 광화문거리에서 아침 8시부터 대기했다. 막상 장례식은 11시쯤에나 시작되어 뙤약볕에서 땀깨나 흘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즈음에 고교생들은 전국체전 같은 행사에 매스게임(집단체조)과 카드섹션(배경대)을 하라고 자주 강제로 동원되었다. 지금은 강제 동원은 사라졌고 대부분 자발적인 참여로 행사가 이루어진다. 언젠가는 북녘에서도 동원이 필요 없게 되고 사라질게다. 그러니 그때까지는 강제동원의 역사가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 떼면서 비난하기보다는 수고하는 북녘 인민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 온당한 태도가 아닌가 한다.

 



.첫 날 평양대극장의 북측 공연종목

 

남북이 대화하고 협력하려면 역지사지의 태도와 상호주의적인 인식이 필요한데 우리는 여전히 그런 것에 인색하다. 앞의 사진은 회담 첫째 날 평양대극장의 북측 공연 종목이다. ‘뒤 늦은 후회’, ‘아침이슬’, ‘차집의 고독등 남쪽 노래를 북측 배우(북에서는 가수도 배우라고 부름)들이 북측 노래보다 더 많이 불렀다. 집단체조 공연 중 특별장 평화, 번영의 새 시대에서도 계몽기 가요(일제시대 때 노래)부터 최근 노래까지 남쪽 노래를 많이 불렀다. 지난 4월 남측이 평양에서 공연할 때는 가수 서현이 북측 노래로 푸른 버드나무딱 한 곡을 불렀다. 얼마 전에 어떤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평양 정상회담 때 왜 평양에 태극기가 없었냐고 물어보았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에 오면 인공기를 휘날릴 수 있겠냐고 반문하여 웃음을 자아냈다. 한 언론계 후배로부터 잘 아는 언론사 기자가 자기 회사 지국을 평양에 만들어야겠다라고 해서, “북측의 <로동신문> 지국도 서울에 만들어야 겠네라고 했더니 그건 안된다고 하더라는 말을 들었다. 북측은 회담기간 동안 우리 일행이 호텔 방 티비에서 남녘의 네 개 방송을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때 그와 동등하게 조선중앙티비를 방영할 수 있을까?

 


한반도기로 장식된 평양대극장


 


옥류관 냉

 

간만에 북녘에 다녀 온 나에게 젊은 사람들은 옥류관 냉면 먹은 소감을 물었고, 더 나이든 사람들은 백두산 방문 소감을 물었다. 이번에는 공식 오찬이라 냉면에 앞서 여러 음식이 나왔지만 나는 냉면 200그램을 먹고 쟁반 200그램을 더 먹었다. 과식은 언제나 즐겁다. 남녘의 유명한 셰프가 북녘 자료를 인용하며 옥류관 냉면이 검어진 이유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 메밀이 부족하여 전분을 섞어서 그렇게 되었다는 글을 썼다. 식량 사정이 어렵더라도 옥류관 조차 메밀이 부족했다는 말을 믿기 어려웠기에 이번에 옥류관 복무원(종업원)에게 검어진 이유를 물으니 영양가를 높이기 위하여 메밀을 덜 깎아서 그렇다는 답을 들었다. 어느 말이 옳은가는 각자 판단하시기 바란다.




백두산 천지에서



마지막 일정, 백두산 방문에서 천지 물에 회담의 감상을 후련하게 담아냈다. 2004 6월 처음으로 백두산에 올라 어린이어깨동무 일행들과 함께 남북 어린이들이 백두에서 한라까지 어깨동무할 그날이 곧 오도록 모두 노력하자고 약속했었다. 14년이 지나서야 백두산을 다시 찾았다. 그 약속은 아직 지키지 못하고 있다. 아쉬움과 뉘우침이 크다. 그래도 평화와 번영의 약속이 이루어지고 있어 안심하려고 한다.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회장 자격으로 정상회담에 참가하였으니 남북 당국 모두 민간협력에 더 힘을 쏟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믿는다. 다시 백두산에 서서 한반도의 평화를 맞이한다.


 


사진으로 전하는 ‘2018 양 이야기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서 공연중인 어린이들

 



▲ 만경대학생소년궁전 자수반 어린이들. 박원순 서울시장도 보인다.



 

▲ 평양교원대학 학생들의 수업 시연

 



▲ 평양어깨동무학용품공장. 숙소 바로 옆인데도 가보지 못하여 아쉬었다.




▲ 순안공항 이륙 전 공군1호기 앞에서

 


이기범어린이어깨동무 설립에 참여하여 초대 사무총장으로 10년 동안 일했고 지금은 이사장을 맡고 있다. 남북의 어린이들이 교류하며 한반도 평화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길을 만들고 그 길을 함께 가기를 소망한다. 최근, 지난 20년간의 어린이어깨동무 활동을 담은 <남과 북 아이들에겐 철조망이 없다>를 발간했다. 숙명여대에서 교육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10.19 00:13

[이슈]


오늘의 청소년, 내일의 한반도 평화를 상상하다

 

임수연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판문점선언을 시작으로 분단 70여 년 간 한반도를 둘러싼 남북의 반목과 화해가 재조명되고 있다.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가 푸른 가을 하늘 위로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처럼 높아만 간다. 종전이 선언되고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정착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뉴스에서 반복되어 다루어지고 친구들과의 점심식탁 위에 심심치 않게 오르내린다. 그런데, ‘~되어진다? 이야기 속의 주어를 찾으려니, 고개를 가우뚱하게 된다. 남북 두 정상의 악수와 포옹의 이미지가 강렬한 나머지 대화를 나누는 는 큰 야구장의 외야석 뒤에 앉은 관중처럼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 듯 느껴지기도 한다.

 

당장 내일이라도 닥칠 것만 같은 한반도 평화 시대를 뚜벅뚜벅 걸어 나아가야할 주인공인 청소년들은 어떤 느낌일까? 칠십삼 년 전에는 하나의 나라였고 지리적으로도 가깝지만 마음속에서는 너무도 먼 나라. 지난 10년간 학교 안과 밖에서 남과 북의 소통에 대해서 특별히 고민할 기회 없이 자라온 청소년들에게 의 존재를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티브이에서 연일 보도되는 장면들은 유명인들의 결혼발표처럼 나와 상관없는 갑작스러운 이벤트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서울청소년창의서밋

<오늘 시민, 오늘 민주주의 NOW HERE>


한반도의 평화체제의 안착에 대한 기대가 시시각각 고조되는 오늘, 미래시대를 살아갈 청소년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알아볼 수 있는 자리들이 많이 마련되고 있는 가운데, 하자센터1)에서 지난 9월 초에 열린 제10회 서울청소년창의서밋을 소개하고자 한다. <오늘 시민, 오늘 민주주의 NOW HERE>라는 부제로 열린 이 행사는 5월초부터 청소년기획단에 의해 준비되었다. 시민으로 '오늘''한국'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미래를 생각할 때 외면할 수 없는 네 가지 주제는 다르지만 괜찮은 삶에 대한 상상’, ‘행복한 페미니즘에 대한 상상’, ‘한반도 평화 시대에 대한 상상’, ‘청소년 참정권에 대한 상상인데, 이 중 반갑지만 갑작스러운 한반도의 평화에 어떻게 말 걸기를 시도하였는지 궁금하다.

 

1) 하자센터(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는 청소년의 자기주도성과 창의성 기반을 둔 창의적 공공지대(creative commons)’1999년 겨울에 문을 열어 영등포에서 열아홉 번째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웹사이트 www.haja.net

 

문재인 정권 때 남북관계가 회복되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지만, 이번 남북정상회담일 줄은 생각도 못했기에 저에게 큰 충격이었어요

 

주변 사람들의 기대와 불안을 접하면서, 어쩌면 우리는 탈분단에 대해 너무 일차원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북 사이에 총을 든 군인들이 사라지고 이산가족이 다시 만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닐텐데 말이죠

 

북한에 대해 알고 있는 부분이 지극히 적다고 생각해요. 사실상 북한에 대한 정보는 금기시 되었을 뿐더러 북한의 폭력적인 부분들과 도움이 필요한 모습만 강조 되어 왔잖아요.”

 

다음 세대의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탈분단이 한 발짝 앞으로 다가온 지금 시점에 남한의 청소년들은 탈분단, 통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 지 이야기 나눠봤으면 좋겠어요.”

 

우선 다른 청소년들도 이렇게 막연한 지 혹은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 지 알아보기 위해 온라인으로 설문을 진행하였다. 기획단 각자가 가진 편견과 막연한 기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보고 활동가의 자문을 받으며 설문 응답지를 만들고 수정했다. 여는 행사<오늘 시민, 청소년 일상의 민주주의를 말하다>의 세 번째 이야기로 <한반도에 대한 상상> 세션에서 객석의 200여명의 청소년들과 <한반도 평화 시대 상상하기> 설문 결과를 공유하고, 이후 서밋 기간 동안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문장으로 만들어 소통해보는 공동 작업을 제안하였다.

 

더불어, 블라디보스토크부터 베를린까지 24일간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고 돌아온 여행학교 주말 로드스꼴라 청소년들의 <서울역을 국제역으로!>라는 퍼포먼스가 개막식과 이튿날 플래시몹으로 선보였고, 프로젝트 공유회 <사뿐사뿐 대륙을 횡단하다>도 진행되었다. 한반도 평화의 시대에 경의선을 타고 서울부터 열차로 유라시아횡단을 하게 될 상상을 키워가는 흥겨운 여정이었다고 한다.




<한반도 평화시대 상상하기> 온라인 설문결과


한반도 평화의 시대, 종전 후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삶이 어떻게 달라질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 하나의 체제로 하나의 국가로 통일한다는 응답은 단 19.9%로 나타났다. ‘국가는 나누어져있지만 자유롭게 교류한다50.6%가 응답하였고, ‘하나의 국가가 되지만 각각 독립적인 체제를 유지한다에 응답한 경우도 20.6%에 달하였으며, ‘전쟁의 위협은 사라졌으면 하되, 그 밖의 변화는 원하지 않는다에 응답한 5%까지 포함하면, 76.2%가 무리한 통일보다 체제유지 하에서의 평화적 공생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답한 이유로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전쟁위기 해소’, ‘국력강화와 국제경쟁력 상승’, ‘북측과의 문화교류라는 응답이 있었고, 부정적인 측면에서는 두 집단 간의 편견과 차별’, ‘급격한 변화로 인한 사회혼란’, ‘북한 난개발과 부동산 투기등의 의견에 답한 비율이 높았다.


평화협정이 이루어지고 남북 간의 관계개선이 이루어지면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북한 도시 방문하기부터 친구 사귀기살아보기까지 처음 가는 해외여행지에서 기대하는 바와 유사한 것들도 있었다. 한편, ‘북한 문화공연 관람이나 남북 청소년 교류에 대한 희망과 개마고원 락페스티벌’, ‘평양 퀴어 퍼레이드등 다양한 문화교류의 상상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모두의 식탁에 둘러앉을 주인공들을 상상하며


2004615일 어깨동무의 스태프로 어린이들과 함께 백두산 정상에 오른 적이 있다. 그날 역시 천지는 백 여명의 어깨동무 방북단에게 큰 품을 열어주었다. 웅장한 정상의 모습도 장관이었지만, 내려오는 길 중턱의 잔디밭에서 도시락을 나누어 먹고 연을 날리던 찰나의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삶의 터전을 떠나 도망가면서도 아이들과 함께 멋진 하모니로 노래를 부르던 사운드 오브 뮤직의 한 장면처럼, 그 순간만은 어떠한 머뭇거림 없이 평화로웠다.


<서울청소년창의서밋>의 피날레는 마당에 너른 식탁을 펼치고 참여 청소년들과 이들을 응원하는 비청소년들이 소박한 저녁식사를 나누는 <모두의 식탁>으로 마무리 된다.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던, 어떤 원치 않는 두려움을 겪어왔던 관계없이 한반도에서 평화롭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가진 청소년들이 어느 볕 좋은 날 풍성한 식탁에 둘러앉는 순간을 상상해본다. 아무런 긴장감 없이 각자의 꿈과 함께 만들어갈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눌 수 있는 하나의 점 같은 순간들이 반복되어 선이 되고 면을 이룰 수 있는 시간이 머지않아 우리에게 깃들기를 소망해본다.



 

임수연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하자센터교육기획팀장.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팀 간사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후, 아시아의 평화환경을 키워드로 다음세대인 청소년들이 여러 꼴의 갈등을 포착하고 조정하며 평화롭게 살아갈 세상을 만들어 가는 길에 손을 보태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10.18 20:54

[시선 | 평화를 그리는 화가들]


위태로운 유럽의 평화를 풍자하다. 오노레 도미에

 

김소울

 

모든 회화가 그러하듯 풍자화라는 장르가 처음부터 존재해 왔던 것은 아니다. 정치인들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민중을 향한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진 최초의 풍자 화가는 프랑스의 사실주의 미술가 오노레 도미에(Honore Daumier)였다. 정치를 풍자한 장르가 처음이었던 만큼, 그는 최초의 반체제 화가로 불리고 있으며 평생을 민중의 편에서 활동하였다.

 

1800년 중반 유럽은 혼란의 시기였다. 1849년 수립된 로마 공화국은 나폴레옹 3세에 의해 붕괴되었고, 프랑스군은 1866년까지 이탈리아 전역을 지배하게 된다. 나폴레옹 3세는 1852년부터 18년간 군림하며 식민지획득 전쟁에 열을 올렸고,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 중남미 등 각지에서 전쟁을 벌였다. 1864년 멕시코를 점령한 나폴레옹 3세는 막시밀리안을 황제로 세우려 했지만 이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내전상황이 계속되면서 1864년 프랑스군은 물러나게 되었고, 막시밀리안은 고립되어 자신의 장군들과 함께 총살당하게 된다.

 

멕시코 사건이 있은 후, 유럽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유럽은 오랜만에 피와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이 진정한 평화를 되찾은 것은 아니었다. 도미에는 이들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평화를 겨우 붙잡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노레 도미에, 유럽의 균형(1866)

 

이 그림은 도미에가 1866년 작업한 석판화 <유럽의 균형>이다. 그림의 하단부에는 독일과 프랑스, 터키, 그리고 영국 군인이 총검을 모아 지구를 위태롭게 들고 있다. 당장 전쟁은 일어나고 있지 않지만 실제로 유럽인들은 지금의 평화가 일시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들 중 한 명이라도 약속을 어기거나 다른 곳에 한눈을 판다면 이 균형은 유지 될 수 없다. 누구 하나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평화로운 지구는 한 순간의 실수로도 와르르 무너지고 바닥으로 곤두박질 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도미에는 단순하게 지금의 상황을 풍자하려고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그림은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지만, 그 안에는 지금의 평화가 조금이라도 더 유지되기를 바랐던 그의 작은 소망이 담겨있었다.


 

오노레 도미에, 유럽의 균형(1867)

 

도미에는 유럽의 위태로운 상황을 이야기하며 평화의 여신 이레네를 자신의 작품에 적극 활용했다. 그가 작업한 또 다른 동명의 작품 <유럽의 균형>에는 평화의 여신이 폭탄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양 팔을 벌려 균형을 잡고 있지만, 실상 이 평화는 여신이 조금이라도 중심을 잃는 순간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여신의 곧 넘어질 듯 표정에 긴장감이 가득하다.

 

어쩌면 이 폭탄은 1866년에 그린 위태롭게 총검 위에 놓여 진 지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렵게 균형을 잡고 있던 평화의 여신이 넘어지는 순간 지구는 폭탄이 되어 또 다시 많은 사람들의 피로 물들 것이다.



오노레 도미에, 평화가 칼을 삼킬 때(1867)

 

평화의 여신은 급기야 자신의 입에 칼을 집어넣고야 만다. 칼을 입에 넣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결국 자신을 죽이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녀가 이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름답던 평화의 여신은 이제 늙고 지친 모습이다. 지긋지긋한 이 전쟁을 스스로를 희생해서라도 끝내고 싶은 것이다. 칼의 반 이상을 입에 집어넣은 평화의 여신의 뒤에는 수많은 민중들과 군인의 모습이 보인다.

 

유럽의 평화는 이 그림을 그리고 난 일 년 후인 1968년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전쟁으로 쉽게 무너지고 만다. 그러나 자신을 희생해 가면서도 전쟁을 끝내고 싶던 군중들과 도미에의 소망은 처절하게 그림에 남겨졌다.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평화의 여신은 오늘도 칼을 삼키고 또 삼킨다.


 

김소울 |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의 심리상담학과 특임교수로 재직중이며, <아이마음을 보는 아이그림>을 비롯한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였다. 현재 미술 작가이자 플로리다 마음연구소 대표로서, 치유적 활동과 미술창작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