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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22_3 이근향_평화를 생각하는 서로 배움의 공간- 노근리평화공원

by 어린이어깨동무 2020. 5. 19.

[평화를 담은 공간]

 

평화를 생각하는 서로 배움의 공간 – 노근리평화공원 

 

이근향

 

노근리사건은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25일부터 7월 29일까지 5일 동안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 하가리 및 황간면 노근리의 경부선 철도 및 쌍굴 일대에서 미 공군기에 의한 공중 폭격과 미 제1기병사단 소속 미군들의 무차별적인 기관총 및 소총사격에 의해 수 백 명의 민간인들이 희생된 사건입니다.

 

1950년 7월 23일 주곡리 마을을 비우라는 명령을 받은 주민들은 인근 산골마을인 임계리로 피난을 가게 됩니다. 7월 25일 저녁 미군은 임계리에 모인 피난민 500~600명을 남쪽으로 피난하도록 하였고 날이 저물자 피난민들은 하가리 냇가에서 노숙을 하였습니다. 이튿날인 7월 26일 새벽 미군은 이미 퇴각하였고 피난민들은 4번 국도를 따라 계속 피난을 가게 됩니다. 낮 12시경 서송원리 부근에 도착한 피난민들은 미군에 의해 국도가 아닌 경부선 철도 위로 올라갔고 계속 남쪽으로 이동하였습니다.

피난민들이 노근리 부근에 이르렀을 때 미군은 검문검색을 했고 피난민들이 잠시 앉아서 쉬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미군 비행기가 피난민에게 폭탄 및 기관총을 난사하였고, 다수의 피난민이 사망하였습니다. 폭격을 피해 피난민들은 노근리 철교 아래 쌍굴다리로 피신하였습니다. 그러자 미군들은 쌍굴다리에 갇혀 있는 피난민들을 향해 7월 26일 오후부터 7월 29일 오전까지 3박 4일 동안 쌍굴 양쪽에서 기관총 사격을 지속하였고 200~400여 명의 피난민들이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50여 년의 세월 동안 유족들은 소설발표, 연구논문 발표 등 끊임없는 진상규명활동을 전개하였고 국내 언론, 신문, 방송을 통해 노근리사건이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故 정은용 선생님의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 소설 발표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노근리사건은 1999년 9월 미국 AP통신의 보도로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2000년 한·미 양국의 진상조사가 이루어졌고 미국 클린턴 대통령은 유감표명 성명서를 발표 하였습니다.

 

노근리평화공원은 2004년 제정된 ‘노근리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조성되었습니다. 노근리평화기념관에는 노근리사건의 진상규명 과정과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노근리역사평화박물관

2020년은 한국전쟁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또한 노근리사건이 발생한지 7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이념갈등, 좌우대결, 강대국의 패권싸움 등으로 한국전쟁을 기억해왔습니다. 이념갈등과 좌우대결이 전쟁 중에 발생한 수많은 민간인의 죽음과 상처에 대해 침묵하게 했습니다. 한국전쟁 중에 발생한 민간인 학살, 그리고 피해자들이 겪은 아픔과 고통은 그들만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었습니다. 국가폭력의 희생자로 인정되지 못했고 진실규명 또한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5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끊임없이 전개된 노근리사건의 진상규명과정은 노근리사건 피해자들의 아픔과 고통을 기억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전쟁 중에 발생한 억울한 죽음과 아픔을 치유하는 화해와 상생의 출발점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수많은 노력의 결과 2011년 10월 노근리평화공원이 만들어졌습니다. 노근리평화공원은 과거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전쟁의 아픔과 고통을 기억하고 인권과 평화의 이름으로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장소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노근리평화공원 방문객

노근리평화공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특히 학생들이 많이 방문합니다. 매년 5월과 6월이 되면 노근리 탐방워크북을 가지고 노근리평화기념관과 노근리평화공원 곳곳을 찾아다니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이쪽으로 가자”, 
“아니, 증언 먼저 들으러 가자” 
“그럴까?” 하하 호호.....

노근리평화공원에 온 청소년들은 누군가의 설명을 들으며 줄지어 다니지 않습니다. 본인 스스로 활동하고 생각합니다. 노근리 탐방워크북을 가지고 노근리 사건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이곳저곳 찾아다닙니다. 노근리사건을 겪었던 사람들의 증언을 유심히 듣습니다. 


‘내가 쌍굴다리에 3박 4일 동안 갇혀 있었다면 얼마나 무서웠을까?’
‘엄마, 아빠, 친구들이 내 옆에서 죽었다면 내 마음은 어땠을까?'

 

하면서 침울해집니다. 그러다가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는 이런 저런 이야기로 왁자지껄해집니다. 노근리사건을 생각할 때는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 그러나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자유롭고 즐겁습니다. 

 

노근리평화공원 방문객

노근리평화공에서는 누군가의 설명을 듣고 정답 암기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본인 스스로 보고, 듣고, 느낍니다. 노근리사건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노근리사건 피해자들의 아픔과 고통에 공감하며 전쟁 없는 평화가 왜 중요한지 이야기합니다. 서로를 분리하고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인정하고 환대와 포용의 마음을 발견합니다. 익숙한 일상을 낯설게 바라보고 인권존중과 평화를 가로막는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실천방법을 생각합니다. 이러한 모든 활동이 일방적 가르침이 아니라 모두가 모두에게 배우는 서로 배움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노근리사건 70주년을 맞이하여 여러 가지 행사가 준비되고 있습니다. 위령제, 노근리 전국순회전시회, 글로벌 평화포럼, 평화음학회 등등 노근리사건을 기억하는 의미 있는 행사가 열릴 예정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몇몇 행사는 축소되거나 취소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노근리사건 생존피해자 및 유족 구술채록 사업, 노근리사건 관련 책자 발간, 유족사진집 제작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어 노근리사건 70년의 의미를 되살리고 있습니다. 

노근리사건 70년,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와 평화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노근리사건 희생자와 유족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은 모든 상처들을 마주하고 위로하는 일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근향 ㅣ 노근리평화공원 학예팀 근무. 환대와 포용의 마음을 담은 인권존중과 평화만들기에 대해 생각합니다. 소통과 협력의 서로배움 공간을 함께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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