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역사가 머무는 자리에서,
평화교육 교사모임 여름배움터
김지혜
남한산성 성곽길 서문쪽으로 올라가다보면 기가 막힌 풍경 맛집이 있습니다. 엘에이나 홍콩 야경이 부럽지 않은 곳인데, 다행히 아직 전세계적으로 알려지지 않은지라 조금 한적합니다. 어깨동무 평화교육 교사모임 선생님들과 함께 올랐습니다. 땀나는 여름 더위 속 성벽 위로 선선히 부는 바람이 반갑습니다.
서울은 참 예쁜 도시에요. 분홍을 머금은 노을이 지상에 바삐 반짝이는 것들을 포근히 감쌉니다. 이 곳이 어딘가 저 곳이 어디인가, 의논 하다보니 해가 넘어 발길이 훌쩍 어둑해졌습니다. 지척에 폴짝거리던 귀뚜라미가 눈에 보이지 않아 조심조심 걸음을 디뎌 내려옵니다.
어느새 별빛 가로등이 반짝이는 산성 행궁이 보입니다. “아, 너무 예쁘네요.” 아오리가 감탄합니다. 드라마 세트장 같은 이곳. 저는 익숙한 듯 “그렇죠?”하고 점잔을 뺍니다만 속으론 아오리처럼 감탄하고 있습니다. 와 예쁘다. 너무너무 예쁘다. 진짜 예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잘 보존된 이곳은 388년 전 병자호란의 격전지이자 왕의 피난처, 남한산성입니다.

역사가 머무는 자리에서
산성을 오르기 전, 채창수 선생님과 박종호 선생님께서 <병자호란에서 배우는 한반도 평화의 지혜>, <소설과 영화 ‘남한산성’, 2025년 대한민국 정치보기>를 주제로 강연을 해 주셨습니다. 병자호란을 주제로 한반도 평화와 문학, 정치까지 엮다니 생각지도 못한 확장입니다. 놀랍게도 병자호란을 '옛날 이야기'로 덮어버리기엔 아직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채창수 선생님께서는 병자호란을 한 사건으로 떼어 볼 수 없다며 임진왜란에서 시작해 굴비 엮듯 역사의 표면과 이면을 엮어주십니다. 한국사 공부도 하고, 자격증도 따고, 아이들도 가르쳤는데 몰랐던 게 참 많습니다. 듣다 보니 띄엄띄엄 놓였던 사건들이 물줄기를 이루어 이어져흐릅니다. 두 분 선생님께서 깊이 있고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제 역사 지식이 그걸 다 소화할 수 없어 뜰채로 물고기 낚아 올리듯 몇 가지만 잡아갑니다.
1636년에 일어난 병자호란은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전쟁 발발 4일 만인 12월 14일, 강화도로 가려던 길이 청군에 막히자, 인조는 하는 수 없이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갑니다. 무방비로 겨울을 나던 백성들이 낙엽처럼 바스라지는 동안 지휘관은 재물을 챙기고 어떤 이는 안위를 걱정합니다. 눈이 켜켜이 쌓여 아름다울 겨울 산성에 임금과 주민들이 고립되어 50일을 굶주립니다. 임금은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면 계속 임금 노릇을 할 수 있었지만 백성들은 아홉 머리만 떨어졌겠습니까. 구십, 구백, 구천, 구만 머리가 차갑고 하얀 눈 위에 흩뿌려졌습니다. 얼마나 죽었는지, 괴롭힘당했는지도 살아남은 백성들이나 알았겠지요. 기록조차 정확하지 않아 더욱 참혹한 겨울이었습니다.
“전쟁을 하고 항복할 것인가 전쟁을 하지 않고 항복할 것인가.”, “더 좋은 선택지는 없었을까” 병자호란 수업을 할 때면 아이들과 자주 나누는 질문입니다. 화친이냐 항쟁이냐, 두 입장으로 편을 갈라 자기 생각을 대입해 봅니다. 사람 생명을 근거 삼기도 하고, 나라의 절개를 주장하기도 하고, 일제강점기 상황과 견주어 보기도, 결국 조선이 유지되었으니 다행이라는 의견도 나옵니다. 두 편으로 나누어 한바탕 격전을 벌이다 보면, 인조 시절 신하들의 마음이 이해 됩니다. “최선은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던 선택이었겠구나”하는 고뇌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하지만 강연을 듣고 나니 저 토론 주제가 역사의 겉핥기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제의 본질은 전쟁 전부터 조선을 깊이 관통하고 있었습니다. 후대 사람들이 병자호란의 다른 가능성을 아쉬워하는 것과는 달리, 어쩌면 당대 지도층에게 그 행보는 이미 정해진 최선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생존과 기득권 보전을 위해서 말이지요. 사대주의는 단순히 외교가 아니라 조선의 정치 이념·문화·정체성이었습니다. 명나라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일그러진 자존감은 주인 자리를 빼앗긴 조선 사대부 열등 의식의 합리화이면서, 정치적 생존을 위한 길이었습니다.
끊임없이 불안에 떨며 비교당하고 쓸모를 증명해야 했던 왕은 수많은 백성의 목숨보다 제 살 길을 지키는 게 더 절실했을 수 있겠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권력의 눈치를 보고, 목숨을 위협받는 환경이었으니 본능적인 생존 욕구가 작동했겠지요. 왕을 보필하는 어떤 사람들은 도(道)보다 욕망이 앞섰겠습니다. 백성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욕심을 이루기 위한 수단쯤으로 여기는 이들이 권력의 중심에 있던 시대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마음들을 인간적인 나약함으로 이해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문제는 그들의 손에 많은 생명과 운명이 좌지우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임진왜란부터 병자호란, 그리고 한국전쟁과 대한민국 정치 이야기를 듣다보니, 전쟁의 이유와 양상이 비슷합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조건을 바꿀 수는 없을테고, 이를 적절히 이용하면서도 부단히 경계 해야 겠구나 싶었습니다. 반도국은 밖으로 펼쳐지면 대륙의 통로, 세계로 뻗어나가는 무역국이 되지만, 안으로 고이고 적절한 외교 전략을 펼쳐내지 못하면 강대국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합니다. ‘전쟁의 통로’, ‘전참기지’, ‘후방 위험을 막고자 미리 없애 버리는 계륵같은 존재’는 모두 한반도가 겪은 역사입니다. 앞으로도 눈에 보이는 전쟁이든,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든 한반도가 세력의 충돌지가 될 가능성이 있겠지요. 이곳에 사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지켜나가는 최선의 전략은 바로 ‘주체성을 가진 외교'인 것 같은데. 우리는 반복된 관성을 깨부수고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역사를 현재로 끌어옵니다. 비극을 단지 시대의 한계, 개인의 부족함으로 끝내버리면, 과거는 반복됩니다. 지금의 한반도는, 정치 모습은, 체제는, 사람들은, 가치관은, 이념은 어떠한지 돌아봅니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을 막은 신하를 지우고, 명에게 도움을 요청한 자들을 호국 공신으로 임명한 선조, 명에 인정을 받고자 노력했던 조선 이야기를 들으며 현재를 생각합니다. 지금의 호국 공신은 어떤 역할을 한 사람들일까요, 명처럼 우리의 정체성을 지배하는 외국이 있나요? 어려울 때에 아름다운 ‘미’자를 붙여가며 사대했던 그 시대를 현명하게 거쳐왔을까요? 아직까지도 자기 힘보다 외세를 빌려 나라를 운영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 이런 마음이 살짝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디에서 온 불편함인가도 돌아봅니다.

우리가 만들고 있는 공동체 이야기
다음날, 예상보다 거한 아침을 먹고 배를 두둑두둑 두드리며 남한산 초등학교에 갑니다. 토요일이라 시끌한 아이들 대신 더운 열기가 복도를 꽉 채웁니다. 연진 선생님께서 학교를 간단히 소개해 주십니다. 저는 우리 교무부장님(연진샘)을 가만히 따라다닙니다. 고향에 친구가 놀러온다고 하면 ‘여기에 볼 것도 없는데’라면서 조심스러워지잖아요. 근데 엄마를 따라 다니며 친척들이 어찌저찌 관광을 하고 있달까요. 신기하게도 그런 마음입니다.

학교 구경 후 연진선생님 반에서 시원한 과학기술을 누리며 어깨동무 선생님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눕니다. 어제 먹다 남은 수박이 달아서 포크가 자꾸 출동합니다. 너무 더워 모기도 없다는 2025년 여름, 놀라운 폭염을 이기는 에어컨이 있어 어찌나 다행인지요. 한편, 밖은 더운데 여기만 시원해서 살짝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합니다. 사실 남한산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요즘 마음이 그렇습니다. ‘이래도 되나?’ 여기는 애들 가르치랴 학교 교육과정 준비하랴 소통하고 회의하랴 피곤하고 힘든데, 이상하게 평화롭습니다.
그 학교가 ‘편하냐’고 물으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여러 사람과 소통하고 스스로 고민해야 하고, 돌아보고 부족함을 마주합니다. 지나보면 평화롭다고 자조하지만, 그 속에서는 ‘이게 맞나?’싶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평화롭다는 말을 꺼낼 수 있는 까닭은, 모두가 비슷한 존재임을 어렴풋이 알고서 서로 아끼기 때문입니다. 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살고, 제 개성대로 도움도 불편도 주고 조화롭고 삐죽거리면서 삶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는 넉넉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산 아래의 어떤 학교들에서는 이런 여유가 사라져버렸습니다. 조금이라도 책 잡힐까봐, 작은 실수가 큰 파도로 돌아올까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로 서로 만나고 이해하기보다는 성과나 비교가 더 중요해집니다. 존중이 사라진 사회는 평화를 만들기보다 문제를 덮고 갈등을 공격하는 데 더 힘을 쏟습니다.
어깨동무 선생님들과 첫날 저녁 내내, 다음날 연진샘 교실에 모여서도 그런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갈등을 평화로 바꾸는 방법에 어떤 것들이 있을까. 몸도 마음도 평화로울 순 없을까? 평화와 연대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힘은 무엇이며, 모두가 환대 받으며 참여하고 확장하는 방향과 방법이 없을까.”

가영샘이 촘촘한 사회로 안내해 주시고, 세옥샘과 연진샘께서 죽백초와 남한산초 이야기를 꺼내 나눠주십니다. 학교 소개를 듣고 고민을 나누며 평평하게 서로를 열다보니 무언가 배우게 됩니다. ‘사람’, ‘문화’, ‘공동체’, ‘환대’, ‘갈등', ‘시간’, ‘과정’, ‘현재’ 등 처음일 리 없는 고민들이 시간을 거쳐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처음처럼, 익숙함을 원숙하게 바라보시는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오갑니다. ‘무엇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다양한 사람과 공동체를 존중하고 충실히 이어가시는 애씀이 느껴집니다. 평화는 고요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는 움직임이라고 합니다. ‘시끄럽고 이게 맞냐며 의심하면서도 서로를 잃지 않는 게 평화’라는 말을 하십니다. 그 속에서 자기를 잃고 소진되지 않기로 서로 약속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만남은 나를 돌아보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아쉽지만 가영샘께서 ‘차 한잔 하자’는 산뜻한 우쿨렐레 노래를 불러주셔서 즐겁게 연수를 닫았습니다. 두 달 후에 다시, 차 한잔 하며 못다한 이야기를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다들 평화로운 한 학기 사시고, 9월에, 그리고 겨울 연수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뵙게 되길 기다리겠습니다.^^사실 고백하자면... 저는 연수에서 무엇을 배워가려는 의지보다 그냥 선생님들이랑 만나는 시간 자체가 백배 더 좋습니다. 사랑합니다. 건강하세요.
김지혜 | 올해 남한산 초등학교로 전근을 와서 학교의 막내(!?)로 허덕이며 살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맨날 '힘들어 죽겠다!!' 하면서도 밖에서는 '우리 학교 좋다'고 말하는 청개구리입니다. 별명은 '노랑꽃'인데 점점 '꽃'이 민망해져서 요즘엔 그냥 '노랑'으로 어물쩡 넘기려고 시도 중입니다. 어깨동무 선생님들과 만나면서 늘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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