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이슈]
새 술은 새 부대에
정영철(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 소장)
많은 사람들이 이재명 정권의 탄생으로 남북관계에 새로운 활력을 가져오리라 기대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여 대북 심리전인 삐라 살포를 실효적으로 금지하였고, 대북 방송도 중단하였다. 표류하던 북한 주민들도 동해 해상에서 북으로 송환하였다. 그리고 마치 이에 화답하듯 북도 대남 방송을 중단하였고, 소위 말하는 오물풍선도 더 이상 보내지 않고 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남북관계가 곧 개선되고, 화해와 협력이 다시금 재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지금의 남북관계는 이미 문재인 정부시기를 거치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시대적 조건에 처해있다. 북이 말한 ‘적대적 두 국가론’이 그 상징적인 계기이지만, 이를 제쳐놓고서라도 이미 남북관계는 과거의 패러다임으로는 지속할 수 없는 지경에 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멀리 보면 김대중 시절부터, 그 이전으로 거슬러 간다면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으로부터 시작하여 일종의 탈냉전의 남북관계가 시작되었고, 냉전 시기의 적대와 갈등의 남북관계가 화해와 협력의 남북관계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시기를 기점으로 전 세계적인 ‘신냉전’의 질서, 다극화된 세계 질서라는 객관적 배경과 2018-2019년을 거치면서 나타난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에 서 구조적 종속의 덫을 빠져나오지 못한 한미관계가 분명해지면서, 남북의 독자성과 자율성은 거의 상실되다시피 하였다. 여기에 북이 지적 하듯이, 우리 헌법에 적시되어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의 명문이 통일에 대한 열린 자세를 가둬놓고 있다. 이미 세상은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의 헌법 구조와 사회적 인식은 1990-2000년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김여정이 공언한대로 남북이 마주앉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단지 새로운 사람, 새로운 정책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 십자군 전쟁 시절, 그 유명한 살라딘의 행동을 살펴보자. 소위 사자왕인 영국의 리처드와 살라딘의 군대가 맞붙었을 때, 말에서 떨어진 리처드를 보면서 살라딘은 부관을 시켜 그에게 아주 좋은 말을 가져다 주라고 했고, 실제로 그 부관은 전투 중임에도 불구하고 리처드에게 아주 훌륭한 말을 가져다 주었다. 왜 살라딘은 이러한 행동을 했을까? 그가 단지 아주 뛰어난 영웅이어서? 아니면 리처드를 존경해서? 그도 아니라면 적군의 지도자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살라딘이 이러한 행동을 한 것은 그가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를 읽어냈기 때문이었다. 즉, 다가오는 시대는 지금의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왕의 시대, 왕권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질서의 시대임을 직감하였고, 그래서 리처드의 왕으로서의 권위와 품격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새 술은 새 부대’라는 말은 바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가치와 철학, 사회적 질서의 구축이라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지난 80여년의 남북관계를 성찰하면서 이를 적용해야 할 어렵고도 힘든 과제를 안고 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 두 책략가들이나 전문가들에게 의지할 것이 아니라 전체의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
지금까지 새로운 정부가 남북관계에 대해 보여주는 모습은 그나마 과거의 낡은 찌꺼기들을 걸러내고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앞서 말한 대로 삐라 살포 중지, 대북 방송 중단, 북 어부들의 송환 등이 그것이다. 우리 사회 내부의 갈등도 일으켜왔던 이러한 것들은 정권을 담당하자마자 해결해야 할 가장 첫 순위의 일로 많은 사람들이 주장했었고, 실제 이를 행동으로 옮긴 것은 매우 바람직했다. 또한, 지금까지 관성에 찌들었던 통일부를 새롭게 혁신하고 그 명칭의 변경 필요성을 인정 하며, 검토하겠다는 통일부 장관의 입장도 긍정적이다. 아직까지는 딱 여기까지이다. 아직 정권 출범 70여 일 정도이고, 정책이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 정부의 정책을 평가하기에는 이르지만, 여기까지의 긍정성은 충분히 평가해줄만하다.
그런데... 그 외의 몇 가지 점에서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남북 관계의 개선을 목적으로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여 김정은 위원장의 APEC 초청, 한미연합훈련의 연기 등 흘러간 정책을 답습해서는 아무런 성과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김여정이 그러지 않았는가? 이러한 것들 모두가 ‘흡수통일’이라는 정신적 망령에 포로되어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여기에 중요한 한 가지를 덧붙였고, 이는 우리가 심각히 음미해보아야 할 대목이다. 김여정은 “미구하여 세상이 목격하게 될 일이지만 또다시 우리의 남쪽 국경 너머에서는 침략적 성격의 대규모 합동군사연습의 련속적인 강행으로 초연이 걷힐 날이 없을 것이며 미한은 상투적 수법 그대로 저들이 산생시킨 조선반도 정세악화의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해보려고 획책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를 한마디로 요약해보자면, 지금 한미관계의 변화없이는 남북관계에 아무런 변화도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달라진 시대, 달라진 가치, 달라진 우리의 위상과 역량 등에 기초하여 오히려 우리의 내부를 심각히 돌아보아야 한다. 북의 요구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지향해야 할 한반도의 모습을 우리 스스로 그려낼 수 있어야 한다. 지난 정권의 누군가처럼 ‘운전자’를 자처하면서, 삐뚤어진 네비게이션을 장착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결코 운전자가 아니라 한반도의 미래 설계자여야 하고, 이를 행동에 옮기는 실천가여야 한다. 즉, 지금의 시대는 우리 스스로가 독자성과 자율성을 가지고 한반도 문제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 우리는 무엇보다도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부의 이벤트와 보여주기 정책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남북관계의 퇴보만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남북관계가 어렵다고 하여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다. 우리 내부적으로는 민주주의와 평화의 역량을 부단히 증진시켜 나가야 하고, 실제 이것이 가장 중요한 우리의 할 일이 되어야 한다. 동시에, 미래의 한반도를 그려내기 위한 우리 법-제도의 과감한 개정도 필요하다. 과거 아일랜드가 지긋지긋한 갈등과 물리적 충돌에서 빠져나오면서 헌법의 영토 조항을 과감히 포기하고,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을 도입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 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헌법 개정이 우리의 권력구조만이 아니라 ‘통일’과 관련된 부분에서도 충분히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동맹이라는 종속의 덫에서 빠져나와 독자성과 자율성을 기반으로 한 평등하고, 비종속적인 동맹관계를 지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지금의 시대에서 이벤트와 한 번의 정책으로 남북관계의 전환을 바라서는 결코 안 된다. 우리를 감싸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돌아보아야 하며, 과감하게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내부의 역량을 얼마나 단단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동시에 통일의 문제는 지금까지의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넘어서 어느 특정 단계와 최종적인 모습을 상정하지 않는 ‘열린 통일’의 가치를 가져야 할 것이다. 통일은 민주적이고, 다수의 동의로서,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만으로도 충분하다. 통일의 최종적인 상태를 미리 예단하는 것 자체가 이미 불가능할 뿐 아니라, 어느 한 체제로의 ‘흡수’를 전제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곧 남북이 영원히 만나지 못할 가능성만을 높이게 될 것이다.
지금의 이재명 정부가 남북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낸다는 각오와 입장에 서기를 바란다. 이 길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더 많은 사람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기를 바란다. 특히, 오랫동안 남북의 평화, 화해, 협력의 길에서 온갖 수고를 다 해왔던 시민사회와의 적극적인 소통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것이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을 수 있는 가장 합당한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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