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 아니고 지금]
이제 산 자가 산 자를 구하는 세상으로
김형남
2025년 1월 9일 아침, 서울 용산에 위치한 국방부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법정 안팎을 가득 채운 이들로부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고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으로 항명죄 재판을 받던 박정훈 대령에게 1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그 무렵은 참 황망하고 어이없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탄핵소추만 성사시키면 민주 헌정 질서에 따라 모든 일이 순리대로 풀릴 줄만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았다. 불법 비상계엄을 선포해 내란죄 피의자가 된 대통령이 법원이 적법하게 발부한 체포영장 집행을 대통령경호처와 군경을 동원해 저지하는 사상초유의 일을 벌였다. 법치에 도전하는 윤석열에게 힘을 얻은 지지자들은 시민들에게 물리적 위협을 가하며 길을 휘젓고 다녔고, 대통령은 2차 체포영장 집행을 앞두고 공성전을 방불케 하는 준비태세를 갖췄으며,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 모든 막장 드라마를 묵인했다. 당장 내전이 벌어져도 뭐 하나 이상할 것 없었던 날들의 연속에서 박 대령의 승소는 시민들에게 희망이 되기 충분했다. 그리고 그 희망이 군사법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여전히 내심 놀랍다.
군부독재 시절 ‘군법회의’라 불렸던 군사법원은 늘 비판의 대상이었다. 말이 법원이지 독립성이라곤 전혀 갖추지 못한 터라 사법기관의 이름표를 달아주기에 여간 민망한 곳이 군사법원이었다. 군사법원은 대법원이 아닌 국방부장관과 장군들의 지휘를 받았다. 법원장도, 군판사도 모두 부대장의 부하였다. 사단에 설치된 사단 군사법원은 사단장의 지휘를 받았고, 군단에 설치된 군단 군사법원은 군단장의 지휘를 받았다. 재판부를 구성하는 세 명 중 둘은 법조인 자격을 갖춘 군판사들이었지만, 재판장은 지휘관이 임명한 비법조인 군인이 맡았다. 이 사람을 심판관이라 부른다. 법률가도 아닌 일반 군인이 지휘관의 명을 받아 법복을 입고 재판을 지휘했던 것이다. 말이 좋아 심판관이지 그냥 지휘관이 자기 분신을 법정에 앉혀놓았던 셈이다. 이렇게 재판을 주물럭거릴 수 있는 권한으론 모자라다 생각했는지 지휘관들에겐 ‘관할관 확인조치권’이란 무소불위의 권한도 주어졌다. 관할관, 즉 법원 관할 구역을 책임지는 지휘관이 판결문에 싸인해주지 않으면 그 판결엔 효력이 없게 되는 이상한 제도다. 지휘관은 확인조치권을 통해 피고인이 받은 형량의 1/3을 감경해줄 수 있었다. 재판장도 자기가 임명하고, 판사는 자기 부하고, 그들이 만들어 온 판결도 수정할 수 있는 희한한 재판, 군사법원은 조선시대 ‘원님재판’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군사법원은 수십년 간 군 수뇌부의 강고한 기득권을 지켜주는 든든한 방파제였고, 군에서 발생한 사건, 사고를 은폐, 축소하는 유용한 알리바이로 기능했다.
그러던 군사법원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2014년 4월, 육군 제28사단에서 발생한 고 윤승주 일병 구타·가혹행위 사망 사건 때부터다. 당시 육군은 대낮에 선임병들에게 맞아 죽은 윤 일병의 충격적인 죽음을 은폐하기 위해 유가족과 시민들에게 ‘냉동만두를 먹다 기도가 막혀 죽었다’는 어처구니 없는 거짓말을 늘어놨다. 검시도 하지 않았는데 사인부터 발표했던 육군의 의도에 맞춰 군법의관과 군사경찰, 군법무관은 알맞은 시나리오를 만들어 줬다. 다행히 선임병들이 평소 윤 일병을 구타해왔다는 공익제보가 부대에 접수되었던 터라 구타 사실 자체를 은폐할 순 없었지만, 군은 구타와 사망의 인과관계를 덮을 요량으로 가해자들에게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죄를 적용해 사건의 규모를 대폭 축소시켰다. 그러다 3개월이 지난 뒤에야 군인권센터의 폭로로 윤 일병의 진짜 사인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군사법원과 군검찰은 살인죄를 적용하길 거부했고, 결국 1심 군사법원은 상해치사죄로 가해자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물론 이 결과는 상급심에서 뒤집히게 된다.
윤 일병 사건은 군사법원의 민낯이 전국민 앞에 적나라하게 폭로된 중요한 계기점이었다. 군사법원 폐지 여론이 들끓었고, 국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쏟아져나왔다. 그만큼 군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군은 사법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했고, 결국 군사법개혁은 겉핥기에 그치고 말았다. 심판관 임명과 관할관 확인조치권 행사의 요건을 강화하고, 군사법원의 숫자를 줄이는 수준에서 멈췄고, 전쟁 중이 아닐 때는 군사법원과 군수사기관의 기능을 민간으로 이양하거나, 군사기밀 유출 등 특수 군사범죄가 아닌 일반 범죄 사건은 민간으로 옮기자는 제안은 묻혔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7년이 지난 2021년, 군사법개혁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공군 제20전투비행단에서 고 이예람 중사가 상급자의 성추행과, 이어진 2차 가해, 군수사기관의 피해자 방치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 중사는 성추행 피해를 당한 뒤 군이 정한 매뉴얼에 따라 바로 상관에게 신고했고, 수사를 희망했다. 몸담고 있던 조직이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 굳게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중사의 기대에 대한 군의 응답은 처참했다. 피-가해자 분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가해자는 그틈을 타 피해자를 비난하고 다니며 부대에서 고립시켰으며, 군수사기관은 이 사실을 모두 알면서도 수수방관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수사를 지연시키던 군검사는 군법무관들이 모인 단톡방에 사건을 가십거리처럼 생중계했다. 그러는 사이, 원 소속 부대에서도, 새로 옮겨간 부대에서도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던 이중사는 조직을 원망하며 생을 마감했다.


그래서 7년 전에 풀어내지 못한 숙제가 물밀 듯이 군을 덮쳤다. 이번에도 군의 반대는 격렬했지만. 국민의 분노 역시 한층 격했다. 결국 심판관과 관할관 확인조치권은 폐지되었고, 전국의 군사법원은 5개로 통폐합되었으며, 사망의 원인이 되는 범죄, 성폭력 사건, 입대 전 범죄 사건 등 3대 범죄의 수사, 재판 관할은 민간으로 옮겨졌다. 2심 고등군사법원도 없어져 항소심부터는 민간 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군사법기능을 민간으로 이양하자는 원안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군사법제도는 창군 이래 가장 큰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2년이 지난 2023년, 수해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고 채수근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유명을 달리한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수사를 지휘했던 해병대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은 바뀐 법에 따라 사망 원인 수사를 마무리한 뒤 사망의 원인이 되는 범죄 혐의자를 추려 민간 경찰로 이첩했다. 여기에는 사단장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익히 알려진 것처럼 윤석열이 이에 격노하여 수사 외압이 시작되었고 박정훈 대령에겐 항명죄가 뒤집어 씌워졌다. 만약 군이 사망 원인 수사 과정에서 사망 원인 범죄를 식별하면 민간에 이첩해야 한다는 법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군은 윤석열 눈치를 보며 내부적으로 수사 책임자를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고 사단장을 피의자 명단에서 제외하는 간편한 정리 수순을 밟았을 것이다. 결국 윤승주 일병과 이예람 중사의 죽음이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의 진실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해줬던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항명죄 재판으로도 이어졌다. 미약하나마 군사법원에 대한 국방부장관이나 지휘관의 입김을 차단하기 위한 여러 안전핀들이 사건의 중요 국면마다 작동했다. 이것이 서슬퍼런 윤석열 정권 하에서도 박정훈 대령 항명죄 재판이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었던 까닭이다. 결국 군사법원은 신중한 법의 언어로 양심과 진실의 손을 들어줬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의 밤에 국회에 갔던 군인들 중 시민들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했다는 군인들의 입에선 늘 ‘박정훈 대령’의 이름이 나온다. 명령을 적극 수행하지 않아 항명죄로 처벌 받을 것이 두렵다는 생각이 들 때면, 박 대령을 떠올리며 마음을 고쳐 잡았다고 한다. 박정훈 대령 항명죄 무죄 판결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군사법제도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고 피해자의 인권보장과 사법정의의 실현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2022.3.8. 개정된 군사법원법의 입법취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해병대사령관에게는 군사법원에 재판권이 없는 범죄의 이첩 시 이첩 중단 명령을 할 권한은 없는 것으로 보이고, 피고인에게 한 기록 이첩 중단 명령은 정당한 명령으로 보기 어렵다’
무죄판결 전 마지막 공판, 퇴정하는 군판사에게 방청석에 앉아있던 고 이예람 중사의 아버지는 손을 들고 ‘군사법원법이 누구로 인해, 왜 개정된 건지 한번만 생각하고 판결해달라’며 절규했다. 판결문은 그런 맥락에서 쓰여졌다. 그렇게 그날도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했고, 그 구함이 계엄의 어두운 밤 속에서 더 많은 시민과 민주주의의 생을 구했다.
이제 우리는 산 자가 산 자를 구하는 세상으로 가자. 그것이 누군가의 죽음이 아니더라도 지키고 쌓는 일의 가능성을 열어낼 수 있는 세상으로 가자. 세상의 어느 한 곳을 바꾸는 일이, 한 사람의 삶을 지키고 되새기는 일이 결국 모두를 구원한다는 그 날의 울림을 오래 새기고.
김형남 |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시민의 힘으로 지키는 군인의 인권, 군사 독재의 잔재를 걷어 낸 시민의 군대를 만들기 위해 애씁니다. 채 상병 사망 사건을 비롯한 숱한 군 사망 사건을 지원하며 배운 것은 한 사람의 삶을 지키기 위한 끈질긴 마음이 모두의 세상을 지키는 가장 유효한 방법이라는 점. 그 마음으로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에서 집회 사회자로 손을 보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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