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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45_4 채창수_한국 현대사 정치지형도 그리기

by 어린이어깨동무 2026. 2. 12.

[좌충우돌 교실이야기] 

나의 현대사 수업 ① 
한국 현대사 정치지형도 그리기 

채창수

 

“좌파냐”는 질문

최근 인터넷에서 일부 극우 세력이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찬성’ 의견을 보였던 유명인들에게 악의적인 댓글을 다는 등 공격을 하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 해당 연예인의 SNS 계정에는 “왜 윤석열 탄핵 청원에 동의했냐” “좌파냐” “윤석열 탄핵 찬성하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라” 등 댓글이 달렸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눈에 꽂히는 표현이 있다. 


“좌파냐”


‘당신 좌파야?’ 라는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이 짧은 질문에는 분단 문제가 얽혀있는 80여 년의 한국 현대사가 응축되어 있다. 그리고 피 냄새가 난다. 현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좌파라는 용어는 공산주의, 북한, 반국가세력과 거의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렇게 규정된 사람들은 남한 사회에서 감시와 배제, 처벌의 대상이 되었다. 


민주화 이후에도 좌파라는 용어는 진보적인 성향의 인물을 급진적이고 북한과 연관 있는 위험한 세력으로 몰아가려는 정치적 의도로 사용되었다. 이렇게 규정된 이들은 법적, 사회적으로 공격 당하고 큰 고초를 겪었다. 우리 사회에서 어떤 사람들이 좌파로 규정당하고 고초를 겪었는지 생각해 보자. 그래서 “좌파냐?”는 질문에는 당신의 소속을 밝힐 것, 그리고 대답에 따라 배제와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위협이 담겨있다. 최근에는 청소년들의 극우화 현상과 어우러지며 좌파라는 표현에는 혐오와 조롱의 의미가 더해졌다. 


그런데, 만일 당신이 “좌파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대답하기가 참 난처할 것이다. 원래 의미와 한국 사회에서 사용돼 온 역사적 맥락이 다르기 때문이다. 복잡한 맥락을 머릿속에서 고민하는, 진지한 당신의 머뭇거림은 질문자의 의심을 확증으로 만들고 낙인, 혐오, 조롱이 차례로 뒤따를지도 모른다. 그래서 분단 극복과 평화로운 한반도를 꿈꾸는 고등학교 역사 교사로서, 나의 현대사 수업 첫 시간은 “좌파냐”는 질문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시간이다. 

 

좌파와 우파 개념 익히기

한국사 현대사 수업 첫 시간, 학생들에게 오늘 배울 내용은 ‘좌파와 우파’의 개념을 익히고 해방 후 중요 정치인들이 어떤 이념적 위치에 있는지 지형도를 그려볼 것이라고 얘기한다. 정치지형도를 그릴 줄 알면 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삶의 질이 보인다고, 엄청 신기하다고 너스레를 떤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벙찐 표정을 짓다가 이내 킥킥거린다.

 

출처 : Gemini AI 생성

좌파와 우파의 개념을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좌우 규정이 기준점에 따라서 상대적임을 설명하는 것이다. 시대와 사회에 따라 의미가 다르지만, 좌파는 대개 사회주의-평등-분배를 중시하는 성향을 의미하고 우파는 자본주의-자유-성장을 중시한다고 각각의 의미를 대비해가면서 자세히 설명한다. 극좌와 극우에 대한 설명도 빠뜨릴 수 없다. ‘극’이라는 글자가 붙은 정치 세력들은 겉으로는 정치이념을 주장하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이 극단적이고 어쩌면 이념보다는 권력의 획득이 진짜 목적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한다. 그래서 때론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극좌와 극우가 손을 잡기도 한다고, 히틀러와 스탈린이 그 증거라고 얘기해준다. 이때 경제 영역에서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로 좌파 우파를 구분하는 설명이 중요하다. 자유와 평등이 소중하지만, 둘은 한꺼번에 발전할 수 없는 서로 대립하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비유를 들어서 아이들에게 이해시킨다. 경제 영역에서 자유를 너무 강조하고 허용하면 경쟁이 심해지면서 그 집단의 강자에게 극도로 유리해지고 반면에 평등을 너무 강조하면 개인의 자유가 과도하게 억압되기 때문에 둘 사 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럼 좌파와 우파는 각각 자 유와 평등 중에 어느 쪽을 더 중요하게 여길까? 자유와 평등은 한쪽이 절대적으로 옳은 가치가 아니라 견제와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좌파와 우파 역시 어느 한쪽이 옳은 것이 아니라 시대적 상황에 따라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해 준다. 프랑스 대혁명 시기 의회의 자리 배치에서 기원했다는 설명을 곁들이면 놀라움에 아이들의 눈이 더 반짝거린다. 

 

퍼플렉시티를 활용해 그린 독일과 영국의 정치지형도

기본적인 설명은 끝났지만, 위의 정치지형도를 보면서 심화된 문답 시간을 갖는다. 좌우를 나누는 것은 기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우리는 국제적인 시각에서 기준을 세우겠다고 아이들에게 설명한다. 독일과 영국을 예로 들어 서구 기준으로 좌우 기준을 파악해 보도록 한다. “여기 그래프에 있는 정당들은 독일과 영국에서 번갈아 가며 정권을 잡는 대표적 정당들이야. 이 정당들이 독일과 영국에서 ‘자유와 평등’ ‘좌파와 우파’의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지. 아까 선생님이 설명했던 좌파와 우파에 대한 설명을 떠올리면서 다음 질문에 대답해 보자.”  


⒜ 이 그래프를 봤을 때 경쟁이 덜하고 복지가 더 좋은 나라는 어디일까?
⒝ 전 세계에서 복지가 가장 좋은 나라는 어느 나라지? 그 나라의 정치 세력들은 독일보다 좀 더 왼쪽에 위치할까? 오른쪽에 위치할까?
⒞ 그럼, 우리 나라의 정치집단들은 어느 정도에 위치해 있을까?

 

학생들의 대답과 나의 생각을 나누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OECD 국가별 복지재정 지출 순위 그래프를 제시하고 영국, 독일, 한국의 위치를 찾아보도록 한다. 정치지형도가 보여주는 국민의 삶을 복지재정 지출 비교를 통해서 확인해 보는 것이다. 

 

국가별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 비율 비교(출처 : 국회예산정책처, 2021. 02. 24)

한국 현대사 정치지형도 그리기

이제 극좌에서 극우까지 정치지형도를 전자칠판 위에 띄워놓고 모둠별로 김일성-이승만, 김구-여운형, 김대중-박정희의 정치 이념적 위치를 결정하고 그렇게 정한 이유를 토의하도록 한다. 이때 학습지에는 각 정치인의 이념적 특징을 읽어낼 수 있도록 읽기 자료를 제공한다. 토의가 끝나면 각 모둠별 발표 학생이 나와서 정치지형도의 특정 위치에 자신의 모둠에 할당되었던 정치인의 이름을 쓰고 모둠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설명한다. 학생들은 신난 표정이지만 발표 내용은 참으로 진지하다. 이 수업의 하이라이트는 김대중 박정희 부분이다. 

 

출처 : 2015 교육과정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해냄에듀 p.271)

두 인물에 대해서는 2015 교육과정 해냄에듀 한국사 교과서에 실린 1971년 대통령 선거 공약을 기본 자료로 제시하고 자신들이 갖고 있는 역사 지식을 포함해서 두 인물의 정치 성향을 추론해 보도록 한다. 발표를 맡은 학생이 나와서 쭈뼛거리며 박정희를 우, 또는 극우 위치에 표시하고 이유를 설명한다. 그리고는 김대중을 표시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김대중을 좌파 위치에 표시하고 설명한다. 그렇지, 예상대로구나. 이제 본론으로 들어간다. 아이들에게 묻는다. 김대중이 좌파라면 그 뒤를 잇고 있는 민주당 정치인들이나 현재의 더불어민주당이 좌파인가? 아이들과 문답을 통해 학자마다 보는 눈이 조금 다르지만, 서구적 기준으로 보면 김대중은 중도우에서 우 사이에 위치한다고 설명해준다. 그리고, 한국의 정치집단들은 중도우에서 극우 사이에 위치해 있고, 중도에서 좌까지는 제도권 정치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아이들과 다음 질문에 대해 문답을 나눈다. 
⒜ 서구 국가들과 달리 중도우에서 극우까지 정치 세력들이 몰려있는 한국의 정치지형도를 보았을 때 한국인들의 삶은 어떨까? 빈부격차는? (여러분도 피부로 절감하고 있는) 경쟁의 정도는? 사회적 약자의 삶은? 
⒝ 한국이 이렇게 기형적 정치 지형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 발표 학생처럼 많은 사람이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을 좌파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만약 그분들을 좌파라고 부른다면 그렇게 규정한 사람은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을까?


위의 문답들은 참으로 소중하다. 학생들이 잊지 않고 기억하고 고민해줬으면 하는 질문들이다. ⒜ 질문에 대해 학생들은 어렵지 않게 대답한다. ⒝ 질문에 대해 한참을 고민하던 아이들, 누군가의 입에서 ‘6·25 전쟁’이라는 대답이 나온다. “그렇지. 분단과 전쟁을 거치며 왼쪽에 있는 사람들은 학살당하거나 북한으로 넘어갔지.” ⒞ 질문에는 학생들이 대답하지 못한다. 서구 기준에서 온건한 정치 성향에 속하는 김대중 같은 정치인이 좌파 또는 급진세력, 빨갱이로 공격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적 상황에서 당시에 가장 왼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재정권에 맞섰기 때문에. 그리고, ⒟ 질문에 학생들이 대답한다. “극우요.” 


한국에서 중도우파나 우파 성향의 정치인을 좌파라고 부르는 사람은 왜 그런 걸까? 이 질문에는 대답하는 학급도 못 하는 학급도 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해 준다. 첫째는 그렇게 규정한 사람이 더 오른쪽에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좌파라고 부르면 북한과 관련된 빨갱이, 종북이라는 이미지를 씌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마지막으로 지나가듯이 묻는다. “한국의 정치지형도는 참 기형적이지? 한국인들의 삶이 더 행복해지려면 정치지형도에서 정치 세력들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면 좋을까?”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한다. 나는 대답을 듣고 웃으며 속으로 생각한다. (그 방향으로 정치지형도가 바뀌는 것을 막는 힘도 분단이라고)


마지막으로 다음 내용들을 몇몇 학생들에게 확인 질문하고 수업을 마친다. 
⒜ 좌파와 우파의 기준이 상대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뭐지?
⒝ 자유와 평등이 같이 발전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 정치지형도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 누군가를 좌파와 우파로 규정할 때 먼저 확인할 것은 무엇일까?


수업이 끝나고 애들은 떠들썩하게 대화를 나누며 교실을 나선다. “너는 중도 우파인 것 같아”, “아니야, 나는 우파야” 이런 소리가 들린다.

 

수업 돌아보기 

학기 말에 1학년 학생 전체에게 수업 평가서를 받았다. 인상 깊었던 수업으로 ‘정치지형도 그리기’ 수업을 꼽는 아이들이 많았다. 좌파와 우파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는데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어서 좋았다는 얘기들, 좌파와 우파의 의미가 상대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기억에 남았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가 있다. 학년 첫 시간에 우리 역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고르고 이유를 쓴 뒤에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작고 차분한 어떤 학생이 두 명을 적어도 되냐고 묻길래 그러라고 했더니, 한 명은 성재기 다른 한 명은 동덕여대 이사장이라고 쓴 내용을 발표했다. 성재기가 누구냐고 (몰라서) 물었더니 ‘남성연대 대표’였다고. 동덕여대 이사장은 남녀공학 추진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언젠가 건국절 얘기도 언급하는 것을 듣고 이 친구는 극우 콘텐츠를 접하고 있다고 판단했지만, 진지한 대화는 해보지 못했다. 이 친구는 수업 평가에 이렇게 적었다. “우파, 좌파에 대한 개념을 국내 정당 구도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수업을 통해 현재 우리나라 정부에는 좌파가 있을 수 없다는 점과 사회적 구조 등을 고려할 때 좌파 우파는 상대적이며 역사적 맥락 속에서 성립된 것임을 인식하게 되었다…(후략)… ” 이 학생은 다른 건 몰라도 누군가에게 “좌파냐”는 질문은 던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수업은 분단 문제 극복이라는 큰 주제 하에 한국 현대사 전체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도록 기획하였다. 어찌 보면 상당히 도발적 수업 주제이고, 근무지가 전라도라서 가능한 수업일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최근 10대 청소년의 극우화가 사회적 이슈가 되는 상황에서 이런 수업 시도가 더 중요하고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10대들 사이에 극우적인 표현이나 놀이가 일상화되고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희화화와 조롱이 넘치는 상황에서 많은 교사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해한다. 청소년 기자들이 직접 10대들을 심층 인터뷰한 주간지 ‘시사IN’ 최근 기사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지금 학생들에게 무엇이 필요하냐”라고 물었다. 학생들이 직접 제안한 해결책은 다름 아닌 토론이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효과에 의구심을 품고 있던 J도 “학교 안에서 정치를 주제로 토론할 기회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극우도 없어질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좌우파 개념을 익히고, 분단이 가져온 한국 정치의 기형적 구조를 이해하고 그것이 한국인의 삶에 끼친 영향을 이해하고 허심탄회하게 토론해본다면 적어도 “좌파냐”와 같은 개념 없는 질문은 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은 어쩌면 이런 배움을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참고문헌 
강한들, 가수 한로로에 몰려간 극우들 “좌파냐” 댓글 테러···윤석열 1심 앞두고 ‘관심 끌기’?」, 경향신문 2026.01.26.
조성수,「한국사회에서 좌파에 대한 인식 혼동」, 오마이뉴스 2009.10.14. 

구갑우 외,『좌우파 사전』, 위즈덤하우스, 2010.
권용립,『한국개념사총서10 ‘보수’』, 소화, 2015.
최윤재,「한국 사회의 좌파와 우파」, 경향신문, 2008.10.13.
박권일,「우리 안의 극우」, 한겨레 21, 2025.06.18. 
문성호 외,「내 마음은 극우인데 조금 혼란스러워」, 시사IN, 2026. 01.16.

국회예산정책처,「OECD 주요국의 공공사회복지지출 현황」, NABO Focus 30호, 2021.02.24. 
2015 교육과정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해냄에듀 출판사, p. 271. 

 

 

채창수 | 전주 완산고등학교 수석교사. 교사와 연구자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평화를 일구는 역사 수업을 실천하고 있다. 매년 ‘한반도 평화’라는 큰 틀에서 새로운 주제를 연구하고 개발해 전북 교사들에게 수업을 공개하면서 전북평화통일교육연구회에 가입하도록 갖은 방법으로 유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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