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10_3 송태효_어린 왕자의 미술 세계

by 어린이어깨동무 2017. 12. 20.

[시선 | 세상과 만나는 인문학]


어린 왕자의 미술 세계


송태효



화가로서의 꿈의 결실 『어린 왕자』


생텍스(생텍쥐페리의 애칭)는 『어린 왕자』에서 자신이 여섯 살에 화가의 꿈을 접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하지만 이후 그의 화가에 대한 열정은 나날이 심화해 갔다. 청년기 시와 편지, 저술 원고의 데생들이 이를 증명해준다. 그는 글과 이미지의 조화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자신의 무능을 탓하며 과감히 폐기해버렸다. 마지막 작품 『어린 왕자』는 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완성도 높은 작품을 기대하던 화가로서의 꿈의 결실이었다. 언어의 한계성을 그림으로 보완하려는 화가 생텍스의 열정이 그림 동화 『어린 왕자』를 탄생시킨 것이다. 



열아홉 살의 생텍스는 파리의 명문 생루이 고등학교(Lycée Saint Louis) 졸업반 재학 중 해군사관학교 입시에 지원한다. 생텍스는 과학 분야에서 우수한 성적을 얻고도 문학 출제 문항에 모순을 제기하고 백지 답안을 제출하여 낙방한다. 이후 파리의 국립미술학교 에콜 데 보자르(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에 입학하여 십오 개월 간 화가들과 교류를 통해 회화와 건축에 대한 열정을 키워간다.


1920년대 군 복무 시절이나 트럭 외판원 시절에도 생텍스는 끊임없이 그림으로 자신의 일상을 표현했다. 1930년대 이후에는 마치 화가 이중섭이 구겨진 담배 은박지를 펼쳐 가난한 가족의 복작거림을 새기듯 식당 메뉴, 책과 편지지 여백에 인생 잡사의 고달픔, 나부의 아름다움, 친구들의 풍자적 초상을 열심히 그렸다. 이렇게 글과 데생이 어우러진 화가로서의 재능은 초현실주의 화가인 콘수엘로 순신(Consuelo Suncin)과 결혼하면서 한층 성숙해졌다.



초현실주의자들과 생텍스 부부


생텍스의 부인 콘수엘로 순신은 엘살바도르 출신 화가이자 조각가였다. 생텍스와 순신은 동시대 초현실주의 예술가들과 빈번한 교류를 가졌다. 특히 21세의 나이에 화단과 결별한 천재 화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과 각별한 사이였다. 르네 마그리트의 중산모자(derby hat) 이미지를 이방인 시각으로 풀어낸 「중산모자를 쓴 남자(Homme chapeau melon)」에서 그녀의 무의식 세계를 교감할 수 있다. 『어린 왕자』의 장미를 연상하면 그녀의 그림이 한층 친밀하게 다가온다.



생텍스는 천재 작가 뒤샹의 체스 상대로 잘 알려져 있다. 생텍스가 어린 왕자와 장미 이야기를 신뢰, 의심, 분석, 추론 혹은 종합, 열거, 형식적 귀납법 같은 데카르트의 정신지도규칙에 따라 논리적으로 풀듯, 데카르트의 방법론에 매료된 뒤샹은 수학 법칙이 적용된 체스를 통해 예술의 진정성을 추구하였다. 데카르트의 수학과 철학을 통해 두 예술가의 우정이 돈독해진 것이다. 생텍스의 부인은 1941년 프랑스에서 미국 롱아일랜드로 이주하여 대저택을 구입한다. 생텍스가 『어린 왕자』를 집필하게 되어 순신이 진정한 ‘어린 왕자 집’이라 부르게 될 이곳에 입주하면서 순신은 인테리어 벽지 색상을 선택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다. 뒤샹은 당시 순신의 내면 세계를 위로하는 색상들을 제시해줄 정도로 순신과 친밀한 사이였다. 프랑스어, 영어와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던 순신은 미국에 귀화한 뒤샹과 르누아르 이외에도 당시 미국에 머물던 망명 예술가들 특히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같은 초현실주의자들 그리고 잉그리드 버그만(Ingrid Bergman), 장 가뱅(Jean Gabin),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 마를렌 디트리히(Marlène Dietrich) 같은 유명 배우들을 집으로 초대하고 편의를 제공하며 우정을 나누던 화단의 중심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보아뱀과 마그리트의 중산모자


생텍스 역시 초현실주의자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았다. 이들의 동인지 「거울(Miroir)」에 생텍스의 핸드 트레이싱(hand tracing)이 실렸을 정도로 초현실주의자들과 생텍스는 서로 교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생텍스의 속이 들여다보이는 보아뱀 그림을 어른들이 모자라고 우기듯, 고정 관념을 지닌 어른들은 일반적 경험에 근거하여 개인의 특수한 경험을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달리 극단을 피해 개별과 보편의 접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초현실주의자들은 속이 들여다보이는 보아뱀 그림에서 자신들이 꿈꾸던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이상적 이미지를 발견하였다. 특히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가 그린 중산모자(derby hat)와 생텍스가 그린 코끼리를 통째로 삼키는 보아뱀이 이들의 가교 구실을 하였다. 마그리트는 “그림의 제목은 해설이 아니며 그림은 그 제목의 설명이 아니다”라고 말했는데, 생텍스가 『어린 왕자』에서 하고 싶은 말도 이와 다르지 않다. 말은 오해의 근원이며 마음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자는 것이다.



앞서간 평화주의 예술가 생텍스


보들레르 시의 상징성, 프로이트의 무의식, 마르크스의 계급 투쟁을 토대로 앙드레 브르통이 주도하던 초현실주의 그룹은 부르주아 문화 타파를 국시로 삼았다. 이들과 달리 이미 러시아 혁명과 스페인 내란에서 과도한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인한 희생을 경험한 생텍스는 계급투쟁 너머의 인간성 유대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문학을 추구하였다. 브르통을 위시한 초현실주의자들은 일촉즉발의 긴박한 현실 갈등을 미처 이해하지 못한 채 생텍스를 비판하다 전쟁이라는 물리적 현실을 겪고 나서야 생텍스를 이해하게 된다. 생텍스는 이미 대륙의 전쟁을 예견하고 그 공포와 폐해를 경고하는 평화주의 메시지를 언론과 문예지에 호소해온 선각자였다. 생텍스는 정신적 장애나 다름없는 편파적 이데올로기 미술 교육에도 일침을 가하고 있다.   


새로운 그림이라는 것이 눈으로 교육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되는 현실에서, 민중에게 화가를 고르게 하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역설이란 말인가. 모든 요인을 거부할 것.

생텍스, 『수첩(Carnets)』, 갈리마르, 1953, p.201,


생텍스가 마음으로 추구하는 새로운 평화는 전쟁의 공포를 인식시키고 평화의 기능을 일상에서 누리게 하는 심미적 실천적 평화이다. 이러한 평화는 관습적 이데올로기와 사유의 틀을 벗어나 평화에 관한 새로운 의식 전환을 요구한다. 갈등과 대립의 원인인 증오의 바오밥나무를 제거하는 예술적 교육으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어쩌면 평화는 빈센트의 그림 한 작품을 통해서도 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진정한 평화는 각자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마음을 길들여야 가능한 평화이다. 『어린 왕자』에서 우리는 마음의 눈으로 보는 법을 배웠다. 생텍스가 유명한 화가들 명단에 올라 있지 않다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생텍스가 그린 고독한 초상화와 캐리커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피카소가 그린 카사헤마스(Casagemas)의 죽음을 추모하는 청색 시대 작품들, 그리고 빈센트의 말년 초상화들이 떠오른다. 그 인물들의 눈은 마음의 눈이다. 그리고 빛나는 별이다. 그리고 생텍스도 별이 되어 세상에 평화의 빛을 밝히고 있다.



송태효  불문학 박사로 현재 '어린왕자인문학당' 대표와 제주불교문화대학 불교인문학 교수, '성남시지역발전자문위원회' 교육체육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는 예술인가, 어둠의 방-시와 영화 속 그림자 이야기, 등이 있고, 역서로는 생텍쥐베리 사람들의 땅, 어린 왕자 등이 있다.

 



댓글